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동안의 유럽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밀란 쿤데라의 소설 몇 권과 그가 쓴 에세이 『배신당한 유언들』을 읽다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까지 단숨에 넘어 왔다. 이 기이한 '초기 소설'을 읽다 보니 문득 예전에 사 두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가 궁금해졌다. 라블레의 소설에 등장하는 '엄청난 리스트'가 혹시 그 책에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과연 그랬다. 그 책에 나오는 수많은 목록들 가운데에서도 '라블레의 리스트'는 단연 독보적인 데가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 책에서 고작 한두 번 인용되는 형편인데, 그는 무려 일곱 차례나 그것도 매번 '엄청나게 길게' 인용되고 있었다.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내노라 하는 '궁극의 리스트'를 올린 작가들을 모두 따돌린 그는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올린 셈인가.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에 자신의 작품을 올린 작가들을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소개하면 이렇다. 세 번 인용됨으로서 단독 2위를 차지한 작가는 이탈로 칼비노였다.(『보이지 않는 도시들』,『운석들』, 『만약 겨울밤에 한 여행자가』) 두 번 인용된 공동 3위는 여러 명이었다. 그들은 윌리엄 셰익스피어(『멕베스』, 『리처드 2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선택의 가능성』,『생일』), 움베르코 에코(『장미의 이름』,『바우돌리노』), 빅토르 위고(『93년』으로 두 번),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거꾸로』로 두 번), 조르주 페렉(『파리의 몇몇 장소에 관한 묘사 시도』,『나는 기억한다』) 등이다. '리스트'에 일가견이 있는 숱한 나머지 작가들은 에코로부터 단 한 번만 간택되는데 그쳤다. 그 작가들을 오로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괴테, 단테, 베르길리우스, 보르헤스, 세르반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위고, 조이스, 마크 트웨인, 마르셀 푸르스트, 헤시오도스, 호메로스...

 

어쨌든 모두 대단한 작가들이고, 그 작품 속에 등장하는 리스트들도 일일이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대충만 살펴보더라도 하나같이 놀라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런 리스트를 발굴해 낸 움베르토 에코 또한 대단한 인물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그가 『궁극의 리스트』라는 책을 완성하기 위해 과연 얼마나 많은 '리스트'와 '작품'과 '작가들'을 자신의 책에서 마침내 배제했을 것인가가 더욱 궁금하다!)

 

나는 그 책에 담긴 '빽빽한 목록'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책은 차라리 '백과 사전'이나 '사전'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그 책들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생각은 전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 책 속에 담긴 멋진 그림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데 한동안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현기증 나는 목록>, <혼돈스러운 열거>, <신기한 것들의 목록>, <정상적이지 않은 목록> 보다는 어쨌든 그 책에 담긴 놀라운 그림들이 훨씬 더 보기 좋았고 재미도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듣도 보도 못한 작가의 작품이 내 눈에 번쩍 띄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에 데시무스 아우소니우스의 『모젤 강』이 인용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용인 즉슨 그 강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온갖 물고기들이 산다'는 내용이었다. 아, 나는 그 강에 가서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구경해 보지 못했는데, 그 강에 그렇게 많은 고기들이 살고 있었더란 말인가 싶다가도, 아, 그 강변에 자라나는 포도나무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때 맛보았던 그 '모젤 와인'은 또 얼마나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던가, 하는 생각들이 마구 떠올랐다. 또한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또 얼마나 많은 포도주를 마셨던가도 떠오르고...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대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약간의 시도'는 해 볼 수 있지 싶다.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표현하기 위해 애쓴 여러 흔적들도 우리는 이미 조금씩 엿보아 왔으니 말이다.

 

형언불가의 토포스, 곧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수사법은 호메로스의 작품 속에서 여러 번 나온다. 예를 들어 『오디세이아』제4권 240행(<물론 나는 참을성이 많은 오디세우스가 겪은 전투들을 모두 다 말하거나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어요 ……>)이 그렇고 『오디세이아』11권에 나오는, 오디세우스가 하데스에서 만난 죽은 사람들의 목록은 말할 것도 없다. 베르길리우스는 이 부분을 모델로 삼아 아이네이아스의 지하 세계 여행을 묘사했다(『아이네이아스』6권, 264행).

 

우리는 고대 문학사에서 헤시오도스부터 핀다로스까지, 이어서 라틴 문학과 베르길리우스까지,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수사법이 나타난 예를 거의 무한하게 계속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농경시Georgica』(2장 157행)에서 온갖 포도와 덩굴을 일일이 열거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보라! 그 종류는 얼마나 많고 그 이름들은 또 무엇인가 / 말할 수도 없거니와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 그것을 알기 위해 열거하는 자는 또한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열거해야 하리 / 리비아 평원에서 / 제피르에 굴러가는 모래알은 얼마나 많은가(……) / 이오니아 해에서 뭍으로 굴러 오는 / 파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중략)

 

그렇지만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을 만큼 혀와 입이 충분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것(그러고 나서도 그것을 말하지 않은 채,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표현을 다양하게 하려고 애쓰는 것)과,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처럼, 또는 『모젤 강La Mosella』에서 물고기들을 열거했던 아우소니우스처럼, 불완전하게나마 표본을 사용해 어떤 식으로든 열거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다르다.

 

 - 움베르토 에코, 『궁극의 리스트』, <4.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중에서

 

그렇다. 내가 모젤 강을 찾아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우리 일행은 거기에 닿기 전까지 적잖은 도시들을 거쳤다. 우리들이 들렀던 도시들의 '목록'을 나열하면 이렇다. 뭰헨, 뉘른베르크,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베를린, 함부르크, 암스테르담, 안트페르펜, 브뤼셀, 브뤼헤 등) 마침내 우리가 그곳에 이르렀을 때 내가 눈으로 보고 혀로 맛보았던 '모젤 강변의 포도나무'와 '모젤 와인' 또한 마찬가지다.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범위 내에서 나는 그걸 '사진'으로나마 여기에 다시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이 얼마나 편리한 방식인가! 하마터면 까마득히 묻힐 뻔했던 2년 전 사진들이 이렇게 해서 다시 빛을 보게 되다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 * *

 

 - 나를 순식간에 모젤 강으로 떠나게 만든 바로 그 페이지. 세상에, 저런 작가의 저런 책도 있었다니~

 

 

 - 지금 문득 네이버로 찾아 보니 이 분은 마침 '프랑스 보르도 출신'으로 로마의 집정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당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고, 로마 제정 말기의 시인이었으며 라틴문학 쇠퇴기인 4세기에 활약했다고.

 

 

 -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듯하다. 우리 일행은 이날 아침 일찍 브뤼셀을 떠나 다시 독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여행중 아침마다 차에 오르면 주로 듣던 음악이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가운데 '아침의 기분'이었는데,

   이날 아침은 그 음악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마침 인적이 없는 한적한 숲을 만나 차를 세우고 그 기분을 만끽했다.

 

 

 - 산책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으나 벨기에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이 너무나 아름다워 다시 차를 세웠다.

