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 굿모닝북스 투자의 고전 1
필립 피셔 지음, 박정태 옮김 / 굿모닝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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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은 훌륭한 기업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 벤저민 그레이엄

“나는 피셔의 생각에 절대적으로 동조한다.”
 - 워렌 버핏

"만일 당신이 정말 제대로 된 회사에 투자했다면, 그 성장잠재력은 무한할 수 있다. 그 외의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다. 1957년 나와 내 고객들이 모토롤라에 투자한 10,000달러는 그 동안 등락을 거듭하며, 현재 1,993,846달러가 되었다."
 - 1996년 포브스지가 피셔와 인터뷰한 내용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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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투자가인 필립 피셔가 세상을 떠난지는 대략 1년 1개월 정도 지났다. 그렇지만 그가 태어난 해는 98년전인 1907년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그는 고종이 강제 퇴위되던 해에 태어난 그야말로 구한말 시대 사람쯤 되는 셈이다. 그렇다보니 그가 쓴 이 책 또한 초판이 나온지 무척 오래 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 담긴 내용까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오해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이 책이 출판된 지 거의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이 책은 오히려 경영 혹은 투자 분야에 관한 그 어느 신간 못지않게 '현대적'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피셔가 독자들에게 알려준 '위대한 기업의 조건'은 기업의 경영환경이 놀랍도록 빠르게 변하고 있는 오늘날에 와서까지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필립 피셔가 1950년대에 투자한 대표적인 종목이 모토롤라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였다. 작년에 우연히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투자수익률을 살펴보고는 도저히 믿지못할 수치에 놀란 적이 있었다. 다음을 한 번 살펴보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43년간의 수익율

1956년 1주당 @14달러
1999년 1주 → 1,749.6주 × @93달러 = 162,712달러
$162,712 / $14 =11,622배 (1,000만원 → 1,162억원)


1956년에 1천만원을 투자해서 43년 동안 보유하고 있었더라면 1999년에는 그 돈이 무려 1,162억원으로 불어나 있었을 것이다! 물론 IT버블이 극심했던 1999년의 최고가와 비교하다보니 수치가 더욱 믿지못할 정도로 치솟은 것도 사실이지만 "지속적으로 순이익 성장이 이루어지는 주식의 경우에는 월 스트리트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어느 투자 거장의 말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증명해 주는 예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필립 피셔 조차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주식을 1980년대에 너무 일찍(?) 처분하고 말았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 필립 피셔는 51세였다. 그가 1928년에 월가에 발을 내디딘지 만 30년이 지난 뒤였다. 그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등을 겪는 동안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투자한 기록들을 꾸준히 연구하다 보니 두 가지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는 주식 투자를 통해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주식시장이란 원래 사람을 현혹시키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그에게 투자자금을 맡긴 고객들에게 그가 내리는 이런 저런 투자 판단의 근거가 되는 원칙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어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들은 그가 왜 전혀 알려지지 않은 기업의 주식을 매수했는지, 또 충분한 시간이 흘러 주가가 그 주식을 매수할 때의 목적을 정당화 시킬 정도로 오르기 전까지는 전혀 처분할 생각을 하지 않는지를 비로소 이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런 투자의 원칙들을 한데 모으고, 필요할 때면 누구에게든 보여줄 수 있도록 인쇄해 두어야겠다는 바람이 생겼고, 더 나아가 그의 고객들보다 훨씬 적은 소액의 투자자금을 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한 책이 이 책이다. 그는 아마 이 책을 내놓을 때 투자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 배웠다고 확신했던 게 분명해 보인다. 그가 이 책의 맨 앞에 달아놓은 다음과 같은 헌사(獻辭)를 읽어보면 더욱 그렇다.

주식 투자 규모가 크건 작건 이런 철학에 집착하지 않는 모든 투자자들에게 이 책을 바치고자 한다: "나는 이미 굳게 결심했으니 더 이상 어떤 사실을 제시하며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아주시오."

아마도 사람들이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는 이 모든 이유의 이면에는 단 하나의 진짜 동기가 숨어있다고 보았다. "어떤 이유로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든, 어떤 방식으로 주식시장에 투자하게 됐든 당신이 주식을 사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 그 다음에는?

