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동물' 이야기, 그 뒤를 잇는 '비슷한' 생각들

 

(밑줄긋기)

 

집주인 되는 회색 말은 종인 갈색 말에게 시켜서는 그 동물 중에서 가장 큰 놈을 풀어가지고는 마당으로 데리고 나오게 했다. 그러더니 그 짐승과 나를 나란히 세워놓고는 주인과 종이 다같이 우리의 모습을 번갈아가면서 비교해보고는 "야후"라는 소리를 여러 번 했다. 그 역겨운 짐승이 인간의 형태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이나 공포심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짐승은 나와는 다르게 얼굴은 평평했고 코는 납작했으며 입술은 두툼했고 입은 컸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차이점은 다른 야만족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 야만족들은 아기를 바닥에 눕혀놓거나 업고 다닐 때 얼굴을 등에 밀착시키기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다. 그 야후라는 짐승의 앞발과 내 손의 차이는 그 짐승의 것이 손톱이 더 길고 손바닥은 더 거칠며 더 밤색이고 손등에는 털이 많다는 것뿐이었다. 발도 손과 마찬가지였고 차이가 없었다. 내가 양말과 신발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말들은 그런 사실을 몰랐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외 신체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미 말한 것처럼 털이 많다는 것이나 색이 약간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점이 없었다. (294∼295쪽)

 

 

 -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4부 말의 나라 여행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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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 전부터, 사람이 가축의 주인이 아니라 가축이 사람의 주인이며292 가축이 사람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고 생각해왔다.(100쪽)


주석

292.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의 『걸리버 여행기』를 인용한 듯하다. 이 책에서는 말처럼 생긴 후이늠이 인간을 닮은 야후의 주인이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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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양이를 희롱하고 있자면

자만심은 타고난 근본적인 병폐이다. 모든 생령들 중에서도 가장 재난당하기 쉽고 취약하며, 동시에 가장 오만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우주의 가장 나쁘고, 죽어 없이지며 비천한 부분에 못 박혀, 하늘의 끝없는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최후 단계의 주거로, 여기 이 세상의 진흙과 분뇨통 속에서 세 가지 동물들(조류·포유류·어류) 중의 가장 나쁜 조건에 있는 동물들과 함께 자기를 보고 느끼고 한다. 그러고도 그는 상상력으로 달의 궤도 위에 올라서 하늘을 자기 발밑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바로 이 공상력으로 그는 자기를 하느님과 견주며, 하늘의 거룩한 조건을 자기가 차지하고 자기 자신을 따로 골라 다른 생령들과는 구별해 놓고, 자기 동료며 친구인 동물들에게는 그들의 몫을 갈라 주며, 그들에게 자기 멋대로 정한 소질과 힘을 부여한다. 그는 어떻게 자기 지성의 힘으로 동물들의 내적 움직임과 비밀을 안단 말인가? 그는 어떻게 그들과 우리를 비교하며, 동물들에게 어리석은 성질을 주고 있는 것인가? 내가 고양이와 희롱하고 있자면,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소일하는 것인지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소일하는 것인지 누가 알 일인가?



 

짐승들과 우리 사이의 의사 소통이 불가능하게 된 결함이 어째서 그들에게 있고, 우리에게는 없다는 말인가? 우리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결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는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짐승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만큼, 우리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이유로 우리가 그들을 짐승이라고 보는 만큼, 그들도 우리를 짐승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도 크게 괴이한 일은 아니다.

 

자연은 보편적으로 모든 피조물들을 포용한다. 그리고 생령 중에서, 자연이 그의 생명 보존에 필요한 모든 방법을 아주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사람들이(그들은 방자한 생각으로 때로는 자기를 구름 위에 올려놓고, 때로는 그 반대편 극단 속에 집어넣는다) "우리는 속박당하고 잘 씌워져서 대지 위에 벌거숭이로 내던져진 단 하나의 동물이며, 남이 내버린 물건으로밖에 자기를 싸감아 무장해 볼 거리도 없다. 반면에 다른 피조물들은 자연이 그들을 조개껍데기·깍지·덧껍질·털·모사·가시·가죽·잔털·날개짓·거북·등껍질·양털 가죽, 돼지털 등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대로 옷을 입혀 주고, 그들을 발톱·이빨·뿔 등으로 무장시켜서 공격하고 방어하게 하고, 자연이 헤엄치기·달음질치기·날기·노래하기 등 그들에게 맞는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반대로 우는 것 외에는 배우지 않으면 길가기·말하기·밥먹기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 말을 듣는다.(481∼482족)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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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짐승을 섬긴다고 말해야 옳다

디오게네스는 부모들이 자기를 노예에서 해방시키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어버이들은 미쳤어. 나를 맡아 대접하고 먹여 살리는 자야말로 나의 노예요" 하고 말했다. 짐승을 먹이는 자들은 짐승이 그들을 섬긴다고 하기보다도 오히려 그들이 짐승을 섬긴다고 말해야 옳다.

그뿐더러 짐승들에게는 더한층 품위 있는 면이 있다. 사자는 결코 다른 사자를 섬긴 일이 없고, 말이 다른 말을 섬긴 일이 없는 것은, 그렇게 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짐승들을 사냥하러 가듯, 호랑이와 사자들은 사람을 사냥하러 간다. 서로간에 같은 사냥을 하고 있다. 개들이 토끼에게, 꼬치 고기가 잉어에게, 제비가 매미에게 , 매가 콩새와 종달새에게 하는 식이다.(493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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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손님이 된 사자와 사자의 의사가 된 사람

감사의 심정으로 말하면(우리는 이 말을 애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의 예 하나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것은 아피온 자신이 눈으로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어느 날 로마에서 시민들이 보기 드문 여러 짐승들, 그것도 아주 큰 사자들의 싸움을 보여 주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는 사나운 생김새와 억세고 굵직한 네 다리와 거창하고도 무섭게 포효하는 소리로 온 관중의 시선을 독차지하였다. 시민들에게 이 짐승과 싸우기로 소개된 여러 노예들 중에, 다키아 출신의 안드로두스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집정관의 직위를 가진 한 로마 귀족의 노예였다. 사자는 멀리서 그를 알아보더니, 먼저 깜짝 놀란 듯 딱 멈춰 섰다. 그러고는 마치 옛 친지와 상면하려는 것처럼 부드럽고 평화로운 태도로 아주 온순하게 접근해 왔다. 그러고 나서 자기가 찾던 것을 확인해 보고는 개들이 주인에게 아첨하는 식으로 꼬리를 흔들며, 미리 공포에 눌려 정신을 잃은 이 가련한 노예의 손이며 엉덩이에 주둥이를 대고 핥기 시작하였다. 안드로두스는 이 사자가 순하게 구는 데 정신을 차려 눈을 똑바로 떴다. 마주 쳐다보고는 서로 알아보고, 그러고는 노예와 사자가 서로 쓰다듬으며 기뻐하여 마지않는 광경은 보기에도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이때 시민들은 기뻐하며 환호성을 울렸다. 황제는 그 노예를 불러 오게 하여 이 일의 내력을 물어 보았다. 안드로두스는 황제에게 다음과 같은 신기하고도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제 주인이 아프리카의 총독으로 있을 때, 저를 잔인하고도 혹독하게 부리며 날마다 매질만 하였기 때문에 저는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지방에서 권세가 있는 그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숨으려고,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 사람이 살 수 없는 외딴 사막으로 달아났습니다. 먹고 살 방법을 찾을 길이 없으면 자살할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햇볕은 극도로 강렬하고 더위는 참을 수 없이 심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찾아 낼 수 없는 어느 은밀한 동굴에 이르러 그 속에 쓰러지듯 들어갔습니다. 바로 뒤따라 갑자기 이 사자가 들어왔습니다. 사자는 한쪽 발을 다쳐서 피를 흘리고 몹시 아파 신음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가 들어왔을 때에 저는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가 그의 집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제게로 가까이 오더니 다친 발을 내밀며 구원을 청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곧 사자 발에 박혀 있는 나뭇조각을 뽑아 내고, 사자와 조금 더 낯을 익힌 후에, 상처의 고름을 짜내고, 할 수 있는 한 깨끗하게 닦고 씻어 주었습니다. 아픔이 다소 진정되었는지 사자는 발을 제 손에 맡긴 채 누워서 잠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자와 저는 3년 동안 같은 고기를 먹으며, 그 굴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사냥을 나가 잡아오는 짐승의 가장 좋은 부분을 제게 갖다 주었습니다. 저는 불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햇볕에 말려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이 짐승과의 야만스러운 생활에서 벗어나기로 작정하고, 사자가 사냥을 나간 틈에 그곳을 떠났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병사들에게 발각되어 아프리카에서 이 도시로 끌려와서 제 주인에게 인도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 주인은 즉시 저를 사형에 처하여 짐승들에게 던져 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 사자도 바로 뒤에 잡혔고, 상처를 보살펴 준 은혜를 지금 이 시간에 갚으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안드로두스가 황제에게 말한 이야기이다. 이 소문은 한 입 두 입을 거쳐 시민들에게 알려졌다. 그래서 모두의 요구에 따라 그는 사면 판결을 받아 자유를 얻었고, 시민들의 명령에 따라 그 사자도 풀려 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안드로두스는 이 사자를 짤막한 줄로 매어 로마의 주막집들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던져 주는 돈을 받아서 살아가고, 사자는 사람들이 던지는 꽃으로 덮여 있었다.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저기 사람의 손님이 된 사자와, 사자의 의사가 된 사람이 온다"고 하더라고 아피온은 말한다.(510∼512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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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원숭이, 어찌도 그리 우리를 닮았는가!

우리에게 가장 많은 짐승은, 모든 짐승들 중에서 가장 추하고 못난 짐승이다. 과연 외부에 나타난 모습과 얼굴의 형태로 보아서, 그것은 원숭이일 것이다.

가장 못난 짐승인 저 원숭이, 어찌도 그리 우리를 닮았는가!                                                   (엔니우스)

내부와 생명이 매인 부분들로 보면 돼지가 그렇다. 아주 벌거숭이로 해놓은 인간을, 그의 오점이나 타고난 굴종과 완전하지 못함을 생각해 보면, 다른 어느 동물보다도 우리가 몸을 감싸고 다니는 것에 정당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점에서 우리보다 더 혜택을 받고 있는 자들에게서, 그들의 미로 우리를 장식하고, 그들에게서 벗겨 온 물건 밑에 우리를 가리려고, 털실·날개깃·털·명주실 등을 빌려 오는 것은 너그러운 눈으로 보아 달라고 해야 할 만한 일이다.(518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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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중 단연 뛰어난 것은 1726년에 발간된 『걸리버 여행기』로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내각의 각료에서부터 유아원의 유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환영했다. 루이스 멈포드가 한 다음의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기이한 작품이다. "문장은 어린이용이지만 의미는 성인용이다." 어린아이들은 이 소설의 첫 두 권(소인국과 대인국)을 특히 사랑한다. 스위프트는 "세상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진지한 목적 아래 이 소설을 썼다. 『걸리버 여행기』는 다양한 해석을 자아내는 의미심장한 책이다. 나는 스위프트가 인간의 진정한(때로는 혐오스러운) 얼굴에 거울을 들이대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위프트는 인간이 환상을 버리고, 거짓말을 내던지고, 합리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합리성으로부터 멀리 벗어난 야후(소설 속에 나오는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가 되어 있다.

 

스위프트의 작가 정신은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권인 마인국(馬人國)에 잘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인간 혐오증은 야비한 인간성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힘 아래 인간이 자신의 이상주의를 실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가 허약한 인간성을 맹렬하게 공격하기는 하지만 스위프트를 사악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작성한 자신의 라틴어 묘비명은 그의 내적 갈등을 암시한다. 그는 마침내 세인트 패트릭 성당의 지하에 평화롭게 묻혀 있다. 그곳은 "씁쓸한 분노가 그의 가슴을 더 이상 물어뜯지 못하는 곳"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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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양철나무꾼 님께서도 지적했듯이, '맥락' 없이 인용하는 글들은 곧잘 '말도 안되는 소리'로 매도될 때가 자주 있는 듯합니다. 저 역시 (바로 그런 '표현'을 앞세운 지인의 글을 보고) 대뜸 그런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지요.

 

 

'연도 멸도 없는 해탈의 세계'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저도 한동안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해탈'이 곧 불교도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그 해탈에 이르면 곧 '윤회'를 벗어난다는 뜻일진대, 왜 거기서 다시 '새로운 연을 이루고 그 연을 따라 보살이 되고...' 라는, 곧 '윤회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듯한 과정이 다시 '불교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거듭 생각해 보게 되었고요. 제게는 (양철나무꾼 님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 대목이 아직까지도 여전히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해탈'이 무슨 뜻인지를 네이버에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려주더군요.

 

해탈 [解脫, Vimukti, Vimoka]

 

결박이나 장애로부터 벗어난 해방, 자유 등을 의미하는 말. 원래 인도 바라문교에서 사용하던 말이었는데 후에 불교에 도입되었다. 불교에서의 해탈은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궁극적인 경지로, 업과 윤회를 벗어난 상태를 일컫는다. 업()은 인간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인과()의 법칙이 절대적으로 적용되어 선업()인지 악업()인지에 따라 낙과()와 고과()가 따른다. 즉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다른 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윤회()는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서 끝이 없는 것과 같이 인간이 번뇌와 업에 따라 생사()의 세계를 거듭하며 그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해탈은 이러한 인간의 상태에서 벗어나 열반()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국학자료원)

 

네이버가 들려주는 대답이 어찌 '궁극적인 해답'을 던져줄 수 있을까요. 그저 '용어사전'을 옮겨놓은 것일 뿐인데 말이지요. 결국 이 문제에 대해 아주 깊이 고민했던 몇몇 철학자들의 생각까지 다시 뒤져보게 되었고, 그들의 말을 천천히 다시 반추해 봤습니다. 과연 그들의 책은 여전히 '얼음을 깨는 도끼'로 남아 있었고, 저는 '다시, 도끼'를 펼친 듯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저도 양철나무꾼 님의 말씀처럼, '불교 용어'를 가지고 아무런 맥락도 없이 꼬치꼬치 따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전히 '뗏목'과 '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직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말이지요.

