전출처 : mira95 > 카우보이 비밥


 

 

 

 

 

 

 

 

 

 

 

 

 

 

 

 

 

 

 

 


 

 

 

 

 

 

 

 

 

 

 

 ' 카우보이 비밥'입니다..  카우보이 즉 현상금사냥꾼들의 이야기죠.. 여기서는 우주를 떠돌아 다니며 현상금 사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요.. 일단은 음악으로 굉장히 유명하다죠.. 저는 뭐 음악에 무지한지라 별 감동을 못 받았지만요. 위의 사진의 네명과 한 마리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데, 덥수룩한 머리의 스파이크가 이야기의 중심인물이라 할 만합니다.. 극장판도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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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08-26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감사합니다. 님~~^^
 



운문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한 신승이 창건하였다.
608년 (진평왕 30)에 원광 국사가 제1차 중창하였다. 원광국사는 만년에 가슬갑사에 머물며 일생 좌우명을 묻는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주었다고 한다.
제2차 중창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오갑사(五岬寺)를 중창하였다. 943년 고려 태조 왕건은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고 전지(田地) 500결을 하사하였다.
제3차 중창은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을 배운뒤 귀국하여 운문사에 들어와 중창하고 전국 제2의 선찰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소실되었다.
1690년 (숙종 16) 설송(雪松)대사가 제4차 중창을 한 뒤 약간의 수보(修補)가 있어 왔다.
1907년 운악(雲岳)대사가 제5차 중창을 , 1912년 긍파(肯坡)대사가 제6차 중창을 하엿다.
1913년 고전(古典)선사가 제7차 수보하였고, 비구니 금광(金光)선사가 제8차 수보를 하였다.
1977에서 98년까지 명성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대웅보전과 범종루와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는 등 경내의 면모를 한층 일신하였다. 현재는 30여 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었다.

운문사는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승려 교육과 경전 연구기관으로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운문사사적]에 의하면, 557년(진흥왕 18년)에 한 신승(神僧)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닫고 도우(道友) 10여 인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현, 대비사), 남쪽에 천문갑사(현, 운문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뿐이다.
그후 600년 (신라 진평왕 22) 원광 국사가 중창하였다. 그는 대작갑사와 가슬갑사에 머물면서 점찰법회를 열고,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 오계를 내려줌으로써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되었다.
오갑사가 창건된 시기는 신라가 불교를 중흥하고 삼국통일을 위해 국력을 집중하여 군비를 정비할 때였다. 이때 오갑사가 운문산 일대에 창건되고 화랑수련장이 만들어 진다. 그것은 곧 신라가 서남일대 낙동강 유역으로 국력을 신장해가는 과정으로써 운문사 일대가 병참기지로서 당시 신라로서는 전략상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보양이목조에는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태조왕건은 운문사에 있던 보양국사의 계책으로 이 일대를 평정하였다. 그 뒤 후삼국의 사회적 혼란을 어느 정도 수습한 왕건은 937년(태조 20년), 대작갑사에 '운문선사'라는 사액과 함께 전지 500결을 하사하였다." 고 한다.

이 때부터 대작갑사는 운문사로 개칭되었고, 경제적 기반을 튼튼히 구축한 대찰로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 학일이 제3차 중창한 후 왕사로 책봉되었다. 원응국사는 1129년(인조 7) 부터 이 절에 머무르실 때 운문사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1277년 일연선사는 고려 충열왕에 의해 운문사의 주지로 추대되어 1281년까지 머무르셨다.
이 곳에서 일연은 『삼국유사』 의 집필을 착수하였다. 운문사의 절 동쪽에는 일연선사의 행적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인 18세기 중반, 운문사는 설송 연초대사가 제4차 중창할 때와 19세기 전반 헌종 년간에서 운문사의 사세는 상당했다.
운문사의 제5차 중창주인 운악화상은 1839년에 오백전을 중수하였다. 이듬해 응진전과 명부전, 미타전, 내원암, 북대암등을 중건하였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청신암을 창건하였고, 1842년 금당을 중건하였다.



해방이후 제1세 김상명 스님에서 제4세 박상웅스님까지 잠시 대처승이 거주하였다.
1950년대 교단정화 이후 비구니 정금광 스님이 1955년 초대 주지로 취임하여 제8차 보수.중창하였다.
이후 2.3대 유수인, 4대 배묘전 , 5대 이태구, 6대 안혜운, 7대 위혜안 스님을 거쳐 8대부터 12대까지(1977~1998) 전명성 스님이 운문사 주지와 학장을 겸임하면서 제9차 중창불사를 이룩, 대웅보전과 요사 등 29동을 신축하고, 만세루 등 기타 전각들을 중수하는 등 명실공히 대가람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이어 1998년부터 제13대 주지로 송혜은 스님이 부임하면서 선원을 신축하여 교와 선을 아울러 익힐 수 있는 도량으로 가꾸었다. 2002년부터 제14대 주지로 고흥륜 강사스님이 부임하여 오늘에 이른다.

