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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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가 너무 예뻤다. 보라색도 좋고, 예전에 홍콩에서 본 야경 같은 느낌의 그림도 좋았다. 그래서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했다. 작가에 대해서도 이 책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지적이고 부드럽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상상했으나 현실은 쓰라렸다. 부드럽긴 무슨, 지독하게 외로웠다. 읽는 내내 외롭고 외롭고 또 외로웠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엄마는 ‘영’을 정신병원에 보내버리고, 가장 가깝다 여겼던 친구인 ‘재희’는 남편될 사람에게 ‘영’의 정체성을 밝히며 그를 조연으로 전락시킨다. ‘영’이 사랑한 띠동갑인 운동권 출신 ‘그’는 ‘영’과 함께 있는 걸 부끄러워하고 서양 국기에 질색해서 ‘영’을 비난하고 결국 떠나버린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영’에게서 <아비정전>의 아비가 보였다. 아비는 자신을 버린 엄마를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 그게 아비의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거니까. 그런 처절함이 뭔가 닮았다고나 할까.

전부를 내 준 것 같은 사랑도 흐르는 시간 속에 희석되고 새로운 사랑에게 자리를 내준다. ‘규호’.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인 규호랑 이름이 같다. 이름만 같다. 마치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상상했던 이 책의 모습처럼.

‘규호’는 아직 시간의 흐름 속에 옅어지지 않은 존재다. 대도시라는 곳이 열려 있는 듯 하지만 ‘영’과 같은 소수자에겐 편견으로 가득 찬 닫혀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규호’는 ‘영’을 진심으로 대하지만, ‘영’이 가진 한계로 인해 둘 사이에는 중국과 한국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자리하게 된다. 차마 기다린다는 말조차 못한 채 ‘규호’를 보내고, 영화 <화양연화>의 차우가 앙코르와트 벽 구멍에 속삭인 것처럼 ‘영’은 자신의 마음을 풍등에 띄워보낸다. 여전히 그립고 애틋한, 하지만 가질 수 없는 그 이름을.

이 도시는 매우 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산다. 다들 제각각의 사연을 안고 각자의 삶을 만들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상처 주고 상처 받는다. ‘영’을 아픈 사람 취급하던 엄마야말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엄마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그런 관계를 이어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영’은 다른 것 같아도 결국 비슷하다. 부모와의 관계도, 연인과의 관계도 비슷하다. 사랑하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위로받고 그렇게 살아간다…

잠시도 불쌍해할 틈을 주지 않는 재주가 있는 여자였다. 엄마는,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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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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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에 나오는 대사가 있다. ‘always’. 스네이프가 릴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해리의 부모가 해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느껴지는 그 진실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라고나 할까. 언제나 혹은 영원히라고 번역된 그 말은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되었다.

이 ‘불편한 편의점’의 이름도 ‘always’다. 24시간 문이 열려 있어 그런 이름이겠지만 내겐 다르게 다가왔다. 스네이프가 변치 않는 마음으로 릴리를 사랑하듯, 릴리와 제임스와 시리우스가 해리를 지지하고 믿고 사랑하듯 그렇게 따뜻하고 다정한 어떤 공간일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다. 소설 보고 소설 같은 이야기라니 우습기도 하지만 정말 그렇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따뜻할까. ‘돈과 명예’가 성공의 가늠자가 된 이 곳에서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에 따라 사는 건 어떤걸까. 일한 만큼 정당하게 급여를 받고, 그 사람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급여를 책정하는 게 어리석지 않은 삶. 다른 사람의 것을 뺏지 않고 있는 것도 나눠주는 삶. 세상에 성자들만 사는 게 아니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 편의점은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이루고 사는 게 아니라는 것. 저마다의 삶이 있고 무게가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말만 하지 말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것. 소통이란 그런 것이겠지.

다들 힘들고 지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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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2-03-23 0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대사 너무 좋아해요. 지금도 한번씩 스네이프의 말투를 따라하면서 써먹기도 하는데 정말 심금을 울리는 대사이지요. ㅠㅠ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편의점 이름이 참 따듯하게 느껴지네요.

꼬마요정 2022-03-24 00:12   좋아요 2 | URL
그쵸. 저도 영화 보고 그 대사 치는 스네이프 땜에 참 맘이 아팠더랬죠. 편의점 이름이 always라고 해서 더 몰입해서 읽은 듯 해요.^^

라로 2022-03-29 2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스테이프는 결국 의외였어요,,, 첨엔 무서웠는데... 하아 생각나네요.

