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안전가옥 쇼-트 1
심너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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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네 개의 저주에 빠진 것 같다.


심너울 작가의 이야기들은 모두 훌륭했다. 그런데 왜 별을 네 개만 줬을까. 아마 마지막에 읽었던 <최고의 가축>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막상 별을 줬을 때의 느낌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래서 읽고 빠른 시간 내에 리뷰를 써야 하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아 서글프다. 어쨌든 요즘 읽는 책마다 정말 좋으면 별 다섯, 정말 마음에 안 들면 별 셋, 마음에 들면 별 넷을 주는데, 별 네 개의 저주에 빠진 것 같다. 대부분이 별 넷이니까.


첫 번째 이야기인 <정적>은 정말 좋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 미처 몰랐던 것, 알아야만 하는 것들을 알려줬다. 어느 날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에는 이제껏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거다. 김보영 작가의 <다섯 번째 감각>도 생각났는데, 사람들은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에서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한다. 이 곳을 벗어나면 소리가 들리는데, 이 곳에서만 들리지 않는거다. 말을 할 때도 진동은 느껴지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소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곧 이 일대에 있는 사람들이 듣지 못할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리는 있지만 들을 수 없는거다. 학교는 휴교를 했고, 사람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자주 가던 까페도 문을 닫아 '나'는 정처없이 걷다가 한 까페를 발견한다. 필담으로 주문을 하던 게 익숙해져 '나'는 핸드폰에 원하는 메뉴를 적어 건냈고 까페 주인은 수화를 했다. 알고보니 이 까페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봉사단체가 세운 비영리 수화 까페였다. '나'는 이 곳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알게 되고, 수화를 배우게 된다. 듣지 못하는 세상에서 청각장애인들은 자유로웠다. 이명도 들리지 않고, TV에서는 자막을 늘 제공했으며, 인공달팽이관을 건드리는 사람도, 장애인 편의 시설을 없애라고 시위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리가 돌아왔다. TV 자막은 사라졌고, 사람들도 돌아왔다. P씨의 이명도 돌아왔다. 그래도... 까페는 남았다.


두 번째 이야기인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는 웃픈 이야기였다. 난 부산에 살기에 경기도민의 애환을 알지 못한다. 내가 부산 끝에서 부산 끝으로 갈 일은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양산에 사는 친구를 자주 보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산 사는 친구가 부산까지 매번 오기도, 내가 양산으로 매번 가기도, 번갈아 왔다갔다 하기도 참 번거로우니까. 물론, 친구에게 귀여운 자녀가 셋 또는 둘 있다는 게 함정이라고나 할까. 


'나'는 절친한 친구가 일산에 책방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에 인테리어도 돕고 구경도 할 겸 일산을 방문했다. 하루를 친구와 함께 술 마시고 놀다가 다음날 집에 가려고 백마역으로 가려는데, 친구가 '나'를 말렸다. 왜? '나'는 백마역에서 타고 한남역에서 내리면 될 것 같아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하고 연장을 챙겨준다는 친구를 뒤로 한 채 승강장으로 갔다. 그런데... 그 곳은 무슨 저주가 내렸는지 살아있는 시체들이 가득했다. 기차가 연착돼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사람들... 지하철역에 붙박이 정념이 된 듯한 그들을 보고 당황하고 있는데, 유명 웹툰 작가를 만나게 된다. 4년째 풀컬러 전일 연재라는 기적을 이루고 있는 그의 작업 비결은 바로... 이 곳이었다. 기차가 연착되어 오지 않는 곳에서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차를 기다리며 작업을 하니 연재가 밀리지 않는 거였다. 기자가 직업인 '나'는 작가인 성하리의 도움으로 겨우 그 곳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고, 경의중앙선에 대해 알린다. 코레일은 배차 시간을 줄여준다기보다 스크린도어에 시가 아닌 단편소설을 적어 넣겠다고 공모전을 하는 이상한 짓을 하긴 했지만 경의중앙선에 열차를 하나씩 더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성하리 작가가 6년 만에 하루 휴재를 예고했다. 출, 퇴근 시간에 극악한 대중교통의 실태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놔서 즐겁게 읽었다. 과연 즐겁게 읽어도 되는 걸까 싶지만.


