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분석 - 제3판
벤저민 그레이엄.데이비드 도드 지음, 이건 옮김 / 리딩리더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1934년 판과 다른 점 137


SEC가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한 1933년 이전에는 기업들의 분식 회계가 흔한 일이었다. 그 주요 목적은 실적을 더 좋게 보이려는 것이었고, 대개 경영진까지 가담한 주가 조작과 연계되어 있었다. 이 책의 1934년 판과 1940년 판에서는 투자자를 오도하는 술책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같은 사례들을 이 책에서도 반복한다면 독자들이 지금도 이런 관행이 이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우리가 독자들을 오도하는 셈이 된다.


회사의 수익력을 파악하려면 분석가는 다섯 단계로 구성된 표준 절차를 따라야 한다. 138

1. 1년 분석에서는 일회성 항목을 제거한다. 그러나 장기 분석에서는 대부분 포함한다.
2. 임의 적립금 등을 이용해서 차감하거나 가산한 금액을 제외한다.
3. 비교 분석에 적합한 기준에 따라 감가상각 충당금과 재고 자산 평가를 선택한다.
4. 공개하지 않은 종속 회사와 관계 회사의 영업까지 반영해서 이익을 조정한다.
5. 확인을 위해서 연방 법인세비용 충당금과 보고 이익을 대조한다.


분석가는 어떤 기준을 써야 하는가? 175

물가 상승 덕분에 "이익"을 인식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권위자가 강하게 주장했다. 우리는 주주 보고서를 적절하게 작성하면 물가 상승에 의해서 발생한 당기 실적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실적은 "특별 항목"으로 구분하는 편이 적절하다. 따라서 세금 효과와 함께 당기의 정상 영업이익에서 제외해야 한다. 한편, 대차대조표를 분석할 때에는 현행 대체 원가법이 분석가에게 가장 유용해 보인다. 이 방법을 쓰면 같은 산업에 속한 모든 기업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가의 우발 손실 준비금 처리 183

분석가는 방금 논의한 회계사들의 권고에 따라 보고 이익을 조정해야 한다. 이는 이익에서 차감했던 우발 손실 준비금을 다시 이익에 가산하여, "진정한 이익"을 산출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실적이 나빴던 해에 준비금을 이용해서 높였던 이익은 다시 차감해야 한다.

(나의 생각)
가계에서도 이익이 많이 난 해에 준비금을 설정한다면 당연히 손익계산서의 이익에서 차감하는 게 아니라 잉여금에 해당하는 "예금이나 적금" 계정에서 차감하고, 손실이 난 해에도 손익계산서에 이익의 형태로 보태는 것이 아니라 예금에서 꺼내 쓰는 게 맞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회계 전문가들의 공식 입장 191

회계 전문가들의 공식 입장은 ⑴ 대차대조표의 공장 설비 계정 장부가를 인상하지 않는다면 감가상각비도 올려서는 안 되고, ⑵ 이런 장부가 인상을 1923∼1939년처럼 전반적인 물가가 확실하게 안정될 때까지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견해에 동의한다.


상각 정책 219

감가상각비가 그 자산에 대한 현금 지출보다 일상적으로 많으면, 분석가는 회사의 감가상각비를 줄일 수 있다. 이때 평균 현금 지출을 진부화 위험에 포함된 감가상각비로 간주하여 이익에서 차감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하면 기업의 평균 현금 수익력이 감소하게 된다. 진부화를 평가할 때에는 고정자산의 장부가나 대체 원가가 아니라, 투자자가 기업 주식에 지불한 가격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회계사의 인증에 관계없이 243

최근 몇 년 동안 회계 분야에서 재무제표에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담으려는 노력이 많은 진전을 이루었지만, 오늘날 회계 관행을 보면 아직도 보고서에 의심의 여지가 분명히 남아 있다. 따라서 증권 분석가는 회계사의 인증에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분석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나의 생각)
그레이엄 사고의 엄밀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대차대조표에 담긴 여섯 가지 정보 247

대차대조표에는 월스트리트가 지금까지 기울인 것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먼저, 투자자가 대차대조표 분석에서 얻을 수 있는 여섯 가지 정보와 지침을 열거하고자 한다.
1. 회사에 실제로 투입된 자본 규모를 파악할 수 있고, 선순위 증권과 보통주의 구성 현황을 포함해서 자본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2. 운전자본 상태가 건전한지 취약한지 드러난다.
3. 손익계산서에 기재된 이익이 타당한지 확인할 수 있다.
4. 투자자본 이익률 등을 계산하여 사업이 실제로 성공적인지 확인할 수 있다.
5. 이익의 원천을 분석할 수있고, 수익 가치와 자산 가치의 관계도 파악할 수 있다.
6. 장기간에 걸쳐 수익력과 자산 가치의 관계, 재무 구조의 발전 과정을 연구할 수 있다.


자산 가치와 수익력은 무관 268

"제조 업체"와 철도 회사들의 장부 가치는 투자자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주식이 장부 가치의 몇 배에도 얼마든지 거래되고, 장부 가치의 몇 분의 일에도 흔히 거래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49년 코카콜라 보통주의 장부 가치는 약 27이었지만 평균 주가는 148이었고, 노던 퍼시픽 철도 보통주의 장부가는 약 216이었지만 평균 주가는 15.5였다.

사람들이 자산 가치 요소를 경시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주가는 주로 수익력과 배당금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가 움직임이 자산 가치와는 밀접한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투자자와 투기꾼들은 자산 가치가 기업의 수익력이나 평균 주가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이들은 점차 자산 가치 요소를 완전히 무시하게 되었다.

자산 가치가 투자 가치를 좌우하는 주요 요소가 아니라는 견해에 우리도 동의한다. 그렇다고 분석 작업에서 자산 요소를 완전히 무시하는 편이 현명하거나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익잉여금 변화를 이용한 이익 계산 275

이익잉여금 변화를 이용해서 이익을 계산하면, 손익계산서에 빠질 수 있는 손익까지 모두 포함해서 정확한 이익이 산출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 기법을 적용할 때, 자발적 준비금은 모두 이익잉여금으로 취급해야만 한다. 다행히 이런 자발적 준비금은 반드시 잉여금이나 자본에 기재하도록 회계 절차가 바뀌고 있다.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에 대한 장기 분석 276

다음 두 장에서는 투자자본, 이익, 배당, 주가 사이의 핵심 관계를 분석하여 기업 실적의 질과 증권의 매력도를 평가할 예정이다. 보통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려면, 과거 여러 해에 걸쳐 실적 금액과 핵심 비율도 비교해야 한다. 이런 숫자를 통해서 분석가는 기업의 변화 방향, 속도, 부침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적절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10년에 걸쳐 분석하면 대부분 용도에서 양호한 성과를 얻을 수 있으며, 특히 두 기업 이상을 비교할 때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재무 데이터 해석: 주당 실적과 핵심 비율
278

재무제표 분석은 다음과 같은 논리적 순서에 따라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분석가는 분석 기간의 진정한 영업이익을 파악해야 한다. 둘째, 대차대조표를 조사하여 운전자본의 상태, 자본 구조, 주당 투자자본을 산정해야 한다. 셋쩨, 핵심 비율을 계산하여 기업의 전반적인 실적, 선순위 증권의 안전성, 주식의 매력도를 밝혀야 한다.


주가수익비율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
285∼286

대다수 보통주의 주가수익비율은 그 주식의 "질"에 대한 투자자와 투기꾼들의 견해를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강력하고 성공적이며 유망한 기업의 주가수익비율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대체로 높다. 주가수익비율을 좌우하는 주요 요소는 다음 순서로 열거할 수 있다.

1. 재무 데이터에 모두 반영된 요소(유형 요소)
    a. 배당률과 배당 실적
    b. 수익성 - 자기자본 이익률
    c. 과거 이익의 안정성
    d. 과거 매출액 및 이익 증가율
    e. 재무 건전성이나 신용 등급

2. 데이터에 명확하게 반영되지 않은 요소(무형 요소)
    a. 산업의 특성과 전망
    b. 기업의 경쟁력과 전망
    c. 경영의 질


자기자본이익률 287

기업의 성공을 가리는 가장 좋은 척도는 자기자본에 대한 이익 비율이다.


매출액 순이익률과 순자산 순이익률 301

가장 중요한 종합 비율 두 가지는 매출액 순이익률과 순자산 순이익률이다.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이 없도록 314

그러나 이런 실물 및 재무 요소들은 이미 최종 영업 실적에 모두 반영되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회사의 실적을 이런 요소로 설명할 수 있으며, 미래 실적 추정에 단서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요소가 개별적으로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증권 분석 전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분석가가 최종 실적이 좋거나 나쁜 원인을 발견하면, 그는 최종 실적을 벗어나 그 원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철도 산업
328

장래를 내다보면, 철도 회사들의 이러한 투자 속성은 계속 이어질 듯하다. 따라서 철도 산업은 신중하고 분석적인 투자자에게 흥미로운 분야가 될 것이며, 노련한 분석가에게 보상을 제공할 것이다.

(나의 생각)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극심한 고유가 등으로 인해 운송환경이 급변하자 워렌 버핏이 미국의 '철도회사'들에 대규모로 투자를 늘린 점은 무척 흥미롭다. 이 책의 영향력이 얼마나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매출액 영업이익률 353

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비율은 오랜 기간 회사의 비용 통제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지표였으며, 따라서 사업의 지속적인 수익성을 나타낸다.


배당금 367

주지하다시피, 배당금은 주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투자자들은 유보 이익보다 배당금을 훨씬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배당 성향이 높은 회사 367

최근 SEC는 '이스턴 유틸리티 어소시에이츠' 재편 계획에 대해 의견을 발표하면서, 배당금과 주가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이스턴이 '폴 리버 일렉트릭 라이트' 보통주에 지급하는 제시 가격을 논하면서, SEC는 말했다. "지속적으로 배당 성향이 높은 회사는 배당 성향이 낮은 동급의 회사보다 주가수익비율이 대체로 더 높다."