    때는 바야흐로 7월 초였고, 온 들판이 라벤더 꽃향기로 가득했다. 정말 여유롭고 한적한 여름 아침이다.

    지금 이곳은 아마도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경계 어드메쯤 될 것 같다. 어쨌든 '모젤 강'으로 가는 중이다.

 

 

 - 30분, 아니면 40분쯤? 실컷 '여유'를 부리며 마음껏 쉬고 난 뒤 다시금 차에 올라 길을 내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네비게이션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라고 알려 준다. 아직은 룩셈부르크인 모양이다. 

 

 

 - 누렇게 익은 '밀밭' 사이로 자전거를 매단 차량들이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우리와 함께.

 

 

 - 밀밭이 끝도 없이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빵이 주식(主食)이니 밀밭도 어마어마하게 넓어야겠지 싶었다.

 

 

 - 그냥 아무데서나 잠시 차에서 내려서 또 쉬고 싶어 정차했더니, 밀밭이 펼쳐진 풍광이 참으로 이국적이다.

 

 

 - 시간이 허락한다면 저 밀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어디론가 계속 더 가 보고도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갈 길'이 먼 나그네 신세였다. 더군다나 예정에도 전혀 없는 아주 낯선 데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 드디어 룩셈부르크 국경과 아주 가까운 '모젤 강변 최대 도시'인 '트리어 시내'에 들어왔다.

    평일 오후인데 사람들이 한가롭게 벤취에서 그림이나(?) 그리고 앉아 있다. 참 기분 좋은 느긋한 오후다.

 

 

 - 건물 이름도 모른다. 그저 트리어 시내에서도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중심가 광장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뿐.

 

 

 - 관광객도 많고 건물도 많으니 '점심'은 아무 데서나 편하게 먹을 수 있겠거니 싶었다.

    아뿔사! 어렵사리 찾은 '스시집'과 '중국집' 모두 닫혔다. 하필 점심 시간이 지나 '잠시 휴업중'이었다.

 

 

 -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꼬마녀석들도 오늘은 '그림'을 그리는 날이었던 모양이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보란 듯이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내보이며 포즈를 취해 준다. 귀여운 녀석들~

 

 

 - 생각보다 아주 수월하게 오늘밤 묵을 호텔을 찾았다. 위치와 시설, 서비스와 가격 모두 대만족이었다.

 

 

 - 호텔 레스토랑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 호텔방에서 컵라면을 끓이는 동안 창밖을 내다보니 화창한 여름 오후다.

 

 

 - 컵라면에 햇반까지 말아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에 발걸음도 가볍게 트리어 시내 관광에 나섰다.

    여기가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목욕'했다는 '황제의 목욕탕'이다. 트리어를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

 

 

 - 황제의 목욕탕 주위로 관광객들이 제법 몰려 들었다.

    이 친구들은 우리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대뜸 포즈부터 취한다. 몹시 기분이 좋은 듯하다.

 

 

 - 목욕탕 바로 옆에 깔끔한 호텔들이 죽 늘어서 있다. 가운데쯤 있는 호텔이 방금 우리가 짐을 푼 호텔이다.

 

 

 - 트리어는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난 도시로도 유명하지만 '트리어 대학'도 유럽에서 알아주는 대학이라고 한다.

 

 

 - 저녁때 '와인 한 잔' 할 때 '안주'로 삼기 위해 미리 가게에 들렀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맛이 정말 끝내줬다.

 

 

 - 트리어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 분위기가 무척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 트리어 중심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이 그림같다. 하늘도 맑고. 햇살이 조금 따갑다.

 

 

 - 트리어는 휴양도시로도 유명하다고는 하나 관광객보다는 젊은이들이 훨씬 더 눈에 띈다.

 

 

 - 뜨거운 여름 햇살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자 짙은 그늘이 생긴다. 돌아다니기가 한결 수월하다.

 

 

 - 로마 목욕탕에서 광장까지 쭉 뻗은 길이 '트리어 시내 메인 도로'인 셈이었다.

 

 

 - 시내를 벗어나 어느새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우리는 '모젤 강변'을 산책했다.

    그토록 유명하다는 '모젤 강'이지만 아직은 그다지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 모젤 강변에서 벗어나 다시 호텔로 되돌아가는 길에 '광장'을 다시금 지나쳤다.

    벌써 밤 아홉시가 넘어서 그런지 인적이 몹시 드물다. 돌로 만든 광장 바닥이 조명에 반들거린다.

 

 

 - 트리어는 생각보다 훨씬 외진 곳인가 보다. 아직은 초저녁인 셈인데 인적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 목욕탕 주변에도 인적이 없긴 마찬가지다. 우리도 몹시 배가 고프다. 빨리 호텔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

 

 

 - 우리가 묵을 호텔 앞도 고요하기만 하다. 사정이 이러니 '호텔방 예약'이 그토록 쉬웠던 모양이다.

 

 

 - 드디어 '모젤 와인'을 맛 볼 시간이다. 다시금 침이 꼴깍 넘어간다.

 

 

 - 이날밤 마신 와인이 내가 여태껏 마셔 본 중에 최고였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맛이 좋았다.

    온갖 과일 향기가 어쩌면 그토록 그윽하고 향기로울 수 있는지, 모두가 기막힌 와인 맛에 뿅~ 갔다.

 

 

 -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은 무턱대고 '모젤 강변'을 따라 차를 몰았다.

    가다 보면 어딘가에선 '멋진 와이너리'도 떡하니 버티며 우릴 기다리겠지 하는 맘뿐이었다.

 

 

 

 - 길이가 무려 544km에 이른다는 모젤 강이다. 여기는 독일과 룩셈부르크 국경지대를 흐르는 유역이다.

 

 

 

 

 - 이 정도면 분명 '와이너리'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제법 큰 마을로 들어섰는데도 와이너리는 보이지 않는다.

   포도농사에 바쁜 농부를 만났는데, 이 분을 붙잡고 10분 이상을 물었는데도 도대체 말이 통하질 않았다.

   우리는 독일어를 할 줄 몰랐고, 이 분은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와이너리'를 모르겠단다.

   (네이버에 물어 보니 Winery를 독일어로는 Anbaugebiet(안바우게비이트)로 표현한다고. 그랬구나...쩝.)

 

 

 - 도대체 '와이너리'는 어디에 있는 건가? 상심한 우리는 잠시 모젤 강변으로 나와 휴식을 취했다.

    검색도 좀 해보고 이리저리 궁리도 좀 해봤지만 별달리 뾰족한 수는 없었다.

 

 

 - 이렇게 큰 마을에 '와이너리'가 한 곳도 없다니 말이 되나 싶어서 하릴없이 '안내간판'만 보다가 결국 돌아섰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마을은 해마다 '모젤 와인 축제'가 벌어지는 제법 유명한 동네였다.)

 

 

 - 마을을 벗어나자 '높은 언덕'에 전망 좋은 휴식처가 있었다. 아주 가끔씩 관광객도 잠시 들렀다 지나쳤다.

