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아스 또는 아옉스 Aias or Ajax

 

1.

살라미스 왕인 텔라몬과 페소보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서 테우크로스의 이복형이다. 아이아스라는 이름은 '독수리'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인 아이에토스에서 따온 것으로 그가 태어나기 전에 헤라클레스가 친구인 텔라몬에게 강한 아들이 태어나도록 제우스에게 기도를 올렸을 때 아버지인 텔라몬이 독수리를 보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일리아드>> 에서의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다음 가는 위대한 장군이며 커다란 방패를 손에 들고 싸움터로 나가는 모습은 탑처럼 웅장해 보였다. 말수가 적고 천천히 이야기 했지만 다정한 마음과 빼어난 용기의 소유자였다. 흔히 이복 동생인 테우크로스와 함께 싸움터로 나갔는데 이때 뛰어난 사수인 테우크로스는 형의 방패 뒤에 숨어 활을 쏘곤 하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아이아스와 함께 참전하는 수도 있었다. 그는 그리스군의 방벽과도 같은 존재로서 흔히 싸움이 불리해질 때에는 자기편의 배후를 지켰다.

 

아이아스도 헬레네에게 구혼한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 구혼자들은 누가 헬레네의 남편이 되든 간에 그 사람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해두었다. 아이아스는 살라미스로부터 12척의 배를 거느리고 그리스군에 가세했는데 아이아스 개인의 힘은 그의 부대의 힘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강했다. 헥토르와 맞승부를 겨루다가 커다란 바위로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직전에 해가 져서 무승부로 되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선물을 교환했는데 헥토르는 칼을, 아이아스는 보라색의 칼집을 각각 상대방에게 주었다. 그리스군이 아킬레우스에게 사절단을 보내어 싸움터로 복귀하도록 재촉했을 때 아이아스도 친구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지만 의논하는 것은 오디세우스에게 맡겼다. 다음날 오디세우스가 곤경에 빠져 상처를 입었을 때 아이아스가 그를 도와 주었다.


아킬레우스의 시체를 그리스 진영으로 운반하는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
프랑소와 항아리의 일부분, 기원전 6세기 (피렌체 고고 미술관)

또한 해변 백사장에 정박해둔 전함을 지키기 위해 쌓아둔 방벽 옆까지 트로이군이 몰려왔을 때 또 한 명의 아이아스와 함께 메네스테우스를 구하고 트로이군의 공격을 저지하였다. 그러나 트로이군이 아군의 함대를 습격했을 때 아이아스는 적의 화살의 표적이 되는 것을 무릅쓰고 커다란 곤봉을 휘두르며 갑판 위로 걸어다니면서 지휘하고 있었지만 적이 배에 불을 지르른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때마침 파트로클로스와 그의 미르미돈군이 달려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게게 공격당하여 죽고 갑옷을 탈취당했을 때 아이아스는 자신의 방패로 그 시체를 덮었다. 파트로클로스의 장례 경기가 벌어지자, 아이아스는 몇 경기에 참가하여 레슬링에서는 오디세우스와 무승부가 되고 창 던지기에서는 디오메데스에게 졌다. 후에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화살에 맞아 죽었을 때 오디세우스가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는 동안에 아킬레우스의 시체를 그리스 진영 안으로 운반하여 갑옷을 지켰다.

 

아이아스의 죽음에 관한 몇가지 설중 가장 신빙성 있는 설은 <<오디세이아>>에 약간 나와 있고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에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아킬레우스가 사망한 후에 누가 그의 갑옷을 이어받을 것인가하는 논쟁이 벌어졌는데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이것을 요구하였다. 그리스군의 지휘관들은 이를 투표로 결정했다고 하고, 또 다른 설에 의하면 그들은 사로잡은 트로이의 예언자 헬레노스에게 결정하도록 위임했다고 한다.

 

아무튼 갑옷은 오디세우스가 차지하였다. 그래서 아이아스는 자기편 군대를 밤중에 공격하려 했는데 아테나 여신이 그를 미치게 만들어 자기편 병사들 대신 양떼를 죽이게 하였다. 제 정신이 든 아이아스는 부끄러움과 회한으로 고민하던 중 헥토르에게서 받은 칼로 자살하였다. 그 피가 땅에 스며들자 (장소는 그의 고국 살라미스라 한다) 거기서 아이리스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잎에 AI 두 글자의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는 그의 이름 맨 앞 두 글자이기도 하고 '슬프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이기도 하다.

