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의 ‘운명‘에 대하여

 

용기를 잃는다는 것은 철저한 패배를 의미한다. 철저한 패배를 원하는가?그렇지 않다면 용기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 플루타르코스

 

 * * *

 

플루타르코스에게 붙은 별명은 '최후의 그리스인'이다. 그는 아폴론 신전으로 유명한 델포이에서 가까운 카이로네이아에서 태어나서 스무 살부터 아테네의 아카데미에서 철학을 배웠다. 나중에 이집트와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고, 로마에도 두세 차례 방문해 강의도 하고 집정관 등 여러 명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의 그리스는 이미 로마의 속주가 된 지 2백 년이나 지난 때였다. 찬란했던 그리스 문학도 이미 쇠퇴기에 접어드는 때였다. 사실상 '로마시대'의 인물이나 마찬가지였던 그가 '최후의 그리스인'으로 불리게 된 건 주로 그리스 주요 작가들에 아주 통달한 끝에 그리스어로 쓰여진 수많은 작품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물론 생애의 마지막 30년을 '고대 그리스의 상징'인 델포이 신전에서 사제 노릇을 하며 고향 도시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점도 그런 별명을 얻는데 보탬이 됐을 성싶다. 그가 그토록 오래 신관으로 일했던 건 아폴론의 신탁을 받던 유서깊은 델포이 신전이 더 이상 황폐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런 정도였으니 그에게 붙은 별명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가 쓴 대표작은 그 유명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다. 원제는 『비교 열전』(Bioi paralleloi)인데, 23쌍의 그리스 영웅과 로마 영웅을 '비판적으로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제목이 붙었다. 애초에 그 책엔 이들 46명의 영웅들만 담겼으나, 나중에 그가 따로 쓴 '로마 황제전'에서 두 사람(갈바와 오토)과, 또 다른 제왕전 중에서 남아 전해지던 두 사람(아라토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후세 학자들이『영웅전』에 포함시킴으로써 그 책은 무려 50명의 영웅들의 전기를 담은 방대한 책이 되었다. 4세기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람프리아스 목록'에는 레욱트라, 만티네이아에서 스파르테군을 격파한 테바이의 영웅 에파메이논다스(키케로는 그를 '최초의 그리스인'이라고 불렀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에게 결정타를 가한 대(大)스키피오의 전기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른바 '람프리아스 목록'에는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으로 모두 227개의 제목이 발견되는데, 그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작품은 50편의『영웅전』과 78편의 『윤리론집』뿐이라고 한다. 그가 쓴 작품 가운데 대략 절반 정도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 그가 쓴 그토록 많은 작품 가운데 그리스어로 쓰여진 원전을 우리말로 직접 번역한 책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알기로는 다음의 네 권쯤 되는 듯하다.(세 권은 읽었고, 네 번째 책은 요즘 한창 읽는 중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위의 네 권 모두 그리스어로 쓰여진 원본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책이긴 하지만 한결같이 '완역'이 아니라 '발췌 번역'으로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원전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싶지만 도리어 원전의 명성이 우뚝한 만큼이나 독자들로서는 발췌 번역에 대한 아쉬움도 클 수밖에 없다. 특히나 이들 네 권의 번역본들은 저마다 꼼꼼하고도 풍부한 주석이 달린 게 특징인데, 번역을 맡은 분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들에 대해 정통한 분들이니만큼 '풍부한 주석'이 딸린 번역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면서도, 한켠으로는 이 분들이 왜 아직까지도 '원전 완역'에 나서지 않았는지에 대해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플루타르코스 작품의 '원전 완역'을 애타게 바라는 독자들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겨우 네 권의 '발췌 번역본'을 읽은 일개 독자로서 '완역된 원전 작품'을 통째로 다 접하지 못하는 고전 번역 현실에 대해 약간이나마 수긍할 수 있는 실마리를 슬쩍 엿보았다고 말한다면 나만의 지나친 억측일까. 어쨌든 '원전 완역'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비단 '원전 작품의 규모의 방대함'에만 달려 있는 문제만이 아니라, '원전 번역에 수반되는 방대한 주석 작업의 어려움'에서도 동시에 살펴봐야 옳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에 대한 '원전 번역'에 대해서만 한정해서 말한다면, 지금껏 나온 네 권의 '발췌 번역본'만 찬찬히 살펴보더라도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우선, 『플루타르크 영웅전』부터 살펴보자. 앞서 미리 얘기했듯이 이 작품에서 다루는 '고대의 영웅들'은 모두 50명이다. 그런데 '원전 발췌 번역'으로 나온 두 권의 책은 각각 10명(천병희 번역,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744쪽)과 2명(김헌 주해, 『두 정치 연설가의 생애』, 307쪽)을 다룰 뿐이다. 그런데 두 번역본에 딸린 '주석'은 과연 얼마나 될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1,585개의 주석이 딸려 있고, 『두 정치 연설가의 생애』는 846개의 주석이 붙어 있다. 10명의 영웅을 다룬 번역본에 딸린 주석을 만약 50명의 영웅을 다룬 완역본으로 환산해서 산출해 보면 주석의 숫자는 무려 7,925까지 불어난다.(10명 : 1,585개 = 50명 : 7,925개) 또한 2명의 영웅을 다룬 번역본에 딸린 주석을 마찬가지 방식으로 추산해 보면 무려 21,150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다.(2명 : 846개 = 50명 : 21,150개) 그러니 아무리 '원전 완역'에 대한 열망이 간절하다고 하더라도 그걸 제대로 완수하기가 얼마나 힘겨울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은 어떨까. 사정은 여기서도 비슷하다. 그 책 또한 원전은 무려 78편의 작품이 담겨 있지만 국내엔 원전에서 딸랑 6편만 추려 뽑아 번역한『수다에 관하여』(천병희 번역, 279쪽)라는 책과 5편만 추려 뽑은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허승일 번역, 418쪽)이 나와 있을 뿐이다. 두 권의 번역본을 합쳐도 전체 작품의 겨우 14%(11/78) 정도만 번역된 셈이다. 그런데 두 권의 번역본에 붙은 주석은 어떨까. 『수다에 관하여』는 불과 6편의 짤막한 에세이만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석이 453개나 붙어 있다. 5편의 에세이를 담은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는 무려 761개의 주석이 붙어 있다. 이들 주석이 없었더라면 독자들은 도대체 이 책을 무슨 맛으로 읽을 수 있겠나 싶을 정도로, 번역자의 수고로움 덕분에 덧붙여진 주석 덕분에 내용들이 더없이 풍성하고 꼼꼼하고 정확하다. 만약에 『윤리론집』 원전을 이처럼 꼼꼼한 주석을 붙여서 모두 완역한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대략 14권의 단행본에 도합 8,608개의 주석이 붙을 정도로 방대한 책이 나와야 하는 셈이다.(11편 : 1,214개 = 78편 : 8,608개)

 

이런 사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플루타루코스의 『영웅전』과 『윤리론집』이 얼마나 방대한 저작이며, 그 두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얼마나 많은 주석이 딸려야 하는지 우리는 금세 이해할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이들 작품에 대한 '원전 완역'이 여태껏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지 못하는 사정도 얼마쯤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와 아울러 저 네 권의 '발췌 번역본'에 담긴 번역자들의 노고만 하더라도 결코 간단히 치부할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또한 앞으로 어떤 분들이 나타나서 지금처럼 꼼꼼하면서도 풍부하고 상세한 주석이 딸린 '원전 완역'에 도전할 수 있을지도 궁금해진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진정한 '플루타르코스 원전 완역'을 실물로 구경할 수 있을까.

