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의 ‘참된 인격‘에 관해서 다양하고 깊이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책
워렌 버핏이 ‘투자에 관한 책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 단언한 책
현명한 투자자 - 벤저민 그레이엄의, 완전개정판
벤저민 그레이엄 지음, 제이슨 츠바이크 논평, 박진곤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990년대 중반쯤에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조금은' 어렵게 느껴져서 책을 완독하지 못했었다. 그 이후 주식시장의 극심한 등락을 경험하고 나니, 다시금 '투자'에 관한 '기본'을 가다듬을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 시기에 다시 집어든 책이 바로 벤저민 그레이엄의 대표적인 저서인 이 책이었다.

1999년의 극심한 버블과 2000년의 참혹한 버블 붕괴를 겪고 난 이후, 다시금 시장이 (이라크 전쟁과 유가 급등과 북한의 서해안 침범과 SK그룹의 분식회계 등으로) 500포인트대 초반을 가리키고 있던 2003년 봄에, 차분하게 이 책을 집어 들고 집 근처인 일산의 마두도서관에 앉아서 다시금 펼쳐 읽어보니 정말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책 내용들이 가슴속으로 깊숙히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며칠간 이 책만 붙잡고 숙독과 정독을 하면서 다 읽고 나니 금새 '한번 더' 읽고 싶어졌다. 다시금 처음부터 다시 '정독'을 하면서 중요한 대목들은 꼬박 꼬박 대학노트에 옮겨 적었는데, 지금 그 독서노트을 뒤져보니 빼곡하게 14쪽을 채우는 분량이다.

지금은 그 당시 읽었던 '감명깊은 내용들'을 하도 여러번 되살펴 보고 다른 글에서 '인용'도 했기 때문에 너무 익숙해서 식상할 정도가 되었지만, 그 당시엔 캄캄한 어둠 속의 환한 '등불'처럼 내 가슴 속을 밝게 비춰 주던 '빛'과 같은 글이었다.

이 책에 대해 지난 수십년 동안의 쏟아진 엄청난 '찬사'에 더해 내가 굳이 또다른 찬사를 덧보탤 필요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진정한 '투자'의 핵심을 가르쳐 주는 책 가운데 이 책보다 더 훌륭한 책은 없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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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괴감이 드는 밤......
    from Value Investing 2012-03-16 03:43 
    증시가 연일 오르고 있다.증시가 이렇게 힘차게 솟아 오른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실컷(?) 상승한 뒤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결과를 놓고 그 원인들을 새삼 되짚어 보는 건 언제나 별 실익은 없는 경우가 많다.다만, 이런 증시의 상승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이 늦은 밤에도 잠 못 이루며 일말의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건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첫째, 외국인은 정말로 짧은 기간 동안에 한국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지분을
 
 
 
독서의 편린들

 

 

 

 











최근에 알라딘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그래서 자꾸 생각나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몽테뉴라는 사람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모신 책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걸 알라딘을 통해 알았는데, 원제 역시 'How to Live'이다. 부제를 보니 이 '하나의 질문'에 대해 20가지 '몽테뉴의 대답'을 엮어 만든 책인가 보다. 알라딘의 책소개를 좀 더 살펴보니  "몽테뉴 입문서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이라고 한다. 여기에다 더욱 흥미를 끄는 '책 소개'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어떻게 몽테뉴에게 접근해야 할지 궁금해 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그 책은 재미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읽지 마라. 야심 찬 사람처럼 교훈을 얻으려고 하지도 마라. 그 책은 ‘살기 위해서’ 읽어라.”



이쯤되면 정말 문제의 촛점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몽테뉴에게 접근할 것인가'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몽테뉴의 수상록'을 제대로 읽기 위해 꼭 '입문서'부터 먼저 읽는 게 과연 바람직한 '독서법'인가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몽테뉴의 생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래서 몽테뉴와 직접 만나서 그의 숨소리를 들어가며 그와 이야기를 직접 나누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들만큼 그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몽테뉴'가 쓴 책을 직접 펼쳐 읽어보는 게 가장 좋다고 본다.

물론 몽테뉴의 수상록이 워낙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두툼한 책이어서 쉽게(?) 집어들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의 책은 난해한 철학책이라기 보다는 '수상록'이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어쨌든 '에세이'에 가깝다.(비록 알라딘에서는 '인문학>철학 일반> 교양 철학'이라고 분류해 놓았지만 말이다)

 

 

쉽게 읽기 어려운 책들은 물론 많다. 심지어 소설 조차도 '히말라야의 고봉'처럼 오르기가 불가능한 산처럼 느껴지는 작품들도 있다. 내게는『율리시스』라는 작품이 그런 류의 책으로 보이는데, 이 두툼한 책을 볼 때마다, (젊을 때 나름대로 '암벽등반'을 열심히 배우고 나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갈 무렵에 맞닥뜨리게 된) '인수봉'과 같은 거벽 앞에 마주선 느낌이 들곤 한다. 왠지 모르게 '인정해야만 할 것 같은' 미묘한 감정과 '곤란함'과 '막막함'부터 맛보는 것이다.

『평생독서계획』을 쓴 클리프턴 패디먼은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스』에 대해 독자들에게 '세 가지 사항'을 권하고 싶다고 했는데(『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먼저 읽어라,『율리시스』의 경우 먼저 훌륭한 주석서를 읽어라, 주석서를 읽고 나서도 『율리시스』는 읽기가 쉽지 않다. ······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어라. 그런 다음 책을 내려놓았다가 1년 뒤에 다시 시작하라.), 나는 좀 더 무모하게 (패디먼의 권고를 아예 무시하고) 일단『율리시스』를 틈나는 대로 들춰보곤 한다. 물론 아직은 본격적으로 읽을 엄두는 나지 않지만, 높은 산을 오르고 싶은 '본능' 때문에 봉우리를 힐끔힐끔 올려다 보는 그런 심정을 느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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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턴 패디먼이『율리시스』에 대해 쓴 글을 조금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율리시스』는 침투하기가 불가능한 소설처럼 보인다. 이 높은 산은 단숨에 걸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올라갈 수는 있다. 이 산의 정상에 오르면 아주 풍요로운 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

이 책은 읽으면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곡들이 오래 듣고 연구할수록 그 풍부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듯이, 오로지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비밀스러운 뜻을 드러낸다. ······


『율리시스』를 읽으려고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모험이다. 또 독자들에게 큰 소득을 안겨줄 것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中에서



클리프턴 패디먼이『몽테뉴의 수상록』에 대해 쓴 글도 있다.

 

지난 4세기 동안 고전으로 읽혀 온 역사가 증명하듯이, 독자는 곧 몽테뉴의 매력, 지혜, 유머, 스타일, 정신적 경향에 호응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 견인주의자로 시작했으나, 곧 인간에 대해서 회의적인 견해를 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에 흥미가 있었으나 그 어떤 것도 확신하지 않았다. 그의 모토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 였다. 그의 상징은 한 쌍의 저울이었다. 그는 카톨릭 신자로 태어나 평생 카톨릭으로 살았고 죽을 때에는 종부성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저작은 자유주의 사상이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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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몽테뉴를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예 (몽테뉴의 입문서보다) 몽테뉴의 수상록부터 먼저 읽으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특히 최근에 쇼펜하우어가 쓴 책 속에서 발견한 '책구절'은 나의 이런 (입문서를 거치지 않고 원저작을 직접 읽는 게 좋다는) 평소의 생각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몹시도 강렬한' 주장을 여기에 소개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사실 나는 어려운 철학책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못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철학책'이 재미있게 읽히는 게 '나 스스로도'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최근 몇년 동안 만난 철학자들이라고 해봐야 기껏 세네카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키케로, 그리고 아담 스미스와 쇼펜하우어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책 속에 무수히 등장하는 고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도 머지 않은 장래에 다시 만나보고 싶고, 또한 여태껏 전혀 만나보지 못한 철학자들인 하이데거와 베르그송의 책들도 예전에 사놓고 모셔 두기만 했었는데, 요즘 들어서 조금씩 들춰보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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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철학적 성찰에 있어서는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 때문에 생각하고 탐구하고 한 자만이 뒤에 가서 타인의 이익도 되지만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정하여진 것은 다른 사람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을 위하여 생각하고 탐구하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일반적인 성의(誠意)라는 성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만하려고는 하지 않는 것이고, 또 자기 자신에게 씨없는 호도(胡桃)를 주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궤변과 미사여구는 없어지고 그 결과 간단히 기록하여 둔 문장도 그것을 읽으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게 된다. (500쪽)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제2판 서문 中에서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과 칸트철학을 이해한 사람과의 관계는 미성년과 성년과의 관계와 같다. 이 진리는 이성비판이 출판되고서 30년 동안은 조금도 역설적인 기분은 없었지만 오늘에 와서는 역설적으로 들리게 된다. 그렇게 된 이유는 칸트를 모르는 자들이 많아지고 칸트의 거작을 소홀하게, 혹은 성급하게 읽든지 또는 간접적인 소개문으로서 읽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그들이 올바르게 지도를 받지 못함으로 평범한, 따라서 철학하기에 맞지 않는 두뇌들의 철학적 논의와 또는 무책임하게도 세상 사람들이 이런 무리들에게 천거하는 궤변가들의 철학적 논의를 갖고 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하였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여러 개념의 혼란이나 또 총체적으로 이러한 교육을 받은 무리들이 스스로 철학적인 학설을 세우고 멋대로 과대평가하며 자부심에 도취하는 것과 같은 형용할 수 없는 무례함과 저잡성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철학을 다른 사람들의 서술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구제할 수 없는 그릇된 견해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 그러므로 칸트의 저작은 칸트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경우에도 그 틀린 경우마저 모두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가 있다. 그는 독창성을 찾고 있기 때문에 모든 참된 철학자에 관해서 본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들은, 그에 관한 한 최고도로 말할 수 있다. 즉 참된 철학자는 그들 자신의 저서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보고에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범한 정신을 가진 철학자들의 사상은 평범한 두뇌에 의한 여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형형(炯炯)한 빛을 발하는 양 눈의 위 넓고도 아름다운 이마에서 나온 사상은, 개인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둔한 눈초리가 박힌 좁고 압축된 두꺼운 두개골 속에 불편스럽게 밀어넣고, 낮은 지붕을 덮어서 쓸모 있게 만들어 놓으면 힘과 생명을 모두 잃고 전연 다른 것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말하자면 요철(凹凸) 거울과 같아 거기에 비치면 무엇이든 우툴두툴하게 보이고, 자체가 갖는 미의 조화를 잃은 채 조악하게 되어 버린다. 철학적 사상은 다만 그 사상을 수립한 사람 자신으로부터만이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을 연구하는 것을 갈망하는 사람은 철학에 관한 영원한 스승을, 그 스승의 저작인 고요한 성전(聖殿) 속에서 구하여야 한다. 참된 철학자들이 만든 저작의 어느 것을 보더라도 그 주요 장절(章節) 속 학설에는 범속한 두뇌의 소유자들이 행하는, 산만하고 사시적(斜視的)인 보고의 백배에 해당하는 것 같은 식견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더우기 이와 같은 범속한 인간들은 대개 그때그때의 유행 철학에 심히 사로잡혀 있거나 자기 자신의 생각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인들이 제3자의 손에 의해서 서술한 쪽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 경우에는 실제로 친화력이 작용하는 것같이 생각되며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것에 끌리고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가 이야기한 것도 다른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들으려고 한다. 이것은 아마 어린이들이 자기와 비슷한 것으로부터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는 상호교수의 학설과 동일한 원리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506쪽)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제2판 서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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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몽테뉴의 수상록을 처음으로 접한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을 앞둔 '1980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시골의 따스한 온돌방에 배를 깔고 엎드려 그 두툼했던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느라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함께' 시골의 겨울밤을 만끽하던 그 시절이 몹시도 좋았고 또 그립다. 그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나중에는 군대에 가서도 몽테뉴의 수상록을 챙겨 들고 '병영에서의 몽테뉴와의 만남'을 즐겼던 기억도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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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칠 현삼제(古七現三制)......  2004. 2.27 18:43    (http://cafe.naver.com/leadersbookclub/166)

누구는 '고칠 현삼제(古七現三制)'를 취하는 버릇이 있으나, 그것도 오히려 치우친 생각이요,
중용이 좋다고나 할까?