꼬마요정 2022-03-30 09:59   좋아요 2 | URL
스네이프가 제일 충격이었죠. 마지막에 가서야 가장 멋진 인물이 되다니… 그의 삶도 참.. 마음이 아리네요.

라로 2022-03-30 10:44   좋아요 2 | URL
하하하 제가 스테이프라고…ㅠㅠ 미안해요 스네이프. 😅
정말 해리포터 중에서 참 안타까운 캐릭터였어요. 더구나 그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더욱!!!

꼬마요정 2022-03-31 00:49   좋아요 1 | URL
저는 찰떡같이 알아들었습니다. 스네이프 ㅎㅎ 알란 릭맨 진짜 ㅜㅜ 스네이프 못 잃어요ㅠㅠ
 
나이트메어 앨리 스토리콜렉터 91
윌리엄 린지 그레셤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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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산 기억도 없고, 왜 샀는지도 알 수 없어서. 누가 추천했나? 광고가 맛깔났나? 도대체 왜 샀지? 굉장히 궁금해하다 읽으면 알겠지 싶어 첫 장을 펼쳤다. 제법 재미있었고 ‘스탠’이 어떻게 될 지 궁금해서 바쁜 와중에도 재촉해서 읽었는데,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이 책을 산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20세기 중반, 아직 미디어가 모두를 장악하기 이전에는 유랑극단이 인기였다. 옛날 우리도 장날 풍물패나 가면극 같은 것들이 인기였듯이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카니발 유랑극단 ‘열가지 쇼’의 단원들은 한 명 한 명 특이하면서도 같았다. 그 중에서도 ‘스탠’은 영리하면서 냉소적이고 야망이 가득한 젊은이다. 그는 ‘지나’에게 접근하여 남편인 ‘피트’의 암호 수첩을 손에 넣고 둘을 이용하여 독심술을 배운다. 난 이 장면에서 미드 ‘멘탈리스트’가 떠올랐다. 주인공인 ‘제인’은 놀라울 정도로 사람을 잘 파악해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어내는데 때론 얄밉지만 매력적인 인물이다. 당연히 난 ‘스탠’ 역시 ‘제인’과 비슷할거라 여겼는데,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스탠’은 똑똑하지만 양심은 없었다. 아마 ‘피트’의 죽음과 유년 시절 부모가 준 충격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뭔가 목표에만 매몰된 소시오패스인가 싶기도 하고. 그는 ‘몰리’를 데리고 극단을 나와 독심술을 넘어 ‘심령술사’가 되어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원하는 것을 가져도 곧 다른 것을 원하게 되는 그는 심리학자 릴리스를 만나게 된다.

아마 스탠이 릴리스를 만나러 가는 건 릴리스가 의도한 것이었을테다. 릴리스는 그를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하여 쉽게 손아귀에 넣었다.

인간이 성공이라는 꼭대기에 오르기는 어려워도 올라가는 길에 떨이지는 건 쉬운 것 같다. 철저한 사전 조사로 그 사람의 약점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건 생각보다 쉽다. 하지만 가진 것도 많으면서 조심성 있고 의심도 많은 사람이라면 속이기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하나 하나 천천히 환상과 속임수를 동원해서 그물 안에 넣었다고 확신한 순간 모든 것은 끝났다. 이것 역시 릴리스가 의도한 걸까? 몰리와 그린들의 그런 모습은 마치 어머니와 험프리스의 모습이 떠오를테니까.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망상일까. 사실은 다 뻥이고 -파리의 연인처럼- 스탠은 애초에 유랑극단에서 닭 목을 물어뜯던 가짜 기인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릴리스와 지나가 가장 행복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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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3-19 0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스탠의 정체에 관한 해석 흥미롭습니다.

꼬마요정 2022-03-20 00:21   좋아요 2 | URL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스탠이 초반에 아주 잘 설명해줬잖아요 ㅎㅎ 잠자냥님 글 보니 영화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요. 릴리스 너무 궁금해요!! 혹시 릴리스란 이름이 신화랑도 연관되는건지도 궁금하구요. ㅎㅎ

잠자냥 2022-03-20 08:12   좋아요 2 | URL
영화 꼭 한번 보세요. 원작과 비교해서 봐도 여러 면에서 흥미롭습니다~

꼬마요정 2022-03-20 23:54   좋아요 0 | URL
넵 영화 기대하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2-03-20 14: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어떤 책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죠. 이거 왜 있지? 하면서요. 하하~~

꼬마요정 2022-03-20 23:55   좋아요 0 | URL
그쵸? 분명 이유가 있어서 샀을텐데 까맣게 잊어버리네요 ㅎㅎ 그래도 있으니 읽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2-03-20 14: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같은 책만 여러 권입니다.

