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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풍경 - 지중해를 물들인 아홉 가지 러브스토리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1
시오노 나나미 지음, 백은실 옮김 / 한길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마태우스님께서 선물해 주셨다. 그 분의 이벤트에 당첨되었기 때문! 그냥 기대 없이 찍었는데, 덜컥 걸려서 괜시리 좋았다. 기분 좋게 생긴 책이라 그런지 예뻐 보인다.
책의 부제가 <지중해를 물들인 아홉 가지 러브 스토리>라고 되어 있는데, 지나치게 소설 같은 이야기들도 있었고, 러브 스토리라기 보다는 잔혹한 이야기도 있어서 좀 떨떠름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이야기가 흔하지 않은 까닭에 그저 나 자신을 위로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두께도 얇고 크기도 아담해서 쉽고 빨리 읽힌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는데, 읽고 나니 중세 시대에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대공비 비앙카 카펠로. 그녀는 토스카나 대공국의 공비가 되었으나 죽은 후 그토록 사랑하던 남편과 같이 묻히지도 메디치 가 묘소에 안치되지도 않았다. 그녀를 못마땅해 한 시동생에 의해 그녀의 시신은 빼돌려져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베네치아의 딸이란 지위까지 부여받았던 그녀가 그런 취급을 받은 이유는 단 하나 남편이 있던 몸으로 한동안 대공의 정부였기 때문이다. 그 시대 수많은 남자들이 애인을 두고 사생아를 수없이 만들어도 아내는 단 한마디도 못하고 그저 자리만 지키는게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부인이 애인이라도 만들라치면 그 댓가는 불명예스런 죽음, 또는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되었다. 그런 대표적 사례가 파리시나 후작 부인과 필리포 백작의 아내였던 이자베타이다.
파리시나는 스무 살이나 연상인 페라라의 군주 니콜로와 정략결혼했다. 몇 년을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니콜로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지나치게 바람을 많이 피우는 게 흠이었다. 자신의 영지 곳곳에 애인이 있어 영민들이 비아냥거리는 투로 각 지역마다 애인을 두는 건 평등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어쨌든 자존심 강한 파리시나의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일이다. 결국 그녀는 상처입은 마음을 달래려다 의붓아들을 사랑해 버렸고, 결국 목이 잘렸다. 이자베타의 경우는 너무나 끔찍했다. 살아있는 채로 벽에 묻혀 버린 것이다. 남자는 세상에 드러내놓고 애인을 만들고 여자는 음지에서 애인을 만들다 들키면 죽임을 당한다. 너무나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러나 여교황 조반나의 이야기는 조금 색달랐다. 밖에서는 남장 여자였고,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는 여자였던, 로마 7대 불가사의에 들 정도로 명석했던 여인. 그녀는 세상을 속이고 남자인 채 교황으로 즉위한다. 10년을 그렇게 세상을 속였지만,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는 바람에 그녀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여기서 시오노 나나미는 그녀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이 이야기에 대한 그녀의 어정쩡한 태도가 별을 하나 빼는 데 기여했다. "이게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카톨릭계에서는 전설이라고 하고, 서민들은 진실이라고 믿는데, 판단은 각자가 해라. 난 모르겠다." 이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태도이다. 좀 떨떠름하지 않은가.
전체적으로 무난한 내용들이었다. 눈여겨 볼 점은 중세 여성들의 부자유스럽고 불평등한 삶과 이교도에 대한 증오심이다. 학교에서는 중세를 관통하는 핵심을 기독교와 봉건제도라고 가르치는데, 이 책을 읽으면 기독교와 봉건제도와 맥을 같이 하는 철저한 가부장적, 남성우월적 사고방식을 알 수 있다.
오타도 없고, 번역도 괜찮고, 책도 깔끔하고 예뻐서 책 겉모양은 대만족이다. 내용도 잠 안오는 어떤 밤에 달콤한 커피 한 잔 마셔가며 보기에도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