 


아테나의 조종으로 미쳐서 저지른 자기의 우행을 부끄러워하여
칼 위에 몸을 던져 자살한 아이아스.
불티 출토 (런던 대영 박물관)

또 오디세우스의 배가 표류하다 난파했을 때 아킬레우스의 갑옷이 떠다니다가 트로아스에 있는 아이아스의 무덤 부근 해변에 떠밀려 왔는데 신의 심판으로 아이아스가 그토록 고대하던 물건을 사후에나마 손에 넣었다는 설도 있다. 아이아스가 사망한 후에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는 처음에 아이아스가 미쳤을 때 저지른 행위를 트집잡아 그의 시체를 매장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오디세우스가 그들을 설득하여 그것을 철회토록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설에 의하면, 그는 아킬레우스와 마찬가지로 파리스가 쏜 화실에 맞았지만 그가 어렸을 때 헤라클레스가 그의 몸에 사자 가죽을 씌워 불사신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트로이인들은 그를 진구렁에 산 채로 매장했다고도 한다. 또 하나의 설에 의히면, 그는 오디세우스에 의해 피살되었다고 한다.

 

아이아스에게는 애첩인 테크메사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에우리사케스('폭넓은 방패'의 뜻)가 있는데 아이아스는 그를 프리기아인과의 싸움터에 데리고 왔다. 이 아들은 텔라몬의 뒤를 이어 살라미스 왕이 되었다.

 


 

2.

로크리스의 오프스 왕인 오일레우스의 아들. 헬레네의 구혼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일리아드>>안의 중요 인물이다. 아마도 텔라몬의 아들인 아이아스와 이름이 같기 때문에 함께 자주 싸움터에 나간 모양이지만 두 사람은 두드러지게 대조적이었다. 오일레우스의 아들인 아이아스는 키가 작고 발걸음이 빠르고 창던지기의 명수였으며 무명으로 짠 속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40척의 대선단을 거느리고 트로이로 향했다.

 

성격면에서도 텔라몬의 아들인 아이아스와 크게 달랐다. 오만 불손하고 신들 - 특히 아테나 여신을 증오했다. 파트로클로스 장례 경기가 벌어졌을 때 전차 경기를 하는 도중 이도메네우스에게 지나친 모욕을 주었다. 도보 경주에서는 그가 이길 게 뻔했는데 아테나 여신이 농간을 부려 오디세우스가 승리하게 되었다. 즉 오일레우스의 아들인 아이아스는 쇠똥을 밟고 미끌어져 패배하였다. 그래서 그가 아테나 여신을 저주하게 된 것이다.

 

트로이를 약탈한 후에 아이아스는 자기 자신과 그리스인에게 커다란 재앙을 가져올 소행을 저질렀다. 즉 아테나 여신의 신상 옆으로 피해있던 카산드라를 끌어내어 욕보인 것이다. 이때 신상도 쓰러뜨렸는데 신상은 그 폭행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하늘로 향하게 하여 놓여져 있었다. 다른 그리스인들은 무서운 죄를 저지른 아이아스를 죽이려 했지만 그는 자신이 쓰러뜨린 신상을 꼭 붙잡고 있어서 그리스인들도 두려움 때문에 손쓸 수 없었다.

 

아테나 여신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아스와 그를 처벌하지 못한 다른 그리스인들에게 벌을 주기로 결심하였다. 그리스 함대가 귀로에 올랐을 때 아테나는 제우스에게 부탁하여 폭풍우를 일으키게 하여 함대가 에우보이아의 남부에 있는 카펠레우스 곶 앞바다에서 난파하였다. 아테나는 아이아스의 배에 벼락을 쳐서 격침시켰지만 아이아스는 바닷가로 헤엄쳐나와 신들의 노여움을 이겨내고 무사히 살아 남았다고 자만하였다. 그러나 기라에라는 바위산에 기어오르는 도중에 포세이돈의 벼락을 맞아 익사했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사망한 후 아이아스는 테티스에 의해 미코노스 섬에 매장되었지만 아직 그를 용서하지 않은 아테나는 그의 조국인 로크리스에 악성 전염병을 퍼뜨렸으므로 로크리스인들은 델포이 신탁에 따라 해마다 두 명의 처녀를 트로이의 아테나 신전에 보내어 봉사하게 하는 데에 동의하였다. 두 명의 처녀를 트로이 주민의 눈에 띄면 죽임을 당하므로 눈치못 채게 하여 트로이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관습이 1천 년이나 계속되었다고 역사시대 후의 로크리스인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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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                  - 박규세 -