 

 

* *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ㅡ 예술가들에게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거나, 또는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철학자들이나 학자들에게는 높은 정신성을 위한 유리한 선행 조건들을 냄새맡는 후각이나 본능을 의미한다. 여성들에게는 잘 해야, 더욱 유혹하기 위한 애교나 아름다운 육체가 보이는 약간의 부드러움이나 포동포동 살쪄 예쁜 동물의 천사 같은 것을 의미한다. 생리적인 실패자나 부조화자(죽어야 할 운명을 지닌 대다수의 인간들)에게는 이 세계에 '너무 선하게' 존재하려는 시도이자, 방탕의 성스러운 형식이며, 만성적인 고통이나 권태와 싸우려는 그들의 주요한 무기를 의미한다. 성직자들에게는 본래의 성직자적인 믿음이나, 그들의 권력의 최상의 도구, 또는 권력을 지향하는 '최고의' 면허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성자(聖者)들에게는 동면을 하기 위한 구실이며, 그들의 가장 최후의 영예욕이자, 허무('신') 속에서의 안식이고, 그들의 착란의 형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금욕주의적 이상이 인간에게 그렇게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그 안에는 인간 의지의 근본 사실, 즉 인간 의지가 지닌 공허의 공포가 표현되어 있다 : 인간의 의지는 하나의 목표가 필요하다. ㅡ 이 의지는 아무것도 의욕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허무를 의욕하는 것이다.내 말을 이해하겠는가?……내 말을 이해했는가?…… "전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ㅡ 그럼 처음부터 시작해 보자.(451∼452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1절

 

 * * *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을 폭행하고 있다. 우리는 영혼의 호두를 까는 사람들이며, 마치 인생이란 바로 호두를 까는 것일 뿐이라는 듯 질문하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매일 더욱 의심을 품는 자, 물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가 되어야만 하며, 따라서 아마도 또한 더욱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자가 되어야만 하지 않는가?…… 모든 좋은 것은 전에는 나쁜 것들이었다. 하나하나의 원죄에서 어떤 유전적인 덕이 생겨났다. 예를 들어 결혼은 오랫동안 공동체의 법을 침범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옛날에는 매우 불손하게도 한 여성을 홀로 독점할 경우에는 배상을 했다 (예를 들어, 초야권이 그에 해당하는데, 이는 캄보디아에서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낡은 미풍양속'의 수호자인 승려들의 특권이다). 부드럽고 호의적이고 관대하며 동정적인 감정들은 ㅡ 이것은 점차 높은 가치로 높이 자리잡게 되어, 거의 '가치 자체'가 되었다 ㅡ 오랫동안 그 자신에 대한 자기 경멸을 지녀왔다 : 사람들은 오늘날 가혹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처럼, 온순함을 부끄럽게 여겼다(《선악의 저편》, 260절). 에 대한 복종 : ㅡ 지상 곳곳에 있는 고귀한 종족들은 스스로 복수를 단념하고 스스로에 대한 권한에 폭력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데 얼마나 양심의 저항을 느꼈던 것일까! '법'이란 오랫동안 하나의 금기였으며, 불법이었고, 혁신이었다. 그것은 폭력으로 나타났고, 그 폭력에 복종하는 것을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치욕으로만 여겼다. 지상에서 그 어떤 가장 작은 발자국이라 할지라도 이전에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과 싸워왔던 것이다 : 이러한 전체적 관점, 즉 "전진뿐만이 아니다. 그렇다! 걸음걸이, 움직임, 변화는 무수히 많은 고문의 고통이 필요했던 것이다"는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주 낯설게 들린다. ㅡ 나는 이것을《아침놀》18절에서 밝혔다.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자부하고 있는 약간의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 감정보다 더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에게는 인류의 성격을 확정짓는 진정한 결정적인 주요 역사로 '세계사'에 선행하는 '풍습의 윤리'의 저 어마어마한 시대적 거리를 느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 여기에서는 고통이 덕으로, 잔인성이 덕으로, 꾸밈이 덕으로, 복수가 덕으로, 이성의 부정이 덕으로 통용되었고, 이에 반해 평안이 위험으로, 지식욕이 위험으로, 평화가 위험으로, 동정이 위험으로, 동정받는 것이 모욕으로, 노동이 모욕으로, 광기가 신성으로, 변화가 부도덕적이고 불행 자체를 품고 있는 것으로 어디서나 통용되었던 것이다!" ㅡ (474∼476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9절

 

 * * *

 

금욕주의적 삶의 경우에 삶이란 저 다른 생존을 위한 하나의 다리로 간주된다. 금욕주의자는 삶을 결국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미로처럼 취급한다. 또는 행위에 의해 반박당하고 ㅡ 반박당해야만 하는 오류처럼 취급한다 :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가기를 요구하며, 할 수 있다면, 생존에 관한 자신의 가치 평가를 함께 하기를 강제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와 같은 기괴한 평가 방식은 예외적인 경우나 진기한 일로 인류의 역사 가운데 기입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폭 넓고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사실 가운데 하나이다. 멀리 떨어진 천체에서 읽는다면, 우리 지구상의 생존이라는 대문자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게 될 것이다. 즉 지구는 본래 금욕주의적인 별이다. 자신에 대해, 지구에 대해, 모든 생명에 대해 깊은 불만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면서, 고통을 주는 것을 즐기면서 ㅡ 아마도 유일한 즐거움으로 여기면서, 가능하면 스스로에게 많은 고통을 주는 불만에 차고 오만하며 불쾌한 피조물의 은둔처일 것이라고. 어쨌든 우리는 금욕주의적 성직자가 얼마나 규칙적이고도 보편적으로, 거의 모든 시대에 나타나는지 생각해보자. 그는 개별적인 종족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는 모든 계층에서 자라나온다. 그는 자신의 평가 방식을 유전에 의해 배양하여 증식시키지 않는다. 실상은 반대의 경우이며, ㅡ 대체로 말해서, 어떤 깊은 본능이 오히려 그의 번식을 금지시킨다. 이러한 삶에 적대적인 종족을 되풀이하여 계속해서 성장시키고 증식시키는 것은 최고급의 필요성임이 틀림없다. ㅡ 이러한 자기모순적인 유형이 소멸되지 않는 것은 삶 그 자체의 관심사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금욕주의적 삶이란 하나의 자기 모순이기 때문이다 : 여기에는 견줄 데 없는 원한이, 즉 삶에서의 어떤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삶 자체, 그 가장 깊고, 강력하며, 가장 기저에 있는 조건들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기갈 들린 본능과 힘 의지의 원한이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힘의 원천을 봉쇄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는 생리적인 발달 자체에, 특히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나 아름다움과 기쁨에 대해 서툴고 음험한 눈초리가 쏠린다. (……) "바로 마지막 죽음의 고통 속에서의 승리" : 이 최상의 기호 아래 옛날부터 금욕주의적 이상은 싸워왔다. 이러한 유혹의 수수께끼 속에서, 이러한 환희와 고통 속에서 그 이상은 자신의 가장 밝은 빛을, 자신의 구원을, 자신의 마지막 승리를 인정했던 것이다.(479∼481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11절

 

 

 * * *

 

삶은 이 이상 속에서 그러한 이상을 통해 죽음과 싸우며 죽음에 대항하여 싸운다. 금욕주의적 이상은 삶을 보존하기 위한 기교인 것이다. 이와 같은 이상이 인간을 지배하고 제어할 수 있었다는 것, 특히 문명과 인간의 순화가 성취된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그랬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대로이지만, 그 사실 안에는, 지금까지의 인간 유형에는, 적어도 길들여진 인간의 유형에는 병적인 것이, 인간의 죽음과의 생리학적 싸움(더욱 자세히 말하자면, 삶의 권태와의, 피로와의, '종말'을 바라는 소망과의 싸움)이라는 중요한 사실이 표현되어 있다. 금욕주의적 성직자는 다르게 되고 싶은, 다른 곳에 존재하고 싶은 체화된 소망이며, 실은 이러한 소망의 최고점이며, 이 소망의 진정한 열정이자 정열이다 : 그러나 그 소망의 이야말로 그를 여기에 붙잡아 매는 질곡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여기에 존재하고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좀더 유리한 조건들을 만들어내도록 작업해야만 하는 도구가 된다. ㅡ 이러한 힘으로 말미암아 그는 모든 종류의 덜된 자, 부조화자,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한 자, 실패자, 자기 스스로 괴로워하는 자들의 전체 무리를 생존에 묶어 두게 되는데, 이때 그는 본능적으로 목자로 그들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484∼485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13절

 

 * * *

 

그러나 이 금욕주의적 성직자가 진정 의사란 말인가? ㅡ 우리는 그가 아무리 스스로를 '구원자'로 느끼고, '구원자'로 존경받고자 한다 해도, 그를 의사라고 부르는 것이 어째서 허용되지 않는지를 이미 이해하고 있다. 그가 싸우는 것은 단지 고통 자체일 뿐이며, 고통받는 자의 불쾌일 뿐이지, 그 원인이나 진정한 병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 좀더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것이야말로 온갖 정신 착란에 이르는 길을, 예를 들면 아토스산의 헤쉬카스트파처럼, '내적인 광명'에 이르는, 환청이나 환시에 이르는, 음탕하게 넘쳐흐르는 관능의 황홀(성녀 테레사의 이야기)에 이르는, 길을 열고, 또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 사로잡힌 자들이 이와 같은 상태로 부여하게 되는 해석이 가능한 한 언제나 열광적이고 잘못된 것이었음은 명백하다 :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해석을 하려는 의지에서 이미 울려나오고 있는 맹신적 감사의 어조를 단지 건성으로 들어서는 안 된다. 최고의 상태, 해방 그 자체, 마침내 이르게 된 저 완전한 최면 상태와 정적은 그들에게는 언제나 최고의 상징으로도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충분치 못한 신비 그 자체로, 사물의 근거 속으로 들어가고 귀환하는 것으로, 온갖 망상에서의 해방으로, '앎'으로, '진리'로, '존재'로, 모든 목적이나 모든 소망이나, 모든 행위에서 벗어남으로, 또한 선과 악의 저편으로도 여겨진다. 불교도는 "선과 악 ㅡ 이 두 가지는 결박이다. 완전한 자는 이 두 가지를 지배했다"고 말한다. 베단타의 신도는 "행해진 것이나 행해지지 않은 것이나 그에게 고통을 주지 못한다. 현자인 그는 선과 악을 자신의 몸에서 흔들어 털어낸다. 어떤 행위로도 그의 영역은 고통받지 않는다. 그는 선과 악, 이 두 가지를 넘어선다"고 말한다 : 이것은 즉 인도 전체에 나타나는 견해인데, 바라문교적인 견해도, 불교적 견해도 이와 마찬가지다. (……) 최면에 걸린 허무의 감정, 가장 깊은 잠의 휴식, 간단히 말해 고통이 없는 상태 ㅡ 고통 받는 자나 근본적인 부조화자는 이것을 이미 최고의 선으로, 가치들 가운데 가치로 여기며, 이것을 그들은 적극적으로 평가해야만 하고, 적극적인 것 자체로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동일한 감정의 논리에 의해 모든 염세주의적 종교에서 허무란 신을 의미한다.)(497∼503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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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주의적 이상을 제외해보자 : 그러면 인간은, 인간이라는 동물은 지금까지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았다. 지상에서의 인간의 생존은 아무 목표도 없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ㅡ 이것은 해답이 없는 물음이었다. 인간과 대지를 위한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거대한 인간의 운명의 배후에는 더욱 거대한 '헛되다!' 라는 말이 후렴으로 울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 어머어마한 균열이 인간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는 것, 실로 이것이 금욕주의적 이상을 뜻한다. ㅡ 인간은 스스로를 변명하고, 설명하고, 긍정할 줄 몰랐다. 인간은 자신의 의미의 문제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는 그 밖의 문제로도 괴로워했다. 인간이란 대체적으로 보아 병든 동물이었다 : 그러나 그의 문제는 고통 자체가 아니었고,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가?" 라는 물음의 외침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가장 용감하고 고통에 익숙한 동물인 인간은 고통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인간에게 고통의 의미나 고통의 목적이 밝혀진다고 한다면, 인간은 고통을 바라고, 고통 자체를 찾기도 한다. 지금까지 인류 위로 널리 퍼져 있던 저주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였다. ㅡ 금욕주의적 이상은 인류에 하나의 의미를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유일한 의미였다.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보다는 낫다. 금욕주의적 이상은 어떤 점에서 보더라도 지금까지 있었던 최상의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이상 속에서 고통은 해석되었다. 어마어마한 빈 공간은 채워진 것처럼 보였다. 모든 자살적 허무주의에 대해 문이 닫혔다. 해석은 ㅡ 의심의 여지 없이 ㅡ 해로운 고통을 가져왔고, 좀더 깊고, 좀더 내면적인, 좀더 독이 있는, 삶을 갉아먹는 고통을 가져 왔다 : 이 해석은 모든 고통을 라는 관점 아래로 가져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ㅡ 인간은 그것에 의해 구출되었다. 인간이 하나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그 후로 더 이상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같은 존재가 아니었고, 불합리나 '무의미'의 놀이공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인간은 무엇인가를 의욕할 수 있었다. ㅡ 우선 어디를 향해,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 인간이 의욕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 의지 자체가 구출되었던 것이다. 금욕주의적 이상에 의해 방향을 얻은 저 의욕 전체가 본래 표현하고자 한 은 도저히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증오, 더욱이 동물적인 것, 더욱이 물질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증오, 관능에 대한, 이성 자체에 대한 이러한 혐오, 행복과 미에 대한 이러한 공포, 모든 가상, 변화, 생성, 죽음, 소망, 욕망 자체에서 도망치려는 이러한 욕망 ㅡ 이 모든 것은, 감히 이것을 이해하고자 시도해볼 때, 허무를 향한 의지이며, 삶에 대한 적의이며, 삶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들에 대항한 반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의 의지이며 하나의 의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말했던 것을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말한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의욕하지 않는 것보다는 오히려 허무를 의욕하고자 한다……(539∼541쪽)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28절