 - 양주동의 면학의 서(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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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연히 군대('83-'85)에서 기록했던 독서노트를 발견했는데..
독후감까지 자세히 적혀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더랬습니다.
독서 목록을 보고 나니..고칠현삼제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학창시절이나 군대 있을때는 세상 물정도 잘 모르던 때라 당연히 고전들만 찾게 되는
시절인데..젊을 때 고전들을 많이 읽지 못했던게 두고 두고 아쉬움으로 남는군요..
나이 사십 넘어서 이문열 삼국지를 읽어 보니 고교때 월탄 박종화님의 삼국지를 읽던 때의
그 가슴벅찬 감동들은 온데 간데 없고..온갖 권모술수들만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때 그 유명한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마라'는 말을 절감했더랬습니다..

제 경우에는 워낙 책을 잘 안 읽기도 했지만,
요즘들어 느끼는 점 하나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실용서적 중심으로 책을 읽다 보니
고전에서 느껴지는 책의 향기 같은 게 없어서 많이 아쉽다는 점입니다.
독서에는 때가 없다고도 생각되지만, 고전을 집어들 여유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독서에도 때가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참고 : 입대후 읽었던 책 목록..)

1. 파우스트(J.V.P. 괴테)
2. 소유냐 삶이냐(E.프롬)
3. 단절의 시대 (P.드러커)
4. 백년동안의 고독(G.마르께스)
5. 파리대왕(W.골딩)
6. 적과 흑(상,하)(스탕달)
7. 구토(J.P.사르트르)
8. 아들과 연인(상,하)(D.H.로렌스)
9. 백경(상,중,하)(H.멜빌)
10. 서울 1964년 겨울(김승옥)
11. 어린 왕자(생떽쥐페리)
12. 좁은 문(A.지드)
13. 이중인격(도스토예프스키)
14.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F.니체)
15. 영원한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크리슈나무르티)
16. 이 영원한 삶의 진리를 찾아서(R.M.릴케)
17. 정상에서 만납시다(G.지글러)
18. 데미안(H.헷세)
19. 역사의 연구 Ⅰ,Ⅱ (A.토인비)
20. 국가/소크라테스의 변명(플라톤)
21. 사회경제사(막스 베버)
22. 군주론/리바이어던(N.B.Machiavelli/T.Hobbes)
23. 방관자의 시대(피터 드러커)
24. 수상록(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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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한때는 몽테뉴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던 것 같다. 중세 유럽의 프랑스에서 그림같은 '성'에서 살며, 평생동안 수많은 '책'들을 읽으며, 또 수많은 시간들을 '생각'에 잠겨 지내며 '훌륭한 글'을 듬뿍 남기고 떠난 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한번쯤 '동경할 만한 이상적인 인물'로 비춰졌을 법하다.  아무튼 나에겐 몽테뉴 하면 무엇보다 먼저 '책과 독서'부터 연상되곤 하는데, '독서명언 100'과 같은 리스트에도 그의 명언은 어김없이 늘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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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명언 100선


주자(朱子)

책을 읽으려면 먼저 마음을 안정시켜 고요한 물이나 맑은 거울 같게 해야 한다. 어두운 거울이 어찌 이치나 사물을 제대로 비출 수 있겠는가.

Mark Twain
(1835~1910)

좋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책을 읽는다고 해도 문맹인 사람보다 나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Daniel J. Boorstin

베스트셀러? 그저 잘 팔렸으니까 베스트셀러겠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Charles Caleb Colton
(1780~1832)

읽는 사람에게 생각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책들이 많다. 그렇게 된 까닭은 간단하다. 그 책을 집필한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고 집필했기 때문이다.

Gaston Bachelard
(1884~1962)

아침부터 내 책상 위에 쌓인 책 앞에서 책읽기의 신에게 이 독자로 하여금 책을 탐독하게 해 주십사 기도 드린다. 저 높은 하늘에 있는 천당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 아닐까?

Desiderius Erasmus
(1466~1536)

약간의 돈이 생길 때마다 나는 책을 산다. 그렇게 하고 남는 돈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산다.

김현

책 읽기가 고통스러운 것은, 책읽기처럼 세계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Marcus Tullius Cicero
(106~43 BC)

책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방, 그것은 영혼이 없는 육신일지니.

Jorge Luis Borges
(1899~1986)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런 모습으로.

William Morris
(1834~1896)

모든 인간 사회가 지녀야 할 즐거운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집, 그리고 아름다운 책이다.

Franz kafka
(1883~1929)

우리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Robert G. Ingersoll
(1833~1899)

사랑을 배워라, 특히 좋은 책을 사랑하는 것을 배워라. 세상의 모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물이 좋은 책 안에 들어있다. 배우고 노력하고 애쓰지 않는다면 그 보물을 찾을 길은 없다.

Ralph Waldo Emerson
(1803~1882)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Anatole France
(1844~1924)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존숭하는 책, 그런 책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일 가능성이 크다.

Edward G. Bulwer-Lytton
(1803~1873)

과학이라면 가장 새로운 것을 읽고, 문학이라면 가장 오래 된 것을 읽는 편이 좋다.

Steven Spielberg
(1947~ )

한 세대의 독자들이 결국 한 세대의 필자들로 이어질 것이다.

William Shenstone (1714~1763)

조심할지어다. 책에서 얻은 지식이 진짜 세상에서 얻은 지식을 방해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Austin O'Malley (1858~1932)

서평을 하는 사람들, 그들은 출판사가 개최한 서커스 공연에서 일하는 호객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Margaret Walker
(1915~  )

내 나이 여덟 살 때 나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세상에서 인간 다음으로 가장 놀랍고 훌륭한 것은 다름 아닌 책이라고 말이다.

Marcus Tullius Cicero
(106~43 BC)

정원과 서재를 갖추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춘 셈이다.

Mortimer Adler (1902~ )

모든 책은 빛이다. 다만 그 빛의 밝기는 읽는 사람이 발견하는 만큼 밝아질 수 있다. 결국 독자에 따라서 그것은 빛나는 태양일 수도, 암흑일 수도 있다.

Joe Bob Briggs

어떻게 책을 집필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정말로 책을 집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써야하는지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Amy Lowell (1874~1925)

책은 책 이상이다. 차라리 그것은 삶 그 자체이다.

Martin Luther (1483~1546)

모든 위대한 책은 그 자체가 하나의 행동이며, 모든 위대한 행동은 그 자체가 한 권의 책이다.

Gustave Flaubert (1821~1880)

어떤 책이 좋은지 판단하는 기준은, 그 책이 얼마나 강한 펀치를 당신에게 날리는가 하는 점이다.


 

 

Henry David Thoreau

한 사람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 얼마나 많은 새로운 시대와 만날 수 있는지!

Paxton Hood

읽을 책을 고를 때는 친구와 사귈 때 못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습관이나 성격은 친구보다 오히려 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Henry Ward Beecher

분명히 책은 집을 장식하는 가구나 장식품이 아니다. 그러나 책처럼 집을 아름답게 가꾸어 주는 것도 드문 것이 사실이다.

Katherine Mansfield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책읽기의 기쁨은 두 배가 된다.

Yevgeny Zamyatin

인간이 유인원이기를 멈추고, 결국 유인원을 극복하게 된 날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책이 집필된 날일 것이다.

Erica Jong

열 살 때 나는 지독한 책벌레였다. 나는 책표지의 저자 사진에 입을 맞추곤 했다. 나와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저자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이처럼 놀라운 사실도 없다.

Kin Hubbard (1868-1930)

참고 기다리는 사람이 결국 원하는 모든 것을 얻기 마련이다. 다만, 남에게 빌려 준 책은 제외하고.

구양수
(송나라 유학자)

책읽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세 가지 장소가 있다. 침상, 말안장, 그리고 화장실.....책을 읽고자 하는 뜻이 진실하다면 그 장소야 무슨 문제이겠는가.

증국번
(청나라 유학자)

진정으로 책을 읽고 싶다면, 사막에서나 사람의 왕래가 잦은 거리에서도 할 수 있고, 나무꾼이나 목동이 되어서도 할 수 있다. 책을 읽을 뜻이 없다면, 조용한 시골 가정이나 신선이 사는 섬이라 할지라도 책읽기에 적당 치 않을 것이다.

율곡 이이

반드시 한 가지 책을 익히 읽어서 그 안의 참된 이치와 뜻을 모두 깨달아 모두 통달하고 의심이 없게 된 연후에야, 비로소 다른 책을 읽을 일이다. 여러 가지 책을 탐내어 이것저것을 얻으려고 분주히 섭렵해서는 안된다.

Austin Phelps

낡고 오래된 코트를 입을 지언정, 새 책을 사는데 게을리 하지 말라.

Mark Twain (1835 - 1910)

건강 도서는 무척 조심해서 읽지 않을 수 없다. 잘못 인쇄된 내용만으로도 죽을 수 있으니 말이다.

H.L. Mencken (1880 - 1956)

책에는 두 종류가 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 그리고 아무도 읽어서는 안되는 책.

Ralph Waldo Emerson (1803 - 1882)

출간되고 나서 1년 이상이 지나지 않은 책은 절대로 읽지 마라.

Ronald Reagan

정치란 그렇게 나쁜 직업은 아니다. 성공을 거둔다면 많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며, 설혹 실패한다고 해도 책 한 권은 족히 쓸 수 있으니 말이다.

Alan King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읽고 싶은가? 그렇다면 반드시 다른 두 책을 사서 읽을 일이다.

John Burrough

내가 진정으로 생각하고 싶은 모든 것을 생각하기에는, 내가 진정으로 걷고 싶은 만큼 걷기에는, 내가 진정으로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읽기에는, 내가 진정으로 만나고 싶은 모든 친구들을 만나기에는.....나의 하루는 여전히 짧기만 하다.

Walter Bagehot

좋은 책이 집필되는 경우가 왜 이처럼 드문지 아는가? 무엇이든 제대로 알고 집필하는 사람이 그만큼 드물기 때문이다.

Winston Churchill

격언집을 읽는 것은 무지한 사람에게는 무척 좋은 일이다.

홍자성의 <채근담> 중에서.

책을 읽으면서 성인이나 현자를 보지 못한다면, 그는 글씨를 베끼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찰스 램

나는 산책하지 않으면 책을 읽는다. 그저 앉아서 생각만 하는 것은 어렵다. 책이 내 생각을 대신해 준다.

존 로크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줄뿐이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괴테의 <파우스트> 중에서.

만 권의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내 몸은 서럽기만 하다.

에드먼드 버크

인생은 매우 짧다. 더구나 조용한 시간은 너무도 짧다. 한 시간이라도 너절한 책을 읽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데 발로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 친구를 사귀고 싶은가? 그렇다면 책과 사귀어라.

 

르네 데카르트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

존 밀턴

한 권의 좋은 책은 위대한 정신의 귀중한 활력소이고, 삶을 초월하여 보존하려고 방부 처리하여 둔 보물이다.

루소

책의 남용은 과학을 죽인다. 읽은 것을 아는 것이라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한번 읽은 것은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버린다. 지나친 독서는 주제넘은 무식꾼을 만들어 낼 뿐이다.

벤자민 디즈레일리

책은 인류의 저주다. 현존하는 서적의 9할은 시시한 것이고 똑똑한 책은 그 시시함을 논평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내려진 최대의 불행은 인쇄의 발명이다.

볼테르

아무리 유익한 책이라도 그 반은 독자가 만든다.

세네카

웅장한 도서관은 오히려 독자를 혼동하게 만든다. 아무거나 읽기보다는 소수의 저자로 한정하는 편이 낫다.