주식투자의 세계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사람에게나 혹은 아직까지 주식을 사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나 주식투자에 있어서 항상 핵심을 이루는 문제는 다음의 세가지이다. ① 어떤 주식을 살 것인가? ② 언제 살 것인가? ③ 언제 팔 것인가?

정말 이 책이 감동적인 것은 위의 세가지 핵심 문제에 대해 피셔는 거의 완벽한 답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야말로 '그는 모든 답을 알고 있다'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이다.

가치투자의 아버지인 벤저민 그레이엄이『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소개한 혁명적인 개념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은 주로 투자와 투기와의 구분, 기업의 내재가치 등과 더불어 '안전마진(Margin of Safety)'이라는 개념과 '마켓아저씨(Mr. Market)'라는 개념이다. 이와 비교해 본다면, 필립 피셔는 '성장주' 투자 개념 도입, 매도할 필요가 전혀없는 '초장기' 투자의 탁월한 성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실 수집(Scuttlebutt)'이라는 독창적인 접근 방법을 이 책을 통해 소개했다고 볼 수 있다.

피셔 인베스트먼트(Fisher Investment)의 창업자이자 CEO이며,「포브스」의 80년 역사상 일곱번째로 롱런한 '포트폴리오 전략'이란 칼럼으로 유명한 그의 아들 케네스 L. 피셔는 이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들이 주식 투자를 계속 하는 동안 이 책을 몇 번이고 읽으라고 당부하고 싶다. 사실 수집을 다시 읽어보라. 사실 수집에 관해 설명한 제 2장은 몇 페이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내용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수집에 관한 핵심은 고객과 경쟁업체, 납품업체를 주목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의 여러 대목에서 사실 수집의 놀라운 효과를 몇 번이고 강조한다. 대략 7가지 단계의 탐색 작업을 통해 어떤 기업에 대한 사실을 수집하면서 충분한 분야의 정보원을 확보했다면 들은 내용이 반드시 전부 서로 일치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진정으로 위대한 기업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의 정보들이 너무나 명백하게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학창시절에 실제로 스탠포드 비지니스 스쿨에서 공부하는 동안 지도교수인 보리스 에머트 교수와 함께 매주 가까운 지역의 기업체를 하나씩 직접 방문해 사업성을 분석해보는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이 때의 경험이 다른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 전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고 스스로 술회한 적도 있었다. 

이 책의 제3장은 어떤 주식을 살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다. 수년 혹은 수십년간 수백 퍼센트 혹은 그 이상의 놀라운 투자성과를 얻게 해줄 위대한 기업은 어떤 특성들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 15가지 포인트는 대략 다음과 같다. 충분한 시장 잠재력을 가진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 최고 경영진의 안목과 진실성 문제, 기업의 연구개발 노력이 얼마나 생산적인가의 여부, 평균 수준 이상의 영업 조직 보유 여부, 영업이익률은 얼마나 충분한가의 여부, 돋보이는 노사 관계를 갖고 있는지의 여부, 이익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기적인가 아니면 장기적인가의 여부 등

그는 이 15가지 포인트 가운데 여러 가지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가 정의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투자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통상 성공적인 투자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오해, 허풍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는 어떤 주식을 살 것인가에 대한 보충 설명을 위해 별도의 장에 '나에게 맞는 투자 활용법'을 덧붙여 놓았다. 주식에 투자하려고 하는 자금은 정말로 여유가 있는 자금이어야만 한다는 점과 여유가 있는 자금에 대한 명확한 규정까지 놓치지 않고 언급한 점을 보면 그가 일반투자자를 위해 얼마나 깊은 고려를 담아냈는가를 가슴속 깊이 느낄 수 있다.

언제 살 것인가에 관한 그의 설명은 그만의 '매수 타이밍'이 얼마만큼 탁월한가를 나타내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경기 변동을 예측하는 경제학적 분석 방식은 중세의 연금술사들의 연구처럼 여겨져야 한다는 점, 진정한 매수타이밍은 해당 기업 그 자체의 본질적인 성격 즉 펀더멘털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제 전반이나 주식시장의 상승과 하락 사이클을 일체 무시하는 게 당연하다고 하는 점 등은 일반적인 통념으로서의 '매수 타이밍'이 얼마만큼 쓸데없는 헛소리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자신이 알고 있는 특별한 회사의 문제가 자신의 투자 기회를 보장하는 것으로 보일 때가 바로 투자의 적기다. 추측에 근거한 헛된 희망과 공포, 그리고 억측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주식 투자를 단념해서는 안된다."

