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ㅣ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평점 :
징비록에 따르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단 열흘 만에 서울이 왜의 손에 넘어간다. 국가가 애써 걸려낸 온갖 실력있는 인재들은 자만심에 들떠 있거나 정보가 부족해 어영부영 어이없이 무너진다. 풍전등화 상황을 뒤집은 이들은 용감무쌍하고 실력있는 의병장과 그를 따랐던 평민들, 그리고 이순신 부대였다. 낮은 계급의 무사들과 제도권 밖의 의병들이 무능한 제도권을 압도하며 그들을 보완했던 것이다. 지금이라고 다르랴. 실력있는 엘리트들이 공직을 차지하고 실력발휘 하고 있지만 기성의 제도란 타성과 부패에 젖기 쉬운 모양이다. 뛰어난 실력에도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실력있는 인재들이 모여있는 조정의 무능함과 이순신부대의 유능함은 사뭇 대조된다. 똑똑한 이들이 그들끼리 겨루는 경쟁과 질투와 시기와 모함은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을 만큼 소모적이고 치명적이었다. 반면 소박한 곳에서 소박한 포지션으로 지내던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기투합하여 위기의 국가를 구원해 낸다. 질투와 시기와 모함 속에서도 승리가 가능할 수 있고, 소박한 이들이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의기투합해도 패할 수 있지만 공허한 실력과 옹골찬 조화의 힘을 고루 들여다 볼 안목이 필요하다. 자기 자리에서 충실하게 살기란 얼마나 중요한가.
징비록의 교훈이라면 프로도 필요하지만 아마추어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도권이 탄탄해야 하지만 재야도 건실해야 한다. 주류가 실력 있어야 하지만 숨은 비주류의 주류와는 종류가 다른 실력이 요구된다. 보완 관계인 것이다. 어떤 공동체, 어떤 조직에서도 그런 양 날개의 균형이 필요하다. 똑똑한 사대부는 경쟁으로 무능해지고 재야답지못한 비주류는 그들을 닮고 흉내내기도 한다. 서로가 탄탄하게 다 다를 때, 공동체는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건강하다. 똑똑함과 실력의 잣대도 다 다르게 다양하게 공존해야 한다. '똑똑함'을 둘러싼 오해들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 '똑똑함'인가.
쉽게 쓰인 글이다. 중고생, 특히 전쟁 좋아하는 학생들, 성공과 일등에 매달려 달려가는 학생들에게 읽히고 토론하기에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