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그냥 버티고 있는 중일뿐이다.


















되풀이되는 엄중한 도발의 결과 때문이라는 것
65∼66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때 비로소 분개심을 표출하는 우리의 행위가 방관자에게 완전히 유쾌하게 느껴지고 그리고 방관자로 하여금 우리의 분개에 완전히 동감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분개를 격발시킨 원인이, 만약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분개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이 비열한 인간으로 되어버리고 그리고 두고두고 모욕을 받게 될 그런 것이어야 한다. 사소한 침해에 대해서는 무시해 버리는 편이 오히려 낫다. 사소한 시빗거리가 있을 때마다 흥분하는 심술궂고 남의 말꼬리 잡고 시비하기 좋아하는 성격만큼 비열한 것도 없다. 우리가 분개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불쾌한 격정으로 화가 나서가 아니라, 분개하는 것이 적절하고 또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분개하기를 기대하고 또 요구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어야 한다.

인류가 느낄 수 있는 격정들 중에서 이 분개의 격정만큼 우리로 하여금 그것의 정당성에 대하여 재삼 의문을 가져보게 하고, 우리가 그것을 표출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우리의 본래의 적정성 감각에 비추어 보게 하고, 또한 냉정하고 공정한 방관자가 우리가 표출하는 분개를 보고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관대함이나 우리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존엄을 유지하고자 하는 관심만이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이 격정의 표현들을 고상한 것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동기이다. 이 동기가 우리의 전체 품격과 태도를 특징짓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태도는 반드시 소박·소탈하고, 감추는 것이 없고, 솔직해야만 한다. 과단성이 있되 독단적이 아니어야 하고, 고결하되 오만하지 않아야 하며, 무례하고 상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상해를 가한 자에 대해서조차 너그럽고 솔직하면서도 모든 적절한 배려를 다해 주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분노의 격정 때문에 인간의 선한 본성이 훼손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만약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복수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마지못해서,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되풀이되는 엄중한 도발의 결과 때문이라는 것이 우리가 그것을 표현하려고 일부러 노력하지 않고서도 우리의 전체 행동에서 저절로 드러나야 한다.

분노가 이런 방식으로 억제되고 진정된다면 그것은 심지어 관대하고 고상하기까지 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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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심의 기원 91∼92

이 세상 사람들이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탐욕과 야심, 부와 권력 및 최고를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성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인가? 가장 비천한 노동자의 임금으로도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다. ······

인류 사회의 각계각층의 사람들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경쟁심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소위 자신의 지위의 개선이라고 하는 인생의 거대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이익이 있어서인가? 남들로부터 관찰되고 주의와 주목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로부터 동감과 호의와 시인(是認)을 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안락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허영이다. 그러나 허영이란 항상 자신이 주위로부터 주목을 받고 시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신념에 기초한다. 부유한 사람이 그의 부유함을 자랑하는 것은 그 부유함이 자연히 세간의 이목을 끈다는 것, 그리고 부유함이 그에게 제공한 모든 유쾌한 감정에 인간들이 쉽게 공감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 그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긜고 그는 부유함이 가져다주는 다른 어떤 이익보다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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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개(憤慨)의 감정 149

분개(憤慨)는 방어를 위해서, 그리고 오직 방어만을 위해서, 천성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감정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정의를 지키는 보호장치이자 죄없는 사람을 지키는 안전장치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가해지려는 해악을 물리치고 이미 가해진 것에 대해서는 보복을 하도록 촉구한다. 그리하여 가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부정한 행위를 반성하도록 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처벌을 받을까봐 두려움을 갖도록 함으로써 유사한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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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개의 감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적 181∼182

분개의 감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적은 우리의 적으로 하여금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 하여금 자신이 자신의 과거의 행동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고, 또한 그로 하여금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도록 만들고, 그로 하여금 그가 해악을 가한 그 사람이 그와 같은 식으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드는 데 있다. 우리를 해치거나 모욕을 준 사람에 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분개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우리를 무시하는 태도, 우리보다 자기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불합리한 태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언제라도 그의 편의에 따라 또는 기분에 따라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의 터무니없는 자애(自愛: self-love) 등이다. 그의 행동에 나타난 두드러진 도덕적 부적정성, 그의 행동에 담겨 있는 큰 오만과 불의는 종종 우리에게 우리가 당한 해악 그 자체보다도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우리를 격분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이 응당 받아야 할 몫에 대한 보다 올바른 감각을 그에게 심어주는 것, 그가 우리에게 지고 있는 빚이나 그가 우리에게 행한 잘못을 그가 깨닫도록 해 주는 것 등이 우리가 보복하려는 주요 목적이다. 만약 이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다면 보복은 항상 불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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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 275∼276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은 하나의 영속적 상황과 다른 영속적 상황과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치스런 격정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처해 있는 실제 환경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흔히 그가 어리석게도 감탄하는 처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회적 안정을 교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조금만 살펴보아도, 인간생활의 일상적인 모든 상황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평온하고,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마찬가지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통상의 여러 가지 상황들 중에서 어떤 상황은 다른 상황보다 더욱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신중(愼重: prudence) 또는 정의 (正義: justice)의 법칙들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격정적인 열의를 가지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는 후에 가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회상할 때 느끼게 될 수치심과, 자신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회한(悔恨)으로 마음의 장래의 평정까지 파괴해 가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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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의 존엄과 지위를 지킬 필요가 있다.
463

질투(嫉妬)란,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우월한 것을, 그들이 정말로 그처럼 우월할 자격이 있는 경우에도, 그들의 우월함에 대하여 악의적으로 혐오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격정이다. 그러나 중대한 문제에서, 어떤 우월함을 누릴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자신을 능가하거나 자기보다 앞서 가도록 순순히 용인하는 사람은, 비열한 소인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나약함은 통상 태만에 기원하고, 때로는 선량한 성품에, 싸우기 싫어하고 소란 떨고 사정하기 싫어하는 성품에 기원하며, 그리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일종의 아량(雅量)에 기원하기도 하는데, 이런 아량은, 그 당시에 무시하는 이익들을 언제나 계속 무시할 수 있으며, 따라서 쉽게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나약함에는 통상 많은 후회와 회한이 뒤따른다. 그리고 처음에 보여주었던 어느 정도의 아량은 흔히 끝에 가서는 극도로 악의적인 투기(妬忌)로 변하게 되고, 그리고 자신이 아량을 베풀어 주었던 자의 우월함에 대한 증오로 변하게 된다. 일단 그의 아량 덕에 우월한 지위를 누리게 된 사람은, 그의 아량에 의해 양보를 받아냈던 바로 그 환경에 의해, 정말로 그 우월한 지위를 누릴 자격을 갖추게 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필요가 있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존엄과 지위를 지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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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서로 다른 기준 469

우리 자신의 장점을 평가하고 우리의 성품과 행위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가 자연히 이것들과 비교하게 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기준이 있다. 그 하나는 우리가 각자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엄밀한 적정성(適正性) 및 완미성(完美性)의 관념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 사람들이 통상 도달할 수 있는 이 관념에의 접근 정도(程度)이다. 이 접근 정도는 또한 대부분의 우리 친구와 동료, 경쟁자들이 과거에 실제로 도달했을 수도 있는 그런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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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한 적정성(適正性) 및 완미성(完美性)의 관념 470

총명하고 도덕적으로 고상한 사람은 그의 주요 관심을 첫 번째 기준, 즉 엄밀한 적정성(適正性) 및 완미성(完美性)의 관념에 둔다.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이러한 종류의 관념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 관념은 장기간 자기 자신의 행위와 성품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성품과 행위에 대하여 관찰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관념이 형성되는 것은 우리 가슴 속에 있는 위대한 반신반인(半神半人: demigod), 즉 우리 행위의 위대한 재판관이자 조정자의 완만하고 점진(漸進) 부단히 진전(進展)되는 작업이다. 이러한 관찰을 할 때 각 개인들이 투입하는 조심성과 관심, 각 개인들의 감수성의 섬세하고 예민한 정도에 따라서 다소 간에 차이는 있지만, 각 개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이 관념을 정확히 묘사하고, 그 관념을 정확히 채색하며, 그 관념의 윤곽을 정확하게 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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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낮은 예술가들 472

모든 문학예술의 영역, 즉 미술, 시, 음악, 웅변, 철학 등에서 이 위대한 예술가들은 항상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서도 정말로 불완전함을 느끼며, 그것들이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완미함에 비해서 얼마나 모자라는지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더 민감하게 느낀다.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해 그 완전성을 모방은 하지만, 그러나 그는 그것과 동등하게 되려는 기대는 포기한다. 자기 자신의 성취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는 것은 수준 낮은 예술가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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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다른 사람들이 도달하는 보통 정도의 탁월성(卓越性)에 쏟는 사람들 473

자신의 장점을 평가하고 자신의 성품과 행위를 판단할 때 자신의 관심의 거의 대부분을 두 번째 기준, 즉 통상 다른 사람들이 도달하는 보통 정도의 탁월성(卓越性)에 쏟는 사람들 가운데는, 실제로 그리고 정당하게 자신들이 이 정도의 탁월성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을 느끼며, 또한 모든 이성적인 그리고 공정한 방관자들에 의해서도 그렇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주로 언제나 이상적인 완미성의 기준이 아니라 일반적인 완미성의 기준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약점이나 불완전함에 대해서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또 겸허하지도 않고, 잘난 체하고, 거만하고, 뻔뻔스럽고, 자신들에 대해서는 커다란 찬사를 보내면서 다른 사람들은 매우 경멸한다.

그들의 성품은 일반적으로 매우 비뚤어져 있고, 그들의 공적(功積)은 진실하고 겸허한 미덕을 지닌 사람들에 비해 훨씬 못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과도한 자화자찬(自畵自讚)에 근거한 과도한 자만심(自慢心)이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심지어 흔히 일반 군중들보다 지적 수준이 훨씬 높은 사람들까지 기만하기도 한다.

가장 무지한 돌팔이의사, 사이비교주 등 사기꾼들이 보통의 시민생활에서나 종교적인 신앙에서나 자주 그리고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하는 것을 보면, 군중들은 얼마나 과장되고 근거 없는 허풍(虛風)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허풍이 대단히 고도의 진실하고 구체적인 공적에 의해 뒷받침되고, 그러한 허풍이 자신들에게 부여하는 모든 화려한 광채를 띠고 나타나고, 거기에다 그것이 지위가 높고 큰 권세를 가진 사람의 지지를 받고, 그 허세(虛勢)가 종종 성공적으로 발휘되어 대중으로부터 커다란 환호를 받게 될 때에는, 심지어 냉정한 판단력을 지닌 사람조차 흔히 그것을 찬탄하는 일반 군중들의 대열에 함께 휩쓸리게 된다. 이 어리석은 군중들의 요란한 갈채(喝采) 소리 자체가 종종 그의 판단력을 헷갈리게 함으로써 그가 그러한 인물(사기꾼)들을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때에는 그는 언제나 그들을 진지하게 숭배하게 되는데, 심지어 그들이 자기 스스로를 숭배하면서 보여주는 찬탄보다 더욱 강한 찬탄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경우, 만약 시기심(猜忌心)만 없다면, 우리는 모두 이러한 인물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찬탄하고, 그 때문에 우리의 상상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많은 측면에서 매우 감탄을 받을 가치가 있는 그들의 성품을 모든 면에서 완전무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들의 과도한 자화자찬은 그들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는 총명한 사람들에 의해 잘 이해되고, 그리고 아마도 어느 정도의 비웃음으로 간파되기도 한다. 이 총명한 사람들은, 그 인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군중들이 흔히 존경심과 심지어 거의 숭배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거만한 생동을 속으로 조소한다. 그러나 모든 시대에 있어서 가장 떠들썩한 명성과 가장 널리 명예를 얻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러하였고, 아주 먼 후손에게까지 전해진 그들의 명성과 명예 역시 이런 종류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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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총명한 사람 480

