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①
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②
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③
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④
백두산에 한 번 올라가 보세요~


DSLR에 처음 입문하면서 만났던 서른디(Canon EOS 30D)와는 이제 오늘밤이 마지막이다. 얼마 전에 갑자기 오두막(Canon 5D Mark II)으로 용감하게(?) 갈아타기로 작정하면서 30D는 처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른디는 2007년 7월에 구입했는데, 최근 몇 년간 가까이 지내왔던 지인분께 그 당시 구입원가의 약 1/3 가격에 뚝~~ 잘라서 팔게 되었다. 30D와는 그동안 얼마만큼 정도 들었고, 웬만하면 'two body'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오두막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팔기로 한 지인분께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분은 오래 전에 필카를 제법 오랫동안 다뤘던 경험이 있으신 분인데, 나이를 들면서 카메라가 DSLR 중심으로 변하는 바람에 이 쪽으로는 전혀 관심을 끊고 지내 오다가, 내가 이번에 오두막으로 갈아탄다는 얘기를 듣고선 선뜻 '나한테 팔라'고 말씀하시길래 서로 주저없이 단돈 ***만원에 물건을 매매하기로 의견일치를 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최근 몇 년 동안 그분과 함께 국내의 여러 곳을 놀러 다니면서 '서른디'와 제법 함께 했던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참 잘된 일이다 싶다.

2007년 여름에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아들 녀석과 함께 백두산 종주 산행을 갔다온 적이 있는데,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 급작스럽게 '카메라를 아주 잘 다루는 고교 동창생'의 권유로 이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친구 덕분에 DSLR이 뭔지도 알게 되었고, 그 친구와 함께 '모델 출사'에도 참석해 보고, 또 무엇보다도 여행을 다닐 때마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 덕분에 나의 삶이 옛날보다 조금이나마 더 풍성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싶다. 


* 이미지 위에 '마우스클릭'하면 더 큰 이지미를 볼 수 있습니다


(손때가 묻은 Canon EOS 30D의 모습)



카메라와 관련해서 내가 늘 안타깝게 느끼는 점 한 가지부터 미리 얘기해야 겠다.

DSLR에 입문한지 어언 4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여전히 '적정 노출'과 '화이트 밸런스'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스트로보는 갖췄어도 선막동조와 후막동조를 구분해서 사용할 줄도 모른다.

더욱 한심스러운 일은 귀찮고 무겁다는 핑계 등으로 '삼각대'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똑딱이 수준의 막샷을 남발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어디든 길을 나설때면 용감무쌍하게도 무거운 카메라 가방은 꼬박 꼬박 챙겨서 집을 나선다는 점일 것이다. 어쨌든 사진을 조금이라도 더 찍어보고 배워볼려는 의지는 충만한데, 도대체 실력이 늘지 않는 게 언제나 문제이다.


(기본인 50mm 단렌즈조차 생략한 채 거의 언제나 표준줌렌즈를 장착한 Canon EOS 30D)



(그동안 열심히 메고 다닌 덕분에 스트랩이 제법 낡았다)



(2009년 봄에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기에 앞서 용감하게도 '아빠백통'까지 마련했다.)



(부드러운 융으로 닦아놓고 봤더니 아직까지도 새 물건 같다)



(렌즈를 제거하고 바디캡을 닫은 모습)



(2.5" LCD 창을 가진 후면부)



어쨌든 30D와 함께 한 약 4년 동안 어설픈 솜씨로 사진을 열심히 찍긴 했는데, 여태껏 제대로 찍은 '사진다운 사진' 한 장 없어서 그 흔한 디카사진 인쇄조차 맡겨본 기억이 없는 점은 무척 아쉽다.

30D를 들고서 여기 저기 무척이나 열심히 쏘다녔던 것 같은데, 결과물은 거의 언제나 다음 카페나 네이버 카페에 올리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도 '어설픈 사진'에 대해서도 후하게 봐주는 친구들 덕분에 각종 동문회, 동문 체육대회, 사은회, 추억의 수학여행, 철마다 다녔던 산행(북한산,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 청옥산, 덕유산 등등), 각종 축제와 행사 등등에 카메라를 지참하고 별다른 부담감없이 '스냅사진들'을 중심으로 열심히 막샷을 찍어온 것 같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출장'도 심심찮게 다녀온 것 같은데, 대충 꼽아보면, 백두산(2007년 8월), 이집트(2008년 2월), 필리핀(2007년 11월, 2008년 5월, 2010년 1월), 중국, 미국·캐나다(2009년 5월) 등지를 이 녀석과 함께 다녀온 것 같다.

얼마 전에 급작스럽게 오두막(Canon 5D Mark II)으로 바꾼 건 '고교동창들과의 해외전지훈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언젠가는 오두막으로 갈아탈 작정을 내심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르면 올해나 내년쯤에 '중남미 여행'을 꼭 가볼 예정인데, 그 여행길에 실제 오르게 되면 틀림없이 오두막으로 바꾸기로 미리부터 내심 단단히 작정을 하고 있던 터였는데, 이번에 '고교동창들과의 짧은 해외전지훈련'에 함께 가기로 한 동창생 녀석의 은근한 꼬드김에 넘어가는 바람에 예상보다 너무 성급하게 결국 오두막으로 갈아타고 말았다.

2007년 여름에 나에게 DSLR로 입문하게 해준 그 동창생 녀석은 카메라 경력만 20년이 넘는 데다가, 몇 년 전에 있었던 'Canon 캄차카 출사대'에도 당당히 차출될 만큼 검증된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 친구가 이번 '전지훈련'에 함께 가기로 하면서 나보고 '한 수 가르쳐 줄테니 카메라 장비를 오두막으로 업그레이드'해 오라는 권유 때문에 결국 기기 변경을 앞당기게 되었다.


(Canon 5D Mark II에 망원줌렌즈인 아빠백통을 장착한 모습)



(바디네임인 EOS 5D Mark II가 새겨진 스트랩)



(PC 모니터 앞에 놓인 오두막)



(풀프레임 바디에 어울리는 24-70mm f/2.8 L 렌즈를 장착한 오두막)



(3" LCD 모니터를 갖춘 후면부)



(표준줌렌즈인 24-70mm f/2.8 L 렌즈를 장착한 모습)



(아빠백통으로 불리느 망원줌 70-200mm f/2.8 L IS USM 렌즈)



(바디캡을 닫은 오두막의 전면부)



(표준줌렌즈 : 풀프레임 바디용 24-70mm 렌즈 vs 크롭바디용 EFS 17-55mm 렌즈)



(후드를 장착한 아빠백통)



(후드를 장착한 24-70mm f/2.8 L 렌즈)



(후드를 뺀 24-70mm f/2.8 L 렌즈)



(중고거래가 활발한 카메라의 특성상 훗날을 위해 보관중인 '박스')


지난주 목요일(2/10)은 전국적으로 졸업식이 열린 날이었던 모양이다. 오두막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나서 처음으로 딸아이의 졸업식에 갔으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저렇게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빼곡히 들어차 앉은 졸업식장에서 딸을 찾아냈지만 후래쉬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다고 딸아이의 '핸드폰 문자'를 통해 '구박'만 실컷 듣고 왔다.

(모처럼 화기애애하게 동생의 졸업앨범을 함께 살펴보는 남매, Shooting Date/Time 2011-02-08 오후 9:15:26)



(2/10, 목요일 오후 2시에 있었던 딸아이의 졸업식 모습)



(딸아이의 졸업식이 있던 날 저녁 비행기로 간신히 합류한 태국 전지훈련코스, SIR JAMES COUNTRY CLUB)



(귀국길에 찍은 방콕 수바르나부미 국제공항)



(방콕 수바르나부미 국제공항, Shooting Date/Time 2011-02-14 오전 1:42:56)



(인천국제공항 도착을 앞두고 떠오르는 태양, Shooting Date/Time 2011-02-14 오전 7:09:57)


(상공을 가득 메운 구름바다, Shooting Date/Time 2011-02-14 오전 7:24:2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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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2-1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십니다.
근데 오렌님 학부모셨군요.
저렇게 큰 자제분이 계시다니...!
카메라 멋집니다.^^

oren 2011-02-16 22:4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오랜만입니다.
새해 들어선 알라딘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더니, 댓글 달기도 어색할 지경이네요. ㅎㅎ
stella09님께서도 그동안 잘 지내셨겠지요?
울 아들은 덩치만 컸지(금년 3월에 고2 올라가는데 키가 180cm 쯤...),
생각하는 거나 말하는 거나 아직까지도 여러모로 '애'랍니다.ㅎㅎ
 
Piget me stultitia mea(나의 우둔함은 나를 짜증나게 해)
평생독서계획
클리프턴 패디먼.존 S. 메이저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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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된다.
뛰어남이란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습관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인생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건 다 마다하고 최고만을 받아들이려고 하면 그걸 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서머셋 모옴

당신이 하는 것, 꿈꾸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으니, 시작하라.
대담함에는 천재성과 힘과 마력이 들어있다.
 - 괴테


 * * *

고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현자들의 너무나 많은 명언들이 널려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클리프턴 패디먼은 익히 알려진 명언들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재치있는 답을 내놓는다. "고전을 다시 읽게 되면 당신은 그 책 속에서 전보다 더 많은 내용을 발견하지는 않는다. 단지 전보다 더 많이 당신 자신을 발견한다."