 

 

 * * *

 

참다운 구원, 즉 생과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은 의지의 완전한 부정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거기에 도달하기까지는 모두들 이 의지 자체에 불과한 것이고, 의지의 현상은 덧없는 존재다. 그리고 언제나 공허하고 끊임없이 좌절되는 노력으로 모든 사람이 똑같이 불가항력적으로 속해 있으며, 우리가 묘사하는 고뇌에 찬 세계다. 왜냐하면 앞서 보아 온 것처럼, 생에 대한 의지에서 생은 언제나 확실하고, 생의 유일하고 현실적인 형식은 현재며, 현상 속에서는 탄생과 죽음이 지배하는 것처럼 아무도 이 현재에서 도피할 수 없다. 인도의 신화는 이것을 표현하여 "그들은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다.(942쪽)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제4권」, <68. 생에 대한 의지의 부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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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6-06-2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정성된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근데, 정말 죄송한데...저 님의 이런 페이퍼의 문제제기에 논리적으로 댓글을 달 깜냥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제가 페이퍼에서 말씀드렸듯, 전후 문맥에서 오는 어법상의 문제를 제시한 것이었을 뿐입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꾸벅~(__)

oren 2016-06-21 19:02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들이 `불멸`이나 `영원한 삶`을 꿈꾸고, 심지어 많은 종교에서는 `죽음 이후의 복된 삶`을 꿈꾸기도 하지요. 그런데 유독 불교는 그와 정반대로 `완전한 無`를 수행의 목표로 삼는다는 게 늘 제게는 인상적이었답니다. 그런데 박웅현 님의 책 속에서 바로 그런 점에 대해 언급한 대목(`불교에서 수행의 최종 목적은 환생이 아니라 멸이랍니다`)을 두고, 어떤 분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제게는 마치 `어리석은 중생들`을 향해 큰 소리로 `일갈`하는 듯이 들리는) 표현한 대목에서 저는 솔직히 적잖은 충격을 받았더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글을 읽고 나서 많은 고민과 생각 끝에 여러 번 망설이다가 끝내 `괜한 댓글`까지 달게 되었구요. 사실 오늘 이 글에 덧붙인 `책 속 구절들`은 지난 주말에 내내 살펴봤던 글들인데, 양철나무꾼 님께서 거듭 `뗏목에 관한 글`을 올려주셔서 저도 (생략해도 충분했을 법한 이 글을 또다시 참지 못하고) 기어이 글로 쓰고 말았네요. 굳이 문제 제기라기 보다는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하는 가벼운 심정으로 쓴 글이었는데, 너무 부담을 드렸다면 저 역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암튼 오늘은 날씨가 몹시 덥네요. 한 줄기 시원한 장대비라도 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2016-06-22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3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6-06-2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아닙니다만 모처럼 흥미로운 글을 읽었기에 관심을 가져봅니다 oren님
덕분에 불교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점 감사드립니다

불교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니체, 쇼펜하우어 등이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겠습니다.
특히 니체는 더욱 그러하다고 봅니다.
(물론 고대 인도 철학에 관심을 가졌던 서구의 지식인들이 한 둘이 아니겠습니다만)

제가 그들의 저서에서 느꼈던 점은 그들의 사유가 싯다르타 이후의 이후의 불교 정심에 접근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저는 그들의 저서를 통해 불교에 대한 그들의 앎이 지식에 그치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들의 동양적사유가 대부분 우파니샤드에 닿아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파니샤드가 불교의 전신에 해당하는 것은 지당하지만 싯다르타의 존재는 인도의 정신을 우파니샤드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는 도구로서 불교를 이용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 특히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이러한 느낌을 떨칠 수 없게 하는 대표작이라 느꼈습니다. 불교에 관해서라면 차라리 니체의 손을 들어주고 싶군요)

결과적으로 그들이 체화한 불교의 정신에 대한 저의 느낌은 겉멋이 들었다, 정도였습니다. 쇼펜하우어는 특히 이에 해당한다고 느낍니다. 그의 사유가 허무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하겠습니다.
(이는 불교에 관한한 그들의 사유가 그리 깊은 것이 아니었으며, 당시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열병처럼 퍼졌던 현상 중 하나였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도의 수준은 얄팍한 것이었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지 여타의 사유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밝혀드립니다)

물론 그들의 목적과 의도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다만 그들의 프리즘으로 불교에 접근하는 것은 너무나도 먼 길을 돌아가는 느낌이라 몇자 드렸사오니
저의 무례함을 부디 용서하세요 oren님


oren 2016-06-23 13:47   좋아요 0 | URL
차트랑 님 반갑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불교의 심오한 사상`까지도 서양철학자들이 온전히 흡수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쇼펜하우어나 니체처럼 천재들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사실 쇼펜하우어만 하더라도 그 당시 `이제야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불교 사상을 공부했다고 하니, 제아무리 산스크리트어까지 공부해가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니체 또한 서양 철학이나 성경 해석 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지만, 불교 사상에 대해서는 불교 경전으로부터 직접 얻어낸 `원문`에 대한 심오한 해석을 내놓는 모습을 구경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요. 그러나,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불교를 일종의 `염세주의 철학`으로 잘못 이해한 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플라톤의 이데아와 기독교의 구원 신앙에 깊이 물든 `서양 정신 세계`에 `혁명`을 일으킨 공로만큼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지 싶습니다. 그 두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서양 철학은 아직도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숱한 `미망`에 사로잡혀 있을 뻔했을 테니까 말이지요.

차트랑 2016-06-24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을 주시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oren님

저 역시 니체의 혁명적 사고와 그 위대한 영향력을 인정하는 바이고 또한 그의 저술들을 사랑하는 일인입니다.

니체가 고대 인도 철학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고 상당한 이해도를 가졌던 것은 전적으로 쇼펜하우어의 영향이었을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영향력 하에 방대한 우파니샤드의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고, 니체는 그 번역된 우파니샤드를 중심으로 불교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당시만 해도 서구인들에게 고대 인도의 사상이란 거의 새로운 것이었지요. 어쩌면 충격적인 것 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많은 서구의 지식인들(토마스 만, 바그너, 하이데거, 베버등)이 너도 나도 인도 철학에 관심을 보였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사실 인도철학 전공자가 아닌 니체가 그 방대한 원전 하나 하나를 죄다 짚어가며 공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은 우리가 중국 고전을 알기위해 갑골이나 백서 혹은 죽간에 쓴 글들을 하나하나 짚을 필요가 없는 이유와 같다고 봅니다. 물론 니체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니체가 붓다의 가르침을 원어로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구의 지식인들이 돌림병을 앓듯 접한 것은 붓다 이전의 인도철학 중심축인 우파니샤드 였다는 점은 그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도를 알게해주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제가 지난 글을 드린 것은 니체의 위대한 혁명적 사유를 부인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들의 목적이 성공적이었음을 언급했습니다만...) 바로 위에서 말씀 드렸듯, 당시 그들(쇼펜하우어, 니체)이 공부한 주된 경전은 우파니샤드였고 그들의 불교에 대한 사상은 얄팍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점입니다(어쩌면 의도적 왜곡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군요). 붓다의 출현은 인도의 사상을 우파니샤드 이전과 이후로 나누었다고 말씀드린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였습니다.

이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접근이라기 보다는 그 이전의 인도철학(우파니샤드)에 대한 접근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렌님께서 언급하신 용어인 ‘염세’가 그들의 사유 속에 향기를 피운 것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그들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들이 우파니샤드를 중심축으로 공부했기 때문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우파니샤드가 불교의 전신이지만 결코 불교의 경전은 아닙니다. 그리고 붓다 이후 불교는 커다란 사유의 변화를 거듭합니다. 우파니샤드가 불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경전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것을 붓다의 가르침과 구별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독일의 지식인들이 불교를 제대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1892년이 지난 후에서야 입니다. 노이만이 불교의 원전을 번역하면서 부터인 것이지요. 이는 쇼펜하우어가 죽은지는 수십 년이 흐른 뒤였고 니체가 죽기 바로 2년 전의 일입니다 (니체가 원전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접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쇼펜하우어가 집에 불상을 모셔놓았을 정도로 심취했다고는 하지만 그 이해도가 그리 밝지 못했던 것은 붓다의 가르침에 관한 자료의 부족이었던 것이지 불교의 경전을 잘못 이해했던 것이라고 보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헤세가 불교에 밝았던 것은 오로지 노이만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하여 저는 독일의 불교를 노이만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고 보는 일입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우파니샤드를 접한 서구의 지식인들이 불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이 불충분했던 것은 자명한 일이지요. 결과적으로 우파니샤드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불교에 대해서라면 자연스럽게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결코 불교의 깊은 사유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불교사상에 대한 그들의 미성숙한 이해를 근거로 불교를 사유하고자 함은 너무나도 먼 길을 돌아가는 느낌이라는 것이 요지였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며 논점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더불어 오렌님 덕분에 당시 서구 지식인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를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점 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오렌님.

PS. 제가 지난 번에 드린 댓글에 오자가 보여 그 오자 하나만 정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것 멋 ⟶ 겉멋 ㅠ.ㅠ.)



oren 2016-06-24 15:54   좋아요 0 | URL
차트랑 님께서 상세하고도 깊이 있는 해석을 곁들여주시니 훨씬 더 이해하기 쉽군요. 사실 서양 철학은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등장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너무 협소한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비록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불교 사상의 진수에까지 온전히 닿지는 못했더라도, 그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고대 인도 철학과 불교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서양철학이 그 때 이후로 갑자기 엄청난 사유의 확장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지요.

쇼펜하우어가 언젠가 `전세계의 절반이 훨씬 넘는 인구`가 `수천 년 동안` 성서와 예수의 존재조차도 까마득히 모르고도 아주 태평스럽게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아왔던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술회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야말로 동양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도리어 낯설고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동양과 서양 사이에는 켜켜이 쌓인 두터운 `생각의 장벽` 같은 게 존재하는 듯합니다. 동양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반대로 서양 철학자들이야말로 2천 년 이상이나 인도 철학이나 불교 사상을 제대로 모른 채 `그들만의 철학`을 연구해 왔으니 말이지요. 그러니 차트랑 님의 말씀대로, 불교에 적잖이 심취했던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통해 `불교`에 대한 해석을 들여다보는 일 또한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프리즘`에서 벗어나기 힘든 한계를 지닐 수밖엔 없다고 봅니다. 우파니샤드에 대한 무수한 언급에 비해 여타 불교 경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거의 없는 점 또한 그런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일 테지요.

아무튼 차트랑 님께서 남겨주신 댓글 덕분에 서양 사람들 가운데 특히 독일 철학자들과 몇몇 작가들이 `불교에 다가갔던 길들`을 아주 소상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정말 유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병자는 그 치유 방법을 손에 쥐고 있는 경우, 가련하게 생각해 줄 필요가 없다. 내가 서적들에서 끌어내는 모든 성과는 이런 어구의 실천과 적용으로 되어 있다. 사실 나는 책을 모르는 자들만큼이나 책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는 구두쇠들이 보물을 가지고 즐기듯, 책을 가지고 즐긴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때에 언제든지 그것을 즐길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몽테뉴

 

 * * *

 

책을 읽는 데에도 어떤 '질서'가 필요한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려 봤다. 우리 속담에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말이 있고, 비슷한 뜻으로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책유서(冊冊有序)라는 말은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면 책과 책 사이에는 아무런 순서가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는 걸까.

 

꼭 그렇게 단정지을 일은 아닌 듯하다. 어릴 때 동네에서 훈장 어르신한테서 천자문(千字文)을 배운 기억이 있는데, 그 때 나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먹은 형들은 동몽선습(童蒙先習)이나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배웠더랬다. 책을 배우는 '순서'가 엄연히 존재했었다는 얘기다. 천자도 모르는 아이가 그 '기본서'를 뛰어 넘어 곧바로 명심보감을 배워 익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동이나 청소년이 성인들이 읽는 어려운 책들을 읽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어른이 되고 나면 책에서 느껴지는 어떤 '난이도'가 세월과 함께 자연스레 슬쩍 사라지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책에 내재된 '난이도'는 여전히 남는다. 어떤 책들은 펼쳐서 몇 쪽도 채 넘기지 못하고 황망히 덮고 말 때도 있다. 내가 처음으로 그런 당혹감을 느꼈던 책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었다. 대학 1학년때 교양과목으로 <철학개론>을 배울 때의 일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책들을 가끔씩 만났다. 니체의 책들도 한 때는 '딴 세계의 언어'로 쓰인 것처럼 느껴졌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앙리 베르그송의 『웃음』, 오비디우스의 『변신』등도 한때나마 내게 그런 당혹감을 안겨줬던 책들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험한 산'처럼 느껴지는 책들을 어떤 식으로든 힘겹게 넘고 보니 차츰 '요령'이 생기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책을 읽는 '알맞은 순서'라고나 할까, 혹은 '알맞은 타이밍'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들을 내 스스로 알아서 맞추는 식으로 책을 읽을 때가 생기더라는 얘기다.