영업이익률 371

영업이익률은 영업이익을 (감가상각 및 연방 법인세 비용 차감 전) 영업수익으로 나눈 비율로서, 기업의 영업 추세를 연구할 때 분석가가 추적해야 하는 단연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유망종목을 놓쳤을 때 입는 불이익 382

보통주 종목을 선정하는 투자자는 손실을 회피하려는  욕구 못지않게 이익을 얻으려는 욕구도 강하다. 유망 종목을 놓쳤을 때 입는 불이익은 부실 종목에 잘못 투자했을 때 만큼이나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채권 투자자는 우량 채권을 아무리 많이 놓치더라도, 부실 채권에 투자하지만 않는다면 사실상 아무 불이익이 없다. 따라서 고정수익증권을 고를 때에는 아무리 까다로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월터 배젓이 상업 은행장들에게 한 말은 채권 투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문제가 있거나 의심스러운 증권은 거절해야 한다."


진부할 정도로 자명한 말 389

역경을 견뎌내야 건전한 투자라는 원칙은 진부할 정도로 자명한 말이다. 호황일 때에는 어떤 채권이나 우선주도 아무 문제가 없다. 불황의 엄격한 시험을 거칠 때에만 강한 종목이 지닌 장점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신중한 투자자들은 역경을 견뎌낸 유서 깊은 기업들의 채권을 항상 선호했다.


투자 위험은 대화재나 전염병과 흡사 394

다양한 투자와 손실 위험 사이의 관계는 상황 변화에 따라 너무도 모호하고 가변적이어서, 수학 공식으로 나타낼 수가 없다. 특히 투자 손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골고루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불황기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따라서 투자 위험은 화재 보험이나 생명 보험에서 계산하지 못하는 예외 요소인 대화재나 전염병과 흡사하다.

(나의 생각)
1934년 판의 표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위험한 투자 395

더 중요한 점은 위험한 투자 대부분이 침체 기간에 한꺼번에 붕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고수익 채권이 한동안은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지만(개인은 십중팔구 모두 소비한다.), 이후에는 갑자기 원금 손실이 줄지어 발생하게 된다.

(나의 생각)
위험한 투자에 대한 정말 날카로운 지적이다. 저자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결코 지적할 수 없는 얘기이다.



내재적으로 취약한 산업이어도 개별 기업이 건전하면 상관없다. 400

어떤 산업의 채권은 모두 배제하고 다른 산업의 채권은 모두 인정하는 방식보다, 취약한 산업에 속한 개별 채권에 대해서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편이 더 건전한 원칙일 것이다.


보호조항에 관한 마지막 경고 417

채권이나 우선주 투자가 성공하려면 주로 회사가 성공해야 하지, 채권 약정서나 정관에 어떤 보호 조항이 실렸는가는 그다음 문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채권 약정서나 정관 조항이 전반적으로 매우 불만족스러운 선순위 채권들이, 1932년 불황기에 최고의 실적을 보이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과거의 부동산 금융 기법 438

그러나 과거의 부동산 금융 기법은 얼마든지 다시 등장할 수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재무 구조가 근본적으로 취약한 회사의 부동산 채권이 등장하여, 아무런 근거 없이 부동산의 미래 가치를 맹신하는 부주의하고 순진한 투자자들을 유혹할 것이다.

(나의 생각)
2007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결국 터졌다. 찰스 P. 킨들버거가 그의 저서에서 표현했던 '질긴 다년생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계속 기업 가치와 수익력 440

"본질적 사업 가치"는 바로 수익력으로 나타난다. 이익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익은 기업의 이자 지급 능력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계속 기업 가치가 채권의 원금보다 큰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개인으로 말하자면 취직해서 안정된 직장에 성실하게 근무하면서 꾸준히 월급을 받는 '성실한 사위'에 비유할 수 있겠다.



우선주 투자의 맹점 464

이런 조건이라면 투자를 해서는 안된다. 앞면이 나오면 보통주가 이기고, 뒷면이 나오면 우선주가 지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수익이 한정된 안정적 증권이라면, 기업의 미래 이익 증가를 기대하고 투자해서는 절대 안 된다. 만일 그 회사의 이익이 증가한다고 확신한다면, 보통주를 사서 이익을 분배받아야 마땅하다. 으레 그렇듯이 미래 이익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면, 우선주를 사서는 안 된다. 높은 수익을 얻을 기회도 없는데, 손실 위험을 떠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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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분석 - 제3판
벤저민 그레이엄.데이비드 도드 지음, 이건 옮김 / 리딩리더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역자 서문 7


최고의 고전이지만 절대 만만치 않은 이 책은 과연 누가 읽기에 적합한가? 적어도 투자와 회계 분야의 기본 용어와 개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시류에 영합하는 얄팍한 투자 서적이 아니라, 두툼한 가치 투자의 고전을 몇 권 정도는 읽어본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마구간처럼 불결하던 금융시장 25


다행히 이 책의 초판(1934년)에서 경고했던 기업의 부당 행위 대부분이 이제는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마구간처럼 불결하던 금융 시장이 깨끗해진데다 기업들의 재무 상태가 개선된 덕분에, 보통주의 투자 지위가 전반적으로 격상되었다.


전쟁 가능성을 앞둔 투자자의 자세
25


이 서문을 쓰는 시점 현재, 3차 세계 대전의 가능성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이 불길한 주제를 증권 분석과 관련해서 말한다면 한 마디로 충분할 것이다. 3차 세계 대전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그러나 증권 분석 분야에서는 단지 다양한 증권 사이에서 선택하는 문제나, 증권과 현금 사이에서 선택하는 문제만 고려하면 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므로, 확정 금액을 지급하는 증권이나 현금보다는, 유형의 생산자산을 상징하는 보통주를 건전하게 선택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증권분석에 대한 보상 26


증권 분석가가 되려고 이 책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고자 하며, 또한 이분들에게 감히 이 책을 바치고자 한다. 증권 분석은 이제 막 전문 분야로 정식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증권 분석 업무에는 과거보다 더 나은 훈련과 더 엄격한 사고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요구와 책임에 상응하는 보상이 충분히 따르리라 생각한다. 그저 "평균적인" 분석가라면, 다른 전문 분야의 평균적인 구성원과 비슷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증권 분석에 대해 천부적 재능과 용기와 독립적 사고를 겸비한 탁월한 분석가라면, 그가 받는 보상은 무한할 것이다.


저평가 종목 27


우리는 투자 분야에서 상대적 중요성이 그다지 높지 않더라도 저평가 종목 발굴 기법을 강조했는데, 이는 증권 분석가가 이를 통해서 가장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안점 27


우리는 이 책에서 현상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는 일에 가장 주안점을 두었다. 우리는 주로 개념, 기법, 기준, 원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논리적 추론에 중점을 두었다.


확고한 가치투자 28


이른바 확고한 가치 투자는 스피노자의 표현을 빌리면 "재난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접근할 때에만 건전하게 선택할 수 있다. 다른 유형의 투자를 다룰 때에도, 우리는 독자들에게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내내 경고하였다. 월스트리트에서 20년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고 보니, 투자의 세계에서 이런 지나친 강조는 착각일 뿐이며 응징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우량주 34


우리는 상장 주식의 약 80%, 비상장 주식의 90%가 분명히 "비우량주"에 속한다고 본다. 우량주냐 비우량주냐에 따라 주가 움직임이 크게 달라지는데, 분석가는 이 사실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계추처럼 반복하는 점 43


일부 전문가는 각 산업 집단에서 확장, 둔화, 쇠퇴, 완전한 소멸로 이어지는 표준 패턴이 되풀이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업 실적을 보는 관점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예컨대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기업 같은 미국 대기업들의 두드러진 특성이, 실적 호전과 악화가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점이라고 본다.


분석가의 역할 55


분석가에게는 사실이 공정하게 발표되는지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 이는 분석가가 회계 기법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끝으로, 증권의 가치는 경영진의 행위에 크게 좌우되므로, 증권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경영 정책에 관심을 둬야 한다. 여기에는 자본 구성, 배당금과 확장 정책, 경영진의 능력과 보상, 심지어 무수익 사업의 청산 여부까지 포함된다.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해 분석가는 비판적 의견을 표현하고, 실수를 방지하며, 재량권 남용을 바로잡고,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


(나의 생각)
애널리스트의 역할에 대한 훌륭한 언급이다.



독자적인 가치기준
 62

경험적으로 보면, 강세장의 절정기에서는 우량주조차 위험스러울 정도로 과대 평가되기도 한다. 따라서 증권 분석가는 변덕스러운 시장의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에 휩쓸리는 일 없이, 반드시 독자적으로 가치 기준을 세워야 한다.


비우량주의 낮은 시세 63


현실적인 증권 분석가라면 비우량주의 중심 가치가 시가에 어느 정도 못 미치더라도 이를 "정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비우량주가 공정가격에 거래될 때는 오히려 과대평가된 경우가 많다. 또한, 처음으로 상장된 기업의 주식은 증권 시장의 속성 때문에, 이후 여러 해 주가가 불만족스럽기 쉽다는 뜻도 된다.


저울이 아니라 투표소 65


시장은 각 종목의 가치를 그 구체적 특성에 따라 정확하고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므로, 저울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시장은 차라리 투표소라고 보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이 이성과 감정을 뒤섞어 선택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강세장에서 저평가된 종목 66

강세장이 펼쳐질 때, 객관적 기준으로 보더라도 확실히 저평가된 개별 종목이 항상 많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런 종목들은 잔뜩 오른 다른 종목들과 대조되면서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분석가는 이런 종목이 보기 드문 기회라고 추천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때가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런 "소외 종목"은 강세장 내내 소외당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약세장으로 돌아서면 시장과 함께 큰 폭으로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부분 주식이 많이 올랐을 때는 "저평가 주식"도 경계해야 한다.