 

 * * *

 

이왕에『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대한 번역본 얘기가 나왔으니 이 '유명한 고전'을 번역한 다양한 국내 번역본들에 대해서도 참고할 만한 부분들을 두엇 덧붙여 볼까 싶다.

 

우선,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 도대체 누가 그런 걸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내가 발견한 간략한 '참고문헌'에 의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위에서도 언급했던『두 정치연설가의 생애』라는 책의 말미에 실린 목록이다. 역자가 번역에 참고했던 '참고문헌'인 셈이다.)

 

김병철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8, 범우사, 1999.

박시인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6, 을유문화사, 1966.

이다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6, 휴먼앤북스, 2010∼2012.

이성규 옮김,『플루타르코스 영웅전』1∼2, 현대지성사, 2000.

외국어번역연구회 옮김,『플루타르코스 영웅전』1∼9, 한아름, 1994.

천병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선집), 숲, 2010.

홍사중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2, 동서문화사, 2007.

 

내가 이 책들을 모조리 살펴볼 재간은 없다. 다만 이 가운데 휴먼앤북스에서 나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번역의 문제' 보다는 '주석' 때문에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크게 잃은 책인 듯싶다. 번역자가 고(故) 이윤기 선생님의 딸이어서 더욱 세간의 기대와 주목을 받았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대작 번역'에 매달린 끝에 마침내 내놓은 번역 작품이 독자들로부터 기대밖의 푸대접을 받는 듯해서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책이다. 이 번역본의 부실한 주석은 어느 알라디너가 예전에 선명하게 대비해 놓은 도표 하나만 보더라도 충분하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천병희 번역본은 10명의 영웅에 대해 1,585개의 주석을 달았고, 김헌 주해본은 2명의 영웅에 대해 846개의 주석을 달았다. 그에 비하면 이다희 번역본은 차라리 주석이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토록 부실한 주석이 달린 번역본을 독자들 앞에 버젓이 내놓았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다.)

 

<두 번역본의 주석 숫자>

 

 천병희이다희
뤼쿠르고스16321
솔론17115
테미스토클레스17927
페리클레스1438
알렉산드로스258 
마르쿠스 카토1126
티베리우스 그락쿠스46 
가이유스 그락쿠스33 
카이사르259 
안토니우스221 

(출처 :  http://blog.aladin.co.kr/keaton/4435362)

 

주목할 만한 또다른 번역본은 올해 4월에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두 권짜리『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고, '완역'이라고 내세우는 책이니만큼, 제대로 된 '원전 완역'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런 책이라도 감지덕지하면서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세계의 모든 도서관에 불이 날 경우 목숨을 걸고라도 꺼내고 싶은 책"으로『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꼽았다는데, '원전 완역'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엉뚱한 이유를 앞세워 이 유명한 고전을 독파하는 일을 계속 외면할 수만도 없지 않을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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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4월에 출간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알라딘 책소개 일부

 

[이 책의 특징]

 

# 동양의 사마천 『사기』와 함께 인물 전기 분야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전2권으로 완역한 전집(Complete Edition)입니다.
# 『하버드 고전 총서』, 『옥스퍼드 고전 총서』, 시카고대학의 <시카고 플랜>, 연세대 고전 필독도서 등 권위 있는 목록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는 불멸의 고전 작품입니다.
# 상당히 방대한 분량이지만, 역동적인 영웅들의 매력적인 이야기에 빠져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습니다.
# 내용 이해와 몰입에 많은 도움을 주는 수백 개의 각주가 있습니다.
# 부록으로 전문가의 ‘해제’와, ‘플루타르코스의 생애’ 수록.
# 각각의 영웅과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 자료 수록.

이 책은 인물 전기 분야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전2권으로 완역한 것이다. 원제를 직역하면 『비교열전』이지만, 국내에는 『영웅전』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 50인의 이야기와, 이들 중 유사한 영웅 23쌍의 비교평가를 담은 작품으로, 교양으로서의 지식을 토대로 이야기의 극적 구성과 주인공의 도덕적 평가에 주력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영웅들로부터 용기, 지혜, 통솔력, 선과 악, 우정, 배신 등 2천 년 전에도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들을 볼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인물부터 500년 전 시대의 그리스와 로마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이를 바탕으로, 대략 105~115년에 영웅들의 삶을 거울삼아 후세의 자기 수양에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그로부터 거의 2천 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아 왔다. 수많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온 이 책은 특히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외에도 이 책이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 평민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이 책에서 즐거움을 얻었으니 그 영향이 한순간도 시든 적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서양사의 위대한 시기들을 이끈 영웅들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생생하고 실감 나게 제공할 뿐 아니라, 걸출한 영웅들을 배출한 고대 세계 사람들이 품고 살았던 이상들을 구체적이고도 감동적인 형태로 소개한다. 이 책만큼 인류의 영원한 재산이라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책은 드물다.