언제 팔 것인가, 그리고 언제 팔지 말 것인가에 대한 그의 설명은 정말 감동적인 부분이다. 오늘날 숱한 주식투자 전문가나 애널리스트들이 너무나도 쉽게 주식비중 축소 혹은 투자의견 하향을 외치고 다닌다. 이들은 아무리 뛰어난 주식이라도 고평가 됐다면 팔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얼마나 비논리적이며 모순과 어리석음으로 가득찬 것이라는 것을 그는 대학 졸업반 친구들과의 계약을 예로 들어가면서 너무나 멋지게 설명해놓고 있다. 그의 설명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주식을 매수할 때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했다면 그 주식을 팔아야 할 시점은 거의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이 부분은 아마도 그의 제자인 워렌 버핏이 '영원히' 보유할 종목을 찾아나서게 만든 이론적 뒷받침이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제8장과 제9장에 걸쳐서 투자자가 저지르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 잘못과 다섯가지 잘못 추가 부분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훌륭한 주식인데 단지 "장외시장"에서 거래된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점, 순이익에 비해 주가가 높아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앞으로의 추가적인 순이익 성장이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고 속단하지 말라는 당부, 과도한 분산투자를 하지 말라는 당부, 관련 없는 통계 수치들은 무시하라는 당부 등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하기에는 그 가르침이 너무 중하다.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이후 전국 각지에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편지들이 쏟아졌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가장 많았던 사연은 주식에 투자해 그야말로 대단한 투자 수익을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그가 부연 설명한 부분이 제 10장 나의 성장주 발굴법이다. 그는 조사대상기업을 고를 때 기준으로 삼는 점, 증권회사에서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리포트는 정보원으로서 전혀 가치가 없다는 점, 기업의 경영진을 만나보기 이전에 반드시 사실 수집을 해야만 하는 이유, 조사할지 여부를 고려하는 기업과 실제로 주식을 매입하는 회사의 비율은 약 250개 기업중 한 회사인 이유 등등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그는 '1만 달러를 투자해서 10년 뒤 적게는 4만 달러에서 많게는 15만 달러까지 재산을 불릴 수 있는 분야가 이디 있는지 한 번 주위를 둘러보라'고 말한다. 일주일에 몇 시간 소파에 편히 앉은 채로 증권회사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리포트를 읽는 정도로, 그리 힘들이지 않고 이런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알기에 이런 엄청난 보상을 해주는 분야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주식시장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그만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마땅히 투입해야 하는 노력을 해야 비로소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쓴 그의 요약과 결론은 이렇다.


이 책에서 제시한 원칙을 알고, 자주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이해한다 해도 인내심이 없거나 자기 단련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가장 탁월한 투자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이 오래 전에 이런 말을 해주었다. 주식시장에서는 머리가 좋은 것보다 신경이 좋은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비록 의도하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성공적인 주식 투자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했다: "인간사에는 조류라는 게 있어서 시류를 잘 붙잡으면 큰 행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은 그야말로 주식의 본질을 깊이 깨닫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만하다. 진정한 투자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최고의 투자기회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제넘은 얘기일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모든 증권회사 및 자산운용회사에서 '필독서'로 지정해서 두루 널리 읽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또한 제 4장에 설명된 '나에게 맞는 투자활용법'을 읽어보면 소위 직접 투자를 선택할 것인지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까지 담겨져 있다.

그의 아들 케네스 L. 피셔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어가다 보면 정말 주옥 같은 구절들을 수없이 발견하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중요한 구절에 밑줄을 긋거나 별표를 달게 마련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런 작업이 너무나 잦다 보니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서야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점은 한편으로는 여러가지 안타까운 현실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제대로 쓰여진 투자관련 서적이 우리나라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1934년에 초판이 나온 벤저민 그레이엄의『증권분석(Security Analysis)』같은 책이 아직까지 번역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단적인 예이다. 