진정으로 자신에게 속한 공적(功積)이 아닌 것을 자신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자신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는 사람은 창피를 당할까봐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신의 실체가 발각(發覺)될까봐 두려워하지도 않고, 다만 자기 자신의 성품의 진실성과 견고성에 대하여 만족하고 느긋해할 뿐이다. 그를 칭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도 않고, 그렇게 요란하게 갈채를 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그를 가장 잘 아는 총명한 사람은 그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진정으로 총명한 사람에게는 총명한 한 사람의 사려 깊고 신중한 시인(是認)이 수천 명의 무지한 열광자들의 요란한 갈채보다 더욱 충심(衷心)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만족감을 준다. 파르메니데스가 아테네의 군중집회에서 한 편의 철학논문을 읽을 때, 플라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서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는 그것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플라톤 혼자만 들어줘도 자기는 충분히 만족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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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사람 481

그러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매우 총명한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가장 적게 감탄한다. 그가 성공에 도취되어 있을 때 총명한 사람들의 그에 대한 냉정하고 공정한 평가는 그의 자기 자신에 대한 터무니없는 과대평가에 비해 너무나 낮기 때문에, 그는 그들의 냉정하고 공정한 평가를 단지 악의(惡意)와 질투심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들을 의심하고, 그들과 교류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그들이 자기 앞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내쫓고, 또는 흔히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그들에게 보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잔인(殘忍)하고 불의(不義)하게도 은혜를 원수로 갚기도 한다. 오히려 그는 아첨꾼과 배신자들을 신뢰하게 되는데, 이들은 그의 허영(虛榮)과 허세(虛勢)를 숭배하는 척 가장한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어떤 면에서는 결함이 있을지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친근감도 있고 존경할 만하기도 하던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는 경멸스럽고 혐오스러운 인물로 변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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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것을 오만 혹은 허영이라 부른다 483

인류의 보통 수준보다 위대하고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이러한 걸출한 인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훌륭한 성품을 과대평가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철저히 공감할 뿐 아니라 동감(同感)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들을 용감하고, 관대하며, 고상한 사람들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러한 말들 속에는 상당한 정도의 칭찬과 찬사의 뜻이 들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 두드러지게 뛰어난 면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에는 공감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의 과도한 자아평가(自我評價)에 혐오감과 반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양해하거나 참아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오만(傲慢) 혹은 허영(虛榮)이라 부른다. 이 두 가지 단어 중에서, 후자는 언제나, 전자는 대부분, 그 속에 어느 정도의 비난의 뜻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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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傲慢)한 사람 483

오만(傲慢)한 사람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하지 않고, 마음속 깊숙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한 확신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알아맞히기는 흔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는 당신이, 그가 당신의 입장에 있을 때 자기 자신을 바라볼 그런 눈으로, 자기를 보아주기를 바란다. 그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공정(公正)함이다. 만일 그가 자기 자신을 존경하는 것만큼 당신이 자기를 존경해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는 모욕(侮辱)을 당한 것 이상으로, 마치 그가 정말로 어떤 침해를 당한 것처럼 화를 내고 분개한다. 그러나 그런 때조차도 그는 자신이 당신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당신에게 존경을 간청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런 행동을 경멸하는 척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의 우월함을 당신으로 하여금 느끼도록 하기보다는 당신 자신의 비천함을 스스로 느끼도록 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상정(想定)한 지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마치 자기 자신에 대한 당신의 존경심을 자극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신 자신에 대해 당신이 굴욕감을 느끼도록 자극하기를 더욱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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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심이 많은 사람 484

그러나 허영심이 많은 사람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하여, 자기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는 자신의 우월성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에게 그런 우월성이 있다고 당신이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그는 당신이, 그가 당신의 입장에 있고,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이 알고 있을 때, 그가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의 그런 색채보다 더욱 찬란한 색채로 자기를 보아 주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그것과는 다른 색채로 그를 보거나 또는 그가 지닌 본래의 색채로 그를 보아주게 되면, 그는 모욕을 당한 것 이상으로 침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은 당신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그러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가장 거짓되고 가장 불필요한 수법들까지 동원하여, 때로는 그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나 또는 심지어 그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까지 거짓으로 자랑함으로써, 자신에게 어느 정도 있는 양호한 성품과 재능들을 자랑한다. 그는 당신의 존경을 경멸하기는커녕 당신의 존경을 얻으려고 전전긍긍한다. 그는 당신의 자아평가를 폄하(貶下)하여 상처를 주기는커녕 도리어 그것을 기꺼이 존중해 주면서, 그 대신에 당신도 자신의 그것을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 그는 아첨을 받기 위해 아첨을 한다. 그는, 공손하고 정중하게 행동함으로써, 그리고 때로는 당신에게 실제로 중요한 도움을 줌으로써(비록 흔히 그것을 쓸데없이 자랑하고 다니기는 하지만) 당신의 환심을 사려고 연구하거나 당신을 매수해서 당신이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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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보다 위대한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에 487

오만(傲慢: proud)한 사람은 자기와 지위가 동등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언제나 마음이 편치 못하며,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자리에서는 그는 고상한 자기과시를 할 수 없으며, 그들의 얼굴표정과 대화가 그를 압도하기 때문에, 그는 감히 고상한 체 할 수가 없다. 그가 의지하는 것은 자기보다 비천한 사람들과의 교제인데, 자신은 그들을 존경하지도 않고, 그들과 교제하고 싶어한 것도 아니므로, 그들은 결코 그를 유쾌하게 하지 못한다. 그와 교제하는 자들은 그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 그에게 아첨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에게 의지하려는 사람들뿐이다. 그는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이 거의 없는데, 만일 찾아간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그들과의 교제에서 누리게 될 진정한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도 그들과 교제할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것은 클라렌돈 경(Lord Clarendon)이 애런델 백작(Earl Arundel)에 관해서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에 의하면, 애런델 백작이 때때로 궁정에 갔던 이유는 그곳에 가야만 비로소 자기보다 위대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후 그곳에 거의 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서 자기보다 위대한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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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심이 많은 사람 487

허영심이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그는 오만한 사람이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의 교제를 회피하려고 하는 것만큼이나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교제할 기회를 찾는다. 그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내뿜는 빛은 그들의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몸에도 빛을 반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궁정의 모임과 대신들의 접견에도 자주 참석하여, 마치 자신이 부(富)와 출세(出世)의 후보자라도 된 듯이 으스댄다. 그러나 그가 행복을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안다면, 그가 실제로 훨씬 더 값진 행복을 가지고 있을 때, 그런 일로 으스대서는 안 된다.

그는 상류층 사람들의 연회에 참석하도록 요청받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며, 영광스럽게도 그곳에서 상류층 사람들과 친하게 사귄다는 것을 남들에게 자랑하기를 더욱 좋아한다. 그는 가능한 한 사교계 인사들, 여론을 좌우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재치 있는 사람들, 학식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인기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려고 한다. 그러나 일단 매우 불확실한 대중들의 호의(好意: favour)라는 조류(潮流)가 어떤 면에서건 그와 절친한 친구에게 불리하게 흐를 때에는 언제든지 그는 그 친구와의 교제를 회피한다.

그가 호감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들이 아낌없이 동원되는데, 불필요한 과시(誇示), 근거 없는 허세, 끊임없는 부화뇌동(附和雷同), 그리고 아첨(대부분 즐겁고 명랑한 아첨이고, 식객이나 어릿광대의 조잡하고 지겨운 아첨인 경우는 거의 없지만) 등 모든 수단들이 총동원된다.

이와는 반대로, 오만하거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결코 아첨을 하지 않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예의바르게 대하는 일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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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허영심의 결합 492∼493

오만과 허영심이 각각 그 자신의 특성에 따라서 행동할 때, 이들의 두드러진 특징을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그러나 오만한 사람은 흔히 허영에 차 있으며, 허영에 찬 사람은 흔히 오만하다. 자신이 정당하게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훨씬 더 높게 평가해 주기를 바라며, 마찬가지로, 자기가 자신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더 높게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자신이 정당하게 받을 자격이 있는 것보다도 자신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결점은 흔히 동일한 성품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양자의 특징들도 필연적으로 서로 혼동되고 있다. 우리는 이따금 허영심의 천박하고 주제넘은 과시(誇示)가 오만의 가장 악독하고 유치하고 가소로운 무례함과 함께 결합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어떤 특정한 성품을 어떤 것에 귀속시켜야 할지, 즉 그것을 오만으로 간주해야 할지 아니면 허영심으로 간주해야 할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흔히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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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과오 592∼593

나는 다만, 영예롭고 숭고한 것을 행하려는 갈망(渴望)과, 스스로를 존중과 시인(是認)의 적절한 대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갈망을 허영심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적정성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이고자 노력할 것이다. 심지어 충분한 근거와 이유가 있는 명예와 평판에 대한 애호, 진정으로 존중받을 만한 수단을 통해 존중받고자 하는 애호까지 허영심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전자는 미덕(美德), 즉 인성(人性)에서 가장 숭고하고 가장 위대한 격정에 대한 애호이고, 후자는 진정한 영광에 대한 애호로서, 이것은 앞의 것보다는 분명히 열등하지만 그러나 그 고상한 정도에 있어서는 앞의 것 바로 다음가는 격정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허영(虛榮)의 과오(過誤)가 있다. 전혀 칭찬받을 가치가 없거나 또는 그가 기대하는 정도로 칭찬받을 가치가 있지도 않은 특성에 대해 칭찬받기를 갈망하는 사람들, 즉 자신이 착용하는 옷이나 장신구의 시시한 장식 또는 동등하게 천박한 표현인 자신의 일상적인 행동거지에 근거하여 칭찬받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확실히 칭찬받을 자격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님을 그 자신이 완전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도 허영의 과오가 있다. 자신이 어떤 일에 전혀 중요한 인물이 아니면서 마치 자신이 그 일에 매우 중요한 인물인 것처럼 으스대는 골빈 멋쟁이(coxcomd), 자신이 결코 한 적이 없는 모험을 한 척하면서 그것에 대한 공로를 차지하려는 미련한 거짓말쟁이(liar), 자신에게 아무런 권리도 없는 책의 저자인 양 자처하는 우매한 표절자(剽竊者: plagiary), 이들 모두도 허영심이란 격정을 가진 사람들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분명히 표현되지 않는 존중과 시인(是認)의 감정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 감정 자체보다는 자신에게 행해지는 시끄러운 칭찬의 표현과 환호를 더 좋아하는 사람, 자신에 대한 칭찬이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직함(職銜)을 좋아하고, 인사받기 좋아하고, 방문 받기 좋아하고, 시중 받기 좋아하고, 존경받고 주목받기 좋아하는 사람, 이들 역시 허영의 과오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경박한 감정들은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경우(즉, 진정한 미덕에 대한 애호와 진정한 영광에 대한 애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앞의 두 가지가 인류의 가장 고상하고 가장 위대한 격정들이라면, 이것은 인류의 가장 천박하고 가장 가져서는 안 될 격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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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13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허영심을 점검해봐야겠습니다.
좋은 문구 감사드립니다.

오렌님, 봄이예요.
즐거운 한주되셔요. ^^

oren 2011-03-14 00:01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허영심을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마고님도 즐거운 한 주 되세요~

2011-03-13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4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3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4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치,경제,사회,법률,역사,철학 등을 포괄하는 엄청난 넓이와 깊이를 지닌 경제학 고전의 명저


매우 유쾌하고 아름다운 재능을 가지면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재능을 돈벌이를 위해 발휘한다면, 이성에 의한 판단이건 편견에 의한 판단이건 간에, 몸을 파는 행위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그 재능을 돈벌이를 위해 발휘하는 사람들의 금전상의 보수는 그 재능을 얻는 데 든 시간·노동·비용을 보상할 뿐만 아니라, 그 재능을 생활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얻게 되는 불명예를 보상하는 데 충분해야 한다. 배우·오페라 가수·오페라 댄서 등의 매우 큰 보수는 이러한 두 개의 기준, 즉 재능이 희귀하고 아름다운 것과 그 재능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불명예스럽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인격을 경멸하면서도 그들의 재능에 대해 이렇게 후하게 보상하는 것은 언뜻 생각하면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인격을 경멸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들의 재능에 대해 후하게 보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직업에 대한 일반의 견해 또는 편견이 변한다면, 그들의 금전적인 보수는 곧 감소할 것이다. 

