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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 역사 - 상 - 완역본 ㅣ 범우고전선 20
헤로도토스 지음 / 범우사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예견할 수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역사가 예언된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다. 만일 미래가 예언에 열려있지 않다면, 그것이 실현되어 과거가 된다 해도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역사가가 뒤돌아선 예언자라는 것은 모든 역사 철학을 요약해주는 관점이다. 역사가는 물론 미래의 일반적인 구조를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구조 자체가 사실은 우리가 과거나 현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시대를 잘 보길 원한다면 멀리서 봐야 한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적당할까? 그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면 족하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Jose Ortega y Gasset)
이 책은 페르시아 전쟁에 관한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쓴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90년∼480년 사이(추정)에 태어난 사람이다. 시대로 따지자면 고대 로마의 황제를 농락했던 클레오파트라(BC 69∼BC 30) 여왕보다도 약 400년 정도 먼저 태어났던 사람이니 아득한 옛날 사람이 쓴 역사서인 셈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소아시아 남부의 도시 할리카르나소스이다. 이 곳은 현재는 터키의 휴양지로 유명한 보도름이라는 곳이며,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러스 영묘'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Halicarnassus (modern Bodrum)
Mausoleum. It was considered one of the seven wonders of the ancient world.
헤로도토스는 평생 동안 경탄할 만한 대여행을 시도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의 발길이 미친 지역의 범위를 살펴보면 동쪽으로는 바빌론, 서쪽으로는 리비아의 키레네, 바르케, 남쪽으로는 나일 상류의 시에네(오늘날의 아스완), 북쪽으로는 흑해 북안의 오르비아를 중심으로 크리미아 반도, 우크라이나 남부 주변에까지 이르렀음이 거의 확실하다고 한다.
일개 개인에 불과했던 헤로도토스의 신분상의 한계는 물론이겠고, 당시의 교통 사정, 경제적인 문제, 언어나 생활 습관의 차이, 여행 도중에 일어나는 위험이나 재해 등에 비춰봐서도 그가 시도했던 세계 여행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이 책은 본래부터 동서 항쟁사를 주제로 하여 구상되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아시아와 유럽이 어떤 원인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내용에 중점을 두고, '인간이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을 후세에 전하는 것'이 집필의 주요 목적임을 분명하게 밝혀두고 있다.
이야기의 전개는 페르시아 왕국이 동방의 대표 세력으로서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부터 출발한다. 이후 이오니아 여러 도시의 반란에 아테네가 가담하고 사르데스를 파괴한 시점부터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적대관계가 점차 충돌을 피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다레이오스(다리우스) 대에 시도된 최초의 그리스 공격은 마라톤에서의 패전으로 좌절되지만, 그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은 크세르크세스는 재차 그리스 침입을 기도한다.
총 9권으로 된 이 책의 중심부를 이루는 것은 제7∼9권에 상술되는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 원정이다. 제1권에서 제6권까지는 페르시아 전쟁과는 다소 동떨어진 듯한 주변국의 정세와 기담 및 전승 등이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아득한 고대에서나 있을 법 했던 별의별 흥미롭고도 기이한 풍속에 관한 기담기화(奇談奇話)들 때문에 마치 설화집을 대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역사상 최초의 동서간 대충돌이 일어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웅장한 전투 현장에 대한 묘사와 속도감 넘치는 역사 서술로 인해 곧장 대전쟁 속으로의 빠른 몰입으로 전환된다. 그야말로 전세계의 패권이 어디로 기울지 모를 아슬아슬한 순간에 이르면 긴장감 마저 느껴진다.
전쟁을 지휘하는 총사령관들의 전략 회의가 잦아지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한 지략들이 불꽃을 튀기면서 어느새 생생한 전투 현장 속에 끌려들어가게 되는 느낌은 거대한 스케일의 전쟁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 책의 핵심을 이루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살라미스 해전이다. 바야흐로 그 곳은 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책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의 피뢰침'이 작동하는 장소였던 셈이다. 전세계의 패권을 쟁취하기 위해 수십만 대군이 건곤일척을 다투었던 이 유명한 해전은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아니던가!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의 2대 회전에 의해서 페르시아 전쟁은 실질적으로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세계의 승리로 종결되고, 여운과도 같은 소전투였던 미칼레 전투와 세스토스 공략(BC 479년)을 끝으로 페르시아 전쟁은 종결됐다고 보고 헤로도토스는 역사의 기나긴 페이지를 마무리 짓는다.