버펫은 네브래스카 대학 4학년에 재학중이던 열아홉살 때 그레이엄의 고전《현명한 투자자》를 읽었다. 그는 그 경험을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의 바울'에 비유하고, 이 책을 통해
'1달러를 40센트에 사는' 철학을 배웠다고 한다. 버펫은 말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여러가지 방법을 다 써 봤다. 차트를 모으고 기술적인 자료란 자료는 다 읽어보고 갖가지 정보에 귀를 기울여 봤다. 그러다가 그레이엄의《현명한 투자자》를 읽었다. 그 순간 빛을 보는 것 같았다. 광신도들이나 하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그 책에 매료되었다.' 그는 그 책을 읽기 전에는 머리로 투자하는게 아니라 기분으로 투자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워렌 버핏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어땠을까? 이번에도 그는 깊은 감동을 받은 나머지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곧장 샌프란시스코로 찾아갔었다고 한다. 버핏은 "필립 피셔는 오늘의 나를 만든 스승이다"라고 말한다. 과연 누가 당신에게 이처럼 몇 십 년에 걸친 장기적인 성공 투자의 전망을 알려주겠는가? 절대 없을 것이다. 과연 누가 실제로 한 종목을 그렇게 수십년간이나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겠는가? 단 한 사람 필립 피셔가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워렌 버핏이 또한 그를 따라 그렇게 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눈만 뜨면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몹시도 소란스럽다.  한 나라가 번영하려면 그 시민 중 상당 비율이 재산 소유자가 되어 그 나라의 정치 과정에 개인적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른바 '이해관계자 효과(stakeholder effect)'가 그것이다. 땅과 아파트가 점점 더 희소해지고 비싸짐에 따라 소수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가 또 하나 남아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상장된 '위대한 기업들'에 대해서도 작금의 부동산처럼 점점 더 희소해지고 비싸지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국내 자본의 주식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투자 소홀과 일반투자자들의 주식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 및 극도로 만연한 단기투자 관행 때문에 '위대한 기업들'의 경우에도 부동산처럼 '이해관계자의 층'이 지금보다 더욱 더 엷어진다면 그것은 또다른 불행이다.

탈산업 사회로 일컬어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시민들을 이해관계자에 편입시키기 위해 더 이상 토지만을 공급할 필요가 없다. 무한정한 비실물재산과 자본의 소유가 그 목적을 훌륭히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현대 세계의 번영의 원천으로서 자본시장이 그 추동력을 꾸준히 발휘해온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위대한 기업'에 대한 투자 또한 투자자 개인의 이익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번영에도 일정부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은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도록 하는 데 분명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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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괴감이 드는 밤......
    from Value Investing 2012-03-16 03:39 
    증시가 연일 오르고 있다.증시가 이렇게 힘차게 솟아 오른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실컷(?) 상승한 뒤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결과를 놓고 그 원인들을 새삼 되짚어 보는 건 언제나 별 실익은 없는 경우가 많다.다만, 이런 증시의 상승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이 늦은 밤에도 잠 못 이루며 일말의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건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첫째, 외국인은 정말로 짧은 기간 동안에 한국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지분을
 
 
사마천 2005-06-13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좋은 글 잘 보겠습니다. ^^

sayonara 2005-06-1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ㅅ '주옥같은 찬사들로 가득찬 리뷰의 명작'입니다. 저도 꼭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oren 2005-06-14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 덧글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평글 치고는 너무 길어서 지루하게 느껴지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좀 더 간략하게 글을 쓸 수 있도록 가다듬고, 또 좀 더 부지런히 책을 읽어서 자주 서평글을 써볼 욕심은 늘 한결같은데 그게 맘대로 잘 안되는군요. ㅋㅋㅋ

oren 2005-06-1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yonara님께서 너무 과분한 덧글을 달아주셨군요.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사마천 2005-06-14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로 지루하지 않습니다.
속 좋은 글 남겨주실 것을 믿어 마지 않습니다.

sprho 2005-06-17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까지 해서 한번 빠르게 읽어봤습니다. 참 평범한 책 처럼 보이지만, 행간을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식책도 이제는 명작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 아들 피셔가 아버지 피셔에 대하여 이야기 한 내용이 아주 흥미 진진합니다.
서평 잘 보았습니다.