 

어떤 책들이 '알맞은 때'를 만나게 되면 정말 여느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절실하게 가슴에 팍팍 파고들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책들은 도대체 내가 왜 하필 '지금 꼭' 이 책을 붙들고 씨름을 해야 할까 싶은 느낌이 드는 책도 있게 마련이다. 심지어 어떤 책들은 아예 작정을 하고 씨름을 하듯 맞붙어 씩씩거리더라도 결국 제대로 다 읽지 못하고 나 자신의 한계를 순순히 인정하고 물러날 때조차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경우를 두고 어찌 책 탓만 할 수 있을까. 그게 바로 어쩌면 그 책을 읽는 '알맞은 타이밍'이 아직은 아니어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떤 일들을 진척시키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힐 때가 다가오게 마련이다. 이제 머지 않아 어떤 결실을 맛볼 때가 임박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찾아 온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만하면 때가 무르익었지 싶은 데도 도대체 감감무소식인 상태가 지속될 때가 있다. 말하자면 '감'이 무르익어 곧 떨어질 때가 된 듯싶은데 도대체 그 감이 언제 떨어질지 도무지 모를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지속될 때, 다시 말하자면 감나무 아래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벌린 입만 아플 때,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벌린 입을 그만 다물고 감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덜 익은 감'이라도 따 먹어야 옳은 일일까. 아니면 감이 언제 무르익을지 좀 더 확실하게 살핀 뒤에 '알맞은 때'를 기다려 나중에 다시 감나무를 찾아야 옳은 일일까.

 

대략 10년 전쯤의 일이 생각난다. 언젠가 우연히 신문을 읽다가 내가 발견했던 사자성어 하나가 이런 고민에 딱 맞는 해답을 제시해 주는 듯해서 무릎을 치며 경탄한 적이 있었다. 줄탁동시()라는 말이었다. 벽암록(碧巖錄)이라는 책에 그 말이 나온다고 해서 서둘러 도서관으로 냉큼 달려가 그 책을 빌려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이야말로 내게는 언감생심이었다. 도대체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책이 결코 아니었다.『벽암록()』은 중국 당나라 이후 불교 선승()들이 전개한 대표적 선문답을 가려 뽑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은 설두중현(, 980~1052) 선사가 펴낸 『송고백칙()』에 원오극근(, 1063~1135) 선사가 또다시 문제 제기와 해석을 첨가했다고 한다. 책의 유래만 살펴 봐도 마치 무림고수들이 간난신고 끝에 얻게 되는 기서(奇書)처럼 들린다. 

 

동양의 선문답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서양의 이름난 고전들도 읽기 난해한 책들이 한둘이 아니다. 가령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만 해도 '신들의 계보'와 '신들의 행각'을 미리 알지 않으면 제대로 읽기 어렵다. 그 두 서사시를 읽기 위해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와 아폴로도로스의 『그리스 신화』 혹은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먼저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작품들도 여전히 읽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작품들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를 미리 읽을 필요가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오비디우스의 『변신』과 같은 작품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 책들 속에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 담긴 이야기들이 마치 기본 텍스트처럼, 혹은 독자들이 이미 당연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운율을 가미한 서사시'로 '노래'한다. 그러니 압축과 비약과 비유가 난무하는 '고대 시인의 노래'를 곧바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도 당연지사일지 모르겠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고대 디오니소스 축제' 때 경연을 벌였던 '그리스 비극'을 먼저 읽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애기인지 전혀 감을 잡기 어렵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헛수고일 뿐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지만 무딘 도끼로 거목을 쓰러뜨리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앙리 베르그송의 『웃음』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몰리에르의 작품까지 두루 섭렵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라블레의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정도는 미리 읽는 게 아무래도 그 책을 이해하기가 훨씬 더 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서양의 이름난 고전들도 더러는 서로 난마처럼 얽혀 있어서 적당한 '선행 독서'가 결여된 채 그 책들에 다가서는 독자들을 여간 당혹스럽게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철학책을 읽으면서도 '음악'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할 때도 있다. 사실 음악은 다른 '선행 과목들'에 비해선 부수적인 요소일지도 모른다. 니체의 책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 비극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이해도 적잖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쇼펜하우어와 칸트를 비롯한 숱한 철학자들도 미리 알아야 한다. 어쨌든 니체의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바그너의 음악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고,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슈만, 쇼팽, 리스트, 드뷔시, 비제, 롯시니의 음악도 함께 알면 더욱 좋다. 그들의 음악을 모른 채 니체의 책을 읽는다면, 그가 들려주는 숱한 음악 얘기들이 결국 '소 귀에 경읽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마침 오늘 아침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니체가 작곡했다는 가곡도 들을 수 있었다. 디트리 피셔 디스카우의 음성이었다. 그 해설자는 심지어 '니체의 음악'을 들려주는 연주회에도 한두 차례 참석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 * *

 

최근에 밀란 쿤데라의 소설 세 권과 그가 쓴 에세이『배신당한 유언들』을 읽으면서 '책 읽는 순서'에 대해 거듭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그 책을 펼치자 말자 나오는 제1부의 제목부터가 나에겐 몹시 낯설었다. <파뉘르주가 더는 웃기지 않는 날>이라니, 쿤데라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파뉘르주가 도대체 누굴까? 얼핏 사람 이름인 듯하기도 하고... 어쨌든 그 책의 첫 문단을 여기에 인용해 보자.

 

마담 그랑구지에르는 임신 후 내장 요리를 너무 많이 먹어서 수렴제를 복용해야 했다. 이 약이 너무 독해 태반엽이 풀려 버렸고, 태아 가르강튀아는 정맥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정맥을 타고 올라 어머니의 귀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이 책은 첫 문장에서부터 자신의 수법을 내보인다. 즉, 여기서 하는 얘기는 진실하지 않다는 것, 달리 말하면 여기서는 진실(과학적이거나 신화적인)을 주장하지 않으며, 사실들을 현실 그대로 묘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어도 파뉘르주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가르강튀아는 라블레의 소설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에 등장하는 거인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겠건만, 도대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여전히 아리송하기만 하다. 다음 문장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 찾기 시작한다.

 

행복한 라블레 시대. 소설이라는 나비가 번데기 잔해들을 짊어진 채 날아오른다. 거인 형상을 한 팡타그뤼엘이 여전히 환상적 콩트들의 과거에 속했다면, 파뉘르주는 당시 소설이 아직 모르는 미래에서 온다. 새로운 예술의 탄생이라는 이 특별한 순간은 라블레의 책에 놀랄 만한 풍요로움을 부여한다. 모든 것이 거기 있다. 사실임 직한 것과 사실임 직하지 않은 것, 알레고리, 풍자, 거인과 일반인, 일화, 명상, 실제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여행, 현학적인 언쟁, 순수한 말재간으로 이루어진 여담 등. 19세기의 후예인 오늘날의 소설가는 초기 소설가들의 이 멋들어지게 혼합된 세계에, 그들이 누리는 유쾌한 자유에 시기심 어린 향수를 느낀다.

 

이제야 조금 더 뚜렷해진다. 쿤데라는 1534년에 처음 발표된 라블레의 풍자 소설을 통해 '소설의 화려한 비상'을 발견했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소설의 무한한 가능성'을 독자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뒤이어 쿤데라는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를 인용하고, 라블레의 『팡타그뤼엘-제4서』를 인용하면서 '소설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독자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좀 더 자세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다음의 인용문을 내세우면서.

 

옥타비오 파스는 말한다. "호메로스도 베르길리우스도 유머를 알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머를 느낀 듯하지만, 유머는 다만 세르반테스에 이르러서야 형태를 취한다. (……) 유머는 현대 정신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유머는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인간이 실천해 온 게 아니라 소설의 탄생과 관계된 하나의 발명이라는 것, 이는 대단히 중요한 발상이다. 유머는 웃음이나 조소, 풍자가 아니라 희극성의 특별한 한 종류라는 것. 이에 대해 파스는(이야말로 유머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인데) 이것은 "자신이 건드리는 모든 것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라고 말한다. 파뉘르주가 후생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으며 양 상인들을 익사시키는 장면을 즐거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는 소설 예술에 대해 영원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겨우 이 책의 4쪽까지의 내용이다. 아직 갈 길이 까마득히 남았다는 얘기다. 쿤데라는 다음 단락에서 곧바로 자신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이별의 왈츠』를 꺼내 든다. 그 작품을 설명하면서 『팡타그뤼엘 - 제4서』의 내용과 연결한다. 그 다음 단락에서는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 형제』를 내세워 설명을 이어간다. 그 다음 단락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내세우며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멋진 문장을 인용한다. 그 다음엔? 곧바로 자신의 작품 『농담』과 『삶은 다른 곳에』와 『불멸』을 꺼내 든다. 그 다음엔 다시 라블레의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로 되돌아 가고, 뒤이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 브로흐의 『몽유병자들』,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다시 잇따라 나온다. 곧이어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이 나오고, 다시 『악마의 시』와 『팡타그뤼엘』이 나오고 나서야 겨우 제1부가 마무리된다. 1부의 마지막 문장들은 이렇게 끝난다.

 

유머란 이 세계의 도덕적 모호성을 드러내는,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없는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신성한 빛이다. 유머란 인간사의 상대성에 대한 도취요, 확실한 건 없다는 확신에서 오는 기이한 즐거움이다.

 

하지만 옥타비오 파스의 말을 빌면 유머는 "현대 정신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그것은 늘 여기 있었던 게 아니요, 늘 여기 있을 것도 아니다.

 

나는 파뉘르주가 더는 웃기지 않을 날을 생각하며 가슴 졸인다.

 

내가 지금까지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은 건 고작 네 권밖에 안 된다.(『정체성』, 『생은 다른 곳에』는 아직 읽지 못했다.) 또한 밀란 쿤데라가 『배신당한 유언들』제1부를 마칠 때까지 언급한 여러 작품들 가운데 내가 읽은 책은 이때까지만 해도 딸랑 『돈키호테』한 작품뿐이었다.(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은 그 책을 읽고 나서 읽었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당혹스러워했을지는 더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 책을 너무 일찍 집어든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의구심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참고 읽다 보면 좀 더 익숙한 작품들도 더러 나오겠지 하는 생각과, 이 책을 읽기 직전에 읽었던 그의 소설 세 권의 후광(?)에 막연히 기댄 채 어쨌든 이 책을 계속 읽어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갈수록 태산이었다. 내가 모르는 책들, 내기 미처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봇물처럼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런 와중에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끔씩 위로를 받을 일이 있었다면, 앞서 얘기했던 쿤데라의 3부작(『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과 더불어 (결정적으로) 카프카의 작품과 그의 유언을 둘러싼 얘기가 아주 흥미롭게 펼쳐진다는 점이었다. 나는 천만다행으로 이 책을 읽기 전에 카프카의 작품들을 읽었다.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카프카를 다시 만나는 일이 내심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사실 카프카와 쿤데라의 작품은 작년 봄에 프라하에 갈 때만 하더라도 내게는 겨우 '이름만 아는 작가'일 뿐이었다. 그리고 정작 프라하에 갔을 때조차 이 유명한 작가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체코의 서점' 같은 델 들를 생각조차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라하'는 내게 '음악의 도시'로 더 친근했다. 오래 전에 프라하 필하모닉 내한 공연 연주회가 열릴 때에도 '프라하의 음색'을 직접 느껴보기 위해 찾아간 적이 있었고, 체코 출신의 음악가들인 드보르작, 바르토크, 스메타나의 작품들도 즐겨 들었었다. 더군다나 프라하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태생인 모차르트를 (그의 주무대였던) 빈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각별히 사랑한 도시로도 이미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이쯤에서 작년 봄에 프라하에 갔을 때 담았던 풍경들을 조금 소개하는 것도 그리 나쁠 건 없지 싶다. 어쨌든 나는 그 도시에 한번 발을 디딘 후로는 좀체로 그 도시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도 밝혔다시피 나는 '프라하' 하면 금세 떠오르는 그 유명한 두 작가(카프카와 쿤데라)의 작품들을 그때까지 전혀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들을 이미 감명깊게 읽은 독자들이 느낄 법한 '독특한 감정'을 전혀 맛볼 수 없었다. 나의 경우엔 오히려 '순서'가 정반대였다. 프라하를 다녀온 후에 카프카의 『성』, 『소송』, 『변신』, 『심판』등을 읽었다.(특히 그의『성』은 내가 봤던 '프라하 성'과는 여러모로 너무나도 달라서 깜짝 놀랐다.) 어쨌든 카프카의 작품들 속에서 내가 찾았던 '프라하의 이미지'를 떠올릴 일은 거의 없었다.(카프카의 소설 속엔 프라하, 블타바 강, 프라하의 봄 등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쿤데라의 작품 속으로 들어선 이후에는 어느새 '프라하'가 마치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있는 도시처럼 아주 가깝게 다가왔다.(『농담』에서 루드비크가 오스트라바에서 루치에를 황망하게 잃어비린 후 오랜 세월 뒤에 프라하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는 장면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때로는 이처럼 '책을 읽는 순서'가 묘하게 뒤바뀌어도(그러니까 작가의 출신지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도시를 직접 다녀온 직후에 그 작품들을 읽는 경우) 책을 읽는 재미가 갑자기 몇 배나 부풀어 오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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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라하에 도착한 첫날밤, 가이드와 함께 '맥주나 한잔' 마시러 나갔다가 '제대로' 만난 '프라하 성'의 야경.

 

 

 - 우리가 묵은 호텔이 마침 카를교 바로 옆이었다.(이 사진을 찍은 곳이 호텔 바로 앞이다.)