 

고전을 고전답게 만드는 여러 조건 중에서 후세까지 오랫동안 광범위한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단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하겠다. 그래서 『하버드 고전 총서』, 『옥스퍼드 고전 총서』, 『브리태니커 그레이트 북스』, 『시카고 플랜』 등 권위 있는 고전 총서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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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키케로와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6-12-21 22:34 
    내 생각으로는 행운과 불운은 두 가지 최고의 권력이다. 인간의 예지가 운의 역할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이다. - 몽테뉴 * * *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웅변가였다. 그래서 플루타르코스가『대비열전』에서 그의 짝으로 그리스 최고의 웅변가였던 데모스테네스를 붙인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런데 키케로는 데모스테네스와는 달리 뛰어난 웅변술뿐 아니라 수많은 저작을 남겨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가 쓴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마도 『
  2. 루쿨루스와 미트리다테스에 얽힌 이야기
    from Value Investing 2017-01-08 01:52 
    영어에서 'lucullan'이란 단어는 '사치스러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뛰어난 군대 사령관이었던 '루쿨루스(LUCULLUS)'라는 인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가 과연 얼마나 사치스러웠으면 후세 사람들이 그런 단어까지 만들어냈을까 궁금하다.루쿨루스는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헬라스어와 라틴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는데, 일찍부터 그 누구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훌륭한 웅변가가 되었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플루타르코
  3. 몽테뉴와 플루타르코스
    from Value Investing 2017-02-08 00:22 
    나는 플루타르크의 저서는 여간해서 놓지 못한다. 그는 너무나 보편적이며 충실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우리가 어떠한 하찮은 일을 처리할 때도 그는 우리 일에 참견해 오며, 풍부와 미화의 무궁무진하고 관후한 손을 내밀며 거들어 준다. 나는 그를 애독하는 자들의 글에, 그에게서 따온 부분이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 울화가 터진다. 그리고 그를 읽어 보기만 하면 내 글의 날개와 허벅다리를 거기서 따오지 않을 수 없다. * * *몽테뉴가 가장 좋아한 작가는 누가
 
 
붉은돼지 2016-04-23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윤기 선생의 딸 이다희씨가 번역했다는 플르타르코스 영웅전을 사려고 했는데 평을 보니 별로 좋지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이윤기 선생이 기획하고 일부 감수도 했다고 해서 기대를 했었는데 제가 바라는 번역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oren 2016-04-25 14:10   좋아요 1 | URL
이윤기 선생님이 생전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번역을 마무리하고 작고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그 분 특유의 걸판지면서도 맛깔스런 번역은 어느 누구도 쉽사리 흉내내기 어려울 만큼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었더랬는데 밀이지요...

yamoo 2016-04-23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아동용 전집이 무수히 많습니다. 제가 본 출판사만 10개도 넘는다는...80년대와 90년대 발간된 하드커버 전집들이 제가 가는 헌책방에 수북수북 쌓여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모르는 출판사가 더 있겠지요. 주석도 하나 없고 걍 되는 대로 잘라 짜깁기 한 책들이 대부분인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 유명한 책을 아직 소장하지 못하고 있군요! 동서판을 조만간 데려와야 할 듯합니다~ㅎ

oren 2016-04-25 14:29   좋아요 1 | URL
헌책방에 가면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전집` 가운데 하나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었던 듯해요. 어쨌든 `50명의 영웅들`을 다 담아낸 `완역본`을 읽긴 읽어야겠는데, `원전 완역본`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사정이니, `영어 중역 완역본`이라도 잘 골라서 읽어봤으면 싶습니다. 동서문화사에서 최근에 나온 `개정판`은 번역자가 `홍사중`에서 `박현태`로 바뀌어서 `세 권짜리`로 나왔더군요. 제목도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바뀌었구요. 새로 번역하신 분도 `영웅전`을 `완역하는데 10년을 바쳤다`고 하던데, 그 엄청난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직접 서점에 나가서 실물을 미리 좀 살펴보고 싶습니다.
 
끝내는 모든 것이 영원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붉은돼지 님의 이 글을 읽으니 저 또한 불현듯 바로 저기로, 말하자면 '에게'로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저도 그동안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가끔씩 '아토스'라는 지명을 만나왔던 터라 그 지명이 그리 낯설지는 않은데, 이토록 자세하게 '아토스'를 담은 책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네요.

 

혹시라도 누가 제게 '아토스'에 대해서 말해 보라고 하면, 저는 다른 어떤 인물보다도 가장 먼저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부터 제 옆에 불러낸 다음에, 그 사람이 전해준 놀라운 이야기부터 늘어놓기 시작할 것이 틀림없지 싶습니다. 물론 고대의 저명한 시인들 가운데 호메로스나 오비디우스와 같은 인물들도 자신의 작품 속에 '아토스'를 더러 언급한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들은 그저 아토스를 '험상궂은 산의 대명사' 정도로만 여기고 자신의 문장을 더욱 아름답게 꾸밀 목적으로 '시적인 표현 속에' 스쳐 지나가듯 담았을 뿐이더군요. 그에 반해 헤로도토스는 아토스에 대해서라면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더군요. 그래서 적어도 제가 아는 한에서는 아토스에 대해 헤로도토스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 인물은 일찌기 없었으리라는 판단을 내렸고,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그사람부터 여기로 불러내는 게 마땅하고 좋겠다고 여겼던 것이지요.

 

어쨌든 지금으로부터 대략 2,500년 전쯤에 '아토스'를 두고 벌어진 몇 가지 흥미로운 사건들을 살펴보자면 무엇보다도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저 유명한 <페르시아 전쟁>부터 들여다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조차 널리 알려진 가장 인상적인 장소들은 아마도 마라톤 평원이나 테르모펠레 협곡, 혹은 살라미스 항구 등일 수밖에 없을 테지만, 또 하나의 특별한 장소였던 '아토스' 또한 자세히 알고 보면 '페르시아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발견할 수도 있지 싶습니다. 헤로도토스가 쓴『역사』속에는 심지어 '전에 아토스 앞바다에서 그랬듯이'라는 표현이 마치 무슨 '관용구'처럼 자주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금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토스에 대한 이해' 없이는 페르시아 전쟁의 흐름을 온전히 살펴볼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라고나 할까요? 그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아래의 그림 속에 담겨져 있답니다.

 

 

위의 그림을 그냥 얼핏 봐서는 도대체 '아토스'가 3차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에서 무슨 역할을 떠맡았는지 쉽사리 파악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그림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덧보태기만 하더라도 누구나 금세 '아토스'에 얽힌 비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자, 그러면 우선 페르시아군의 침입로부터 먼저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할까요? 1차(BC492년) 전쟁에서는 결정적으로 '아토스 곶'에서 화살표가 되돌려집니다. 어디로? 다시 아시아 땅으로. 바로 그렇습니다. 기세등등하게 헬라스 땅을 삼키기 위해 나섰던 용맹무쌍하던 페르시아의 대군이 바로 '아토스' 앞에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깨박살이 나고 맙니다. 어쩌면 1차 페르시아 전쟁은 '아토스'에게 대패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이지요. 바로 거기서 풍비박산이 난 페르시아 군대는 풀이 죽을대로 죽어 그리스 땅은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떠나왔던 고향인 페르시아로 서둘러 되돌아가고 맙니다.

