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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전기 (양장)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박광순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고대 로마 군단의 후예들이 중국 대륙 서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2000년 만에 밝혀졌다. 홍콩 문회보는 중국 간쑤(甘肅)성 융창(永昌)현의 한 마을에 사는 400여 명의 유럽인을 닮은 농민들이 기원전 53년 파르티아 왕국(오늘날의 이란·이라크)과의 전투 이후 행방이 끊어진 로마 집정관 크라수스의 아들을 비롯한 로마인의 후예임이 유전자 감식 조사 등을 통해 확인됐다고 지난 20일 보도했다. (이하 생략)
- 2005. 3.25일자 조선일보 기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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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수스(기원전 115~53년)는 제1차 삼두(三頭)정치 당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던 로마의 정치인이다. 그는 기원전 53년, 파르티아 왕국 원정에 나섰다가 ‘카래의 전투’에서 본인은 전사하고 병사들은 대부분 몰살당하거나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고 한다. 이때 제1군단장으로 참전했던 크라수스의 아들 푸블리우스 크라수스는 당시 6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포위망을 탈출했으나 로마로 귀환하지 않고 사라져, 지금까지 행방이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크라수스와 그의 아들들은 카이사르가 쓴《갈리아 전기》에도 여러번 등장한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전쟁의 기록은 B.C. 58년 부터 B.C. 51년까지 8년 동안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던 크라수스는 이 책의 제1권(B.C. 58년)과 제4권(B.C. 54년)에 등장하며, 그의 두 아들 가운데 M.크라수스는 제5권(B.C. 54년)과 제6권(B.C. 53년)에 등장한다. 정작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았던 푸블리우스 크라수스(크라수스의 작은 아들)는 갈리아 전기에서 이들 3父子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제1권, 제2권 및 제3권에 걸쳐서 여러번 등장하며, 카이사르 휘하에서 제7군단장으로서 맹활약을 펼친 몹시 젊고 뛰어난 장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카이사르는 고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장군, 역사가, 웅변가, 법률가, 정치가, 시인, 건축가, 수학자 등 실로 여러 방면에서 두루 탁월한 천재성과 예지를 발휘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에 관한 얘기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학작품과 예술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기도 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카이사르의 저작이 매우 방대하고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갈리아 전기》와《내란기》단 둘 뿐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몽테뉴로 하여금 카이사르에 대해 "가장 명석한, 가장 웅변적인, 가장 진지한 역사가"로 찬양케 한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또 순수한 라틴어로 씌여진 데다가 문학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가치를 지닌 덕분에 유럽 각국의 학생들의 교재로서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들과 그들의 용맹과 지략들을 떠올려보면 일견 동양의 스테디셀러인 '삼국지'와 닮은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매우 꾸밈없고 평이한 문체'가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서 가운데 그 문체가 힘차고 표현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모범을 보여주는 한 전형이 되고 있지만, 전쟁을 다룬 책 치고는 박진감 넘치는 묘사와 웅대한 스케일을 느끼기에는 다소 거리가 먼 책이어서 활용도 면에서 보더라도 '교과서'라는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역사는 모름지기 모방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고 보았다. 고대로부터의 전쟁 영웅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알렉산더 대왕은 아킬레스를 닮고자 했으며, 카이사르는 알렉산더 대왕을, 또한 나폴레옹은 카이사르를 닮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주무대가 프랑스이기도 하지만 2천년 전에 벌어졌던 로마군 전쟁의 흔적들이 1,800년대에 더욱 활발하게 발굴되었던 이유 또한 나폴레옹이 생전에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면서도 이 책을 늘 가까이 두고 읽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책은 모두 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마다 한 해 동안의 여러 전쟁과 그 전개과정 및 마무리까지가 무척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역사적 무대가 기원전이라는 점 및 당시까지 미개척의 상태였던 갈리아 지방에 대한 원정의 기록이라는 점 때문에 두 가지의 큰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무수히 많은 고대의 지명과 인명의 등장이고, 또 하나는 매우 많은 부족명의 등장이다. 