- 아담 스미스, 『국부론』 中에서(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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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千一夜話)와 네버 엔딩 스토리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굿모닝북스 투자의 고전 5
찰스 P. 킨들버거.로버트 Z. 알리버 지음, 김홍식 옮김 / 굿모닝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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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킨들버거(1910~2003)는 국제경제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MIT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경력만 33년(1948∼1981)에 이르며, 2003년에 타계할 때까지도 MIT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있었다.

그는 경제사에서 유별나게 독특한 지위를 부여받은 '대공황 시절'에는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뉴욕연방준비은행, 국제결제은행(BIS)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으며,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마샬 플랜을 입안하기도 하는 등 독특한 이력을 두루 갖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자신의 생애 동안 무수히 경험했던 숱한 '금융위기'만으로도 부족해서 '과거의 기록들'을 세심하게 두루 살피고,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금융위기들까지 연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내놓은 게 1978년이었다. 그 후 3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금융위기'라는 주제를 다룬 책들은 금융위기가 더해질 때마다 홍수처럼 세상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금융위기'라는 주제를 다룬 수많은 책들 가운데 이 책은 시기적으로도 다른  저작들보다 훨씬 앞선 1978년에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 면에서도 '금융위기에 대한 고전'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만큼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이후 '끈질기게 피어오르는 질긴 다년생화'인 금융위기는 더욱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대되었으며 위기의 강도도 훨씬 더 거세진 듯하다. 1987년 10월 19일에 터진 '블랙먼데이'는 결국 저자로 하여금 이 책의 제2판(1989년)을 쓰게 만들었고, 1990년부터 붕괴가 시작된 일본의 거품경제와 1994년에 전개된 멕시코 경제위기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제3판(1996년)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그 후 우리에게는 'IMF 사태'라는 미증유의 혹독한 경제위기로 다가왔던 1997년∼1998년의 아시아 경제위기와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LTCM의 파산을 불러온 1998년의 러시아 금융대란이 발생했고, 금융위기에 대한 광범위한 국제적 전염에 대한 새로운 양상들은 결국 제4판(2000년)을 채우게 된다. 그 후 킨들버거가 작고하고 난 뒤 2005년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국제경제금융학을 가르치고 있는 공저자(알리버)가 제4판 이후에 새롭게 추가된 금융위기에 관한 내용들을 담은 책(제5판)의 번역본이 이번에 뒤늦게 국내에 처음 번역되어 나온 이 책이다.

투기적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다른 많은 책들에서도 여러차례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책 속에서도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익숙한 이야기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내용과 연관이 깊은 책들로는
광기와 우연의 역사, 대중의 미망과 광기, 금융투기의 역사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싶은데, 이 책의 특징이라면 다른 책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우리만큼 '학문적이고 깊이있고 분석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점이다.



이 책이 지닌 한가지 아이러니한 측면은 '인간의 합리적인 경제행위'를 기본적인 가정으로 삼아 이론을 전개하는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가 '인간의 비합리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투기적 광기와 패닉,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경제위기를 주제로 책을 썼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경제학의 경계선'을 벗어난 '일탈과 일화와 이야기들'을 흥미로운 오락거리의 수준으로 다룬 책이어서 경제학적 지식과 교훈의 내용으로 삼을 수 없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저자의 말대로 '경제학은 역사가 경제학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역사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도 공감하게 되고, 전통적으로 지나치게 '이론과 담론'을 추구해 왔던 경제학 보다는 '경제학에서의 비합리성'을 인정하는 '현실적인 경제학'이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중요해지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저자가 '역사의 증언대에 불러 달라고 고함치는 듯한' 흥미로운 표본들을 누구보다 열심히 수집하고 점검하고 분류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저자의 오랜 수련과 탁월한 경력을 바탕으로 그런 작업에서 유형과 규칙성,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솜씨가 놀랍다. 난해하고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너무나 자주 발생하는 비합리적 사태들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태와 제도의 상호 작용들에 대해 저자의 혜안을 따라가다 보면, 앞으로 닥쳐올 '좀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금융위기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미리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국제적 금융위기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도 깊이있는 논의와 통찰을 바탕으로 쓴 다소 어려운 내용들은 국제금융에 대해 사전지식이 부족한 비전공자들에게는 이해하기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는 '문학적 경제사가(經濟史家)'로 불릴만큼 문장 표현력이 남다르게 뛰어난 경제사가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일반인들이 좀처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보여주는 '거대한 중량의 지식을 경쾌하게 날라주는' 문학적이고도 우아한 풍자와 단아한 문장 전개 솜씨 덕분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금융 위기의 전개과정에 일련의 규칙이 있음을 밝혀낸다. 국제적 유동성의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이에 따른 자산가격의 상승과 풍요감의 만연, 그리고 이에 뒤따르는 신용의 팽창 등이 '화염에 기름을 붓는' 투기적 광기의 전개 과정이다. 자산가격의 상승에 따른 경제 호황과 신용 팽창은 필연적으로 '지속불가능한 자금 흐름의 유형'을 만들어내고, 결국 패닉과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국제적인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책은 '궁극적 대여자의 역할'에서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일국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에 대한 역할은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과 국제적인 공조(바젤협약을 통해 구축된 통화스왑 등)을 통해 어느 정도 문제 해결이 가능한데,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저자가 판단하기에는) 국제적 금융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만한 능력을 아직까지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60여년 전에 설립된 IMF가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 역할을 떠맡아 왔는데, 저자의 지적대로 날로 커져가는 '국제적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지금 현재 수준의 IMF의 재원으로는 궁극적 대여자로서의 역할을 떠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우려는 이미 2010년에 불거진 유럽의 금융위기에 대한 IMF의 무기력한 대응에서 극명하게 현실화된 바 있다.

저자가 미래를 내다보며 또 한가지 심각하게 우려한 부분은 여태까지(저자가 살아있던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부각된 적이 별로 없었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가 '문제의 통화'가 되었을 때이다. 이 점에 대한 저자의 우려 역시 이미 우리에게는 '현재진행형'의 금융위기로 닥친 지 오래이다. G20 정상회담의 핵심적인 의제가 바로 '미국달러화 가치의 평가절하 문제'이며 2010년에 이어 2011년 회의에서도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부의 증가, 통신의 가속화 및 저렴화,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 금융 시스템의 진화 때문에 앞으로 또다시 다가올 광기와 패닉의 규모와 속도 또한 그에 맞물려서 커지고 빨라지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의 말미에서 '앞으로 발생할 금융위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예고했다는 점에 비춰 보면, 이 책의 13장의 제목으로 쓴 '사상최대의 혼란기와 역사의 교훈'이라는 표현은 2008년에 발생한 '사상 최대의 금융위기' 때문에 '너무 일찍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됐다는 점에서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제5판까지 나온 이 책이 언제 또 '새롭게 추가된 금융위기'를 포함하는 개정판으로 다시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또 우리는 새롭게 다가올 금융위기 때문에 또다시 곤경에서 헤어나오기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괜히 '예방접종'을 맞은 듯한 일말의 안도감은 맛볼 수 있다는 느낌도 든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엘슨 MIT 교수가 "이 책을 읽고, 또 읽지 않는다면 5년 안에 후회의 순간을 맞을지 모른다"고 말한 게 엄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보다 더 절실한 건 '앞으로도 또다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금융위기'에서는 이전의 금융위기때 보다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희망'이다.

그런 측면에서라도 저자가 애써 발굴하고 정리해 놓은 방대한 내용들 가운데 특히 '밑줄긋기'한 부분들을 따로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제1장 ∼ 제4장
제5장 ∼ 제8장
제9장
제10장 ∼ 제1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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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1장 ∼ 제4장
    from Value Investing 2011-03-03 03:16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5역사의 기록을 점검하고, 또 당신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경력에서 대단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 거의 모두-그들에 대해 당신이 읽었거나 전해들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겪은 불행은 형편이 좋았을 때,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자족했더라면 그저 좋았던 때를 그들이 몰
  2. 제5장 ∼ 제8장
    from Value Investing 2011-03-03 03:17 
    과도기간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 용어들 164풍요감에 들뜬 시기가 끝나고, 고전파 저술가들이 급반전과 신용경색(즉, 붕괴와 패닉)이라고 불렀던 사태가 시작되기까지의 과도 기간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 다른 용어들은 불안, 걱정, 긴장, 절박, 압박, 불확실, 불길한 상황, 취약성이다. 보다 다채로운 표현으로는 "끔찍한 시장의 추락" 같은 것도 있고, "천둥이 칠 듯한 날씨" "폭풍 전야의 숨막힐 듯한 답답함이 다시 느껴진다"는 표현 같이 날씨에 비유한 것들도
  3. 제9장
    from Value Investing 2011-03-03 03:17 
    축축한 숲속 270부패 발생 건수는 신용 공급과 아주 유사하게 경기순환의 파동이 올라가면 함께 증가한다. 경기가 후퇴하면 대여자들은 개별 차입자들이 채무 상태와 자신들의 신용 노출에 대해 보다 신중해지므로, 곧이어 기업의 성장에 연료를 부어 주던 대출이 감소한다. 신용이 늘어나지 않으면, 축축한 숲속에서 버섯이 자라나듯 부정이 피어 오른다.세계 5대 회계법인의 몇 곳 272 아더 앤더슨 같은 회계법인들은 기업체들이 보고할 수도 있는 아주 작은 수치의 게
  4. 제10장 ∼ 제13장
    from Value Investing 2011-03-03 03:18 
    패닉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332패닉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놓아 두어야 한다는 견해에는 두 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하나는 투자자 혹은 투기자들이 그드르이 과도함에 대한 대가로 치르게 되는 고통을 즐기는 것-또는 "파괴의 기쁨(schadenfreude)"-이다; 어느 정도 청교도적인 이 시각은 지옥의 불을 지나치게 탐욕적인 사람들에 대한 응분의 보답으로 환영한다. 다른 요소는 패닉을 "유해하고 유독한 열대 기후에서" 공기를 정화하는 폭풍우로 본다. "패
  5. 금융투기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미망을 살펴볼 수 있는 책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28 
    이 책의 원제목은 Devil Take The Hindmost(동작 빠른 놈이 장땡)이다. 결국 악마는 제일 뒤쪽의(Hindmost) 끝자락을 놓치는 법이 없다는 뜻이다.이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투기'에 대한 사례들을 두루 분석하면서 '투기적 광기'가 얼마만큼 달아 오를 수 있는지, 그리고 투기의 결과는 언제나 똑같이 '버블 붕괴'로 이어지 뿐이라는 사실을 교훈적으로 들려준다.이 책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사례들은 튤립투기(1630
 
 
사마천 2011-03-03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라운 책이네요. 좀 보다가 끝까지 완결 짓지 못했는데.. 오렌님 덕분에 다시 일독해야겠습니다.

oren 2011-03-03 14:54   좋아요 0 | URL
저도 몇 년 전에 사두고 '나중에 천천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껴두었던 책이었습니다.

처음 책을 훓어봤을 때 '어느 정도는 익숙한 내용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나중에 천천히 읽어도 좋겠다 싶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말까지 한국증시로 급격하게 유입되는 '외국자본의 흐름'과 갑자기 풍요감이 만연하는 듯한 한국 증시에 대한 '낙관적 전망들'을 접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이번 상승 싸이클이 '미국으로부터 흘러나온 자본 흐름이 야기하는 투기적 광기'를 불러올 수도 있겠다 싶은 예감 때문에 이 책을 급히 읽게 되었답니다. 올해들어 갑자기 불거진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욕구 때문에 증시가 '딸꾹질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듯싶기도 한데, 앞으로의 증시흐름을 내다보는 데에도 충분히 유익한 내용들을 이 책 속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3-0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의 증가, 통신의 가속화 및 저렴화, 국가적 그리고 국제적 금융 시스템의 진화 때문에 앞으로 또다시 다가올 광기와 패닉의 규모와 속도 또한 그에 맞물려서 커지고 빨라지는 건 불가피해 보인다." 는 말씀 공감합니다.
진짜 이런 책은 읽어봐야 하는데, 제 게으름 탓이지요.