저자는 다방면에 걸쳐 재주가 많았던 사람이다. 대중적으로는 라디오 퀴즈 쇼의 사회자로 가장 널리 알려졌다고 하는데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낯선 얘기이다. 그의 경력 가운데 내 눈에 가장 띄는 대목은 50년 동안 '이 달의 책' 클럽에서 수석 심사위원을 지냈다는 점이다. 그런 경력의 그가 '평생 독서 계획'도 없이 마구잡이로 책을 읽었을 리는 만무하다 싶고, 그의 평생 독서 경험을 녹여낸 이런 훌륭한 역작을 우리에게 남겨줘서 그저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이 책은 초판이 나온지도 이미 60년이 흘렀다. 그래서 이 책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청소년 시기를 보낸 미국 학생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정판을 거듭해 오다가, 저자가 생애 말년에 췌장암에 걸려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 심혈을 기울여 손을 본 결정판이 1999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나서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어쨌든 그만큼 오랜 세월의 테스트를 훌륭히 견뎌낸 덕분에 이 책은 '고전을 설명하는 고전'이라는 부제가 따라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고전을 설명하는 책들은 대개 천편일률적이어서 내용도 따분할 뿐만 아니라 읽기에도 지루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이 책이 지닌 독특한 매력의 가장 큰 이유는 저자의 재치있는 말솜씨에 있다. 그 나머지들은 그의 풍부하고도 오랫동안 축적된 독서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책이 '고전을 설명하는' 책이니 만큼, 이 책 속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걸작들을 남긴 위대한 저자들을 거의 대부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패디먼은 이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을 필요한 대목이나 장소마다 자기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기가 막히게' 불러내는 재주가 있다. 그의 글들을 읽노라면 그냥 막연히 위대해 보이기만 하는 걸작들의 저자들도 금방 우리의 주변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쉽게 말해서 고전 걸작들의 저자들도 패디먼의 펜 끝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 많은 애로를 겪는 '생활인'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너무 가까이 다가온다. 물론 가끔씩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찌 되었건 수십 년 혹은 수천 년의 세월의 간극을 사이에 두고, 전세계의 곳곳에서 저마다 너무나 다른 '삶'을 살다가 떠나간 위대한 작가들을 걸핏하면 여기저기서 불러내어, 키가 컸다느니 작았다느니, 결혼생활이 행복했다느니 불행했다느니, 여자관계가 복잡했다느니 혹은 평생 숫총각으로 살았다느니, 돈 걱정이 없었다느니 혹은 늘 가난했다느니 하면서 이들 작가들의 인생을 여러모로 대비시켜 주는 저자의 솜씨는 어디서도 쉽게 접할 수 없으리만큼 독특하고도 읽는 재미가 넘쳐나게 만든다.

패디먼의 글은 저자들의 '실제적 삶'에 대한 흥미로운 대비가 특히 매력적이지만, 그들이 남긴 걸작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졸작들도 함께 다루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작가들에 대한 대비와 더불어 작품들에 대한 시공간을 뛰어넘는 대비들도 무척 흥미롭다. 어떤 작가의 걸작들이 어떤 세월을 거쳐 걸작으로 올라서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대목들을 읽어보면 그 작가와 작품이 마치 주가가 오르내리듯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갖게도 된다.

인류가 남긴 위대한 걸작들에 대한 온갖 솔직한 비평들을 종횡무진으로 쏟아내고 있는 저자의 얘기에 귀기울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앞선 시대의 걸작들에 대한 열렬한 애독자 신분이었던 또다른 걸작들의 저자들에 관한 얘기도 수없이 만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이들 작품들을 '어린이용'으로 만났건, 교과서 속에서 만났건, 혹은 인생 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된 이후에 만났건 간에, 가장 중요한 독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자신들'을 이 책 속에서 지속적으로 꾸준히 마주치게 된다는 점에서 '고전다운' 매력을 느껴볼 수도 있다.

'고전'에 대한 이야기의 범위를 단지 책에만 국한시키기엔 다소 아쉽다. 인류가 남긴 무수한 걸작들의 목록에는 책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조각, 건축, 공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그런 위대한 작품들을 우리가 어떻게든 접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작품들의 위대함을 온전히 제대로 알고 느끼기에는 참으로 힘든 여러 현실적 난관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명음악과 명연주에 대해서는 멋진 해설서가 있게 마련이고, 우리는 아무리 이해하기 힘들고 듣기 어려운 클래식의 명곡과 명연주라도 그런 해설서들을 거치고 나면 그 작품들을 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해설서들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본들 명연주 한 곡을 직접 귀로 듣는 데에는 결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이 주는 의미도 '명곡 해설서'와 닮은 것 같다. 이 책은 인류가 남긴 위대한 걸작들에 대해 그 어떤 책들보다 흥미롭고도 깊이있는 이야기를 명쾌하고도 재미있게 들려 주는 책이다.

책에 관한 설명을 담은 책은 그런 책을 쓴 저자의 관심분야와 독서편향에 특히 과도하게 의존하기 마련인데 패디먼은 너무나 풍성한 독서경험을 쌓은 인물이고 특히 문학 분야에서는 그런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 그래서 이 책은 '세계 문학의 거대한 지형을 굽어볼 수 있을 정도로' 드넓은 시각을 자랑한다. 이 책은 단순히 고전의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온갖 거목들과 울창한 수풀과 아름다운 새들의 노래소리만 들려주는 게 아니라, 수시로 높은 하늘로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시원한 바람을 뚫고 드높이 날아올라 거대한 산맥들을 내려다 보는 것 같은 장쾌한 광경을 보는 느낌도 안겨준다.

여러모로 훌륭한 책이지만, 주례사 서평으로 그치기엔 뭔가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수정판을 거듭하면서 서양 문학에 집중되었던 예전 판본들에 비해서 전 세계 문학으로 그 범위를 확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국인 중심적' 시각이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사정은 역자가 책 말미에 붙여놓은 '참고문헌'만 보더라도 명백한데, 133명의 작가들에 대한 판본들을 살펴보면 국역본이 없는 작가들이 무려 10%를 초과한다(절판된 책까지 포함하면 대략 15명의 작가에 대해 아직까지 국역본이 없다). 아쉬운 점을 하나만 더 더 보태자면, 문학에 치우쳐 역사와 철학, 좀 더 좁게는 과학과 경제 분야의 고전이 (인류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에 비해) 너무 빈약하게 담긴 게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든다.

서평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세운 제사(題詞) 문구에 걸맞는 다소 '까칠한' 얘기들을 늘어놓으며 이 서평글을 마치고 싶다. 양주동 선생님의 고칠현삼제(古七現三制)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런 책의 결론은 너무 명백하다. 결국 오래된 좋은 책들을 많이 읽으라는 얘기일 테니까 말이다.

한겨울 추위처럼 잠에서 확~ 깨게 만드는 소로우의 얘기부터 꺼내자면 "자장가를 듣듯이 심심풀이로 하는 독서는 우리의 지적 기능들을 잠재우는 독서이며 따라서 참다운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발돋움하고 서듯이 하는 독서, 우리가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 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만이 참다운 독서인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더욱 과격하다. "좋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책을 읽는다고 해도 문맹인 사람보다 나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했다. 책이 별로 없었을 것 같은 시대에 살았던 세네카 조차 "마음만을 즐겁게 하는 평범한 책들은 지천으로 깔려 있다. 따라서 의심할 바 없이 정신을 살찌우게 하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프란츠 카프카는 "우리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라고도 말했다. 그렇지만 아나톨 프랑스의 말대로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존숭하는 책, 그런 책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지침을 따를 필요가 있다.  "나쁜 책을 읽지 않는 것이야말로 좋은 책을 읽기 위한 조건이다. 인생은 짧고 시간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 대목에서는 러스킨도 맞장구를 친다. "인생은 짧다. 이 책을 읽으면 저 책은 읽을 수가 없다." 물론 괴테처럼 오래오래 살면서 파우스트처럼 "만 권의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내 몸은 서럽기만 하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책과 마주하고 있으면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더 현명한 사람들과 사귀기를 갈망했던 소로우는 "내가 플라톤의 이름을 듣고도 끝내 그의 저서를 읽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바로 우리 마을 사람인데도 내가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그가 바로 옆집 사람인데도 그의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 말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의 영원불멸한 지혜를 담은 책이며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는데도 나는 그 책을 거의 들추지 않는다." 소로우가 곧바로 이어서 한 말이다. "한 사람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 얼마나 많은 새로운 시대와 만날 수 있는지!"(Henry David Thoreau)