존 킷츠

우리는 훌륭한 책을 많이 읽더라도 저자와 같은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그 내용을 실감하며 이해하기 어렵다.

게오르그 리히텐베르크

세상에서 책만큼 기묘한 상품도 드물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쇄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팔리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장정(裝幀 )되고, 검열되고, 읽힌다. 또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집필된다.

사무엘 존슨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어야 한다. 일거리처럼 읽은 책은 대부분 몸에 새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떠오를 때는 책을 읽어라. 쓸데없는 생각은 비교적 한가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지 분주한 사람이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한가한 시간이 생길 때마다 유익한 책을 읽어 마음의 양식을 쌓아 두어야 한다.

에드먼드 버크

사색 없는 독서는 소화되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에즈라 파운드

사람이 18세와 48세 때 같은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세네카

마음만을 즐겁게 하는 평범한 책들은 지천으로 깔려 있다. 따라서 의심할 바 없이 정신을 살찌우게 하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

존 러스킨

모든 책은 일시적인 것과 영구적인 것, 두 종류로 분류된다.

토마스 홉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정도로 독서를 했더라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정도밖에 몰랐을 것이다.

안중근

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몽테뉴

가장 싼 값으로 가장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 바로 책이다.

루소

나는 책을 증오한다. 책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방법만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파브르

누구에게나 정신에 하나의 큰 획을 그어주는 책이 있다.

앙드레 지드

나는 책을 읽을 때 타인들이 내 책을 그렇게 읽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매우 천천히 읽는다.

토마스 제퍼슨

나는 책 없이는 살 수 없다.

토마스 헉슬리

나쁜 책도 쓰려면 좋은 책만큼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도 저자의 영혼으로부터 성실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임어당

기분 좋은 잠과 부담 없는 독서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느 경우에도 심장의 고동이 부드러워지고 긴장감이 풀리며, 마음은 냉정하게 된다. 최선의 독서는 잠자리 곁에서의 독서이다.

로버트 브라우닝

책은 남달리 키가 큰 사람이요, 다가오는 세대가 들을 수 있도록 소리 높이 외치는 유일한 사람이다.

S. R. N. 샹포르

연애가 결혼보다 즐거운 것은 소설책이 역사책보다 재미있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보르헤스

새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물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책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로망 롤랑

다급하게 책을 읽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좋은 책을 천천히 읽어 나갈 때의 묘한 힘을 결코 알지 못한다.

E. 파게

독서는 천천히 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법칙이다. 이것은 모든 독서에 해당된다.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기술이다.

R. 스틸

독서와 마음의 관계는 운동과 몸의 관계와 같다.

존 로크

독서는 지식의 재료를 공급할 뿐,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고의 힘이다.

괴테

나는 책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지만, 아직까지도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

존 러스킨

인생은 짧다. 이 책을 읽으면 저 책은 읽을 수가 없다.

D. H. 로렌스

독서의 참다운 즐거움은 몇 차례고 거듭하여 읽는데 있다.

에머슨

좋은 책을 읽을 때면 나는 3천년은 더 사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리처드 밸리

독서와 황금을 함께 사랑할 수는 없다.

쇼펜하우어

책을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시간까지 살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만 책을 산 것만으로도 그 책의 내용까지 알게 된 것으로 착각한다.

E. A. 포우

책을 많이 읽을수록 독서력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 독서광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한눈으로 여러 대목을 살피며 읽어 낸다. 그리고 요점만 골라 낸다. 이에 따라 필요한 대목을 스스로 활용할 수 있다.

존 러스킨

책은 한 번 읽으면 그 구실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재독하고 애독하며, 다시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의 애착을 느끼는 데서 책의 그지없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H. D. 소로우

책은 그것이 쓰여질 때처럼, 신중하게 절약해가며 읽어야 한다.

A. 베네트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훌륭한 독서는 불가능하다.

W. D. 하우엘즈

어떻게 해서든지 읽이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읽는 책은 결코 좋은 벗이 되지 못한다.

쇼펜하우어

악서는 읽지 않으려 해도 자주 접하게 되지만, 양서는 반드시 읽고자 해도 기회가 뒤로 밀린다는 것이 많은 독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안지추

읽지 못했던 책을 읽는 것은 새로운 친구를 얻는 것과 같고,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세상을 떠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과 같다.

진선유

세상에서 가장 한가로운 일은 배를 타고 유랑하는 것과 술마시고 장기나 바둑두는 것 등이지만, 이런 일들은 모두가 짝을 찾아야 하고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글 읽는 것 한가지 일만은 자기 한 사람만으로도 하루를 보낼 수도, 1년을 넘길 수도 있다.

볼테르

성서를 읽은 사람에게 영혼을 의탁하는 사람이 많지만, 성서를 진실로 공 들여 세밀하게 읽은 사람은 그들 가운데 50명이나 될까?

에머슨

번역이 있는데 원문으로 읽고자 고집하는 것은 보스턴으로 가는데 찰스 강을 헤엄쳐 건너려 하는 것과 같다.

베이컨

반대하거나 논쟁하기 위해 독서하지 말라. 내용을 그대로 믿거나 화술의 밑천으로 삼기 위해 독서하지 말라. 다만 생각하고 생활하기 위해 읽어라.

쇼펜하우어

읽은 내용을 하나도 잊지 않으려고 드는 것은, 먹은 음식을 몸 안에 고스란히 간수하려는 것과 다름 없다.

쇼펜하우어

나쁜 책을 읽지 않는 것이야말로 좋은 책을 읽기 위한 조건이다. 인생은 짧고 시간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몽테뉴

나는 책을 읽을 때 어려운 부분과 만났다고 해서 결코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지 않는다. 한두 번 고쳐 생각하다가 그냥 버려둔다. 그렇지 않고 어려운 부분을 계속 고집하면 자기 자신과 시간을 모두 잃고 만다.

출처 : http://www.kungr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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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의 수상록은 또 '세계를 움직인 100권의 책'에도 꼽히는 '인류의 유산'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다.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이라는 책을 쓴 모티머 J. 애들러는 '좋은 책이 우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애들러의 설명에 따르더라도 몽테뉴의 수상록은 (이 세상과 독자 자신에 대해 가르쳐주는) '정말 좋은 책'인 것 같다


 

좋은 책은 열심히 읽으면 그 대가가 있다. 가장 좋은 책이 가장 좋은 것을 줄 것이다. 책으로부터 받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어렵고 좋은 책을 붙잡고 씨름한 대가로 책을 읽는 기술을 향상시켜준다. 둘째, 좋은 책은 이 세상과 독자 자신에 대해 가르쳐준다. 이것이 훨씬 중요한 대가일 것이다. 인생을 배우는 것, 즉, 더 지혜로워진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만 제공해주는 책을 읽고 나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더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인생의 영원하고 위대한 진리를 보다 깊이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360쪽)

 - 모티머 J. 애들러,『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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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100권의 책 <동아일보사 신동아 1968년 1월호 별책 부록>

<사상>

001 베다(Veda)(B.C. 1200~1500년경)
002 대장경(大藏經, 三藏, Tripitaka)(B.C. 1200~이래 2500여년 동안 성장 발전)
003 공자(孔子)/논어(論語)
004 플라톤(Platon)/대화록(對話錄, Dialogues)
005 장주(莊周)/장자(莊子)
006 성서(聖書, The Bible)(50~100년경)
007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고백(告白, Confessiones)(400년경)
008 코란(Holy Qu'ran)(640~60년경)
009 주희(朱熹)/사서집주(四書集註)(1252)
010 아퀴나스(Thomas Aquinas)/신학대전(神學大全, Summa Theologiae)(1266~73년경)
011 칼빈(Jean Calvin/그리스도교요강(敎要綱,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1536)
012 몽테뉴(Michel de Montaigne/수상록(隨想錄, Essais)(1580)
013 데카르트(Rene Descartes/방법서설(方法敍說, Discourd de la methode)(1637)
014 파스칼(Blase Pascal/팡세(Pansees)(1670)
015 칸트(Immanuel Kant)/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 Ktitik der reinen Vernunft)(1781)
016 헤겔(Georg Wilhelrm Friedrich Hegel)/정신현상학(精神現象學, Phanomenologie des Geistes)(1807)
017 키에르케고르(Sφrn Aabye KierKegaard)/철학적단편후서(哲學的斷片後書, Afsluttende uridenskabeling
efters krift til de philosophiske smuler)(1864)
018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1883~84)
019 베르그송(Henri Bergson)/시간(時間)과 자유(自由)(Essai sur donnees immediates de la conscience)(1889)
020 프로이트(Sigmund Freud)/꿈의 해석(解釋)(Die Traumdeutung)<1900>
021 훗설(Edmund Hussel)/(순수현상학(純粹現象學)과 현상학적 철학시론(現象學的 哲學試論)(Ideen zu einer reinen Phanomenologie und Phanomenologischen Philosophie)<1913~52>
022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논리철학논고(論理哲學論考)(Tractatus logico-philosophicus)<1922>
023 캇시러(Ernst Cassirer)/상징형식(象徵形式)의 철학(哲學)(Philosophie der Symbolischen Formen)<1923~29>
024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과학(科學)과 근대세계(近代世界)(Science and the Modern World)<1925>
025 하이덱거(Martin Heidegger)/존재(存在)와 시간(時間)(Sein und Zeit)<1927>


<역사․지리>

026 헤로도토스(Herodotos)/역사(歷史, Historiai)
027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
028 현장(玄장)/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646>
029 마르코 폴로(Marco Polo)/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The Description of the World)<1298>
030 이븐 바투타(Ibn Battutah)/여행기(旅行記, Rihlah)<1355~56>
031 이븐 할둔(Ibn khald?n /세계사(世界史, Universal History)<1375~78>
032 기본(Edward Gibbon)/로마제국쇠망사(帝國衰亡史,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1776~88>
033 부르크하르트(Jakob Burckhardt)/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文化)(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an)<1860>
034 프레이저(Sir James George Fraser)/금엽지(金葉枝, The Golden Bough))<1911~15>
035 토인비(Arnold Toynbee)/역사(歷史)의 연구(硏究)(A Study of History)<1934~54)


<사회>

036 마키아밸리(Niccolo Machiavelli)/군주론(君主論, Il principe))<1513>
037 모어(Sir Thomas More)/유토피아(Utopia)<1556>
038 홉스(Thomas Hobbes)/리바이어던(Leviathan)<1651>
039 록크(Jhon Locke)/통치론(統治論, Two Treatises of Government)<1690>
040 몽테스큐(Charles Montesquieu)/법(法)의 정신(精神)(De l'esprit des loix)<1748>
041 룻소(Jean Jacques Rousseau)/사회계약론(社會契約論, Du contrat social))<1762>
042 스미스(Adam Smith)/국부론(國富論,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1776>
043 말사스(Thomas Robert Malthus)/인구론(人口論,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1798>
044 마르크스(Karl Marx), 엥겔스(Friedrich 뚷딘)/공산당선언(共産黨宣言, Manifesto der Kommunistischen
Partei)<1848>
045 J. S. 밀(Jhon Stuart Mill)/자유론(自由論, On Liberty)<1859>
046 마르크스(Karl Marx)/자본론(資本論, Das Kapital))<1867~94>
047 레닌(Vladimir Il'ich Lenin)/제국주의론(帝國主義論, Imperializm, kak vysshaya stadiyn kapitalizma))<1917>
048 웨버(Max Weber)/경제(經濟)와 사회(社會)(Wirtschaft und Gesellshaft)<1921>
049 손문(孫文)/삼민주의(三民主義)<1924>
050 히틀러(Adolf Hitler) /나의 투쟁(鬪爭)(Mein Kamft)<1925~27>
051 만하임(Karl Mannheim)/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Ideologie und Utopia)<1929>
052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고용(雇傭)․이자(利子) 및 화폐(貨幣)의 일반이론(一般理論)(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1936>


