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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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한다는 것

 

독립한다는 것은 극소수 사람의 문제이다 : ㅡ 그것은 강자의 특권이다. 독립을 시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독립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그에 대한 훌륭한 권리를 가지고, 그가 강할 뿐 아니라 자유분방한 상태에 이를 정도로 대담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그는 미궁으로 들어가며, 삶 자체가 이미 동반하고 있는 위험을 천 배나 불리게 된다.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길을 잃고 고독에 빠져 양심이라는 동굴의 미노타우루스Minotaurus에게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위험 가운데서도 결코 사소한 위험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이 밑바닥으로 내려간다고 할 때, 이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들은 이것을 느끼지 못하고 동정하지 못하게 된다 : ㅡ 따라서 그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다! 그는 사람들의 동정으로도 되돌아올 수 없다! ㅡ ㅡ

 

- 니체, 『선악의 저편』, <제2장> 자유정신, 제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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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없었다면 말이다!

 

결국 그 누가 지금까지의 어느 위대한 음악가보다 훌륭한 창의와 발상, 말에 있어서 빠른 속도의 장인이었던 페트로니우스를 감히 독일어로 번역할 수 있겠는가 : ㅡ 우리가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내닫게 하면서 모든 것을 건강하게 만드는 바람의 걸음걸이를, 들이마시고 호흡하는 바람을, 바람의 자유로운 조롱을 지니고 있다면, 병들고 사악한 세계의 수렁이나 '고대 세계' 의 수렁이 결국 무슨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저 신성하게 변용시키면서 보완하는 정신 아리스토파네스에 관해 말하자면, 그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그리스 세계 전체를 용서하게 된다. 그곳에 있는 모든 것에 용서와 변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가슴 깊이 이해했다고 전제한다면 말이다 : ㅡ 그렇기 때문에 저 다행스럽게도 전해져 내려온 사소한 사실보다 더 내가 플라톤의 비밀스러움과 스핑크스 같은 본성에 대해 꿈꾸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 즉 우리가 그의 임종의 베개 밑에서 발견한 것은 《성서》도, 이집트의 책도, 피타고라스의 책도, 플라톤의 책도 아닌, ㅡ 아리스토파네스의 책이다. 플라톤 또한 삶을 ㅡ 그가 부정했던 그리스적인 삶을 ㅡ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ㅡ 아리스토파네스가 없었다면 말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2장> 자유정신, 제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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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의 속도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그 문체의 속도이다 : 문체의 속도라는 것은 종족의 성격에, 생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그 종족의 '신진대사'의 평균 속도에 근거한다. 충실하게 그 뜻을 담고 있는 번역도, 본의 아니게 원전의 격조를 더럽힘으로써, 거의 위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오로지 사물과 언어 속에 내재된 모든 위험한 것을 뛰어넘고,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전의 대담하고 경쾌한 속도가 함께 번역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2장> 자유정신, 제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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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한 인간에 대한 연구_냉소주의자들

 