일단 구매라도 해야겠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셔요, 오렌님.

oren 2011-03-04 12:48   좋아요 0 | URL
미래에 닥칠 금융위기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읽을 필요가 있겠지만, 호황기에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 *
재산은 호황기에 만들어지며, 개인들은 부의 증식 과정에 끼어들기 위한 탐욕에 빠지고, 사기범들이 이 탐욕을 이용하려고 등장한다. 호황기에는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의 숫자가 늘어나고, 자신들을 사기범의 희생물로 제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 "일 분마다 한 명씩 속아 넘어간다." (本文 中에서)

사마천 2011-04-2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다시 읽어봐도 정말 정리를 잘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선보이는 수고를 부탁드립니다 ^^

oren 2011-05-03 16:23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책도 자주 그리고 많이 읽고 싶고, 글도 자주 그리고 잘 쓰고 싶은데 그게 그리 쉽지 않네요. ㅎㅎ
사마천님께서 늘 성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miximalism 2017-11-0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를 사서 읽다가 너무 어려워, 이 책으로 먼저 시작해보려 합니다.
올려주신 글 덕분에 <이상과열>, <붐 앤 버블>이란 책도 알게 되어 구매하게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경제위기에 대해 쓴 책 가운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


















패닉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332


패닉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놓아 두어야 한다는 견해에는 두 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하나는 투자자 혹은 투기자들이 그들의 과도함에 대한 대가로 치르게 되는 고통을 즐기는 것-또는 "파괴의 기쁨(schadenfreude)"-이다; 어느 정도 청교도적인 이 시각은 지옥의 불을 지나치게 탐욕적인 사람들에 대한 응분의 보답으로 환영한다. 다른 요소는 패닉을 "유해하고 유독한 열대 기후에서" 공기를 정화하는 폭풍우로 본다. "패닉은 상업과 금융세계의 독소들을 정화해 활력과 건강을 회복시키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무역과 건전한 진보, 영구적인 번영으로 이끈다."


오직 돈을 구할 방도가 없다는 것만이 문제 334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모습으로 패닉이 대중을 장악했다: 모든 사람이 돈, 돈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 어떤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타임스」가 전하는 상황에 따르면, '담보나 보증이 어떤 것이냐는 사람들의 안중에 아예 없었고, 오직 돈을 구할 방도가 없다는 것만이 문제"였다."


궁극적 대여자 339

만약 효과적인 학습 과정이 존재한다면-합리성 가정은 이것을 필요로 한다-지금까지의 경험에서 학습되었어야 할 교훈은 시장의 경쟁 작용에만 의존하는 것보다는, 궁극적 대여자가 더 바람직하고 또 비용도 적게 든다는 사실이다.


경기가 수그러들 때 362

은행의 관리부실은 위기가 드러나기 전에는 감지하기 어렵다; 경기가 확장되는 동안 규제와 감독 과정에서 불어나는 엔트로피가 시스템의 곳곳에 발생시키는 위험구역들은 경기가 수그러들 때 갑자기 표면화된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결국 문제는 청산, 시간 지연, 보증, 구제, 인수합병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혹은 그 밖의 궁극적 대여 수단을 동원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리카도 367

배젓은 1875년에 발권은행과 관련한 의회의 특별위원회에 출석했을 때, 궁극적 대여자 학설의 기원을 베어링이나 손톤이 아니라 데이비드 리카도에서 찾았다: "리카도가 수립한 정통 학설은 패닉 중에는 법정통화의 발행 제한이 철폐돼야 하는 국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원칙과 전례 368

"원칙과 전례가 깨지면 안 되는 시기들이 있는 한편, 원칙과 전례를 고수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은 때도 있다."


오늘이 내일에 우선한다는 것이 딜레마 369

이 같은 역설은 죄인의 딜레마와 똑같다. 중앙은행은 패닉을 중지시키기 위해 돈을 제한 없이 빌려줘야 하지만, 앞으로 패닉이 일어날 개연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장을 시장 자체의 장치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있을지도 모르는 개연성을 눈앞의 현실이 압도해 버리는 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오늘이 내일에 우선한다는 것이 딜레마다.


최적의 조건 380

책임이 오직 하나의 주체에게만 주어진다면, 행동을 요구하는 압력을 버텨내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최적의 조건은 비슷한 지성을 보유한 소수의 행위자들이 서로 긴밀히 조율되는 과두체제식의 관계를 형성하고, 부정행위자들과 무임승차자들을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면서, 결국에는 최종적인 책임을 떠맡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시점 선택의 문제 391

시점 선택은 특수한 문제를 제기한다. 경기 확장이 점점 더 세게 그 강도를 높여 가면, 패닉이 촉발되지 않도록 하면서 확장의 강도를 늦추어야 한다. 붕괴가 발생한 후에는, 채무지불 능력이 없는 기업들이 파산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채무지불 능력은 있지만 단지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들에게까지 위기가 확산될 정도로 오래 기다리지-클랩햄의 표현을 따르면 "뛰어난 수영선수들마저 익사할 때까지 시간을 끌지"-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점 선택은 예술 392

시점 선택은 예술이다. 이 말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에 존재하는 문제 393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에는 일국 차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국가별 통화와 국가별 중앙은행이 존재하는 한, 환율의 변동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오버슈팅과 언더슈팅 394

외환시장에서 어느 나라 통화의 가격이 장기균형 가치에 비해 상승함에 따라 해당국 통화가 '오버슈팅' 국면에 진입하면 이 나라의 대외무역 부문은 거의 예외없이 디플레이션 충격을 받았다. 반대로 어느 나라 통화의 가격이 장기균형 가치에 비해 하락함에 따라 통화가 '언더슈팅' 국면에 진입하면 물가상승률의 급등이 유발될 수 있다. 더욱이 실질 외환가치의 급격한 하락이 기업과 은행들의 광범위한 파산을 야기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나의 생각)
오버슈팅과 관련해서는 현재의 일본, 언더슈팅과 관련해서는 현재의 중국을 떠올리게 한다.


일국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 vs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 394∼395

일국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맡아야 하는 기본적 책임은, 국내 유동성의 부족이 채무지불 능력의 문제로 확대됨으로써 투매와 경계 매도(precautionary selling)가 없었다면 피할 수 있었던 파산을 야기하게 될 개연성을 줄이는 일이다. 일국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위태로운 투자와 부실한 사업 결정으로 인해 이미 파산 상태에 들어선 금융기관의 구제를 피하는 일, 그리고 이들보다 건실한 경쟁자들을 물가 수준의 하락과 디플레이션 충격이 유발하는 채무지불 능력의 상실 사태로부터 구제하는 일, 이 양자 사이에 걸린 팽팽한 밧줄 위를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맡아야 하는 기본적인 책임은 필요한 환율 변동의 범위를 개선하고 경제적 펀더멘털 측면에서 불필요한 환율 변동을 막기 위해 유동성을 제공하는 일이다.


통화의 평가절하와 무역수지 적자 감소 396

한 나라 통화의 평가절하는 거의 예외없이 그 나라 제품의 국제경쟁력 향상과 무역수지 적자의 감소를 가져오게 돼있다. 이 개선 효과의 정도는 시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해당국 기업들의 수출 역량과 수입대체품의 생산 능력이 커질수록 이 효과는 장기적으로 더 증대된다.


궁극적 대여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 398

금융의 역사에서 추론해 본다면,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금융위기에 뒤따르는 경기침체가 1873년, 1890년, 1930년대 초반의 경우처럼, 필요 이상으로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부채 디플레이션의 순환이라는 고통 398∼399

1930년대의 부채 디플레이션은 기업 파산, 은행 파산, 물가수준의 하락이 반복되는 되먹임 과정을 동반했다. 기업체들이 파산하면 그들의 재고가 매각됐고, 재고의 매각이 물가수준을 내리눌렀기 때문에, 같은 산업 내의 다른 업체들의 순자산도 줄어들었다, 기업 파산으로 인한 은행의 대출손실이 늘어남에 따라 은행의 여신 의욕이 줄어든다. 은행들은 차입자들이 미끄러운 비탈에 들어섰다고 믿고,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 가운데 일부를 갱신해주지 않았다. 상품가격 수준이 하락한다는 것은 명목 금리가 낮더라도 실질 금리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투자지출이 억제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본은 1990년대 말에 물가수준이 연 1%씩 하락하면서, 기업체 파산 빈도가 이례적으로 높아졌고 부채 디플레이션의 순환이라는 고통에 빠졌다. 홍콩은 아시아 금융위기와 중국으로의 주권 회귀 이후 5년 동안 부채 디플레이션의 순환에 빠져 있었다. 이 때 홍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 통화의 외환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홍콩에서 생산하는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수의 국제적 금융위기는 통화가치의 과대평가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나라들의 환율 변동과 함께 나타났다. 문제는 '펀더멘털의 불균형'-브레튼우즈 체제의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시스템이 여전히 유효했을 때 IMF가 대중화한 용어다-으로 인해 자국 통화의 외환가치가 변경돼야만 하는 나라가 언제 외환가치 변경을 실행해야 하는지, 그 시점을 결정하는 일이다. 해당 국가들이 자국 통화의 외환가치 변동 능력을 확보하고 있는 한, 통화의 외환가치 변동이 불가피한 나라가 필요한 환율 변동을 국제적인 궁극적 대여자의 지원 자금으로 지연시킬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인지, 또 통화의 외환가치 변동이 불필요한 나라가 이 지원 자금의 혜택으로 무익한 환율 변동을 막을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인지를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결정해야 할 것이다.

(나의 생각)
2010년에 발생한 유럽의 위기(PIGS, 즉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를 보면 '위기발생' 이후 대처하기는 늘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금융위기의 횟수와 혹독함 401

지난 35년 동안 발생한 금융위기의 횟수와 혹독함은 엄청난 것이었다. 국제적 차원의 효과적인 궁극적 대여자가 있었다면, 금융시장의 혼란은 경감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생각)
이 책이 출판된 이후-그리고 곧이어 저자도 더 이상 이 세계를 관찰할 수 없게 된 이후- 금융위기의 횟수와 혹독함은 더욱 더 거세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국 정부를 부동자세로 만든 은행가들 422

이어서 8월 24일 노동당 정부의 실각이 이어졌다. 나흘 후 다시 맥도널드 총리와 스나우던 재무부 장관이 이끄는 새로운 '거국 내각'이 수립되고 나서, 제이피 모건이 이끄는 뉴욕의 신디케이트에서 2억 달러를, 그리고 파리의 신디케이트에서 2억 달러를 차입했다. 한 차례의 전시성 발언을 하는 자리에서 이 은행가들은 영국 정부를 부동자세로 만들었다; 그들은 1920년대에 제이피 모건이 프랑스인들에게 안정화 차관을 제공할 때 언급한 말을 되뇌기라도 하듯, 자신들은 정치적인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과 예금자들의 돈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에 임하여 정당성이 갖추어져 있다고 그들 스스로가 느낄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지적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한계 426

1930년대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지원 수단으로서 국제적 신용기관을 설립한다는 동기에도 불구하고, IMF는 그 자체의 통화가 없기 때문에 궁극적 대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구조였다. 대신 IMF는 회원국들이 미미한 한도 내의 경상수지 적자 대금을 조달하는 일을 돕기 위해 여신을 제공할 수 있었다. 회원국들은 자국 통화의 평가 유지 능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자본흐름을 제한하기 위해 외환통제권한을 유지할 수 있었다. IMF로부터의 차관은 다시 갚아야 했다. 궁극적 대여자의 필요성에 대한 1931년의 교훈은 습득되지 않았다. 브레튼우즈에서는 다만 경상수지 적자를 소소한 한도 이내에서 융통해 주기 위해 IMF를 창설한 것이었다.