가격변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66


증권 분석가는 내재 가치보다 싸게 사서 내재 가치보다 비싸게 팔 기회를 주는 가격 변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는 단기적인 시장 움직임에 몰두해서는 안되며, 시장의 방향이 바뀌는 시점을 정확하게 잡아내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


단지 거래가 빈약하다는 이유 만으로 67


다른 조건이 같다면, 시장성이 높은 증권을 보유하는 편이 분명히 유리하다. 그러나 시장성을 얻으려고 가치를 희생해야 하는 순간, 증권 분석의 과제가 시작된다.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지자면, 투자자는 매력적인 종목인데도 단지 거래가 빈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회피해야 하는가? 투자 관행을 전반적으로 보려할 때, 우리는 시장성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었으며,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실적이 나빠졌다고 확신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증권분석에 좋지 않은 영향 68

이렇게 먹고사는 문제가 증권 분석에 좋지 않은 영향을 적잖이 미치는데, 이는 증권 분석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증권사 직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래가 활발한 인기 종목은 지나치게 강조하고, 시장성이 떨어지는 비유량 종목들의 가치는 무시하기가 쉽다.


투자 운용이란 76


투자 운용이란,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원금의 안전과 만족스러운 수익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운용은 투기다.


몬테카를로 카지노 80


몬테카를로 카지노에서 룰렛은 19대 18의 비율로 카지노에 유리하다. 따라서 판돈이 37달러 걸릴 때마다 카지노는 평균적으로 1달러씩 번다. 이것은 미숙한 투자자나 투기꾼에게 불리한 확률이다.
 

미래와의 관계 81


투자는 과거에 비탕을 두지만, 투기는 주로 미래를 바라본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에는 허점이 많다. 투자와 투기 둘 다 미래에 시험받는다. 둘 다 가치가 오르내릴 수 있으며, 미래에 평가받는다. 그러나 투자 개념에는 분석가가 미래를 보는 관점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투자는 미래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이익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개선된다면 매우 좋은 일이지만, 미래가 개선된다는 기대에 크게 의지해서 투자해서는 안 된다.


투자 요소와 투기 요소
83


1939년 평균 주가 38달러에 GE 주식 매수를 고려한 분석가는, 예컨대 엄격한 관점에서 투자 가치를 25달러로 판단할 수도 있었다. 나머지 13달러는 기업의 탁월한 장기 전망에 대한 주식 시장의 평가인데, 여기에는 탁월한 기업을 선호하는 강력한 심리적 편향도 포함된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분석가는 GE 주가 38달러 가운데 투자 요소가 25달러이고 투기 요소가 13달러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이런 판단이 건전하다면, 25달러 이하에 이 주식을 살 경우 완벽한 투자가 된다. 그러나 25달러를 초과해서 산다면 회사의 투기 요소에 돈을 치르는 셈이다.

(나의 생각)
현재(2011. 1.16) 대한민국 증시에서 거래되는 '탁월한 장기 전망'을 갖고 있는 주식의 '투기요소는 얼마쯤 될까' 궁금해진다. 아직은 좀 이른 것 같지만 올해 중으로 만약 주가지수가 2,500P 안팎까지 오른다면 투기요소는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분산 투자 85


안전마진 원칙을 적절하게 이용하려면 반드시 분산 투자를 실행해야 한다. 안전마진이 손실 방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손실 확률을 낮춰줄 뿐이다. 그리고 주식에 대해서는 이익 확률을 높여준다. 잘 알려진 관행인 "위험 분산"을 실행하면, 개별 확률을 거의 확실한 수준까지 높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보험 사업의 초석이며, 건전한 투자에도 초석이 되어야 한다.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 90


주식 투자에서 심각한 위험을 피하려면 고도의 경험과 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개인들은 투자 펀드 주식을 사서 전문가에게 자금 관리를 맡김으로써, 간접적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편이 논리적이다.


개인의 투자 정책
91


개인은 상승장에서는 투기꾼이 되고, 폭락한 다음에는 후회하며 보수주의자가 되기 일쑤다. 개인이 선택하는 증권은 주로 영업 직원의 말솜씨에 좌우된다. 반면에 많지 않은 저축으로 미국 저축 채권만 살뿐, 증권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는 사람도 많다. 1948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 시행한 조사가 널리 관심을 끌었는데, 응답자의 90% 이상이 주식은 너무 위험하다거나 생소하다는 이유로 주식 투자에 반대했다.

(나의 생각)
1929년 대공황의 악몽이 뼛속 깊이 각인됐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개인투자자의 증시 참여가 크게 늘어나면서 '대공황의 악몽'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표현을 다른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따분하지만 안전한 길로 안내하는 것 92


방어적 투자자가 지켜야 할 요점은 앞에서 설명한 단순한 원칙과 건전한 절차를 단호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그가 직면하는 세 가지 위험한 유혹은 ⑴ 투기, ⑵ 비우량주 매수, ⑶ 과도한 가격에 우량주 매수다. 양심적인 증권 분석가의 책무는 방어적 투자자가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집요하게 밀착하여 지원하면서, 따분하지만 안전한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공격적 투자자 92


공격적 투자자는 혼자 힘으로 완벽하게 증권을 분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상세한 분석에 의지해도 좋고, 아이디어나 조언을 구해도 된다. 그러나 판단은 자신이 해야 하며, 마지막 결정은 자신의 이해와 판단으로 내려야 한다. 공격적 투자자가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은 자신의 연구와 경험에 비춰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정당하지 않은 증권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 것이다. 증권으로 돈을 벌려는 것은 사업을 벌이는 것과 같으므로, 사업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주주가 회사의 소유자
109


주주들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회사에 정보를 요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요구하면 적어도 일부 데이터나마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주주가 회사의 소유자이며,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달리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주주에게는 질문을 던질 뿐 아니라 답변까지도 받을 합법적 권리가 있다.


원인과 결과를 별개의 요소처럼 취급하는 셈 114


우리는 월스트리트와 증권 회사들이 활용하는 산업 분석의 기본적 유용성에 대해, 아마도 우리의 편견일지 모르지만 심각한 유보적 관점을 일찌감치 밝히는 바이다. 산업 분석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연계한다. 그러나 과거 요소들은 기업들의 실적에 영향을 미쳤고, 이들의 주가에 이미 반영되었다. 어떤 산업의 이익이 높거나 낮다고 언급하면서, 그래서 이 산업의 위치가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는 마치 원인과 결과를 별개의 요소처럼 취급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중복 계산 115


주식 시장에서는 경영진 요소를 평가할 때 두 번 계산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가에 우수한 경영진이 올린 높은 이익이 반영되었는데도, "훌륭한 경영진"을 별개의 요소로 보고 상당한 가산점을 추가로 부여한다. 이는 "중복 계산"으로서, 흔히 과대평가의 원인이 된다.


미래 이익 추세 115


1920년대 이후 이익 추세가 갈수록 강조되었다. 이익 실적이 증가하면, 이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유리한 신호다. 그러나 재무 이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과거 추세를 미래로 연장하여 미래 이익을 예측하였고, 이런 예측을 바탕으로 기업을 평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숫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평가가 "수학적으로 확실"하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과거 추세는 사실이어도, "미래 추세"는 가정에 불과하다. 그리고 경제가 비정상적으로 과열되거나 침체하면 당국이 대응 정책을 펴기 때문에, 경제가 무한정 계속 상승하거나 하락하지도 않는다. 추세가 명확하게 눈에 띌 때쯤이면, 변화의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보아야 한다.

(나의 생각)
정말 놀라운 혜안이다. 그리고 그레이엄의 성격을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견해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 116


과거 평균이 반복될 것이므로 미래에도 과거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는데, 우리는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 이런 관점이 옳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추세가 과거 평균보다 유용한 것은 아니다. 증권 분석에서는 과거 평균이 반복된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다만, 미래를 내다보는 개략적인 지표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나 추세는 개략적인 지표로도 사용할 수 없다. 실적에 대해 개선이든 악화든 예측이 명확하게 나오므로, 실제로 추세는 맞거나 틀릴 수밖에 없다.


과도한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는 이유 117


시장에서 과도한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는 것은, 사람들이 주로 전망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는 탓에, 그 판단이 거의 필연적으로 극단에 치우치기 때문이다.


"예측 방식"보다 "평가 방식"을 선호 117


이제 눈치를 챘겠지만, 우리는 증권 분석이 주로 측정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채권이라면 안전성을 측정하고, 주식이라면 가치를 측정해야 한다. 그래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예측 방식"보다 "평가 방식"을 선호하며, 측정 불가능한 질적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나 일반 실무 분석가들의 태도도 우리와 같은 것은 절대 아니다. 투자자들뿐 아니라 증권 분석가 중에도 분석가의 주요 임무가 "훌륭하고 유망한" 기업을 선정하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일정 범위에서 절충할 수 있다 118


공격적 투자자는 질에 대해 더 폭넓게 접근할 수 있다. 그는 가치가 가격보다 훨씬 높은지만 확인한다면, 증권의 질적 요소와 양적 요소를 일정 범위에서 절충할 수 있다. 따라서 경영진이 최고 등급에 못 미치고, 과거 실적이 탁월하지도 않으며, 미래 전망이 매력적이지 않은 증권이라도, 이런 요소들이 가격에 지나치게 반영되어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증권 분석과 미래 119


증권 분석은 예상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해서 주로 가치를 다룰 때 가장 유용하다. 따라서 분석가가 쓰는 방식은 미래 예측 능력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투기꾼의 방식과 정반대가 된다. 물론 분석가도 미래 변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 주요 목적은 미래로부터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손실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분석가는 기업의 미래를 변명의 원천이 아니라 대비해야 하는 위험으로 보아야 한다.