범용한 인간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진지하게 이루어졌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 필요한 많은 가장, 자기 극복, 친밀함, 불편한 교제 ㅡ 모든 교제는 자기와 동등한 사람과의 교제 외에는 불편하다 ㅡ : 이것이 모든 철학자 생애사의 필수 불가결한 한 장(章), 아마 가장 불편하고, 악취하는 환멸에 가득 찬 장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인식의 행운아에 어울리는 행운을 지녔다면, 그는 자신의 과제를 본래대로 단축시켜주고 경감시켜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ㅡ 내가 생각하는 사람은 이른바 냉소주의자들이며, 동물성, 비속함, '규준'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인정하고, 이때 증인들 앞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들의 동료에 대해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을 가졌고 과민한 사람들이다 : ㅡ 때때로 그들은 자기 자신의 똥오줌 위에서 뒹구는 것처럼, 심지어 책 속에서까지 뒹군다. 냉소주의는 저속한 영혼이 성실한 그 무엇에 스쳐가는 유일한 형식이다. 그리고 보다 높은 인간은 더 조야하고 세련된 모든 냉소주의에 귀를 열어야만 하고, 바로 자기 앞에서 부끄러움도 없는 어릿광대나 학문적인 호색한의 소리가 들릴 때는, 그때마다 스스로의 행운을 빌게 된다. 더욱이 구역질 나는 것에 매혹적인 것이 섞여드는 경우조차 있다 : 즉 그의 시대의 가장 깊이 있고 예리하고 아마 가장 지저분한 인간이기도 했을 신부 갈리아니Galiani의 경우처럼, 자연의 변덕으로 분별 없는 염소와 원숭이에 천재가 결부되는 경우가 있다. ㅡ 갈리아니는 볼테르Voltaire보다 훨씬 깊이 있는 사람이었으며 따라서 대부분 더욱 침묵을 잘 지켰다. 이미 시사한 것처럼 학문적인 두뇌가 원숭이의 몸에 올라앉고, 날카롭고 예외적인 지성이 천박한 영혼에 올라앉는 경우가 정말 종종 일어난다. ㅡ 의사와 도덕-생리학자들 사이에서는 특히 드문 사건은 아니다. 그 누군가가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인간이란 두 가지 욕망을 지닌 배와 한 가지 욕망을 지닌 머리로 되어 있다고 말하고, 그 누군가가 그것이야말로 인간 행위의 본래적인 유일한 동기로서 언제나 기아, 성욕, 허영심만을 보면서, 그것을 찾아내보려고 할 때, 즉 간단하게 말해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 '나쁘게' 말할 때 ㅡ 결코 사악하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ㅡ , 인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말에 세심하게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요컨대 분노 없이 말하는 곳에서 그는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분노한 인간은, 그리고 항상 자신의 이로 자기 자신을 (또는, 자시 자신의 대용물로, 세계나 신이나 사회를) 물어뜯고 갈기갈기 찢는 사람은, 물론 도덕적으로 보면, 웃으면서 자기 만족을 느끼는 호색한보다는 더 높은 위치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보면 그는 훨씬 저속하고, 냉담하고, 완고하다. 분노한 사람보다 더 많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ㅡ

 

- 니체, 『선악의 저편』, <제2장> 자유정신, 제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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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윤리학 비판

 

나의 정원을, 황금의 격자 울타리가 있는 정원을 잊지 말라! 정원 같은 사람, ㅡ 또는 하루가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저녁 무렵 물 위를 흐르는 음악 같은 사람이 ㅡ 그대들의 주위에 있도록 하라 : 멋진 고독을,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에게 여전히 잘 사는 권리를 부여하는 자유롭고 변덕스러우며 경쾌한 고독을 선택하라! 명백한 실력으로 싸울 수 없는 모든 긴 싸움이 얼마나 사람들을 악의에 차게 만들고, 얼마나 교활하게 만들며, 얼마나 못되게 만드는가! 적에 대한, 있을 수 있는 적에 대한 오랜 경계와 공포는 얼마나 사람을 사적인 존재로 만드는가! 이러한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 오랫동안 박해받은 자, 심하게 쫓겨다니는 사람,ㅡ스피노자와 지오르다노 부르노Giordano Bruno처럼 은둔을 강요당한 사람들도ㅡ이러한 사람들이 가장 정신적인 가면을 쓰고 있다 할지라도, 그리고 아마 그들 자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항상 복수심에 불타는 교활한 자와 독살자가 되어버린다. (스피노자 윤리학과 신학의 토대를 파헤쳐보라!) ㅡ 도덕적 분노의 치졸함은 전혀 말할 필요가 없으며, 이는 한 사람의 철학자에게는 이에 대한 철학적 유머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확실한 징조인 것이다. 철학자의 순교와 그의 '진리를 위한 희생'은 그 자신 안에 있는 선동자와 배우가 숨겨왔던 것을 드러내도록 강제한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철학자를 오직 예술가적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고 가정한다면, 이제 많은 철학자들과 관련해 그 철학자를 다시 한번 그 퇴락한 모습 속에서 ('순교자'로, 무대와 강단에서 외치는 자로 퇴락한 모습으로) 바라보려는 위험한 소망이 있다는 것은 물론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소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쨌든 그때 무엇을 보게 될지 확실하게 알고 있기만 하면 된다 : ㅡ 즉 단지 익살극, 에필로그의 하찮은 소극(笑劇)만을, 모든 철학이 발생 과정에서는 오래된 비극이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면, 오랜 본래의 비극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증거만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ㅡ

 

 - 니체, 『선악의 저편』, <제2장> 자유정신, 제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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