<자연과학>

053 쿠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천체(天體)의 회전(回轉)에 대(對)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aelestium)<1543>
054 하비(william Harvey)/혈액순환(血液循環)의 원리(原理)(Exercitatio de motu cordis et sanquinis in animalibus)<1628>
055 뉴톤(Sir Issac Newton)/자연철학(自然哲學)의 수학적 원리(數學的原理)(philosopia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1687>
056 다윈Charles Darwin)/종(種)의 기원(起源)(On the Origin of Species)<1859>
057 파브르(Jean Henri Fabre)/곤충기(昆蟲記, Souvenirs entomologiques)r<1879~1910>
058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상대성원리(相對性原理, Das Relativitatsprinzip)<1913>
059 파블로프(Ivan Petrrovich Pavlov)/조건반사(條件反射, Conditioned Reflexes) <1924>
060 하이젠버그(Werner Heisenberg)/양자론(量子論)의 물리적 기초(物理的基礎)(Die physikalischen Prinzipien der Quantentheorie)<1930>


<문학․예술>

061 호메로스(Homeros)/일리아드(Illias), 오디세이(Odysseia)
062 이솝(Aisopos)/우화(寓話, Fables))
063 라마야나(Ramayana)
064 소포클레스(Sophocles)/오이디푸스왕(王)(Oidipus tyrannos)
065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시학(詩學, Peri poietikes))
066 플루타크(Plutarchos)/영웅전(英雄傳, Bioi paralleroi)<105~115년경>
067 아라비안 나이트(Alf Laylah wa Layiah)<850년경>
068 두보(杜甫)/두공부집(杜工部集)<1039>
069 이백(李白)/이태백문집(李太白文集)<1080>
070 단테(Alighieri Dante)/신곡(神曲, Ladivina commedia) )<1303~21>
071 나관중(羅貫中)/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1321~23년경>
072 셰익스피어(William Sakespeare)/햄리트(Hamlet)<1601>
073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돈키호테(Don Quijote)<1604>
074 밀튼(Jhon Milton)/실락원(失樂園, Paradise Lost))<1667>
075 괴테(Jhoann Wolfgang von Goethe)/파우스트(Faust)<1808~32>
076 포우(Edgar Allan Poe)/괴기담(怪奇譚, Tales of the Grotesques and Arabesques))<1830>
077 스탕달(Stendhal)/적(赤)과 흑(黑)(Le rouge et le noir)<1839>
078 발자크(Honore de Balzac)/인간극(人間劇, La commedie humaine)<1842>
079 워즈워스(William Wordworth),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서정민요집(抒情民謠集, Lylical Ballads))<1850>
080 멜빌(Hermann Melville)/백경(白鯨, Moby Dick)<1851>
081 휘트먼(Walt Whitman)/풀잎(Leaves of Grass)<1855>
082 도스토에프스키(Fyodor Mikhajlovich Dostoevskij)/죄(罪)와 벌(罰)(Prestuplenie i nakazanie)<1856>
083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악(惡)의 꽃(Les fleurs 여 mal)<1857>
084 유고(victor Hugo)/레미제라블(Les miserables)<1862>
085 톨스토이(Lev Nikoraevich Tolstoi)/전쟁(戰爭)과 평화(平和)<1864~69>
086 아놀드(Matthew Arnold)/교양(敎養)과 무질서(無秩序)(Culture and Anarchy)<1875>
087 입센(Henrik Ibsen)/인형(人形)의 집(Et dukkehjem)<1879>
088 트웨인(Mark Twain)/허클베리 핀의 모험(冒險)(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1884>
089 지드(Andre Gide)/배덕자(背德者, L'immoraliste)<1902>
090 조이스(James Joyce)/율리시즈(Ulysses)<1922>
091 엘리오트(Thomas Stearns Eliot)/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1922>
092 릴케(Rainer Maria Rilke)/두이노의 비가(悲歌)(Duineser Elegien)<1923>
093 토마스 만(Thomas Mann)/마(魔)의 산(山)(Der Zauberberg)<1924>
094 카프카(Franz Kafka)/성(城, Das Schloss)<1929>
095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채털리부인(夫人)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1928>
096 말르로(Andre Malraux)/인간조건(人間條件, La condition humanie))<1933>
097 사르트르(Jean Paul Sartre)/구토(嘔吐, La nausee))<1938>
098 까뮤(Albert Camus)/이방인(異邦人, Letranger)<1942>
099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노인(老人)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1952>
100 파스테르나크(Boris Leonidovich Pasternak) /의사(醫師) 지바고(Doktor Zhivago)<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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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몽테뉴와 만나면서 느꼈던 점 한가지는 그는 정말 '호기심'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의 마음'이야 말로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 보더라도' 여전히 탐구할 게 끝없이 흘러 나오는 '대우주에 버금가는 소우주'가 아닌가 싶은데, 몽테뉴가 평생 동안 알고 싶어했던 것이 바로 '그 자신'이었다는 점은 호기심 많은 그에게는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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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끄적여 두었던) '호기심'에 대한 글모음


■ 앙드레 코스톨라니

투자자가 된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은퇴의 국면으로 들어간다면 말이다. 사실 그것은 일반적인 직업도 아니며,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일 매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지적 행위이며, 나처럼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필요하게 되는 정신 체조이기도 하다.


■ 랠리 웨이머스 (작가이자 캐서린 그레이엄의 딸)

버펫의 성공비결은 끊임없는 호기심에 있다.


■ 나폴레온 힐

우리의 근육이 운동과 끊임없는 사용을 통해 튼튼하고 탄력적으로 되듯이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 존 템플턴

어린 아이들이 이 세상과 그 복잡한 원리에 대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북돋아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잊기 쉽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는 말하기를
우리는 절대로 이같은 '성스러운 호기심"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호기심과 상상력, 기발함, 그리고 무엇이건 꼬치꼬치 캐물어보는 능력은 우리 스스로 이 놀라운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아걸어버림으로써 너무나도 쉽게 사라져버린다.


■ 맹자

위대한 사람은 어릴적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 앤서니 라빈스

인생에서 진실로 성장하고 싶다면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을 가지는 법을 배워라. 아이들이 그토록 사랑스러운 것은 경이로운 것을 보고 놀라워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루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호기심을 가져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에 하찮은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다.


■ 아이작 뉴턴

나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많은 진리가 거대한 바다처럼 내 앞에 일렁이고 있다.


■ 몽테뉴

자만심과 호기심은 우리의 영혼의 두 가지 큰 재앙이다. 후자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일에 간섭하게 하고, 전자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도 미해결, 미결정인 상태로 두지 못하게 한다.

-『수상록』, 제27장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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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동네 도서관에 갔을 때 발견한 두툼한 '몽테뉴의 수상록'을 펼쳐 보면서 그 책에 푹 빠져 지내던 옛 추억을 다시금 떠올려 본 적이 있었는데, 머지 않아 그를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읽었던 책은 거의 대부분 국한문 혼용에다가 세로로 된 책이었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그 옛날 애지중지 아꼈던 그 책은 도대체 언제쯤 내게서 떠나가 버린 것일까? 그리고 또 독서노트에 적어놓았던 몽테뉴의 수많은 글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래도 사이버 공간에 갈무리해 둔 것도 조금 남아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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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테뉴의 수상록에 대한 기록)

懶怠에 관하여

한가함은 항상 정신을 산란케 한다. - 루카누스

사방에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있지 않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심령은 일정한 목표가 없으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정신에게는 어떤 문제에 전념하도록 제어하고 강제하는 일거리를 주지 않으면 이런 저런 공상의 막연한 들판에서 흐리멍덩히 해매게 된다. 그래서 이런 동요속에서 정신은 헛된 잡상이건 몽상이건 내놓지 않는 것이 없다.

 - 몽테뉴, 『수상록』 中에서


友情에 관하여

우정은 전반적이고 보편적이며 그러면서도 절제있고 고른 열이며 거기 거칠고 찌르는 것이란 없이 아주 보드랍고 매끈한 심정이다.

 - 몽테뉴, 『수상록』 中에서

 

펼친 부분 접기 ▲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게 되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질문이 한번 시작되면 아마도 '삶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결코 중단되는 법도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을 얻지 못할 듯싶고,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이 결국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특히나 '책을 읽는 시간'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나누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와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만큼 많은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생각에 잠겨' 살았던 몽테뉴를 만나 보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몽테뉴 자신의 노력에 비하면) 특별하게 짧은(?) 시간 동안에 '가장 싼 값으로' 그의 생각과 얘기들을 직접 전해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든다.

어쨌든 나로서는 몽테뉴가 그립고 그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여태껏 그를 제대로 만나보지 못한 분들은 언젠가는 한번쯤 그를 꼭 만나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훌륭한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셋이 함께 만나도 물론 좋다. 내가 더욱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그와 단둘이서 만나는 것이고, 또 가급적 오랫동안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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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키케로는 왜 몽테뉴에게 밉보였을까?
    from Value Investing 2013-07-23 14:40 
    30년 만에 다시 읽는 《몽테뉴 수상록》이 너무 재미있다. 오래 전에는 그의 에세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작품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채 그 책을 읽었으나, 지금에 와서 다시 읽어보니 그의 글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어느덧 그다지 낯설지 않게 되어 옛날에 그의 글을 읽을 때보다 여러 인물들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등장하는 무수한 고대의 유명 인물들 가운데 '그들이 쓴 작품'을 내가 직접 읽어본 경우가 그리 드물지가
  2. 꼬랑지끼리 붙들어매어 놓기로 작정한 것
    from Value Investing 2013-08-07 23:47 
    (밑줄긋기) 우리가 갖는 쾌락이나 재물들은 고통과 불편이 얼마간 섞여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쾌락의 샘 복판에 쓴 것이 솟아나와꽃처럼 피어나는 연인들을 괴롭힌다. (루크레티우스)우리의 탐락은 극도에 도달하면 어느 점에서 신음과 오열의 풍이 있다. 이 탐락이 고민 속에 사라진다고 말하지 못할 일인가? 진실
  3. 온 힘을 다해 '자기 자신'을 해부하다가 결국 '인간'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책
    from Value Investing 2013-11-18 09:32 
    어떻든 나는 감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말하기로 작정했다. 공표할 수 없는 생각이 있다는 것까지도 불쾌하다. 내 행동이나 상태들 중의 가장 나쁜 것도, 그것을 감히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 추하고 비굴한 일이라고 보는 정도로, 그렇게 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나 고백하는 데는 조심스럽다. 행동에 있어서도 그래야 할 것이다. 당돌하게 실수하는 일은 그것을 당돌하게 고백하는 일로 어느 면에서 보상되고 억제된다. 모두 말하는 것을 의무로
  4. 몽테뉴와 플루타르코스
    from Value Investing 2017-02-08 00:20 
    나는 플루타르크의 저서는 여간해서 놓지 못한다. 그는 너무나 보편적이며 충실하기 때문에, 모든 경우에 우리가 어떠한 하찮은 일을 처리할 때도 그는 우리 일에 참견해 오며, 풍부와 미화의 무궁무진하고 관후한 손을 내밀며 거들어 준다. 나는 그를 애독하는 자들의 글에, 그에게서 따온 부분이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 울화가 터진다. 그리고 그를 읽어 보기만 하면 내 글의 날개와 허벅다리를 거기서 따오지 않을 수 없다. * * *몽테뉴가 가장 좋아한 작가는 누가
 
 
2012-01-31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1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2-0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글, 잘 읽었습니다.