oren 2005-06-17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께서 '절대로' 지루하지 않다고 말씀해 주시니 문득 아차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사마천님께서 워낙 글 읽기를 좋아하신다는 점을 제가 잠시 깜빡 잊었던 것 같습니다. ㅋㅋㅋ

oren 2005-06-17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prho님께서 좋은 말씀 남겨주셨군요.
sprho님께서 행간을 읽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은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이 책은 그저 겉보기에는 정말 평이한 문체로 쓰여져 있어서 다른 책들에 비해 특별한 느낌이 덜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저 또한 이 책 만큼 투자와 기업 경영에 관해 예리하게 씌여진 책도 흔치 않다는 생각을 절실히 느꼈답니다. 제 경우에도 이래 저래 투자할 만한 기업들을 찾기 위해 제법 많은 기업들을 탐방해보고, 또한 경영진들도 직접 여러차례 만나봤습니다만, 피셔의 글을 읽다보니 '사실 수집'이라는 한 가지 방식에 있어서도 그것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 하는 '능력의 차이'가 얼마만큼 컸었던지를 가슴깊이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피셔의 '비범하고도 놀라운 경지'에 감탄을 거듭하게 되었고, 그 어떤 '명작' 못지않은 깊은 감동을 느꼈다는 점을 다시금 덧붙이고 싶군요.

아들 피셔의 글을 읽노라면 마치 어느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래된 흑백 영화의 일부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가 그 아들에 의해 그토록 사실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쓰여졌다는 게 놀랍고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일렉트릭 유니버스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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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신이 갖고 있는 카드를 훔쳐보는 것은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신이 주사위를 던지거나 텔레파시를 사용했다는 것은 조금도 믿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신은 자연의 법칙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확률적인 법칙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신이 그때그때 주사위를 던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나는 결코 믿을 수 없습니다. -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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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어려운 과학 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재주를 타고난 모양이다. 이 책은 그가 '전기'에 관해 쓴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만약 전기가 사라진다면...... 완벽한 정전 사태가 일어나면 과연 사람이 몇 주나 버틸 수 있을까? 영화《오페라의 유령》에서 고혹적인 아리아를 들려주었던 에미 로섬(Emmy Rossum)이라는 여배우가 있다. 그녀는 이 영화에 등장하기에 앞서 출연한 어느 영화에서 엄청난 혹한에 갇혀 목숨이 간당간당한 적이 있었다. 바로 지구의 기상 이변 때문에 미국이 통째로 냉동실처럼 급속도로 얼어붙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린《투모로우》라는 영화에서의 모습이 그랬다.

그녀가 냉동 상태인 뉴욕의 도서관에 갇혀 오로지 벽난로의 '불'에만 의존해서 살아가는 상황은 이 책의 저자가 서문에서 가정한 '완벽한 정전 사태'보다도 훨씬 더 나쁜 상황의 가정이었을까? 그렇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가정대로 '만약에' 전기 자체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태양이 꺼지는 것을 목격할지도 모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말 그대로 우주의 완전한 파괴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전기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다. 전기는 무려 130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작동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신비로운 '전기'를 인류가 제대로 짚어낸 역사는 고작 200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책은 한 마디로 과학자들이 전기를 찾아내고 그것을 인간생활에 활용하게 된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쓴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두 가지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첫 째는 어린 시절에 누구나 겪었을법한 '전기'에 얽힌 다양한 경험들을 새삼 떠올려보게 된다는 점이다. 또다른 한 가지는 '전기'의 발견에 큰 업적을 남긴 '위인' 혹은 '과학자'들을 새삼 두루 접하게 된다는 점이다.

초등학교때 자연 과목을 배울 즈음에 경험했던 '전기의 추억'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 'on' 상태로 불이 들어온 채 깜빡거리면서 전기를 통(通)하게 해주었다. 꼬마전구와 전지를 직렬과 병렬로 이어붙이면서 불이 들어오는지를 확인하던 일, 건전지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깨트려보니 굵은 심과 시커먼 가루 밖에 없어서 실망스러웠던 기억, 라디오와 텔레비전 속을 뒤집어서 갖가지 모양의 트랜지스터를 구경하던 일 등등.

