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지겨움을 미리 예방하고자 점심은 외식을 했다.
동네 쌀국수집에서 분보싸오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공원벤치에 앉아 히라마쓰 요코의 <바쁜 날에도 배는 고프다>를 마저 읽었다. 바쁘지도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지만 바쁜데 배가 고플까봐 미리 챙겨 먹은 탓에 뻘쭘한 기분으로 공원에 앉아있으니 연휴에 가장 조심할 것은 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쁜 날에도 배는 고프다>는 아주 아주 심플한 음식에세이다. 처음 나오는 얘기가 토마토에 소금을 뿌려서 십분 뒀다가 먹으라는 ‘소금토마토‘, 두번째는 가지에 칼집을 내어 맛간장에 끓인 후 식혀서 차게 먹으면 맛나다는 ‘차갑게 먹는 가지절임‘이었다. 이후로 죽~ 이런 심플한 음식의 향연이 이어진다.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찬물에 밥 말아서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드세요,류의 일본 버전이라고 할까. 내가 눈여겨 본 것은 말린 생선을 뜯어서 파드득나물에 곁들인 말린생선 샐러드다. 구운 생선을 그대로 올리면 발라먹기 성가시고 쉬 질리는데 미리 발라서 쌉쓰름한 생야채와 곁들이면 깔끔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걸으면서 읽고 식당웨이팅하면서 읽고 공원에서 잠깐 읽으니 다 읽어졌다. 아, 이런 책을 왜 이제 알았지? 하며 찾아보니 저자의 책이 번역된 것이 꽤 여러 권이다. 나는 바다출판사에서 나온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를 먼저 추천받았는데 도서관에 없었고 ,
뒤이어 읽기 시작한 <어른의 맛>도 <바배고>에 비해 호흡이 길고 에피소드 위주라 짧은 이야기를 읽는 맛이 있다. <어른의 맛>이 끝나면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를 구해봐야겠다. 각종 전에 갈비찜을 먹은 후라면 더 개운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비싸고, 화려하고, 특별한 메뉴는 이 책에서 찾아 볼 수 없다. 히라마쓰씨가 살면서, 걸어오면서, 자신의 손으로 가족들을 위해 꾸준히 만들어온 식사와, 그걸 뒷받침해준 듬직한 도구들뿐이다.
...이 책은 잠들지 못하는 밤의 자장가처럼 다정하다...그래서 이 책은 마치 밥처럼 읽는 이에게 힘을 주는 마법의 책이다. 요시모토 바나나 추천사 중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바다의 뚜껑에 보면 사탕수수 시럽만을 끼얹은 빙수가 나오는데,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런 취향이 히라마쓰 요코와 닿아 있는 것이거나, 요코의 에세이에서 힌트를 얻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본다.
소문난 케이크를 사오지 않아도 맛있는 티타임을 보낼 수 있다. 선착순으로 판매되는 화과자를 사러 뛰어가지 않아도,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길게 줄을 서서 산 쇼콜라가 아니라도.
물론 수고스러움이 오히려 즐거울 때도 있겠지만, '힘들여 구한' '특별한' 먹을거리에 조금은 피곤함을 느낀다.'평소'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 '최고로 맛있는 집'이라는 특별함이 없는, 힘주지 않은 음식도 뱃속 깊은 곳에서 '아, 정말 맛잇고 행복했어.'하고 느끼면 그걸로 족하다.
그렇게 즐기기 위해서는 힘 빼는 법을 알아야 한다. 기분에도, 생활에도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그 흐름을 적절히 따른다면 먹을거리를 두고 괜히 힘주는 일은 필요 없다.
'잼을 곁들인 비스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