    밤늦게 카를교를 지나 호텔 앞까지 다 왔는데도 프라하의 야경에 반해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 이튿날 아침, 카를교 교각 너머의 한산한 아침 풍경.

 

 

 - '영화 또는 소설 속의 한 장면'이 절로 연상될 만큼 건물들이 이색적이고 아름답다.

 

 

 - 프라하의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프라하 성에 올랐다. 체코 경비병들의 표정이 사뭇 엄숙하다.

    프라하 성은 1천 년이 넘은 고성이지만, 현직 대통령 관저도 여기에 함께 있다.

 

 

 -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본 프라하 시내 전경. 한가운데 카를교와 교탑이 보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가 토마시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올랐던 언덕이 바로 이 근처였을까?

 

 

 - 프라하 성을 대표하는 성 비투스 성당의 모습. 24mm 광각렌즈로도 간신히 담을 만큼 몹시 웅장했다.

    보헤미아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바츨라프가 10세기에 지은 교회를 재건축하고 나중에 고딕 양식을 더했다.

 

 

 - 프라하 성 안쪽 광장에 가득 모인 관광객들

 

 

 - 황금소로. 연금술사들이 '현자의 돌'을 만들기 위해 모여들었던 곳이다. 우리말 안내 간판이 눈에 띈다.

 

 

 - 프란츠 카프카가 살았던 그의 여동생의 집도 보존돼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카프카는 바로 이곳에서『성』을 썼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황금소로에서 만난 풍경. 혹시나 '카프카'가 아닐까 싶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 프라하 성에서 내려와 바츨라프 광장을 찾았다.

    여기가 바로 1968년에 소련 탱크가 시위대를 깔아뭉갰던 '프라하의 봄' 현장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여주인공 테레자도 '바로 그 당시' 사진기자로 여기에 있었다!

 

 

 - 바츨라프 광장 한 켠에 서 있는 건물들과 흰 구름들. '역사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 프라하 시내 중앙시장 풍경. 맨 왼쪽 청년은 이제 보니 마치 '카프카'를 닮은 듯하다. 나만의 착각인가?

 

 

 - 구시청사 광장에서 가장 명물은 단연 이 '천문시계'이다. 무려 15세기에 만들어진 시계.

 

 

 - 매시 정각이 되면 '시계 쇼'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초침이 정각을 알리면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인형이 움직이며 종을 치고, 두 개의 창문에서는 12사도가 등장한다.

   허영을 상징하는 거울을 보는 자, 돈지갑을 움켜쥔 유대인, 음악을 연주하는 터키인도 등장하여

   죽음 앞에 이 모든 것이 쓸데없음을 보여준다고.

 

 

 - 유대인이었던 카프카는 어린 시절 이 시계 속의 탐욕스러운 유대인을 보고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한다.

 

 

 - 소설 『블멸』에 등장하는 '쿤데라 선생님'은 이 시계탑 앞을 '천 번도 더 지나쳤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 구시청사 광장 한가운데는 얀 후스(Jan Huss)의 동상이 있다.(왼켠 붉은 지붕 건물 앞에 어둑하게 보이는 동상)

   후스는 체코의 종교개혁가로, 체코의 철자법을 개량하고 체코어 찬송가를 보급한 사람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카를 대학 총장을 역임하였으며,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에 나선 인물이다.

   그는 쿤데라의 소설에도 자주 등장하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도 등장한다.

 

 

 - 오후 4시 정각을 가리키자 또다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짧은 쇼지만 인생의 교훈을 준다고 한다.

 

 

 - 구시청사는 1338년에 지어졌고, 마주 보이는 틴 성당은 1365년에 세워졌다고.

    이 성당은 종교개혁 당시에 후스파의 거점 역할을 떠맡았다고 한다. 두 개의 탑은 아담과 이브를 상징한다고.

 

 

 - 카를교 교탑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

 

 

 - 카를교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카를교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불린다.

    600년 전에 만들어졌고, 다리 위에 성서 속 인물과 체코의 성인 등 30명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 블타바강 너머로 보이는 프라하 성의 웅장한 모습. 전장 약 435km. 독일 명칭으로는 몰다우강이라고 한다.

    스메타나의 교향시《블타바》는 이 강의 아름다운 흐름을 묘사한 체코의 대표적인 음악 작품이다. 

 

 

 - 일행들과 함께 한 관광 일정이 모두 끝난 뒤 홀로 구시청사 시계탑을 다시 찾았다.

   시계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내려다 보니 '프라하의 심장'이라는 '구시청사 광장'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 시계탑 꼭대기에서 프라하 여행 책자에서 미리 봤던 '익숙한 풍경'을 담아 봤다.

 

 

 - 창틀 너머 건너편으로 틴 성당의 두 개의 탑이 빤히 바라다 보인다.

 

 

 - 시계탑에서 내려와 일행들이 머무는 술집을 홀로 찾아갔다. 족히 한 시간 이상은 헤맨 듯하다.

    우플레쿠(U Fleku)라는 술집으로 '5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비어홀'이다.

    체코 국민들은 스메타나를 최고의 작곡가로 여긴다.

    보헤미아 집시처럼 보이는 아코디언 연주자에게 스메타나의 <블타바> 연주를 직접 부탁해서 들었다.

 

 

 -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날 밤에 본 카를교 교탑 주변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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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쿤데라의 『배신당한 유언들』로 되돌아 오자. 그 작품에는 숱한 소설가들의 소설 작품만 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쿤데라 자신이 한때 음악에 깊이 몰두했던 작가였던 만큼 체코의 음악 영웅인 야나체크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야나체크는 소설 『농담』에도 야로슬라프라는 인물을 통해 여러 차례 등장했던 바로 그 음악가다. 야나체크의 음악은 특히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 때문에 곧잘 작곡가의 진정한 의도가 무시된 채 의도적으로 '편곡'되어 연주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작곡가가 버젓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런 일이 태연스레 벌어지곤 했다. 작곡가의 사후에도 오랫동안 그런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쿤데라가 말하고 싶었던 '배신당한 유언들'은 카프카 등 몇몇 소설가의 작품 뿐만 아니라 음악가의 작품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기쁨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일종의 서글픔을 느꼈다면 그건 대부분 나 자신의 '음악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비롯된 문제였다. 야나체크의 음악에 대해 쿤데라는 심지어 여러 차례에 걸쳐 직접 '악보'까지 그려가면서 매우 친절한 설명을 제시해 주었지만, 그걸 만족할 만큼 알아들을 수 없는 내 처지를 절감할 때마다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었다. 쿤데라는 참으로 매혹적인 작가이지만 때때로 그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바로 그런 때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읽기 위해 우리가 미리 음악 공부까지 따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접근이야말로 어쩌면 본말이 전도된 일일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가진 능력의 범위 내에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내가 여기서 『배신당한 유언들』에 나오는 숱한 걸작들을 모두 언급한다면 그런 일이야말로 진정으로 쿤데라를 배신하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쿤데라는 이 책 속에서 '소설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감동적일 정도로 아주 깊이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고, 작가의 그런 심오한 뜻을 내가 이 글에서 제대로 전달하기란 애시당초에 불가능할 뿐더러, 설사 그런 뜻을 내가 얼마간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결국은 작가가 이 책 속에서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뜻을 왜곡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로서는 그의 책 속에서 새삼스레 알게 된 숱한 매혹적인 작품들을 조금이나마 더 소개하는 정도로 만족하는 편이 더 나을 듯싶다.

 

사실 나는 일부러 '책을 소개하는 책'은 가급적 따로 찾아서 읽기를 몹시 주저하는 편이다. 그런 책들을 읽게 되면 내 스스로 어떤 작품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자칫 잘못 판단하는 데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런 점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좀 고집스러운 데가 있다. 심지어 나는 니체의 책들을 읽는 동안에도 '니체를 설명하는 책들'은 여태껏 한 권도 들춰보지 않았다. 어쩌면 나로서는 니체의 정수를 오로지 니체를 통해서만 느끼고 싶은 욕심을 너무 앞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책세상 니체 전집』은 니체에 대한 오독을 방지하기 위해 '주석'조차 달지 못하도록 막았다. 쿤데라 또한 거의 똑같은 이유에서 자신의 번역본에 대해 '작품 해설'조차 싣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어쨌든 내 나름대로 세워 놓은 이런 책읽기 방식 또한 달리 생각해 보면 내 나름대로 고수하고 싶은 하나의 '책읽기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결코 나만의 독창적인 기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언젠가 쇼펜하우어의 책에서 발견한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아니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이토록 고집할 이유까지는 없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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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방자, 꾸미는 자, 모조자, 맹목적인 모방자들은 예술을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참된 작품을 보면, 마음에 들거나 효과가 뚜렷한 점에만 관심을 두고, 이것을 명확하게 하여 개념으로서, 즉 추상적으로 파악한 다음에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교활한 생각을 품고 모방한다. 그들은 기생 식물처럼 타인의 작품에서 양분을 섭취하고, 해파리처럼 그 양분의 색깔을 갖는다. 비유를 사용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끌어 넣은 것을 잘게 깨어 혼합시킬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소화할 수 없는 기계와 같다. 따라서 그 혼합물 속에서는 언제나 다른 성분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거기에서 가려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천재는 유기체처럼 동화하고 변화하고 생산한다. 왜냐하면 천재도 선배나 그 작품에 의해 계발되고 교화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에게 직접 직관적인 것의 인상에 의해 예술적으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생활과 세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교양이 높아도 천재의 독창성엔 지장을 주지 않는다. 모방자나 꾸미는 자는 타인의 걸작을 개념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개념은 결코 작품에 내적 생명을 부여할 수 없다. 시대 일반, 즉 그 시대의 다수를 점하는 어리석은 대중은 기교를 부린 작품에 기꺼이 갈채를 보내며 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은 2,3년이 지나면 재미가 없어져 버린다. 왜냐하면 시대정신, 즉 유행의 개념이 변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작품의 유일한 근거는 이 유행의 개념이다.

자연과 인생에서 직접 이끌어 낸 참다운 작품만이 자연이나 인생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젊고 언제까지나 근원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참된 작품은 특정한 시대의 것이 아니라 인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은 그 시대에 영합하는 것을 경멸하고 시대로부터는 냉담한 대우를 받으며, 그때그때의 잘못이 그 작품에 의해 간접적이고 소극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에, 나중엔 진가를 인정받게 된다. 또 이러한 작품은 진부해지지 않고, 시대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신선하고 언제나 새롭게 사람의 마음에 호소한다. 이렇게 인정받은 이상, 이제는 무시되거나 오인받을 염려는 없어진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판단력이 출중한 소수의 사람들의 칭찬으로 영광의 왕관을 쓰고 진가를 인정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 소수의 출중한 사람들은 백 년 동안에 아주 적게 나타나지만, 그들이 말하는 의견은 점차 권위가 확립되는데, 이 권위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이 작품들의 진가를 후세에 호소하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 잇따라 나타나는 위대한 개인이야말로 이 유일한 전거이다. 왜냐하면 동시대의 대중이 언제나 어리석고 우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세의 대중도 여전히 어리석고 우둔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에나 위인들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한 말을 읽어 보라. 인간은 언제나 같기 때문에 위인들의 탄식도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함이 없다.
어느 시대에나 또 어떠한 예술에서도 작풍이 정신을 대리하며, 정신을 소유하는 것은 언제나 위대한 개인뿐이다. 그러나 작풍이란 모든 시대에 존재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은 정신의 현상이 벗어 버린 낡은 의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후세의 갈채는 동시대의 갈채를 희생하여 얻는 것이며, 또 동시대의 갈채는 후세의 갈채를 희생하여 얻는 것이다.(764쪽)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충족 이유율에 근거하지 않는 표상, 플라톤의 이데아, 예술의 대상>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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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에 쇼펜하우어까지 내세운 마당이니 여기서 니체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도 그리 나쁘진 않을 듯싶다. 니체의 작품들 가운데 제법 많은 작품들이 '음악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니체 스스로도 밝힌 적이 있었다. 음악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던 쿤데라가 이 점을 놓쳤을 리 없다. 그는 니체의 성숙기를 대표하는 여섯 권의 책(『여명』,『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즐거운 지식』,『선과 악을 넘어서』,『도덕의 계보』,『우상들의 황혼』)에서 '동일한 구성적 원형을 추구하고 전개하고 발전시키고 확립하고 다듬는 모습'을 포착한다. 그와 더불어 그는 '니체 철학'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배신 당하는 현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도 우리에게 알려준다.

 

역사가들이나 대학교수들은 니체 철학을 해설하면서 그의 철학을 축소하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그의 철학을 그의 철학과 정반대되는 것, 즉 하나의 체계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변형하기까지 한다. 그들의 이 체계화된 니체 속에도, 여성들에 관한, 독일인에 관한, 유럽에 관한, 비제에 관한, 괴테에 관한, 위고 키치에 관한, 아리스토파네스에 관한, 스타일의 경박성에 관한, 권태에 관한, 유희에 관한, 번역에 관한, 복종 정신에 관한, 타자 소유와 이 소유의 모든 심리적 전형들에 관한, 학자들과 그들 정신의 한계에 관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Schauspieler(코미디언들)에 관한 니체의 성찰들이 들어설 여지가 있을까? 보기 드문 몇몇 소설가들에게서가 아니면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무수한 심리적 관찰들을 위한 자리가 과연 있을까?