초등학교때 배운 자연과목은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구과학, 생물, 물리, 화학으로 세분되어 우리들의 머리를 아프게 했었던 추억도 새롭다. 패러데이의 법칙, 플레밍의 오른손과 왼손의 법칙, 암페어와 볼트와 와트, 뇌의 구조와 뉴런과 신경전달물질 등등이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오랜 기억 속의 먼지를 털고 다시금 떠오른다. 마치 내 머리 속의 비디오 재생기가 수십년 묵은 녹화 테이프를 머금은 채로 스위치가 듬성 듬성 'on'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다. 여간 흥미로운 경험이 아니다.

위대한 과학자들의 얘기 또한 마찬가지다. 위인전처럼 인물사진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곁들여 놓았다. 볼트씨, 앙페르씨, 와트씨는 기본이고, 벨, 헤르츠, 패러데이, 마르코니, 에디슨 등등 수많은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얘기들이 이 책 속에 가득하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농아였던 메이블을 위해 전화기를 발명하기 위해 애썼던 실험, 텅 빈 공간 속의 매질(媒質)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패러데이의 실험, 북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해저 전선 가설을 통한 작업 등은 결국은 거대한 공간을 뛰어넘어서도 서로 '통(通)'하고자 하는 인류의 오래된 숙원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다름아닐 것이다. 오늘날 끊임없이 기술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휴대폰, 위성 GPS, 블루투스, 무선인터넷 등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접속(Connect)'하고자 하는 인간의 필요를 좀 더 편리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특히 헤르츠가 무선 파동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는 눈물겹다. 이 발견 덕에 마르코니(노벨상 수상자)의 원거리 무선 전신이 성공하였고, 그에 따라 1895년에 설립된 마르코니사는 아직까지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1912년에 타이타닉호 침몰 소식을 2,253㎞ 떨어진 미국에서 수신하게 된 데이비드 사노프는 RCA라는 회사의 설립자가 된다. 이 회사는 라디오 기기를 판매해서 대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업계의 거목같은 존재로 여전히 남아있다.

2차 대전 당시의 영국 공군(RAF)와 독일 공군(루프트바페)의 싸움 얘기도 흥미롭다. 얼떨결에 RAF 제복을 입고 공수 침투 작전에 투입된 아마추어 무선통신사 콕스의 얘기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흥미롭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된 콕스가 침투작전에서 빼내온 레이더 기술이 '드레스덴 폭격'이라는 대규모 학살 현장에 사용된 것은 비참하다. 당시 폭격기 사령부의 군목이 이에 대해 '폭격의 윤리학 이전에 윤리학에 대한 폭격'이라고 항변했다는 대목까지도 친절히 소개해 놓았다.

실패의 원인은 기술에 있다기보다는 상상력의 부족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라는 개념을 발전시킴으로써 생각하는 기계를 고안한 앨런 튜링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트랜지스터의 발견과 실리콘의 발견은 현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 하다. 통하였느냐 혹은 안 통하였느냐 이것이 문제였고, 이 문제는 결국 '반도체'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0'과 '1'로 표현되는 이진법을 바탕으로한 '디지털 세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황의 법칙'으로도 유명한 삼성전자의 황창규 사장이 오늘날을 '규석기 시대'(Si, 실리콘의 재료인 규소와 시대를 지칭하는 구석기를 결합한 조어)라고 외치고 다니는 이유도 충분히 납득할만 하다.

'전기'에 대한 문제도 결국에는 '인간'의 문제와 연결되기 마련인가 보다. 우리의 몸 또한 전기의 작용으로 움직인다. 불멸의 코일인 DNA 조차 전기력의 통제를 받는다고 한다. 아드레날린이나 엔돌핀과 같은 수십가지 신경전달물질 또한 마찬가지이다. 전기를 띤 분자와 이온이 뇌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면 알수록, 우리는 기분에 대해 더 잘 분석하고 심지어 통제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전기의 속성을 이해하여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키는 여러 단계 중 가장 최근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깜박깜박 발생하는 단기 기억은 몇 초나 몇 분 만에 사라져버릴지 몰라도 우리의 더 깊은 기억들, 우리의 인간성 자체를 이루는 기억들은 뇌 세포들이 일으키는 전기적 역장의 배열이 유지됨에 따라 수시간, 수개월, 심지어 수십년 까지 끝없이 유지될 수 있다. ......
연약한 생명체인 우리 인간은 이 전하들이 때로 거칠게, 때로 규칙적으로, 때로 절도있게 움직이며 구성하는 세계 속에 잠시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 또한 전기가 다스리는 세상의 한 부분인 것이다."