세 번째 이야기는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이다. 금요일은 설레는 요일이다. 아무리 짧다지만 주말이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요일이니까. 그래서일까, 근추동 행정복지센터 말단 주무관 김현은 금요일에 잠들면 금요일에 의식을 차린다. 아니, 일요일에 잠들어서 금요일에 눈을 뜨는 건 이해가 가는데 금요일에 잠들어서 금요일에 눈을 뜨는 건 좀 잔인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김현은 이야기 한다. 어차피 평일은 죽느니만 못하다고, 숨 쉬는 게 고통이며, 노동으로 자아 개발 이런 건 다 헛소리라고. 의식론 연구소의 주니어 연구원 윤희랑은 피실험자들이 의식 없이 6일을 살게 되는 것에 묘한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들이 사람들의 이상한 민원과 화풀이에 스트레스 지수는 엽기적인 수치를 기록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며 실험의 부작용에 동의했으며 어떻게 보면 썩은 동앗줄일지라도 구원일지도 모른다고 완벽하게 자기합리화를 이뤄낸다. 힘들 때 다른 대안이나 해결책이 있으면 좋을텐데 우리 사회는 그런 안전장치가 너무 없다. 세상엔 즐겁고 신나는 일들도 분명 있는데 그런 일을 즐길 만한 감정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네 번째 이야기는 <신화의 해방자>이다. 이 이야기는 조금 잔인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용순'이가 너무 기특해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정말 인간은 너무 잔인하다. 마법공학과 생물학을 복수 전공한 소현은 셀트린 연구소에 취직했다. 그 곳에서는 용아세포를 원하는 조직으로 분화시켜 쥐의 등에 이식해서 6개월 후에 성장한 조직을 채취했다. 물론 모든 조직이 원하는 상품성을 지닌 조직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상품성 없는 조직을 가진 쥐들은 그냥 폐기 처분 됐다. 끊임없이 쥐에게 세포를 이식하고, 끊임없이 쥐들을 잡아 죽이고... 소현은 그 곳에서 등에 있는 조직이 잘 자라는지 확인하고 선별하는 일을 했다. 소현은 동물을 좋아했기에 죽일 쥐를 선별해서 죽이는 일은 너무 무참했다. 하지만 취준생으로 2년을 살았던 소현은 실업자가 되지 않으려고 억지로 버텼다. 그나마 윤리 규정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데, 이런 윤리 규정은 피실험체를 위한 게 아니라 실험자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내던 소현은 기숙사에 돌아와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흰 쥐가 튀어나온 걸 보고 기겁한다. 용아세포가 이식되어 마력을 가진 흰 쥐는 보라색 비늘을 가지고 있었다. 순간 이동을 할 줄 아는 이 쥐는 소현을 간택한 거였다. 소현은 그 쥐에게 용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길렀다. 과연 둘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셀트린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둘까. 소현은 자신도 살고 용순이도 살리기 위해 용순이를 풀어 줄 계획을 세우지만 용의 마력을 내뿜는 용순이를 풀어주기는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신화적인 존재는 신화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소현과 함께 자유를 찾았다고나 할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 갈까. 모든 것을 버려야 바라는 하나를 가질 수 있는 걸까. 죽음에서 생명이 태어나리니.


