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옥찌들에게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러 가자고 했다. 옥찌는 주사란 말을 듣자마자 싫단 소리를 하고, 민은 아무것도 모르고 놀러가는줄 알고 따라나섰다. 지희에게 빵이랑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하자 주사 한번 맞아보자고 했다. 민은 빵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당장이라도 주사 따위는 문제없단 식이였다. 그래서 민 웃긴다라고 지희에게 말했더니 옥찌 말하길
-쟤는 뭐 먹는대면 다 된대.
옥찌도 알고 있었나보다.
가는 길에 붕어빵 파는데가 보이자 요녀석들이 통통 뛰며 저기서 파는 저거, 오뎅 먹어봤다가 막 자랑을 했다. 언제 먹었냐니까 주말에 내가 나가느라 할아버지랑 놀때 먹어봤다는거다.
-우리가 아주 많이 먹었다. 계속 계속
민도 신나서
-계속 아주 많이 먹었어.
-그렇게 아주 많이 먹으니까 할아버지가 뭐래?
옥찌가 웃으며 말하길
-에이!(꼭 할아버지 흉내낸다고 목소리를 쫙 깐다.) 이랬어.
보건소에 갔더니 독감주사는 아이들이 밤에 부대낄 수 있어서 오전 중에 맞아야한단다. 이번 독감 주사는 어른이 맞아도 좀 힘들다고. 나는 아이들도 안 맞으니까 다음에 맞는다며 그냥 나와버렸다. 맞는건 문제없는데 지금도 수업시간이면 잠가루를 뿌린듯 졸기만 하는데 주사에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는게 아니더라도 더 졸 것 같아서는 거짓말이고, 주사 맞는거 조금 무서웠다. 옥찌들 맞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볼까싶기도 했지만.
보건소에서 나오는데 구름이 너무 예뻐서 아, 예쁘다 하고 있는데 옥찌도 구름 보면서 저거 가져다 줄까라고 물었다. 그럼 좋지라고 했더니 옥찌는 사다리 타고 내년쯤에 갖다준다고 약속했다. 구름빵에서 본건 있어가지고. 그런데 왜 내년이냐니까 6살이 사다리타기는 무리란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다시 6살이니까 까불면 안 된다고 민에게 다짐받아내는 옥찌.
밥먹을 때 옥찌는 일등으로 밥을 깨끗이 먹고선 난 첫째니까 일번째로 밥 먹고, 민인 둘째니까 두번째로 밥먹네. 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럼 밥을 한번 더 먹고 또 일등하라니까 첫째니까 한번만 먹는거라고 했다. 해서 그럼 아주 맛있는거 먹을 때도 한번 먹어야겠네라고 하자 그건 아니라며 몇번씩 먹어도 된단다. 밥만 첫번째. 옥찌의 고무줄 논리.
밥을 먹을때면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다. 바이올린 선율이 저녁과 어울리게 애잔했다. 음악을 듣던 옥찌는 '슬프고 싶은 음악이네.'라고 말해줬다. 정말 이 아이도 그렇게 느끼는걸까?
자신의 느낌이 맘에 들었는지 밥을 다 먹고선 피아노를 쿵쾅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옥찌.
사람들 슬퍼하지 말아요. ♬ 그럼 나도 슬프잖아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엄마 섹시한다. 우리 엄마 엄마! 예뻐요. 아빠 우리 아빠. 사랑해요. 아빠는 멋있어요.♪ 이모 (어쩌고 어쩌고) 우리 가족 사랑해요.♩
옥찌가 노래 부르는걸 듣고 있으니 예쁜 마음이 들어서 흐뭇하게 듣고 있는데 이모 관련 말은 알아먹을 수가 없어 다시 물었더니 옥찌 말하길
-응? 이모가 종이 빌려줬다고.(아이들이 그림 그린다고 하면 이면지를 주곤 했던걸 말하는 듯. 고작? )
-아니, 옥찌 뭐야. 엄마 아빤 예쁘고 멋진데 이모는 그게 다야?
옥찌가 나의 반론이 그럴듯했는지 한참 생각하고 있자니 그틈을 타 옆에서 락을 부르듯 소리막 꽥꽥 질러대던 민이
-이모는 터져요. 터져.
-그게 뭐야?
마저 밥 먹는 나를 보고 배가 터질거라나~ 아, 아찔하군. 많이 먹는게 아니라 오래 먹는거라고 말하려다 말하면 뭐하나 싶어 잠자코 있었다. 지희는 뭐 이모가 이쁘다 어쩐다 얘기를 하며 노래를 다시 부르긴 했지만 처음에 들은게 잊혀져야 말이지. 그렇다고 그게 아주 서운했던건 아니고, 더 노력해서 옥찌의 맘을 사로잡아야겠단 생각 정도?
일전에 옥찌들이 서로 싸워서 다치거나 울면 미안해? 괜찮아? 라고 물어보라고 말해준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도 꾸준히 그런 상황에서 얘기를 하곤 했는데 이게 과용되다보니 가끔씩 부작용이 생겨나기도 한다. 오늘은 옥찌랑 민이랑 싸우다 옥찌가 울었다. 민은 건성으로 '미안해, 괜찮아?' 이러고, 어쨌든 말은 해줬으니 다른걸로 트집잡을게 없던 옥찌는 '말만 하면 다야? 안아줘야지.'한다. 이게 스킨십을 유도하고 우애를 두텁게할런지 진정성을 해치는 습관일지는 좀 더 두고봐야할 것 같다.
밥을 먹고 8시까지 한시간 동안 둘이 놀라고 하고 페이퍼를 쓰려고 했는데 밖에서 둘이 노는걸 보자니 웃겨선.
옥찌- 자 봐봐. ㄱ,ㄴ,ㄷ,ㄹ,ㅁ 있잖아. 거기에서 하나 골라봐. 누나가 말을 만들게.
민- 파워레인저.
옥찌-그게 아니고. 옥지민. 선생님 말 잘 안 들어?
민-누나잖아.
옥찌- 지금은 선생님이야. 백점 맞으려면 잘해야겠네.
옥찌를 기다리는 동안 위층 여자가 애기들 아빠가 직장에서 받아온거라며 크레파스를 전해주며 애들이 너무 시끄러울까 매번 미안했다는 말을 전했다. 저희도 아이들 키우는걸요. 그런데 예전 집보다 시끄럽지 않아요. 등등의 서로 부담되지 않을 말을 펼쳐놨다. 언젠가는 주려고 별렸다던 크레파스를 주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그녀의 모습이 참 예뻤다. (뭐 줘서 그런건 아니고)
하늘이 날이 갈수록 더 예뻐지겠지? 옥찌들 기다리며 아이들과 보건소를 다녀오며 내가 본 하늘은 그 시작에 불과할지도. 구름이 옅게 그늘을 드리우고 푸른 하늘은 눈이 시다. 두서없이 옥찌들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8시, 나가서 신나게 놀아야지. 고구마도 먹고. 그럼요, 겨울이 다가오고 따끈한 고구마를 저녁 늦게 먹어야 한다구요. 약간 새콤한 김치에다. 이건 '겨울을 신나게 보내는 우리의 먹거리' 65p에 나온 얘기인걸요. 그런 책이 없다구요? 그럼요. 방금 지어낸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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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올린적이 있었던가. 노래의 주인공 옥찌. 고구마에 정신 팔려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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