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의 신화소 알아보기
신화적 분석이란 방법은 하나의 결론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논지를 좁혀 나가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이야기가 있을 때 그 이야기를 세부적으로 쪼갠 뒤 한가지의 공통 부분을 찾아내고, 또 쪼개어 찾아 내고, 마지막에 가서는 전체를 일관하는 하나의 구조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단군 신화도 전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의 신화소(神話素)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찾아 그것의 공통 부분을 추출하고, 이것을 종합하면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렇게 신화소 하나하나를 분석하면 우리 민족이 가졌던 문화적 경험의 커다란 줄거리와 함께 여러가지 역사적 경험 또는 문화의 형태를 알 수 있다. |
● 환인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어떤 절대적인 존재로 태양신 또는 제석신을 나타냄
● 환웅
환인의 아들인데, 서자로 되어 있다. 여기서 '서자'는 '여러 무리 중의 하나' 라는 뜻이다.
동북아시아 민족 특히 유목 민족에게서 서자가 많이 나타나는데, 자식이 여러 명 있으면 막내아들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떠나 새로운 부족을 거느렸기 때문이다. 이를 말자상속제(末子相續制)라 한다. 그들의 신화에는 여러 아들 중에서 한 명이 내려와서 인간을 구제한다는 내용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왕이 아홉 명의 아들을 두었다면, 그 중 여덟 명의 아들들은 떠나 새로운 부족을 만들고, 막내아들은 남아서 아버지의 지위를 이어 받는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서자라는 개념은 적서 차별이 제도화된 조선시대에 들어와 성리학이 보편화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 삭의천하 탐구인생(數意天下 貪求人世) - 천하에 여러 번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내어 구하다 -
'數'를 '삭'으로 읽으면 '여러번 또는 자주'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수의천하'가 아니라 '삭의천하'로 읽으면 환웅의 의지 -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한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한다 - 의 표현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 부지자의(父知子意) -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다 -
환인이 환웅의 뜻을 알게 되어 아래를 내려다 보니 '가히 홍익인간 할만하다(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는 말이 나온다. '부지자의'란 아버지인 환인이 아들인 환웅의 뜻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아들의 행위를 인정한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신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반역의 관계로 나타난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외디푸스 신화가 그런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한다든가, 아버지가 가졌던 왕궁을 차지한다든가 하는 것이 신화 속에서 드러나는 일반적인 부자관계이다.
그런데 단군신화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인정해 준다. 다시 말해 환인으로 대표되는 천상세계와 환웅으로 대표되는 지상세계가 서로 조화롭게 결합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원리는 환웅의 행위에 정당성 내지는 정통성을 부여해 준다.
● 삼위태백(三危太伯) : 태백산, 묘향산, 백두산
태백산이라는 지명은 보편적으로 백두산으로 본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백'(밝)자가 들어가는 산은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 '백'이라든가 '밝'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산들은 모두 성산이나 신산으로 숭배를 받은 산들이다. 그런 태백산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산이 바로 백두산이다. 따라서 태백산은 집단이 움직일 때마다 따라 다니는 명칭으로 우리 민족의 실체가 만주에 있었다면 그 곳에 태백산이 있고, 반도로 축소되었다면 백두산이 될 수도 있고, 더 축소가 되었다면 강원도의 태백산이 될 수도 있다.
● 천부인삼개(天符印三箇) : 천부인 세 개
'천부인 삼개'는 일반적으로 칼과 거울과 방울로 보고 있다.
'삼'이라는 숫자는 수리학상으로 모든 것의 가장 으뜸이 되는 수가 된다. 도덕경에서 도(道)는 1을 낳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고, 3은 만물을 낳는다고 했다. 또 회남자(淮南子)에서도 역시 3에서 만물이 생긴다고 보고 있다. 즉, 3은 홀수이고 중간자이기 때문에 가장 으뜸이 되는 수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 현대적인 시각으로 볼 때 1과 2가 대립되는 개념의 수라면, 3은 1과 2의 대립과 갈등을 무마시키는 상징적인 숫자가 된다. 그래서 3이라는 숫자는 옛날부터 숭상받아 왔다.
무당이 가지고 있는 삼지창은 찌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삼'이라는 숫자를 표현하는 도구이다. 그리고 무당들은 이 세 가지의 신기(神器)를 가지고 있다. 일본신화에도 삼종신기라 하여 천손(天孫)인 니니기노미코도가 세 가지 보물을 가지고 내려온다. 이 신화는 김 수로왕 신화와 그 내용이나 구조가 똑 같다.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거울이고 그 다음에 칼, 방울이다.