 

 

 - 여기도 마치 하회마을처럼 물이 휘감아 돌아가는 곳이 있었다. 강 건너 마을은 Trittenheim이라는 곳이었다.

 

 

 - 모젤 강 주변이 온통 포도밭으로 뒤덮여 있었다. 강을 따라 움직이는 배들도 대부분 '와인 산업용'이지 싶었다. 

 

 

 - 결국 우리는 '와이너리'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고, '모젤 와인'도 더는 맛보지 못하고 여길 떠났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하이델베르크까지 가자면 아직도 길이 멀었다. 배도 고팠다.

 

 

 -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도 포도밭만큼은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언덕마다 오로지 포도, 포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 포도밭만 실컷 구경하고 가는구나. 우리에겐 정작 당장이라도 마실 수 있는 '포도주'가 절실할 뿐인데 말이다.

 

 

 - 우린 그렇게 '모젤 강'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맛'을 언제 다시 맛볼지도 모른 채로.

    더군다나 이 강에 그렇게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이 산다는 '고기'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새까맣게 모른 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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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슬램 2016-06-1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사진도 주인장님을 닮아서 읽고 보기에 참! 좋습니다^^
해박한 지식과 겸손한 글 잘읽고 갑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oren 2016-06-12 00:56   좋아요 0 | URL
그랜드슬램 님 반갑습니다.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모젤 강`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진을 뒤늦게나마 올리게 되는군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느덧 이곳 날씨도 점점 `여름의 기분`을 더 자주 느끼게 해주는군요.
그랜드슬램 님께서도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요~
 

(밑줄긋기)

 

실용적 목록과 시적 목록 교환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예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이나 워싱턴의 의회 도서관 같은 거대한 도서관의 카탈로그이다. 그것들의 목적은 확실히 실용적이지만 그 모든 책 제목을 읽고자 하고, 그것들을 무슨 호칭 기도처럼 중얼거리고자 하는 애서가라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 호메로스가 전사들을 마주했을 때의 그 상황과 똑같음을 발견할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상황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테오프라스토스 전기』, 42∼50)가 끌어낸 테오프라스토스의 저작 카탈로그를 읽을 때 일어난다. 여기서 (그 대부분이 사라진) 책들의 제목은 우리에게 하나의 목록이라기보다 주문(呪文)처럼 다가온다. 라블레가 생 빅토르 수도원에 보관된 장서 카탈로그를 지어 낼 때 생각했던 것도 아마 바로 이런 식의 끝없는 목록이었을 것이다. 명백하게 실용적인 라블레의 목록은 그럼에도 시적이다. 왜냐하면 그 책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우리에게 동물적 야만의 무한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기이한 책 제목들인지 아니면 그 목록의 크기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 목록에 대한 취향은 세르반테스부터 위스망스, 칼비노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을 매혹시켜 왔다. 더욱이 애서가들이 고서점의 카탈로그(확실히 실용적 목록으로 만들어진)를 무릉도원이나 욕망의 땅에 대한 황홀한 묘사처럼 읽는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쥘 베른의 독자들이 고요한 심해 탐험이나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과의 조우에서 즐거움을 얻듯이, 그들은 책 목록에서 즐거움을 얻는다.(376∼377쪽)

 

 - 움베르토 에고, 『궁극의 리스트』, <20. 실용적 목록과 시적 목록의 교환> 중에서

 

 * * *

 

이 일이 있고 나서 팡타그뤼엘은 일행들과 파리로 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러 밖으로 나왔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파리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더할 나위 없는 바보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단히 경탄하며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아버지가 자기 암말의 목에 달아주려고 노트르담 성당의 종을 가져갔던 것처럼, 궁성을 다른 곳, 어떤 외진 지역으로 옮기지나 않을까 하는 큰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그는 얼마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일곱 가지 교양과목 모두를 열심히 공부한 다음 파리가 살기에는 좋지만 죽기에는 좋은 도시가 아니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생 지노상 묘지에 사는 거지들이 죽은 사람들의 뼈를 태워 엉덩이를 덥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특히 생 빅토르 도서관에서 찾은 몇몇 책들 때문에 그곳이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구원의 막대,

법률의 앞주머니,

교회법의 실내화,

악덕의 석류,

신학의 실꾸러미,

튀르뤼팽이 쓴 설교자들의 깃털 먼지떨이,

용자(勇者)들의 코끼리 불알,

주교들의 사리풀,

오르벨리스의 주석이 첨부된 마르모트레의 비비(狒)와 원숭이,

화류계 여성들의 옷차림에 대한 파리 대학의 시행령,

해산 중인 푸아시의 수녀에게 나타난 성녀 제르트뤼드,

오르투이누스 선생 저, 모임에서 정직하게 방귀 뀌는 법,

고행을 행하는 겨자 장수,

가죽 각반, 일명 인내의 장화,

기예의 소굴,

도미니크파의 실베스트르 드 프리에리오 저, 수프의 사용법과 정직한 음주법,

법정에서 기만당한 자,

공증인들의 속임수,

결혼의 보따리,

명상의 도가니,

법률의 객설,

포도주의 자극,

치즈의 박차,

사들 때 벗기는 솔,

타르타레 저, 대변 배설법,

로마의 축제행렬,

브리코 저, 수프의 다양성,

규율의 밑바닥,

겸손의 신발,

건전한 배를 가진 배불뚝이,

고결함의 냄비,

고해사들의 장애,

사제들의 과자,

바바르드리 관구의 뤼뱅 신부님 저, 비계 식사법, 3권,

대리석 박사 파스키노 저, 교회가 금지한 교황절 기간에 아티초크를 곁들인 염소 고기를 먹는 법,

사기단이 공연한 등장인물 여섯이 나오는 신비극, 성스러운 십자가의 제조,

로마 순례자들의 안경,

마요리스 저, 순대 제조법,

고위 성직자들의 풍적(風笛),

베다 저, 내장 요리의 탁월함,

현물 대납 제도 개혁에 대한 변호사들의 청원,

소송대리인들의 소동,

주석을 첨부한, 비계를 넣은 완두콩,

면죄부의 잡다한 이점,

쌍방 법률에 정통한 필로 라클드니에 박사 저, 아쿠르시오 주석의 어리석음에 대한 처방, 명백하고 확실한 재론,

자유사수 바뇰레의 전술,

갱도병 테보가 등장하는 병법론,

숫말과 암말의 박피법과 효용성, 저자 우리의 스승 케베퀴 선생,

하급 성직자들의 소박한 음식,

우리의 스승 로스톡의 암노새 다리(Rostocostojambedanesse) 저, 보리옹 선생의 각주가 첨부된, 식사 후 겨자의 용법, 14권,

성직 재판관들이 제공하는 선물,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10주 동안 논의된 미묘한 문제, 허공 속에서 포효하는 키메라가 2차적 의도를 먹을 수 있는가?