패디먼도 이 책에서 강조했지만 좋은 책을 일생 동안 천천히 여러번 읽을 필요가 있다. 루소는 "읽은 것을 아는 것이라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한번 읽은 것은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버린다. 지나친 독서는 주제넘은 무식꾼을 만들어 낼 뿐이다."고 지적했다. 괴테는 "나는 책 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지만, 아직까지도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고 너무 지나친 겸손을 떨었지만, "독서의 참다운 즐거움은 몇 차례고 거듭하여 읽는데 있다."고 말한 D.H. 로렌스의 말에 많은 공감이 느껴진다. 세네카는『인생이 왜 짧은가』라는 책에서 오래 살기 위해서는 '철학을 하라'고 했지만, 좋은 책만 읽어도 우리는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에머슨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말이다. "좋은 책을 읽을 때면 나는 3천년은 더 사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쇼펜하우어가 지적했듯이 "악서는 읽지 않으려 해도 자주 접하게 되지만, 양서는 반드시 읽고자 해도 기회가 뒤로 밀린다는 것이 많은 독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평생 독서 계획에 포함된 수많은 걸작들이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벅찬 독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왜 그것을 읽고 또 배워야 할까? 늦었더라도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 나이 들어 그 가르침의 선견지명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평생 독서 계획』의 원대한 취지이다."

소로우가 했던 말로 서평글을 끝맺고자 한다.

부드러운 이슬비가 한번 내리면 풀밭은 한층 더 푸르러진다. 우리 역시 보다 훌륭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전망도 훨씬 밝아지리라. 우리가 항상 현재에서 살면서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작은 이슬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커가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과거에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 애통해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존재가 될 것이다. 

 * * *

'이런 리스트가 늘 그러하듯이 이것 역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만큼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독자들이 자유롭게 이 리스트를 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늘릴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좀 더 줄여본 '평생 독서 계획'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제1부 : 호메로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제2부 : 성 아우구스티누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베드라
제3부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장 자크 루소
제4부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제5부 : 지크문트 프로이트 ∼ 치누아 아체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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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1부 : 호메로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from Value Investing 2010-12-26 21:52 
    제1부 (1∼21) 2. 호메로스, 기원전 800년경, 일리아스 『일리아스』는 인간의 가장 우둔한 행위인 전쟁을 아주 장엄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 서사시의 주인공은 아킬레스이다. 이야기의 주된 라인은 그의 분노, 그의 시무룩함, 그의 야만 행위를 추적하다가 마지막에 그의 고상한 성품을 확인한다. 그는 서구 문학에 등장한 최초의 영웅이다. 지금껏 호메로스의 수준에 육박한 또
  2. 제2부 : 성 아우구스티누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베드라
    from Value Investing 2010-12-26 21:53 
    제2부 (22∼38) 22. 성 아우구스티누스, 354∼430, 고백록 이 책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책은 자기 고백의 걸작이고 진실한 인간이 어떤 단계를 거쳐서 인간의 도시로부터 신의 도시로 나아가는지 보여 준다. 심리학자들에게, 그리고 윌리엄 제임스[95]가 말한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무한히 흥미로울 것이다. 2
  3. 제3부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장 자크 루소
    from Value Investing 2010-12-26 21:54 
    제3부(39∼61) 39.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1616, 전집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등정의 결과가 달라진다. 그는 인간이었지 반신半神이 아니었다. 그는 콜리지[65]가 말한 것처럼 "일천 가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매슈 아놀드가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4. 제4부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from Value Investing 2010-12-26 21:54 
    제4부(62∼97) 6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 파우스트 그는 평생 동안 성장, 변화, 분투 노력, 활동, 세상에 대한 이해와 정복을 강조했다. 괴테는 파우스트적 인간이었고 현대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삶의 느낌들을 전형화하는 인물이었다. 제1부는 파우스트 개인의 영혼을 다룬다. 그의 지적인 환멸과 야망, 모든 것을 부정하는 메피스토펠레
  5. 제5부 : 지크문트 프로이트 ∼ 치누아 아체베
    from Value Investing 2010-12-26 21:55 
    제5부(98∼133) 98. 지크문트 프로이트, 1856∼1939, 꿈의 해석, 성욕에 관한 3논문, 문명과 그 불만, 기타 작품들 정신분석은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주장한다. 하나는 정신분석이 과학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특한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심리 이론이고 노이로제 환자를 치료하는 특수한 기술이다. 이론과 기술은 몇 개의 근본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정신
  6. 평생 독서 계획 점검
    from Value Investing 2017-05-03 01:46 
    이 책들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길동무이다. 한번 당신의 내부에 자리 잡으면,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신의 내부에서, 외부에서,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꾸준히 작용한다. 우리가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서두르는 법이 없듯이, 이 책들도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된다. 이 리스트는 "단번에 슥 훑어보는" 그런 리스트가 아니다. 엄청나게 풍요로운 의미가 담겨 있기에 평생에 걸쳐서 캐내야 하는 광산 같은 것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 &l
  7. 텍스트와 주석의 관계
    from Value Investing 2017-07-08 15:35 
    "모든 말은 결핍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담지 못한다. 모든 말은 과잉이다. 내가 전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들도 전하게 된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 * 때로는 간단한 대사 한 구절이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가령 "이 한심한 화상아!(Alas, poor caitiff)"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의 4막 1장에서 나오는 말인데, 나는 이 대사로부터 위안을 얻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혼 후 고부 갈등으로
 
 
sslmo 2010-12-26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가지고 있는데, 녹록하지 않아서 몇번 들었다 봤다 하게 되더라구요.
이 리뷰를 보니, 또 다시 펼쳐보고 싶어 집니다.

소로우의 참다운 독서는 의미심장 하던걸요~^^

oren 2010-12-26 20:30   좋아요 0 | URL
1960년에 초판이 나온 이후 영미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 왔던 책이라는데,
2010년에야 겨우 국내에 번역·소개된 게 다소 의외더군요.
이 책은 생각날 때마다 틈나는대로 천천히 읽기에도 좋은 책이더군요.

소로우의 말대로 '심심풀이로' 하는 독서를 멀리 할려고 애써 보지만,
'깨어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에 쏟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모자라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루체오페르 2010-12-26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전 정말 좋아합니다!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는 완소입니다.ㅎㅎ

오렌님,2011년 새해 즐겁게 맞이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oren 2010-12-26 22:32   좋아요 0 | URL
저도 월드북 시리즈가 쬐끔 있는데 그 '리스트'와『평생독서계획』의 리스트를 비교해 보니, 제가 서평글을 쓰면서 느꼈던 부분이 확연하게 드러나네요.『평생독서계획』에는 빠져 있지만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에는 포함된 철학,역사,정치,경제 분야의 인물들이 꽤나 많습니다.

눈에 띄는 인물만 대충 열거해 봐도 세네카(4), 몽테스키외(13), 베이컨(14), 아담 스미스(21), 칸트(22), 에드워드 기번(23), 헤겔(26), 쇼펜하우어(27), 키에르케고르(33), 조지 프레이저(39), 러셀(43), 프롬(45), 토인비(46), 플루타르코스(53,54), 이솝(55), 보카치오(56), 아인슈타인(59), 토머스 불핀치(61), 오르테가(67), 야스퍼스(71), 베르그송(74), 카이사르(77), 스피노자(78), 막스 베버(81), 존 듀이(82), 위고(83), 클라우제비츠(88), O.헨리(90), 비트겐슈타인(92), 간디(99), 하이데거(100) 등이네요. 문학 분야에서도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가 좀 더 우리에겐 친숙한 리스트처럼 느껴집니다.

루체오페르님도 2011년 새해 더욱 건강하세요~

마녀고양이 2010-12-26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쇼펜하우어의 글 '악서는 읽지 않으려 해도 자주 접하게 되지만, 양서는 반드시 읽고자 해도 기회가 뒤로 밀린다는 것이 많은 독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이거 완전히 제 얘기네요. 매일 차일피일 미루는... ㅠㅠ

저는 이 책을 사놓고, 아직 못 다 읽은 책이 산적하여 쌓여있는 방을 둘러 보고,
이 책에서 다시 책 욕심만 잔뜩 나서 구매만 잔뜩 하는 악순환이 두려워...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정말 읽을 책이 너무 많은데, 이런 것으로 조급해하면 안 되겠죠?
좋은 연말 되셔요!

oren 2010-12-26 20:48   좋아요 0 | URL
이 책의 리스트는 기본적으로 '고전이기 때문에' 대부분 친숙한 작품들이어서 '서둘러 구입하고 싶은 욕구'가 다른 책들에 비해 다소 덜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이 책은 틈나는 대로 천천히 펼쳐 읽기에도 좋은 책이고, 이 리스트에 포함된 책들 가운데 진작에 미리 사두고 읽지 못한 '고전'부터 천천히 읽어 나가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물론 저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ㅎㅎ)

비로그인 2010-12-26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oren님. 이 책 반정도 읽다가 잠시 옆에 나두었는데, 이제 시간을 내어 끝을 내야겠습니다.
조금 간략히 전해주는 그의 얘기가 제게는 좀 신선하게 다가올 때도 있더라고요.
기대만큼의 책인데, 이와 비슷한 성격의 책들도 다시 펼쳐보면서 여기에서 다룬 책들을 다시 좀 살펴봐야겠습니다.