바젤 협정 429

1960년대에 있었던 국제금융의 대표적인 혁신 가운데 하나는 스왑 연계망을 만들어 낸 바젤 협정이었다. 미국이 스왑 연계망-각국의 중앙은행이 일정액의 외국 통화를 자산으로 기록하고 이에 대응하는 동등한 금액의 외환을 부채로 기록하는 두 개 중앙은행 쌍방간의 신용한도 설정의 연계망-을 넓혀 가는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외환시장에서 가치가 변동하는 다수의 통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431

환차손에 대한 공포가 자본흐름을 억제할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 견해는 잘못된 것임이 증명됐다; 다수의 은행들은 외환시장에서 가치가 변동하는 다수의 통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익 창출을 위해 매매할 수 있는 새로운 자산군이 생긴 것으로 취급했다.


'대여의 조건' 434

IMF가 신흥시장 국가들이 취할 수 있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선택폭을 너무 과도하게 제한했다는 것이 대중지향적인 시각이다. 국내의 대여자든 국제적인 대여자든, 대부분의 대여자들은 자금 대여의 조건을 약정한다. 프랑스가 1924년 안정화 차관을 지원받을 때, 몇몇 프랑스 분석가들은 제이피 모건이 내놓은 요구 조건들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물론 대여자들의 표준적인 대응은 대여 자금이 반제될 수 있음을 확실히 해 두는 것이 예금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1931년에 오스트리아와 독일에게 프랑스가 대여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정치적이었다. 이보다 좀 늦은 그해 여름 미국과 프랑스가 영국에 제공한 차관의 경우는, 재정수지의 균형과 실업 보조금의 삭감을 주장한 영국 메이 위원회의 권고가 이행돼야 한다는 것이 대여자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에, 노동당은 이 차관을 "은행가들의 사기"(bankers' ramp 미국식 영어로는 'racket')로 간주했다.


한도 돌파에 대한 기대 436

월터 배젓은 낮은 한도는 한도 돌파에 대한 기대를 자극하기 때문에, 궁극적 대여자는 제한 없이 대여해야 한다는 처방을 천명했다. 잠재적 필요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는 규모의 신용을 공급하는 것은 제한 없이 대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양자가 만들어낸 합작품 436∼437

1997년 7월에 시작된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는 풍요감에 젖어 투자 포트폴리오의 다변화에 매료돼 있던 선진국의 대여자들과, 고도성장 가도를 달리며 투자와 성장률 증대를 추진하는 한편 서방의 금융시장 규제완화 압력에 놓여 있던 차입국들, 이 양자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이 밖의 다른 요인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정실 자본주의, 태국의 약체 정부, 한국의 거대 기업집단(재벌), 그리고 모든 나라에 만연했던 은행의 부실 대출이었다.


철칙 437

유럽의 은행들도 이 지역에서 거액의 대출 자금을 공급했다. 이 같은 자본유입에 따라 이들 나라의 통화 대부분이 과대평가됐는데, 경상수지 적자가 크고 통화가 과대평가된 나라들은 자본 유입의 감소를 유발하는 그 어떤 충격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이 철칙이다.


주권의 지표 438

세계의 중앙은행이 IMF보다 더욱 효율적인 궁극적 대여자일 것이지만, 이런 기관이 생길 개연성은 없다. 유럽통화동맹을 결성한 나라들 말고는, 규모가 큰 대다수 국가들은 통화의 발행과 통제 권한을 주권의 징표로 간주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통화 발행 및 통제 기능은 헌법에 명기돼 있는 사항이다.


만성적인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439

1980년대 초에 일어난 커다란 충격 가운데 하나는 만성적인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였다. 미국은 100년 넘게 무역수지 흑자를 유지해왔다. 1980년경에 시작된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는 국제금융에서 미국의 위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1980년에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 국가였고, 부채를 제외한 미국의 순채권액이 나머지 순채권 국가들의 순채권액 합계보다 많았다. 2000년 시점에는 미국이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 됐고, 그 순채무액이 나머지 순채무국의 순채무액 합계보다 컸다. 미국의 순채무액 규모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나의 생각)
미국이 참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시대 440

미국은 1990년대에 낮은 물가상승률, 낮은 실업률, 흑자로 돌아서고 있는 재정수지, 기술진보와 함께 경기순환은 약화됐고 FRB의 신속한 문제 대처로 금융위기가 둔화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고 몇몇 경제분석가들이 제시한 바와 같이, 미국은 가장 성공적인 경제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탄탄할 수는 없는 법이다. 번영은 미국 소비자의 지출 증가와 가계 저축률의 하락에 따른 것이었다. 신용카드 부채의 신고점 갱신이 이어졌고, 가계 파산도 마찬가지였다.


정상회담의 주된 메뉴 440∼441

몇몇 정치학자들은 그들이 '체제(regimes)'-즉, 리더십(leadership; '헤게모니(hegemony)'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발휘되는 기간 동안 구축된 습관적인 협력-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협력이 1980년대에는 괄목할 만하게 잘 기능했고,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와 1987년 1월의 루브르 합의를 이끌어낸 당시 미 재무부 장관 제임스 베이커가 주도할 때 특히 그랬다. 선진 7개국의 정상회담 시스템에 대해 큰 신뢰를 두는 관측가들은 별로 없다. 이 정상회담의 주된 메뉴는 예식에 수반되는 강한 음조와 자세잡기다.


달러화가 문제의 통화가 될 경우 441∼442

IMF와 세계은행이 저하되는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레튼우즈에서 설립된 이 기관들이 작동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몇 주가 아니라 몇 시간 내의 결정이 필요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서는 없는 것과 다름 없는 장애 요소다. 게다가 재갈물린 야생마처럼 날뛰는 오늘날의 시장에 대처하기에 이 기관들의 자금은 여전히 너무 빈약한 것으로 확인될 공산이 크고, G7 중앙은행들의 자금 보총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사태는 만약 달러권보다 금융시장 규모가 작은 엔화, 리라화, 프랑화 등이 아니라, 바로 달러화가 문제의 통화가 될 경우 더더욱 그렇다.

달러화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교환수단으로서의 사용 규모는 줄겠지만, 적합한 대체 통화가 없기 때문에 세계적인 계산 단위로서의 기능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은 내부적으로 문제 은행들의 부동산 대출로 인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독일은 아직 구동독과의 경제적 통합을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일본과 독일은 미국의 선도에 잘 따라주는 나라들이었지만, 사실 미국의 선도에 대한 도전을 억제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드골 대통령하에서 큰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어도 미국의 정책과 달러화의 지배에 대한 도전 태세를 멈추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크 시락 대통령하에서 국내외적인 난제들에 매달려 있다. 유럽 연합이 경제력과 금융력을 키워서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더 나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세계가 미국의 지도력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정치 경제적 난제들에 여념이 없고, 국제적 공공재의 제공에 따르는 비용의 지불을 꺼리며 주춤거리는 중이다. 평화로운 시절에는 체제가 잘 작동하지만, 위기 때는 지휘력의 방식에 뭔가 더 결정적인 것이 요청된다. 앞으로 다가올 몇 년 동안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는 확률은 낮아 보인다.

(나의 생각)
2008년의 금융위기를 '훤히 내다보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마침 2011년 G20 정상회담의 의장국인 프랑스는 지금 현재도 '달러화의 지배'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도전하는 국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통화위기의 연홰작용 444

1929년 4분기의 주가 붕괴는 세계경제의 성장 둔화를 촉발했고, 대다수 나라들이 수출 소득의 감소와 자국 통화에 대한 투기 압력으로 인해 통화의 금태환을 정지시켰다. 1930년대에 가장 특징적이었던 현상은 오스트리아 실링화를 시작으로 독일 마르크화, 영국 파운드화에 이어 미국 달러화로 퍼진 통화 위기의 연쇄 작용이었는데, 마침내는 투기 압력이 금블록 통화인 프랑스 프랑화, 스위스 프랑화, 네덜란드 길더화로 번져갔다. 1930년대 말 시점에는 각국 통화가치의 배열이 1920년대 말과 유사한 구조로 돌아갔고, 미 달러화나 다른 대다수 통화로 표시되는 금의 가격은 75%나 올랐다.


납세자들이 지불한 비용 446

1960년대 중반 이래 자산가격의 변화, 통화가치의 변화, 그리고 은행 위기의 빈도와 심각성이라는 측면에서 추론해 볼 때, 역사가 준 교훈들이 망각되고 무시되는 일들이 계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금융위기의 빈도 및 그 파장의 폭과 혹독함 면에서, 이 기간은 통화의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시기와 동일한 기간을 두고 볼 때 이전의 그 어느 시기보다도 국가 차원의 은행 시스템이 붕괴되는 사레가 많았다; 일본과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멕시코(두 번 발행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은행의 대출 손실은 은행 자산의 20∼50%대에 달했다. 몇몇 나라들의 경우 암묵적 혹은 명시적인 예금 보장을 위해 납세자들이 지불한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15∼20%에 육박했다. 이들 나라 대부분이 겪은 대출손실은 1930년대 대공황기에 미국이 경험한 대출손실보다 훨씬 컸다.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붕괴 448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변동 가능한 평가에 따라 각국 통화를 준고정시키는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붕괴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일어난 외환위기는 이 시기와 물리적 시간이 맞먹는 이전의 그 어느 시기보다 많았다. 1971년 8월 미국은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핵심인 금 1온스 당 35달러로 설정된 미 달러화의 평가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했다. 통화간 교환비율을 정해놓는 각 통화의 상대가치 체계가 1972년 1월의 스미소니언 합의에서 새로 확립됐지만, 약 1년간 유지되다가 1973년 2월 독일 마르크화와 일본 엔화, 이어서 대부분의 선진국 통화들이 시장의 변동환율에 맡겨졌다.

1980년과 2000년 사이에는 그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도 자산가격 거품이 많이 발생했다. 1980년대 말 일본은 "모든 자산가격 거품의 어머니"격인 엄청난 거품을 경험했다. 부동산가격은 9배 상승했고 주가는 6배 상승해, 일본의 금융자산이 급증했다. 일본경제는 호황 가도를 달렸다.

(나의 생각)
오래된 역사책 속에서는 '금과 은의 가치는 14대 1이었다'는 대목도 참고할 만하다.(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54쪽)



체계적 관련성 450

은행 파산과 장기균형 가치에서 이탈하는 환율의 오버슈팅과 언더슈팅,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은 체계적 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간 자금흐름의 규모와 방향에 큰 변화를 야기하는 다양한 충격의 결과로 나타났다. 은행 파산-주로 세 개의 파동을 거치며 일어났다-은 해당국 통화의 급격한 외환가치 하락으로 인해 발생하거나, 금융위기가 진행되면서 붕괴 국면에서 나타나는 부동산가격과 주가의 폭락으로 인해 발생했다. 이 같은 붕괴는 경제가 활발한 성과를 내고 있는 나라들로 유입되는 거액의 국가간 자금흐름을 초래하는 투기적 광기 현상에 뒤이어 나타났다; 거액의 자금유입으로 인해 이들 나라 통화의 외환가치가 상승했고, 부동산가격과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헀다.


예측 가능한 충격들 450

이런 충격 가운데 몇 가지는 정말로 뜻밖의 것들도 있었지만, "예측가능한" 충격들도 여럿 있었다. 정의상 충격이란 예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충격"은 모순 어법처럼 들린다. 1970년대와 1990년대 멕시코와 1990년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이사에서 진행된 경기 확장기의 광기 국면 동안 대외채무 잔고가 늘어났고, 그 이자의 지급을 신규 해외투자로 유입되는 현금에 의존하는 비중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누적 채무가 증가하는 차입자에게는 대여자가 제공하는 신용의 증가 속도가 줄어든다는 것은-비록 이 변화의 세부 징후와 시점의 예측은 불가능했어도-불가피한 일이었다.