변호사들의 탐욕,

스코투스의 실수,

추기경들의 박쥐 날개 모양의 관(冠),

알베리쿠스 드 로사타 선생 저, 박차 제거법, 11 곱하기 10장,

상동, 두발의 군사적 점령, 3권,

앙투안 드 레브의 브라질 상륙,

마르포리우스, 학사 겸 로마 장학생 저, 추기경들의 암노새들을 세척하고 염색하는 방법,

교황의 암노새는 기분 내키는 때만 먹는다고 주장한 자들을 반박한 상기인의 변론,

우리의 스승 몽상가 선생이 제공한 '실비우스 트리크비유'라는 서두로 시작되는 예언,

부다랭 주교 저, 젖짜기의 효용성, 9일 기도 9회와 3년간 한시적인 교황의 윤허가 부여됨,

숫처녀들의 교태,

과부들의 껍질 까진 엉덩이,

수도사들의 두건,

셀레스틴회 사제들의 형식적인 기도,

탁발 수도회의 통행세 징수,

천민들의 이 부딪치는 소리,

신학자들의 함정,

문예학사들의 나팔 구멍,

첫 삭발례를 받은 오캄의 문하생들,

프리프소스 선생 저, 교회법에 따른 기도시간에 관한 자세한 연구, 40권,

작자 불명의 동업자 조합의 전복,

대식가들의 공동(空洞),

이니고 형제가 장엄하게 찬송한 에스파냐인들의 악취,

빈민들의 구충제,

이탈리아 식 소송사건의 융통성, 저자 브륄페르 선생,

레몽 륄, 군주들의 오락,

저자 이단 심판관 야콥 호히슈트라텐 선생, 위선의 보지,

쇼큐이용 저, 현재와 미래의 신학박사들에 관한 음주론, 매우 우아한 책, 8권,

레기스 편저, 교황의 교서집필 담당자, 필경사,ㅡ 서기, 서신집필 담당자, 문서보관 담당자와 비서관들,

통풍 환자와 매독 환자들을 위한 항구적 연감,

에크 선생 저, 화덕 소제법,

상인들의 끈,

수도원 생활의 안락함,

편협한 신자들의 잡탕 요리,

장난꾸러기 요괴 이야기,

낭비벽이 있는 자들의 빈곤,

종교재판소 판사들의 어리석은 속임수,

재무관들의 삼 부스러기,

궤변론자들의 농담,

성가신 자들의 양면적 의미에 관한 토론(Antipericatametanaparbeugedamphicribrationes merdicantium),

엉터리 시인들의 달팽이,

연금술사들의 실험,

세라티스 형제 저, 연보 모금하는 성직자들의 주사위 놀이,

종교의 속박,

종치기의 막대,

노년의 팔걸이,

귀족의 입마개,

원숭이의 주기도문,

신앙심의 사슬,

사계제일(四季齋日)의 냄비,

정치적 인생의 법모,

은자들의 파리채,

고해신부들의 두건,

방탕한 수도사들의 유희,

루르도 저, 멋쟁이들의 생활과 정직성에 관해서,

뤼폴드 선생 저, 소르본 신학자들의 박사모에 대한 윤리적 해석,

여행자들의 잡동사니,

술꾼 주교들의 물약,

로이힐린의 반대파 쾰른 박사들의 소동,

귀부인들의 방울종,

똥싸개들의 밑이 뚫린 반바지,

피에드비유 형제 저, 정구 경기 조수들의 회전,

진정한 용기의 군화,

장난꾸러기 요정과 꼬마 악마들의 가장 무도회,

제르송 저, 교회의 교황 폐위권,

작위와 학위 소지자들의 썰매,

요한 디트브로디우스 저, 파문의 가혹함, 표제가 없는 책,

귄골푸스 저, 남녀 악마 소환법,

영속적 기도의 잡탕 요리,

이단자들의 무어 식 춤,

가에탕의 목발,

지품(智品) 천사 박사 무이유그룅저, 위선자들의 기원과 거짓 신앙가들의 의식에 관해서, 7권,

기름때 묻은 번쩍이는 성무일과서, 69권,

다섯 탁발 수도회의 뚱뚱한 배,

앙겔루스의 『전서』에 삽입된 『황갈색 장화』에서 발췌한 부랑자들의 모피,

양심 문제의 몽상가,

재판장들의 뚱뚱한 배,

신부들의 당나귀 자지,

쿠튀리에 저, 저자를 사기꾼이라고 부른 자에 대한 반론과 교회가 사기꾼을 벌하지 않는 문제에 관한 논의,

의사들의 변소,

점성술의 굴뚝소제부,

S. C. 저, 관장의 영역,

약제사들의 관장약,

외과적 관장술,

유스티니아누스 저, 위선자 제거법,

영혼의 해독제,

메를랭 코카이 저, 악마의 나라

 

이 책들 중에 몇 권은 이미 인쇄되었고, 나머지는 지금 고상한 도시 튀빙겐에서 인쇄중이다.

(307∼317쪽)

 

일러두기

 - 이탤릭체로 표시된 부분은 원서에서 프랑스어 외의 라틴어를 비롯한 외국어 표기임

 - 위 인용문에 딸린 역자의 방대한 주석(104번∼151번)은 분량상 생략함

 

 - 프랑스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 <제7장 팡타그뤼엘이 어떻게 파리로 갔는가, 그리고 생 빅토르 도서관의 훌륭한 장서에 관해서>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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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알 수 없는 어느날, 팡타그뤼엘은 저녁 식사 후에 동료들과 함께 파리로 가는 길 쪽에 있는 성문을 지나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그 길을 걸어오는 잘생긴 학생을 하나 만나게 되었다.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 팡타그뤼엘은 그 학생에게 물었다. "여보게, 친구. 이 시간에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

 

학생이 그에게 대답했다.

 

"뤼테스라고 사람들이 호칭하는 양육적(養育적)이고, 고명하고, 명성이 자자한 아카데미에서 오는 길입니다.

 

 ㅡ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팡타그뤼엘이 그의 일행 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

 

 ㅡ 그 말은 (그가 대답했다) 파리에서 왔다는 말입니다.

 

 ㅡ 자네는 그러니까 파리에서 오는 길이라는 말이로군. (팡타그뤼엘이 말했다) 자네들 파리의 학생 제군은 무슨 일로 시간을 보내는가?"

 

학생이 대답했다.

 

"우리는 여명과 저녁 무렵에 세카나 강을 관통합니다. 우리는 성도의 사거리와 교차로로 산보를 합니다. 우리는 라티움의 언어를 수집하고, 개연적인 연인의 자격으로 일체지사를 판정하고 형성하고 잉태하는 여성의 염정(艶情)을 얻으려고 애쓴답니다. 석양시 창가(娼家)를 내방하여 베누스Venus의 열락(悅樂)에 도취해서 우리의 남성지물(男性之物)을 친애하는 창기들의 심저(深底)로 침투시킵니다. 그러고는 솔방울, 카스텔, 마들렌, 암노새 같은 평판 좋은 주점에 가서 파슬리에 비계를 끼운 멋진 양견육(羊肩肉)을 식(食)합니다. 그리고 우리 전대에 현금이 별로 없거나 부족한 경우, 그리고 조조된 금속이 부재시에는 각자 자기 몫의 서책(書冊)과 의복을 방기(放棄)하여 저당에 임(臨)하고, 본향(本鄕)에 재(在)하는 가문(家門)의 수호신들로부터 사절의 내왕을 고대합니."

