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향하는 선비 '나'는 "종도 없는 데다가 짐 실은 병든 말까지 타고 가지, 그 행색이 말이 아니라 보는 사람마
다 업신여긴다. 간신히 요로원에 당도하여 주막을 찾으니 먼저 와 있던 한 양반이 자기 종복들을 대뜸 꾸짖
기부터 한다. 왜 저런 인간이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었느냐 하는 것. 그때부터 속이 뒤틀린 나는 겉으로 보기
에 서울 명문 대갓집 양반이 틀림없는 그를 꾀로써 골탕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작은 소동 끝에 나는 자
기도 양반이라고 속여 한방에 들 수 있었다. 마침 심심하던 서울 양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은 끝에 내가
참으로 별 볼일 없는 위인이라고 짐작하여 놀려먹기로 작정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그대는 몸이 단단하여 제대로 자라지 못한 듯하고, 턱이 판판하고 수염이 없으니 장차 장가들 곳이 없을 것
같구려."
나는 계속 바보 행세를 하면서 은근히 기회를 엿본다. 서울 양반은 언문(諺文: 한글)은 글도 아니고 진서(眞
書: 한문)를 모르면 어찌 사람일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나온다.
그대 형상을 보니, 반드시 활을 쏘지 못할 것이니 능히 글을 하느냐?
내 대답하여 말하기를
"문자는 배우지 못하고 글은 잠깐 배웠는데, 다만 열 다섯 줄 중의 둘째 줄 같은 줄이 외우기 어렵더이다."
객 왈
"이는 언문(우리글을 낮추어 부르던 말)이라. 진서(언문에 빗대어 한문을 높여 부르던 말)에 이같은 글줄이 있으
리오."
내 대답하여 왈
"우리 향곡(시골)에는 언문 하는 이도 적으니 진서를 어이 바라리오. 진실로 진서를 하면 그 특기를 어이 측
량하리오. 우리 향곡에는 한 사람이 천자문과 사략(간단하게 쓴 역사와 곧 대단치 않은 글공부를 빗댐)을 읽어
서 원이 되어 치부(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는 것)로 유명하고, 또 한 사람은 사략을 읽어 교생(조선시대 향교나
서원에 다니던 생도)이 되어 과거의 출입하노니, 공사 소지(관의 공소장) 쓰기를 나는 듯이 하기에 선물이 구름
이 모이듯하며 가계 기특하니, 이런 장한 일은 사람마다 못 하려니와, 우리 금곡 중에도 김 호수(땅 여덟 결을
한 단위로 하여 공부를 바치는 책임을 지던 사람)는 언문을 잘 하여 결복(토지에 매기던 단위, 목, 짐, 못의 통칭)을
마련하여 고담을 박람(책을 많이 읽음)하기로 호수를 한지 십여 년의 가계 부유하고 성명이 혁혁하니, 사나이
되어 비록 진서를 못하나 언문이나 잘 하면 족히 일촌중 행세를 할 것이외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풍월 댓거리를 하게 된다.
먼저 서울 양반이 한 구를 읊는다.
我觀鄕之賭(내가 시골 사람과 내기를 하고 보니)
怪底形體條(글을 짓기가 괴이하구나)
그러자 속으로 벼르던 나는 이런저런 말대꾸 끝에 다음과 같이 한 수를 지어 보인다.
我觀京之表(내가 서울 것들을 보니)
果然擧動戎(과연 거동이 오랑캐들이 하는 짓 같구나)
서울 양반이 깜짝 놀라 정색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두 사람 사
이에 본격적인 내기가 벌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운을 내도 나는 척척 막힘이 없이 시를 지어낸다. 그
리고 그 격도 서울 양반이 혀를 내두를 정도. 그 과정에서 물론 양반의 위선과 허세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붕
당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지만, 그 전후 맥락을 정확히 따져 비판해야 한다는 훈계도 잊지 않는다.
"그대는 어찌 붕당의 이야기를 들어 말하시오? 당시 우가, 이가(牛哥, 李哥: 당 문종때 우승유의 당과 이덕유의
당) 어느 쪽의 한퇴지(韓退之: 당 목종 때의 선비인 韓愈로 자가 퇴지)는 들지 않았으나 정이천(程伊川)은 대현
(大賢)임에도 그들의 권유를 떨치지 못하지 않았소? 비록 퇴지의 도덕과 학문이 정이천에 비해 못하기는 했
지만 퇴지는 붕당에 휩싸이지 않았고, 정이천은 휩싸여서 시시비비의 낭패를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정이천
이 사위를 몰라서가 아니라 문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붕당의 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오."
마침내 서울 양반이 손을 든다. 그런데 밖에서 말이 울자, 금방 화를 내며 종을 나무란다. 그러자 나는 사람
이 어찌 그리 경솔하냐고 비판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수 더 가르친다.
".....내 소시 적에 성질이 급하여 고치려 해도 쉽게 고치지 못하였으나,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깨달으니 어렵
지 않았소이다. 마음이 노하였을 때는 '참을 인(忍)'자를 생각하면 노했던 마음이 자연히 없어지기에 이때부
터 아홉 가지 글자를 써서 늘 보고 외우고 있소. 그릇된 생각이 나면 문득 '바를 정(正)'자를 생각하면 사벽
(邪僻)하기에 이르지 않고, 거만한 마음이 나면 '공경할 경(敬)'자를 생각하면 거만함에 이르지 않고, 나태한
마음이 나면 '부지런할 근(勤)'자를 생각하면 나태해지지 않으며, 사치스런 마음이 날 때 '검소할 검(儉)'자를
생각하면 사치함에 이르지 않으며, 속이고 싶은 마음이 나면 '정성 성(誠)'자를 생각하면 속이기에 이르지 않
고,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날 때 '옳을 의(義)'자를 생각하면 이욕(利欲)에 이르지 않으며, 말할 때에는 '잠잠
할 묵(默)'자를 생각하면 말의 실수를 막을 수 있고, 희롱할 때에는 '영걸 웅(雄)'자를 생각하면 가벼움에 이
르지 않고, 분노할 때에는 '참을 인(忍)'자를 생각하면 급하게 죄를 짓지 않게 되오."
이 정도까지 이르르면 서울 양반은 당해도 한참 당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 웃으며 헤어지는데, 박두세는 여기서 또한 해학을 잊지 않는다. "서로 소매를 잡고
길을 떠나니 저도 내 성명을 모르고 나도 제 성명을 모르니라"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