 

 

 

 

쿤데라가 자신의 대표작『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화두로 꺼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니체의 책들을 미리 읽지 않았던 독자들은 『배신당한 유언들』속에 나오는 쿤데라의 짧은 문장 속에 가득 담긴 '니체의 성찰들'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니체의 책들을 미리 읽은 독자들이라면 쿤데라의 남다른 성찰에 대해 놀라워하며 니체의 작품들에 담겼던 여러 문장들을 새삼스레 떠올릴 수도 있었으리라. 어쩌면 이런 대목들이야말로 '책을 읽는 순서'가 결정적으로 문제시되는 생생한 현장이 아닐까.

 

소설가가 들려주는 '소설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들'을 읽고 나니 내가 그동안 읽어 온 책들이 얼마나 협소한 범위에 머물러 있었는지를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그와 아울러 쿤데라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얘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얼마나 더 광범위한 책읽기가 선행되어야 하는지도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 『배신당한 유언들』에서 언급된 책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율리시스』는 여전히 '때'가 아니라 여기고 독서를 미루고 있는 작품들이다.

 특히『율리시스』를 읽기 전에『젊은 예술가의 초상』부터 '먼저' 읽으라는 어느 대가의 충고는 거역하기가 힘들다.

 제임스 조이스의 책들을 적어도 서너 권쯤 읽고 나면 틀림없이 나도『율리시스』에 덤벼들 날이 오리라 믿고 있다.

 

 - 『배신당한 유언들』에서 언급된 책들 가운데 내가 지닌 책들. 이 가운데 몇몇 책들은 여전히 읽지 않았다.

 

 

책읽기에 대해 '순서'를 강조하는 얘기는 내가 과문한 탓인지 여태껏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책읽기에 대한 책'을 별로 읽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책에 대한 전문가들이 생각하기로) 책읽기의 '순서'를 언급하는 일은 고작 '풋내기들이나 꺼낼 만한 이야기'이거나 혹은 그 자체로 너무 어리석은 일이어서 별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책을 아주 많이 읽은 몽테뉴는 이런 말까지 남겼다. '우리는 사물을 해석하기보다도 해석을 해석하는 데 더 일이 많으며, 책을 놓고 쓴 책이 다른 제목을 두고 쓴 것보다 더 많다.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 주석하는 짓밖에는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래도 이런 하찮은 글을 장황하게 끄적거리고 있는 내게 위안을 주는 사람을 내가 전혀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니다. 신화학자인 조지프 캠벨이 했던 다음 말은 여전히 내 머리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나는 조이스와 토마스 만과 슈펭글러를 읽었다. 슈펭글러는 니체를 언급했다. 나는 니체도 읽었다. 그러다가 니체를 읽으려면 쇼펜하우어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쇼펜하우어도 읽었다. 그러다가 쇼펜하우어를 읽으려면 칸트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식으로 해서 칸트도 읽었다. 일단 거기까지만 가도 되긴 했지만, 칸트를 출발점으로 삼자니 상당히 힘들었다. 그래서 거기서 다시 괴테로 거슬러 올라갔다.

 

한 가지 흥미진진했던 사실은 조이스 역시 이들과 똑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물론 조이스가 쇼펜하우어의 이름을 언급한 적은 없어도, 나는 조이스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어 쇼펜하우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증명할 수 있다.(88∼89쪽)

 

 - 조지프 캠벨, 『신화와 인생』중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책이 그 책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또다른 읽지 않은 책들'을 거슬러 따라 올라가는 출입구 같은 역할을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사실 이런 '순서'는 누구라도 흔히 경험하게 되는 독서법이다. 그런데 캠벨은 다른 책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따라하기 힘든 제안'까지도 우리 앞에 내놓는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행위를 통해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삶에서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이러저러한 게 궁금하다, 이러저러한 책을 읽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려도 안 됩니다. 붙잡은 작가, 그 작가만 물고 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작가, 저 작가로 옮겨 다니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누가 언제 무엇을 썼는지는 줄줄 외고 다닐 수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움은 안 됩니다.(190쪽)

 

 - 조지프 캠벨, 『신화의 힘』중에서

 

비록 우리 모두가 캠벨의 지침에 따라 행동할 수는 없지만 얼마쯤이라도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 볼 수는 있지 싶다. 그래서 내가 이 글을 맺으면서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일은『배신당한 유언들』에서 언급된 무수한 책의 리스트를 직접 한 번 작성해 보는 일이다. 이런 사소한 일이 결국은 '다음'에 읽을 책들을 미리 살피는 '또하나의 순서'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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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시간에 행동에 옮기기 위해서는 행운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필요하다

 

기다리는 자의 문제. ㅡ 어떤 문제의 해결점이 그 안에서 잠자고 있는 보다 높은 인간이 그래도 적절한 시간에 행동에 옮기기 위해서는 ㅡ 말하자면 '분출하기 위해서는' 행운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보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상의 모든 구석에는 앉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느 정도까지 기다리는지 알지 못하며, 그러나 기다려도 헛되다는 사실을 더욱 알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또한 그들을 깨우는 고함소리가, 행동하는 것을 허용하는 저 우연이 너무 늦게 다가온다. ㅡ 그때는 조용히 앉아 있었기 때문에 행동하기 위한 최상의 청춘과 힘을 이미 다 써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가 '벌떡 일어섰을' 때, 사지가 마비되고 정신이 이미 너무 무거워졌다는 것을 알아채고 놀랐던 것일까! "너무 늦었다" ㅡ 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그는 자신을 믿지 않게 되었고 이제 영원히 쓸모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27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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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2016-06-1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히 평가할 수 없는 대단한 리뷰입니다

oren 2016-06-16 11:12   좋아요 0 | URL
리뷰는 아니고 페이퍼로 쓴 글인데, 재료를 너무 많이 집어 넣는 바람에 비빔밥 같은 글이 되고 말았지요.
어떤 재료는 너무 많이 들어가고, 어떤 재료는 아예 빠지기도 하고, 재료끼리도 서로 섞이다 말다가 해서 별로 만족스럽지도 못하고요. 애시당초에 리스트나 한번 만들어 볼까 하다가 글이 이상하게 변질된 듯해요.

알레프 2016-06-16 11:15   좋아요 0 | URL
리뷰라해서 죄송! 아직 알라딘의 페이퍼와 리뷰의 차이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겸양해 마시고 진심 감탄할 따름입니다

오거서 2016-06-16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법 강의를 들은 느낌이에요. 좋은 내용입니다! ^^

oren 2016-06-16 11:20   좋아요 1 | URL
음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시는 오거서 님께서 『배신당한 유언들』을 읽으시면 저보다 훨씬 더 흥미롭게 그 책을 읽으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거서 2016-06-16 11:27   좋아요 0 | URL
저보다 내공이 깊은 oren 님께서 추천해주시는 책이라면 기억해두었다가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6-06-16 11:50   좋아요 1 | URL
저 책 속에는 14세기 음악가 기욤 드 마쇼도 나오던데, 마침 제가 즐겨 듣는 라디오 채널 프로그램(정경영의 클래식, 천년의 순간들)에서 그 음악가에 대한 해설과 작품 연주까지 들려주더군요. 물론 우연의 일치였지만 가끔씩은 책을 읽는 타이밍도 정말 중요하구나 싶었답니다.^^

오거서 2016-06-16 13:08   좋아요 0 | URL
중세 프랑스 작곡가 기욤 드 마쇼군요. 고음악을 들으면서 난생 처음 대하는 작곡가가 많지요. 기욤 뒤파이와 헷갈린 이름이라서 기억이 생생하네요. 책이 상당히 기대됩니다. 고음악에도 조예가 깊으신 것 같아요. ^^;

2016-06-16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6-06-17 17:24   좋아요 0 | URL
박웅현 님의 `인문학 강좌`는 저도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직접 들려주면서 곁들이는 설명이 아주 인상적이었고, 강의 내용들 가운데 허투루 들리는 얘기가 거의 없었을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했던 시간이었지요. 책을 `천천히` 그리고 `여러 번` 읽으라는 주문은 쿤데라의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특히 좋은 음악은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으면서 책은 왜 단 한 번만 읽고 내팽개치고 마느냐는 대목에선 정말 뜨끔했지요), 소설 또한 그렇게 읽어야 한다는 주문은 정말 특별하게 가슴에 와닿더군요.『배신당한 유언들』에 나오는 구절들 가운데 *****님의 댓글에 부응한다 싶은 대목들을 조금 덧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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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가 뜻하는 바는 이렇다. 소설에서 보이는 어떤 단언도 그것만 따로 고려될 수는 없으며, 그 각각은 다른 단언들, 다른 상황들, 다른 몸짓들, 다른 관념들, 다른 사건들과의 무순적이고 복합적인 대조 속에 있다는 것이다. 오직 느린 독서, 두 번 세 번 거듭 읽는 독서만이 소설에 내재하는 모든 아이러니 관계들을 드러낼 수 있으며, 이것들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소설은 이해되지 않은 채로 남게 될 것이다.(303쪽)
- 「8부 안개 속의 길들」, <아이러니란 무엇인가>

체계를 거부함으로써 니체는 철학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버린다. 해나 아렌트가 정의했듯이, 니체의 사유는 실험적 사유다. 그의 주된 충동은 굳어 버린 것을 부식시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체계들을 침식시키고, 미지로의 모험을 떠나기 위한 돌파구를 열어젖히는 데 있다. 미래 철학가는 실험가일 거라고 니체는 말한다. 부득이한 경우, 상반될 수도 있는 여러 방향으로 자유로이 떠날 수 있는 자 말이다.

소설에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을 내가 옹호하는 편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소위 `철학 소설`이라는 것, 소설을 철학에 예속하는 것, 정치나 도덕 관념들의 `소설화`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진정으로 소설적인 사유(라블레 이후 소설이 알게 된 사유)는 언제나 체계와 규율에 반한다. 그것은 니체의 사유에 가깝다. 실험적이다. 그것은 우리를 에워싼 모든 관념체계들에 돌파구를 연다. 그것은 성찰의 모든 길들을 검토하면서(특히 등장인물들을 매개로) 그 길들 하나하나의 끝까지 가고자 애쓴다.

체계적인 사유에 관해 한 가지만 더 말하자. 사유하는 자는 체계화에 끌리게 마련이다. 언제나 그는 그런 유혹에 빠진다. 자기 아이디어의 모든 결과를 서술하고 싶고, 사람들이 제기할 모든 이의를 예견하고 사전에 그것들을 반박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싶은 유혹에 말이다. 한데 사유하는 자는 타인에게 자신의 진실을 납득시키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체계의 길, `신념을 가진 사람`의 가련한 길로 접어들게 된다. 정치가들은 그런 사람으로 불리길 좋아하지만, 신념이란 게 무엇인가? 정지된 사유, 굳어 버린 사유요, `신념을 가진 사람`이란 곧 한정된 사람이다. 실험적 사유는 설득을 하려는 게 아니라 영감을 주고자 한다. 그래서 소설가는 자신의 사유를 철저하게 탈체계화해야 하고, 그 자신이 자기 아이디어의 주위에 세운 바리케이드에 발길질을 가해야 한다.(259-260쪽)
- 「6부 작품과 거미」중에서


kj_Shin 2016-06-1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oren님의 블로거에서 본 『빈서판』이라는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책의 방대한 분량은 둘째치고서라도 책의 내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수가 없어.. 책을 덮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책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책또한 읽는 수준이 제각각 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oren 2016-06-18 10:15   좋아요 0 | URL
『빈 서판』은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그 책의 초반부를 읽을 무렵에 약간은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소 난이도가 있는 책들은 일종의 `관문`이 딸린 `진입장벽`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정도 `저자와 주파수를 맞출 때까지는` 그런 고생을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답니다. 그런 난관들만 무사히 통과하면 이내 평탄한 길이 나오고, 조금 더 걷다 보면 이내 콧노래를 부르며 사뿐사뿐 걸을 수 있는 향기 그윽한 꽃밭도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말이지요.(스티븐 핑커의 3부작 가운데 『빈서판』이 너무 읽기 힘드시다면 그보다는 조금 더 읽기 쉬운『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부터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싶습니다.)

어쩌면 쿤데라의『배신당한 유언들』이라는 책 역시 그런 책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비록 소설가가 쓴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상당한 깊이를 지니고 있어서 (작가가 마치 어느 정도의 `선행 독서`를 요구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결코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닌 듯하더라구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도 이런 `책 읽는 순서`에 대한 장황한 글을 쓰게 된 것이구요. 이참에 제가 이 글에 포함시키려다가 결국 빼고 만 `니체의 말`도 덧붙여 봅니다.

* * *

거의 소가 되다시피 해야 한다

만일 이 저서가 어떤 사람에게 이해하기 어렵고 귀에 거슬린다 해도, 그 책임이 반드시 내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먼저 이전의 내 저서들을 읽었고 이때 약간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내 전제를 함께 전제한다면, 이 저서는 아주 분명하다 : 사실 이전의 나의 저서들은 그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의 `차라투스트라` 에 관해 말하자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때로는 깊이 상처받고 또 때로는 깊이 황홀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누구도 그 책에 통달한 자라고 나는 인정할 수 없다 : 이러한 경험을 한 후에야 그는 이 작품이 태어난 평온한 경지에, 그 태양빛 같은 밝음, 아득함, 드넓음, 확실함에 존경심을 지니고 참여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경우 잠언 형식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 그것은 사람들이 이 형식을 충분히 진중하게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새겨 넣으며 쏟아낸 잠언은 읽는다고 해도 `해독(解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 비로소 그 해석이 시작되어야만 하며, 거기에는 해석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 경우 내가 `해석`이라 부르는 하나의 모범을 이 책 세 번째 논문에서 보였다 : ㅡ 이 논문의 맨 앞에는 하나의 잠언이 놓여 있으며, 논문 자체는 이에 대한 주석이다. 물론 이와 같이 읽는 기술을 연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오늘날에는 가장 잘 잊혀진 한 가지 일이 필요하다 ㅡ 이렇게 잊혀졌기 때문에 내 저서들을 읽을 수 있게 되기` 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ㅡ . 이 한 가지 일을 위해서 사람들은 거의 소가 되다시피 해야 하며 어느 경우에도 `현대인` 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이는 되새김하는 것[反芻]을 말한다 ……

- 니체, 『도덕의 계보』, 서문

kj_Shin 2016-06-19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은 책을 `저자와 주파수를 맞출 때`까지 난이도가 덜한 책부터 읽어나가야겠습니다.
모든것에는 순서가 있고 단계가 있을 것인데... 순서를 건너띄고 읽는 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저자의 책들도 다같은 난이도가 아니고 어떤책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표시도 없기 때문에 그걸 찾는것도 쉽지만은 않을것 같습니다.)