2010년의 마지막 일요일 잘 보내시고요!

oren 2010-12-26 22:39   좋아요 0 | URL
네.. 저자의 재치가 책 속에 철철 넘쳐나서 고전 속으로 마구 뛰어들고 싶게 만드는 책이죠. ㅎㅎ
그러고 보니 오늘이 벌써 올해의 마지막 일요일이네요. 바람결님도 올 한 해 잘 마무리하세요~

stella.K 2010-12-2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로우도 소로우지만 마크 트웨인의 말도 정말 정수를 쪼개는 말이네요.
이미 제 서재에도 이지성 작가의 강연회에 대해 쓰기도 했지만,
온갖 종류의 책들이 나오니 옥석을 가리는 게 쉽지 않고 공해인 책들도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구나 인문고전을 공부했다는 학자나 소설가 조차도 고전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하니
어쩌려고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전에 딴지일보의 김어준도 한마디 보태던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이 마이크 잡으면 힌소리 할 사람만 많아지지 않을까요?
저 책은 정말 일부러라도 사봐야겠네요.
그런 점에서 오래 전부터 고전 탐독을 해 오신 오렌님이 새삼 존경스러워지는군요.^^

oren 2010-12-27 21:26   좋아요 0 | URL
'고전읽기'의 중요성을 폄훼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겠지요. 그러나 좋은 책이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은 것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라고 봅니다.

책읽기에 관한 고전 중에 고전으로 꼽히는 책인『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에서 모티머 J. 애들러는 "서양 역사에서만 수백만 권의 책이 씌어졌는데, 그 중 99% 이상이 책 읽는 실력을 향상시키기에 미흡한 책들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읽는 법과 인생을 모두 배울 수 있는 책이 있다. 이런 책도 100권 중에 1권, 아니 1,000권 중에 1권, 아니 10,000권 중에 1권 꼴도 안될 것이다. 저자들이 신중을 기해 쓴 훌륭한 책들로, 인류가 영구히 관심을 가지고 있을 만한 주제에 관해 독자들에게 의미있는 깨달음을 전해주는 그런 책이다. 모두 합해야 겨우 몇천 권 정도 되는 이 책들은 독자들에게 상당한 노력을 요구하며, 한번쯤은 분석적으로 읽어볼 만한 책이다. 만일 책을 잘 읽는다면, 그 책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고전읽기의 중요성은 1970년대부터(초등학교때 고전읽기 경시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 익히 알았지만, 책과는 담쌓고 지낸 시기가 너무 오래여서 읽은 책이라고는 빈 수레 한 대조차 불필요할 정도랍니다. ㅎㅎ

* * *

"몇천 권 안되는 그런 책들 가운데, 아무리 훌륭하게 읽었다 해도 다시 읽을 때마다 우리에게 뭔가를 주는 책들이 있다. 아마 100권도 채 안될 것이다. 어떻게 이런 책을 알아낼 수 있을까?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지만, 최상의 능력을 발휘해서 그 책을 모두 분석하며 읽고 책장에 꽂아두었는데도 뭔가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드는 책이 있다. 놓치고 지나간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즉시 그 책을 꺼내 다시 읽어보면 된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잊혀지지 않고, 계속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 마침내 다시 꺼내 들고, 거기서 또 다른 놀라움을 맛보는 그런 책을 말한다."

"단순히 책을 더 잘 읽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면, 책은커녕 글 한 줄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자신의 능력 안에 있는 책을 읽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 능력 밖에 있는 책, 당신의 머리를 넘어서는 책을 붙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정신을 확장시킬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좋은 책은 열심히 읽으면 그 대가가 있다. 가장 좋은 책이 가장 좋은 것을 줄 것이다. 책으로부터 받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어렵고 좋은 책을 붙잡고 씨름한 대가로 책을 읽는 기술을 향상시켜준다. 둘째, 좋은 책은 이 세상과 독자 자신에 대해 가르쳐준다. 이것이 훨씬 중요한 대가일 것이다. 인생을 배우는 것, 즉, 더 지혜로워진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만 제공해주는 책을 읽고 나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더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인생의 영원하고 위대한 진리를 보다 깊이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 모티머 J. 애들러,『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中에서

2011-01-19 0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0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6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아나 2014-08-16 0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유원님이 추천하신 책이고 oren님께서도 추천하시기도 하시고, 고전에 관심이 가서
이 책을 한번 사게 되었습니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베스트셀러도 읽지만 조금씩 고전에 가까워져보려합니다.

저번에 방명록에도 남겼지만, 고전을 바라보면 정말 호미정도가 아니라, 숟가락 하나가지고 산을 파는 마음이
드네요.

그래도 꾸준히 조금씩 보려합니다.

oren 2014-08-16 23:28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저에게도 참 도움이 많이 되었던 책인 듯해요. 물론 앞으로도 쭈욱 도움이 될 듯하고요.

이 책에 담긴 고전들은 아마 평생을 두고 읽어도 다 읽기 어려울 듯한데, 자그마한 호미나 숟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그 거대한 광산을 조금씩 파고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일이 아닐까 싶어요. 꾸준히 조금씩 파고 들어가다가 깊숙히 숨어 있던 보석들을 마주치는 기쁨이야말로 독서의 진정한 기쁨이자 보람이겠지요. 건투를 빌겠습니다.

2021-10-3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제5부(98∼133)


98. 지크문트 프로이트, 1856∼1939, 꿈의 해석, 성욕에 관한 3논문, 문명과 그 불만, 기타 작품들

















정신분석은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주장한다. 하나는 정신분석이 과학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특한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심리 이론이고 노이로제 환자를 치료하는 특수한 기술이다. 이론과 기술은 몇 개의 근본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정신분석 이론들은 이제 진부한 것이 되었지만 1백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가령 인간의 정신에는 무의식이 있고, 억압의 메커니즘이 있으며, 유아 성욕은 나중의 인성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획기적 이론을 내놓았다.

사상의 증권거래소에 지난 20년 동안 그의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99. 조지 버나드 쇼, 1856∼1950, 희곡 선집과 서문들
















버나드 쇼는 재치, 열정, 끈기, 명석함을 발휘하면서 1세기 가까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사상을 설명하고 광고했다. 쇼는 94세까지 살았다. 자궁 속은 아니더라도 요람에서부터 사색을 한 사람이고 방대한 편지, 서른네 권의 전집 속에 많은 희곡, 서문, 소설, 경제논문, 팸플릿, 문학평론, 연극평론, 음악평론, 시사평론 등을 남겼다. 그가 언제나 흠모했던 초인들과 마찬가지로 쇼도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을 내다보며 살았다, 이런 사람을 어떤 공식으로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말했다. "경제 지식은 해부학 지식이 미켈란젤로에게 중요한 것처럼 내게는 소중한 것이었다."

105. 마르셀 프루스트, 1871∼192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것은 서양 언어로 씌어진 일급의소설들 중 가장 긴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만큼 보람도 크다. 만약 독자가 이 소설에 마음이 끌린다면(마음이 끌리지 않는 독자가 더 많을 것이다), 앞으로 5∼10년 사이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이 책을 읽어 그것을 독자의 내면세계에 흡수하면 좋을 것이다.

『율리시스』의 주인공은 더블린이라는 장소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시간이다. 예술에다 "시간의 형태"를 집어넣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답변하는 것이 프루스트의 목표였다.

나는 결론으로 당대의 미국 1급 평론가였던 에드먼드 윌슨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프루스트에게서 우리 시대의 탁월한 정신과 상상력을 만난다. 프루스트는 그 위력이나 영향력에 있어서, 니체[97], 톨스토이[88], 바그너, 입센[89] 같은 한 세기 전의 예술가들에게 버금가는 우리 시대의 예술가이다. 그는 상대성의 관점에서 소설의 세계를 재창조했다. 그는 문학 분야에서 현대 물리학의 새 이론(양자 이론)에 버금가는 새로운 글쓰기 이론을 제공했다."

 

110. 제임스 조이스, 1882∼1941, 율리시스

 

 

 

 

 

 

 

 

 

 

 

 

 

 

 

『율리시스』는 침투하기가 불가능한 소설처럼 보인다. 이 높은 산은 단숨에 걸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올라갈 수는 있다. 이 산의 정상에 오르면 아주 풍요로운 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1. 이 작품은 『신곡』[30] 이래 가장 완벽하게 조직된 작품이다.

