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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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길을 비켜 주시오. 그리고 내가 옛날의 자유로운 몸으로 돌아가도록 놔두시오. 현재의 이 죽음과 같은 생활에서 되살아나도록 지난 삶을 찾으러 가게 해주시오. 나는 통치자가 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오. 도시나 섬을 공격하고자 하는 적으로부터 그것들을 방어하려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라오. 나는 법을 만들고 땅이나 왕국을 지키는 일보다 밭을 일구고 땅을 파고 포도나무를 베고 가지를 치는 일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오. 성 베드로는 로마에 있을 때 제일 편안하다는 말처럼, 사람마다 각자 타고난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어울린다는 얘기요. 손에 통치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상인 왕홀보다 낫 한 자루 쥐고 있는 게 내게는 더 잘 어울린다오. 나를 굶겨 죽이려 하는 염치없는 의사가 내리는 처방의 비참함에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스파초312나 질리도록 먹고 싶소. 그리고 통치한답시고 거기에 구속된 채 네덜란드산 이불 잠자리에 들고 검은담비 옷을 입고 사느니, 차라리 자유롭게 여름에는 떡갈나무 그늘에 드러눞고 겨울에는 새끼 양가죽을 입고 살고 싶다오. 그대들은 안녕히 계시오. 그리고 내 주인이신 공작님께는, 내가 벌거숭이로 태어나 벌거숭이로 남았다고 전해 주시오. 나는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없소이다. 이 말은 곧 내가 다른 섬의 통치자들과는 완전히 반대로, 일전 한 푼 없이 이 섬에 들어와 일전 한 푼 없이 나간다는 뜻이오. 자, 나갈 수 있게 비키시오. 난 고약으로 치료하러 간다오. 오늘 밤 내 몸 위를 산책한 적들 덕분에 갈비뼈가 모두 주저앉은 듯하오.」

(660∼661쪽)

 

312 gazpacho. 토마토, 파프리카, 양파, 올리브기름 등을 넣어 만든 차가운 수프. 주로 더울 때 먹는다.

 

 - 『돈키호테 2』, <53. 산초 판사의 힘들었던 통치의 결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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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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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걸어야 하지, 이 불행한 내가?」산초가 답했다. 「이 판자들이 꿰매 놓은 듯 내 몸에 딱 붙어서는 움직이는 걸 방해하고 있으니 무릎뼈 하나 놀릴 수가 없단 말이오. 당신들이 나를 안아다가 어느 문에다 가로로 놉히거나 세우거나 해주시오. 그러면 내가 이 창으로든 아니면 내 몸으로든 그 문을 지킬 테니 말이오.」

 

「그러지 말고 어서 걸어 보세요, 통치자 나리!」다른 사람이 말했다.

 

「판자보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리께서 걸음을 떼지 못하시는 것 같네요. 그러지 말고, 자 서두르세요, 늦었습니다. 적들은 계속 불어나고 함성도 더 높아지고 있으니 위험이 더 커지고 있어요.」(657∼658쪽)

 

 - 『돈키호테 2』, <53 산초 판사의 힘들었던 통치의 결말에 대하여>

 

산초가 몇 시인지 묻자 그들은 벌써 동이 트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잠자코 옷을 입기 시작했다. 무슨 일로 저렇게 급하게 옷을 입는지 몰라 모두가 그를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옷을 다 입은 산초는, 워낙 녹초가 되어 있었기에 성큼성큼 걷지도 못하고 느릿느릿 걸어 마구간으로 갔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의 뒤를 따라갔다. 산초는 자기의 잿빛에게 다다르자 그를 얼싸안더니 이마에 입을 맞추는 인사를 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리로 오렴, 나의 동료이자 친구이며 나와 고생과 가난을 같이해 온 잿빛아. 너와 마음을 나누고 네 마구를 손질하고 네 작은 몸뚱이나 먹여 살릴 일 이외에는 다른 생각일랑 하지 않으면서 보낸 나의 시간들과 나의 나날들과 나의 해들은 행복했었지. 하지만 너를 내버려 두고 야망과 오만의 탑 위에 오르고 난 이후부터는 내 영혼 속으로 수천 가지 비참함과 수천 가지 노고와 수천 가지 불안이 들어오더구나.」(659∼660쪽)

 