마지막 이야기는 <최고의 가축>이다. 용이라는 신화적 존재조차도 가축으로 길들여버린 인간의 놀라운 재능이라니.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이스켄데룬은 생각한 것일까. 죽더라도 자유를 찾겠다는 의지는 온데간데 없고, 인간이 제공하는 안락함과 조롱 섞인 숭배를 받아들인 이 초월적 존재를 어떻게 봐야할까. 애초에 아이발리크와의 싸움에서 한 쪽 날개를 잃고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깊은 잠에 들었다가 과학 기술로 무장한 인간 세상에서 눈을 뜬다. 용아 세포를 제공하고 얻은 안락함은 좋았지만 자유를 원했던 이스켄데룬은 또 다시 날개를 잃고 만다. 합의된 계약 관계에 그들이 바치는 조공과 숭배에 만족하자고 길들여진, 인간이 길들인 가장 위대한 존재인 이스켄데룬은 언젠가 힘을 되찾아 자유를 향해 힘차게 날개짓 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도 그렇게 자유를 찾아 갈 수 있을까, 용순이와 소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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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2-08-01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을 좋아해요. 평일에 하지 못한 독서와 글쓰기를 이 시간에 하려고 하는데, 이때 몰입도가 높아져요. ^^

꼬마요정 2022-08-01 14:22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시간대를 좋아해요. 잠들기 싫은 밤이라고나 할까요. 다음날 늦게까지 푹 잘 수 있으니 자기 아깝더라구요. 토욜에는 꼭 cyrus님 서재를 방문할게요. 좋은 글 볼 거란 기대가 팍팍 샘솟습니다^^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 - 여성 호러 단편선
김이삭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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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당한만큼 돌려주면 내 마음은 편안해질까.


이 책은 열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두 독특하고 재밌었는데, 역시나 귀신보다는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남유하 작가의 <시어머니와의 티타임>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시어머니는 영화 <올가미>를 떠오르게 했다. 그렇게나 아들이 사랑스러운데 왜 아들을 결혼 시켰을까. 남들처럼 혹은 남들보다 더 잘 살아야 어깨가 으슥해질테다. 그래서 결혼 시키기 싫음에도 결혼 하지 않은 남자는 하자 있어 보이니까 결혼 시켰겠지. 그럼 자연히 짝이라고 데려 온 여자는 꼴도 보기 싫겠지. 오롯이 혼자 사랑받고 싶었는데 아들의 아내라는 여자가 그 사랑을 훔쳐갔다고 생각할테다. 스토커 마냥 아들을 훔쳐보고, 아들을 속박하고, 아들을 독점하려 하는데 그 아들이 죽어버렸다. 이제 남은 건 그 아들을 공유한 두 여자 뿐. 그들은 한 집에 살지만 공유하는 것이 없다. 다만 한 시간 정도의 티타임만이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일 뿐. 시어머니는 '나'와 티타임을 가지지만, 늘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티타임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기존의 이야기 방식이라면 마지막에 '나'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냥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그러지 않았다. 받은 만큼 아니 이자까지 쳐서 갚아준다. 통쾌한 면도 있지만 씁쓸하기도 한 이야기였다. 시어머니가 그렇게까지 아들을 사랑하게 만든 이 사회에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두 번째 이야기인 코코아드림 작가의 <무진도 탈출기 게임 환불 요구서>는 나도 이 게임을 하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내가 만약 하진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진으로 세상이 멸망한 것 같은 미래의 어느 날, 무진도라는 섬에는 '마키나'라는 인공의식이 사람들을 지배한다. 지진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이 섬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공장에서 물자를 생산하도록 하는 '마키나'를 숭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진은 의심한다. '마키나'를 의심하고 '구원'을 의심한다. 잘 통제된 사회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은 절대로 순응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갔다 근신 처분을 받은 하진은 우연히 '식물원'으로 가는 길을 묻는 여행객을 만나게 되고 그 동안 알던 것들이 전부 거짓이라는 사실 앞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그 상황에서 게임 유저는 선택을 할 때마다 하진의 시선을 느끼는데... 과연 게임일 뿐인걸까.