 

이 말을 듣고 팡타그뤼엘이 말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언어란 말인가? 지랄 같으니, 자네는 어떤 이단에 속하는가 보군."

 

"전하, 아닙니다. (학생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극히 자발적으로 약간의 미세한 햇살의 편린이 광채를 발할 때부터 저는 그토록 잘 축조된 교회들 중 한 곳으로 행차하여 그곳에서 아름다운 성수를 몸에 살수(撒水)하고, 우리 조상들의 미사 기도 한 조각을 중얼거리니까요. 그리고는 성무일도(聖務日禱)를 낭음(朗吟)하며 내 영혼에서 전야(全夜)의 오점을 세척하고 정결케 합니다. 저는 올림포스의 거주자 제위를 공경합니다. 저는 지고한 천체의 지배자에게 절대적인 숭배를 헌정합니다. 저는 인근의 우인에게 애모지정(愛慕之情)을 유(有)하고 궐야(厥也)에게 애(愛)를 반려합니다. 저는 십계명을 준수하고 제 가능한 능력의 법위 내에서 촌치도 그 계율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맘몬이 제 전대에는 한 방울도 낙수하지 않았기에 가가호호 걸식하는 극빈자들에게 적선을 분배하는 일을 좀 소홀히 했거나 지체했던 것은 사실지사(事實之事)지요.

 

 ㅡ 이런 지랄, 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 미친놈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이자가 악마의 말을 꾸며내어 마법사처럼 우리를 홀리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 말을 듣고 그의 일행 중 하나가 말했다.

 

"전하, 아마 이 멋쟁이 친구는 파리 사람들의 말을 흉내내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해서 핀다로스 식으로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라틴어의 껍질을 벗기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일상적인 언어 용법을 경멸하기 때문에 자신이 프랑스어에 있어서 위대한 웅변가가 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주석

이탤릭체로 된 부분은 엉터리 라틴어 식 표현을 가리킨다.

 

 -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 <제6장 팡타그뤼엘이 어떻게 프랑스를 엉터리로 말하는 리모주 출신 학생을 만났는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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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질서에 대한 요구는 그 시대 소르본 대학의 학식 높은 박사들을 고무했지만, 이런 풍조를 경멸이라도 하듯 엄청난 목록을 만들어 낸 작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라블레였다. 궁둥이를 닦는 듣도 보도 못한 수많은 방법들이나 남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그 많은 형용사들, 적을 호되게 혼내는 갖가지 방법들, 생 빅토르 수도원에 보관된 쓸모를 알 수 없는 많은 책들, 온갖 뱀의 종류라든가 가르강튀아가 할 줄 아는 수많은 (그리고 그 많은 놀이들을 모두 즐길 그 엄청난 시간을 만들 방법은 오직 신만이 아는) 놀이들을 열거하는 방식에는 이렇다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가르강튀아가 한 놀이를 예로 들면, <네 장 플러시, 다른 무늬 카드 모으기, 패 따오기, 뺏어 먹기, 패 버리기, 피카르디 놀이, 1백 점 내기, 피아노, 불쌍한 년 만들기, 패 맞추기, 10점 넘기기, 31점 내기, 짝패와 연속패 맞추기, 3백 점 내기, 빈털터리 만들기, 운수 보기, 카드 뒤집기, 불평분자, 용병 도박, 오쟁이를 진 서방, 패 가진 사람이 밝히기, 몽땅 따먹기, 왕과 여왕 짝짓기, 같은 패 세 장 모으기, 여론몰이, 몰아주기, 연속패 맞추기, 카드 뒤집기, 타로, 지는 쪽이 이기기, 속여 뺏기, 고문하기, 팽이 돌리기, 주사위 놀이, 으뜸패 모으기, 손가락 수 알아맞히기, 체스, 여우 닭 잡아먹기, 십자 장기, 목말 타기, 제비뽑기, 운수 점치기, 세 주사위 놀이, 놀이판을 사용하는 주사위 놀이, 주사위 이김수 굴리기, 유리한 판 이끌기, 청개구리 놀이, 이탈리아식 주사위 놀이, 트릭트락, 네 팀 주사위 놀이, 주사위판 놀이, 시종들의 주사위 놀이, 도형수, 체커 놀이, 패가망신 놀이, 첫째, 둘째 놀이, 꽂은 칼 가까이 동전 던지기, 판 가까이 열쇠 던지기, 사각판 가까이 동전 던지기, 홀짝, 앞뒤 정하기, 골패 놀이, 노르망디식 골패 놀이, 구슬치기, 감춘 실내화 찾기, 부엉이 놀이, 귀여운 산토끼 놀이, 줄다리기, 공놀이, 까치 놀이, 소뿔 놀이, 사육제의 황소, 올빼미 소리 내기, 시침 떼고 꼬집기, 부리로 쪼아 내쫓기, 당나귀 편자 떼기, 양 몰고 장에 가기, 숨바꼭질, 나는 앉았다, 바보에게 똥가루 던지기, 반장화, 꼬챙이 뽑기, 말썽꾼 내몰기 놀이, 친구, 자루 좀 빌려 주게 놀이, 숫양 불알 놀이, 밀어내기, 마르세유의 무화과 놀이, 곡식단 돌기, 활쏘기, 여우 껍질 벗기기, 썰매 끌기, 다리 걸어 넘어뜨리기, 귀리 팔기, 석탄 조각 불기, 새 짝 찾기, 산 재판관과 죽은 재판관, 불에서 쇠 꺼내기, 가짜 어릿광대, 양 뼈 갖고 놀기, 따리꾼 꼽추, 성자 찾기, 귀 꼬집기, 배나무, 엉덩이 걷어차기, 삼단뛰기, 원 안에서 뛰기, 지팡이로 공을 구멍에 넣기, 둘이 머리와 다리 거꾸로 맞대기, 벽돌 쌓기, 막대기 놀이, 쇠고리 던지기, 실꾸리 놀이, 콧김으로 촛불 끄기, 구주희, 잔디 볼링, 납작한 나무공 놀이, 깃털 달린 나무공 놀이, 로마로 가는 자치기, 똥 던지기, 장난꾸러기 천사, 영국식 공놀이, 깃털 달린 공차기, 등 짚고 넘기, 항아리 깨기, 소원 빌기, 바람개비, 무너지지 않게 꼬챙이 뽑기, 짧은 몽둥이 당기기, 원 그리며 돌기, 술래 눈 가리기, 말뚝 놀이, 술래 뽑기, 고리 찾기, 상대 구슬 몰고 가기, 호두집 무너뜨리기, 돌 튀기기, 구멍에 구슬 넣기, 팽이 돌리기, 앙주식 팽이치기, 수도사 놀이, 천둥 놀이, 깜짝 놀라게 하기, 브르타뉴식 하키, 왔다 갔다 하기, 볼기 치기, 빗자루 타기, 성 코스마 경배, 쇠똥구리, 나뭇잎으로 몸 가리고 습격하기, 사순절이여 안녕, 다리 벌리고 거꾸로 서기, 말타기, 늑대 꼬리, 둘이 거꾸로 잡고 언덕 구르기, 기유맹, 창을 다오 놀이, 그네 타기, 옥수수 단에 숨기, 작은 공 놀이, 파리 때리기, 황소 술래잡기, 옆 사람에게 말 전달하기, 아홉 개의 손 놀이, 미친 놈 술래잡기, 다리 쓰러뜨리기, 고삐 매인 콜랭 놀이, 갈까마귀 놀이, 깃털 달린 공치기, 술래잡기, 지팡이 치기, 스파이 놀이, 두꺼비 놀이, 크리켓, 절굿공이 놀이, 손잡이로 줄 달린 나무공 받기, 여왕 놀이, 몸짓 수수께끼, 둘이 머리와 다리 사이에 물건 숨기기, 백포도주 놀이, 고약한 죽음, 콧잔등 손톱으로 튀기기, 아줌마 모자 빨기, 둘이 손잡고 체치기, 귀리 심기, 식충이, 둘이 마주 잡고 바퀴 만들기, 탈락시키기, 재주넘기, 시소, 농부 놀이, 올빼미 흉내 내기, 박치기 시합, 죽은 짐승 업고 가기, 주먹으로 사닥다리 만들기, 돼지 잡기, 짠 엉덩이, 비둘기가 난다, 몰래 숨기, 불붙은 나뭇단 뛰어 넘기, 보병 놀이, 훼방 놓기, 오래 숨기, 엉덩이에 매달린 동전 주머니, 큰 매 둥지, 선회탑, 엿 먹이기, 잎으로 방귀 소리 내기, 겨자 찧기, 다리 흔들기, 원래대로 되돌아가기, 화살촉 던지기, 등 짚고 뛰어넘기, 갈까마귀, 두루미, 칼로 베기, 콧등 튀기기, 종달새, 손가락으로 튀기기> 등이었다.