가장 안전한 경우 119


분석가는 미래 전망 자체에 상당한 비중을 둘 수 있는데, 자신이 평균 이상이라고 판단하는 기업을 우선 선택해야 한다. 주식을 선정할 때 그는 전망에 대해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평가가 지나쳐서 강조하는 수준까지 이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자제력을 상실하여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실적과 현재 상황에 근거해서 사도 건전한 종목 중에서 전망까지 유리한 기업을 고를 때가 가장 안전하다.


필요조건이지, 절대로 충분조건이 아니다 122

양적 요소와 질적 요소에 대한 논의를 요약하자면, 분석가는 반드시 숫자와 확립된 기준을 근거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이런 숫자만으로는 부족하다. 질적 요소가 반대로 나타난다면 결론이 완전히 뒤집힐 수도 있다. 실적 통게가 만족스럽더라도, 장래 전망이 의심스럽거나 경영진을 믿을 수 없다면 그 증권은 제외해야 한다. 분석가는 과거 실적이 매우 안정적이어서 뜻밖의 사건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안정성이라는 질적 요소를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양적 요소가 이례적으로 유리하면 분석가는 그 종모겡 대해 훨씬 더 확신할 것이다.

그러나 질적 요소에 크게 의지해서 판단을 내리는 경우라면, 다시 말해서 가격이 숫자만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높다면, 이런 분석은 인정받기 어렵다, 엄밀하게 말하면, 만족스러운 실적 통계는 분석가가 판단을 내리기 위한 필요 조건이지, 절대로 충분 조건이 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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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의 ‘참된 인격‘에 관해서 다양하고 깊이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책
세계 자본시장의 흐름을 바꾼 불후의 명저
애써 작성한 리뷰글을 내려야 하다니......
증권분석 - 제3판
벤저민 그레이엄.데이비드 도드 지음, 이건 옮김 / 리딩리더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만약 사고의 명확함이 요구되면, 그에게 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만약 격려나 조언이 필요할 때면, Ben이 그곳에 있었다.
한 사람이 나무를 심고 다른 사람이 그 나무 아래서 쉬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면
Ben Graham이 그런 사람이었다.


- 워렌 버핏,《Financial Analysts Journal》기고문(1976년) 中에서

 * * * * *



지금으로부터 117년 전인 1894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895년 부모님을 따라 뉴욕으로 이주한 벤저민 그레이엄은 60대와 70대의 노년에 캘리포니아의 비버리 힐즈와 라호야, 엑상 프로방스, 마데이라 등 여러 곳에 살았지만, 82세를 일기로 1976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거의 대부분의 삶을 뉴욕과 월스트리트에서 보냈다.

'월가의 스승'으로 불리는 그의 인격의 특징은 주로 솔직함, 겸손함, 정직함, 창조성, 관용, 영리한 재담가, 진지한 노력 등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과의 로맨스를 인생의 참된 경험으로 여기며 즐길 줄도 알았던 인물이다.

사생활 측면에서 그레이엄은 바람둥이의 특징이 시사하는 모든 천박함을 지녔다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1988년 4월 미국 경제인 명예의 전당에 그가 사후 등재된 데 대한 언론의 헌사는 동정적이었다. 한 작가는 그를 "어떤 면에서 정에 약한 사람인 그는 세 번 결혼했으며, 알프스의 산양이 이 봉우리, 저 봉우리를 뛰어다니듯이 금발에서 금발로 뛰어다녔다"라고 말했다. 그의 친구이자 제자인 워렌 버핏은 좀 더 관대하게 그의 이 같은 성격을 묘사한다. "사생활이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벤은 여자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여자들도 그를 좋아했다. 그는 육체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품위가 있었다." 버펫은 그레이엄이 매일 창조적인 일, 어리석은 일, 그리고 관대한 일을 하기 원했다고 덧붙였다.  - 벤저민 그레이엄 - 월가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 회고록 中에서

이 책의 저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그는 흥미로운 사람이다. 얼핏 생각해 보면,『증권분석』이라는 몹시도 딱딱하고 읽기 어려운 책을 쓴 저자로서의 그의 인생을 특징지울 수 있는 단어는 고작 몇 개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쉽다. 월스트리트, 증권분석, 현명한 투자자, 워렌 버핏의 스승, 투자 등등. 그렇지만 그를 조금 더 자세히 알고 나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우리는 그레이엄을 통해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수많은 유명 인물들과 그들이 쓴 훌륭한 저작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는 위대한 저자들의 열렬한 독자였고 많은 저자들을 원어로 읽었다: 호머, 유리피데스, 버질, 키케로, 호러스, 루크레티우스, 타키투스, 카툴루스, 단테,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베이컨, 밀턴, 데카르트, 포프, 필딩, 기번, 레싱, 맥콜리, 쉴러, 칸트, 디킨스, 드 퀸시, 에밀리 브론테, 테니슨, 니체, 위고, 휘트먼, 톨스토이, 하우스만, 보들레르, 입센, 콘라드, 프로스트, 카프카, 릴케, 스베보, 그리고 특히 이 책과 관련해 벤저민 프랭클린과 루소, 라 로슈코프, 샤또브리앙, 공쿠르 형제 같은 회고록의 저자들이다. ······ 문학과 연극, 오페라 그리고 콘서트 홀에 항상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 벤저민 그레이엄 - 월가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 회고록 中에서

그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그는 마치
평생독서계획을 쓴 클리프턴 패디먼이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레이엄의 회고록 속에는 그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 호머의『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유리피데스의『비극론』, 키케로의 『전집』(특히, 『웅변술』, 『우정론』, 『노년에 관하여』), 베르길리우스의 『전집』과 『아이네이스』, 루크레티우스의 『우주론』, 프랜시스 베이컨의 『학문의 진보』, 입센의 『희곡집』(특히 『인형의 집』), 알렉산더 포프의 『비평론』과 『인간론』, 헨리 필딩의 『톰 존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과 『성』등은 어찌보면 평생독서계획의 책 내용과 '아이템들'이 너무 닮았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문학적 자질 덕분에 어려서부터 유난히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평생 동안 '매우 즐겁게' 공부를 했다. 오랫동안 많은 희곡을 썼고 몇몇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상영되기도 했지만 끝내 '한 번의 커튼 콜도 없어'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만 했을 뿐이었다. 그가 위대한 문학작품을 남기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는 어쩌면 그 자신이 그토록 도달하기 위해 애썼던 높은 문학적 성취보다 (덜 향기롭기는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저술을 남김으로서 당대 뿐만 아니라 후세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측면에서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가 남긴 위대한 저술이 바로 1934년에 발간한『증권분석』과 1949년에 발간한『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이다.

수학을 전공했던 벤저민 그레이엄은 컬럼비아 대학에 들어가자 말자 그리스 로마 고전 문학과 언어, 문학, 역사, 철학에 매료된 그는 인문학 분야의 졸업생 명예클럽인 피 베타 카파 회원이 되었고, '유능한 대학생들을 재계로 내보내려는 강한 의도를 가졌던' 케펠 학장의 조언에 따라 금융 분야 직업을 갖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1914년 졸업 당시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 수학, 영문학 등의 관계자로부터 잇따라 교수직이라는 '거절하기 힘든 대단한 제의'를 받았으나 그는 결국 월스트리트로 발걸음을 내디뎌 뉴버거라는 중개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학부생일 때 경제학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월가에 입성한 그는 채권거래 업무를 담당하면서부터 금융의 기초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채권이 가장 바람직한 투자 종목이었고 주식은 투기 종목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타고난 천재적 지능과 탐구심에 힘입어 채권 분석과 보고서 작성에서 곧바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몇몇 채권거래와 차익거래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고 한다.

1917년 9월부터 1927년 1월까지〈매거진 오브 월스트리트〉라는 잡지에 꾸준히 기고문을 쓰기 시작했다. 11년 간의 기고문을 담은 책은 국내에서도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읽기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훗날『증권분석』이라는 책을 쓰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 잡지는 당시 경제잡지 가운데 업계 수위를 달리는 곳이었고, 그의 기고문은 반응이 매우 좋아 글을 쓰기 시작한 다음해에는 잡지사 측에서 편집장 자리를 제의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뉴버그에서 일을 계속하게 된 그는 결국 1923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투자회사를 직접 차렸고, 그 이후로는 자신의 다양한 기업활동을 통해 월가에서 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하였다.

1927년 가을 학기부터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증권분석'과정의 강의를 시작했는데, 이 때『증권분석』의 공저자가 될 데이비드 도드를 대학원생이자 조교로 만나게 된다. 컬럼비아에서 엄청난 인기를 불러모은 증권분석 강의는 그 뒤 1954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한편 1923년부터 본격적인 사업 활동으로 시작한 '투자 활동'은 1929년에 이르러 펀드 자본금이 250만 달러로 늘어났는데, 때마침 불어닥친 대공황으로 인해 1929년 한 해 동안에 20%의 손실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1930년에는 믿기 어려운 50%의 기록적인 손실, 1931년에는 16%의 손실, 1932년에는 3%의 손실(당초의 자본금 250만 달러 중 이 때까지 누적적으로 70%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투자원금의 70%가 사라졌을 때 다우존스 산업평균 주가는 42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런 참담한 실패를 겪으면서도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하는 한편, 1932년에는〈포브스〉에 "미국 기업은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게 더 가치있는가?"라는 주제로 3회 연재물을 발표하기도 하고, 1933년에는 두 편의 희곡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리고 1934년에 마침내 역사에 길이남을 이 책의 초판을 맥그로-힐에서 발간하게 된다. 그 후 이 책은 1940년, 1951년, 1962년, 1988년에 개정판을 냈는데, 1951년에 출판된 제3판이 이번에 새로 번역되어 나온 이 책이다.