세 번째 이야기는 장아미 작가의 <큰언니>이다. 몽환적이고 고전적인 느낌이 가득한 이 소설은 술사가 요술을 부려 그린 살아있는 그림을 보는 듯한 이야기이다. 병에 걸린 엄마가 자식 셋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그 자식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어떻게 끊어내야 할까. 거기다 맏이라고 동생들을 지켜야 하는 큰언니의 책임감은 또 얼마나 무거울까. 너무나 사랑하기에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미련을 실을 잘라내듯 잘라낼 수 있는 것 또한 커다란 용기일 것이다. 염과 원을 담아 만든 그 자수 속 세계는 어머니의 염원과 맏이의 염원이 합쳐져 그들을 지켜냈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그 자수 속 세계에서 다시 만나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 번째 이야기는 전혜진 작가의 <창귀>이다. 창귀는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람의 혼을 말하는데, 창귀가 이름을 부르면 절대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 세 번을 부르는데 대답을 하게 되면 창귀에게 홀려 호랑이밥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랑이에게 혼을 잡혀 자신 대신 아는 사람을 먹이로 줘야 하니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창귀가 이렇게 오래도록 호랑이에게 붙잡혀 있으면 자신이 호랑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애초에는 희생자였으나 종국에는 압제자로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여자라서 화풀이 대상으로 죽임을 당하고, 폭행을 당하고, 폭언을 듣는 세상에서 윤서는 이유 없이 둔기로 머리를 맞는다. 운이 좋아 살았다는 윤서는 자신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가족들과 세상이 원망스럽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나중에 보험을 들지 못한다는 둥 유난스럽다고 윤서의 엄마는 윤서를 나무라고, 이런 사건으로 휴학했는데 회사에서는 불성실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이런 이상한 세상에서 윤서는 사람들 몸에 붙어 있는 촉수나 내장 따위를 보게 된다. 그래, 이상한 세상이니까. 그런 와중에 만난 준상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준상의 어머니와 할머니와 고모를 만나러 간 윤서는 '창귀'를 만난다.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무수히 죽어나간 여아들, 여자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집안의 각종 행사들, 그리고 처음에는 분개했을지라도 이제는 부조리 그 자체가 되어버린 할머니와 고모. 준상의 어머니는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창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 다른 이를 희생시키면 자신은 편해질테지만 그 부조리를 깨 버린 준상의 어머니가 윤서에게도 용기를 주었을까.


다섯 번째 이야기는 배명은 작가의 <매혹>이다. 이 이야기는 들어봤음직한 옛날 이야기를 뼈대로 한다. 나도 늘 궁금했다. 화가 난 초자연적인 존재를 달래는 데 왜 늘 아이나 여자를 제물로 바치는 것인지. 정확히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느 고을에 부임한 원님인지 절제사인지 높은 양반이 마을에서 용신에게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보고 용신을 만나고 오라고 무당도 못에 던지고 아전들도 던져 더 이상 제물을 바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혹은 김녕사굴 전설도 생각났다. 서은은 사업을 하다 망해버린 남편을 따라 농업을 하기 위해 천룡리로 왔다. 잘 될 때는 허허 웃던 남편 정우는 사업이 실패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게 되자 서은의 탓을 하며 서은에게 화를 내고 서은을 때린다. 불행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며 남의 탓을 하는 나약한 정우는 천룡리에서 농업으로 부자가 될 생각에 기분이 좋다. 서은은 이 마을 사람의 무시와 거리감 때문에 의아해 하다 마을 이장의 부인인 주화자에게 이끌려 이 마을의 천녀를 만난다. 천녀가 마을 사람들을 잘 살게 해준다는 말에 정우는 사이비 종교라고 화를 내며 천녀를 못 만나게 하고, 오히려 천녀의 실체를 까발려 망신을 주려 한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정우는 과연 천녀에게 어떻게 될까... 서은의 복수는 나름 통쾌했지만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는 무고한 이도 희생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글쎄, 과연 무고한 이가 희생될만큼 세상에 악한 이가 사라지긴 할까.