 

이것이 곧 목록에 대한 애정에서 쓴, 목록을 위한 목록의 시학, 과잉에 의한 목록의 시작이다.

(249∼250쪽)

 

 - 움베르토 에코, 『궁극의 리스트』, <11. 과잉, 라블레 이후 계속되다> 중에서

 

 * * *

 

그러고는 나른하게 감사기도 한 조각을 웅얼거리고, 신선한 포도주로 손을 씻고, 돼지 다리로 이를 쑤시고, 일행과 즐겁게 한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초록색 놀이판을 펴고 온갖 종류의 카드와 주사위, 놀이용 도구들을 잔뜩 늘어놓았다. 거기서 다음과 같은 놀이를 했다.

 

네 장 플러시,

다른 무늬 카드 모으기,

패 따오기,

뺏어 먹기,

패 버리기,

피카르디 놀이,

1백 점 내기,

피아노,

불쌍한 년 만들기,

패 맞추기,

10점 넘기기,

31점 내기,

짝패와 연속패 맞추기,

3백 점 내기,

빈털터리 만들기,

운수 보기,

카드 뒤집기,

불평분자,

용병 도박,

오쟁이를 진 서방,

패 가진 사람이 밝히기,

몽땅 따먹기,

왕과 여왕 짝짓기,

같은 패 세 장 모으기,

여론몰이,

몰아주기,

연속패 맞추기,

카드 뒤집기,

타로,

지는 쪽이 이기기,

속여 뺏기,

고문하기,

팽이 돌리기,

주사위 놀이,

으뜸패 모으기,

손가락 수 알아맞히기,

체스,

여우 닭 잡아먹기,

십자 장기,

목말 타기,

제비뽑기,

운수 점치기,

세 주사위 놀이,

놀이판을 사용하는 주사위 놀이,

주사위 이김수 굴리기,

유리한 판 이끌기,

청개구리 놀이,

이탈리아식 주사위 놀이, 

트릭트락,

네 팀 주사위 놀이,

주사위판 놀이,

시종들의 주사위 놀이,

도형수,

체커 놀이,

패가망신,

첫째, 둘째,

꽂은 칼 가까이 동전 던지기,

판 가까이 열쇠 던지기,

사각판 가까이 동전 던지기,

홀짝,

앞뒤 정하기,

골패 놀이,

노르망디식 골패 놀이,

구슬치기,

감춘 실내화 찾기,

부엉이,

귀여운 산토끼,

줄다리기,

공놀이,

까치 놀이,

소뿔 놀이,

사육제의 황소,

올빼미 소리 내기,

시침 떼고 꼬집기,

부리로 쪼아 내쫓기,

당나귀 편자 떼기,

양 몰고 장에 가기,

숨바꼭질,

나는 앉았다,

바보에게 똥가루 던지기,

반장화,

꼬챙이 뽑기,

말썽꾼 내몰기 놀이,

친구, 자루 좀 빌려 주게,

숫양 불알 놀이,

밀어내기,

마르세유의 무화과,

곡식단 돌기,

활쏘기,

여우 껍질 벗기기,

썰매 끌기,

다리 걸어 넘어뜨리기,

귀리 팔기,

석탄 조각 불기,

새 짝 찾기,

산 재판관과 죽은 재판관,

불에서 쇠 꺼내기,

가짜 어릿광대,

양 뼈 갖고 놀기,

따리꾼 꼽추,

성자 찾기,

귀 꼬집기,

배나무,

엉덩이 걷어차기,

삼단뛰기,

원 안에서 뛰기,

지팡이로 공을 구멍에 넣기,

둘이 머리와 다리 거꾸로 맞대기,

벽돌 쌓기,

막대기 놀이,

쇠고리 던지기,

실꾸리 놀이,

콧김으로 촛불 끄기,

구주희,

잔디 볼링,

납작한 나무공 놀이,

깃털 달린 나무공 놀이,

로마로 가는 자치기,

똥 던지기,

장난꾸러기 천사,

영국식 공놀이,

깃털 달린 공차기,

등 짚고 넘기,

항아리 깨기,

소원 빌기,

바람개비,

무너지지 않게 꼬챙이 뽑기,

짧은 몽둥이 당기기,

원 그리며 돌기,

술래 눈 가리기,

말뚝 놀이,

술래 뽑기,

고리 찾기,

상대 구슬 몰고 가기,

호두집 무너뜨리기,

돌 튀기기,

구멍에 구슬 넣기,

팽이 돌리기,

앙주식 팽이치기,

수도사 놀이,

천둥 놀이,

깜짝 놀라게 하기,

브르타뉴식 하키,

왔다 갔다 하기,

볼기 치기,

빗자루 타기,

성 코스마 경배,

쇠똥구리,

나뭇잎으로 몸 가리고 습격하기,

사순절이여 안녕,

다리 벌리고 거꾸로 서기,

말타기,

늑대 꼬리,

둘이 거꾸로 잡고 언덕 구르기,

기유맹, 창을 다오,

그네 타기,

옥수수 단에 숨기,

작은 공 놀이,

파리 때리기,

황소 술래잡기,

옆 사람에게 말 전달하기,

아홉 개의 손 놀이,

미친 놈 술래잡기,

다리 쓰러뜨리기,

고삐 매인 콜랭,

갈까마귀 놀이,

깃털 달린 공치기,

술래잡기,

지팡이 치기,

스파이,

두꺼비,

크리켓,

절굿공이 놀이,

손잡이로 줄 달린 나무공 받기,

여왕 놀이,

몸짓 수수께끼,

둘이 머리와 다리 사이에 물건 숨기기,

백포도주,

고약한 죽음,

콧잔등 손톱으로 튀기기,

아줌마 모자 빨기,

둘이 손잡고 체치기,

귀리 심기,

식충이,

둘이 마주 잡고 바퀴 만들기,

탈락시키기,

재주넘기,

시소,

농부 놀이,

올빼미 흉내 내기,

박치기 시합,

죽은 짐승 업고 가기,

주먹으로 사닥다리 만들기,

돼지 잡기,

짠 엉덩이,

비둘기가 난다,

몰래 숨기,

불붙은 나뭇단 뛰어 넘기,

보병 놀이,

훼방 놓기,

오래 숨기,

엉덩이에 매달린 동전 주머니,

큰 매 둥지,

선회탑,

엿 먹이기,

잎으로 방귀 소리 내기,

겨자 찧기,

다리 흔들기,

원래대로 되돌아가기,

화살촉 던지기,

등 짚고 뛰어넘기,

갈까마귀,

두루미,

칼로 베기,

콧등 튀기기,

종달새,

손가락으로 튀기기.

 

잘 놀고, 시간을 체로 쳐서 걸러 보낸 다음 약간 ㅡ 1인당 열한 되씩 ㅡ 마시고 술자리가 끝나고 나면 바로 안락한 긴 의자나 침대 한가운데 드러누워 나쁜 생각이나 말을 하지 않고 두세 시간 잠을 잤다. (110∼119쪽)

 

 -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 <제22장, 가르강튀아의 놀이> 중에서

 