 

제2차(BC490년) 전쟁에서는 어땠을까요? 두 번째 헬라스 원정에서 페르시아 군대는 아예 '아토스'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못합니다. '아토스'에 대한 엄청난 트라우마 때문에 그들은 로도스 섬, 낙소스 섬, 델로스 섬, 안드로스 섬 등을 거치는 온갖 난관이 도사린 '우회로'를 통해 간신히 아테네로 접근합니다. 그들에게 아토스는 생각만 해도 너무나 끔찍한 곳이기 때문이었지요. 페르시아 군대는 결국 마라톤 전투에서 뜻밖에 마주친 '헬라스의 용맹무쌍함'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끝에 대패하면서 또다시 아시아로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제3차(BC480년) 전쟁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그림이 나타납니다. 마지막 대전쟁을 준비하는 와중에 다레이오스 대왕은 이미 죽고(BC486년)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일찌기 상상조차도 하기 힘든' 어머어마한 대군들을 끌고 헬라스를 집어삼키기 위해 나섰을 때, 그들은 아토스를 과연 어떻게 지나갔을까요?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들은 육군과 해군을 병행해서 이동시키는 이른바 '투트렉' 전략을 씁니다. 그런데 해군의 이동경로 가운데 결정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바로 '삼지창처럼' 바다를 향해 내뻗은 칼키디케 반도의 지협 가운데 아토스 산이 높이 솟아 있는 곶을 빙 둘러 돌아가지 않고, 지협을 '운하'를 뚫고 통과합니다. 결국 저 지협을 만나서, 헤로도토스의 말에 따르면 '배를 땅 위로 끌어올려' 건널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운하까지 뚫어서 건넌 페르시아의 함대들은 결국 살라미스 해전(BC480년)에서 대패하면서 거기서 대부분 수장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고 말지요.

 

자, 어떻습니까? '아토스'가 세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지가 이로써 어느 정도는 해명된 셈이 아닐까요? 만약에 헤로도토스라는 인물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흥미진진한 얘기를 우리는 과연 누구로부터 들을 수 있었을까요? 아토스에 얽힌 페르시아 군대의 이동 경로만 살펴봐도 몹시 흥미로운데, 여기에 더해서 그 전쟁에 직접 뛰어들었던 주역들 가운데 몇 사람의 얘기를 살짝 덧붙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또 얼마나 더 흥미로울까요? 그래서 이왕 내친 김에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이야기'의 몇몇 대목들을 여기서 다시 한번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인물은 영화 〈300〉과 〈제국의 부활〉에서도 등장했던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대왕뿐만 아니라 그의 고종사촌이자 두 차례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떠맡았던 총사령관 마르도니오스입니다. 우선 1차 원정부터 살펴보지요. 그러니까 다음에 묘사된 시대적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인 BC492년입니다.

 

이듬해 봄 다레이오스는 다른 장군들은 모두 해임하고 고브뤼아스의 아들 마르도니오스가 육군과 해군의 대군을 이끌고 해안 지방으로 내려가게 했는데, 마르도니오스는 얼마 전에 다레이오스 왕의 딸 아르토조스트라와 결혼한 젊은이였다. 마르도니오스는 군대를 이끌고 킬리키아에 도착하자 다른 장수들이 헬레스폰토스로 육군을 이끌고 가게 하고, 자신은 함선에 올라 함대와 함께 나아갔다. ……

 

(중략)

 

함대는 타소스에서 대륙으로 건넌 다음 해안에 바싹 붙어 항해하며 아칸토스까지 나아갔고, 아칸토스에서는 아토스 곶을 우회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우회하는 동안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맹렬한 북풍이 덮쳐 그들을 거칠게 다루며 수많은 함선들을 아토스에 내동댕이쳤다. 300척의 함선이 파괴되고, 2만 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더러는 아토스 주위의 바다에 득실대는 해수(海獸)들에게 잡아먹혔고, 더러는 바다에 내던져졌으며, 더러는 헤엄칠 줄 몰라 익사했으며, 더러는 동사했다. 함대는 그런 변고를 당했던 것이다.

 

2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마르도니오스는 아쉽게도 전쟁에 참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1차 헬라스 원정에서 실패한 책임을 물어 페르시아 왕이 그를 장군직에서 해임했기 때문이었지요. 새로이 임명된 장군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헬라스 원정을 나섰는지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넘어가지요.

 

그들은 말들을 이들 군마 수송선들에 싣고, 육군은 함선들에 태운 뒤 600척의 삼단노선을 이끌고 이오니아로 항해해 갔다. 거기서부터 그들은 곧장 헬레스폰토스와 트라케를 향해 이오니아 지방의 해안을 따라 항해하지 않고, 사모스에서 출발해 이카리오스 해로 가서 섬에서 섬으로 항해했다. 그들이 이 길을 택한 것은 지난해 아토스를 우회하다가 큰 손실을 입은 탓에 아마도 아토스를 우회하기가 심히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2차 원정에서도 페르시아 군대는 저 유명한 마라톤 전투에서의 참패를 끝으로 결국 아시아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차례의 원정 실패를 맛본 페르시아의 다레이오스는 '아테나이 원정'을 위해 절치부심하던 중에(그는 시종 가운데 한 명에게 식사 시중을 들 때마다 "전하, 아테나이인들을 기억하소서!" 라고 세 번씩 외치도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재위 36년 만에 결국 세상을 떠나고, 뒤이어 왕위를 물려받은 크세르크세스가 '선친의 유업'을 떠맡아 결국 3차 원정에 나서게 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처음엔 헬라스 원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그를 전쟁에 나서도록 결정적으로 부추긴 인물이 바로 마르도니오스였다지요.

 

"전하, 페르시아인들에게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아테나이인들을 응징하지 않는다는 것은 옳지 못하옵니다. 지금 당장은 전하께서 시작하신 일을 계속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아이귑토스의 콧대를 꺾어놓으신 다음에는 아테나이로 진격하소서, 전하께서 후세에 길이 남을 명성을 얻으시고, 앞으로는 어느 누구도 전하의 나라로 침공할 엄두를 못 내도록 말이옵니다." 이것이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는 그의 논리였다. 그러나 그는 에우로페에는 온갖 과수(果樹)들이 자라고 땅이 비옥한 더없이 아름다운 곳으로 인간들 중에서는 오직 페르시아 왕만이 소유할 자격이 있다는 말도 덧붙이곤 했다.

 

마르도니오스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자신이 새로운 모험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헬라스의 태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그렇게 하도록 크세르크세스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크세르크세스는 만 4년 동안이나 모병을 계속할 정도로 '3차 원정'을 위해 치밀한 준비를 갖췄다고 합니다.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페르시아 군대는 '우리가 아는 한 가장 규모가 큰 군대'였으며, 역사상 그 어떤 군대와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점에서는 전설에 나오는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의 일리온 원정군도, 뮈시아인들과 테우크로스 자손들이 모집하여 트로이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 에우로페로 쳐들어가서 트라케의 모든 부족들을 정복하고는 이오니오스 해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페네이오스 강까지 내려갔던 군대도 마찬가지다.