단번에 어려운 책을 읽을려고 했던 것이 오판이었던 같습니다. (어차피 저에겐 어려운 책이라 몇장도 넘기지 못하고 덮었지만 말입니다.)

oren 2016-06-19 15:30   좋아요 0 | URL
어떤 분들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월든』같은 책조차 어려워 하는 경우도 있더군요.(이 책은 제가 한꺼번에 여러 권을 사 두고서, 주위에 가끔씩 `책읽기`을 좋아하신다는 분들을 만나면 선물로 드리기도 하는데, 나중에 `그 책이 어떻더냐`고 물어보면 `어려워서 읽다가 관뒀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봤거든요.) 『월든』이 어려우면 『소로우의 일기』나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등을 읽고 난 뒤에 『월든』『주석달린 월든』『소로우의 강』으로 차츰 거슬러 올라가면 `너무나 좋은 독서 경험`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소로우가 정작 가장 사랑했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했던 책은 <강>이었고, 어떤 독자든 알맞은 `출발점`를 골라 독서 여정을 정말 제대로 시작했더라면 무사히 `거기까지` 가 볼 수도 있었을테니 말입니다.
* * *
소로우는 세상을 떠나기 바로 직전에 여동생 소피아에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동생의 책 읽는 소리를 듣다가 ˝이제야 멋진 항해가 시작되는군˝ 하고 나직한 소리로 중얼거리다 잠시 후 숨을 거두었다.
- 『소로우의 강』뒷표지 중에서

bgkim 2017-07-2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친구신청 좀 받아주세요.님의 글을 읽고 싶엉‥.

oren 2017-07-23 23:17   좋아요 0 | URL
제가 친구신청을 넙죽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쁜 습성이 좀 있어서요...
죄송하고요. 친구 추가하겠습니다...

ㅇㅇ 2019-07-06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1살 청년입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ㅇㅇ 2019-07-06 23:4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정보로 유입되었는데, 비극에 탄생에 관한 이야기도 있네요!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되었는데 상세한 가이드라인까지!
제 길잡이가 되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무反응 2019-09-10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문득 예전 저희 과의 박식한(?) 선배가 생각납니다
항상 책을 끼고 살았던 선배에게 참으로 솔직하고 진지하게
어떤 책부터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합니까 책을 읽어나가는데 자주 한계를 느낍니다 했더니
그 선배가 그걸 알려주진 못하겠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씨익 웃으면서 다만 그 과정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만 해주더군요
제겐 참으로 와닿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


oren 2019-09-10 23:21   좋아요 0 | URL
공감해 주시고 댓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3년 전에 쓴 글인데도 지금 다시 읽어보니 10년 전쯤에 쓴 글처럼 낯설게 느껴지네요.^^

김의진 2020-12-24 0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니체를 읽는 순서를 따지다 보니,, 쇼펜하우어도 읽어야하고, 칸트도 알아야 하고,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가.. 서핑을 하고 있다 우연히 이 서재에 들렀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20-12-26 23:35   좋아요 0 | URL
네.. 제 글이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감사드려요.^^
 

 

『로빈슨 크루소』와 『모비딕』은 여성을 등장시키지 않고서도 탁월한 성공을 거둔 걸작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순전히 오락용 책자로 이 소설을 읽었다. 그러나 나중에 나이 들어 재독해 보면 이 소설이 왜 불후의 명작인지 깨닫게 된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중에서

 

 * * *

 

(밑줄긋기)

 

섬에 온 지 열흘 내지 열이틀이 지났을 때 책과 펜, 잉크가 없으니 날짜 계산을 못하고 심지어 평일과 안식일도 구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을 방지하려고 나이프로 커다란 나무 기둥에 대문자로 도착 날짜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 기둥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서 내가 처음 착륙했던 해변에 세워 놓았다. 나는 거기에 <1659년 9월 30일 처음 섬에 도착하다>라고 새겼다. 그리고 이 네모난 기둥 양 옆면에 매일 칼로 금을 새겨 날짜를 기록했다.(92쪽)

 

 -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 * *

 

어떤 날씨에나, 낮이나 밤 어떤 시간에나 나는 시간의 홈을 활용하고 그 순간을 내 지팡이86에도 표시해두고 싶었다. 달리 말하면,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만나는 점,87 요컨대 현재의 순간에 서고 싶었고, 현재라는 출발선에 발끝을 대고 서고 싶었다. (52쪽)


주석

86. 소로는 측량하기 위해 눈금이 새겨진 막대를 갖고 다녔지만, 여기에서는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를 빗댄 표현이다. 크루소는 나무 기둥에 눈금을 새겨 시간을 기록했다. 소로는 일기에서도 "로빈슨 크루소가 막대기에 매일 표식을 했듯이, 우리는 매일 우리의 품성에 눈금을 매겨야 한다"(일기 1:220)라고 썼다. 소로는 자급자족하며 독립된 삶을 살았던 크루소에게 매력을 느꼈던지 「커타딘 산」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거듭 크루소에 대해 언급했다.

87. 토머스 모어(Thomas Moore, 1779-1852)가 동양의 화려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삼아 쓴 이야기체 시 「랄라 루크」에서 "과거와 미래-두 영원! / 두 끝없는 바다 사이의 이 좁은 지협"을 빗댄 표현으로 여겨진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 중에서

 

 

 * * *

 

내 이성이 의기소침해져 있던 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처한 상황을 그보다 더 나쁜 상황과 구분하고, 내 불운한 상황을 그나마 다행스러운 상황과 견주기 시작했다. 나는 이 두 가지 상황, 즉 내가 겪은 비참한 불운과 내게 기쁨을 준 위안을 부기 장부의 차변과 대변처럼 매우 공평하게 열거해 보았다.

 

모든 걸 고려하면 이 장부는 나와 같은 비참한 처지는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명서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런 내 처지에도 <부정적인> 면과 감사해야 하는 <긍정적인> 면이 모두 들어 있었다. 그러니 내 사례가 세상의 온갖 상황 중 가장 비참한 상황을 경험한 데서 나온 지침으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늘 우리에게 뭔가 위안을 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지침, 그리고 행운과 불운 양쪽을 차변과 대변으로 나누어 설명해 놓은 회계 장부가 있다면 가급적 행운을 기록한 대변 쪽에 마음을 기울이라는 지침 말이다. (94∼95쪽)

 

 -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나의 생각)

제임스 조이스가 『로빈슨 크루소』에 대해서 말한 '특징'이 작품 곳곳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의 말대로 '그에게는 남성다운 독립심, 무의식적인 잔인성, 불요불굴의 집요함, 느리지만 효율적인 지성, 성적 무감각증, 계산적인 과묵함 등 전적으로 앵글로-색슨족 특유의 기상이 넘쳐난다.'

 

 * * *

 

인간의 감정이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혹은 알 수 없는 다채롭고 은밀한 샘물들에 의해서 얼마나 급하게 이리저리 떠밀려 내려가는가! 오늘 우리는 내일이면 우리가 증오하게 될 것을 사랑한다. 오늘 우리는 내일이면 우리가 회피하게 될 것을 찾아 나선다. 오늘 우리는 내일이면 우리가 두려워하게 될 것, 아니 그 두려움으로 몸조차 벌벌 떨게 될 것을 갈망한다. 바로 이 사실이 발자국 사건 당시의 나를 통해 상상 가능한 가장 생생한 방식으로 입증되었다. 내게는 인간 사회로부터 추방된 것 같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과 절연되어 내가 무언의 삶이라고 부르던 삶을 살도록 저주받았다는 생각, 끝도 없는 바다에 둘러싸여 외롭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유일한 걱정이었다. 나는, 하느님께서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 만한 가치가 없는 놈, 다른 사람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놈이라고 생각하시는 사람과 같았다. 그러니 그런 내가 나와 같은 종인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나 매한가지이든지, 아니면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최고의 축복인 구원 다음으로 위대한 축복처럼 여겨질 일이었다. 그런데, 말하자면 바로 그런 내가 사람을 보게 될지 모른다는 바로 그 두려움 때문에 지금 몸을 벌벌 떨고 있는 것이고, 섬에 사람이 발을 내디뎠을지도 모른다는 그림자처럼 희미한 가능성과 무언의 흔적 때문에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꺼져 버릴 것 같은 괴로움에 떨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것이 들쭉날쭉 고르지 못한 인간 삶의 상황인 것이다. 이 생각은 이후 발자국 사건으로 인한 최초의 충격에서 조금 회복되고 난 후에도 내게 많은 상념을 제공해 주었다.(214쪽)

 

 -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 * *

 

아아, 사람이란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되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이성이 제공하는 해결 수단마저 박탈해 버린다. (……)

 

이런 것들이, 집으로 돌아온 첫날 밤 온통 새로운 걱정 근심으로 가득 찬 내 머릿속 상념의 주제였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앞서 말한 것처럼 온통 침울한 망상들로 가득 찼다. 이처럼, 눈앞에 뻔히 존재하는 위험에 대한 가상의 공포감이 실제 위험 자체보다 천배는 더 무시무시한 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걱정하는 불운한 재난보다 불안감이라는 부담 자체가 훨씬 더 괴롭다는 것을 잘 안다.(218쪽)

 

 -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 * *

 

"불행으로 겪는 고통은 상상한 고통보다 덜 느껴진다"(퀸틸리아누스)고 한 말은 옛날의 어질고 사리에 밝은 한 작가에게서 실제로 나온 말이다.(1170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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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②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괴테도 있다. 그는 물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뿐만 아니라 『파우스트』를 쓴,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바로 그 독일 시인이 맞다. 결코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심지어 그 소설에서는 작가 자신조차도 등장 인물로 느닷없이 불쑥 나타나 '소설 속 가공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 장면들이 너무나 천연덕스러워 도무지 소설인지 실제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어쨌든 '소설 속의 화자'인 그(쿤데라 선생님)는 살아생전에 활동했던 괴테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 괴테까지 소설 속에 등장시킨다. 그 가운데 내게 정말 인상적인 대목은 바로 '죽은 괴테'가 '죽은 헤밍웨이'와 나누는 대화였다.

 

헤밍웨이가 문득 부드럽고 너그러운 표정으로 그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물었다. "한데 요한, 당신은 이제 사후 나이가 몇 살이나 되셨죠?"

 

"백쉰여섯 살입니다." 괴테가 약간 부끄러워하면서 대답했다.

 

"그런데도 아직 죽는 법을 배우지 못했나요?"

 

그 환상적인 소설을 읽으며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떠올렸었다. '불멸'에 대해서, 그리고 '불멸'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몸짓들'에 대해서...

 

괴테가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위대한 인물들을 만났는지는 내가 알 도리가 없다. 이 소설은 그런 부스러기같은 일들에 대해서는 조금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오직 '불멸'과 관계된 이야기에만 집중된다.

 

이 '불멸의 시인'에게 아주 뜻깊은 날은 언제였던가? 바로 1808년 10월 2일이었다. 그날에 그는 '불멸의 전략가'인 나폴레옹을 만났던 것이다. 그 둘의 만남이 얼마나 인상깊었는지에 대해서는 니체조차도 놀랐을 정도였다. 그 독일 철학자는 자신의 불멸의 작품인 『선악의 저편』에서 이 두 사람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는 괴테를 만났을 때 나폴레옹의 놀라움을 깊이 있게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좋다 : 이것은 수세기 동안 '독일 정신'이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한 인간이 있다!" ㅡ 나폴레옹의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 : "이 사람은 실로 남자가 아닌가! 나는 오직 독일인을 만나리라고 기대했을 뿐인데!"(14)

 

원저 편집자 주

(14) Goethe, Unterredung mit Napoleon, 1808(1808년 10월 2일자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가 나를 주목하며 바라보았을 때, 그는 '여기에 한 인간이 있구나'라고 말했다. 나는 몸을 굽혀 인사했다"). Annalen oder Tag- und Jahres-Hefte von 1749 bis 1832.

 

 - 니체, 『선악의 저편』<제6장 우리 학자들> 중에서

 

다시 쿤데라의 소설 속으로 되돌아 오자. 그 소설 속에서도 '괴테'는 '나폴레옹'과 만난다. 왜 아니 그랬겠는가. 물론 쿤데라가 포커스를 맞춘 날도 1808년 10월 2일이다. (참고로,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니체의 '영원회귀'를 화두로 삼을 만큼 그 철학자를 깊이 탐구한 작가다. 『배신당한 유언들』에 그런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다.)

 

쿤데라의 소설 속 문장은 이렇다.