덧붙임)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먼저 베끼고, 라블레의 책 내용은 '앞서 미리 베낀 걸 바탕으로' 뒤이어 펼치다 보니 '일거양득 놀이'를 한 기분이 든다. 수많은 놀이를 베끼는 동안 '의외의 소득'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사소한 '번역 오류'들을 발견했으니까 말이다. 재미있는 건 에코의 책을 번역한 분이 그 책의 '본문에 딸린 주석'에서 밝힌 책(그러니까 번역에 참고한 책)이 바로 내가 읽은 책과 똑같은 책(유석호 번역)인데, 인용된 책에서 잘못 번역됐다 싶은 부분을 스스로 알아서 고쳐 옮겨 놓았다는 점이다. (78번째 놀이는 라블레의 책에는 '술래잡기'로 번역되어 있는데, 그대로 인용하면 '술래잡기'가 두 번 나오는 셈이다. 에코의 책에서 '숨바꼭질'로 바꿨고, 나도 '숨바꼭질'로 고쳐 옮겼다. 189번째 놀이는 라블레의 책에는 '올빼미 소리 내기'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도 앞서와 마찬가지다. '올빼미 소리 내기'는 이미 73번째 놀이로 나와 있다. 에코의 책에서 '올빼미 흉내 내기'로 바꿨고, 나도 그렇게 고쳐서 옮겼다. 라블레의 책에서 200번째 나오는 '숨바꼭질' 놀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에코의 책에서 78번째 놀이를 '숨바꼭질'로 바꿨기 때문에, 에코의 책에서 중복을 피하기 위해 바꿔서 표기한 대로 '오래숨기'로 바꿨다. 결과적으로, 라블레의 책 번역본을 그대로 '인용'한 에코의 책 번역본이 '겹치는 놀이'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묘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꼼꼼하게 '겹치는 놀이까지 바꿔 옮긴' 에코의 책 번역본에도 '실수'는 없지 않다. '역자주'에서 표기한 페이지 수가 살짝 틀렸다. 책에는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 유석호 옮김(문학과 지성사, 2006) pp. 142∼145ㅡ옮긴이주}라고 되어 있는데, 정작 가르강튀아의 놀이는 번역본 110∼119쪽에 나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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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농담』에서 세 학생으로 구성된 법정은 루드비크가 여자 친구에게 보낸 문장 하나 때문에 그를 심판한다.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급히 쓴 문장이라며 변명한다. 그의 변명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로써 우리는 적어도 너 안에 숨어 있는 것을 알게 됐어." 피고인이 말하고 중얼거리고 생각하는 모든 것, 그가 자기 안에 숨기고 있는 모든 것이 법정의 처분에 맡겨지기 때문이다.

 

소송은 피고인 삶의 경계들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절대적이다. 숙부가 K에게 말한다. 네가 만약 소송에 지면 "너는 사회에서 지워지게 돼. 너의 친인척 전부와 함께 말이야." 어떤 유대인의 유죄는 모든 시대 유대인들의 유죄를 내포한다. 고급 혈통의 영향력에 관한 공산주의 교의는 부모와 조부모의 과오까지 피고인의 과오에 포함한다. 식민지 개발이라는 죄목으로 유럽에 소송을 제기한 사르트르는 식민지 개척자들을 고소하는 게 아니라 유럽을, 유럽을, 모든 시대의 유럽을 고소한다. "식민지 개척자는 우리 개개인의 내면에" 있고, "우리 모두가 식민지 착취로 득을 보았으므로, 우리에게 인간이란 곧 공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송 정신은 어떤 시효 대상도 모른다. 먼 과거가 오늘의 사건 못지않게 생생하게 살아 있다. 한 번 죽었더라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무덤에도 정보원들이 있다.

 

(중략)

 

불청객들이 그를 체포하러 오기 전부터 이미 K는 맞은편 저택에서 "아주 이상한 호기심으로" 그를 살피는 한 노 부부를 인지한다. 이처럼 소설 시작부터, 고대의 수위 합창단이 게임에 합세한다. 『성』의 아말리아는 고소당하거나 선고받은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보이지 않는 법정이 그녀 탓에 감정 상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알려져, 그것만으로도 마을 주민 모두가 그녀를 멀찌감치 피한다. 법정이 한 나라에 소송 체제를 강제하면, 그 나라 국민 전체가 소송의 거대 책략들에 가담하여 소송의 효율성을 백배로 증가시킨다. 국민 모두가 자신이 언제라도 고소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며, 그래서 미리부터 자아비판을 되새김질한다. 자아비판이란 고소인에 대한 피고인의 굴종이요, 자기 자아의 포기다.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폐기하는 한 방식이다. 1948년에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자, 부유한 집안 출신 한 체코 아가씨가 유복한 자녀로 누린 특혜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 위해 그녀는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부인할 정도로 열렬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지금, 그녀는 다시 심판받고 있으며 또다시 죄책감을 느낀다. 결국 소송 두 번과 자아비판 두 번이라는 분쇄기를 거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부인당한 한 인생의 사막뿐이다. 그 사이, 옛날에 아버지(부인된) 소유였던 몰수된 옛집들을 모두 돌려받았지만, 오늘날 그녀는 그저 하나의 폐기된 존재, 두 번이나 폐기된 존재, 스스로 자기 자신을 폐기한 존재일 뿐이다.