지속 불가능한 자금흐름의 유형 451

한 나라로 유입되는 자금흐름의 증가는 외환시장에서 이 나라 통화의 가격 상승과 함께, 해당국 내의 투자 가능한 유가증권 및 기타 자산의 가격 상승을 유발한다; 경기 확장의 광기 국면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자산가격의 상승은 장기균형 가치 이상으로 시장가격을 상승시켰다. 이런 충격들 가운데 어떤 충격은 차입자에게 주어지는 대여자의 자금이 무한정으로 이어져야 하는 지속 불가능한 자금흐름의 유형을 만들어냈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자금흐름의 감소는 거의 예외 없이 해당국 통화의 외환가치 하락을 초래했고, 어떤 경우에는 통화가치의 하락이 50∼60% 혹은 그 이상에 달하는 자산가격의 붕괴를 촉발했다.


뉴욕과 도쿄 455

금융 규제완화를 통해 도쿄와 오사카에 본점을 둔 은행들은 일본 내 부동산 대출을 늘릴 수 있었고, 해외의 자회사와 지점을 확대할 수 있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들로 유입되는 일본 저축자금의 흐름이 급증했다; "일본이 미국 국채의 매수를 중단한다면 미 재무부는 재정적자 조달 자금을 어디에서 얻을까?"라는 것이 뉴욕과 도쿄, 양쪽의 이야기거리였다.

(나의 생각)
2010년 현재 뉴욕과 베이징의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투자자들의 선호에 '대폭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 459

통화와 주식의 가격 상승이 계속되는 한, 해당 유가증권과 통화의 소유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률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더욱 상승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경제적 장래에 대한 낙관론이 확대된다. 그리고 나서 발생하는 또 하나의 충격이 국가간 자금흐름의 역전을 촉발했고, 그 결과는 통화, 유가증권, 기타 자산의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금융위기였다.

이 같은 투기적 광기를 동반하는 충격들은 여러 가지 통화로 표시된 유가증권과 기타 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에 대폭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데 기인한다. 1970년대에 미국의 물가상승률 증가를 우려하게된 투자자들은 독일 마르크화, 스위스 프랑화, 영국 파운드화로 표시된 유가증권의 매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 달러화 유가증권을 매도했다; 미 달러화의 외환가치는 주요 교역 상대국들의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미국의 물가상승률 격차에서 산출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오버슈팅과 언더슈팅 462

투자자들이 특정 통화로 표시된 유가증권의 보유를 늘리거나 줄이고자 할 때마다, 이 통화의 외환가치에 오버슈팅이나 언더슈팅이 유발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시장 환율이 국가별 물가상승률 격차에 부합하는 환율로부터 큰 폭으로 빠르게 괴리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전의 속설-"악순환 및 선순환", 그리고 시장의 균형점 이탈을 유발하는 "교란적 투기"-은 국가간 자금흐름의 급격한 변화에 뒤따르는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기대 물가상승률의 변화-보다 정확히는 국가별 물가상승률 차이의 변화-는 현물 시장환율 기대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외환가치에 오버슈팅과 언더슈팅을 초래한다.


저축률 감소는 적응과정의 필연적인 결과 463∼464

변동환율제하에서는 특정 통화의 유가증권에 대한 외국인들의 수요 증가는 같은 크기로 발생할 경우, 해외에서 유입되는 저축액의 증가에 대응하는 규모로 이 나라의 무역수지를 변화시키는 적응 과정이 시작된다. 다른 나라에서 유입되는 저축액 증가가-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을 통해-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자본비용의 하락을 통해 국내 투자지출이 확대되고, 가계 부의 증가에 따라 가계의 소비지출이 증가한다는 점이었다. 대다수 국가에서 소비지출이 투자지출에 비해 3∼4배 더 크기 때문에, 총지출의 증가는 대부분 가계지출의 증대로 구성된다. 소비지출의 확대는 곧 가계 저축률의 하락을 의미한다.(반면, 고정환율제하에서 해외 저축의 유입 증대가 낳는 결과는 중앙은행의 대외준비자산 보유액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변동환율제의 경우에 필적할 만한 저축과 투자 관계의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다.) 국가간 저축흐름의 유입이 늘어나는 나라에서 국내 투자에 비해 국내 저축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현상이 이 같은 적응 과정의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마냥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 464∼465

보이지 않는 손은 해외 저축의 유입이 증가하는 나라에서 GDP 성장률의 상승을 가져왔다. 이것은 그 나라의 유가증권 및 기타 자산가격이 상승함에 따른 가계 부의 증대가 소비지출을 확대시킨 결과였다. 유가증권 및 기타 자산가격의 상승으로 일부 투자자들의 부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의 "부에 대한 목표수준"이 달성됐기 때문에 이들은 현재의 소득에서 저축하는 비중을 줄였다.

즉, GDP에서 무역수지가 차지하는 비율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것은, 일단 한 나라로 유입되는 해외 저축이 증가하면 그 나라에서 투자 가능한 유가증권과 기타 자산의 수익률을 상승시키는 적응 과정의 변화가 유발됐기 때문이다. 부의 증가는 경제 호황에 기여했다. 실제로 일반 해외 저축의 유입이 늘어나 수익률이 상승하게 되면, 다시 해외 자금의 추가적인 유입을 유발하는 되먹임 효과가 발생햇다. 경제 호황이 지속되고 확산됐다; 이 같은 국가간 현금흐름의 유형이 마냥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왜 대여자들이 결국에는 조정이 일어날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는가를 설명하는 요인 466

자료에 나타난 유형 가운데 하나는 한 나라로 해외 저축이 유입되면 경제 호황이 동반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1970년대 멕시코와 기타 개발도상국, 1990년대 전반기 중 멕시코, 태국 및 동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 나라들에서 발생한 통화의 외환가치 상승은 탄탄한 경제 확대에 더해 인플레이션 압력의 축소를 가져왔고, 수입 단가와 비교한 수출 단가의 상대적인 상승은 경제섲앙률의 상승도 가져왔다. 또한 해당국 내 일정 수의 차입자들이 이자를 갚기 위한 현금을 다시 채권자들로부터 차입하는 현금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해외 자금의 유입은 지속 불가능한 현금흐름의 유형과 결부됐다. 경제 호황의 지속은 왜 대여자들-적어도 이들 중 다수-이 결국에는 조정이 일어날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는가를 설명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궁극적 대여자의 역할 466∼467

일국 차원에서 본 궁극적 대여자의 역할에 대응하는 국제적인 차원의 역할이 존재한다. 일국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는 경우에 따라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 혹은 다른 시장에서 비이성적 과열의 출현을 지적해야 한다. 이에 상응하는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가 가지는 역할은 하나 또는 여러 나라에서 지속 불가능하리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대외채무의 누적을 지적해야 하고, 유지 가능한 수준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조정에 뒤따를 큰 비용과 함께 불가피하게 혼란스러울 후속 파장에 대해서도 지적하는 것이다.

(나의 생각)
2011년 1둴 '한국의 사례'가 떠오른다.(그런 비이성적 과열의 출현을 지적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기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궁극적 대여자의 존재 의의 467

국제적 차원에서 이런 목적에 대응하는 궁극적 대여자의 존재 의의는, 임의로 국가로 유입되는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거대한 자금흐름을 유발하는 투기적 광기 국면이 끝날 때, 해당국 통화의 급격한 외환가치 하락을 완화하는 것이다. 광기 국면이 진행중일 때는 자금 유입의 증가에 대응해 해당국 통화의 외환가치가 상승하게 되지만, 자본 유입이 감소하는 시점이 되면 통화의 외환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수출업자들이 통화가치의 하락에 따른 상대가격의 변화와 국제경쟁 조건의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환시장에서 통화가치의 하락이 증폭되는 해당국 통화의 언더슈팅 현상은 불가피하다; 즉, 수출업자들이 수출할 수 있는 상품의 생산을 늘리고 해외 고객을 발굴해 거래 체결을 진행하는 데는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1994년 말 멕시코 경제위기의 사례 468

미 재무부는 멕시코가 1994년 말 금융위기에 빠졌을 때 궁극적 대여자로 행동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멕시코에 제공된 신용에는 IMF의 자금과 함께 미국 정부의 자금도 포함됐다. 이 같은 자금 조성 계획이 발표되자 페소화의 추가적인 외환가치 하락이 억제됐다. 이런 대응이 한 주 혹은 몇 주만 일찍 취해졌다면, 페소화의 언더슈팅 폭은 더 작아졌을 것이고, 페소화의 외환가치 하락이 멕시코 경제에 끼친 악영향도 덜 심각했을 것이다.

(나의 생각)
2008년 원화가치 폭락때 수많은 중소기업들을 파산지경까지 몰아갔던 '키코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IMF의 한계 468∼469

IMF는 1945년에 국제적 차원의 궁극적 대여자로 행동하기 위해 설립됐다. IMF의 설립 동기는 국제적인 궁극적 대여자가 존재했을 경우 1920년대, 그리고 특히 1930년대에 겪었던 금융 불안정에서 큰 부분을 막아냈거나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인식이었다. IMF 인력은 매년 두 차례 각 회원국을 방문해 해당국의 경제정책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나 IMF가 어느 회원국의 국제적 차입이 지속 불가능한-경상수지 적자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수준으로 지나치게 확대되는-양상에 접어들었으며, 경상수지 적자가 유지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경제적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값비싼 비용을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연착률'보다는 '경착률'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경고를 울린 적은 거의 없다. 더욱이 붕괴가 발생한 시점에서 해당국 통화가치의 폭락과 그 폐해를 위해 신용을 공급할 능력도 없었다.

(나의 생각)
IMF는 최근의 남유럽 경제 위기 상황에서 그 스스로의 능력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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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대해 쓴 책 가운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

















축축한 숲속 270

부패 발생 건수는 신용 공급과 아주 유사하게 경기순환의 파동이 올라가면 함께 증가한다. 경기가 후퇴하면 대여자들은 개별 차입자들이 채무 상태와 자신들의 신용 노출에 대해 보다 신중해지므로, 곧이어 기업의 성장에 연료를 부어 주던 대출이 감소한다. 신용이 늘어나지 않으면, 축축한 숲속에서 버섯이 자라나듯 부정이 피어 오른다.



세계 5대 회계법인의 몇 곳 272

아더 앤더슨 같은 회계법인들은 기업체들이 보고할 수도 있는 아주 작은 수치의 계산 착오로부터 투자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그들이 제시하는 재무제표의 아주 작은 수치까지 검증하는 일을 맡았다. 세계 5대 회계법인의 몇 곳은 그들이 회계감사를 맡은 기업체들-회계법인에게 수임료를 지불하는 회사들-에게 장악 당했고, 투자자들을 속이는 일을 함께 공모했다. 엔론과 MCI월드컴에 법률 자문을 제공한 법무법인들은 과연 투자자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없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시장경제에서 삶의 일부 272

사기, 부정행위, 자금 유용, 정교한 사취 수법은 시장경제에서 삶의 일부이고, 어떤 나라들은 다른 다라들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한 경우도 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국가들의 부패지수를 매년 발표한다; 핀란드가 청렴도에서 굳건히 1위를 지키고 있고, 아이슬랜드가 근소한 차이로 다음 순위에 자리잡고 있다; 여러 해 동안 방글라데시, 콩고, 나이지리아가 부패 공급의 선두 그룹 위치를 굳혀 왔다. 미국은 비록 1990년대 주가 거품 기간 동안 주식회사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광범한 부정과 사기로 인해 순위가 서너 단계 밀리기는 했지만, 순위표에서 바닥보다는 정상에 훨씬 가까운 위치에 있다.

(나의 생각)
MB의 경우도 떠오른다. 2008년 대선 직전 당내 경쟁자이게 끝까지 시달렸던 문제 가운데 하나가 BBK 문제였다.