존 로크가 말한 "독서는 다만 지식의 재료를 줄뿐이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색의 힘이다." 라는 말이 와 닿네요. 빨리 읽는 것과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는 것의 차이가 크다는 걸 경험했고, 또 읽은 뒤에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사색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요. 읽었다고 해서 읽은 게 아니더라고요.(읽은 것도 까먹어요.)독서일기를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쓰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깊은 생각이 아니라서 문제지만요.ㅋ)

같은 책을 반복해서 두 번 이상 읽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저는 밑줄 그어 놓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 취미가 있어요.
오늘도 커피 마시면서, 이미 다 읽은 책을 들춰 밑줄 그어 놓은 문장을 보면서 마셨어요.
유익한 정보, 많이 얻어갑니다. ^^^

오늘 날씨가 춥네요. 거리마나 흰눈이 쌓여 있어서 전형적인 겨울 같아요. 어제 눈 많이 내릴 때 저는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봤는데, 다 보고 나서도 눈이 오길래 일부러 걸었어요. 우산을 썼지만 옷에 눈 맞고 들어왔네요. 한번쯤 눈을 맞아줘야 할 것 같아서요. 겨울의 선물이다, 그러면서... ㅋ

oren 2012-02-02 22:57   좋아요 0 | URL
답글이 많이 늦었네요. 월말에는 폭설이 오는 바람에 모임을 취소했다가, 다시금 되살려서 '기어이' 모임을 가지다 보니 귀가도 늦어지고 추운 날씨에 고생했답니다. 어제는 예전에 잡아놓은 '기업방문 약속'이 있었는데 혹한에도 불구하고 애써 찾아 갔더니 나름대로 매우 보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제/오늘은 '방문결과'를 추스리느라 또 아주 바빴네요.

독서일기를 쓰는 취미는 참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나 혼자만의 독서일기'여서 내 마음대로 편하게 썼는데, 알라딘에 서평을 쓸 때는 그러지 못해서 아쉬운 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알라딘에 '힘들여' 글을 올리는 것보다 '내맘대로 끄적거릴 수 있는 독서노트'에 글을 쓰는 게 훨씬 좋아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땐 (책에도 줄 긋고 열심히 끄적거려 놓지만) 노트에도 이런 저런 글들을 옮겨 적거나,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있으면 '독서노트'에 자꾸만 끄적거려 놓습니다. ㅎㅎ

pek님의 독특한 책읽기 방법인 '같은 책을 반복해서 두 번 이상 읽는 것'도 당연히 좋고, '밑줄 그어 놓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 취미'도 정말 부러워요. 저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는 편인데,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초딩 땐 탐정소설과 모험소설을 엄청 좋아했었답니다. 그리고 10대와 20대땐 문학작품도 즐겨 읽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문학' 쪽으로는 좀처럼 눈길이 가지 않는데, 제 스스로는 (카프카의 말처럼) '내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자극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느낌도 들어요. 그리고 문학작품은 좀 더 아껴뒀다가, 내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게 '미안해 질 무렵'이 찾아오면 그 때부터 '열심히' 다시 읽으려고 해요. ㅎㅎ

추운 날씨에 눈을 느껴보는 것도 좋지요. 갑자기 한겨울에 밀짚모자 쓴 '눈사람'이라도 만들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ㅎㅎ

라로 2012-02-01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너무 좋아서 별찜했어요!!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라는 책을 구하고 있는데 아직도 못 구했어요.ㅠㅠ
혹시 그 책은 읽어 보셨나요???
박홍규씨가 쓴 책인데 몽테뉴 읽기에 도움을 받을것 같아서 찾아보는데
벌써 몇 개월째 못 찾고 있어요.^^;
대신 이 책을 찾으면서 눈에 들어 온 [기싱의 고백]을 구했는데 정말 좋더군요.
진지한 님의 페이퍼를 보면 늘 부끄러워집니다.
날씨는 무척 춥지만 따뜻한 하루 보내시고 건강지키시길요~. 감사합니다.^^

oren 2012-02-02 23:08   좋아요 0 | URL
나비님께서 '별찜'을 해주셨다는 말씀을 들으니, 작년엔가 나비님께서 제게 '땡스투'를 활용하는 방법과 별찜 등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던 생각이 납니다.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라는 책은 저도 읽어보지 못했답니다.

그리고, 언제나 한결같이 (따스한 봄날의 나비처럼) 사뿐사뿐 여기 저기 날아다니시면서 이것 저것 신경써 주시고 챙겨주시는 나비님께서 갑자기 별명을 바꾸시니 저로서는 (마침 날씨조차 맹추위가 닥쳐 너무 너무 추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 낯설고 적응이 잘 안되네요. ㅎㅎ
 
독서의 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동서문화사 월드북 27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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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물음에 대해 캠벨이 내놓은 방법, 즉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려도 안 됩니다."라는 대답은 제게도 특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나비님의 글에서도 언급된 '쇼펜하우어'가 쓴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대목이 있어서 '밑줄긋기'해 놓은 부분을 옮겨 봅니다. 나비님의 글과 제가 인용한 쇼펜하우어의 글을 통해 '언제까지나 근원적인 힘을 가진 '참다운 작품'만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새삼 되돌아 보게 됩니다.

 * * *

그런데 모방자, 꾸미는 자, 모조자, 맹목적인 모방자들은 예술을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참된 작품을 보면, 마음에 들거나 효과가 뚜렷한 점에만 관심을 두고, 이것을 명확하게 하여 개념으로서, 즉 추상적으로 파악한 다음에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교활한 생각을 품고 모방한다. 그들은 기생 식물처럼 타인의 작품에서 양분을 섭취하고, 해파리처럼 그 양분의 색깔을 갖는다. 비유를 사용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끌어 넣은 것을 잘게 깨어 혼합시킬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소화할 수 없는 기계와 같다. 따라서 그 혼합물 속에서는 언제나 다른 성분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거기에서 가려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천재는 유기체처럼 동화하고 변화하고 생산한다. 왜냐하면 천재도 선배나 그 작품에 의해 계발되고 교화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에게 직접 직관적인 것의 인상에 의해 예술적으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생활과 세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교양이 높아도 천재의 독창성엔 지장을 주지 않는다. 모방자나 꾸미는 자는 타인의 걸작을 개념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개념은 결코 작품에 내적 생명을 부여할 수 없다. 시대 일반, 즉 그 시대의 다수를 점하는 어리석은 대중은 기교를 부린 작품에 기꺼이 갈채를 보내며 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은 2,3년이 지나면 재미가 없어져 버린다. 왜냐하면 시대정신, 즉 유행의 개념이 변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작품의 유일한 근거는 이 유행의 개념이다.

자연과 인생에서 직접 이끌어 낸 참다운 작품만이 자연이나 인생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젊고 언제까지나 근원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참된 작품은 특정한 시대의 것이 아니라 인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은 그 시대에 영합하는 것을 경멸하고 시대로부터는 냉담한 대우를 받으며, 그때그때의 잘못이 그 작품에 의해 간접적이고 소극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에, 나중엔 진가를 인정받게 된다. 또 이러한 작품은 진부해지지 않고, 시대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신선하고 언제나 새롭게 사람의 마음에 호소한다. 이렇게 인정받은 이상, 이제는 무시되거나 오인받을 염려는 없어진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판단력이 출중한 소수의 사람들의 칭찬으로 영광의 왕관을 쓰고 진가를 인정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 소수의 출중한 사람들은 백 년 동안에 아주 적게 나타나지만,* 그들이 말하는 의견은 점차 권위가 확립되는데, 이 권위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이 작품들의 진가를 후세에 호소하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 잇따라 나타나는 위대한 개인이야말로 이 유일한 전거이다. 왜냐하면 동시대의 대중이 언제나 어리석고 우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세의 대중도 여전히 어리석고 우둔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에나 위인들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한 말을 읽어 보라. 인간은 언제나 같기 때문에 위인들의 탄식도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함이 없다. 어느 시대에나 또 어떠한 예술에서도 작풍이 정신을 대리하며, 정신을 소유하는 것은 언제나 위대한 개인뿐이다. 그러나 작풍이란 모든 시대에 존재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은 정신의 현상이 벗어 버린 낡은 의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후세의 갈채는 동시대의 갈채를 희생하여 얻는 것이며, 또 동시대의 갈채는 후세의 갈채를 희생하여 얻는 것이다.(764쪽)

 * "격랑을 헤엄치는 사람은 드물게 나타난다(Apparent rari, mantes in gurgite vasto)." 출전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1권 118.

(오래 전에 읽었던『아이네이스』(도서출판 '숲'에서 출간한 천병희 번역본)를 펴보니 해당 대목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몇 사람만이 광대한 심연 위에서 남자들의 무구들과 널빤지들과 트로이야의 보물들과 함께 파도 사이로 헤엄치는 것이 보일 뿐이다.")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3권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2고찰:
충족 이유율에 근거하지 않는 표상, 플라톤의 이데아, 예술의 대상'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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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2-01-2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갈수록 고전에 대한 갈망이 커져갑니다. 무수히 쌓인 독서리스트가 실제로 큰 진보를 못 가져왔다는 아쉬움을 갖게 합니다. 그것보다 먼 예전 고전을 읽으며 받았던 추억이 가슴을 움직입니다.. 좋은 독서와 추천 감사드립니다 ^^

oren 2012-01-26 12:09   좋아요 0 | URL
사마천님께서도 고전을 아주 많이 읽으신 걸로 압니다만, 아무래도 '실생활'의 지배를 받다 보면 고전을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양주동 선생님께서 '고칠현삼제'를 권한 적이 있지만, 오랜 시간의 테스트를 견뎌낸 고전들이 그 생명력과 가치에 비해 언제나 외면받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늘 변치 않는 것 같습니다.

라로 2012-01-26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쇼펜하우어를 읽어볼게요~. 하지만 쇼펜하우어를 읽기전에 칸트, 괴테,,,플라톤,,에 이르기까지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요,,,일단 오렌님과 발 맞추기 위해서 단테를 먼저 읽으려고 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oren 2012-01-26 14:06   좋아요 0 | URL
저도 나비님의 글 덕분에 좋은 책과 훌륭한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만나게 될 것 같아 기쁩니다.

그리고, 나비님께서 전해주신 캠벨의 얘기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나는 조이스와 토마스 만과 슈펭글러를 읽었다. 슈펭글러는 니체를 언급했다. 나는 니체도 읽었다. 그러다가 니체를 읽으려면 쇼펜하우어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쇼펜하우어도 읽었다. 그러다가 쇼펜하우어를 읽으려면 칸트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접하면서 '문헌학이 아니라 철학'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느 한 고서점에서 두 권으로 된『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구입한 즉시 다 읽고, 한동안 이 책에 열광했다고도 합니다. 그가 라이프치히 시절에 쓴 편지나 글에는 거의 종교적 귀의라고 할 정도로 쇼펜하우어 철학에 몰두했다고도 하는데, 니체는 그를 자기 자신보다 더 신뢰하므로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는 사람으로까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영웅적인 인물'로 존경했던 이유는 '우리의 삶이 결국은 비극적이고도 무의미한 것이어서 우리를 절망하게 하더라도, 인간의 눈을 가리고 있는 천을 걷어낼 것을 요구해야 하며 쇼펜하우어 스스로가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그런 영웅적인 노력을 계속 했다'는 데 있다고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괴테와도 특별히 인연이 많았던 인물인데, 그가 괴테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내용도 영웅적입니다.

“가슴속에 그 어떤 의문도 품고 지내지 않을 수 있는 용기, 바로 이 용기가 철학자를 만든다. 이러한 이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비슷한데, 그는 자신의 운명의 비밀이 풀리면 자신에게 끔찍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물이다.”

oren 2012-01-27 22:59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올라온 화제의 서재글 때문에)2001년 여름에 제주도 앞바다에서 잡았던 '만새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찾기 위해 벽장(?) 같은 곳을 뒤적거리다가, 정작 '만새기가 담긴 사진'은 찾지도 못한 채 마침 그해 가을에 가족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갔을 때 '단테가 살던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답니다.

그런데 피렌체에 있는 '단테'의 집에 들렀을 때만 하더라도(2001.10.4) 저는 그의 저작인 '신곡'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터라 괜히 머쓱했는데, 오늘 다시 그 사진을 보니 ('신곡'을 통해 그와 열심히 지옥과 연옥과 천국까지 실컷 돌아다닌 덕분인지 몰라도) '단테'와 제법 많이 가까워진 느낌도 듭니다.