4. 약간의 의견 불일치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인 견해로서, 이 작품은 "퇴폐적"이거나 "부도덕"하거나 "비관적"이지 않다. 『평생 독서 계획』에 포함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강력한 정신이 포착한 인생의 비전을 제시한다. 그 정신은 부분적이거나, 감상적이거나, 자기 변명적인 것은 일체 배격한다.

5. 그 모태가 되는 『오디세이아』[3]와는 다르게, 이 책은 읽으면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곡들이 오래 듣고 연구할수록 그 풍부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듯이, 오로지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비밀스러운 뜻을 드러낸다.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어라. 그런 다음 책을 내려놓았다가 1년 뒤에 다시 시작하라.

『율리시스』를 읽으려고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모험이다. 또 독자들에게 큰 소득을 안겨줄 것이다.

112. 프란츠 카프카, 1883∼1924, 심판, 성, 단편선집

 
















서양의 경우만 생각한다면, 카프카의 이름은 가장 영향력이 큰 20세기 작가 다섯 명에 들어갈 것이다. 나머지 네 명은 조이스[110], 프루스트[105], 예이츠[103], T.S. 엘리엇[116]이다. 카프카 사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시인 W.H. 오든[126]은 이렇게 썼다. "각 시대를 대표했던 단테[30], 셰익스피어[39], 괴테[62]와 같은 작가를 20세기에 고르라고 한다면 카프카가 1순위일 것이다."

그는 1924년에 요절했지만, 그의 상징적 비전은 20세기를 미리 내다본 듯하다. 독일에 들어선 총체적 테러의 국가, 현대 정부의 본질적 구조인 관료주의적 미로, 길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 방황하는 현대의 영혼, 기계에 의한 인간 영혼의 침탈,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세상에 만연한 보편적 죄책감, 비인간화 등이 카프카가 예견한 것이다. 보르헤스[121]는 "카프카가 음울한 신화와 폭력적인 사회 제도를 고발한다"고 말했다.

113. D.H. 로렌스, 1885∼1930, 아들과 연인, 사랑하는 여인들

 



















로렌스가 폐결핵으로 사망했을 때 겨우 45세였다는 사실은 좀 믿기가 어렵다. 그의 첫 장편이 출간된 1911년부터 사망한 1930년까지 매해 그의 책이 한 권씩은 출간되었다. 1930년 한 해에만 무려 여섯 권이 출간되었고 그의 유작도 열두 권이 넘는다. 이렇게 다작을 하면서도 로렌스는 널리 여행을 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영향을 주었으며,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의 비타협적인 사상 때문에 벌어진 불운한 논쟁들에 말려들었다. 이 홀쭉하고 연약한 턱수염 난 사나이-소설가, 시인, 극작가, 수필가, 비평가, 화가, 예언가-는 내부에 생명의 에너지가 활활 불타올랐다.

"소설의 도움으로 독자는 생중사(生中死:살아 있으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를 면할 수 있다"라고 로렌스는 말한다. 그는 독자를 변화시키고, 독자의 내부에 강렬한 느낌과 환희를 다시 일으켜 놓고 싶어 한다. 그는 인류가 이런 강력한 생의 감각을 현재 잃어버렸거나 잃는 중이라고 진단한다.

117. 올더스 헉슬리, 1894∼1963, 멋진 신세계

 
















20세기의 유토피아 문학은 르네상스 시대와는 다르게 부정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이다. 우리는 그 문학에서 격려의 함성이 아니라 경고의 외침을 듣게 된다. 헉슬리가 인용한 러시아 철학자 베르쟈예프가 말했듯이, 우리의 관심사는 어떻게 유토피아에 도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유토피아를 피할 것인가이다. 헉슬리와 오웰[123]과 기타 수십 명의 현대 작가들에 의하면 우리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애쓰다가 비인간화의 지옥으로 빠져 버렸다는 것이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6백 년 뒤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그 미래에는 동물들(여전히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동물들)과 그의 관리자들이 살고 있다. 관리를 받는 동물들은 그들의 예속 상태를 사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그들은 행복하거나 아니면 그런 상황에 적응되어 있다. 국가의 헌법은 공동체, 정체성, 안정성의 세 개 조항만 제시한다. 그 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 예술, 이론과학, 가족, 정서, 개인의 노력과 개인 간 차이 등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119. 어니스트 헤밍웨이, 1899∼1961, 단편소설 전집

 















그는 죽음, 열정, 패배, 인간 희망의 끈덕짐 등 궁극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헤밍웨이의 문학세계는 실제에 있어서 그리 폭넓지 않다. 그보다 명성이 떨어지는 소설가들 중에서도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더 깊이 더 넓게 탐구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헤밍웨이를 위대한 작가들과 비교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스탕달[67] 곁에 세워 놓으면 그는 청년처럼 보인다. 헨리 제임스[96] 옆에 서면 원시인처럼 보이고, 톨스토이[88] 옆에서는 미성년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적지 않다. 마크 트웨인[92]이 쌓아놓은 기초 위에다 그는 영어 문장을 문학적으로 개조했다. 그는 어떤 한 순간의 진실, 통찰, 체험을 단 한 단어의 낭비도 없이 간결하게 드러낸다. 그가 문학에 기여한 공로는 이런 테크닉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도덕적인 기여도 했다. 헤밍웨이는 언어의 정직성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었다.

123. 조지 오웰, 1903∼1950, 동물농장, 1984, 버마 시절


















오웰은 『동물농장』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걸리버 여행기』[52] 처럼, 이 소설은 아주 오래된 문학 형태인 동물 우화를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각색한 것이다. 캉디드[53]가 라이프니츠 낙관론에 대한 고전적 풍자라면, 『동물농장』은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고전적 풍자이다. 비록 소련이 해체되기는 했지만 이 소설의 풍자 정신은 그대로 살아 있다. 그 생생한 움직임, 간결성, 직접성, 현장성, 재치 등은 볼테르의 뛰어난 특징을 연상시킨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오웰은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다. "『동물농장』은 내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쓴 최초의 책이다. 나는 이 책에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하려 했다."

『1984』는 그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책들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을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비교해 보면 1932년부터 1949년까지 17년 동안에 세상이 얼마나 더 암담해졌는지 알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 오웰의 소설이 더 암울하다.

127. 알베르 카뮈, 1913∼1960, 페스트,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와 『반항인』등으로 카뮈의 정치철학을 어느 정도 파악하는 것도 유익하겠지만 그보다는 중편인 『이방인』과 본격 장편인 『페스트』를 통하여 카뮈의 멋진 정신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무의미한 살인 행위를 다룬 『이방인』은 우리 시대의 징후라 할 수 있는, 뿌리 없는 비순응적 감수성을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의 폭력 행위와 그에 대한 사회의 징벌권의 대비는, 주인공과 사회의 가치 사이에 심한 괴리가 있음을 보여 준다. 사회는 자신의 가치를 당연시하지만 주인공은 그것에 대하여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어떻게 악과 선이 구분될 수 있으며 또 악과 선을 알아볼 수 있는가?

그렇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는 페스트의 효과가, 무심한 우주에 떨어진 고립된 인간들이 삶의 허무함을 초월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카뮈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대니얼 디포[51]의 말을 인용했다. "어떤 형태의 구속을 다른 형태의 구속으로 재현하는 것은, 있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실제로 있는 것을 재현하는 것처럼 그럴듯한 일이다." 카뮈는 소설 속에서 우화나 알레고리를 시도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적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뭔가 다른 것을 느낀다.

129.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1918∼2008, 제1원, 암병동
















『암병동』 또한 감동적인 소설이다. 솔제니친 자신이 1950년대 중반에 암 치료를 받은 바 있었다. 그는 이 아름다운 작품을 통하여, 토마스 만이 『마의 산』[107]으로 독일 문학에 기여한 것처럼, 러시아 문학에 기여했다. 『암병동』은 그의 장편소설들이 다 그렇듯이 병동을 다룬 것이 아니라 감옥을 묘사한 것이다. 그는 러시아 전역을 감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종양이 생기면 죽는다. 강제수용소와 강제 유배가 암처럼 생겨나는 나라가 어떻게 부지할 수 있겠는가?" 외부적으로 병원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나, 『암병동』은 카뮈의 『페스트』[127]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찬양한 작품이다.

130. 토머스 쿤, 1922∼1996, 과학 혁명의 구조

 















쿤은 과학이 가치중립적이지도 않고 또 과학적 탐구가 벌어지는 문화적 맥락으로부터 면제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근에 들어와 일부 과격한 과학 비평가들은 쿤의 저서를 인용하면서 이런 주장을 펴기에 이르렀다. 과학은 객관적 의미의 진실을 발견할 수가 없으며, 모든 과학적 결과는 문화적 전제조건의 표현일 뿐이다. 쿤은 이렇게 말한 적이 없고, 또 자신의 이론을 이런 식으로 왜곡 인용하는 사람들을 거부했다. 그는 물리학자답게 과학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어떤 특정 패러다임 아래에서 어던 진리는 발견될 수가 없다. 그리하여 과학의 신빙성에 대한 질문은 우리 시대의 문화 전쟁에서 핵심적 주제가 되어 왔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진지한 저서이다. 하지만 진지한 주제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이 읽지 못할 내용은 없다. 문명이 세상을 인식해 온 방식과, 미래에 대한 인간의 지식을 경정짓는 각종 요소들에 대하여 깊은 통찰을 보여 주는 획기적인 저서이다.