 

나폴레옹은 정말 프랑스인다웠다. 수많은 죽음에도 만족하지 못했고, 거기에다 작가들의 예찬까지 받고자 한 걸 보면 말이다. 그는 자신의 문화 고문에게, 오늘날 독일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높은 권위를 행사하는 이가 누구인지 물었다. 고문은 첫 번째 인물로 괴테를 꼽았다. 괴테! 나폴레옹은 이마를 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저자! 이집트 원정 중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사관들이 그 책에 깊이 빠졌음을 확인했더랬다.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자신이 잘 알았기에, 그는 열화 같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는 그런 감상적인 소설 나부랭이나 읽는다며 사관들을 맹비난하면서, 앞으로는 어떤 소설도 읽지 못하게 했다. 어떤 소설도 말이다. 어째서 훨씬 더 유익한 역사물을 읽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나 이번만큼은, 괴테가 누구인지 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워 나폴레옹은 그를 초청하기로 결심한다. 고문의 말에 따르면, 괴테가 특히 극작가로 유명하다고 하니 그는 더한층 기쁜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소설과는 달리, 연극은 전쟁을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나폴레옹이 매우 좋아하는 장르였다. 그 자신이 위대한 전쟁의 창작자요, 게다가 적수를 찾아볼 수 없는 연출가였던 만큼, 내심 그는 자신이 소포클레스나 셰익스피어보다도 더 위대한,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비극 시인임을 굳게 믿었다.

 

나폴레옹이 얼마나 '자신'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여겼던지는 수많은 일화가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 나 또한 오래 전에 이집트에 갔을 때 '나폴레옹이 남긴 흔적'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는 룩소르 대신전 앞에 양쪽으로 웅장하게 서 있던 오벨리스크 가운데 하나를 '통째로 뽑아' 프랑스로 옮겨 갔던 것이다.(지금 콩코드 광장에 서 있는 바로 그 오벨리스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카르낙 대신전의 웅장한 석벽을 바라보면서 또다른 놀라운 생각을 떠올렸다. 그 드높은 석벽을 바라볼 때 받았던 깊은 감동과 함께, 어디선가 밀려 오는 까닭모를 분노와 경쟁심 때문에 결국 그는 애꿎은 병사들을 닥달해서 '흙으로 만든 벽돌'로라도 그만큼 높이 쌓아올리도록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 룩소르 신전 입구. 짝을 이뤘던 또 하나의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이 프랑스 콩코드 광장으로 가져갔다.

 


 - 16만평 규모의 카르낙 신전 입구의 거대한 석벽. 나폴레옹이 거기에 덧대 쌓았던 흙벽돌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카르낙 대신전은 무려 2000년에 걸쳐 계속 증축되어 온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다.

특히 134개나 되는 거대한 돌기둥들은 보는 이들을 압도할 만큼 웅장하다.

 

 

여기서 잠시 한 가지 이야기만 짚고 넘어가자.『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집트의 놀라운 건축물들에 대해 뭐라고 말했던가. '제발 돌들은 제자리에 놓아두라'고 말했다. 절대권력을 움켜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살아서 누린 영광으로도 부족해서, 죽은 뒤에라도 자신의 '불멸'을 위해, 혹은 '부활'을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바로 피라미드와 대신전들이 아니고 무엇이더란 말인가. 그가 룩소르 대신전에서 뽑아낸 거대한 돌기둥을 멀리 프랑스의 콩코드 광장까지 힙겹게 끌고 가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봤더라면 뭐라고 일갈했을지 궁금하다.

 

내 눈앞에는 아직도 천신만고끝에 오벨리스크를 전함에 실어 마침내 이집트의 나일강에 띄웠을 때 나폴레옹이 떠올렸을 '만면의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그만 이쯤에서 다시 쿤데라의 소설『불멸』로 되돌아 오자.

 

초청장을 받았을 때, 괴테는 (자신이 실레테임은 꿈에도 모른 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금방 깨달았다. 그는 육십 대에 이르러 있었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고 죽음과 더불어 불멸 또한 가까이 다가왔으므로 (이미 말했듯이 죽음과 불멸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보다도,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로렐과 하디보다도 더 아름다운, 분리할 수 없는 한 쌍의 커플을 이룬다.) 괴테로서는 불멸자의 초청을 가벼이 여길 수가 없었다. 자기 작품의 절정이라 할 『색채론』집필 때문에 몹시 바빴지만, 그는 원고를 팽개친 채 에르푸르트로 떠났고, 거기에서 1808년 10월 2일, 불멸의 시인과 불멸의 전략가의 잊을 수 없는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쯤에서 내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쿤데라 선생님의 소설 속 문장들이 기어코 나를 붙잡아 이끌며 이야기를 여기서 조금 더 밀어나가 보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그 소설가는 '괴테와 나폴레옹이 만나는 장면'을 아주 실감나게 묘사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기어코 나로서는 결코 잊지 못하는 놀라운 '물건' 하나까지도 불쑥 내 앞에 내밀었기 때문이다.(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다시 소설로 들어가 보자.

 

분주한 유령 사진사들을 대동하고서, 괴테는 나폴레옹 부관의 안내에 따라 넓은 층계를 오른다. 그런 다음 층계를 또 하나 오르고, 여러 복도를 지나 어느 거대한 홀로 향하는데, 그 홀 깊숙한 곳에서 나폴레옹이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그의 주위에는 제복 입은 사내들이 서성이며 여러 가지 보고를 올리고, 그는 계속 뭔가를 씹으며 그들의 보고에 대답한다. 잠시 후 부관이 그에게, 한쪽 편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괴테를 가리켜 보인다. 나폴레옹이 눈을 치뜨더니 오른손을 상의 안쪽으로 밀어 넣어 손바닥을 위장에 갖다 붙인다. 사진사들에게 에워싸일 때, 그가 버릇처럼 하는 몸짓이다. 그는 입에 든 음식을 급히 삼키고서(음식을 씹느라 일그러진 얼굴로 사진 찍히는 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초상화들에 눈독을 들이는 사진사들의 심술을 알기에 말이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한 마디 던진다. "사람이 왔군!"

 

두 사람이 서로 예의를 갖춰 인사를 나눈 다음 장면이 점점 더 내게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나폴레옹이 진지한 어투로 묻는다. "예." 괴테가 가볍게 몸을 숙이며 대답한다. "그럼 자녀들이 있습니까?" "아들놈 하나가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장군 한 명이 나폴레옹에게 다가가 중요한 소식 하나를 전한다. 나폴레옹이 생각에 잠긴다. 상의 속에 넣은 손을 빼내 포크로 고기 한 조각을 찍어 입에 넣고는 (이제 무대는 촬영되지 않는다.) 질겅질겅 씹으며 답한다. 그러고 나서 한참 뒤에야 다시 괴테의 존재를 생각해 낸다. 진지한 관심을 내비치며 그가 묻는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예." 괴테가 몸을 가볍게 숙이며 대답한다. "그럼 자녀들이 있습니까?" "아들놈 하나가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좀 더 심각한 대화가 이어진 다음 장면이 내게는 결정적이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의 얘기는 다시 중단된다. 장군들이 홀로 들어오고, 나폴레옹은 상의에서 손을 빼내 식탁에 앉아 포크로 고기 한 점을 찍더니, 각종 보고들을 들으며 우물우물 씹기 시작한다. 물론 유령 사진사들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괴테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림들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잠시 후, 자기를 안내했던 부관에게 다가가, 알현이 끝났는지 어떤지 물어본다. 부관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나폴레옹의 포크가 일어서고 괴테는 떠난다.

 

나폴레옹의 포크가 일어서다니! 이 대목에 이르자 나는 마침내 '나폴레옹이 들렀던 식당'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식당에서 일어났던 '포크 사건'을 어떤 식으로나마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불멸의 유혹'을 더이상 억제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년 전 여름 베를린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 일행 네 명은 베를린에 도착할 때부터 상상하지도 못할 여러 우여곡절들을 겪었는데 그런 소소한 사건들은 다음날에 일어났던 여러 기막힌 일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베를린에서 이틀째를 맞은 우리는 브란덴부르크 광장을 돌아보고 난 뒤에 '시티 투어 버스'에 올라탔다. 베를린을 아주 편안히 앉아서 둘러볼 수 있는 아주 좋은 투어였다.

 

 - 베를린에 가면 꼭 '시티투어 버스'를 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볼 게 참 많았다.

 

 

 - 독일판 '공동경비구역 JSA'인 '체크포인트 찰리'

 

 

 - 몇 달 전에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스파이 브릿지》 에서도 '체크포인트 찰리'가 나왔었다.

 

버스를 타고 2시간 동안 베를린 시내를 일람한 뒤에 우리는 다음 코스로 카라얀 거리에 있다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주면서 연주하는 콘서트홀을 걸어서 찾아갔다. 거기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 가방을 뒤졌더니, 아뿔싸~ 거기엔 내가 찾는 '카메라 렌즈'가 없었다. 시티투어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다. 잠시 눈앞이 아찔했다. 렌즈를 다시 갖추는 일도 큰 문제였지만 앞으로 남은 일정 동안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할 생각을 하니 더욱 아찔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엔 망원렌즈가 달려 있었고, 없어진 렌즈는 24mm-70mm짜리 표준줌렌즈였다. 차라리 망원렌즈를 잃어버렸다면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텐데, 표준줌렌즈가 없으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온갖 수소문 끝에 우리는 '기적적으로' 그 렌즈를 도로 찾았다. 독일 국민들의 정직성 하나는 정말 끝내줬다!

 

 - 카라얀 거리

 

 

 - 음악가들의 꿈의 무대인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 기적적으로 카메라 렌즈를 다시 찾고 나서 기념촬영(?)을 했다.

   내가 탔던 버스를 찾아 내고 운전기사와 연락을 하는 등 많은 도움을 준 아가씨와 '시티투어 버스 기사'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고 나서 한결 기분이 나아진 우리는 '아주 근사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물론 단체 경비를 쓰는 게 아니었다. 나의 불찰로 일행들에게 크게 '민폐'를 끼쳤으니 내가 한 턱 쏘는 저녁식사였다. 우리가 고심 끝에 찾은 식당이 바로 '나폴레옹이 들렀다는 아주 오래된 식당'이었다.

식당 이름은 추어 레츠텐 인스탄츠(Zur Letzten Instanz)

 

 

 - 식사를 주문하고 나서 잠시 짬을 내어 '나폴레옹이 앉았던 자리'를 사진에 담았다.

    저 자리는 워낙 유명해서 오래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좀처럼 앉을 수 없다고 한다.

 

 

 - 우리가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생선 요리'에 '돼지고기 요리' 두 접시를 곁들였다.

 

와인도 맛있었고 음식맛도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할 만큼 아주 좋았다. 우리가 주문한 요리는 네 사람이 넉넉히 먹고도 남을 만큼 정말 푸짐하고 맛이 좋았다. 그런데 우리가 세 접시나 되는 음식을 한창 정신없이 먹고 있을 때 느닷없이 제법 덩치가 좋은 40대 여종업원이 '돼지고기 요리' 두 접시를 받쳐 들고 우리 앞에 떡하니 다시 나타났다. 우리는 어안이 벙벙하여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부드럽게 손사레를 치며 "No! No!"를 연발했다. 우린 이걸로 충분하고 추가로 음식을 주문한 적이 없다고 부지런히 설명했다. 그런데 여종업원이 우리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눈알을 크게 부라리며 다소 거칠게 항의를 했다. 우리가 분명히 "투 포크"를 더 주문했다는 것이다. 그 주문을 받을 때 자신도 몹시 의심스러워 재차 확인까지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옆 테이블에 있던 손님한테까지도 '당신들도 듣지 않았었느냐'고 거듭 확인까지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우째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싶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린 막무가내로 '결코 두 접시를 더 시킨 적이 없다'고 강하게(?) 버텼다. 마침내 여종업원이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찬 바람을 쌩~ 하고 일으키면서 '두 접시'를 도로 집어들고 홱 돌아서서 주방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에 모든 사단이 그 여종업원의 '거친 몸짓' 하나에 의해 순식간에 밝혀졌다. 그 우락부락하게 표정이 뒤바뀐 몸집 좋고 카리스마 넘치는 여종업원이 느닷없이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포크'가 가득 담긴 '포크 통'을 통째로 우리 테이블 위에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 놓고는 쌩~ 하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맙소사!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투 포크'를 더 주문한 게 확실해졌다. two fork를 달라는 게 그만 two pork가 나왔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우리가 식사를 주문하고 나서 기다리는 동안 세면장으로 손을 씻으러 간 사이, 그러니까 나도 덩달아 일어나 나폴레옹이 앉아서 식사를 했다는 그 유명한 테이블을 구경하러 자리를 잠시 뜬 사이에, 남아 있던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두 개의 포크'를 더 달라고 그 여종업원에게 주문했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때 테이블엔 '포크'가 딸랑 두 개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은 넷인데 말이다.(그 이름난 식당에서 포크를 미리 손님 숫자에 맞춰 식탁 위에 세팅해 놓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모든 게 분명해진 이상 '사죄'하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찬바람을 쌩쌩 휘날리며 우리 테이블을 지나칠 때마다 사나운 눈길을 심심찮게 건네던 그 아주머니를 조용히 불러 '자초지종'을 다 밝히고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 건넸다. 내친 김에 와인도 한 병 더 주문했다. 계산을 치를 땐 "체인지 이즈 유어즈"를 곁들여 팁까지 그녀에게 듬뿍 내밀었다. 그 이후 그 아줌마는 서빙하러 테이블 사이를 누비는 내내 엉덩이를 연신 살랑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투 포크 플리즈~' 사건은 제법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에피소드로 남게 되었다. '그녀의 변화무쌍했던 몸짓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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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_Shin 2016-06-1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크`가 가득 담긴 `포크 통`을 통째로 놓으면서...
사건은 해결된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너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oren 2016-06-16 00:01   좋아요 0 | URL
나폴레옹의 포크 때문에 그 식당과 그 아주머니와 포크 통이 눈앞에 생생하게 다시 떠올랐답니다. 앞으로 어딜 가든지 돼지고기 요리가 나오는 음식점에서는 결코 `포크`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을 듯싶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