여섯 번째 이야기는 한켠 작가의 <너의 자리>이다. 선정 씨는 '나'의 전임이다. 11개월만에 잘린 계약직 직원이고, 나는 선정 씨의 후임으로 11개월짜리 계약직 직원이다. 회사에서 정직원은 전부 남자 뿐이다. 여자는 출산휴가를 써서, 아이 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워서 등등의 이유로 정직원으로 채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대리는 나와 선정 씨의 몸을 더듬고, 정 팀장은 나에게 점심밥을 짓게 하고 국을 끓여 오게 한다. 이 과장은 탕비실에서 추행을 일삼고, 박 차장은 삼촌이라고 생각하라고 딸이라고 생각하라고 하면서 밤을 보낼 생각을 한다. 선정 씨에게 물려받은 집에 있는 백골은 누구이며, '나'가 들고 다니는 엄지손가락들은 무엇일까. 들개들은 왜 들개가 되었을까. 어쩌면 가장 통쾌한 복수인 듯도 한 이 이야기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삶, 안전한 삶, 다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을까. 첫 출근 때 죽어있던 비둘기는 누구일까.


일곱 번째 이야기는 김이삭 작가의 <성주 단지>이다. 성주신은 대들보 위에서 집을 지켜주는 신이다. 혼자 사는 여자들은 집에 들어갈 때 늘 조심해야 한다. 우습게도 가장 편안해야 할 곳에 가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특히나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위해를 가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하다. 나'는 결혼하려고 했던 그 회계사 남친으로부터 도망쳤다.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지영이만 아는 곳에서 전공과는 상관없는 민속학 연구소에서 임시직으로 일하기로 한다. 집을 구하려는데 연구소장이 아는 친척이 소유한 고택에서 머물기를 제안했고, 나는 그 곳이 마음에 들었다. 곳곳에 CCTV도 달려있고 자물쇠도 비밀번호가 새로 생성되는 것이었고, 넓은 집에 지내는 사람은 '나'뿐이라 집 관리만 좀 해주면 월세도 싸고 좋은 조건이었다.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하면 앱에 연락이 오는데, 어느 날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하는지 덜컹거리며 알람이 왔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듯도 하고. '나'의 말처럼 귀신은 무섭지 않다, 사람이 무서울 뿐.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문을 두드리며 행패를 부리던 전 남자친구는 '나'의 집 앞에서 여전히 행패를 부리다 옆집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 '나'를 찾아 온 그가 해 준 말이다. 그리고 항아리를 깨는 바람에 항아리를 새로 사고, 또 좋은 마음으로 청소까지 해서인지 성주신이 도와준 것일까. 또다시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말이다.


여덟 번째 이야기는 서계수 작가의 <산상 수훈>이다. 신약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이다. 가르침대로만 산다면 참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은데, 또 이 가르침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나쁜 짓을 하고도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하은은 새인이 이교도라고 생각한다. 복음의 새순이라고, 나쁜 길로 꼬여내기 위해 온 아이라고. 그러면서 새인의 목을 조르게 되는데, 그 때 새인이 누군가의 목소리로 예언 같은 말을 하기에 그걸로 돈을 벌자고 한다. 하은은 새인이를 질투하고, 새인이를 이용하고, 새인이를 이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은의 불행은 모두 새인이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의심까지... 하은의 인생이 뜻한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은 과연 누구 때문일까. 