꼬마요정 2022-03-20 23:58   좋아요 0 | URL
역시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ㅎㅎㅎ 알라딘 서재는 이렇게 같은 경험을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곰발님은 왠지 냉철하셔서 책이 어디 있는지 알지만 꺼내기 힘들어서 다시 사신 건 아닐까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귀신이 오는 밤 - 귀신날 호러 단편선
배명은 외 지음 / 구픽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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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다음 날인 1월 16일은 귀신날이다. 이 날은 바깥출입을 삼가고 일도 하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은 이 날 바깥에 나가면 귀신이 붙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날에는 널뛰기, 윷놀이를 하거나 논두렁에 불을 놓거나 하여 귀신을 쫓았다. 또는 정월대보름에 술도 많이 먹고 놀았기에 하루 더 쉬려고 만든 날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 날에는 귀신들이 돌아다니니까 무서운 이야기들이 잔뜩 있겠거니 하며 이 책을 펼쳤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실 귀신이 아니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수많은 죄를 저지르는 건 ‘사람’이었다.

동생을 때리던 남자를 죽이려던 오빠 대신 스스로의 힘으로 나쁜 놈을 응징한 다원의 이야기나, 아무렇지 않게 과부를 겁탈해서 아내로 삼고 자식마저 죽이려던 남자와 방관 내지는 동조하던 마을 사람들을 밟도록 ‘마고’에게 부탁하고 친구 먹은 금산의 이야기나, 군에서 성폭력으로 고통 받다 끝내 생을 마감한 김 소위와 수많은 희생자들을 위하려던 백 실장과 세상의 부조리와 가해자들의 뻔뻔함을 보고 슬퍼하던 유진의 이야기나, 그저 집안과 아들의 출세를 위해 아무렇지 않게 딸을 희생시키고 속여서라도 부와 권력을 움켜지려던 이들을 좌절시킨 동백의 이야기나, 한 세상을 희생시켜 모두가 안전하려는 이기적인 거품들과 정길의 이야기나, ‘동첩’같은 말도 안 되는 자리에 자신이나 동생이 끌려가지 않더록 자신을 희생한 ‘언니’와 그 희생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으려던 할머니와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몹쓸 짓을 하려던 좌참찬의 둘째 아들을 죽지 않을 정도로 베어버린 서율의 이야기나, 이승과 저승을 연결한 세상에서 누군가를 희생시키더라도 살아나가려고 하는 혜준의 이야기가 모두 그러하다.

<창백한 눈송이들>에서 백 실장이 하는 말에 반박하기가 참 힘들었다.
“귀신 같은 건 없어.”
“귀신이 있었으면, 그런 짓을 한 놈들은 벌써 나가 뒈졌겠지.”(p.114)

어두운 길에서 귀신을 마주하는 게 무서울까, 사람을 마주하는 게 무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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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3-20 14: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밤길 가다가 가장 무서운 게 무엇인지 아느냐고 선생님이 물어서
학생인 우리들이 ‘동물‘ ‘귀신‘ 이라고 대답했는데
선생님의 정답은 ‘사람‘이라고 해서 우리가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동의할 수 있지만 그땐 우리가 어려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죠. ^^

꼬마요정 2022-03-21 17:46   좋아요 0 | URL
어릴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정말 뼈저리게 이해되는 말이 아닌가 싶네요.
저 어릴 때 고모할머니가 해 주신 이야기가 있어요. 고모할머니가 고모할아버지랑 산길을 걷다가 멀리서 뭔가가 다가오는데 처음엔 호랑이였대요. 호랑이랑 만났을 땐 눈 똑바로 뜨고 절대 눈 피하지 말고 당당하게 지나가면 된다고 하면서 무사히 지났는데, 다시 또 뭔가가 다가오더래요. 자세히 보니 사람이라 길 옆 나무 뒤로 피해서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계셨다구요. 그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역시 사람이 젤루 무서워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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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서점이 있으면 좋겠다. 책을 사고, 무심히 앉아서 책을 읽고, 커피도 마시고, 독서모임도 하고,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코로나가 창궐한 이 시국에 더더욱 그리워지는 따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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