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기담 수집가 헌책방 기담 수집가
윤성근 지음 / 프시케의숲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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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삶이랑 닮았다. 저마다 삶이 있듯, 책마다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책과 사람 사이에도 눈물이나 웃음 같은 사연이 있다. 삶이 흐르듯 책이 가진 이야기도 흐른다. 같은 책이라도 젊어 읽을 때랑 나이 들어 읽을 때랑 느낌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

세상에는 참 책을 사랑하고 많이 읽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에 나오는 책들 중에 내가 읽은 책은 거의 없다. 읽으면서 이런 책도 있구나 이 책은 구할 수 있나 찾아보기도 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책은 많다.

이 헌책방 주인장은 고객이 원하는 책을 찾고 수수료로 책에 얽힌 사연을 듣는다. 꽤 재밌고 또 정말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싶다. 책 이름을 몰라도 내용을 듣고 책을 찾아주는 건 정말 대단하다. <꼬마 니콜라>를 찾는 부부의 사연이나,아버지가 추천해 준 책인 <바보들의 나라, 켈름>을 찾는 K씨의 이야기나, <켈케골의 종교사상>과 관련된 C씨의 이야기 등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재미있고 안타깝고 뭉클하다. 역시 실제 있는 이야기든 있음직한 이야기든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삶은 늘 아름답지 않다. 꽃을 피우는 비가 있고, 잎을 떨어트리는 비가 있듯, 겨울이 오면 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책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알고 있기에 때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여행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다. 어떤 시인이 그렇게 노래한 것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테니까. 그들의 우정도 이처럼 오래 아름답기를 기도한다. - P226

꽃은 싹트고 잎이 나오고 활짝 피어났다가 시들어 고개를 숙이는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아름다운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내 인생에서 더는 싱싱한젊음의 아름다움 같은 건 없겠지, 라고 생각했던 일을 깊이 반성했다. 아름다움이란 어떤 한 시기의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더구나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한다면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인생은 보다시피 그렇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가 봅니다."
S씨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외우고 있었다. 이 문장 때문에 화가나서 책을 쓰레기통에 버린 일을 반성하는 의미로 똑같은 책을 찾아 이번엔 소중하게 간직하겠노라 다짐했다. S씨는 꽃과 우리 인생이 비슷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피고, 지고, 열매 맺고, 향기를 전하고………. 이 전부가 삶이 아니겠냐는 수수께끼 같은 얘기를 마지막으로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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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 보석과 여인 지만지 한국희곡선집
이강백 지음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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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들이다. 현실적이면서 몽환적인 이야기들.

<파수꾼>은 권력에 관한 이야기다. 정보를 독점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중을 조종하는 촌장과 진실을 알면서도 ‘질서’ 유지를 위해 진실을 묻어버린 파수꾼 ‘다’. 파수꾼 ‘나’가 늘 겁쟁이더라도 단 한 순간 용기를 내면 용감한 사람이 되는거라고,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다’는 진실을 밝힐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리떼’는 없고 사람들은 공포에 시달리며 다리가 부러지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몹쓸 짓을 당하는데 그 ‘질서’라는 건 무엇일까. 결국 권력에 순응한 ‘다’는 다시는 마을로 돌아가지 못한다. 딸기 따기 어쩌고 그리운 추억 어쩌고 하는 촌장이 너무 끔찍하다.

<보석과 여인>은 환상 소설을 보는 기분이다. 뭔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나타나 ‘젊음’을 준다고 거래를 하자 한다. 완벽한 보석을 세공하게 된 ‘노인-그이’는 ‘남자’의 제안에 흥미를 보인다. 완벽한 보석을 만들기 위해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던 ‘그이’는 보석을 완성했으나 그 보석을 줄 사람이 없었다. ‘보석’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었던 거다. ‘진실’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 자체로 빛날 수는 없을까.

‘그이’는 완벽한 보석을 포기하는 대신 젊음과 사랑을 얻는다. 그리고 비로소 그 ‘완벽한 보석’이 완벽해지는 때를 만났다. 완벽하지 않은 삶을 살 것인가, 완벽한 순간을 맞이한 채 죽을 것인가. 하지만 사람마다 진실이나 완벽은 다른가보다. 여인에게 ‘그이’ 없는 ‘완벽한 보석’은 그저 돌덩이에 지나지 않으니까. 악마의 속삭임이란 게 참으로 무섭다.