재고의 과대포장 272

사기의 전통적인 형태로는 재고로 보유하고 있는 상품 가치의 과대포장을 꼽을 수 있다. 1930년대 말 맥케슨 로빈스 스캔들에서는 위조한 창고보관증이 대출 담보로 사용됐다. 1960년대 텍사스의 무모한 투기꾼 빌리 솔 에스테스는 그가 리스로 쓰고 있던 비료탱크의 숫자를 조작해 가공으로 부풀린 재고자산을 토대로 자금을 차입했다. 1960년대 '샐러드 오일' 탱크를 대출 담보로 사용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게 피해를 입힌 티노 데 안젤리스는 물보다 기름의 비중이 낮다는 점을 이용, 20피트 높이로 채운 물 위에 6인치 두께의 샐러드 오일을 얹는 속임수를 썼다.

(나의 생각)
한국의 경우 한 때 의류업체들이 재고자산 분식회계가 특히 심했다. 없는 CD를 대규모로 허위계상해 왔던 터보테크, 매출과 수익을 엄청나게 부풀렸다가 퇴출당한 네오세미테크 등의 사례도 떠오른다.



투자보고서 271

금융시장에서 벌어지는 사기에는 기업이익의 증가나 개별 기업 주식의 목표가격에 대한 투자보고서 등이 이용될 수 있다. 투자보고서의 전형적인 내용은 "아마존 주식의 가격이 7월 4일까지 주당 400달러로 오를 것이다"라는 것인데, 그 표현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우리의 목표주가는 주당 400달러다." 또 다른 투자보고서는 "기업이익은 향후 5년 동안 연15%의 성장률로 증가할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금융시장에 등장하는 사기에는 이런 투자보고서를 내는 사람들조차 실현될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업이익과 미래 주가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을 동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의 생각)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증권업계에서 꽤 이름이 알려졌던 D증권의 전기전자업종을 담당했던 정** 애널리스트가 작전세력에게 매수되어 돈을 받고 기업분석보고서를 우호적으로 작성한 사실이 발각되어 구속된 사례가 떠오른다.



바람잡이들 273

월 스트리트는 주식을 판매해 많은 돈을 벌고, 개별 기업 주가의 상승 효과를 발휘하는 투자보고서 발표를 그 주된 임무로 하는 일군의 고액 연봉 소득자들과 함께 번영을 누리는 곳이다. 이들은 축제가 열리면 관람객들이 표를 사서 칼을 삼키는 묘기를 구경하도록 만드는 바람잡이들과 비슷하다.


시장전략가 274

주가는 보통 통계적으로 한 번 떨어지면 두 번 오르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없더라도 '시장전략가들'은 틀릴 확률보다 맞을 확률이 더 높다. 시장전략가들은 주가지수가 하락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를 꺼려하는 게 전형적인 모습이고, 개별 종목에 대해서도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는 일은 매우 드물다.(왜냐하면 해당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분개해 시장전략가가 속해있는 투자은행에 증권발행 인수 업무를 맡기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쓸 만큼 쓴 소모품일 뿐 274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강력한 매수 권고가 막 나갔는데 주가가 떨어져 이 호객꾼들이 고용주에게 골칫거리가 되면,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이미 그들에게 돈도 많이 준 데다 그들은 쓸 만큼 쓴 소모품일 뿐이다: "이보게, 이건 비즈니스라 어쩔 수 없네. 그동안 수고 많았네." 교체할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나의 생각)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집스럽게 약세 마인드를 굽히지 않았던 국내의 대표적인 증권사였던 S증권의 호객꾼이 생각난다. 그는 결국 짤렸다.



훨씬 더 빨리 275

부패 행위는 거의 모든 경제에서 그 일부 요소다. 도덕적인 규범과 법률적 규범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거래 건수는 1990년대처럼 풍요로운 호황기에 증가한다. 역설적이지만 주가와 부동산가격, 상품가격이 서너 해 동안 연 30∼40%씩 상승하면서 개인적인 부가 증가할 때, 훨씬 더 빨리 부를 늘리고자 하는 개인들이 만들어 내는 부정행위의 증가가 유발되는 것 같다. 누군가는 자신도 존스 집안처럼 풍족하게 누리고 싶어지고, 그래서 그를 위해 진실을 가리고 원칙을 벗어난 지름길을 만들어내는 일이 일어난다.


붙잡히더라도 275

일부 기업가와 관리자들은 보상 대 위험 비율이 현격하게 커 보이기 때문에 부정행위의 경계선 끝에 바짝 붙어서 스케이트를 탈 수도 있다; 원칙을 벗어난 지름길을 건너고, 규칙을 어기고 대중을 속임으로써 늘릴 수 있는 재산이 체포, 벌금, 탄로의 위험에 비해 극히 커 보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규정 위반이 발각되지만 않으면 큰 부를 챙길 수 있다고 계산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붙잡히더라도 그 절반은 챙길 가능성도 있다. 감옥에 갈 확률은 낮으며, 화이트컬러 범죄자가 갇히는 감옥은 우중충한 복장으로 지내는 조악한 컨트리클럽과 비슷하다.


재주껏 도망쳐야 한다 275

패닉과 붕괴로 인해 "재주껏 도망쳐야 한다(sauve qui peut)"는 좌우명에 짓눌릴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파산이나 재정파탄을 피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 오늘의 조그만 부정으로 내일의 파국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호황이 끝나고 손실이 명백해질 때, 거꾸로 성공하기만 하면 당장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더 큰 도박을 시도하는 경향이 생긴다.


'닉 리슨'의 경우 275

런던의 유서 깊은 상업은행인 베어링 브라더스의 싱가포르 지점 소속 5∼6명의 직원 가운데 닉 리슨은 평범한 트레이더였다. ······ 리슨이 속한 부서의 어느 담당자가 명백한 거래상의 오류를 저질러 리슨의 거래계정에 큰 손실이 발생했다. 리슨은 런던의 베어링 본사에 이 같은 오류를 보고하지 않았고, 닛케이 주가 풋옵션을 추가로 매도했다; 그의 계산은 풋옵션의 추가 매도로 버는 프리미엄 수입으로 거래 오류로 인한 손실을 메우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베 지진이 발행하면서 도쿄 주가가 폭락하자 그의 풋옵션 매도는 프리미엄 수입보다 훨씬 더 큰 손실을 야기했고, 거래계정의 손실은 더욱 불어났다. 이 때 그는 거래규모를 두 배로 늘렸다. ······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두 번째 내기도 실패했다. 그의 신규 포지션이 손실을 보탤 때마다 이번에는 그가 성공할 차례라는 희망으로 매번 판돈을 두 배로 늘리는 "두 배 걸기:를 했다. 이런 사태가 이어져 마침내 리슨의 거래계정에 누적된 손실은 베어링의 자본금 총액에 맞먹을 정도로 불어났다.


샤브샤브 레스토랑 280

오사카의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한 여성은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그녀와 "친구처럼" 지내온 스미토모 은행 지점에서 빌렸다. 은행의 부동산 가치 감정인들 중에는, 별 위험 없이 은행을 터는 방법이 담보로 설정할 부동산의 평가가치를 부풀려서 대출을 받는 것이라는 점에 착안한 야쿠자들에게 뇌물-혹은 협박-을 받았던 이들도 있었다. 서너 개 대형 지방은행의 고위급 임원들은 은행 경영진이 소유한 토지를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매수하도록 그들에게 자금을 대출해 주었다. 젊잖은 재무부의 고위공직자 서너 명은 바닥에 거울이 설치된 "속옷까지 벗은 샤브샤브 레스토랑"에서 향응을 즐겼다.(해당 공직자들이 향응 제공자들에게 임박한 금융규제 변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흘려주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나의 생각)
최근에 상영되었던 영화 『부당거래』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돈 만드는 기계 284

밀켄은 돈 만드는 기계를 가지고 있었다. 드렉셀은 고객 기업이 신규 정크본드를 발행할 때 받는 인수수수료, 이 채권을 뮤추얼펀드에 매도할 때 받는 거래수수료, 뮤추얼펀드의 지분을 일반 대중에게 판매할 때 받는 판매수수료, 그리고 뮤추얼펀드 운용으로 받는 운용수수료를 벌었다.

메릴린치-소위 "천지 사방에 손길이 뻗어있는 메릴"-가 저축기관들에게 예금계좌를 소개하는 일을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와 사우스웨스트의 저축기관들이 아주 높은 금리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수천 명에 달하는 메릴의 중개인 부대가 미국 전역의 자금을 밀켄의 친구들이 통제하는 이 저축기관들로 이동시켰다. 이 저축기관들이 판매하는 예금계좌는 미 재무부가 보장하는 것이었고, 이 점이 이들 계좌를 매수하는 예금자들이 확인하고자 하는 전부였다.

(나의 생각)
2007년의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인사이트 펀드 판매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샘 아저씨'의 돈 285

밀켄이 자금을 조달해 준 기업사냥꾼 가운데 실제 현업 경험이 많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샘 아저씨'의 돈-미국 정부가 보장하는 예금계좌의 판매로 확보한 자금-을 50개 이상의 기업을 인수하는 데 사용했다. 그들은 이들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종종 "비싼 가격"을 지불했지만, 그 때 그들이 지불한 돈은 자기 돈이 아니라 샘 아저씨의 돈이었다.

엔론의 두 날개가 급속히 확장하는 데는 시설과 장비, 유통 거점, 소프트웨어를 망라하는 막대한 금액의 투자가 필요했다. 엔론은 거액의 채권을 판매해 투자은행들인 메릴린치와 살로몬 스미스 바니에게 막대한 수입을 안겨 주었다. 그 절정기에 이 회사가 발행한 주식과 채권의 시가총액은 2500억 달러에 달했다; 엔론 주가가 사상 최고치인 주당 100달러를 기록했을 때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2000억 달러가 넘었으며, 일반투자자들이 보유한 채권의 시장가치는 400억 달러 규모였다. 제네럴 일렉트릭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나의 생각)
2011년 1월 현재 애플의 시총은 3000억불, 엑손모빌이 약 3500억불로 뉴욕증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엔론의 위상이 짐작이 간다.


'갈 데까지 가는' 전략 290

엔론은 SFV의 차입으로 확보한 현금을 자사 주식의 주가를 떠받치는 데 사용했다. 이것은 닉 리슨이 썼던 "갈 데까지 가는" 전략의 일종이다; 만약 엔론의 주가가 하락한다면, 이 합자회사의 가치도 하락할 것이고, 그들은 "물에 잠기게" 된다.