이 책 주석의 상당부분이 옛 지명에 대응하는 오늘날의 지명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으며, 책 뒷부분에도 부족 색인과 지명 색인이 여러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 책은 또한 본질적으로 카이사르가 로마 시민들에게 자신을 비롯한 로마 군대의 '전시 활약상'에 대한 '보도 자료'로서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책이다. 따라서 책 내용 또한 수많은 전쟁에서의 군대의 이동 경로, 군수물자의 보급 상황, 진지와 보루의 구축, 적들의 움직임과 적들과의 각종 협상, 전투 상황, 그리고 전쟁의 결과들에 대한 기록들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압권은 갈리아 지방의 여러 민족이 수많은 패전과 복속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베르킹게토릭스라는 최후의 지휘관 아래 총결집하여 카이사르와 로마군에 대해 최후의 대반격을 벌이는 대목이다. 이 전쟁은 B.C. 52년에 일어난 '알레시아의 전쟁'으로 일컬어지는데, 각 진영 모두 수십만의 정예군을 총동원하였고, 숨가쁘게 전개되는 전쟁 상황의 긴박함과 최후의 건곤일척을 다툰다는 점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마치 고대의 전쟁 영화 가운데『트로이』나『알렉산더』에서의 웅장한 대전투 장면이 떠오를만큼 멋진 전쟁의 기록을 보여준다. 이 당시의 일이 카이사르의 편지로 로마에 알려지자 당시로서는 사상 최장 기록을 세운 '20일간의 감사제'가 벌어졌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을 정복하는 동안에 그는 무수히 많은 전쟁에서 거의 대부분을 완승으로 이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로마인 최초로 라인강을 두 번이나 넘어가서 게르만을 비롯한 숲 속의 야만족들을 복속시켰으며, 오늘날의 영국땅인 브리타니아를 정복하기 위해서 도버 해협을 두 번씩이나 건너갔다. 또한 알프스 산맥과 피레네 산맥을 비롯한 온갖 오지와 험지를 마다않고 '로마의 영광'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 누비고 다녔다.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몇 해 전 유럽 여행길에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던 도중에 한국인 여행 가이드가 알려주던 놀랄만한 얘기 하나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도로는 2000년 전 로마군들이 닦아놓은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카이사르는 유럽의 역사를 포함한 로마의 역사 자체를 뒤바꾼 인물이다. 그는 문명화되지 못한 갈리아 지방을 복속시킴으로써 로마의 기준과 정복자의 논리에 맞는 '문명화'를 이뤘다. 그는 로마의 국경을 갈리아지방에까지 확대한 결과로서 사실상 로마의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두려움을 느낀 로마 원로원이 기원전 49년에 그의 소환을 결의하자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너 제국의 수도로 진격한다. 마침내 내전을 승리로 이끈 그는 실질적으로 세계의 지배자가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카이사르의 유명한 연설문은 기원전 47년의 또다른 전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결과보고였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46년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딕타토르에 오름으로써 사실상의 1인 지배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2년 뒤 민중은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안토니우스는 그에게 왕관을 증정한다. 그의 나이가 57세였던 기원전 44년에 그는 갈리아 원정에서 맹활약했던 그의 부하장군 브루투스가 주동이 된 음모단체에 의해 원로원에서 피살되고 만다. '브루투스여, 너마저!"라는 그의 마지막 외침마저 당대의 명연설가답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의 죽음도 극적이었다.
그가 1년을 365일로 바꿔서 만든 율리우스력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가 태어난 7월을 그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어 줄라이(July)로 개명하고, 8월을 오거스트(August)로 부르는 이유도 그의 양아들이자 로마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처럼 다방면에 걸쳐 뛰어났던 인물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는 말이 실감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불멸의 이순신'이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도 카이사르처럼 '난중일기'라는 훌륭한 전기를 우리들에게 남겨놓았다. 수많은 역경을 극복한 끝에 마침내 수군의 지휘관에 오르고,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 한 순간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필생즉사(必生則死)의 각오로 병사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왜적의 침략을 막아냈으며, 전쟁터의 갑판 위에서 최후를 맞은 일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던 충무공! 여태껏 난중일기도 제대로 읽지 못했으며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도 어쩌다 가끔씩 봐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드라마라도 꼬박 꼬박 챙겨보는 것이 충무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마침 드라마의 전개가 왜적들과의 해상전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본격적인 재미는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