나 : 누구였으면 하고 미리 정해 두지 않았단다. 그랬다가만일 틀린 사람이라도 오게 되면 실망할 것 같아서….
그런데 첫눈에 너를 보자 기뻤다. 그 순간 나는 정한거란다, 바로 네가 왔으면 하고, 내 뜻은 이루어졌다.
넌 그때 휘파람을 불며 왔었지??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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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2-23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수꾼>이 들어 있는 이이의 희곡집을 사 놓았는데, 기대하겠습니다! ^^

꼬마요정 2022-02-23 17:44   좋아요 1 | URL
짧지만 재밌더라구요. 골드문트님 기대에 꼭 부응했으면 좋겠습니다!!
 
드립백 알라딘 블렌드 다이어리 - 10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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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과류의 고소함도 있고, 묵직한 단맛도 있는데 신맛은 전혀 없는 듯. 산미 없는 커피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목넘김이 좋아서 순식간에 다 마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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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열전 - 영웅부터 경계인까지 인물로 읽는 고려사
박종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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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뭔가 찬란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나라다. 조선과 달리 명분도 있고, 자주성도 있고. 그렇다고 고려가 완벽한 나라인 건 아니지만. 조선이 완전 형편없는 나라인 것도 아니고.

‘열전’은 특정한 인물이나 이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형식이다. 이 책에는 그런 고려의 16명을 담았다. 1부 영웅편은 우리가 잘 아는 견훤, 궁예, 왕건, 최영 그리고 김경손을 다루고 있다. 2부인 경계인편에서는 점성술사였던 최지몽, 역관이었던 유청신, 환관인 방신우와 임백안고독사를 다룬다. 3부는 역사가였던 김부식, 이규보, 이승휴, 이제현을 다루고 있다. 4부는 여성을 다루는데 상류층이었던 허씨 부인, 중류층이었던 김씨 부인, 하류층이었던 조씨 부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동생이 공녀로 끌려가고, 전쟁노예로 끌려가고, 아버지, 시아버지, 남편이 모두 몽고와의 전쟁으로 전사하는 등 당시 고려인들의 상처가 잘 드러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부인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예전엔 기록에 남길 이들을 골랐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참 행복한 상황이다. 내가 쓰기만 한다면 기록이 남을테니까. 읽는 이가 없더라도.

고려는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소중화’라며 중국과도 대등하다 여기고, 수많은 문인과 종교인들을 배출하고, 팔만대장경 등 어마어마한 문화재도 남겼다. 하지만 무신의 난이나 몽고의 침입 등 전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자주적으로 왕의 시호를 사용했지만 충렬왕부터 충정왕까지 원나라에서 시호를 받아왔고, 원의 사위가 되었으며, 내정간섭을 감내해야 했다. 몽고가 침략한 나라 중 사직을 보존한 나라는 고려뿐이라지만 가슴 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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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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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아니 빛의 속도로 간다 하더라도 우주를 알 수 있을까.

여러 단편들이 있지만 특히나 ‘스펙트럼’과 ‘관내분실’이 내 마음을 일렁거리게 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미지의 생명체를 찾지만,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파괴하고 싶어한다. 나는 ‘희진’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만약 나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루이’가, 그 ‘무리’가 ‘희진’을 아름다운 생명체라 여겼듯 ‘희진’ 역시 그들이 경이로운 생명체라 생각했을테니. 인간은 어째서 사랑하면서 외롭고 궁금해하면서 파괴하고 싶어하는지. 진정 홀로 남고 싶은 것인지.

그래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는가보다. 나와 다르다고 배척하고 부수고 미워하지만 또한 사랑하고 사랑받길 원하니까. 그래서 어떻게든 서로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무런 감정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살아있는 느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생가설’은 특이했다.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가 모든 걸 망쳐버리는 걸 ‘이타적’인 외계종이 가르치고 토닥여주는 걸지도 모른다. 실재하여 눈 앞에 보이는 존재가 아닌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존재가 함께 살아간다니… 심지어 인간에게 자신들이 알려지지 않길 바란다니… 그건 인간에게 있는 폭력적인 본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토록 아름다운 별과 아름다운 존재라니.

‘감정의 물성’은 또다른 느낌의 이야기였다. 인간의 감정을 대상화할 수 있다니… 만져지고 맡아지는 감정이라니…

‘관내분실’은 슬펐고 아팠다. 본래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이렇게만 남는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그 역할이 슬픈 게 아니라 ‘나’란 존재보다 그 ‘역할’이 더 중요시 된다는 사실이 슬프다. 더군다나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서글프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역시 슬프고 아프다. 세상에 ‘기준’이란 것은 정해질 수 있을까. 그깟것 밑에서 쳐다보나 우주로 가서 보나 다를 건 뭔가. 답정너처럼 남이 정해놓은 ‘기준’이란 건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이니까. ‘기준’이 된 그 인종, 성별, 국적, 재산, 직업 등등 여러 조건이 완벽해야만 하는 것을. 물론 그 조건 다 충족해도 분명 ‘까고 싶어’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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