철학자인 모티머 J. 애들러는 단지 과학 지식을 늘리기 위해서만 과학 서적을 읽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과학사나 과학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서적을 읽는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했다. 이 점에 비춰보면 보더니스의 이 책은 과학사와 과학 지식을 늘리는 데는 매우 적합한 책인 반면, 과학 철학이 다소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은 아마도 저자가 순수수학을 전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주제넘은 상상도 해보았다. 그렇지만 이 책의 말미에 덧붙여진 '더 깊이읽기'와 '더 읽을거리'를 읽고 나서는 이런 오해를 풀게 되었다.

오히려 저자는 일부러 어려운 과학 철학을 꺼내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는 수학자다운 무미건조함과 딱딱함이나 어려운 과학 철학은 좀체로 접하기 어렵다. 결국 저자는 어려운 과학 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최선을 다한 셈이다. 저자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통(通)'하기 위해 광대역 주파수를 골랐음에 틀림없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E=mc2라는 책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에너지는 질량과 빛의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 이 공식의 내용이다. 이 어려운 공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 유명한 공식이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이론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마침 어제(18일)가 아인슈타인이 타계한지 50주년이 된다고 한다. 그는 상대성 이론 등으로 우주와 시간, 공간, 물질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인물이다. 전세계는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기념해 24시간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아인슈타인의 빛 행사를 가진다고 한다. 이 빛은 우리나라에도 오늘 저녁쯤에 도착한다고 한다. 오늘처럼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발견이 주목받는 날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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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전기 (양장)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박광순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고대 로마 군단의 후예들이 중국 대륙 서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2000년 만에 밝혀졌다. 홍콩 문회보는 중국 간쑤(甘肅)성 융창(永昌)현의 한 마을에 사는 400여 명의 유럽인을 닮은 농민들이 기원전 53년 파르티아 왕국(오늘날의 이란·이라크)과의 전투 이후 행방이 끊어진 로마 집정관 크라수스의 아들을 비롯한 로마인의 후예임이 유전자 감식 조사 등을 통해 확인됐다고 지난 20일 보도했다. (이하 생략)