 

이들 군대를 다 합치고 거기에 다른 군대들을 더해도 이번 군대 하나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크세르크세스가 아시아에서 헬라스로 이끌고 가지 않은 부족이 있었던가? 큰 강들을 제외하고 그들이 마셔버려 고갈되지 않은 물이 있었던가?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바로 '아토스'에 대한 상세한 얘기가 나오기 때문이지요. 헤로도토스의 말을 들어보시지요.

 

크세르크세스는 지난번 원정군이 배를 타고 아토스를 우회하다가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기에 지난 3년 동안 특히 아토스에 미리 손을 써두었다. 말하자면 케르소네소스의 엘라이우스를 기지로 삼고 그 앞 바다에 삼단노선들을 정박시켜놓은 다음, 여러 부족들로 구성된 부대원들로 하여금 채찍질을 당하며 교대로 운하를 파게 했던 것이다. 아토스 주민들도 함께 파야 했다. ······ 아토스는 바다로 돌출한 크고 이름난 산으로, 사람이 살고 있다. 아토스는 육지와 이어지는 곳에서는 반도처럼 생겼고, 12스타디온 너비의 지협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아칸토스 해와 토로나 앞바다 사이에 있는 이 지협은 평야와 야트막한 언덕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토스 산이 끝나는 이 지협에 헬라스의 도시 사네가 자리 잡고 있다. 사네 남쪽 아토스 산 품안에는 디온, 올로퓍소스, 아크로토온, 튓소스, 클레오나이가 있는데, 페르시아 왕은 이 도시들을 육지 도시에서 섬도시로 만들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크세르크세스가 그토록 힘들게 '운하'를 파도록 명령한 건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후세에 기념비로 남기고 싶어 순전히 과시욕에서'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함선들을 땅 위로 끌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 지협을 건널 수 있었는데도, 그는 삼단노선 2척이 나란히 노를 저으며 통과할 수 있는 너비의 운하를 파게' 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훗날 언제쯤 그리스를 여행할 일이 있으면 2,500년 전 그 당시 페르시아 군함들이 노를 저으며 지나가도록 지협을 뚫은 '운하'가 아직도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여기까지 쓰고 난 뒤에, 혹시나 하고 '아토스 운하'로 검색해 보니, 아뿔사, 지금은 그 운하를 구경할 수 없다고 하네요. 네이버 지식인에 따르면 "이 운하는 결국 오늘날까지 남아있지 못하고 다시 땅 속에 파묻혔는데, 실제로 고고학자들이 지진파 등을 이용해서 이 고대의 운하를 조사해보니, 운하 단면의 윗쪽은 300m, 바닥은 150m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빨간 점 두 개를 이은 것이 바로 '크세르크세스의 운하'라고 합니다.)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이 아토스 운하를 뚫었다는 바로 그 지협)

 

 

(아토스 산)

 

어쨌든 헤로도토스가 전하는 '아토스'에 관한 이야기기는 아쉽긴 하지만 대략 이쯤에서 접어야 좋을 듯하군요.(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왕에 제 이야기가 페르시아 전쟁터까지 깊숙히 발을 들여놓은 마당이니만큼 여기서 이야기를 조금 더 길게 늘여서 '살라미스 해전을 둘러싼 이야기' 가운데 특히 마르도니우스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만이라도 덧붙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도 잠시 품었더랬습니다만, 그랬다가는 제 얘기가 너무나 터무니없이 길어질게 불을 보듯 뻔하니까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물론 제가 예전에 미리 써놓은 글 속에서 '마르도니우스의 기묘한 행적들'을 일부러 찾아보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다면 저로서는 여기서 글을 멈춘 보답을 온전히 다 돌려받는 셈이 되겠지만 말이지요..... http://blog.aladin.co.kr/oren/6934680)

 

'아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이처럼 터무니없이 길게 늘어놓다가 제가 갑자기 '아토스 운하'에 대한 이미지를 검색하기 위해 다른 창들을 띄워 봤더니 글쎄 어느새『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또다른 책까지 떠올리게 되지 뭡니까. 그래서 이참에 잘 됐다 싶어 마침 그 두꺼운 책까지도 펼쳐보게 되는군요. 거기엔 혹시 '아토스 운하'에 얽힌 무슨 재미난 이야기가 없을까 하는 기대도 있고 말이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그 책엔 오래된 '케케묵은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그 대신 천 년에 가까운 수도원의 독특한 외양 뿐만 아니라, 수도원의 내부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프레스코화 정도는 생생하게 코앞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서 참 좋더군요.

 

신화에 따르면 트라키아(Thracia)의 거인 아토스가 트라키아(Thracia)의 거인 포세이돈에게 던지려던 돌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 생긴 산이라 아토스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인들의 속주가 되기 전까지 고전주의 시대에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스트라보는 그들의 작품 속에서 아토스산을 수차례 언급하였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중에서

 

제가 '성산 아토스'를 방문했던 인물을 아직도 한두 사람 더 떠올릴 수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바로 그리스인들입니다. 맞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바로 에게해로 둘러싸인 바다에 길게 누운 섬 크레타가 고향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입니다. 온갖 전설과 신화가 가득한 그리스에서도 특별한 섬 크레타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대학을 다닌 그가 아토스 산을 다녀온 일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그가 훗날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멋진 소설을 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토스'는 카잔차키스에게 정말 특별한 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 또한 지우기 어렵더군요. 카잔차키스의 '작가 이력'은 워낙 파란만장한 면면들로 점철되어서 딱히 어느 한 해만 따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결코 밋밋한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토스 산'을 여행했던 '젋은 한 때'는 그에게 유난히 더 특별했던 듯합니다. 아토스를 여행했던 무렵의 작가 연보를 여기에 잠시 옮겨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0년 전쯤에 있었던 이야기네요.

 

1914년(31세) 시인 앙겔로스 시켈리아노스와 함께 아토스 산을 여행함. 여러 수도원을 돌며 40일간 머무름. 이때 단테, 복음서, 불경을 읽음, 시켈리아노스와 함께 새로운 종교를 창시할 것을 몽상함.

 

1915년(32세) 시켈리아노스와 함께 다시 그리스를 여행함. 〈나의 위대한 스승 세 명은 호메로스, 단테, 베르그송〉이라고 일기에 적음. 수도원에 은거하며 책을 한 권 썼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음. 아마도 아토스 산에 대한 책인 듯함. 『오디세우스』,『그리스도』, 『니키포로스 포카스』의 초고를 씀. 10월 아토스 산의 벌목 계약을 위해 테살로니키로 여행함. 같은 달, 톨스토이를 읽고 문학보다 종교가 중요하다고 결심하며, 톨스토이가 멈춘 곳에서 시작하리라고 맹세함.