13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1928∼ , 백 년 동안의 고독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부엔디아 가문의 한 역사가는 "사건들을 전통적인 연대기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1백 년간의 세월을 교묘하게 압축하여 그 동안에 벌어졌던 사건들이 한 순간에 공존하도록 배열했다." 소설 속에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이렇게 묘사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석하게 깨달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시간 또한 뒤로 넘어질 수가 있고 그리하여 우연들이 발생한다. 그 결과 시간은 깨어져서 그 영원한 파편 한 조각을 방 안에다 남긴다."

그 넘치는 힘, 유머(비록 음울하지만), 의도적인 과장, 언어의 왜곡, 인간 체험의 신화화 등에 있어서『백 년 동안의 고독』은 『평생 독서 계획』에 추천된 책들 중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35]에 가장 가깝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가장 위대한 남미 소설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한 가문의 고통, 광기, 망상, 근친상간적 사랑, 엄청난 열정을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남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비극적인 삶과 꿈을 환기시킨다.

133. 치누아 아체베, 1930∼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그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새로 지어진 교회의 마법이었다. 그 교회는 괴상한 새로운 교리를 내세워서 그의 부족 사람들을 유혹했다. 게다가 식민 종주국 영국의 지역 행정관의 권세는 대단했다. 그는 마을 밖에서 경찰들을 동원해 왔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증오했다. 이 새로운 상황에서 몰락하게 되는 오콩고의 비극은 이런 것이다. 그가 잘 알고 있는 전통 사회라면 그는 올바른 발언을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며 아주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와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등장하면서 사태는 일변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그가 권위를 내세울수록 그의 추락은 더욱 확실해졌다.

아체베는 이 소설을 통하여 소포클레스나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에 버금가는 인물을 창조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오이디푸스 혹은 리어왕이다. 운명에 의해서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부적절한 목표의 고집스러운 추구와 외부 환경에 대한 무지에 의해 몰락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아주 매력직인 소설이고 또 모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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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제4부(62∼97)


6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 파우스트


















그는 평생 동안 성장, 변화, 분투 노력, 활동, 세상에 대한 이해와 정복을 강조했다. 괴테는 파우스트적 인간이었고 현대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삶의 느낌들을 전형화하는 인물이었다.

제1부는 파우스트 개인의 영혼을 다룬다. 그의 지적인 환멸과 야망, 모든 것을 부정하는 메피스토펠레스에 의해 파우스트 앞에 놓인 유혹, 파우스트의 마르가레테 유혹, 사랑을 통한 구원의 약속 등이 다루어진다. 2부는 개인 파우스트가 아니라 서구의 인간들이라는 "더 큰 세계"를 다룬다. 전설적 인물 헬렌이 등장하는 역사적 환상극이다. 우리가 호메로스[2,3]의 작품에서 만났던 헬렌은 여기서 서양 고전 세계를 상징하고, 파우스트는 르네상스 이후의 근대 서양 세계를 상징한다. 『신곡』[30]의 무대였던 천국, 지옥, 지상이 그대로 『파우스트』의 무대가 된다.

몰리에르[46]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괴테를 영역하면 만족할 만한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번역 효과가 좀 미흡한들 어떠랴. 토마스 만[107] 등 위대한 현대 작가들을 포함하여 무수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이 유럽의 거인을 어떻게든 만나야 한다.

66. 제인 오스틴, 1775∼1817, 오만과 편견, 엠마



















"개인 생활의 행복이 걸려 있는 아주 사소한 일들." 그녀는 자신이 묘사하는 특별한 작은 세계의 회전축이 고상한 사상, 강렬한 야망, 비극적 절망 등이 아니라 금전, 결혼(사랑 때문에 복잡하게 꼬이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적 계급의 유지 등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녀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활동을 하나의 코미디로 관찰하고 있다. 마치 대가족의 동정을 잘 살펴보는 똑똑하고, 눈 밝고, 의견 표명 잘하는 나이든 고모처럼 말이다.

71. 알렉시스 드 토크빌, 1805∼1859, 미국의 민주주의

 
















토크빌은 자유주의적인 귀족주의자, 높은 지성을 갖춘 라파예트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두 가지 목적을 겨냥한다. 하나는 미국의 민주적(그는 이것을 평등주의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제도를 기술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관찰과 분석을 유럽(특히 프랑스) 정치의 사상과 실천에 있어서 하나의 길잡이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이 책이 미국을 분석한 가장 심오하고 현명하고 예견적인 저서라고 평가한다.

그의 예견이 모두 성사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의 동정심, 이해력, 균형감각, 선견지명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책은 뛰어난 구조와 우아한 문제의식을 갖춘 걸작이다. 토크빌 당시에 미국의 근대적 자본주의 구조는 아직 초창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후대의 마르크스[82]보다 훨씬 더 예리하게 그 구조의 장래, 장점, 단점, 가능성을 꿰뚫어 보았다. 이미 150년 전에 토크빌은 "과반수 독재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대중의 시대를 내다보았다.

72. 존 스튜어트 밀, 1806∼1873, 자유론, 여성의 종속

 

 
















감정이 완전 배제된 영국적 방식으로 집필된『자유론』은 명석한 설득력과 인도주의적 주장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국가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그처럼 열렬하게 호소한 저서는 따로 없을 것이다.

"인간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다른 인간의 행동과 자유에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자기 보존뿐이다. 그 이외에는 일체 다른 인간의 행동과 자유에 간섭해서는 안된다."

73. 찰스 다윈, 1809∼1882, 비글호의 항해, 종의 기원
















이 책은 읽기 쉬운 책은 아니나 어려움을 무릅쓰고 끝까지 읽는다면 충분한 보람을 안겨준다.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사용한 전략은 객관적 증거를 다량으로 제시하여 반대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또 결정적 증거가 부족할 때에는 유추와 개연성 있는 추측을 들이밀기도 했다. 그의 전략은 정밀한 논리보다 대담한 추론에 더 기대는 것이었다. 다윈은 남들이 전에 다 보았으되 관찰하지 못한 것을 끄집어내는 놀라운 통찰력을 발위했다. 그리하여 『종의 기원』은 지적인 흥분으로 가득하다.

『종의 기원』이 출간된 이래, 다윈의 진화 이론에 대한 반발은 어떻게 보면 시대착오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한 동안은 그런 반발이 통할지 모르나 결국에는 다윈의 이론이 이겼다. 『종의 기원』을 읽는 것은 진행중인 과학 혁명을 관찰하는 것이며, 훌륭한 과학자 한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이다.

79. 샬럿 브론테, 1816∼1855, 제인 에어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날개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다. "『제인 에어』는 세계 문학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러브 스토리의 하나이다." 이 문장은 일반 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을 잘 말해 준다. 이 책은 열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 열정은 너무나 팽팽하고 뜨거워서 그 뻣뻣하면서 무거운 문장을 뚫고 나올 정도이다.

나는 최근에 다음과 같은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을 발견했다. "여성들은 불완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여성들로부터 기대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은 천재의 작품뿐이다."

80.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1862, 월든, 시민 불복종

 
















소로는 살아생전에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무수히 많은 독백을 했다. 그러나 사후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말하고 있다. 어쩌면 수억 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호소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위험한 인물이다. 그는 혁명가는 아니지만 아주 파괴적인 사람이다. 예수 못지않게 과격한 인물이다. 그는 마르크스처럼 사회를 전복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생명을 거부하는 마르크스의 국가는 다른 생명 거부의 국가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대의 일반적 흐름에 온몸을 던져 반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한 절망의 삶을 영위한다."(이 말은 오늘날 널리 인용되는 명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소로는 철저히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 나가기로 결심했다. 적응하고, 동화하고, 합류하고, 개혁하고, 완성하는 대신에 삶 그 자체를 살아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소로처럼 자연을 즐기고 해석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의 생활 방식은 별 호소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그의 태도는 소로의 개인적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83. 허먼 멜빌, 1819∼1891, 모비딕, 필경사 바틀리

 

 
















상아 의족을 찬 복수심 가득한 노인이 자신의 적인 하얀 고래를 추적하다가 결국 노인도 고래도 둘 다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적 경험이 풍부한 성인들은 이 소설을 아주 광포한 예술 작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비극적 인식이 녹아 들어가 있어서, 어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도스토옙스키의 걸작들, 나아가 셰익스피어와 동급으로 평가한다. 영어의 리듬에 민감한 독자들은 이 소설의 웅장한 문체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다. 그 어조는 마치 오르간의 마개를 모두 열어놓고 연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87.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1821∼1881,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의 생애와 작품은 서로 조응한다. 고통, 폭력, 정서적 위기, 과도한 행동이 생애와 작품에서 똑 같이 등장한다. 그의 장편소설들에서 발견되는 저 강력한 성실성은 저자의 생애를 평생 어둡게 만들었던 불안감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독자는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는 것은 곧 지옥으로 내려가는 일이다.

