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려고 컴퓨터를 열었는데, 어제 동생네서 건너온 책 두 권에 맘을 뺐긴다. 눈이 부셔서 커튼을 꽁꽁 여미었는데도 햇살이 가을인줄 너무나 알겠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어제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어서 오늘은 하루종일 엎드려 일만 할 계획이었는데 (읭?) 오늘도 왠지누워서 버티다 등허리에 쥐가 날 것 같은 불안감 엄습.
딸1이 방에서 자고 있긴 하지만 안깨우면 안일어날 것이므로 나는 오늘도 혼자일 예정. 옛날에 엄마는 잠인심이 후하셨는데 우리가 아무리 늦잠을 자도 깨우지 않으셨다. 젊을 땐 많이 자야한다는 이상한 신념을 설파하곤 하셨는데 지금에야 엄마 마음을 알겠다. 엄마도 ‘혼자‘있고 싶으셨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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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바다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바다를 연구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내가 하와이에 살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바다를 연구하지 않는 이유는 그곳이 외롭고 텅 비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육지에는 바다보다 600배나 되는 생명체가 살고 있다. 사실 그 격차는 주로 식물에 인해 생겨난다. 바다의 평균적인 식물은 약 20일 정도 사는 단세포 생물이다. 육지의 평균적인 식물은 100년 넘게 사는 2톤짜리 나무다....미국 서부의 보호림 안에서만도 800억 그루의 나무가 산다..
프롤로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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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일하며 평생을 보내지만 끝까지 하는 일에 정말로 통달하지도, 끝내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좀 비극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대신 우리의 목표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로 그가 던진 돌을 내가 딛고 서서 몸을 굽혀 바닥에서 또 하나의 돌을 집어서 좀더 멀리 던지고, 그 돌이 징검다리가 되어 신의 섭리에 의해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군가가 내딛을 다음 발자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랩걸 272
나는 남의 말을 듣는 데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을 잘한다. 나는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해낸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말도 들었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내가 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일찍 죽을 거시라는 말도 들었다. 너무 여성적이라는 꾸지람을 들었는가 하면 너무 남성적이어서 못 믿겠다는 말도 들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다는 경고를 받은 적도 있고, 비정하고 무감각하다는 비난도 들었다.그러나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모두 나만큼이나 현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내가 여성과학자이기 때문에 누구도 도대체 내가 모엇인지 알지 못하고, 따라서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내가 무엇인지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갑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동료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나도 그들에게 충고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음 두 문장을 되뇐다. 이일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그렇게 해야만 할 때를 빼고.
나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알고 있다. "널 사랑해"라는 말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행동으로 어떻게 보여줄지는 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알고 있다. 랩걸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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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매력적이어서 읽기야 하겠지만, 대충 눈에 들어온 단락들을 보니 작가의 삶의 자세가 너무나 반듯하고 성실한 것 같아 덜 매력적이다. 유시민 선생님이 추천해준 책이라 읽으려고 했는데, 왠지 읽고 나면 반듯하게 살고 싶은 게 아니라 반듯하지 못한 자신을 엄청 돌아보게 될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