 - 『돈키호테 2』, <53 산초 판사의 힘들었던 통치의 결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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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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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있어서 모든 것이 늘 같은 상태로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오히려 삶은 모두 원을 그리며 흘러가는 듯하다. 말하자면 중심에다 한 점을 놓고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봄은 여름을 추적하고, 여름은 한여름을 추적하며, 한여름은 가을을 추적하고, 가을은 겨울을, 그리고 겨울은 봄을 추적하니, 이렇게 세월은 멈출 줄 모르는 바퀴를 타고 구르고 또 구른다. 단지 인간의 목숨만이 세월보다 더 가볍게 그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인간의 목숨을 제한할 한계가 없는 다른 생애에서가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 볼 희망도 없이 말이다. 이 말을 회교도의 철학자인 시데 아메테가 하고 있다. 현생의 가벼움과 불안정성, 그리고 기대되는 내세의 영워한 삶을 이해하게 하는 이 말을, 많은 사람들은 신앙의 빛 없이 자연의 빛으로만 이해해 왔다. 하지만 여기 우리의 작가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산초의 통치가 순식간에 끝나 소멸되고 붕괴되어 그림자나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통치 이레째 되는 날 밤 산초는 빵과 포도주에 질려서가 아니라, 재판하고 의견을 내고 법규나 규정을 만드는 데 싫증이 나서 침대에 누웠다. 서글프게 배가 고파 오는데도 불구하고 졸음이 그의 눈동자를 감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때 바로 섬 전체를 가라앉힐 듯한 아주 요란한 종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산초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그 요란한 소리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려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고함 소리와 종소리에 더하여 이제는 나팔 소리와 북소리까지 끝없이 들여왔다. 산초는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침대에서 내려와 섰는데 바닥이 축축했다. 그는 슬리퍼만 신고 실내 가운은커녕 그 비슷한 것조차 걸치지 않은 채 방문으로 나갔다. 바로 그때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불붙은 횃불과 칼을 손에 들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복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전투 준비, 전투를 준비하시오, 통치자 나리,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섬에 수많은 적들이 침입해 왔습니다. 나리의 책략과 용기가 우리를 구해 주지 않으면 다 망하고 말 겁니다!」(655∼656쪽)

 

 -『돈키호테 2』 <53. 산초 판사의 힘드었던 통치의 결말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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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로 자네 멋대로 법을 만들고 그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말게. 이런 법은 흔히들 똑똑한 체하는 무지한 자들이 이용하는 것이라네. 부자가 하는 말보다 가난한 자의 눈물에 더 많은 연민을 가지도록 하게.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의 편만 들라는 건 아니네. 정의는 공평해야 하니까 말일세. 가난한 자의 흐느낌과 끈질기고 성가신 호소 속에서와 똑같이 부자의 약속과 선물 속에서도 진실을 발견하도록 해야 하네. 중죄인에게 그 죄에 합당한 무거운 벌을 내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경우에 서더라도, 너무 가혹한 벌은 내리지 말게. 준엄한 판관이라는 명성은 동정심 많은 판관이라는 명성보더 더 좋은 게 아니라서 그러하네. 혹시 정의의 회초리를 꺾어야 할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뇌물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자비의 무게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네. 자네의 원수와 관련한 소송을 재판할 일이 생길 때는, 자네가 받은 모욕은 머리에서 떨쳐 버리고 사건의 진실에만 생각을 집중해야 하네. 자네와 관계없는 사건에서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눈이 멀어서는 안 되는 법이니 말일세. 그런 일에서 만일 실수를 저지른다면, 대부분의 경우 그것을 만회할 방법은 없을 것일세. 설혹 있다 하더라도 자네 신용을 희생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재산도 잃을 것을 감수해야 한다네. 만일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자네에게 판결을 요구하러 온다면, 그녀의 눈물에 눈을 두거나 그녀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그녀가 요구하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생각해야 하네. 그녀의 눈물에 자네의 이성이, 그녀의 한숨에 자네의 착한 마음이 휘말려 버리는 게 싫다면 말일세. 체형으로 벌해야 할 사람을 말로써 학대하지 말게. 체형의 고통은 고약한 말을 보태지 않더라도 그 불행한 사람에게는 충분하네. 자네의 사법권 아래 들어올 죄인을 타락한 우리 인간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라고 생각하며 가엾게 여기게. 자네 쪽에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상대를 모욕하지 말고, 늘 인정과 자비를 베풀도록 하게. 하느님의 속성들이 모두가 다 똑같이 훌륭하긴 하지만 특히 자비의 속성은 정의의 속성보다 훨씬 눈부시고 뛰어나 보이기 때문이네. 만일 자네가 이러한 교훈과 이러한 법칙을 따른다면 산초, 자네는 오래 살 것이고, 자네의 명성은 영원할 것이며, 자네에 대한 상은 넘쳐나고, 자네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일세. ······ 그렇게 살다가 삶의 마지막 순간 죽음의 발걸음이 자네의 온화하고 완숙한 노년에 찾아들면, 자네 증손자들의 여리고 섬세한 손들이 자네의 눈을 감겨 주겠지. 지금까지 내가 자네에게 일러 준 것은 자네의 영혼을 장식할 가르침이었네. 이제는 자네 몸을 가꾸는 데 필요한 가르침을 들어 보게나.」(514∼516쪽)

 

 -『돈키호테 2』 <42. 산초가 섬을 통치하러 가기 전에 돈키호테가 그에게 준 충고와 신중하게 고려될 만한 다른 일들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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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먼저, 오 내 아들 같은 자여! 자네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하네.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이지. 지혜로우면 무슨 일에서도 실수가 없을 걸세. 다음으로는 자네 자신에게 눈길을 보내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도록 노력하게. 이것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지식일세. 자네를 알게 되면 황소와 같아지고 싶었던 개구리처럼 몸을 부풀리려는 일은 없을 게야. 만일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가면 고향에서 돼지를 길렀던 시절을 생각하게. 자네가 공작새의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꼬리 같은 미친 짓을 하려 할 때, 그러한 생각이 그 꼬리 밑에 숨어 있는 더러운 발을 떠올리게 해줄 걸세. ······」(512∼513쪽)

 

 -『돈키호테 2』 <42. 산초가 섬을 통치하러 가기 전에 돈키호테가 그에게 준 충고와 신중하게 고려될 만한 다른 일들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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