1997년 비구니 강사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기관으로는 최초로 승가대학원이 개설되었다.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된 이래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명칭이 바뀌고 전문교과 과정과 교수진을 확보하여 승가대학의 명분에 걸맞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대략 26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이곳에서 경학을 수학하고, 계율을 수지봉행하고 있으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 청규를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운문승가대학은 국내 승가대학 가운데 최대의 규모와 학인수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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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08-26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가보세요.
가시기 전에 경산지역의 홍시도 보시구요..
10월 말쯤 가시면 넘 좋을 거예요.

꼬마요정 2004-08-2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야지..가야지..늘 마음만 가야지..입니다. 정말 가보고 싶은데, 맨날 여건 타령만 하고 있지요..올해는 꼭 가보도록 해야겠어요~~^^

mira95 2004-08-26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전에 갔다 왔어요... 운치있고 좋더군요...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구경하고 좋았어요..꼬마요정님도 꼭 가보세요^^

꼬마요정 2004-08-2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소네트집 (Sonnet)                                                                                                                      

 154편으로 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14행 시집.
저자 : 윌리엄 셰익스피어
장르 : 시집
발표 : 1609년

 1609년 출간. 그 대부분은 1593∼1598년에 쓰여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시인·귀공자·흑부인(黑婦人) 등을 둘러싼 생생한 인간 드라마를 만물유전의 양상 가운데서 그려냈다는 점에서 14행시 가운데서가장 비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네트는 영국문학에 있어 가장 전형적인 시형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영국 등 여러나라에서 약 13세기경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16세기 엘리자베스 조때 아탈리아로부터 들어와 성왕하기 시작하였다. 필립 시드니, 에드먼드 스펜서, 셰익스피어 등이 당시 유명한 소네트 작가들이며, 현대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인들이 소네트를 써왔다.


내용

셰익스피어의 작품전부를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극이 아닌 시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네트 시집>이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극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노래들도 문학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다.

소네트는 14행으로 되어 있으며, 1행은 아이앰빅 펜타미터(iambic pentameter)로 되어 있다. 아이앰빅은 액센트가 약강으로 된 운각을 말하며 이 운각이 다섯개로 된 것을 아이앰빅 펜타미터라고 한다. 소네트는 이탈리아형과 영국형 2종이 있으며, 영국형은 다시 셰익스피어형(Shakesperian Sonnets)와 스펜서형(Spenserian Sonnets)의 두가지 타입이 있으나, 거의 비슷하다.

영국형 소네트는 14행이 나뉘어져서 4행씩으로 세분단이 전장이 되고 마지막 2행이 후행이 된다. 이 4행씩의 세 분단은 내용적 구분으로, 겉으로는 나타나 있지 않고, 마지막 2행만이 표시되어 있다. 마치 한시의 절구에 있어서 기승전결과 같이, 먼저 세 분단에서 전개된 생각이 마지막 두 줄에 와서 클라이막스적인 안정을 갖게 되는 묘미가 있다. 이 마지막 두 줄은 우리나라 시조의 후장에서와 같이, 순조로운 흐름을 깨트리며, 비약의 미와 멋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조를 풍월이라고 하듯이 소네트를 시의 스포츠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즉 가벼운 장난이나 재담이란 말이다. 사실 엘리자베쓰 시대 소네트 속에는 가볍고 재치있는 말재주들이 있다. 그러나 엄숙하고 심원한 사상을 밀턴이나 워즈워스는 소네트로 발표하였다. 또 소네티어(sonneteer)라고 낮춰 불러 소네트 작가들을 멸시하는 때도 있다. 그래서 워즈워스는 <소네트 작가들을 멸시하지 마라>는 소네트까지도 쓴일이 있다. 소네트라고 하여 시형에다 말만 채워 넣어 기계적인 빈약한 것들을 써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조에도 한시(漢詩)를 그냥 가져오거나 한시에다 토를 달거나 유교적 윤시를나열한 것들이 많아, 시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소네트는 엄격한 정형시이기 때문에 시인은 표현에 있어 많은 제약을 받는다. 즉 압축된 농도 진하고 간결한 표현을 하기 위하여 모든 시적 기교를 부려야 한다. 그리고 소네트는 시상의 집중체이므로 한 말이 다 불가결한 것이라야 하며, 존재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감정이나 사상의 무제한한 토로가 아니라 재고 깍고 닦고 들어맞춘 예술품이라야 한다.