 

낙향하는 선비 '나'는 "종도 없는 데다가 짐 실은 병든 말까지 타고 가지, 그 행색이 말이 아니라 보는 사람마

 

다 업신여긴다. 간신히 요로원에 당도하여 주막을 찾으니 먼저 와 있던 한 양반이 자기 종복들을 대뜸 꾸짖

 

기부터 한다. 왜 저런 인간이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었느냐 하는 것. 그때부터 속이 뒤틀린 나는 겉으로 보기

 

에 서울 명문 대갓집 양반이 틀림없는 그를 꾀로써 골탕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작은 소동 끝에 나는 자

 

기도 양반이라고 속여 한방에 들 수 있었다. 마침 심심하던 서울 양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은 끝에 내가

 

참으로 별 볼일 없는 위인이라고 짐작하여 놀려먹기로 작정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그대는 몸이 단단하여 제대로 자라지 못한 듯하고, 턱이 판판하고 수염이 없으니 장차 장가들 곳이 없을 것

 

같구려."

 

나는 계속 바보 행세를 하면서 은근히 기회를 엿본다. 서울 양반은 언문(諺文: 한글)은 글도 아니고 진서(眞

 

書: 한문)를 모르면 어찌 사람일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나온다.

 

그대 형상을 보니, 반드시 활을 쏘지 못할 것이니 능히 글을 하느냐?

 

내 대답하여 말하기를

 

"문자는 배우지 못하고 글은 잠깐 배웠는데, 다만 열 다섯 줄 중의 둘째 줄 같은 줄이 외우기 어렵더이다."

 

객 왈

 

"이는 언문(우리글을 낮추어 부르던 말)이라. 진서(언문에 빗대어 한문을 높여 부르던 말)에 이같은 글줄이 있으

 

리오."

 

내 대답하여 왈

 

"우리 향곡(시골)에는 언문 하는 이도 적으니 진서를 어이 바라리오. 진실로 진서를 하면 그 특기를 어이 측

 

량하리오. 우리 향곡에는 한 사람이 천자문과 사략(간단하게 쓴 역사와 곧 대단치 않은 글공부를 빗댐)을 읽어

 

서 원이 되어 치부(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는 것)로 유명하고, 또 한 사람은 사략을 읽어 교생(조선시대 향교나

 

서원에 다니던 생도)이 되어 과거의 출입하노니, 공사 소지(관의 공소장) 쓰기를 나는 듯이 하기에 선물이 구름

 

이 모이듯하며 가계 기특하니, 이런 장한 일은 사람마다 못 하려니와, 우리 금곡 중에도 김 호수(땅 여덟 결을

 

한 단위로 하여 공부를 바치는 책임을 지던 사람)는 언문을 잘 하여 결복(토지에 매기던 단위, 목, 짐, 못의 통칭)

 

마련하여 고담을 박람(책을 많이 읽음)하기로 호수를 한지 십여 년의 가계 부유하고 성명이 혁혁하니, 사나이

 

되어 비록 진서를 못하나 언문이나 잘 하면 족히 일촌중 행세를 할 것이외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풍월 댓거리를 하게 된다.

 

먼저 서울 양반이 한 구를 읊는다.

 

 我觀鄕之賭(내가 시골 사람과 내기를 하고 보니)

  

 怪底形體條(글을 짓기가 괴이하구나)

 

그러자 속으로 벼르던 나는 이런저런 말대꾸 끝에 다음과 같이 한 수를 지어 보인다.

  

我觀京之表(내가 서울 것들을 보니)

  

果然擧動戎(과연 거동이 오랑캐들이 하는 짓 같구나)

 

서울 양반이 깜짝 놀라 정색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두 사람 사

 

이에 본격적인 내기가 벌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운을 내도 나는 척척 막힘이 없이 시를 지어낸다. 그

 

리고 그 격도 서울 양반이 혀를 내두를 정도. 그 과정에서 물론 양반의 위선과 허세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붕

 

당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지만, 그 전후 맥락을 정확히 따져 비판해야 한다는 훈계도 잊지 않는다.