그 소설들은 니체[97]와 프로이트[98]의 사상을 예고했다. 토마스 만[107], 카뮈[127], 포크너[118] 같은 러시아 이외 지역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레닌, 스탈린, 히틀러 등을 연상케 하는 테러 이론과 실천을 극화했다. 도스토옙스키는 20세기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 것인지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하다. 바로 이런 비극적 인식이 그의 소설에서 매혹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 기이한 인물을 정확히 묘사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의 중심 주제는 신이었다. 신에 대한 탐구,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가 그의 스토리의 핵심 요소이다.

8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1910, 전쟁과 평화
















여러 해 전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글을 썼을 때 나는 세 가지 특징을 칭찬했다. 첫째, 포괄성이고 둘째, 자연스러움이며 셋째, 무시간성이다. 15년이 지나 이 소설을 두 번째로 다시 읽고서 또 다른 특징을 발견했다. 톨스토이는 자기 자신을 독자에게 드러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최근에 세 번째로 다시 읽고는 진부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미덕 하나를 또 발견했다. 톨스토이는 진실을 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는 말했다. "인생이나 예술이나, 단 한 가지 필수적인 사항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의 캔버스가 아주 좁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가령 헤밍웨이는 투우에 대하여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면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생의 진실을 말한다는 것, 그것이 『전쟁과 평화』의 주제이다.

91. 루이스 캐럴, 1832∼189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을 통하여
















루이스 캐럴은 두 권의 앨리스 책이 발간된 1860년대와 70년대보다 오늘날 오히려 더 생생하게 빛을 발한다. 그는 모든 나라의 보통 사람들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최고의 지식인들도 매혹시켰다. 가령 에드먼드 윌슨, W.H.오든[126], 버지니아 울프[111], 엘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버트런드 러셀, 아서 스탠리 에딩턴 같은 논리학자와 과학자들, 그 외에 무수한 철학자, 언어학자, 정신분석학자들이 앨리스를 사랑했다.

『앨리스』에서는 독자가 의식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네 개의 세계가 충돌한다. 유년, 꿈, 난센스, 논리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 세계들은 서로 합쳐지는가 하면 서로 벗어나기도 하고 서로 간에 어떤 변화를 겪기도 한다. 이 네 가지 세계의 기이한 상호 작용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복잡성을, 보다 중요하게는 그 혼란스러운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성인 독자는 그 기발한 유머를 즐겁게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이것이 아동서적 이상의 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은 인간 의식의 어두운 구석을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92. 마크 트웨인, 1835∼1910, 허클베리 핀

 

 


















어린 시절에 『허클베리 핀』을 읽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것을 아동용 서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뛰어난 아동용 서적인 것은 맞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이러한 생각을 뒤엎는다. "모든 미국 현대 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이라는 책 하나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이런 두 극단적 생각의 중간쯤에 진실이 놓여 있다고 본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생각에 좀 더 점수를 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마크 트웨인은 굉장히 고심하면서 『허클베리 핀』을 썼다. 그가 이 소설을 탈고했을 때 이 소설이 소로의 『월든』[80]과 함께 미국 19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2대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했을지는 의문이다. 트웨인은 자신의 무의식으로부터 이 소설을 써냈다. 그 무의식을 통하여 그의 초창기 상상력에 자양을 주었던 위대한 강이 흘러들었다. 이 소설 속에 그는 자신의 청춘을 묘사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미합중국의 청춘을 함께 엮어 넣었다는 것을 그는 의식하지 못했으리라.

95. 윌리엄 제임스, 1842∼1910, 심리학 원리, 프래그머티즘, 진실의 의미 중 논문 4편,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
















제임스는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에서 종교적 상태는 다른 심리 상태와 마찬가지로 신경계에 의해 조건 지워진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종교적 상태의 중요성은 그 근원이 아니라 그 결과적 가치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종교는 '진리'라고 확정되었든 말았든, 개인과 인류에게 가치있는 것이다. 종교의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기능적인 것이다. 사상은 도구로서만 타당한 것이며 그 도구성에 의하여 가치가 판단되어야 한다. 요약해 보자면, "사상은 우리의 생활에 유익하다고 믿어지는 한 '진리'이다."

그는 사상사에서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활기 넘치고, 체험의 세계를 중시하고, 정신의 자유를 존중하고, 정서적으로 아주 신선하다. 게다가 그는 아주 명쾌하고 신선한 문체의 소유자이다. 확정된 종교 체계나 도덕 체계를 믿는 사람들은 아마도 실용주의적 검증에 대해서 반대할지 모르나, 그래도 그의 저서를 읽고 나면 독자는 전보다 더 생생한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가능성의 철학자이다. 실용주의적 검증이라는 개념만으로도 그는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의 저서를 읽으면 인생을 보는 안목이 달라진다.

97.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1844∼1900,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 선악의 저편, 기타 작품들


















1879년부터 1888년까지 그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전전하면서 싸구려 하숙집에서 외로운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보낸 9년 동안 그는 자신의 대표작을 대부분 써냈다. 1888년 12월 그는 토리노의 거리에서 말(馬)의 목을 쓰다듬으며 울고 있는 광인狂人의 상태로 발견되었다. 정신이상에 빠진 것이었다. 그는 남은 생애 11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는데, 결정적 증거는 없지만 정신병은 매독성 전신마비의 결과라는 설도 있다.

그는 기독교를 "노예의 도덕"이라고 비난한다. 그는 전통적인 미덕인 동정심, 관용, 상호 수용 등을 거부하고 "권력에의 의지"를 더 선호했다. 그는 밀의 자유민주적 인도주의를 거부하면서 밀을 "저 돌대가리"라고 불렀다. 그는 인간 정신 속의 영웅적·디오니소스적·비합리적이면서 직관적인 요소들을 칭송했다. 그는 진보라는 일반적인 개념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 대신에 순환적인 영원 회귀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제시하면서, 영웅적인 고통, 낙관적인 비관론, 비극적 체험의 긍정적 효과 등의 이율배반을 강조했다.

(제5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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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제3부(39∼61)

39.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1616, 전집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등정의 결과가 달라진다.

그는 인간이었지 반신半神이 아니었다. 그는 콜리지[65]가 말한 것처럼 "일천 가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매슈 아놀드가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무오류의 인간도 아니었다. 인류가 낳은 많은 천재들 중 하나였다. 그는 극단에 소속된 장인이었고, 바쁜 배우였으며, 영리하여 점점 번영을 구가한 사업가였다. 천재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고, 셰익스피어가 그 좋은 사례이다.

셰익스피어의 전집을 읽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람이 평균적으로 70세를 산다고 보고 그 중에서 반년 정도의 시간을 투입하여 전집을 읽는 다면 충분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중에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겠지만, 셰익스피어의 드라마 37편 중에서 다음 12편을 필독서로 권한다. 한꺼번에 다 읽을 생각을 하지 말고 평생에 걸쳐 한 권씩 한 권씩 읽는 방법이 더 좋다.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헨리 4세』1부와 2부, 『햄릿』,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 『되에는 되로』, 『리어왕』, 『맥베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오셀로』, 『태풍』.


41. 실명씨, 1618년 발간, 금병매














『금병매』가 오로지 에로틱한 소설로 그쳤더라면 그처럼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문장이라고 해도 오늘날의 음란 소설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한결 순화되어 있다. 이 책이 세계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 되는 이유는 그 탁월한 사회 풍자와 비판 때문이다. 이 소설은 쇠퇴, 냉소주의, 권력 남용, 부정부패에 사로잡힌 16세기 중국을 가감 없이 묘사하고 있다.

42. 갈릴레오 갈릴레이, 1574∼1642, 2대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














"이제 독자들은 이것이 바로 코페르니쿠스 모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천재가 번득이는 수사적 작품이고 1632년 못지않게 오늘날에도 설득력이 높다. 어떻게 이런 저서를 읽고서 납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로마의 교회 당국은 납득하지 않았다. 수사학은 도그마(교리) 앞에서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 소환되었고 그의 이론은 취소하기를 강요당했다. 나이가 든 데다 피곤하고 병이 든 그는 달리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후에 평생을 피렌체의 집에서 가택 연금의 상태로 살았다. 비록 종교재판에 의해 분서형을 당했지만 그의 『2대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는 계속 유통되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유럽 전역의 학계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모델이 정설로 자리 잡았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이론이 결국 이길 것임을 알고 있었다.