 
사랑만을 이야기해 보다
세상을 보는 지혜 동서문화사 월드북 27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blanca님의 멋진 서평글을 다 읽고 나니, 사랑은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마지막 목적'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 * *

연정은 겉보기에는 별나라 같아도, 사실은 성욕이라는 본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니, 이 본능이 특수화된 것이며 개체화된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사랑이 희곡이나 소설에서뿐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거기서는 자기보존 본능과 함께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며, 모든 동작 중에서 가장 활동적이다) 연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관찰하면, 언제나 모든 생애에서 가장 젊은 시절, 즉 청춘시절 뭇사람들의 정력과 사고를 거의 절반쯤 강제로 동원한다. 또한 사랑은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마지막 목적으로서, 심지어는 가장 중요한 사건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며, 가장 진실한 과업을 중단시키고, 때로 가장 위대한 정신도 흐리게 하며, 외교적 교섭이나 학술연구에 몰두할 때도 체면불구하고 연출하여 장관의 문서철이며 철학자의 원고 속에 연애편지나 머리카락을 끼워넣게 한다. 또 수많은 나날 시끄러운 사건에 가장 악질적으로 사주한 사람이나 동지끼리 맺은 가장 친밀한 사이도 끊어버리고, 견고한 사슬도 풀며, 허다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생명과 건강과 부와 지위와 행복을 빼앗아갈 뿐더러, 정직한 사람을 철면피로 만들고, 충신을 파멸시키려 한다. 이 모든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토록 소란을 피우고 애쓰고 고민하며 불행에 빠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외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듯 하찮은 일이 그처럼 큰 파문을 일으키며 안정된 생활에 소동을 일으키게 하는 것인가?

진리 탐구 정신이 투철한 사상가라면 이 물음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내릴 수 있다. 즉, 그것은 결코 작은 일에 관련되어 있지 않으며, 그 중대성은 그것을 추구하는 경우 맞닥뜨리게 되는 진지하고 열렬한 모습에 맞먹는다.

정사의 목적은 비극으로 나타나든 희극으로 나타나든 인생의 여러 가지 목적 가운데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것이며, 누구나 끈질기게 추구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기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은 다음 세대의 조정이라는 중대한 일이며, 다음 무대 위에 우리를 대신해 등장할 인원은 이같이 사소한 장난처럼 보이는 정사에 의해 그 존재와 양상이 결정된다.

그리고 이 미래에 인간이 존재하느냐의 문제가 성욕을 절대조건으로 삼고 있는 한편, 그들의 성격적인 특질인 본성(essentia)은 성애의 개체적인 선택을 절대조건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모든 점이 변함없이 결정된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일시적인 사랑에서 가장 뜨거운 정열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모든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진상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랑의 여러 가지 형태는 이성을 선택하는 개인적인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세대의 연애를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크게 보면, 다음 세대의 성립을 숙고하고 그 뒤의 무수한 세대에 대해 배려하는 진지한 일이라고 하겠다. 사실 그것은 다른 정열같이 개인의 불행이나 이익에 관계되는 일이 아니고, 앞으로 돌아올 인류의 존재와 그 특수한 양상에 관한 것으로, 이 경우 개인의 의지는 가장 높은 능력에 도달하여 자신을 종족의 의지로 돌아가게 한다.

연애란 엄숙하고도 뼈아픈 것으로, 큰 환락과 고뇌가 따르는 까닭은 종족에 관한 커다란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 시인은 몇천 년 전부터 수많은 예를 들어 그것을 묘사했다. 이 주제는 종족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으므로 그밖의 어떤 주제도 더 이상의 감흥을 주지 못한다. 즉 개인과 종족의 관계는 물체의 표면과 물체와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사랑은 옛날부터 다루어온 진부한 것임에도 언제까지나 고갈되는 일이 없다.

(중략)

당사자들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정사는 결국 자식을 낳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따라서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의 우여곡절은 부수적인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고결하고 애절한 심정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은 내 주장이 지나친 실재론이라고 반박할 테지만, 이것은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등장할 인류의 외모와 성격을 정밀하게 선정하는 일은 그들의 꿈이나 공상보다 훨씬 고귀한 목적이 아닌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목적들 중에서 이보다 더 중대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 목적을 인정하지 못하면 사랑의 뜨거운 정열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정열이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되고 극히 하찮은 일도 일단 이 목적과 관련 맺으면 중대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연인을 위해 동분서주하거나 서둘러 접근하는 노력이나 노고는 언뜻 보아 결과로 얻을 수 있는 대가보다 커보이는데, 이것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위에서 말한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노고와 투쟁을 거쳐 현재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성적인 성격을 갖고 태어날 다음 세대의 인류다. 아니, 다음 세대의 인류는 벌써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저 사랑이라는 이름의 면밀하고도 끈기 있는 이성의 선택에서도 나타나 있다.

(중략)

이제 문제의 핵심에 대해 언급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심이 깊이 뿌리박혀 개개인에게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하고도 분명한 동기는 이기적인 것 이외에 없다. 종족은 개체에 대해 분명 우선권을 가지며, 보다 직접적이고 큰 권한을 갖고 있다. 종족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개체는 희생되어야 하는데, 개체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욕구에만 쏠려 있으므로 개체에게 이런 희생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해시켜야 한다. 그렇다 해서 개체에게 자신의 이해관계로부터 떠나게 할 수는 없으므로 자연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환상을 심어주어 개체를 기만할 수밖에 없다. 이때 개체는 이 환상에 미혹되어 사실은 종족에 관한 일인데도 자신의 행복이 되는 것처럼 오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개체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믿는 순간, 이미 자연의 무의식적인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의 눈앞에는 곧 탐스러운 환상이 나타나 이를 추구하게 된다. 이 환상이 다름아닌 본능으로, 그 대부분은 개체 의지가 아닌 종족 의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략)

자기 이상에 맞는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하면 남성은 미칠 듯한 정열을 일으키며, 이 여성과 결혼했을 경우 맛볼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 환영으로 눈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이 정열도 따지고 보면 '종족의 의지'며, 이것이 여성에 대해 스스로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보이며 그녀를 통해 자신을 유지해 나가려고 한다.

(중략)

그런데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들이 일단 그 정열을 충족시키면, 곧 미궁에서 벗어나 그처럼 열망했던 것이 얼마 안 가 실망을 안겨주는 일시적인 쾌락만 제공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 욕망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른 욕망에 대해 종족과 개체, 무한과 유한 같은 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욕망의 충족으로  종족만이 실제적 이득을 보게 되나, 개체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개체가 종족의 의지에 따르게 되어 지불한 희생은 그 자신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에 사용된 것이다. 모든 연인은 성교라는 큰일을 한 번 치르고 나면 곧 속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종족의 도구가 되게 한 환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성적 쾌락은 최대의 사기꾼"이라는 명언을 남기게 되었다.

(중략)

그러므로 종족의 영혼은 개체의 이익에 관계되는 일보다 월등히 중요한 일을 처리한다고 자부하며, 전쟁의 불바다 속에서건, 분주하게 사무를 집행하는 중이건, 페스트가 창궐하는 중이건, 또는 한적한 절 속이건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자기 일을 수행한다.

(중략)

사랑이 어느 유일한 이성에게 쏠리게 되면 굉장한 힘과 열을 내어, 만일 사랑이 맺어지지 못하면 본인에게는 세계의 훌륭한 것들이 시들하게 보이고 나아가 목숨까지도 하찮게 생각되며 이 정열을 불태우기 위해 어떤 희생도 두렵지 않게 된다. 그 격정은 다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으며, 때로 미치거나 자살까지 하게 만든다.

(중략)

질투가 괴롭기 이를 데 없는 정념(情念)인 것도 이런 점에서 이해할 만하고, 또한 자기가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을 단념하는 일이 어떤 희생보다 크게 여겨지는 것도 납득이 된다. 영웅은 일상적인 일로 비탄에 빠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사랑의 비애에 대해서는 비탄을 억누르지 못한다. 이 경우 비탄에 빠지는 것은 본인 자신이 아니라 종족 자체이기 때문이다. 칼데론의 훌륭한 희곡 《위대한 제노비아》제2막에 제노비와 데시우스가 등장하여 데시우스가 말한다.

"아, 하늘이여, 당신이 날 사랑한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승리를 포기하겠소. 적진에서 도망쳐버리겠소."


여기서는 여러모로 이해타산적인 명예가 무시되고 그 대신 사랑, 즉 종족에 대한 이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명예와 의무, 그리고 충성은 지금까지 유혹이나 심지어 죽음의 협박에도 저항해 왔으나, 종족의 이해 앞에서는 고분고분 양보하고 굴복해 버린다.


(중략)

일단 종족에 대한 이해가 강조되면 개체에게만 관련되는 이해는 다 거기에 순종하며, 때로는 희생이 되기도 한다. 이같이 인간은 자신에게도 종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며, 자기가 개체 안에서보다 종족 가운데에서 더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에 빠진 자는 무엇 때문에 연인에게 완전히 얽매여 애인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무릅쓰려고 하는가? 애인을 그리워하는 건 결국 그 사람 속에 깃든 영구불멸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밖의 것들은 오직 허망하게 생멸하는 일에만 관련되어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열렬한 사모의 감정은 우리 본성이 불멸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광명을 던져주는 것으로, 이를 요약해 말하면 다음과 같다. 성적 욕망에 의한 이성의 선택은 차츰 열기를 더하여 드디어 열렬한 사랑에 이르고, 이것은 앞으로 나타날 인류의 특수한 개성적인 소질이 종족 속에서 존속된다는 것을 입증한다.

(중략)

이 내재적인 본성이야말로 의식의 핵심이고 그 근저에 있으며 의식 자체보다 더욱 직접적인 것, 즉 개개의 원리에서 떠난 물자체(物自體)다. 개체가 시간적·공간적으로 어디에 흩어져 있더라도 영원히 동일한 것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또한 내가 다른 말로 '살려는 의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생명의 존속을 요구하며 죽음이 손대지 않고 남겨두는 힘이다.

 - 쇼펜하우어, 『인생을 생각한다』중 '사랑의 형이상학'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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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 가는 길

 

 

 

 

 

 

 

 

 

 

 

 

 

 

 


그기 뭐 볼끼 있다고 가니껴?

당신은 물었지

볼 것이 없어서 간다오


hnine님께서 올려주신 '화암사 가는 길'이라는 시 가운데 일부이다.


나이를 차츰 먹을수록 (일상생활 속에서 카메라를 꺼내들고 무슨 풍경을 찍을라치면) 주위로부터 '그기 뭐 볼끼 있다고' 라는 말을 좀 더 자주 듣다 보니, 저 짧은 시구절이 참으로 나에게는 여러 생각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과 하루하루의 풍경들이 어쩌면 '다시는 마주하지 못할 순간'처럼 소중하게 느껴질 때도 많은데, 어떨 땐 괜히 나 혼자만 (너무 일찍 앞서서) 그런 생각들을 하는가 싶은 의심마저 들 때가 있기도 하다.


나는 평소에 이런저런 모임에 참가하거나 혹은 등산이나 여행을 나설 때에는 무슨 '습관처럼' 카메라를 챙겨 다닌다. 아직은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진 촬영기술을 어떡하든 조금이나마 연마해 보고 싶은 욕심도 물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스쳐 지나가는 '삶의 궤적들'을 어딘가에 좀 남겨두고 싶다는 욕심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덕분에 그동안 마구잡이로나마 찍은 사진들이 어느새 제법 쌓인 것 같다. 그런데 마침 hnine님께서 올려주신 '화암사 가는 길'이라는 글을 읽고 나니, 그동안 여기 저기 돌아 다니면서 마주친 '사찰 풍경들'이 떠올라 이번 기회에 한번쯤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기 뭐 볼끼 있다고' 라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되는 걸까?