 

1917년(34세) 전쟁으로 석탄 연료가 부족해지자 기오르고스 조르바라는 일꾼을 고용하여 펠로폰네소스에서 갈탄을 캐려고 시도함. 이 경험은 1915년의 벌목 계획과 결합하여 뒷날 소설『그리스인 조르바』로 발전됨.

 

이쯤되면 '아토스 산'이 갑자기 카잔차키스에게 너무나 중요한(?) 산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작가는 실제로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수도원 풍경'을 아주 자세히 묘사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정작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한 작가의 소설 속에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아토스 산'의 흔적을 찾다가 가장 웃지 못할 일은 결국 '돼지'까지 찾아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속에서 '수도원 살인사건'까지도 꾸며낸 작가가 '아토스'와 함께 '돼지'를 언급했다는 사실이 제겐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더군요. 제 두 눈이 다 번쩍할 지경이었으니까요......

 

 수도승은 한동안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의 두 눈이 광채를 발했다.

「무얼 주시겠소?」그가 물었다.

「무얼 원하나?」

「절인 대구 1킬로그램하고 브랜디 한 병.」

 조르바가 허리를 구부리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자네 속에 악마가 들어앉은 건 아닐까, 자하리아?」

「어떻게 아시지요?」찔끔하면서 그가 반문했다.

「나 역시 아토스 산에서 왔네. 그래서 그곳 물정은 좀 아는 편이지.」조르바가 대답했다.

 수도승은 머리를 떨구었다.

「그래요. 내 배 속에 악마가 한 마리 들어앉아 있어요.」

 

 

곧 고원이 나타났다. 고원 저쪽에서 바위와 소나무로 들러싸인 성모의 수도원이 보였다. 바깥 속세와는 담을 쌓고 이 녹색의 고원 위에 조용히 미소 지으며, 정상의 고결함과 평야의 부드러움을 깊이 있게 조화를 이루고 서 있는 수도원은 내 눈에 인간의 명상을 위해 고른 더없이 훌륭한 은신처로 보였다.

 

나는 생각했다. 〈여기에서라면 맑은 정신은 인간에게 걸맞은 종교적 광희(狂喜)로 가꿔 갈 수 있으리. 험하고 초인간적인 정상도, 게으르고 풍성한 평야도 아니다. 그러나 인간다운 맛을 잃지 않고 영혼을 고양시키는 곳으로는 더도 덜도 아닌,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이런 곳은 영웅에게도 돼지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 오직 인간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이런 곳이니 고대 그리스 신전이나 최고의 사원이 있을 수밖에. ······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중에서

 

 

제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덧붙일 게 한 가지 더 남았네요. 저도 이번에 붉은돼지 님의 재미난 글 덕분에『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라는 책을, 그것도 이미 절판된 몹시도 희귀한(?) 책을 중고시장에서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건져올렸답니다. 자칫 저 푸른 바다 밑으로 영영 잠겨버릴 뻔한 책을 이렇게 뒤늦게나마 발굴해서 좋은 글과 함께 소개해 주신 붉은돼지 님께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씀을 다시금 전합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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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4. 5 추가)

따라서 우리는 발작의 시작을 느끼기라도 한 양 가만있거나 달아나 평정 속으로 피신하는 것이 상책이라네. 우리가 넘어지거나 남들을 덮치지 않으려면 말일세. 우리는 십중팔구 친구들을 덮치기에 하는 말이네. 우리는 아무나 가리지 않고 사랑하거나 시기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분노가 공격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우리는 적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자식과 부모에게도, 심지어 신과 들짐승과 무생물에게도 분노하는 것이라네. 예컨대 타뮈리스는

 

황금을 입힌 뤼라의 양쪽 팔을 부수고

잘 울리는 현들을 끊어버렸다.

 

판다로스는 자신의 활을 "손수 분질러" 불 속에 처넣지 않으면 자신이 저주받아도 좋다고 했네. 크세르크세스도 바다에 낙인을 찍고 채찍질했을 뿐 아니라, 아토스 산에 편지를 써 보냈네.26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신과 같은 아토스여, 다루기 힘든 큰 돌들로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말지어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그대를 베어 바다에 던지리라." 분노가 하는 짓들은 때로는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우습기도 하다네. 그래서 여러 격정 중에서도 분노가 가장 미움받고 멸시받는 것이라네.

 

주석 26 크세르크세스(Xerxes)는 기원전 480년 제2차 페르시아 전쟁 때 페르시아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침입한 페르시아 왕이다. 그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에 선교(船橋)를 놓고 아토스 산을 둘러가는 위험한 항해를 피하려고 반도의 지협에 운하를 건설하고 바다를 채찍질하는 등 오만의 극치를 보였다. 헤로도토스, 『역사』7권 22∼24장, 35장 참조. 크세르크세스가 아토스 산에 편지를 써 보냈다는 이야기는 『역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 플루타르코스, 『수다에 관하여』,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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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4-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토스와 관련하여 저런 사연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오렌님은 희랍고전에 대하여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계시는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ㅎㅎㅎㅎ 대개는 그냥 한두번 봐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ㅎㅎㅎ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예전부터 한번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오렌님의 페이퍼에 힘입어 저도 드디어 구입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주문넣었습니다. 로마제국쇠망사를 읽듯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세월대로 읽어볼 요량입니다. 제가 아직 로마제국쇠망사를 읽고 있는데요.. 이런 대작들은 결국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ㅎㅎㅎㅎ..한 번 읽었다고 해도 뭐 기억나는 것도 거의 없지만서도 어쨋거나 읽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그런 한심한 생각합니다. ^^

oren 2016-04-04 16:51   좋아요 0 | URL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몹시 두툼한 책이긴 하지만, 한번 붙잡고 읽다 보면 `온갖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들`을 끊임없이 마주치는 재미 때문에 뜻밖에도 금세(?)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답니다. 물론 온갖 낯선 지명과 인명 때문에 처음엔 좀 곤란을 겪기도 하지만, 그런 어려움들만 어느 정도 참아내기만 하면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완독할 수 있는 책이랍니다. 아무려면 『로마제국쇠망사』보다 읽기 어렵기야 하겠습니까? 저도 『로마제국쇠망사』는 축약본만 읽었고, 완역본은 진작에 사 놓고도 `엄두가 나지 않아` 여태껏 읽을 생각을 못하고 있답니다. 물론 그 책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볼 작정이랍니다.