완역판인 이 책은 상,하권을 합해 9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부피 때문에 그리 읽기 쉬운 책은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고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무수한 인물명, 지명, 종족명, 강과 호수의 이름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들을 일일이 따라 다니자면 제법 애로가 느껴진다. 페이지 하단에 빼곡히 붙어있는 역자의 자세한 주석 내용들 조차 본문 못지 않게 낯선 내용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을 끝까지 읽는 데에는 얼마간의 참을성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저자의 지극히 산만한 서술 형태와 수많은 삽입적 기술을 들 수 있다. 이 점은 페르시아 전쟁 자체가 그 당시 유럽과 아시아의 드넓은 지역에 걸친 수많은 민족과 도시 국가들이 참가하였기 때문이기도 한데다, 저자 자신이 직접 조사와 여행을 통해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설화류들을 바탕삼아 '후세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열망'이 더해짐으로써 불가피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어쨌든 저자의 이러한 서술 방식은 자꾸만 지류를 따라 너무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본류로 되돌아오는 길이 가끔씩 헷갈리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그렇지만 균형을 잃을 만큼 지나치게 길어보이는 삽화풍의 옛 이야기들은 오히려 이 책이 지닌 특색이자 매력일 수도 있다고 본다. 또한 저자 자신이 수집하고 기록해 둔 무수히 많은 얘기들 가운데 버릴 것은 버리고 나서 최종적으로 이 책에 담은 내용들은, 비유하자면 거대한 피라미드를 축조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만 골라 정교하게 다듬어 맞추어 놓은 조각들처럼 엄밀하게 선택되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조각들이 저마다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헤로도토스의 저작은 매우 안정감이 높은 구조물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또한 이 점은 그가 일생 동안 이 책의 최종적인 완성을 위해 얼마나 퇴고를 거듭하며 부단히 노력하였는지를 말해주는 증좌이기도 하다.
널리 이름이 알려진 고전들의 경우, 대개는 읽기에 다소 벅찬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지만 힘들여서 다 읽고나면 그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울만큼 독창적이고 경탄할 만한 저자의 높은 경지와 웅대한 구상 등에 마침내 압도되어 절로 경외심이 들고 고개가 숙여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한 옛 시대를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 당시를 풍미했던 위대한 인물들을 무수히 많이 만나게 되는 일은 늘 독특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은 온전히 헤로도토스의 끝없는 지적 호기심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인류 최초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이 책과 오늘날의 역사서를 구분짓는 특징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아마도 신탁이나 예언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이 책의 전편을 통해 헤로도토스는 신탁이나 예언에 대해 거의 종교와도 같은 믿음을 내보이고 있다. 전쟁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일을 '신의 뜻'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했던 고대인들의 신앙심이나 운명관 혹은 도덕관에 비춰보면 이 점은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헤로도토스가 특히 강조하는 믿음은, 요건대 인간의 지나친 행운, 그리고 그로부터 생기는 교만심은 늘 신의 비위에 거슬리게 된다는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귀결된 페르시아 전쟁의 종결은 결과적으로 찬란한 고대 그리스 문명의 개화를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전쟁의 승패가 뒤바뀌었을 경우를 가정하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페르시아 전쟁이 유럽측의 패배로 끝났더라면 적어도 '서구 문명' 자체가 그처럼 일찍 화려하게 꽃을 피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전쟁의 종결이 새로운 문명의 발달을 촉진하는 매커니즘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는 무수히 반복되어 나타나는 '일반적인 구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대한 운명의 순간은 언제나 천재를 원하고 그에게는 또 불멸의 모범이라는 명예를 안겨주지만, 유순한 자에게는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경멸하며 밀쳐 버린다. 지상의 다른 신이기도한 위대한 운명의 순간은, 불 같은 팔로 대담한 자들만을 들어올려 영웅들의 하늘로 들여보내 주는 것이다.'라고.
이 책을 통해 불멸의 명예를 획득한 인물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일찍이 300만 명의 페르시아 군대와 맞서 싸운 펠로폰네소스 4천의 병사' 가운데에서도 최후의 용사 300명을 대표하는 그리스의 영웅 레오니다스( ? ∼ BC 480)만큼 드높은 명예를 누리는 인물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때마침 이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300이 금년 3월 북미시장에서 개봉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전쟁 영화라면 평소에도 개봉관에서의 감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써 왔던 터인데 이래 저래 반갑기 그지 없는 소식이다.
아래의 그림은 1814년에 다비드가 완성한 <테르모필라이에서의 레오니다스>라는 작품이다. 당시 나폴레옹은 레오니다스가 영웅이라 할지라도 그는 전쟁에서 패한 자라며 전쟁에 지는 장면을 그리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다비드에게 충고했다고 한다. 역사를 움직인 수많은 인물 가운데 예수 다음으로 많은 전기가 씌어졌다는 나폴레옹 조차 이 그림이 전시되던 바로 그 해에 엘바 섬으로 유배되고 만다. '제비꽃이 피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유배를 떠난 나폴레옹은 과연 영웅다웠다. 그는 이듬해 2월에 엘바섬을 탈출했으며,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명언에 걸맞게 결국 위대한 황제 폐하로 파리에 입성하게 된다.
Leonidas at Thermopylae(1814, Musée du Louvre, Paris)
여행자여, 가서 스파르타인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들의 명을 수행하고 여기에 누워 있다고.
(스파르타 전사자를 위해 세운 시모니데스의 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