 

"그대는 어찌 붕당의 이야기를 들어 말하시오? 당시 우가, 이가(牛哥, 李哥: 당 문종때 우승유의 당과 이덕유의

 

당) 어느 쪽의 한퇴지(韓退之: 당 목종 때의 선비인 韓愈로 자가 퇴지)는 들지 않았으나 정이천(程伊川)은 대현

 

(大賢)임에도 그들의 권유를 떨치지 못하지 않았소? 비록 퇴지의 도덕과 학문이 정이천에 비해 못하기는 했

 

지만 퇴지는 붕당에 휩싸이지 않았고, 정이천은 휩싸여서 시시비비의 낭패를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정이천

 

이 사위를 몰라서가 아니라 문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붕당의 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오."

 

마침내 서울 양반이 손을 든다. 그런데 밖에서 말이 울자, 금방 화를 내며 종을 나무란다. 그러자 나는 사람

 

이 어찌 그리 경솔하냐고 비판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수 더 가르친다.

 

".....내 소시 적에 성질이 급하여 고치려 해도 쉽게 고치지 못하였으나,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깨달으니 어렵

 

지 않았소이다. 마음이 노하였을 때는 '참을 인(忍)'자를 생각하면 노했던 마음이 자연히 없어지기에 이때부

 

터 아홉 가지 글자를 써서 늘 보고 외우고 있소. 그릇된 생각이 나면 문득 '바를 정(正)'자를 생각하면 사벽

 

(邪僻)하기에 이르지 않고, 거만한 마음이 나면 '공경할 경(敬)'자를 생각하면 거만함에 이르지 않고, 나태한

 

마음이 나면 '부지런할 근(勤)'자를 생각하면 나태해지지 않으며, 사치스런 마음이 날 때 '검소할 검(儉)'자를

 

생각하면 사치함에 이르지 않으며, 속이고 싶은 마음이 나면 '정성 성(誠)'자를 생각하면 속이기에 이르지 않

 

고,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날 때 '옳을 의(義)'자를 생각하면 이욕(利欲)에 이르지 않으며, 말할 때에는 '잠잠

 

할 묵(默)'자를 생각하면 말의 실수를 막을 수 있고, 희롱할 때에는 '영걸 웅(雄)'자를 생각하면 가벼움에 이

 

르지 않고, 분노할 때에는 '참을 인(忍)'자를 생각하면 급하게 죄를 짓지 않게 되오."

 

이 정도까지 이르르면 서울 양반은 당해도 한참 당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 웃으며 헤어지는데, 박두세는 여기서 또한 해학을 잊지 않는다. "서로 소매를 잡고

 

길을 떠나니 저도 내 성명을 모르고 나도 제 성명을 모르니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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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자리..

학명 Virgo 약자 Vir 영문표기 The Virgin, The Maiden 적경 13시 적위 0도

처녀자리는 사자자리, 천칭자리에 둘러싸인 별자리로 남쪽하늘에 보이는데, 가장 밝은 별은 스피카(Spica)이다. 황도 12궁에서 6번째 별자리이며 처녀궁이라고도 한다. 처녀자리는 하늘에서 바다뱀자리 다음으로 2번째로 크고, 황도대에 자리잡아 태양이 가장 오랫동안 머무는 별자리이다. 태양은 9월 하순에서 11월 초까지 수확의 계절에 처녀자리를 지나는데, 이 때문에 왼손에 이삭을 들고 있는 처녀의 모습은 고대부터 농업과 수확의 여신으로 그려져 왔다.