 

 - 밀란 쿤데라, 『배신당한 유언들』, 「8부 」, <법정과 소송> 중에서

 

 * * *

 

이라 불리는(흔히, 그리고 모호하게) 음악이 이십여 년 전부터 일상 생활의 음향 분위기를 온통 지배하고 있다. 이 음악은 20세기가 혐오스러워하며 자신의 역사에 구역질을 느끼던 바로 그때 이 세계를 사로잡았다. 자꾸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일치는 우연일까? 아니면 금세기 마지막 소송들과 록이라는 엑스터시의 이 만남에 어떤 숨은 의미가 있을까? 엑스터시의 아우성 안에서 금세기는 자신을 망각하고 싶은 걸까? 공포 속에 가라앉아 버린 자신의 유토피아들을 잊어버리고 싶은 걸까? 자신의 예술을 잊어버리고 싶은 걸까? 그 섬세함과 괜한 복잡성으로 민중을 자극하고 민주주의를 모독하는 예술을?

 

록이란 말은 모호하다. 그래서 나는 이 음악을 내 생각대로 묘사하는 편을 택한다. 우선 사람의 목소리가 악기들보다 우위에 있으며, 고음이 저음보다 우위에 있다. 강약법에는 콘트라스트가 없으며, 노래를 아우성으로 변화시키는 한결같은 포르시티모다. 재즈에서처럼, 리듬은 소절 두 번째 박자를 강조하지만 그 방식이 더 상투적이고 더 시끄럽다. 하모니와 멜로디는 너무나 단순해서 이 음악의 유일한 창조적 구성 요소인 음향의 색조를 중시한다. 세기 전반의 유행가들이 가엾은 대중을 울린 (또한 말러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적 아이러니를 황홀하게 만든) 멜로디들을 지녔다면, 이 록이라는 음악은 그런 감상성의 원죄로부터 면제되어 있다. 이 음악은 감상적이지 않다. 엑스터시요, 한 순간의 엑스터시의 연장이다. 엑스터시란 시간에서 뽑힌 한 순간, 기억 없는 짧은 한 순간, 망각에 에워싸인 순간이므로, 멜로디의 모티프는 전개될 공간이 없으며, 단지 전개도 결론도 없이 그저 되풀이되기만 할 뿐이다.(록은 멜로디가 지배적이지 않은 유일한 '경(輕)' 음악이다. 사람들은 록의 멜로디를 흥얼거리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음 재생 기술 덕택에 이 엑스터시 음악은 도처에서 끊임없이 울린다. 엑스터시 상황들을 벗어나 울린다. 엑스터시의 음향 이미지가 우리 권태의 일상적 장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를 어떤 광연(狂宴), 어떤 신비로운 체험에도 초대하지 않는 이 세속화된 엑스터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익숙해지라고, 그 특권적 지위를 존중하라고, 그것이 명하는 도덕을 준수하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엑스터시의 도덕은 소송의 도덕과는 정반대다. 그것의 보호 아래 이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한다. 이미 사람들은 누구나 유년기에서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마음껏 빨 수 있으며, 누구도 이 자유를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라. 앉았건 섰건 사람들은 저마다 손가락을 자기 얼굴의 어느 한 구멍, 귀나 입이나 코 속에 들이밀고 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이 본다고 느끼지 않으며, 모두가 코를 청소하는 자신의 모방할 수 없는 유일한 자아를 말하기 위해 책을 쓸 생각을 한다. 아무도 타인에게 귀 기울이지 않으며, 록을 춤추듯 모든 사람이 글을 쓰고 각자 자기 글을 쓴다. 혼자, 자기에 대해, 자기 자신에 집중하여, 그렇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동작을 하면서 말이다. 이 획일화된 자기중심주의 상황에서는, 죄의식이 더는 옛날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 법정들은 여전히 일하지만, 노년이나 죽은 세대들만 겨냥한다. 카프카의 등장인물들에게 죄의식이 부여된 것은 아버지의 권위에 의해서다. 『판결』의 주인공이 강에 투신하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는 끝났다. 록의 세계에서는 그런 죄의식의 무게를 아버지가 짊어지게 되었고, 이미 오래 전부터 그는 모든 것을 허락하고 있다. 죄의식을 부여할 수 없는 자들이 춤춘다.

 

최근에 두 젊은이가 신부님 한 분을 살해했다. 텔레비전의 논평을 들어 본다. 한 신부님이 관용을 베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된 그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분은 특히 젊은이들을 위하셨습니다. 하지만 불행한 두 젊은이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 역시 희생자입니다. 자신들 충동의 희생자입니다."

 

사상의 자유, 말, 입장, 농담, 성찰, 위험한 이념, 지적 선동 등의 자유가 전반적 관례주의 법정의 감시를 받으며 점차 줄어들수록 충동의 자유가 확대되고 있다. 사상의 원죄들에 대해서는 엄벌을 권하나, 감동의 엑스터시 상태에서 범해진 죄과들에 대해서는 용서를 권한다.

 

 - 밀란 쿤데라, 『배신당한 유언들』, 「8부」, <죄의식을 부여할 수 없는 자들이 춤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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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안개 속을 나아가는 자다. 그러나 과거의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뒤돌아볼 때는 그들의 길 위에서 어떤 안개도 보지 못한다. 그들의 먼 미래였던 그의 현재에서는 그들의 길이 아주 선명하게 보이고, 펼쳐진 길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뒤돌아볼 때, 인간은 길을 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잘못을 본다. 안개가 더는 거기에 없다. 하지만 모든 이들, 하이데거, 마야코프스키, 아라공, 에즈라 파운드, 고리키, 고트프리트 벤, 셍존 페르스, 지오노 등, 모든 이들이 안개 속을 걸어갔으며,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다. 누가 더 맹목적인가? 레닌에 대한 시를 쓰면서 레닌주의가 어떤 귀결에 이를지 몰랐던 마야코프스키인가? 아니면 수십 년 시차를 두고 그를 심판하면서도 그를 감쌌던 안개는 보지 못하는 우리인가?

 

마야코프스키의 맹목은 영원한 인간 조건에 속한다. 마야코프스키가 걸어간 길 위의 안개를 보지 않는 것, 그것은 인간이 뭔지를 망각하는 것이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하는 것이다.

 

 - 밀란 쿤데라, 『배신당한 유언들』, 「8부」, <안개 속의 길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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