그는 오랜 증권분석 강의와 펀드 운용 경험 등을 통해 깨달은 내용들을 바탕으로 1949년에 일반투자자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책을 쓰게 되는데, 그 책이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이다.(1954년에 2판, 1959년에 3판, 1973년에 최종판이자 4판을 워렌 버핏의 도움을 받아 출간했다.)

『증권분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이 책은 컬럼비아 대학과 대학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쓰여진 '대학교재'의 성격을 지닌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기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저자가 이 책의 1934년판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증권분야의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고는 할 수 없고, 증권과 금융에 관한 전문 용어와 기초적인 개념 정도는 알고 있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경영학이나 경제학 또는 회계학이나 투자론을 전공한 사람에게만 읽히기에는 너무 아깝고 또 너무나 가치가 뛰어난 책이다.
 
총 7부로 나눠 다루고 있는 책 내용 가운데 전부 읽기가 부담스러운 독자라면 '조사와 분석기법'을 다룬 부분(제1부), 재무제표의 분석을 다룬 부분(제2부)과 가격과 가치의 불일치를 다룬 제7부의 내용만 읽어도 얼마든지 그레이엄의 훌륭한 지혜를 느껴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은『증권분석』이라는 책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다루고 있는 주제와 내용이 폭넓고 다양하다.

개별 종목을 분석하는 방법뿐 아니라 포트폴리오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것이며, 투자자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 애널리스트는 어떤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도 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우리는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데 중점을 두고, 건전하고 적용 가능한 안전성 검정 방법과 채권, 우선주, 보통주 투자자의 권리와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역점을 두고자 한다. - 벤저민 그레이엄, '초판 서문' 中에서

이 책의 초판이 쓰여진 시대는 경제사적 측면에서 볼 때에도 대단히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레이엄이 월가에 진출했던 그 해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유럽전쟁에 미국이 참전한 이후 뉴욕 증시는 전례없는 장기호황 국면을 지속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역사적 대공황 국면으로 진입하기도 했으며, 철도산업을 비롯한 유틸리티 산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던 때였고, 숱한 기업들이 극심한 경기변동에 따라 흥망과 성쇠를 반복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증권 발행을 통해 막대한 자본을 조달하던 월스트리트에서는 온갖 불법과 사기가 판을 치는 도박장과 같은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

이렇듯 온통 불확실한 경제환경과 금융시장과 헛점 투성이인 회계제도와 증시 환경에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투기와 한탕주의와 탐욕만이 난무할 뿐 합리적인 투자 판단 기준들이 거의 전무하던 시대에 그레이엄이『증권분석』이라는 훌륭한 저술을 발표했다는 사실은 무척 놀랍다. 물론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전부터 11년에 걸친 잡지 기고와 7년 동안 컬럼비아 대학에서 증권분석 강의를 했던 경험을 갖추고 있긴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대를 뛰어넘어도' 여전히 유효한 투자에 관한 원칙과 기준들을 확립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천은 그가 실제로 대공황의 혹독한 시기 동안에 투자활동을 영위하면서 겪게 된 엄청난 고통 덕분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만약 더 일찍 책을 냈더라면 큰 실수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회고록에서 밝힌 바 있다.



이 책의 초판(1934년판)을 읽은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3판(1951년판)을 다시 꼼꼼하게 읽어보니, 두 판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어느 정도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저자는 '책의 내용과 배열이 크게 바뀌었을 뿐 아니라, 책의 구성도 크게 바꾸었다'고 언급했는데,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번역자가 바뀌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자의 목소리'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무엇보다도 1934년판은 '당시의 무질서한 증권시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었는데, 저자의 표현대로 '마구간처럼 불결하던 금융시장이 깨끗해진데다 기업들의 재무 상태가 개선된 덕분에' 제3판(1951년판)에서는 기업의 부당행위와 분식회계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거의 모두 삭제한 점이 눈에 띄었다.

두 번째 차이점은 초판에 비해 제3판에서는 '분석대상기간'이 대폭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제1판과 제2판에서 '사례로 들었던 기업들'에 대한 저자의 주장들(주로 고평가 혹은 저평가에 대한 판단들)을 훨씬 더 실증적으로 깊이있게 검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세 번째 차이점은 '경영진과 주가'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훨씬 더 심층적으로 다뤄졌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연륜이 쌓이고 경제여건이 초판 출간 당시(대공황 직후)보다 훨씬 더 호전된 덕분에, 기업들의 실적이 과거보다 훨씬 더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여전히 저평가된 기업들'이 많았던 건 60년 전에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경영진과 주가'에 대한 저자의 생생한 주장들을 읽어보면, 가치있는 기업의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면서 주가가 저평가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주주 및 경영진'에 맞서 강력하게 투쟁해본 경험이 (저자에게나 혹은 독자에게나) 없었더라면 쉽게 다가오지 않는 내용들도 많은 것 같다.

초판과 제3판에 면면히 흐르는 '저자의 일관된 주장들'은 변한 게 거의 없다. 오히려 훨씬 더 강화되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언제나 멀리 내다보고, 언제나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언제나 꼼꼼하고 분석적이며, 투자의 위험성에 대한 끊임없는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세심한 분석과 현명한 투자가 제공해 주는 커다란 보상에 대해서는 결코 소홀함이 없다.

저자의 현명한 투자자를 읽은 분들이라면 이 책과의 차이점도 궁금할 것이다. '현명한 투자자'는 말 그대로 '투자'의 관점에서 증권시장과 증권(주식과 채권 등)을 바라보고 분석한다. 그렇지만 '증권분석'이라는 책에서는 증권(주식, 채권, 우선주 등)의 가치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그 외에도 증권의 가치를 분석하는데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여러 문제들, 즉 재무제표에 대한 분석과 평가,  경영진에 대한 평가, 자본 구조에 대한 문제, 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문제, 배당에 관한 문제, 그리고 시장 분석과 증권 분석에 대한 문제 등을 폭넓고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증권분석'에서는 주식을 사고 팔 때의 문제뿐만 아니라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때의 문제, 즉 주주로서 경영 개선에 참여하는 문제부터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문제, 자본구조의 문제와 더불어 청산과 매각을 통한 주주 지분의 회수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문제에 접근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제시한다.

이 책이 출간된 이래 오랜 세월이 흘렀고 투자를 둘러싼 제반 경제환경 역시 지금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투자 분야의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벤저민 그레이엄이 인류가 남긴 지혜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고전 읽기를 통해 얻은 혜안, 즉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이 책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덧붙여 그의 빈틈없이 정확한 사고와 부단한 학문적 탐구 노력과 풍부한 실제 투자 경험 등이 제대로 조화를 이룰 수 있었기에 이 책은 발간 이래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투자 분야의 최고의 책으로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단점 가운데 한 가지는 책에 소개된 사례 연구 대상 기업들이 대부분 너무 낯설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사례 분석에서 다루는 일반적인 내용들도 요즘 우리가 투자대상으로 검토하는 기업들과는 다소 동떨어진 부분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대개 사소한 단점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레이엄의 분석이나 접근방법은 결국 가치를 판단하고 투자의사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판단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논리적 고찰 과정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고,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조금의 빈 틈도 허락하지 않는 '분석적 엄밀성'을 독자들에게 훌륭하게 펼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벤저민 그레이엄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았던 때는 24년 전인 198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경영학과 학부생들에게 '전공필수'였던 '재무관리' 과목을 배우면서 저자의 이름을 처음 접했는데, 주가를 결정하는 여러 이론 가운데 그레이엄과 도드가 제시했다는 '그라함·돗드 모형'이라는 게 교재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와서 살펴보니 그 책의 주석에 1962년판 책 제목과 저자가 짤막하게 한 줄로 인용된 게 전부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수많은 경영학과 학생들이 배우는 투자론 과목의 내용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실제' 투자 현실에서는 좀처럼 적용하기 어려운 '이론' 중심이어서 늘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워렌 버핏도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는데 그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였다.

성공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 여러분은 베타계수, 시장의 효율성, 현대포트폴리오이론, 옵션가격, 신생시장등을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이것들은 아예 모르는게 상책입니다. 물론 이것이 대부분의 경영대학원에서 주장하는 지배적 견해는 아닙니다. 경영대학원의 금융커리큘럼은 그러한 과목들로 채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 투자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단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것인가'와 '시장가격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입니다.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렌 버핏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이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투자자의 반열에 올라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간파해 낸 투자의 지혜가 담긴 『증권분석』과 같은 책들은 한사코 외면한 채, 벤저민 그레이엄이 가능한 피하고자 했던 '투자자가 활용하기 힘든 기준이나 복잡한 기술적 방법'이 현대적 투자이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우리의 주된 목적은 현상을 단순히 소개하고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다. 개념, 분석의 방법론, 기준, 원칙 등과 무엇보다 논리적인 고찰 과정을 핵심적인 과제로 삼았다. 우리는 이론 자체보다는 현실 속에서 이론의 가치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너무 까다로워 투자자가 활용하기 힘든 기준이나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복잡한 기술적 방법은 가능한 피하고자 했다. - 벤저민 그레이엄, '초판 서문' 中에서

1930년대에 처음으로 체계적인 증권분석 이론을 수립한 이 책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오늘날 증권 분석에서 가장 기본적인 지표로 사용되고 있는 주가수익비율(PER)과 부채비율, 장부가치 등이 모두 이 책에서 처음으로 일반화한 개념들이다. 컬럼비아와 UCLA에서 증권분석 강의만 40년 이상을 했던 그는 워렌 버핏을 비롯한 숱한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그의 가치투자 이론은 존 보글과 마리오 가벨리, 마이클 프라이스, 존 네프 등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제자들 가운데 특히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그리고 가장 성공한) 투자자로 꼽히는 워렌 버핏과의 관계는 유달리 특별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레이엄은 1951년부터 증권분석 강의를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으로 옮겼는데 마침 그 무렵에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 진학한 학생이 워렌 버핏이었다. 당시 워렌 버핏은 고향인 네브라스카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지원했다가 거절당했는데(하버드대가 워렌 버핏을 불합격시킨 일은 하버드 역사상 최악의 실수 가운데 하나라고 불려진다.)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가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고 지원한 곳이 바로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이었다.