이 별자리에는 토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에 관한 신화가 있다. 제우스가 거인족과 싸워 승리한 후 거인족을 아이트나산 밑에 생매장 하였는데 거인족들이 달아나려고 몸부림 쳐서 자주 지진이 발생하였다. 지옥의 신 하데스는 자신의 왕국이 노출되는 것을 근심한 나머지 피해상황을 살피기 위해 검은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땅 위에 올라왔다. 이것을 본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영어로 비너스)는 아들 에로스(영어로 큐피드)에게 하데스를 골탕먹이기 위해 화살을 쏘도록 한다. 그 때 토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근처에서 놀고 있었는데 화살에 명중한 하데스가 이성을 잃고 그녀에게 반하여 자신의 전차에 태우고 지옥으로 달아났다. 토지의 여신은 딸을 찾기 위해 온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유일한 목격자인 님프들은 여신에게 알리고 싶었으나 하데스가 두려워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페르세포네가 끌려가면서 떨어뜨린 허리띠를 바람에 날려 여신의 발 밑에 가게 한다. 그러나, 여신은 땅이 자신의 딸을 삼킨 것으로 오해하여 땅을 저주하니 땅이 황폐화 되었다. 그래서, 샘의 님프 아레투사가 딸이 지옥에 있다고 말해 주었다. 데메테르는 제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제우스는 페르세포네가 지옥음식을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면 가능하다고 하였다. 교활한 하데스는 이미 페르세포네에게 석류를 먹이고 말았다. 그래서, 1년 중 반은 어머니와 지내고 나머지는 하데스와 지내게 되었다. 그래서 페르세포네가 지옥에 있는 동안에는 겨울이 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고 매년 봄이면 페르세포네는 하늘의 별자리가 되어 지하세계로부터 동쪽하늘로 올라온다고 한다.

또다른 이야기로는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에아에 관한 것이다. 먼 옛날 황금의 시대와 은의 시대에는 신들과 인간이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들이 타락하게 되자 신들은 더 이상 인간과 함께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정의의 여신은 인간들에게 정의를 가르쳤다. 하지만 여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의가 상실되자 하늘로 올라가고 말았다. 옆의 저울자리가 아스트라에아가 가지고 올라간 저울로 세상의 정의와 사악을 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집트 신화에도 처녀자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처녀자리는 농사와 수태의 여신 이시스로 인식했다. 이시스가 괴물 티폰에게 쫓겨 하늘로 도망치게 되었다. 그 때 들고 있던 이삭을 흘린 것이 은하수가 되었고, 이시스는 별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하지 무렵 내리는 비를 이시스의 눈물이라고 부르며, 나일강변에서 제사를 지내고 강물의 깊이를 재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28개의 황도대 별자리 중 동쪽의 첫째 별자리인 각(角)자리가 처녀자리에 해당한다. 동양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28숙(宿)은 동서남북 각각 7개의 별자리가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형상을 만드는데 각자리는 청룡의 뿔에 해당한다.

1등성 스피카 이외에는 3등성 이하의 어두운 별뿐이므로, 창공이 어둡고 맑게 갠 날이 아니면 보리이삭을 안은 여신의 모습은 보기 어렵다. 스피카는 절대등급 -2등성과 0.3등성의 동반성 2개가 4일의 주기로 만나는 이중성이다. 라틴어로 '밀의 이삭'을 뜻하는 스피카는 정확히 1등성으로 밤하늘에서 16번째로 밝은 별이다. 스피카는 밝은 백색의 별로 표면온도가 2만도에 달하며 태양보다 1만 배나 밝다.

이 별자리의 북쪽에는 처녀자리은하단이 있어 작은 망원경으로도 많은 은하를 볼 수 있다. 제일 밝고 보기 쉬운 은하는 까마귀자리와의 경계에 가까운 M104이며, 솜브레로은하라고 부른다. 그밖에도 M49, M58, M59, M60, M61, M84, M86, M87, M89, M90를 볼 수 있다.


이 별자리의 알파별은 봄철의 남쪽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북두칠성의 손잡이 곡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오렌지색의 아크투루스를 지나 알파별에 닿게 된다. 이 곡선을 '봄철의 대곡선'이라 부르는데 봄철에 별을 찾는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그러나 큰 별자리인데도 알파별 외에는 뚜렷하게 밝은 별이 없어서 처녀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퍽 어렵다. 알파별을 처녀의 왼손으로 상상하고 그 주위로 모양을 만들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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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왕관
자리..

학명 Corona Borealis 약자 CrB 영문표기 The Northern Crown 적경 16시 적위 30도

별자리 중에는 억지로 가져다 붙인 듯한 이름이 많지만 왕관자리는 누가 보아도 왕관모습을 하고 있다. 이 별자리는 작지만 눈에 잘 띄는 별자리라서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이름을 붙였다. 고대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에서는 이 별자리의 모양을 불완전한 원으로 보고 '깨진 그릇', '거지의 밥그릇' 등의 이름으로 불렀으며, 중국에서는 '새끼줄'로 불렀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부메랑'으로 불렀으며 아메리카 인디언은 '곰의 동굴'로 여겼다. 그밖에 '화환의 고리', '눈동자의 선' 등 원과 반원으로 이루어진 많은 것들이 이 별자리의 이름으로 불려져 왔다.

