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부공장 야옹이 ㅣ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47
최양숙 그림 글,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내 이름이 담긴 병’ 이래 최양숙 씨의 두 번째 그림책을 만났다. 미국에서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이력이 말해주듯 '내 이름이 담긴 병'은 미국 생활에 적응해가는 한국 소녀의 정체성 찾기가 주제였다. 이번 ‘두부공장 야옹이’는 이민 생활 초기의 외로운 김사장이 동물 보호소에서 야옹이를 만나 서로 의지하며 살다가 도움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거대 도시 뉴욕에서 소수 이민자의 처지가 동물 보호소의 버려진 고양이에게 대비되어 잠깐 가슴이 짠했다. 이 책은 작가가 의도했건 아니건 미국사회에서 동양인의 처지나 문화를 소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두부공장과 동물보호소 출신의 고양이, 김사장의 근면성등이 부각되었다는 점이 그렇게 읽혔다.
최양숙씨는 장면을 집어내는 솜씨가 있다. 단순함 속에서도 선과 면을 잘 살려 구도를 잡아 이야기를 호소력있게 전달한다. 개인적으로 화재 진압 후의 소방 호스가 얽혀 있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고 재미있었다. 그림은 아크릴화인데 선이 단순화 되었고, 색감이 약간 어둡다.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국의 그림책 틈에서 동양적인 느낌이 나게끔 색상톤을 그렇게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한국 독자들에게 그리 호감을 주는 톤은 아닌 것 같다.
미국시장에서는 동양적인 신비감으로 어필하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보기엔 오히려 이국적인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더구나 두부공장에 불이 나서 소방관들이 진화를 하는 장면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김사장은 아예 흑인 같다. 마지막에 야옹이를 안고 있는 김사장과는 다른 사람 같이 느껴진다.(다른 사람인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그림책이면 아마 누군가가 얘기를 해주었을 텐데, 외국 편집자의 눈에 보이는 유색인종은 다 비슷하게 보인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 두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초등저학년 아이들까지 재미있게 읽는다. 이 이야기의 중심사건인 두부 공장 화재의 비밀이 글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림 속에서 비밀이 풀리도록 되어 있는 것도 아이들은 대단한 즐거움으로 느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로 이야기를 단순하게 이끌어 가는 가운데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거리'가 숨어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