수백년간 지켜내려온 소네트형에는 영국민족에게 생리적으로 부합되는 무슨 자연성이 있는가 싶다. 그러기에 대시인 셰익스피어는 154편의 소네트를, 워즈워스 5백 수(首)를 넘어 쓰고, 밀턴과 키이츠도 많은 소네트를 썼다.

내용은 3부로 나뉘어 주요부(1∼126번)는 파트롱인 미모의 귀공자를 그린 것이다. 먼저 그의 미모를 찬양하고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남기기 위하여 결혼해서 아들을 두라고 권유하고 나서 이별의 쓰라림, 시인의 연인을 빼앗아간 귀공자에 대한 원망의 말, 라이벌 시인의 개입에 대한 질투, 우수와 번민, 절교상태, 우정의 회복과 사랑의 승리를 노래한다.

제2부(127∼152번)는 소위 '흑부인'에 관한 것으로서 그녀에 대한 찬미를 늘어놓으면서도 라이벌의 존재를 넌지시 비치고, 여자의 정숙하지 못함을 나무라고, 업보(業報)와 같은 육욕을 저주한 '독설(毒舌)'의 소네트도 포함되어 있다. 제3부(153∼154번)는 큐피드를 노래한 것이다. 소네트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집>은 전부 154편으로, 대개 1590년대부터 1609년 사이에 창작된 것들이다. 이 <소네트 시집>은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단히 단순하며, 인물은 시인인 작가와, 그의 고귀하고 젊은 친구와, 살결이 희지 않고 눈과 머리털이 검은 여인의 세 사람이다. 시인은 그의 친구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한다. 그 사랑은 우정 이상의 것으로, 마치 애인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를 배반하고 시인에게서 검은 여인을 빼앗아 간다. 시인은 일시 몹시 상심하나, 관대함 그 이상의 관대함으로 다시 친교를 회복한다. 그는 그 여인을 악마라고까지 비난하나, 자기 친구는 유혹받은 천사로 여긴다.

이 등장인물이 실제로 누구인지 확실치 않다. 학자들은 전기적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여 왔으나, 만족할 만한 해답에 도달하지 못했다. <소네트 시집>은 연가이나, 연결된 이야기로는 명료하지 않는 점이 있다. 어떤 시편은 거의 관련성이 없기도 하다. 154편의 시중에서 좋은 것들은 애정의 환희와 고뇌를 우아하고 재치 있게 표현하였으며, 그 속에는 진질성과 심오한 철학이 있으나 어떤 작품들은 다만 기교의 연습이 지나지 않는다.

영문학사상 위대한 걸작품으로 추천되는 시편은 12, 15, 18, 25, 29, 30, 33,34,48, 49,55, 60, 66, 71, 73, 97, 98, 99, 104, 106, 115, 116, 130, 146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소네트 시집>은 같은 빛깔이면서도 여러 종류의 구슬이 섞여 있는 한 목걸이로 볼 수도 있고, 도립된 구슬들이 들어 있는 한 상자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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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카리오카

□ 재료 :

강하게 볶은 커피 120cc, 굵은 설탕 작은술 2, 아이리시 위스키 20cc, 휘핑크림 작은술 2
■ 방법 : ① 받침이 있는 글라스에 굵은 설탕을 넣는다.
  ② 커피를 따른다.
  ③ 위스키를 따른다.
  ④ 휘핑크림을 띄운다.
※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로 샌프란시스코 커피라고 부른다. 따를 때 커피와 위스키가 서로 섞이지
  않아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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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메'는 프랑스어로 '미식가용' 커피 봉투의 겉면에 Gourmet Coffee'라고 되어 있으면 100% 아라비카 종 고급커피이다.
 
상품명은 국가명으로, 국가명칭 뒤에 커피의 재배산지나 수출항구, 재배산 농장이름을 표기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원두 커피'라는 의미로 남용되므로 조심!! '골드'나 '프리미엄','임페리얼','스페셜'등 은 광고용어이므로 혼동하지 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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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8-26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 포튼가요? 넘 앙증맞고 이뻐요...

꼬마요정 2004-08-2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손잡이는 설탕 포트구요, 옆에 있는 거는 커피 포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