"적절한 우상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편이다. 여러분 모두에게 충고하건대 가능한 한 소수의 우상을 선택하라. 적절한 우상을 선택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라고 버핏은 말한다. 1950년에 그레이엄을 스승으로 만난 버핏이 처음부터 곧장 함께 일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버핏이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월스트리트에서 일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레이엄에게 급료를 받지 않고 일하겠다고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버핏은 MBA를 마친 후 주식중개인으로 일하면서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투자 원리' 수업을 강의하기도 했는데, 1954년에서야 비로소 버핏과 그레이엄이 다시 만나 함께 뉴욕에서 일하게 되는데, 한 사람은 그레이엄의 투자조합인 그레이엄-뉴먼 투자회사의 사장이었고 또 한 사람은 그 회사의 직원 신분이었다.

1956년에 그레이엄-뉴먼이라는 회사를 해산하면서 그레이엄이 월스트리트에서 은퇴한 후 UCLA 경영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겨 15년 동안 보수없이 강의를 하게 되자, 워렌 버핏도 그의 고향인 오마하로 돌아가 자신이 직접 투자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스승인 그레이엄과 제자인 버핏의 투자방식의 차이점에 관해서도 다룰 만한 내용들이 얼마간 있지만 그 부분까지 다루기엔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그만두기로 한다. 다만 워렌 버핏 스스로 자신의 스승과 대비시켜 언급한 대목-좋은 기업에 좋은 경영진이 있다면 20년전 그랬을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벤은 통계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무형의 것을 많이 보게 된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실제로 워렌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위대한 투자가들로부터 '차용한' 이론들을 훌륭하게 결합함으로써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위대한 투자성과를 이룩했다. 다소 장황하기는 하지만 그가 차용한 이론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벤저민 그레이엄(사업전망에 근거한 투자), 필립 피셔(훌륭한 기업은 매도할 필요가 없다), 로렌스 블룸버그(소비자 독점기업), 존 버 윌리엄스(어떤 회사의 가치는 미래에 그 회사가 벌어들일 수익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 존 메이나드 케인즈(집중투자의 우수성), 에드거 스미스(일정기간 이상 유보된 이익은 기업의 가치를 증가시킨다는 개념), 찰스 멍거(합당한 가격에 우수한 기업을 구입하는 방법) 등이다.




1999년 6월《비즈니스 위크》지는 "가치투자의 영웅들"이라는 인물 소개 기사를 실었는데 오직 다섯 사람만이 영웅에 포함되었다. 그 명단의 맨 위에는《증권분석》의 저자들인 벤저민 그레이엄데이비드 도드가 있었다. 그 다음은 존 버 윌리엄스였다. 그는《가치투자론》에서 배당할인모형을 소개하였고 '가치'의 정의를 "미래 현금 흐름의 할인된 현재 가치"로 격률화한 사람이다. 가치투자의 네번째 영웅은 워렌 버펫이었고 버펫 다음이 빌 밀러였다.

벤저민 그레이엄을 비롯한 가치투자의 영웅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레이엄도 한 때는 '20대에 고객을 포기하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투자하기로 한 버나드 바루크'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했지만, 나중에는 좀 더 관대한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레이엄은 그의 회고록에서 "나의 결정은 바루크보다 더 명예로운가? 나 역시 돈버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적어도 일반대중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주고 있었던 중개회사를 떠날 예정이었다. ······ 그리고 나는 돈을 필요로 하는 친구와 친척들을 위해 상당한 수익을 올려 주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멍거(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는 투자 관리업을 '저급한 직업'이라고 한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말에 동의한다고 말한다. "워렌과 나는 실질적으로 기업을 경영한다는 점과 자본을 기업에 할당한다는 점에서 약간 다르다. 케인스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 돈을 벌어주고 국익에 이바지함으로써 속죄했다. 나는 속죄하기 위해 대외 활동을 하고 있고, 워렌은 투자 성공담을 이용해 훌륭한 스승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일찍이 우리가 젊고 가난했던 시절 우리를 믿어준 사람 들을 위해 돈 버는 걸 좋아한다."

비록 저명한 경제사가였던
찰스 P. 킨들버거는 그의 저서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를 통해 '금융에의 몰두' 현상을 시니컬한 어조로 비판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가치투자의 영웅들'이 알게 모르게 좀 더 중요한 경제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규모의 많고 적음을 떠나 모든 투자 행위는 곧바로 '자산을 어디에 배분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도 함께 말하고 싶다. 

벤저민 그레이엄이나 워렌 버핏과 같은 가치투자의 대가들이 없었다면 증권시장(주식 뿐만 아니라 채권도 포함하는)은 지금보다 훨씬 더 수준낮은-따라서 온갖 투기와 사기와 협잡과 어리석음 등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성행하는-단계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레이엄은 애널리스트와 투자은행들의 윤리를 끊임없이 강조했으며, 분식회계 등 회계부정에 대해서는 특히 혐오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기업회계제도와 증권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주식시장은 자본주의의 본질 또는 투자가들이 경제의 미래에 대한 수익을 요구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주식시장은 전세계 자본의 배분을 추진하는 힘이며, 경제성장, 기술발전의 핵심엔진이 된다. 전세계적으로 주식시장이 점차 성장하고 또는 새로이 생겨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식은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삶을 풍족하게 해 줄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 제러미 시겔, 주식투자 바이블(Stocks For The Long Run) 中에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월가의 위대한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 역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벤저민 그레이엄이라는 훌륭한 인물로부터 배울 수 있는 투자와 삶에 관한 지혜는 너무나 많다. 진부한 얘기가 되겠지만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주어지는 과제는 언제나 똑같다. 아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만 남는 것이다.

벤 그레이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이론을 따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투자원칙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그것에 관해 영업보고서에서 자세하게 쓴다. 우리의 투자원칙은 쉽게 배울 수 있다. 따르기도 쉽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건 '오늘 당장 어떤 주식을 사느냐?'는 것 뿐이다. 그레이엄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우리를 따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 워렌버펫의 투자 격언(Warren Buffet Speaks) 中에서 

기나긴 서평글을 이제 마무리할 차례이다. 우리가 그레이엄의 성격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재발견하는 것은 그가 책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 특히 실수로부터 배우려고 했던 일생 동안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참으로 진지하게 즐기고자 애썼던 삶에 대한 훌륭한 태도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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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정한 '투자'의 핵심을 가르쳐 주는 책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31 
    1990년대 중반쯤에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조금은' 어렵게 느껴져서 책을 완독하지 못했었다. 그 이후 주식시장의 극심한 등락을 경험하고 나니, 다시금 '투자'에 관한 '기본'을 가다듬을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 시기에 다시 집어든 책이 바로 벤저민 그레이엄의 대표적인 저서인 이 책이었다.1999년의 극심한 버블과 2000년의 참혹한 버블 붕괴를 겪고 난 이후, 다시금 시장이 (이라크 전쟁과 유가 급등과 북한의 서해안 침
  2. 자괴감이 드는 밤......
    from Value Investing 2012-03-16 03:41 
    증시가 연일 오르고 있다.증시가 이렇게 힘차게 솟아 오른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실컷(?) 상승한 뒤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결과를 놓고 그 원인들을 새삼 되짚어 보는 건 언제나 별 실익은 없는 경우가 많다.다만, 이런 증시의 상승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이 늦은 밤에도 잠 못 이루며 일말의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건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첫째, 외국인은 정말로 짧은 기간 동안에 한국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지분을
 
 
 
자연의 상흔은 치유된다.

















중국이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251

중국이란 대 제국이 그 무수한 주민과 함께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중국과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았던 유럽의 어떤 인도주의자에게 이 가공할 만한 재앙의 보도가 전해졌을 때, 그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상상해 보자.


 * * *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이렇게 일순간에 파멸되는 인류의 모든 노동의 창조물의 허망함에 대하여 251∼252

나의 상상으로는,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저 불행한 사람들의 액운(厄運)에 대한 그의 비애를 매우 강하게 표명할 것이고,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이렇게 일순간에 파멸되는 인류의 모든 노동의 창조물의 허망함에 대하여 많은 침통한 성찰을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투기업자라면, 그는 이 재난이 유럽의 상업에, 그리고 전 세계의 무역과 상업에 미칠지도 모를 효과들에 대한 많은 추측에 몰두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대한 그의 생각 정리가 끝났을 때,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인도적 감정들이 충분히 표명된 후에는, 그는 그런 사고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때와 똑같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자기의 사업 또는 쾌락을 추구할 것이고, 휴식과 기분전환을 취할 것이다.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소소한 재난이 그에게는 오히려 더욱 실질적인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그가 내일 자기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면 오늘밤 그는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1억이나 되는 이웃 형제들의 파멸이 있더라도, 만약 그가 직접 그것을 보지 않는다면, 그는 깊은 안도감을 가지고 코를 골며 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 거대한 대중의 파멸은 분명히 그 자신의 하찮은 비운보다 관심을 끌지 못하는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인도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자신에 대한 이 사소한 비운을 방지하기 위하여 1억이나 되는 이웃 형제의 생명을, 만약 그가 그것을 결코 보지 않아도 된다면, 기꺼이 희생시킬 것인가? 인간의 본성은 이러한 생각에 공포를 느끼며, 그리고 세상은, 아무리 부패하고 타락했더라도, 이러한 상황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악한 사람은 결코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의 소극적인 감정들은 거의 언제나 이처럼 야비하고 이처럼 이기적일 때, 어떻게 우리의 적극적인 천성들은 흔히 그처럼 관대하고 그처럼 고귀할 수 있는가? 우리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 관련된 일보다도 우리 자신에 관련된 일에 의해 훨씬 많은 영향을 받는다면, 무엇이 관대한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경우에, 그리고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그들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도록 촉구하는가? 자애(自愛: self-love)의 가장 강한 충동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인간애(humaity), 즉 인도주의의 온화한 힘이 아니며, 조물주가 인간의 마음에 밝혀준 자애(benevolence)의 약한 불꽃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에 작용하는 것은 보다 강렬한 힘이고 보다 강제력 있는 동기이다.