● 신단수(神檀樹 )
환웅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곳인데 인간 세상의 중심이 되는 나무를 말한다.
이곳은 곧 인간세계의 중심이기도 하다. 여러분들도 여기에서 태어났다. 이곳이 바로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고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장소인 대지의 축(軸)이다. 지구와 우주가 만나는 가장 기본적인 축이다. 여기에 산이 있고 나무가 있다면, 바로 신단수가 된다.
● 신시(神市)
신이 사는 집으로 당집이다. 신정일치 시대에는 당집이 정치의 중심지 곧 궁궐이었다. 어느 문화집단이든지 간에 크고 작고를 떠나 한 마을이면 마을, 도시면 도시, 한 나라면 나라 나름대로의 이런 장소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대부분 산이었다. 물론 우리 민족에게는 태백산이다. 수미산이나 올림푸스산 또한 시온산이나 수메르의 피라밋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자리에 있는 나무를 숭배하는 것은 고대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졌던 신앙이었는데, 그것을 우리는 수목숭배 신앙이라고 한다. 신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올 때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 반대로 인간이 신이 될 때도 이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무당이 되기 위한 의식을 보면 나무를 오르는 장면이 있다. 나무를 오르는 시늉을 해야 되기 때문에 나무가 없으면 새끼줄을 매달아 놓고 타는 시늉을 하는데, 이것을 천계상승(天界上乘)이라 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의식을 대신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당나무 신앙이 바로 이것이라고 보면 된다.
● 시유일웅일호(時有一熊一虎) - 이 때에 한 곰과 호랑이가 있었다 -
일반적으로 토템적인 산물이라고 해석을 한다. 그런데 토템은 단순하게 동물을 의인화시킨 것이 아니라, 그 상징을 중심으로 집단의 전원이 수긍할 수 있는 논리체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곧 씨족 이름과도 관련이 있고 씨족의 제사나 의례 등 이러한 모든 면에서 관련을 맺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곰은 전설이나 민담에서 귀한 존재로 언급된 것이 거의 없다.
반대로 호랑이는 산신령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산신령을 모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호랑이를 부를 때도 '영감', '대감'으로 부르고, 전설이나 민담에 등장하는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곰 토템'으로 잘못 해석된 것은 '웅(熊)'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난 잘못으로 보이는데 '웅(熊)'의 고대어는 '곰'이다. 곰은 '신'(또는 왕)을 뜻하는 고대어였다. 서양사람들이 신을 God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현상을 여러 이름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개마고원은 '개마' - '곰'으로 신이 사는 지역이 된다. 개마산이나 태백산 같은 말들은 모두 백두산이 신이 사는 산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 웅내가화이혼지(雄乃假化而婚之) - 환웅이 거짓으로 변하여 그 곰과 결혼하다 -
환웅은 신이다. 신의 입장에서는 인간으로 변한 곰(웅녀)과 결혼할 수가 없다. 만약에 결혼했다면 환웅은 자신의 의도를 성사시킬 수가 없다. 왜냐 하면 환웅이 의도한 것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하는 인간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웅이 신으로서 결혼을 했다면 거기서 난 자식은 신이 되어버리므로, 인간으로서 인간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다스리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환웅이 지향했던 것은 인간으로서 홍익인간의 이념이 잘 구현되는 인간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을 담당할 주체는 신이어서는 안되었다. 단군신화에 나타나는 인간주의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환웅은 거짓으로 혹은 임시로 변해서 신이면서 인간이 되었다.
● 단군 왕검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분이 단군 왕검이다. '왕검'이란 이름에서 '왕'은 킹(King)을 말한다. 또 '검'은 고대에서는 '감', '금', '곰' 등과 비슷한 형태로 많이 쓰여졌는데, 모두 신(神)을 뜻하는 우리의 옛말들이다. '이사금','상감','대감','영감' 등의 '감'자도 여기서 나왔다. 이와 같은 예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나타나고 있다. 동북 시베리아에서는 무당을 '감' 또는 '캄'이라고 부르고 있고 일본에서는 신을 '가미'라고 한다. 터키나 몽고에서도 신을 '가미'라고 한다.
- 윤명철 <단군신화의 종합적 이해>에서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