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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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주인공들

 

그리스 비극의 아폴론적 부분, 즉 대화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간단하고 투명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대화는 그리스인들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다. 그리스의 본성은 춤에서 드러난다. 춤에서 가장 큰 힘은 잠재력에 불과하긴 하지만 유연하고 화려한 율동 속에서 자신을 살짝 드러내기 때문이다. 소포클레스의 주인공들은 아폴론적으로 단호하고 명료한 언어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언어의 가장 깊은 근원을 단번에 보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 근원에 이르는 길이 그렇게 짧다는 사실에 놀란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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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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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밀접하게 묶여 있는 합창단은 연극 전체의 모태

 

그리스인들의 다른 모든 합창 서정시는 아폴론적 가수 개인의 거대한 감정 고양에 불과하다. 반면, 디오니소스 송가에서는 의식이 없는 배우들로 구성된 한 공동체가 우리 앞에 나타나는데 그들은 서로 변신했다고 행각한다.

 

마법은 모든 극예술의 전제 조건이다. 이러한 마법의 힘 속에서 디오니소스적 도취자는 스스로를 사티로스로 보고, 그리고 그는 사티로스로서 다시금 신을 본다. 즉, 그는 자신의 변신을 통해 자기 밖에서 새로운 환영을 자신의 현상태의 아폴론적 완성으로서 보는 것이다. 이 새로운 환영으로 연극은 완전해진다.

 

이러한 인식에 의하면 우리는 그리스 비극을, 아폴론적 형상의 세계 속에 스스로를 늘 새롭게 표출시키는 디오니소스적 합창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비극과 밀접하게 묶여 있는 저 합창단은 전체 대화의, 다시 말해 전체 무대 세계, 연극 전체의 모태라고 말할 수 있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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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시인이 될 것이다

 

우리는 현대적 재능이라는 특이한 약점으로 말미암아 미적 근원 현상을 너무 복잡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은유는 진정한 시인에게는 수사학적 형상이 아니라 그의 눈앞에서 어떤 개념을 대신하여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대표적 형상이다. 인물은 진정한 예술가에게는 주워 모은 개개의 특질들로부터 합성한 전체 같은 것이 아니고, 그의 눈앞에서 끈질기게 살아가는 인격이다. 이 인물이 지속적으로 계속 살아가고 계속 활동한다는 점에서만 화가가 그린 동일한 환영과 구별된다. 호메로스는 어떻게 모든 시인들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 그가 그만큼 더 많이 관조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나쁜 시인이기 때문에 시에 관해 그토록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미적 현상은 단순하다. 단지 지속적으로 살아 있는 유희를 바라보고 항상 정령의 무리들에 둘러싸여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져보라. 그러면 시인이 될 것이다. 단지 스스로 변신하여 다른 사람의 몸과 영혼으로 말하려는 충동을 느껴보라. 그러면 극작가가 될 것이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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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원형 계단식 구조로 된 그리스 극장

 