아홉 번째 이야기는 사마란 작가의 <뷰티풀 라이프>이다. 이 이야기를 보는데 영화 <화차>가 떠올랐다. 인생을 훔치는 이야기. 영화 <화차>가 가슴 아팠다면, 이 이야기는 시원하면서도 씁쓸하다. 60평대 아파트, 잘 빠진 벤츠 e- 클래스, 수십 벌인 이태리 정장, 롤렉스 시계, 국내 최고 시설 골프장 VIP 회원권, 수입 골프채를 포기하지 못하는 명철은 영미의 비위를 맞추며 산다. 영미 아버지의 회사에서 임원으로 있으며 저런 것들을 누리며 살면서 언제나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다. 영미 성격이 많이 까탈스러운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명철에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명철은 영미가 싫고 첫사랑인 유정이 좋다. 하지만 누리던 것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영미는 아침을 차려 주지 않는데, 유정은 밥을 해 준다. 아니, 도대체 자신이 밥을 해 먹으면 죽어버리기라도 하는걸까. 명철의 뻔뻔함과 가식과 탐욕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치민다. 남자가 여자보다 돈을 적게 벌면 그게 그렇게 아니꼬울까. 영미와 유정을 다 가지려던 그는 결국 유정의 정체를 알게 되고, 60평대 대리석 바닥은 참으로 반들거렸다.


마지막 열 번째 이야기는 유기농볼셰비키 작가의 <그를 사로잡는 단 하나의 마법>이다. 정말로 모든 불법 촬영 피해자분들께도 이런 용기가 마법처럼 생겨나면 좋겠다. 허락 없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고, 이상한 영상을 찍게 만들고 더 나아가 폭력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매춘을 하도록 한 김성택은 희선의 직장 동료였다. 희선은 세련되고 다정한 김성택을 좋아해서 인스타에서 본 '마법의 물약'을 산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뤘다는 후기가 가득한 그 물약을 사용하고 물약 덕분인지 김성택은 희선에게 잘 해주고 희선은 자신감을 가진다. 하지만 김성택은 단지 희선을 갖고 놀 목적이었다. 물론 돈도 뜯어낼 생각이었고. 희선은 당하다 못해 자살을 감행하지만, 김성택은 희선을 그냥 두지 않았다. 죽을 거라면 스너프 필름을 찍으라는... 외딴 곳에서 카메라를 켜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 두시간 안에 죽게 해 주겠다는 김성택을 보는 희선은 그제서야 그 '마법의 물약'의 힘을 알게 된다. 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처럼 자신의 힘을 자각한 희선은 반격을 시도하고... 희선의 물리적 상처는 아물겠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떨까. 마법처럼 희선이 해낸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더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상처 받은 모든 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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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7-26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름엔 서늘한 귀신이야기지만, 밤에 혼자 있을 때 생각하면 무서워요.
귀신만 그런게 아니라 사람도 무서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잘읽었습니다.
오늘 날씨 많이 덥네요.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7-26 23:37   좋아요 1 | URL
저는 귀신 이야기를 좋아해요. 귀신 보단 사람이 무서워서 그런가봐요. 날씨가 점점 더워지겠죠? 그러다 다시 찬바람이 불고 가을이 오겠죠. 점점 일출 시간도 늦어지고 일몰 시간은 빨라지니 조금만 더 견뎌 보아요. 시원한 꿈 꾸세요^^

서니데이 2022-07-31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7월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8월에도 좋은 시간 되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7-31 17:38   좋아요 1 | URL
벌써 7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시간의 힘이 대단합니다. 여름도 곧 지나가겠지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징징 거리고 있는데...


책 읽을 시간은 없으면서 책을 고르고 살 시간은 있다는 게 정말 정말 신기하다!!!


난 능력자였어!!!


일하다가 머리가 꼬여서 잠깐 쉬는 길에 난 또 책을 읽지 않고, 내가 무슨 책을 샀을까나 끄적거려 본다. 이러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지... 하하하


얼마 전에 고양이 얼음틀을 '얻기' 위해 산 책들이다. 헤르만 헤세의 고양이 책갈피도 받아서 너무 신났다. 아, 난 소박한 사람...