43. 토머스 홉스, 1588∼1679, 리바이어던
















대부분의 현실주의적 정치 이론은 홉스나 마키아벨리[34]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 그러나 민주적 정치 제도는 그 인간관에 있어서 반反 홉스적이다. 민주 제도는 권력 분점을 그 바탕으로 한다.(하지만 홉스는 왕, 귀족, 하원 사이에 권력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내전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또한 미국의 제도는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 대의적 형태로 표현되는 일반 의지라는 효능 입증된 이론 등에 바탕을 둔다. 미국의 제도와 기타 권위주의적 제도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리아비어던』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는 아주 까다롭고 빡빡한 문장을 구사한다. 난해한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들 때 홉스의 책을 집어 들도록 하라. 가능하면 『리바이어던』의 서문과 1부와 2부는 모두 읽도록 하라.


44. 르네 데카르트, 1596∼1650, 방법서설

 
















젊은 시절에도 데카르트는 수학 이외에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의 근본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심은 파리와 푸아티에에 체류하던 시절(1614∼18)에 몽테뉴[37]를 읽으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그는 마침내 공부를 걷어치우고 가벼운 군사적 모험과 여행의 길로 나섰다. "나 자신에 대한 지식과 이 세상의 위대한 책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다른 학문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데카르트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기타 학자들의 새로운 물리학과 천문학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새로운 철학 체계를 수립했다. 그는 새로운 과학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았고 그 과학 정신은 아이작 뉴턴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45. 존 밀턴, 1608∼1674, 실낙원, 리시다스, 그리스도 탄생의 날 아침에, 소네트, 아레오파지티카

 
















밀턴을 읽기 위해서는 특별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노력을 해야 한다. 설사 박물관 진열품이라고 할지라도 밀턴의 시는 여전히 희귀하고 소중한 작품이다. 『실낙원』의 메시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거든, 그 엄청난 소리 효과, 그 정교한 이미지, 타락한 천사(밀턴은 이 천사와 유사한 점이 많다)인 사탄의 초상화 등을 따라가 보라. 그 어떤 작가도 앞으로 이렇게 글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 누구도 밀턴의 웅장한 산문에서 발견되는 우뢰와 같은 미문美文을 구상하지 못할 것이다.

47. 블레즈 파스칼, 1623∼1662, 팡세

 


















이 책은 단편적인 미완성의 노트들인데, 원래는 좀 더 거대한 계획 아래 집필된 것이었다. 파스칼은 당대의 자유사상가들의 공격과 무기력으로부터 기독교를 옹호하는 대작을 쓰기 위해 이 노트들을 준비했으나, 일찍 죽는 바람에 대작을 쓰지는 못했다. 이 노트들에서 파스칼은 우주의 거대함, 영원의 무한한 흐름, 신의 전지와 전능에 비해볼 때 인간이란 너무나 덧없고 무의미한 존재라고 지적했다. 현대의 반 인간적 염세주의는 상당 부분 파스칼에서 유래한다. 종교 옹호자든 허무주의자든, 인간이 우주의 중심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팡세』를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아주 심오한 심적 분위기를 대변한다. 인간은 자신의 위력에 때로는 영광을 느끼지만 결국에 가서는 그 자신을 가련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사상 분야의 파스칼은 그 문장 스타일과 강렬한 정서적 열정 때문에 평가를 받는다, 영혼의 심리학자인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때로는 고상하고 때로는 광적인 그의 경건주의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그 예리한 인간 심리의 통찰은 높이 평가한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외침인 파스칼의 두 명언은 아직도 기억된다, 첫 번째 것은 "이 무한한 우주의 침묵은 우리를 겁나게 한다"이고, 두 번째 것은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허약한 존재인 갈대에 지나지 않지만,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이다. 이 두 명언은 기독교 신자든, 불가지론자든, 무신론자든, 혹은 다른 사상을 가진 자든, 모든 선남선녀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진실이다.

49. 존 로크, 1632∼1704, 통치론

 
















홉스의 "계약" 사상은 개인의 권력을 절대적 권한을 가진 군주 혹은 의회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크의 "사회 계약"은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것이며 이 사람들은 "그 계약에 적극 참여하여 하나의 사회를 만든다." 정부는 신의 뜻에 따라 조직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 권위는 권력 분산에 의해 제한을 받아야 마당하다. 권력은 나누어 가져야 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개인의 영속적인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로크가 볼 때 생명, 자유, 재산 등이 개인의 그런 양도 불가능한 권리이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정부에 대한 저항은 정당한 것이다.

50. 마쓰오 바쇼, 1644∼1694, 오쿠노 호소미치
















그는 험준한 오지인 산간 지역을 도보로 여행했다. 그런 만큼 바쇼의 여행담에는 비좁고 불확실한 길들을 걸어가야 하는 나날의 근심이 묻어난다. 하지만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으며, 저자의 쾌활하고 낙관적인 기질, 새로운 사물에 대한 호기심, 모든 것이 결국에는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드러낸다.

하이쿠는 하나의 작은 경이, 갑작스러운 깨달음의 작은 불꽃이 된다. 『오쿠노 호소미치』는 기술의 절정에 오른 천재의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51. 대니얼 디포, 1660∼1731, 로빈슨 크루소

 
















로빈슨 크루소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남자가 완전 자급자족이 되는 상태를 꿈꾼다. 자신이 절대적인 왕으로 군림하는 자기만의 영지를 꿈꾼다. 외로움의 왕국을 혼자 견디다가 단 한 명의 노예를 발견하여 그에게 인자한 독재자로 군림하는 꿈을 꾼다. 경쟁에 의해 위태로워지거나 사소해지지 않는 부와 권력의 축적을 꿈꾼다. 허약하고 시시하게 머리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완력과 상식을 사용하여 성공하는 꿈을 꾼다. 지루한 일상생활에서 훌쩍 벗어난 아주 외진 곳에서 이런 꿈들을 성취하길 바란다. 처자식에 대한 부담감 없이 자신의 힘으로 만든 1인 유토피아에서 살기를 꿈꾼다. 『로빈슨 크루소』와 『모비딕』[83]은 여성을 등장시키지 않고서도 탁월한 성공을 거둔 걸작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순전히 오락용 책자로 이 소설을 읽었다. 그러나 나중에 나이 들어 재독해 보면 이 소설이 왜 불후의 명작인지 깨닫게 된다.

 

53. 볼테르, 1694∼1778, 캉디드와 기타 작품들

 

 

 

















볼테르는 84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유럽 지성계의 왕관 없는 제왕이었고, 계몽 시대의 우뚝한 지도자였으며, 프랑스 혁명에 의해 붕괴된 구체제의 기반을 가장 맹렬하게 파괴한 자로 평가되었다. 극작가, 시인, 역사가, 이야기꾼, 재담가, 신문사 특파원, 논쟁가, 화려한 성격의 소유자 등으로 엄청난 명성을 거두었다. 그의 창작 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1만 4천 통의 편지와, 2천 건 이상의 책과 팸플릿을 남겼다. 하지만 사흘 만에 써냈다는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농담의 책으로 유명하다. 그가 써낸 무수한 냉소적 작품들도 이 단 한 편의 아이러니를 당하지 못한다.

『캉디드』는 후대의 소설들이 즐겨 취하는 성장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령 『적과 흑』[67]도 성장소설이며 『마의 산』[107]은 좀 더 심화되고 확대된 형태의 성장소설이다. 캉디드가 받은 교육은 아주 폭력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볼테르가 내린 결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결코 최선이라고 볼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일은 "우리의 정원을 가꾸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위악적인 아이러니가 넘치는 걸작을 읽고서 볼테르가 조롱의 대가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버나드 쇼처럼 재치가 넘치지만 동시에 쇼처럼 인간의 정신의 해방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였다.

56. 조설근, 1715∼1763, 홍루몽

 












『홍루몽』은 중국어로 씌어진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 자서전적인 작품이지만 동시에 많은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다. 『금병매』[41] 등 중국 고전문학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가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문학적 범위는 일찍이 중국 문학에서 시도된 적이 없었다. 120장으로 구성된 거대한 작품이며 30명의 주요 인물들과 400명의 보조 인물들이 등장한다. 러브 스토리인가 하면 풍속소설이고 사회 비평서이기도 하다.

57. 장 자크 루소, 1712∼1778, 고백록

 
















루소를 가리켜 사회 부적응자라고 말하기는 쉽다. 또 자연과 인간의 착한 본성을 옹호하는 그의 태도는 조직 사회의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지적은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사상-그의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그처럼 강력하게 표현된 적이 없었다-은 그의 시대가 원하는 것이었다. 이 기이한 예언자 루소, 흄[54]이 "피부가 없다고 할 정도로 민감한 사람"은 아주 정확하게 시기를 맞추어서 태어났다.

루소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고, 과장을 하고, 때때로 자기 자신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선언 중 한 가지 사항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모방자가 없을, 그런 과업을 시작하려 한다"고 했는데 그건 틀린 예언이었다. 수천 명의 후배들이 그를 모방했다. 고백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현대의 자서전들은 모두 루소의 『고백록』을 흉내 내고 있다.

(제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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