아더 앤더슨의 종말 290

엔론의 붕괴는 과거 미국의 대형 회계법인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곳이었던-지난 수 년간 아리조나 침례병원과 웨이스트 매니지먼트를 비롯해 아더 앤더슨의 회계감사 고객업체들 중 결딴난 회사의 채권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시달리기는 했지만-아더 앤더슨의 종말을 가져왔다. 엔론의 자금조달 과정에 대한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가 시작된 뒤 앤더슨은 서류 폐기 혐의로 피소됐다.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형국 292

에버스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채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월드컴의 주가를 높게 유지하려면 주가가 낮은 다른 회사들을 계속 인수해야 했다. 여러 차레에 걸친 인수의 결과로 월드컴의 덩치가 커짐에 따라 순이익이 증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갈수록 더 규모가 큰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기업인수를 통해 주당 순이익을 증가시키는 회사들의 공통된 문제-는 월드컴의 덩치가 커져 가면서, 매력적인 인수 대상으로 남아 있는 통신업체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295

2000억 달러 규모의 기업집단인 타이코의 대표 데니스 코즐로프스키와 재무담당 최고 임원 마크 슈와츠는 연방 정부에 의해 수억 달러의 회사 자금을 두 가지 방식으로 사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취 방식의 하나는 타이코 이사회의 승인 없이 타이코 주식을 살 수 있는 스톡옵션을 자신들에게 부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개인적인 생활비를 쓰기 위해 타이코의 공금을 유용한 것이었다. 이들은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섬에서 코즐로프스키의 두 번째 부인을 위한 6000달러짜리 샤워커튼과 200만 달러어치의 생일잔치를 벌이는 일까지 저질렀다. 타이코가 이 잔치 비용의 50%를 부담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파티에서 연출된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는 조각상의 중요한 신체 부위로부터 보드카를 받아 마실 수 있도록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얼음조각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나의 생각)
최근 검찰에 의해서 기소당한 후 결국 유죄판결을 받은 태광그룹의 경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뮤추얼펀드 스캔들 298

2003년에 대형 뮤추얼펀드 집단의 다수-아마도 20대 뮤추얼펀드 운용사 중 절반 정도-가 몇몇 헤지펀드에게 이례적인 거래 특혜를 제공해 뮤추얼펀드 지분 소유자(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해당 헤지펀드가 거액의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헤지펀드와의 거래 가운데 일부는 합법적이었으나 대부분은 불법이었다; 또 뮤추얼펀드 지분 소유자 모두를 동등하게 처우한다는 뮤추얼펀드와 그 주주 간의 암묵적 계약은 헤지펀드와의 모든 거래에서 무시됐다. 미국의 모든 뮤추얼펀드는 자신의 거래 규칙을 명시한 계약서-허용되는 행동과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기술한 문서-를 SEC에 제출해야 한다. ······ 펀드 판매계약서의 또 다른 표준적인 문구는 뮤추얼펀드가 어느 기업의 주식을 매수할 경우, 펀드 운용사의 임원들은 해당 주식을 매수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펀드 임원들이 해당 기업의 주식을 매수할 경우에도 임원들은 '선취매(front-run)'-뮤추얼펀드가 동일한 기업의 주식을 매수하기 이전에 임원들이 그들의 사적인 이해를 위해 그 기업의 주식을 미리 매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펀드들의 공통적인 관행은 각 펀드가 소유하고 있는 유가증권에 대한 정보를 매 분기 말에만 공개하며, 분기 도중에는 개개 유가증권의 매매에 관한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CD 사기 301

이탈리아의 파르마에 본사를 둔 유제품 및 식품 제조업체인 파르말랏(Parmlat)-파르마(Parma) 시와 우유란 뜻의 라떼(latte)의 합성어-은 자신의 자산을 40억 달러 규모로 과대 포장하기 위해 위조된 예금증서(CD)를 이용했다; 위조된 CD는 복사기를 사용해 한 문서가 다른 문서에 겹쳐지도록 하는 수법으로 만들어졌다. 이 사기-일반투자자와 투자은행에 대한 속임수-는 10년이 넘도록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나의 생각)
CD 사기는 우리나라에서도 '터보테크'라는 회사가 저지른 수법이었다. 허위계상을 지속했던 기간이 꽤나 이어졌고 회계학을 전공한 내 친구도 이 회사에 투자한 이후 분식회계가 드러나는 바람에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이 회사의 오너였던 장흥순 회장은 벤쳐기업협회의 회장을 지낸 인물로도 유명하였다.


깔끔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주식 301

보일러샵(boiler shop)은 사기 형태의 하나다. 퍼스트 저지 시큐리티즈의 로버트 브레넌은 고단수의 보일러샵 운영자였다. 보일러샵의 중개인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들에게 난데없이 어떤 주식-이를테면 샤잠 로켓트 주식이 있다고 하자-에 관한 혹하는 얘기를 꺼내는 전문가들이다. 샤잠 주식은 보통 주당 2∼5달러에 거래되는 저가 주식이고, 애당초 이 주식 물량의 다수는 보일러샵을 소유한 내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다. 이들 내부자는 자기들끼리 주식을 사고 팔아서, 예컨대 주가를 2달러에서 3달러로 올리며 주가 상승을 관리한다. 주가를 올려 놓고 나서 안면부지의 개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6주 동안 샤잠 주식의 50%에 달하는 주가 상승에 대해 얘기한다; 이들은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급등 주식을 매수하려는 욕구가 훨씬 크다는 것을 배웠고, 또한 깔끔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저가 주식을 선호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의 생각)
우리나라의 경우 증권방송과 증권 카페 등에서 너무나 많이 써먹는 수법이다. 감독당국의 보다 엄격하고 철저한 감시와 감독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다.


노상강도보다 1만 배 더 나쁜 죄 301

사기는 신뢰를 악용한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절도와 다르다. 다니엘 디포(Daniel Defoe)는 주식사기꾼은 아는 사람들-종종 그 친구나 친척-을 등치면서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식매매 사기를 노상강도보다 1만 배 더 나쁘다고 생각했다.

사기는 정부 공직자의 뇌물수수나 한 업체 직원이 다른 업체 직원에게서 받는 뇌물수수와 구분돼야 한다. 이들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거래는 특정 집단간의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신뢰를 악용하고, 또 침해하는 것이다.


후진성과 구별되는 한 가지 특징 303

도덕적인 행동과 비도덕적인 행동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옛날보다 지금이 덜 희미하다. 현대성이 후진성과 구별되는 한 가지 특징은 도덕성이다. 사회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규율이 가문 안에서만 존중과 신뢰의 대상이었다. 이런 여건하에서 이방인이라는 존재는 절도면허증을 가진 사람과 진배 없기 때문에 제 식구를 감싸는 인사가 효율적이었다.

(나의 생각)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트러스트』라는 책에서도 '신뢰의 가치'에 대해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한 적이 있다.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 305

부정행위는 경제가 호황기일 때 증가한다. 재산은 호황기에 만들어지며, 개인들은 부의 증식 과정에 끼어들기 위한 탐욕에 빠지고, 사기범들이 이 탐욕을 이용하려고 등장한다. 호황기에는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의 숫자가 늘어나고, 자신들을 사기범의 희생물로 제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 "일 분마다 한 명씩 속아 넘어간다."

(나의 생각)
통렬한 풍자이다.




사기가 호황기에 증가하는 이유 306

사기가 호황기에 증가하는 것은 마치 부의 증가가 탐욕의 증가를 촉발하는 것인 양, 탐욕이 부보다 더 급속히 커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코즐로프스키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지만, 6000달러짜리 샤워커튼과 그의 아파트에 비치한 여러 장식물들의 매입 자금을 그의 회사 타이코에서-회사 임원진이 모르는 사이에-빼냈다. 사기는 자산가격의 하락을 유발하는 신용 시스템의 긴장으로 인한 금융 불안 국면에서도 증가한다; 이 단게에서는 재정 파탄을 피하기 위해 부정행위가 감행된다.


폰지의 사기수법 309

폰지는 예금이자로 45일 동안 40%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할인된 시장가치로 매수한 해외 통화로 국제우편연합의 쿠폰을 사고 공식환율로 이 쿠폰을 미국 우표로 교환한 다음, 이 우표를 액면가치로 다시 파는 방법으로 파격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폰지가 이런 유형의 차익거래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이야기는 장식용에 불과했다; 1922년 8월 체포됐을 때 그는 이미 790만 달러를 챙긴 상태였는데, 그의 사무실 안에 우표와 우편쿠폰은 61달러어치밖에 없었다.


부도덕의 극치 312

스프라그의 인용과 번역이 정확하다면, 호레이스(Horace)는 그들의 자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라; 할 수 있다면 정직하게 돈을 벌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라."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조나단 스위프트의 언급도 이와 마찬가지로 냉소적이다: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리고 나서 혹시 미덕이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 하라.


발자크는 마지막 한 방이라고 부를 만한 말을 남겼다: "가장 미덕 있다는 상인들이 당신 앞에서 가장 노골적인 자세로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말을 들려줄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나쁜 일에서 잇속을 챙겨 나온다."



돈 맛에 물든 언론 314

투기에는 일반적으로 언론도 일조한다. 언론계 구성원 가운데 일부는 장사치고, 일부는 비판적이며, 일부는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다니엘 디포는 남해회사 주식이 120파운드에 거래되던 1719년 11월에는 주식중개인들을 통렬히 비난했는데, 1720년 8월 주가가 1000파운드를 기록하며 정점에 도달했을 때는 입장을 바꿔 그들을 두둔했다.


투자자 칼럼 316

투자자 칼럼을 통해 주가를 띄우기 전에, 친구에게 귀띔해 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어진 수법이지만, 오늘날에는 내부자 정보에 기초한 주식매매를 포함해 이런 불법적인 행위는 보다 쉽게 발각된다. 어떤 종목의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뉴스가 나오기 전에 행해진 해당 주식과 그 주식의 콜옵션과 풋옵션에 대한 수상한 거래들은 이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분석된다. 이 기법 덕분에 친구에게 사전 정보를 제공한 『월스트리트저널』의 투자평론가 포스터 위넌스와 자신이 이사로 일하고 있는 회사에게 닥칠 일을 친구에게 일러준 전직 국방부 차관보 테이어(ThYER)가 체포됐다.(테이어의 친구는 이 정보에 따라 주식에 투기했고, 위넌스는 1986년 세인트마틴 출판사가 발간한 『거래의 비밀: 월스트리트저널에서의 유혹과 스캔들』을 써서 자신의 경험을 또 다른 기회로 활용했다.)


17세 소년 317

아주 최근에는 인터넷이 주가 조작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됐다. 17세 소년 조나단 레벡은 자신이 보유한 거래량이 극히 적은 종목들에 대한 '뉴스'를 인터넷 대화방에 올렸다. 해당종목의 주가는 상승했고 조나단은 자신의 보유 물량을 매도했다. sec는 조나단에게 벌금 50만 달러를 부과했다.

MSNBC는 비즈니스 뉴스 전문 TV 방송이다. 이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자들 다수가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들을 추천하고 있다.

메릴린치의 성적표를 보자. 1980년대에 이 회사는 엉터리 저축기관들에게 예금을 알선해 주는 일에 깊숙이 관여했다. 헨리 블로짓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는 정보를 오히려 부추겼고, 메릴린치는 엔론의 나이지리아 소재 발전 선박에 시장가격 이상을 지불해 엔론의 재무제표 조작을 도왔다.

(나의 생각)
메릴린치는 결국 2009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수많은 전조들이 이 책의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밀켄의 경우 327

마이클 밀켄이 석방됐을 때 밀켄의 가족은 은행에 20억 달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얼마의 재산이 밀켄의 금융혁신을 통해 합법적으로 번 것이며, 또 얼마가 불법적인 행위로 번 것인지 계산해 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가족 재산의 절반이 불법적 거래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밀켄은 이런 지적에 어떻게 답할지 생각해 보라: "당신은 1000일 동안 교도소에 있었고 10억 달러를 챙겨서 교도소를 나왔다. 따라서 당신은 교도소에 있으면서 매일 100만 달러를 지급받은 셈이다."

(나의 생각)
최근에 개봉된『월스트리트2-Money never sleeps』라는 영화에서 주가조작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마이클 더글러스가 출옥후 결국 '숨겨둔 거액의 재산'을 바탕으로 보란듯이 재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존속살해급의 유죄 328

경제학자들은 화이트칼라의 금융사기 범죄에 대해 처벌의 적정성 여부를 논할 만한 입장에 있지 않다. 남해회사 거품 때 하원의원이었던 모울스워스(Molesworth)는 의회가 남해회사의 경영진을 존속살해급의 유죄로 선언해야 하며, 이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고대 로마에서 집행했던 가혹한 처형방식-이들 각각을 원숭이와 뱀 한 마리씩을 집어넣은 마대 주머니에 함께 넣어 물에 던져버리는-에 따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드라이저의 소설 『거인The Titan』에 반향을 남겼다: "이제 먼저 교살한 뒤 동반자 없이 자루에 넣고 꿰맨 다음 보스포러스 해협에 던지는, 여자친구를 기만한 자들에 대한 처형을 집행한다." 25년 후에 쓰여진 『모든 나라의 상회』에서는 한 등장인물이 이슬람의 술탄이 부도덕한 부인에 대한 처벌로 그녀를 묶어 살쾡이 두 마리와 함께 자루에 처넣고 보스포러스 해협에 빠뜨렸던 것을 상기시킨다. 이런 처형방식은 지나칠 정도로 무자비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가뿐하게 빠져나오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 대부분은 부정하게 획득한 재산의 대부분을 그대로 가져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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