아, 참.. 다치바나 다카시의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는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답니다. 순전히 붉은돼지 님 덕분에 말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다치바나의 책 속에도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담긴 여러 흥미로운 얘기들이 여럿 인용되고 있어서 더욱 반갑더군요. 헤로도토스의 책 뿐만 아니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그리스 철학자 열전』등 제게 그리 낯설지 않은 책들도 짬짬이 소개되어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게다가 저도 늘 가 보기를 꿈꾸는 `에게 해를 둘러싼 숱한 고대의 유적들`을 코 앞에서 생생하게, 더군다나 아주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답니다. 언젠가 제가 그 책 속에 담긴 풍경들과 직접 맞닥뜨리는 감격스런 날이 온다면 그건 아마도 틀림없이 바로 저 책 속에 담긴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사진과 글들`을 이번 기회에 아주 제대로 만난 데 힘입은 바가 결코 적지 않았음을 다시금 상기할 게 틀림없지 싶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4-1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 저도 무척 좋아하는 책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책 중에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oren 2016-04-12 00:01   좋아요 1 | URL
오... 그렇군요. 저는 여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는데,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라는 책만큼은 정말 좋더군요. 공감이 크게 느껴지는 글들도 참 많았고, 그리스와 터키 등지의 고대 유적지에서 저자가 홀로 느꼈던 `남다른 감회`와 마주할 때는 저도 마치 `그곳에서` 함께 머무는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로 좋더군요.

고양이라디오 2016-04-11 23:58   좋아요 0 | URL
중고책으로 구입하셨다니 부럽습니다ㅎ 그리스와 지중해 꼭 가보고 싶어요ㅎ

oren 2016-04-12 00:03   좋아요 0 | URL
저도요.. 저는 이집트 쪽과 이탈리아 쪽은 두루 둘러봤는데, 정작 그리스와 터키 쪽은 가 보지를 못해서 이런 책들을 읽으면 아주 애가 탈 지경이랍니다. ㅎㅎ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소위 '인류를 대표한다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내리 세 판을 불계패로 당하고 나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나, 인간이 발전시킨 기술 앞에서 우리가 옴짝달싹 못하고 어쩔 줄 몰라 전전긍긍했던 게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당장 '북한 핵' 문제만 하더라도 어느 영특한 천재가 이미 오래 전에 찾아낸 '새로운 기술' 덕분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엄청난 계산능력'을 자랑하는 수퍼컴퓨터가 바둑의 최고수 한 명을 단지 내리 세 번 꺾었다고 해서 너무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지 않을까? 그렇지만 막상 당하고 나니 기분이 영 말이 아니다. 제 꾀에 스스로 속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이번 충격은 좀 쎄다. 백여 년 전에 니체가 '인류의 도덕'에 대해 거창하게 주장했던 말들도 오늘은 죄다 '알파고'에 대해 늘어놓은 말처럼 들린다...

 

 * * *

 

훨씬 후에야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인식자들조차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 여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한 번도 자신을 탐구해본 적이 없다. ㅡ 우리가 어느 날 우리 자신을 찾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 너희의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말하는 것은 옳다. 우리의 보물은 우리 인식의 벌통이 있는 곳에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날개 달린 동물이자 정신의 벌꿀을 모으는 자로 항상 그 벌통을 찾아가는 중에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쓰는 것은 본래 한 가지 ㅡ 즉 무엇인가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는' 것뿐이다. 그 외의 생활, 이른바 '체험'에 관해서라면, ㅡ 또한 우리 가운데 누가 그런 것을 살필 만큼 충분히 진지하겠는가? 아니면 그럴 시간이 충분한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러한 일에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몰두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 우리의 마음은 거기에 없었다 ㅡ 거기에는 우리의 귀마저 단 한 번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신적인 경지로 마음을 풀어놓고 자기 자신에 깊이 몰두해 있는 사람의 귀에 마침 온 힘을 다해 정오를 알리는 열두 번의 종소리가 울려퍼졌을 때, 그 사람이 갑자기 깨어나 "지금 친 것이 도대체 몇 시인가?"라고 묻는 것처럼, 우리도 때때로 훨씬 후에야 귀를 비비면서 아주 놀라고 당황해서 "도대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체험한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더 나아가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물으면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중에 이르러서야 우리의 체험, 우리의 생활, 우리 존재의 열두 번의 종소리의 진동을 모두 세어보게 된다 ㅡ 아! 우리는 그것을 잘못 세는 것이다 ······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히 의미를 지닌다. ㅡ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

 

 - 니체, 『도덕의 계보』, <서문>, 제1절

 

 * * *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대담하고도 냉철한 사유가 중의 한 명인 《도덕감의 기원에 관하여》의 저자가(최초의 비도덕주의자인 니체라고 읽을 것) 인간 행동에 대해 자기의 결정적이고도 통렬한 분석에 의해 이른 자기의 핵심 명제는 무엇인가? ······· 이 명제가 역사적인 인식의 망치질에 의해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지면 언젠가는, 아마도 미래의 언젠가는 인류의 '형이상학적 욕구'의 뿌리를 발본색원하는 도끼가 될 것이다. ㅡ 이것이 인류에게 더 많은 축복일지 더 많은 저주일지,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어쨌든 가장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명제로서, 많은 결실을 맺으면서도 동시에 공포스러운 명제이자, 모든 위대한 인식이 갖고 있는 이중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명제이다 ······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제6절

 

 * * *

 

  ('인간의 위험천만한 위대성'에 관해서라면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의 노래도 결코 빼놓을 수 없겠다 싶다.)

        코로스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다 하여도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네.

사람은 사나운 겨울 남풍 속에서도
잿빛 바다를 건너며 내리 덮치는
파도 아래로 길을 연다네.
그리고 신들 가운데 가장 신성하고
무진장하며 지칠 줄 모르는 대지를
사람은 말馬의 후손으로
갈아엎으며 해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돌아서는 쟁기로 못살게 군다네.

그리고 마음이 가벼운 새의
부족들과 야수의 종족들과
심해 속의 바다 족속들을
촘촘한 그물코 안으로 유인하여
잡아간다네. 총명한 사람은.
사람은 또 산속을 헤매는 들짐승들을
책략으로 제압하고,
갈기가 텁수룩한 말을 길들여
그 목에 멍에를 얹는가 하면,
지칠 줄 모르는 산山소를 길들인다네.

또한 언어와 바람처럼 날랜 생각과,
도시에 질서를 부여하는 심성을 사람은 독학으로
배웠다네, 그리고 맑은 하늘 아래서 노숙하기가
싫어지자 서리와 폭우의 화살을 피하는 법도.
사람이 대비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 대비 없이 사람이 미래사를 맞이하는 일은
결코 없다네. 다만 죽음 앞에서 도망치는
수단을 손에 넣지 못했을 뿐이라네.

하지만 사람은 고통스런 질병에서
도망치는 방법은 이미 궁리해냈다네.