 

최근에 (책을 통해) 무척이나 자주 만나는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는다.


 

인간의 모든 관찰과 행위와 체험 등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나이를 먹을수록 희박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충분한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청년시절뿐이며, 노년기가 되면 의식적인 생활의 절반은 잃어버린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의 생존의식은 나이를 먹을수록 희미해진다. 마치 아무리 훌륭한 미술품이라도 몇천 번이나 보는 동안에 감흥이 점점 없어지는 것과 같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모든 사물은 차츰 의식의 표면을 스쳐갈 뿐 별로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않는다. 다만 눈앞에 닥친 필요에 따라 움직일 뿐 나중에는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잘 모르게 된다. 따라서 의식이 감퇴함에 따라 세월도 빨리 흘러가게 된다.

그러나 유년시절에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물과 사건이 신기하기만 하여 모조리 의식 속에 떠오르므로, 하루가 매우 길게 생각된다. 이와 비슷한 일을 여행에서도 체험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난 후 한 달 동안은 가정생활의 넉달 동안보다 더 길게 생각되지만, 같은 사물을 몇 번씩 자주 대하는 동안에 차츰 지적인 능력이 둔해지므로 모든 사물들이 머릿속에 별로 인상을 남기지 않고 흘러가며, 생활도 점점 무의미하게 되고 시간이 무척 짧게 느껴진다. 흔히 노인들의 하루가 아이들의 한 시간보다도 더 짧게 생각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벗겨진 치장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르지

그 무심한

나무 기둥으로

휘어질 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수백년 버티고 서 있는

그 마음 얻으러 간다오

이 시를 쓴 시인은 화암사의 '그 무심한 나무 기둥'으로 적어도 수백년을 넉넉히 버티고 서 있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콕 집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걸' 얻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한참이나 생각해 봐도 그저 막연하기만 하고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나는 천년 혹은 천오백년 이상 버텨온 전국의 온갖 사찰들을 스쳐 지나다니며 과연 무슨 '마음'을 얻으러 다녔던 걸까? 그러고 보니 정작 내가 그동안 보아 온 것들은 너무나 '피상적인 겉모습'에만 머물렀던 게 아니었던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기 뭐 볼끼 있다고'

언제 기회가 되면 나도 꼭 화암사에 가보고 싶고, '그 마음'이 무엇인지도 직접 알아보고 싶다.


 * * * 

 

2008년에는 신록이 무르익던 5월에 소금강을 거쳐 설악산 신흥사에 들렀고, 그 해 가을엔 '미증유'의 혹독한 금융위기 덕분에 감당키 어려웠던 마음의 짐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까 싶어 (마침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이들을 키우느라 지치고 힘겨워 하던 아내와 함께) 템플스테이도 체험할 겸 영월에 있는 법흥사를 다녀왔고, 그 해 11월엔 오대산 상원사와 일산에서 가까운 서해 앞다바의 석모도와 보문사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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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악산 신흥사 가는 길 (신라 진덕여왕 6년인 서기65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


Shooting Date/Time 2008-05-10 오후 2:45:01


2. 신흥사의 5월

Shooting Date/Time 2008-05-10 오후 2:58:00


3. 신흥사 돌담장 사이로 산책나온 다람쥐

Shooting Date/Time 2008-05-10 오후 3:06:08


4. 고교 수학여행(1979년) 이후 29년만에 다시 올라가본 '흔들바위'

Shooting Date/Time 2008-05-10 오후 3:53:14


5. 강원도 주문진 부근 광나루 앞바다

Shooting Date/Time 2008-05-10 오후 7:16:01


6. 바닷가에서 오월의 저녁을 즐기는 동네꼬마 녀석들

Shooting Date/Time 2008-05-10 오후 7:26:59


7. 눈부신 5월의 어촌 풍경(광나루)

Shooting Date/Time 2008-05-11 오전 10:51:25


8. 그림같은 풍경의 주문진 광나루 앞바다

Shooting Date/Time 2008-05-11 오전 11:06:07


9. 템플스테이를 위해 찾아간 영월 법흥사(난생 처음 108배도 올리고... 절에서 먹고 자고....)

Shooting Date/Time 2008-10-18 오후 4:18:01


10. 산사의 가을밤을 수놓은 야외 콘서트

Shooting Date/Time 2008-10-18 오후 7:44:17


11. 밤늦도록 이어진 템플스테이 행사


Shooting Date/Time 2008-10-18 오후 9:32:40



12. 법흥사 일주문(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

Shooting Date/Time 2008-10-19 오후 1:10:09


13. 오대산 상원사 가는 길(신라 선덕여왕 14년인 64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짐)

Shooting Date/Time 2008-11-01 오전 10:06:20


14.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Shooting Date/Time 2008-11-01 오전 10:17:44



15. 적멸보궁 올라가는 길


Shooting Date/Time 2008-11-01 오전 10:52:24



16. 산사의 늦가을 풍경


Shooting Date/Time 2008-11-01 오전 10:56:58



17. 상원사 동종(신라 성덕여왕 25년인 725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


Shooting Date/Time 2008-11-01 오후 4:32:13



18. 오대산 월정사(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


Shooting Date/Time 2008-11-01 오후 5:12:57



19. 석모도 보문사와 눈썹바위(신라 선덕여왕 4년인 635년에 회정()이 창건)

Shooting Date/Time 2008-12-13 오후 4:52:19


20. 보문사 눈썹바위 아래 마애석불좌상

Shooting Date/Time 2008-12-13 오후 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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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는 한겨울에 북한산을 오르기 위해 도선사를 거쳐 백운대에 올랐고, 무더운 여름엔 북한산의 계곡을 찾아 삼천사와 진관사를 지나다녔다. 그리고 봄이 오는 길목엔 전북 진안에 있는 마이산의 탑사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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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북한산 백운대의 상고대

Shooting Date/Time 2009-02-14 오전 11:09:48


22. 백운대에서 바라본 북한산 능선

Shooting Date/Time 2009-02-14 오전 11:14:07


23. 북한산 인수봉


Shooting Date/Time 2009-02-14 오전 11:18:14



24. 겨울안개에 묻힌 북한산

Shooting Date/Time 2009-02-14 오전 11:25:55


25. 북한산 위문을 거쳐 백운대로 오르는 등산객들


Shooting Date/Time 2009-02-14 오전 11:26:52



26. 지평선 끝까지 가득찬 안개와 구름
Shooting Date/Time 2009-02-14 오전 11:36:00



27. 백운대의 상고대


Shooting Date/Time 2009-02-14 오전 11:43:56



28. 진안 마이산의 탑사


Shooting Date/Time 2009-04-25 오후 2:35:12

 

 

29. 탑사의 돌탑(1885년 이갑용이 마이산에 들어와 수도하다가 1900년 무렵부터 탑을 쌓기 시작)

 



Shooting Date/Time 2009-04-25 오후 2:44:44



30. 북한산 삼천사(신라 문무왕 1년인 661년에 원효대사가 창건)


Shooting Date/Time 2009-10-25 오전 10:46:04



31. 시원한 계곡물이 쏟아지는 삼천사 계곡(동행한 친구의 모습, 2011년 8월)


Shooting Date/Time 2011-08-06 오전 11:55:02



32. 매끄러운 천연바위를 이용해서 공짜로 '워터 슬라이드'를 즐길 수 있는 삼천사 계곡


Shooting Date/Time 2011-08-06 오후 2: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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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는 이른 봄에 지리산에 있는 화엄사와 쌍계사, 늦가을엔 덕유산의 백련사를 스치듯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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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지리산 화엄사 입구 (백제 성왕 22년이던 544년에 인도 승려인 연기조사가 창건)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30:17

  

34. 템플스테이 수련원(다시 한번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고 싶은 곳)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33:31

 

 

 

35. 화엄사의 석등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36:38

 

  

36. 눈쌓인 노고단과 봄기운이 감도는 화엄사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38:09

 

 

 

 37. 눈덮인 지리산 능선(노고단)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39:07

  

 

38. 눈덮인 노고단과 화엄사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39:22

 

  

39.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전체 높이 6.4m로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42:20

  

 

40. 화엄사 각황전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44:22

 

  

41. 각황전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46:48

 

 

 42. 범종각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47:28

 

 

43. 목어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50:04

 

 

44. 석등의 빛깔과 닮은 옷을 입은 처녀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50:45

 

 

45. 푸른 빛깔을 고이 간직한 채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소나무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전 11:51:58

 

 

46. 단청이 몹시 아름다운 쌍계사 일주문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후 1:17:12

 

 

47. 쌍계사 석탑(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3년인 723년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후 1:24:10

 

 

 

48. 쌍계사의 대나무 

Shooting Date/Time 2010-03-13 오후 1:43:56

 

 

49. 덕유산 백련사 가는 길(무주구천동 계곡의 하늘) 

Shooting Date/Time 2010-10-30 오전 10:25:14

 

 

50. 백련사 가는 길 

Shooting Date/Time 2010-10-30 오전 10:36:44

 

 

51. 덕유산 백련사(신라 신문왕 때 백련이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중 이 절을 창건)

Shooting Date/Time 2010-10-30 오전 10:51:33

 

 

52. 백련사 경내 

Shooting Date/Time 2010-10-30 오전 11:05:18

 

  

53. 백련사의 가을 풍경

Shooting Date/Time 2010-10-30 오전 11:08:31

 

 

54. 백련사 

Shooting Date/Time 2010-10-30 오전 11:28:12

 

  

55. 백련사를 지나 덕유산 능선에서 바라본 하늘 

Shooting Date/Time 2010-10-30 오전 1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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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는 계룡산의 갑사와 남매탑을 거쳐 춘천의 오봉산 자락에 있는 청평사와 대구의 동화사 등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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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계룡산 갑사 가는 길
(백제 구이신왕1년인 420년에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가 창건)

Shooting Date/Time 2011-10-15 오전 9:35:41

 

  

57. 가을단풍에 물든 남매탑 

Shooting Date/Time 2011-10-15 오후 2:44:30

 

 

58. 갑사에 오르는 친구들 

Shooting Date/Time 2011-10-15 오후 4:38:37

 

 

59. 갑사와 계룡산 

Shooting Date/Time 2011-10-15 오후 4:47:35

  

60. 계룡갑사 

Shooting Date/Time 2011-10-15 오후 4:48:13

 

 

61. 갑사를 떠나며...... 

Shooting Date/Time 2011-10-15 오후 4:52:33

 

 

62. 춘천 오봉산 입구 

Shooting Date/Time 2011-10-22 오후 12:32:07

 

 

63. 오봉산 능선에서 내려다본 청평사(고려 광종 24년인 973년에 영현선사(永賢禪師)가 창건)

Shooting Date/Time 2011-10-22 오후 1:48:38

 

  

64. 청평호의 가을 

Shooting Date/Time 2011-10-22 오후 1:58:59

 

 

 65. 청평사를 찾은 연인 

Shooting Date/Time 2011-10-22 오후 4:21:19

 

  

66. 막배는 5시에 떠나네...... 