 * * *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
253

그것은 이성(理性), 천성(天性),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다. 즉, 우리는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우리가 그처럼 수치(羞恥)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정당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직 이 중립적 방관자로부터이고, 이 중립적 방관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애(自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不正)의 추악성, 우리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우리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이다.

많은 경우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신성한 미덕을 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인류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러한 경우에 통상 생기는 것은 보다 강한 사랑, 보다 강력한 애정, 즉 명예스럽고 고귀한 것에 대한 사랑, 우리 자신의 성격의 숭고함, 존엄성, 탁월성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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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paroxysms of distress)을 당하는 경우 272∼273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paroxysms of distress)을 당하는 경우 가장 현명하고 단호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에는, 상당한 정도의,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자신의 불행에 대한 그 자신의 자연스런 감정, 그 자신의 처지에 대한 그 자신의 자연스런 시각이 그를 강하게 압박하기 때문에, 그가 엄청나게 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주의력을 공정한 방관자의 시각에 집중할 수가 없다. 두 가지 종류의 시각, 즉 자신의 견해와 공정한 방관자의 견해가 동시에 그의 앞에 나타난다. 그의 명예감각, 그 자신의 존엄에 대한 고려는 그에게 자신의 모든 주의력을 방관자의 그것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그의 자연적인, 교육받지 않은, 훈련되지 않은 감정들은 계속 그의 주의력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다.

이런 경우, 그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가슴 속의 가상의 인간과 일치시킬 수 없고, 스스로 자기 행위의 공정한 방관자가 될 수도 없다. 양자의 서로 다른 성격의 시각이 그의 마음속에 서로 분리되고 구분되어 존재하고, 각각은 그에게 서로 다른 행위를 하도록 지시한다. 그가 명예심과 자존심이 그에게 지시하는 시각에 따를 때, 사실 조물주는 그에게 아무런 보상도 없는 상태로 남겨두지는 않는다. 그는 그 자신의 완전한 자기시인(自己是認)과 동시에 정직하고 공정한 모든 방관자들의 갈채를 누리게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조물주의 만고불변의 법칙에 따라서, 그는 여전히 고통을 당한다. 조물주가 수여하는 보상이 매우 크기는 하지만, 이러한 법칙이 그가 당한 고통을 완전히 보상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조물주의 보상과 그의 고통의 크기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조물주의 보상이 그가 받는 고통을 완전히 보상해 준다면, 자신의 이기적인 고려에서, 그는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효용을 필연적으로 감소시킬 우발적 사고를 회피하려는 동기를 전혀 갖지 않을 것이다(완전히 보상받는다면 사고를 피하는 것과 피하지 않는 것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물주는 양자에 대한 부모다운 배려에서 그가 가능한 한 모든 우발적 사고들을 피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리고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 중에서도, 자신의 사내다운 모습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판단의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는 최대의 가장 고된 노력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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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274

그러나 인성(人性)의 구조적 특성상, 고통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그가 그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을 견뎌내기만 한다면, 그는 곧 크게 어렵지 않게 일상의 평정을 즐기게 된다. 나무 의족(義足)을 한 사람은 고통을 겪으면서, 틀림없이 자신의 남은 전 생애 동안 매우 큰 불편을 계속 겪어야만 할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의족을 한 자신의 모습을 모든 공정한 방관자가 그것을 보는 것과 정확히 동일하게 보게 된다. 즉, 그는 이 불편함을, 그런 중에서도 혼자서 혹은 여럿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모든 통상의 기쁨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는 곧 자신을 자기 가슴 속의 가상의 인간과 일치시키고,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한 공정한 방관자로 된다. 약한 사람들은 처음에 때때로 그렇게 하듯이, 그는 울거나 탄식하거나 그것에 대해 비관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는 공정한 방관자의 시각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더 이상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어떤 몸부림도 치지 않고, 자신의 불행을 다른 어떤 시각에서 관찰하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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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
275∼276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은 하나의 영속적 상황과 다른 영속적 상황과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치스런 격정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처해 있는 실제 환경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흔히 그가 어리석게도 감탄하는 처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회적 안정을 교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조금만 살펴보아도, 인간생활의 일상적인 모든 상황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평온하고,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마찬가지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통상의 여러 가지 상황들 중에서 어떤 상황은 다른 상황보다 더욱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신중(愼重: prudence) 또는 정의 (正義: justice)의 법칙들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격정적인 열의를 가지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는 후에 가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회상할 때 느끼게 될 수치심과, 자신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회한(悔恨)으로 마음의 장래의 평정까지 파괴해 가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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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위대하고 보편적인 위안자
278∼279

다음의 관찰은 특별한 상황에 대한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것은 올바른 결론이라고 믿는다. 즉, 다소라도 구제(救濟)의 여지가 있는 불행 중에 처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제의 여지가 전혀 없는 불행 중에 처해 있는 사람들처럼 일반적으로 그렇게 쉽게 자신들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평정을 회복하지 못한다. 후자의 종류에 속하는 구제의 여지가 없는 불행에 처한 사람들의 경우, 총명한 사람의 감정 및 행위와 연약한 사람의 감정 및 행위 사이에 어떤 눈에 띄는 차이점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주로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의 경우 또는 불행이 최초에 엄습한 때이다. 그러나 최후에 가서는 시간(時間)이라는 위대하고 보편적인 위안자(慰安者)가 점차 저 연약한 사람으로 하여금 총명한 사람이 최초에 자존심과 사내다운 기개의 교도(敎導)에 의해 도달하였던 그런 수준의 마음의 평정에 도달하게 된다.

나무 의족(義足)을 한 사람의 경우가 이런 사정에 대한 분명한 예이다. 자식의 죽음, 친구나 친척의 죽음 등처럼 회복할 수 없는 불행을 당한 경우에는 총명한 사람이라도 일정한 기간 동안 어느 정도의 슬픔에 빠질 수 있다. 다정다감하고 연약한 여성은 그런 경우 흔히 거의 완전히 미쳐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길든 짧든 시간이 지나면 예외 없이 이런 가장 연약한 여성까지도 가장 강인한 남성과 같이 어느 정도의 평정을 회복하게 된다. 그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든 회복 불가능한 재난 가운데서도, 총명한 사람은 몇 달 또는 몇 년 후에는 결국 회복될 것이 틀림없는 마음의 평정을 처음부터 예상하고 그것을 미리 즐기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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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역경에 처해 있는가? 284

당신은 역경에 처해 있는가? 고독의 어둠 속에서 탄식하지 말고, 당신의 친한 친구들의 관대한 동감에 맞추어 당신의 슬픔을 조정하지 말 것이며, 가능한 한 빨리 세상과 사회의 일광(日光) 속으로 돌아가라. 그리고는 낯선 사람들, 당신의 불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적들과 사귀는 것조차 회피하지 말고, 당신의 적들로 하여금 당신이 당신의 재난에 의해 얼마나 영향을 적게 받았는지, 얼마나 그것을 초월해 있는지를 느끼도록 하고, 당신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그들의 악의(惡意)에 굴욕감을 안겨줌으로써 당신 스스로 기뻐하라.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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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3-16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번을 곱씹어 읽었는데, 딱 지금 제 상황이네요.
어려운 말로 쓰여졌지만, 결론은 '처연하라~' 한 단어 정도면 해결될 듯 하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oren 2011-03-16 10:21   좋아요 0 | URL
저는 일본 대지진을 보면서 이 책에서 '읽었던 부분들'이 생각나서 다시 들춰내서 정리해 봤는데, 양철댁님의 상황에도 딱 맞다니 정말 놀랍군요.

'갑작기 맞닥뜨린 엄청난 불행'에 대한 '어느 철학자의 성찰'이 수많은 역경에 처한 사람들의 여러 상황들에 두루 들어맞으리라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철학과 교수 경력' 12년 만에 이 책을 완성했는데, 그의 나이가 36살이었을 때였답니다.(1723년생, 1759년 출판). 그렇지만 그는 10년 동안 오로지 저술에만 몰두하여 완성한《국부론》 출간 이후에도 '평생 동안'《도덕감정론》을 고치고 다듬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묘비명을 "도덕감정론의 저자, 여기 잠들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글이 영철댁님께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면 저로서는 큰 보람입니다. ㅎㅎ

마녀고양이 2011-03-16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렌님께서 추천해주신 책들을 읽는다면
한권 내내 밑줄 긋다가 끝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구절마다 왜 이리 와닿는건지요.

시간이 해결해준다 현재는 지나간다 라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방향성은 점검해봐야 한다는 생각 역시 합니다.
가끔 매번 비슷한 상황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아무래도 방향성과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서요.

oren 2011-03-16 23:37   좋아요 0 | URL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고님께서 '밑줄 긋다가 끝날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딱 제가 그 꼴입니다.
요즘은 읽을수록 내용이 와닿는 오래된 고전들은 밑줄 긋느라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ㅎㅎ

blanca 2011-03-16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위대한 위안자라는 말, 고통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말, 다 심금을 울리네요. 마치 아담 스미스가 작금의 상황을 지켜 보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런데 오렌님, 아담스미스와 데이비드흄의 저서의 인용이 섞여 있는 건가요? 찾아 읽어 보고 싶어져서요.

oren 2011-03-16 23:20   좋아요 0 | URL
윗 글은 아담 스미스의『도덕감정론』에서 전부 인용한 내용입니다.