책을 사면 읽어야지... 읽고, 사고, 팔고... 가 아니라 사고, 사고, 사고, 읽고, 사고, 어? 자리가 없네? 그럼 좀 팔아야지... 아, 이거 안 읽었는데, 얼른 읽고 팔까... 


그러면서 서재를 돌아다니면 알라디너님들이 읽은 책들이 너무나 재밌어 보이고, 아니 다들 페이퍼든 서평이든 너무 재밌게 쓰시니까.. 나는 장바구니에 담고, 또 사고... 하아...









딱 책을 사서 받았는데 옆에 남편이 나 이 책 사줘 이러는 거다. 옳거니!! 아니 두 권이나!! 그럼 나도 거기에 한 권 살포시 얹어서 또 사고... 



 







<두 고양이>는 고양이에 관한 책이긴 한데 슈뢰딩거의 고양이인지 살아있는 고양이 맞는지 양자가 된 고양이인지... 짧은데 길다.


지금 아직 구매목록이 남아 있다는데 놀라고 있다. 내가 이렇게 책을 많이 샀던가... 미쳤나 보다. 언제 다 읽지? 










나 옛날 이야기들도 아주 아주 좋아하는 듯. 


와아!!! 읽을 책 겁나게 많다!!! 와아!!! 행복하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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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7-18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읽을 시간 없을 때, 더 많이 사는 것 같아요.
저도 이달에 더 많이 샀습니다.
꼬마요정님, 시원하고 좋은 오후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7-19 10:0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읽을 시간이 없으니 더더욱 책이 보고 싶어지나 봅니다.
저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책들이 더 있어서 깜짝 놀랐답니다. ㅎㅎㅎ
서니데이님~ 시원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2-07-18 1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은 일단 사는 것으로 ~

읽을 시간이 없다는 점에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래도 또 사게 되네요.

꼬마요정 2022-07-19 10:09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아니, 계속 산다니까요.
책이 도착하는 날 또 책을 사려고 고르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런데.. 알라디너님들 왜 다 공감하고 그러세요 ㅎㅎㅎㅎ

하양물감 2022-07-19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사고 뿌듯해하고 바라보고 ㅎㅎㅎ

꼬마요정 2022-07-19 10:1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책이 오면 얼마나 반가운지!!
읽어야 되는데, 뭐 언젠간 다 읽겠죠? 그렇겠죠? ㅎㅎㅎ

페크pek0501 2022-07-19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공감갑니다. 아무리 바빠도 책 살 시간은 있다는...

꼬마요정 2022-07-21 21:35   좋아요 0 | URL
그쵸.. 산 책부터 읽어야 하는데 책을 사고 있습니다. ㅎㅎㅎ

scott 2022-07-20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은 시간이 없는 건
스맛 폰에 시선을 빼앗겨서 일지도 ㅎㅎㅎ
요정님 책탑 차곡!차곡!

완독한 책 보다
구매하는 속도가 빨라진다면

분명 요정님은
알라딘의 충실한 책쟁이들 중 한분 ^^

꼬마요정 2022-07-21 21:37   좋아요 1 | URL
심하게 빠릅니다.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요.. 얼른 읽어야 하는데 읽고 싶은 책이 자꾸 생기네요. 읽고만 싶은가 봅니다^^

서니데이 2022-07-25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더운 것 같아요.
이번주 날씨가 많이 더울거라고 합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꼬마요정 2022-07-25 21:01   좋아요 1 | URL
부산은 지금 시원한 바람이 불어요. 다행히 열대야는 없을 것 같아요.
여름은 더운 게 맞지만 막상 더워지니 얼른 시원해지면 좋겠습니다.
더위 조심하시구요. 편안한 잠 드시길 바랍니다^^

살리에르 2022-07-30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을 시간은 없으면서 책을 고르고 살 시간은 있다는 게 정말 정말 신기하다!!!