Shooting Date/Time 2011-10-22 오후 5:03:48

 

  

67. 대구 팔공산 북지장사의 붉은 단풍 

Shooting Date/Time 2011-11-12 오후 2:42:10

 

 

 68. 북지장사의 한 조각 붉은 잎새 

Shooting Date/Time 2011-11-12 오후 2:43:51

 

  

69.북지장사의 늦가을 오후 

Shooting Date/Time 2011-11-12 오후 2:55:34

 

 

70. 북지장사를 떠나며.....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한 고향의 친구들)

Shooting Date/Time 2011-11-12 오후 3:11:43

 

 

 71. 팔공산 갓바위(관봉약사여래불)   

Shooting Date/Time 2011-11-12 오후 5:01:52

  

 

72. 해가 저물도록 촛불을 밝히고 기도드리는 사람들  

Shooting Date/Time 2011-11-12 오후 5:09:28

 

  

73. 유서깊은 동화사(신라 소지왕 15년인 493년에 극달(極達)이 창건)

Shooting Date/Time 2011-11-13 오전 9:28:14

 

 

74. 석축이 아름다운 가람~  

Shooting Date/Time 2011-11-13 오전 9:42:11

 

  

75. 가을 햇살과 코스모스가 어울리는 동화사  

Shooting Date/Time 2011-11-13 오전 9:42:51

 

 

 76. 팔공산 품에 안긴 동화사 

Shooting Date/Time 2011-11-13 오전 10:15:20

 

 

 77. 겨울에 오동나무꽃이 상서롭게 피어났다는 동화사 

Shooting Date/Time 2011-11-13 오전 10: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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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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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1-14 0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데이지님 글을 보고 hnine이 몇줄 끄적거리고, 제가 몇줄 끄적거린 것을 읽어주신 후 oren님이 이런 정성 가득한 페이퍼를 올려주시고 ^^
사진 찾아서 올리시고 글을 쓰시느라 늦게 주무셨겠군요.
참 많은 절을 다니셨네요. 저는 결혼하기 전에 주로 많이 다녔고 지금은 집에서 가까운 동학사와 갑사만 종종 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절 밥은 먹어봤어도 잠은 안 자봤는데 템플 스테이도 해보시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셨으니 들려주실 이야기도 많으리라 생각되어요 ^^
진안 마이산은 올라가기가 만만치 않았던 기억이 나고, 강화도에서 들렀던 절이 보문사였는지, 전등사였는지 가물가물하고요.
사진도 참 좋아요. 배경을 꽉 차게 잡고 인물을 두어명만, 아주 작게 들어가게 찍으니 그것도 멋진데요.
올려주신 쇼펜하우어의 말은 끄덕끄덕하면서도 섬뜩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2012년에는 어떤 산을 다녀오시게 될까, 카메라는 꼭 가지고 가셔야지요? ^^

oren 2012-01-14 13:30   좋아요 0 | URL
hnine님께서는 동학사와 갑사를 자주 가시는군요. 저는 작년 가을에 계룡산을 처음 가봤답니다. 갑사도 좋았지만 저는 남매탑이 참 인상적이더라구요. 거기에 얽힌 전설과 '갑사로 가는 길'이라는 수필도 떠오르고요.

템플스테이는 꼭 한번 체험해 볼 만한 멋진 경험이었답니다.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한 깊은 산속 절에서 잠을 자보는 것만 해도 정말 특별한 느낌이었고, 스님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산에도 올라보고 음식도 함께 나눠 먹고... 특히나 정말 잘생긴 젊은 총각스님(?)이 깊은 산속의 어둠 속에서 홀로 통키타를 치며 멋지게 불러주던 '귀거래사'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만큼 '감동'을 안겨주더군요(그걸 동영상으로 담지 못한 게 정말 너무너무 아쉬웠답니다).

저는 평소에 일부러 사찰을 찾아가는 경우는 드물고 주로 등산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사찰에도 들르게 되는데, 올핸 전남 영암의 월출산과 그 인근의 도갑사와 무위사, 그리고 전남 해남의 두륜산 대흥사와 충렬사 등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두 곳 모두 한두번씩 가본 곳인데, '대흥사 가는 길'도 정말 아름답더군요. 올 가을에 다녀오게 되면 '사진'을 꼭 남기겠습니다. ㅎㅎ

stella.K 2012-01-14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오렌님의 사진은 언제봐도 멋집니다.
특히 계곡에서 물 맞는 친구분의 모습은...!ㅋㅋㅋ
지금 보기엔 추운데요?
사신 잘 찍는 사람 보면 참 부럽더라구요.
잘 봤습니다.^^

oren 2012-01-14 13:40   좋아요 0 | URL
계곡에서 물 맞는 저 친구는 '백두산'에도 함께 갔던 친구인데, 정말 '산과 절'을 좋아하는 녀석이랍니다. 저 친구는 젊어서 한때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서울을 떠나 지리산 실상사 근처에서 '귀농생활'을 시도해 보기도 했던 경험이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귀농'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는 않지요. 그런데 저 친구는 아직도 늘상 '귀농'을 꿈꾸고 있답니다.

지금은 비록 한겨울이라 계절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지난해 가장 무더웠던 어느 여름 한낮에 담아온 '북한산 삼천사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를 배달해 봅니다. ㅎㅎ


stella.K 2012-01-16 11:38   좋아요 0 | URL
ㅎㅎ 별찜해놨다 여름되면 다시 볼랍니다.
지금은 넘 추워요.ㅠㅠ

숲노래 2012-01-14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마실과
좋은 나날
누리셔요~

oren 2012-01-15 17:0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된장님도 늘 좋은 나날 되세요~

블루데이지 2012-01-15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답사꾼이신데요..앞으로 가끔 생각나게 할 것같은 글과 사진이 너무 멋집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꼭 절을 갈때마다
지리산 화엄사와 쌍계사는 가을에 ..
갑사나 마이산은 여름에...
설악산은 겨울에만 가게되는것 같아요..다른계절에 반짝반짝 빛나는 절과 산을 보니 더 새롭고 예쁘네요..
감사히 잘봤습니다..자주 올께요!! 매력적인 oren님의 서재십니다.
화암사 꼭 가보세요..다른절들과는 스케일 자체가 비교도 안되게 소박하지만...볼게 없어서 더 다행인 절입니다.

oren 2012-01-15 17:07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께서 절을 찾으시는 계절은 어쩌면 저와는 계절이 두셋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주로 이른 봄에 지리산 방향으로 움직이구요(구례 산수유와 광양의 매화도 볼겸). 설악산은 여름과 가을에 주로 간답니다(어떤 해에는 물론 사시사철 구분없이 자주 가기도).

화암사는 블루데이지님과 hnine님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기회가 되면 꼭 가볼께요~

페크pek0501 2012-01-15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 사진 - 역시 거대한 자연을 나타내는 데엔 사람이 한두 명 있어 줘야 되고...
13번 사진 - 이 길을 걸으며 자연 속에 안겨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고...
61번 사진 - 그 푸르름에 취하고 싶고...
64번 사진 - 풍경 보면서 명상에 잠길 것 같고...

'그기 뭐 볼끼 있다고' - 저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내가 집에만 있느라고 저런 멋진 풍경들을 못 보고 사는 구나, 싶어서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멀리 가려 하면 귀찮은 생각이 들죠.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이 행복도 더 많이 누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런 건 추천 20개쯤 날려 줘야 하는 건데(기술로 보나, 정성으로 보나, 아름다움으로 보나)... 안타깝게도 한 번만 누르고 갑니다. ㅋㅋ

oren 2012-01-15 17:18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져 있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말 사람마다 각양각색이 아닐까 싶습니다. 꼭 차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두발로 걸어다녀야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끽할 수 있는 건 아닐껍니다. '세상을 음미하는 기술'은 정말 다양할 테니까 말입니다.

pek님께서 여러 장의 사진들에 대해 일일이 감성이 넘치는 댓글을 남겨 주신 것만 보더라도, pek님께서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감상하는 데 남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blanca 2012-01-15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너무 좋아요. 자녀분들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도 그렇고요. 초보 수준이 아니신데요. 이 사진들을 보니 빨리 봄이 와서 저도 저곳들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집니다. 월정사가 그렇게 좋다고 해서 입구까지 갔었는데 너무 차가 많아(아예 움직이지도 않더라고요) 돌아섰던 아쉬운 기억도 납니다. 쇼펜하우어의 저 얘기 들으니 너무 공감가요. 정말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어렸을 때는 어떻게나 시간이 안가던지. 다 저런 이유였군요.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oren 2012-01-16 13:18   좋아요 0 | URL
설악산 신흥사를 거쳐 주문진으로 다녀올 땐 아마도 제 아이들은 집에서 마음껏 컴퓨터를 두들기며 놀았지 싶습니다. 그때(2008년 5월)는 제 아이들이 둘 다 중학생이었는데, 때마침 중간고사를 끝낸 터였고 친구들과도 약속들이 있다고 해서 (신나게 놀라고 내버려두고) 옆지기와 단촐하게 여행을 갔었답니다. ㅎㅎ

월정사 가는 길도 정말 좋은데, 때맞춰(?) 가게 되면 엄청난 혼잡을 피하기 어려운 곳이지요. 무더운 한여름에 월정사 입구의 맑고 시원한 강물에 발도 담그고 아이들과 피래미를 잡고 놀다보면 정말 더위가 싹 가시는 곳이지요. 강물을 따라 쭉 이어진 울창한 숲길도 산책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구요.

쇼펜하우어가 '나이에 대하여' 써놓은 얘기들은 아무래도 blanca님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제가 훨썬 더 크게 공감을 느끼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ㅎㅎ
* * *
젊은이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이란 하나의 끝없이 긴 미래로 보이며, 노인의 입장에서 보면 극히 짧은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의 모든 사물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작아 보인다. 청년시절에는 그처럼 크게 보이던 인생이 꿈과 같이 덧없고, 다만 급격한 현상의 무의미한 교체로 생각되어 허무와 무상이 뚜렷이 들여다보이고 또 마음에 스며든다.

청년시절에는 시간이 가는 것이 무척 더디다. 그러므로 일생의 4분의 1은 행복한 시기고 또 가장 길게 생각되는 부분이며, 그 동안에 기억하는 일들은 어느 시기의 기억보다 훨씬 많다. 자기의 생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 누구나 그 4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그 밖의 4분의 3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 기간은 계절에 있어서 봄과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해가 너무 길어 지루하게 생각될 정도지만,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면 낮이 무척 짧아지는 대신에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노년기에는 왜 과거의 생애가 그처럼 짧게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조금도 소중할 것 없는 대부분의 불쾌한 일들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극히 작은 부분만 남아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빈약해지고 길이도 짧아지는 데서 오는 것이다.(이하 생략)

blanca 2012-01-1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쇼펜하우어의 저 나이에 대한 글은 어디에 있나요? 찾아 읽어 보고 싶어요.

oren 2012-01-16 23:00   좋아요 0 | URL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책에서는『삶의 예지』라는 책의 6장(464쪽∼482쪽)에 나와 있습니다. (이 책 속에는『세상을 보는 지혜』,『인생을 생각한다』,『삶의 예지』,『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등 총 4권의 책이 들어 있으며 총 1023쪽의 꽤나 두꺼운 책입니다) 쇼펜하우어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매일같이 책을 읽거나 그렇지 않으면 '개와 함께' 산책을 하며 '생각'에만 몰두한 나머지 '나이에 대해서'도 정말 할 말이 많았는지 온갖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한가득 풀어놓은 것 같더군요. 끝으로 '나이'를 '자기 자본'에 비유한 대목도 아주 재미있는데 여기에 덧붙여 놓을께요~
* * *
생명력, 즉 체력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36세까지는 그 이자로 살아가는 사람과 같아서 오늘 소모한 체력은 내일이면 회복된다. 그러나 이 무렵을 고비로 그 후로는 자기 자본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자본가가 된다. 처음에는 사태의 변화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아 지출의 대부분은 자연히 원상복구가 되어 이 무렵의 손실은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손실이 점점 늘어가면 눈에 띄게 된다. 그것은 날마다 팽창하여 점점 뿌리를 깊이 박고, 오늘이라는 하루가 돌아올 때마다 어제보다 가난해진다. 그 동안에 그 감퇴는 물체의 낙하처럼 더욱 속도를 내고 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이처럼 생명력과 재산이 날로 줄어든다면 그보다 더 딱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소유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성년에 도달하고 나서 몇 해까지는 생명력에 관해 말하자면 이자 중에서 얼마간은 자본에 보태는 사람과 같다. 그렇게 하면 지출한 금액이 다시 자연히 충당될 뿐더러 자본도 늘어간다. 오, 행복한 청춘! 오, 서글픈 늙은이······. 어쨌든 인간은 청춘의 힘을 소중히 간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