발명의 재능에서
기대 이상으로 영리한 사람은
때로는 악의 길을 가고,
때로는 선의 길을 간다네.
그가 국법과, 신들께 맹세한 정의를
존중한다면 그의 도시는 융성할 것이나,
무모하게도 불미스런 것과 함께하는 자는
도시를 갖지 못하는 법이라네.

 - 소포클레스, 《안티고네》332∼372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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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사랑에 대한 내 정의를 들을 만한 귀를 갖고 있는가?

 

사람들은 강건하게 자기 자신을 잡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용감히 자신의 두 다리로 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사랑할 없다. 여자들은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 그들은 비이기적이면서도 한갓 객관적일 뿐인 남자의 사랑에는 악마처럼 군다 ······ 이 대목에서 내가 여자들을 알고 있다는 추측을 감히 해도 될까? 그런데 이것은 내 디오니소스적 지참금의 일종이다. 내가 영원한 여성에 대한 최초의 심리학자일지 누가 알겠는가? 여자들은 모두 나를 사랑한다 ㅡ 이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 아이를 낳을 도구가 없는 '해방된' 여자들, 이런 사고를 당한 여자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ㅡ 다행스럽게도 내 의지는 내가 갈갈이 찢기게 놔두지 않는다 ; 완벽한 여자가 사랑을 하면 갈갈이 찢어버린다 ······ 나는 이런 매혹적인 광란하는 여자들을 알고 있다 ······ 아아, 이 어떤 위험하고도 살금살금 기어다니는 지하 세계의 작은 맹수란 말인가! 그러면서도 어찌 호감을 주는지! ······ 하지만 복수에 불타는 비소한 여자는 운명조차도 달려가 넘어뜨려버린다. ㅡ 여자는 남자보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악하며, 더 똑똑하기도 하다 ; 여자들의 친절은 이미 퇴화의 한 형태인 것이다. ······ 소위 말하는 '아름다운 영혼' 전부에게는 근본적인 생리적 지병이 있다, ㅡ 그 모든 지병을 다 말하지는 않으련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의학자처럼 되어버릴 테니. 그뿐 아니라 평등권에 대한 투쟁도 병의 한 증후이다 : 모든 의사가 알고 있다. ㅡ 더 여자다운 여자일수록 제 권리들을 위해 격렬히 항거한다 : 자연 상태, 양 성 사이의 영원한 싸움은 그녀들에게 전적인 우위를 부여한다. ㅡ 사랑에 대한 내 정의를 들을 만한 귀를 갖고 있는가? 사랑 ㅡ 그 수단은 싸움이고, 그 근본은 성에 대한 불구대천의 증오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의된 사랑만이 철학자에게 적합한 유일한 사랑인 것이다. ㅡ 여자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ㅡ '구원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들어보았는가? 아이를 갖게 한다는 것이 내 대답이다. 여자는 자식들을 필요로 하고, 남자는 언제나 한갓 수단일 뿐이다 : 이렇게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 ㅡ '여자들의 해방' ㅡ 이것은 여자로서는 실패작, 즉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의 아이를 잘 낳는 여자들에 대한 본능적인 증오이다 ㅡ '남자'에 대한 싸움은 언제나 수단이고 구실이며 작전일 뿐이다. 자기네들을 '여자 그 자체', '고등한 여자', '여자 이상주의자'로 끌어올리면서 그녀들은 여자의 일반적 수준을 끌어내리고자 한다 : 그것을 위해서는 고등학교 교육, 바지, 정치적 참정권보다 더 확실한 수단은 없다. 근본적으로 해방된 여자들은 '영원한 여성'의 세계에서는 아나키스트들이다. 그들은 복수를 가장 심층적인 본능으로 하는 처우를 잘 받지 못하는 자들이다 ······· 가장 악의에 차 있는 '이상주의' 족속 전체의 목표는 ㅡ 그런데 이런 것은 남자들에게서도 등장한다. 그 예로 전형적인 노처녀 헨릭 입센H. Ibsen이 있다 ㅡ 성적 사랑의 자연적인 부분, 성적 사랑에 대한 거리낄 것 없는 양심을 독살하는 것이다 ······ 이런 고찰에 있어서의 나의 점잖으면서도 엄격한 생각에 어떤 의심의 여지도 남기지 않기 위해, 내 도덕 법전으로부터 악덕에 관한 한 항을 옮겨보겠다 : 악덕이란 말로 나는 모든 종류의 반자연에 대한 싸움을 벌인다. 아름다운 말을 더 좋아한다면 이상주의에 대한 싸움을 벌인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아무튼 그 항의 구절은 이러하다 : "순결에 대한 설교는 반자연으로의 공공연한 도발이다. 성생활에 대한 모든 경멸, 성생활을 '불결하다'는 개념으로 더럽히는 것은 다 삶에 대한 범죄 자체다 ㅡ 삶의 성령에 대한 진정한 죄이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제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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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봉인(또는 ˝그렇다˝와 ˝아멘˝의 노래)

 

 

(밑줄긋기)

 

문체가 언제나 전제하는 것

 

문체 기법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도 또한 언급해보겠다. 기호의 속도를 포함해서 그 기호를 통한 파토스의 내적 긴장 상태를 전달하는 것 ㅡ 이것이 문체의 의미이다 ; 그리고 나의 내적 상태들이 특출나게 다양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내게는 수많은 문체의 가능성이 있다 ㅡ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 중에서 가장 다종 다양한 문체 기법들이 말이다. 내적 상태를 정말로 전달하는 문체, 기호와 기호의 속도와 제스처를 ㅡ 복합문Periode의 규칙들은 모두 제스처 기법이다 ㅡ 잘못 파악하지 않는 문체는 좋은 문체이다. 내 본능은 여기서 실수하지 않는다. ㅡ 좋은 문체 그 자체라고 하는 것 ㅡ 이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 '선 그 자체', '물 그 자체'처럼 하나의 순진한 우매함이자 '이상주의'에 불과하다 ······ 문체가 언제나 전제하는 것은 문체를 들을 귀가 있다는 것 ㅡ 그와 동일한 파토스를 가질 수 있고 또 그 파토스에 적합한 자들이 있다는 것, 자기를 전달할 만한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내 차라투스트라도 우선 그런 자들을 찾는다 - 아아, 그는 더 오랫동안 찾아야 할 것이다! ㅡ 사람들이 우선 그의 말을 들을 자격을 갖추어야만 하기에 ······

 

(중략)

 

위대한 리듬 기법, 복합문의 위대한 문체가 숭고하고도 초인간적인 열정의 거대한 상승과 하락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이 나에 의해 비로소 발견되었다.; 《차라투스트라》3부 마지막 장인 <일곱 개의 봉인>이라는 표제의 송가에 의해 나는 지금까지 시라고 불리어온 것의 위로 천 마일이나 높이 날아올랐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제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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