다만, 두 사람이 워낙 절친하게 지낸 친구 사이여서 아담 스미스의 책 본문과 주석 등에 데이비드 흄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분이나 흄의 책을 인용한 부분이 꽤나 많이 나와서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배치한 것 뿐입니다. ㅎㅎ

(아담 스미스의『도덕감정론』주석의 일부)
이러한 아담 스미스의 예는 흄을 연상시킨다. 흄은 그의『인성론』제2부 3편 3장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내 손가락에 상처를 내기보다는 차라리 세상이 전부 파멸되기를 바라는 것은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맨더빌 박사의 철학 체계 590

악덕과 미덕의 구분을 완전히 없애버린 듯이 보이는 또 다른 철학체계가 있는데, 그 때문에 이 철학체계의 경향은 전체적으로 유해하다. 맨더빌(Mandeville) 박사의 철학체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 학자의 견해는 거의 모든 방면에서 틀렸기는 하지만, 우리가 어떤 특정한 태도로 인성(人性)의 일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현상들을 관찰하면, 처음에는 그의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비록 거칠고 촌스럽기는 하지만 생동하고 유머감각이 풍부한 멘더빌 박사의 말솜씨로 묘사되고 과장되어 있는 이 표면적 현상들은 그의 학설에 일종의 진실성과 가능성의 분위기를 제공해주고 있는데,
숙맥(菽麥)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장 속아 넘어가기 쉬운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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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번영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591

그가 관찰한 바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행복에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지며, 진심으로 자신의 번영보다 다른 사람들의 번영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동기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언제나 우리를 기만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그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동기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도 좋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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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익정신은 단지 인류에 대한 기만이자 속임수에 불과 591∼592

인간의 다른 모든 이기적인 격정들 가운데 허영심이 가장 강렬한 것이며, 인간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박수갈채에 의해 쉽사리 우쭐해지고 기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동료들의 이익을 위해 자기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그는 자신의 행동이 그들의 자애심(自愛心: self-love)에 대해 매우 유쾌하게 느껴지고, 따라서 그들은 반드시 자신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냄으로써 그들의 만족감을 표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자신의 그런 행동으로부터 기대하는 쾌락은, 그의 생각에도, 이것을 얻기 위해 그가 포기하는 이익을 능가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 있어서도 그의 행동은 사실상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것이고, 또한 천박한 동기에서 나온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행동은 전혀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믿으면서 우쭐대고 기뻐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이런 무사(無私)의 동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그의 행동은 그 자신의 눈에나 또는 다른 사람의 눈에나 어떤 칭찬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모든 공익정신은 단지 인류에 대한 기만(欺瞞)이자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처럼 자랑을 많이 하는 인류의 미덕이라는 것은, 그리고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서로 많이 갖추려고 노력하는 인류의 미덕이라는 것은, 사실은 단지 자존심에서 생겨난 아첨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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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덕행은 우리 격정의 감춰진 방종(放縱)에 불과 598

맨더빌 박사는 경박한 허영의 동기를 통상 유덕한 것으로 간주되는 모든 행위의 근원으로 설명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덕행이 기타 많은 점에서도 불완전함을 지적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인간의 덕행은 그것이 자칭하는 바의 완전한 자아극복(自我克服:self-denail)의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며, 그리고 그것은 우리 격정의 정복이 아니라 통상 우리 격정의 감춰진 방종(放縱)에 불과하다고 한다. 쾌락에 대한 우리의 자제(自制: reserve)가 최고의 금욕적 절제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그는 그것을 순수한 사치(奢侈)와 육욕(肉慾)으로 취급한다. 그에 의하면 인성(人性)의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초과하는 모든 것은 사치이며, 따라서 깨끗한 셔츠나 편리한 주택의 사용도 일종의 악이라는 것이다. 남녀가 가장 합법적으로 결합되는 경우의 성욕(性慾)의 충족까지 그러한 격정을 가장 유해(有害)한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경우의 육욕(肉慾)과 똑같은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는 이처럼 아주 저렴하게 실행될 수 있는 절제나 정결(貞潔)을 비웃는다.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그의 설명 속에 들어있는 교묘한 궤변은 언어의 애매모호함에 의해 은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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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들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 개인의 악행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결론 599∼600

맨더빌 박사의 저서(『꿀벌들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의 큰 오류는, 모든 감정들은, 그것의 정도 및 그것이 향하는 대상 여하를 불문하고, 전부 악덕(惡德)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의 실제의 감정, 혹은 다른 사람들의 당위적 감정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 허영심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결론, 즉 개인의 악행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결론을 확립한 것은 바로 이러한 궤변에 의해서이다. 장엄(壯嚴)한 것에 대한 애호, 우아한 예술품과 생활수준을 제고하는 것들에 대한 취향, 복장과 가구와 마차 등 사람을 유쾌하게 하는 일체의 것들에 대한 취향, 건축·조각·미술과 음악에 대한 취향이, 어떤 불편도 없이 이러한 격정에 빠져들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사치·육욕(肉慾)·겉치레로 간주된다면, 분명히 사치와 육욕과 겉치레는 공공의 이익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상스러운 명칭을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그가 생각한 이러한 특성들이 없으면 우아한 예술은 결코 장려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그것은 쓸모가 없어서 틀림없이 시들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맨더빌 시대 이전에 유행했던,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격정들을 완전히 근절시키고 없애버리는 데 미덕이 있다고 본 일부 금욕주의 학설들은 이 방종적(放縱的) 체계의 진정한 기초였다. 맨더빌 박사가 다름과 같은 명제(命題)를 증명하기는 쉬운 일이었다. 첫째, 인간은 결코 실제로 이러한 격정을 완전히 정복한 일이 없었다. 둘째, 만약 인간이 그 자신의 격정을 보편적으로 정복하게 되면, 그것은 모든 산업과 상업을 종지(終止)시키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 인류생활의 모든 업무를 종지시킴으로써, 그것은 사회에 대하여 유해(有害)하다.

그는 이 두 가지 명제 중에서 첫 번째 것을 통해서, 진정한 미덕이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소위 미덕이라는 것은 사람들에 대한 사기(詐欺)이자 기만(欺瞞)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번째 것을 통해서는, 개인적인 악행이 없으면 어떤 사회도 번영할 수 없으므로, 개인적인 악행은 공중의 이익(利益)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맨더빌 박사의 체계이다. 비록 이 체계 때문에 이것이 없었을 경우에 비해 더 많은 악행이 야기되었던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적어도 다른 원인에서 생겨난 악행들로 하여금 더욱 뻔뻔스럽게 행동하도록 가르쳐 주었으며, 그리고 이전에는 결코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함으로 그 부패한 동기(動機)를 공개적으로 선언(宣言)하도록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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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도 없는 독자에게까지도 황당하고 가소롭게 보일 것 602∼603

자연철학을 연구하는 저자가(이하는 맨더빌 박사를 지칭한 말이다. 맨더빌은 본래 의사로서 자연과학자이다-역자) 우주의 위대한 현상들의 원인을 규명한다고 자처하거나,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설명한다고 자처하는 경우, 그런 것들에 관해서는 그는 자기 좋을 대로 이야기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그럴 듯한 범위 내에 있는 한, 그는 우리가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의 갈망(渴望)과 감정이 생겨나는 근원이나 우리의 시인(是認)과 부인의 감정이 생겨나는 근원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하겠다고 제안하는 것은 마치 그가 우리가 살고 있는 교구의 여러가지 사정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겠다고 자처하는 것과 같다.

비록 이런 경우에조차, 게으른 주인이 자신을 속이는 집사(執事)를 믿는 것처럼, 우리 역시 속아 넘어가기 쉽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그의 설명을 그대로 다 믿고 넘어갈 수가 없다. 적어도 그 중의 일부 내용들은 정당해야 할 것이고, 매우 과장된 내용들마저 약간의 근거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소에 늘 그래 왔듯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은 채 슬쩍 한번 살펴보는 정도의 관찰에 의해서도 그의 사기행각(詐欺行脚)은 들통 나고 말 것이다. 천연적인 감정의 원인으로서 그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천성(天性)이나 또는 그것과는 어떤 유사성도 전혀 없는 원리(原理)를 제시하고 있는 저자는, 가장 분별력도 없고 가장 경험도 없는 독자에게까지도 황당하고 가소롭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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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우화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으로 이끈 사람!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애덤 스미스가 쓴 중요한 저서《도덕감정론》이 버나드 맨더빌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쓰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도덕감정론》은“사람이 아무리 이기적이라 생각되더라도”라는 말로 시작되어, 이기심에 따른 사람들의 행위가 정당한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애덤 스미스는 방탕과 사치 같은 인간의 악덕을 옹호한 맨더빌의 사상이 사회에 퍼지는 것을 경계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애덤 스미스가《국부론》에서 자유경쟁의 중요성을 주장한 것은 당시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무역 등 산업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정부가 자유경쟁을 보장함으로써 대기업뿐 아니라 소규모 기업과 상인들도 경제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를 더욱 안정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덕을 옹호하는 주장으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인간 악마(Man-Devil)라 불렸던 맨더빌(Mandeville)은 1670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레이던 대학에서 철학박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영국으로 건너가 정착, 이후 173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국에서 살았다. 맨더빌이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그가 1723년《꿀벌의 우화》라는 책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이 책에는 <투덜대는 벌집: 또는, 정직해진 악당들>이라는 풍자시와 함께 맨더빌이 직접 단 주석과 <사회의 본질을 찾아서>, <자선과 자선학교>, <미덕은 어디에서 왔는가> 등의 글을 함께 수록해놓았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미들섹스 지역의 대배심으로부터 “종교와 미덕을 깍아내린다”는 혐의로 고발되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책을 불사르기도 했다. 도대체 이 책의 무엇이 당시 사람들을 분노로 들끓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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