그리스 신화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크레타와 아테네 사이에 전쟁이 있었는데 크레타가 승리하였다. 전쟁으로 크레타왕 미노스가 궁전을 비웠을 때 왕비는 흉측한 아이를 낳았다. 머리는 황소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몸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 괴물의 이름은 미노타우로스였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미노스는 이 사실을 알고 경악하였다. 왕은 이 괴물이 궁전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기로 마음먹고 건축가 다이달로스에게 교묘하고 빈틈없는 감옥을 만들도록 명령한다. 이 감옥에 괴물을 가두고 아테네에 조공을 요구하여 일곱명의 소년과 소녀를 보내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을 괴물의 사료로 삼아 괴물을 사육하였다.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는 자신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희생자 무리에 끼여들었다. 크레타섬에 도착한 소년 소녀들을 미노스왕 앞으로 끌려나갔는데 공주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반하게 된다. 공주는 테세우스에게 칼과 실 한 타래를 주어 괴물을 죽이고 미로를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테세우스는 공주와 나마지 소년 소녀들을 데리고 섬을 탈출하여 아테네로 향했다. 도중에 일행은 낙소스섬에 머물렀는데 테세우스의 꿈속에 여신 아테네가 나타나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가리고 명령한다. 그래서, 일행은 잠든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출발한다. 그 뒤 그 섬으로 온 디오니소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아내로 삼고 올림푸스로 데리고 갔다. 디오니소스는 그녀에게 금관을 주었다. 디오니소스는 영원한 영광의 징표인 별자리로 만들기 위해 이 금관을 벗겨 하늘에 던졌는데 이것이 별자리(왕관자리)가 되었고 금관에 박힌 진주는 별이 되었다.

왕관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은 알파(α)별인 겜마이다. 겜마는 라틴어로 보석을 의미한다. 또한 이 별은 아라비아어로 아르페카라고 한다. 이것은 접시라는 뜻으로 원래는 별자리의 모양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별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쌍안경으로 보면 반원형의 고리 안쪽 원의 중심부에서 6등급의 어두운 별을 찾을 수 있다. 이 별은 왕관자리 R별이라는 불규칙변광성이다. 보통은 6등급을 유지하고 있지만 갑자기 어두워지고 수 일 사이에 15등급으로 떨어져 쌍안경으로는 보이지 않게 된다. 감광이 언제 일어나는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 지속기간도 수십 일에서 수백 일에 이른다. 그 뒤 천천히 원래의 밝기로 되돌아온다. 스펙트럼 연구에 의하면 비교적 저온의 별이 폭발을 일으키면 탄소의 콜로이드 입자를 방출하여 별의 빛을 차단한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변광성은 40개가 알려져 있다.


북쪽왕관자리는 7개의 별이 목자자리와 헤르쿨레스자리 사이에서 반원형의 왕관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남쪽왕관자리보다 모양이 훨씬 정교하며 2등성인 알파별 겜마는 왕관의 중앙에 박힌 멋진 보석의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목자자리의 모습을 정확히 찾을 수 있다면 그 서쪽에서 왕관자리를 찾기는 아주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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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수:15~20개 오븐온도:180℃ 굽는시간:30분
재료:박력분 50 g , 달걀 2½ 개 , 코코넛 가루 250 g , 설탕190 g,
버터 80g
 

 
1. 버터를 실온에서 부드럽게 녹여 볼에 담고 , 거품기로 저어 크림
  상태로 만든다.
2. (1)의 버터 에 설탕을 넣어 다시 거품기로 힘있게 젓다가,푼 달걀
을 조금씩 넣어가며 계속 젓는다.
3. 달걀이 완전히 섞이면 체친 박력분과 코코넛 가루를 넣어 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섞는다.
4. (3)의 반죽을 한 덩어리로 뭉쳐서 양손으로 굴려 기다란 원통 모
양으로 만든 다음, 기름종이로 싸서 냉동실에 1시간 정도 둔다.
5. 반죽이 어느 정도 굳으면 , 꺼내어 7㎜ 두께로 썬다.
6. (5)의 반죽을 오븐 팬에 간격을 두어 놓고 ,180℃ 로 예열한 오븐
에서30분 정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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