----> 딱 저한테 하는 말 같네요 ㅎㅎㅎ

꼬마요정 2022-07-31 14:50   좋아요 0 | URL
역시 알라디너님들입니다. ㅎㅎㅎ 모두가 한결같이 공감해주시네요^^
정말 신기하지요? 읽을 시간은 없는데 책 사는 건 너무 신나요!!
 
모드의 계절 (리뉴얼판)
랜스 울러버 지음, 모드 루이스 그림, 박상현 옮김, 밥 브룩스 사진 / 남해의봄날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모드의 눈에 보인 풍경들은 모드의 손을 거쳐 밝고 환하게 다시 태어난다.

모드는 웃는다. 모드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웃음이 난다. 따뜻하고 행복하다. 모드는 말 그림을 좋아하고 나는 사슴 그림과 고양이 그림이 좋다.

모드의 그림은 소박하다. 평화롭다. 모드가 그린 소는 순박한 눈으로 웃고 있다.

모드가 본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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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테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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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아손을 혐오한다. 그래서 아르고 호의 아야기가 나오는 순간 이아손이 떠올랐다. 그는 순수하지 못하기에 ‘낙하’할 자격도 없다.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상상할 때 혐오하는 대상을 먼저 떠올리다니, 슬픈 일이다.

‘유퀴즈’에 나온 물리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우주에서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생명’이 오히려 특이한 것이라는. 부테스는 태초의 소리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뛰어내렸다.’ 새의 얼굴을 한 세이렌의 소리는 자연이며 날 것이다. 형식적이고 작위적인 오르페우스의 소리와 대척점에 있는. 금기를 어긴, 돌아보지 말라는 페르세포네의 말을 어긴 그는 -이유야 무엇이든. 시의 완성이든, 에우리디케의 선택이든, 미친듯이 보고 싶어서든- 바쿠스 신의 여사제들에게 찢기고 머리가 뽑힌다.

이 책은 새와 낙하와 죽음이 곳곳에서 흘러넘친다. 세이렌의 소리는 과연 파멸의 소리인가?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 <와호장룡>의 마지막 장면 역시 ‘낙하’이다. 고요한 표정으로 아득한 저 밑으로 뛰어내리는 옥교령은 어찌보면 부테스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은 ‘자유’일까?

부테스는 갑판으로 올라가 뛰어내린다.
음악은 사고思考가 두려움을 느끼는 곳에서 사고한다.
음악에 앞서 여기 있는 음악, ‘길을 잃을 줄 아는 음악은 고통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파멸‘에 노련한 음악은 이미지나 명제로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도, 환영이나 몽상으로 자신을 기만할 필요도 없다.
음악이 고통의 밑바닥에 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곳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분절된 언어에 앞서 존재하는 노랫소리는 애도에 잠긴
‘길 잃은 본성 la Perdue‘으로 다이빙한다. 무조건 뛰어내린다. 부테스가 뛰어내리듯 그저 뛰어내릴 뿐이다. - P21

파에스툼에서는 티레니아 해의 곶이 곳이 없는 로마에서는 타르페이아 바위가 그런 장소이다. 아들 세네카는 죽음의 본성과 동시에 무작위로 선택된 파르마코스‘의 머리부터 떨어지는 죽음의 다이빙에 관해 다음과 같은 놀라운 글을 쓰고 있다. 왜냐하면 허공에 몸을 던진다는 단순한 사실은 뛰어내림으로써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낙하는 육체의 어떠한 후퇴 가능성도 배제함으로써 내면의 미련을 모조리 제거한다(irrevocabilis praecipitatio absciditpoenitentiam). 그가 가지 못했을 수 있는 곳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이다(non licet eo non pervenire quo non ire licuisset)."
시간이란 육식동물들의 시간의 감산에 의한 조급함이며, 격렬한 죽음에 소요되는 시간의 감산에 의한 서두름이다. 죽음에는 그들 자신의 운동성이 뒤섞여 있다.
죽음과 뛰어내림은 같은 것이다.
(pp.56-57)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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