아티케 비극의 관객은 극장 주악석의 합창단에게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결국 근본적으로 청중과 합창단 사이의 대립이 없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춤추고 노래하는 사티로스의 사람들로 이루어지거나 혹은 이 사티로스에 의해 대변되는 사람들로 구성된 거대하고 숭고한 합창단이기 때문이다. 슐레겔의 말은 여기서 우리에게 심오한 의미로 해명되어야 한다. 합창단은, 그것이 유일한 관객, 즉 무대의 환상 세계의 관객인 한에서 "이상적인 관객"인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관객으로서의 청중은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관객석이 하나의 중심을 향해 내려가는 반원형 계단식 구조로 된 그들의 극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주변의 전체 문화 세계를 완전히 간과하고 또 무대를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면서 자기 자신이 합창단원이 되었다고 오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러한 통찰에 따라 우리는 원시 비극의 원시적 단계의 합창단을 디오니소스적 인간의 자기 반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 반영의 현상은 배우들의 과정을 통해 가장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배우는 정말 재능이 있을 경우 자신에 의해 서술되어야 하는 배역의 상이 자기 눈앞에서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티로스 합창단은 무엇보다도 디오니소스적 대중의 환영이며, 무대 위의 세계는 다시금 사티로스 합창단의 환영이다. 이 환영의 힘은 "현실"이 주는 인상에 대항하여, 즉 주위 관람석에 자리 잡고 앉은 교양인들에 대항하여 시선을 둔화시키고 무감각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렬하다. 그리스 극장의 형태는 호젓한 숲 속의 골짜기를 연상케 한다. 무대의 건축은, 산 위에서 도취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바코스 신자들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빛나는 구름의 모습처럼 보이며, 그 한가운데에 디오니소스의 모습이 나타나는 액자처럼 보인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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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구원과 치료의 마술사로서 다가온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등불의 빛이 대낮의 빛에 의해 사라지듯이 문명은 음악에 의하여 그 빛을 상실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의 문화인은 사티로스 합창단 앞에서는 자신이 제거되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와 사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극이 강력한 통일 감정에 밀려나고 이 감정은 자연의 심장부로 되돌아간다는 디오니소스적 비극의 직접적 영향이다. 사물의 근저에서 생명은 현상들의 온갖 변화 속에서도 파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즐거움에 가득 차 있다는 ㅡ 내가 이미 여기서 암시한 바와 같이 모든 진정한 비극이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수단인 ㅡ 형이상학적 위안, 이 위안은 사티로스 합창단으로서, 자연 존재의 합창단으로서 구체적으로 명료화되어 나타난다. 이 자연 존재는 말하자면 모든 문명의 배후에서 부단히 살아 있어 근절할 수 없으며, 세대와 민족사의 온갖 변천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동일한 것으로 남아 있다.

 

몹시 섬세한 고통과 몹시 강렬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유별난 능력을 지닌 사려 깊은 그리스인은 이러한 합창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는 예리한 시선으로 소위 세계사의 무시무시한 파괴충동과 자연의 잔인성을 꿰뚤어 보았고, 의지에 대한 불교적 부정을 동경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 예술이 그를 구원한다. 그리고 예술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은 ㅡ 삶이다.

 

실존의 일상적 제한과 한계를 파괴하는 디오니소스적 상태의 황홀은 다시 말해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 일종의 무감각적 요소를 함축한다. 과거에 개인적으로 체험한 모든 것은 이 상태 속으로 침잠해버린다. 이렇게 망각의 심연에 의하여 일상적 현실의 세계와 디오니소스적 현실의 세계가 서로 구분된다. 그러나 저 일상의 현실이 다시 의식 속에 되살아나면, 그 현실은 구토를 느끼면서 현실로서 지각된다. 금욕적이고 의지를 부정하는 심정이 그와 같은 상태의 결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디오니소스적 인간은 햄릿과 유사하다. 양자는 우선 사물의 본질을 올바로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인식했다. 그리고 행위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구토를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는 사물의 영원한 본질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지리멸렬한 세계를 다시 정돈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우스꽝스럽거나 치욕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식은 행위를 죽인다. 환영에 의해 베일이 드리워진 상태가 행위에 속한다 ㅡ 이것이 햄릿의 가르침이다. 이것은 너무 많이 반성하여, 말하자면 가능성의 과잉 때문에 행위에 이르지 못하는 몽상가 한스의 진부한 지혜가 아니다. 반성이 아니라, 그렇다 이것은 아니다! ㅡ 진젇한 인식, 무서운 진리에 대한 통찰이, 햄릿뿐만 아니라 디오니소스적 인간에게서도, 행위를 재촉하는 모든 동기를 압도한다. 이제 위안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동경은 사후의 세계와 신들까지도 뛰어넘는다. 실존은, 신들 속에서 혹은 불멸의 피안에서 빛나는 자신의 모든 반영들과 함께, 부정된다. 한번 관조된 진리를 의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제 인간은 어디에서나 존재의 공포와 불합리를 보게 된다, 이제 그는 오필리아의 운명 속에 있는 상징을 이해한다. 이제 그는 숲의 신 실레노스의 지혜를 인식한다. 그것이 그를 구역질 나게 한다.

 

여기, 이러한 의지의 최고 위험 속에서 예술이 구원과 치료의 마술사로서 다가온다. 오직 예술만이 실존의 공포와 불합리에 관한 저 구역질 나는 생각들을 그것과 더불어 살 수 있는 표상들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 표상들은 공포를 예술적으로 통제할 경우 숭고한 것이고, 불합리의 구역질로부터 예술적으로 해방시킬 경우 희극적인 것이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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