 - 2005. 3.25일자 조선일보 기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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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수스(기원전 115~53년)는 제1차 삼두(三頭)정치 당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던 로마의 정치인이다. 그는 기원전 53년, 파르티아 왕국 원정에 나섰다가 ‘카래의 전투’에서 본인은 전사하고 병사들은 대부분 몰살당하거나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고 한다. 이때 제1군단장으로 참전했던 크라수스의 아들 푸블리우스 크라수스는 당시 6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포위망을 탈출했으나 로마로 귀환하지 않고 사라져, 지금까지 행방이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크라수스와 그의 아들들은 카이사르가 쓴《갈리아 전기》에도 여러번 등장한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전쟁의 기록은 B.C. 58년 부터 B.C. 51년까지 8년 동안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와 함께 집정관을 맡았던 크라수스는 이 책의 제1권(B.C. 58년)과 제4권(B.C. 54년)에 등장하며, 그의 두 아들 가운데 M.크라수스는 제5권(B.C. 54년)과 제6권(B.C. 53년)에 등장한다. 정작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았던 푸블리우스 크라수스(크라수스의 작은 아들)는 갈리아 전기에서 이들 3父子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제1권, 제2권 및 제3권에 걸쳐서 여러번 등장하며, 카이사르 휘하에서 제7군단장으로서 맹활약을 펼친 몹시 젊고 뛰어난 장군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카이사르는 고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장군, 역사가, 웅변가, 법률가, 정치가, 시인, 건축가, 수학자 등 실로 여러 방면에서 두루 탁월한 천재성과 예지를 발휘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에 관한 얘기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학작품과 예술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기도 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카이사르의 저작이 매우 방대하고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갈리아 전기》와《내란기》단 둘 뿐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몽테뉴로 하여금 카이사르에 대해 "가장 명석한, 가장 웅변적인, 가장 진지한 역사가"로 찬양케 한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또 순수한 라틴어로 씌여진 데다가 문학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가치를 지닌 덕분에 유럽 각국의 학생들의 교재로서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들과 그들의 용맹과 지략들을 떠올려보면 일견 동양의 스테디셀러인 '삼국지'와 닮은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매우 꾸밈없고 평이한 문체'가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서 가운데 그 문체가 힘차고 표현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모범을 보여주는 한 전형이 되고 있지만, 전쟁을 다룬 책 치고는 박진감 넘치는 묘사와 웅대한 스케일을 느끼기에는 다소 거리가 먼 책이어서 활용도 면에서 보더라도 '교과서'라는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역사는 모름지기 모방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고 보았다. 고대로부터의 전쟁 영웅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알렉산더 대왕은 아킬레스를 닮고자 했으며, 카이사르는 알렉산더 대왕을, 또한 나폴레옹은 카이사르를 닮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주무대가 프랑스이기도 하지만 2천년 전에 벌어졌던 로마군 전쟁의 흔적들이 1,800년대에 더욱 활발하게 발굴되었던 이유 또한 나폴레옹이 생전에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면서도 이 책을 늘 가까이 두고 읽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 책은 모두 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마다 한 해 동안의 여러 전쟁과 그 전개과정 및 마무리까지가 무척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역사적 무대가 기원전이라는 점 및 당시까지 미개척의 상태였던 갈리아 지방에 대한 원정의 기록이라는 점 때문에 두 가지의 큰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무수히 많은 고대의 지명과 인명의 등장이고, 또 하나는 매우 많은 부족명의 등장이다. 이 책 주석의 상당부분이 옛 지명에 대응하는 오늘날의 지명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으며, 책 뒷부분에도 부족 색인과 지명 색인이 여러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 책은 또한 본질적으로 카이사르가 로마 시민들에게 자신을 비롯한 로마 군대의 '전시 활약상'에 대한 '보도 자료'로서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책이다. 따라서 책 내용 또한 수많은 전쟁에서의 군대의 이동 경로, 군수물자의 보급 상황, 진지와 보루의 구축, 적들의 움직임과 적들과의 각종 협상, 전투 상황, 그리고 전쟁의 결과들에 대한 기록들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압권은 갈리아 지방의 여러 민족이 수많은 패전과 복속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베르킹게토릭스라는 최후의 지휘관 아래 총결집하여 카이사르와 로마군에 대해 최후의 대반격을 벌이는 대목이다. 이 전쟁은 B.C. 52년에 일어난 '알레시아의 전쟁'으로 일컬어지는데, 각 진영 모두 수십만의 정예군을 총동원하였고, 숨가쁘게 전개되는 전쟁 상황의 긴박함과 최후의 건곤일척을 다툰다는 점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마치 고대의 전쟁 영화 가운데『트로이』나『알렉산더』에서의 웅장한 대전투 장면이 떠오를만큼 멋진 전쟁의 기록을 보여준다. 이 당시의 일이 카이사르의 편지로 로마에 알려지자 당시로서는 사상 최장 기록을 세운 '20일간의 감사제'가 벌어졌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을 정복하는 동안에 그는 무수히 많은 전쟁에서 거의 대부분을 완승으로 이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로마인 최초로 라인강을 두 번이나 넘어가서 게르만을 비롯한 숲 속의 야만족들을 복속시켰으며, 오늘날의 영국땅인 브리타니아를 정복하기 위해서 도버 해협을 두 번씩이나 건너갔다. 또한 알프스 산맥과 피레네 산맥을 비롯한 온갖 오지와 험지를 마다않고 '로마의 영광'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 누비고 다녔다.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몇 해 전 유럽 여행길에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던 도중에 한국인 여행 가이드가 알려주던 놀랄만한 얘기 하나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도로는 2000년 전 로마군들이 닦아놓은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카이사르는 유럽의 역사를 포함한 로마의 역사 자체를 뒤바꾼 인물이다. 그는 문명화되지 못한 갈리아 지방을 복속시킴으로써 로마의 기준과 정복자의 논리에 맞는 '문명화'를 이뤘다. 그는 로마의 국경을 갈리아지방에까지 확대한 결과로서 사실상 로마의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두려움을 느낀 로마 원로원이 기원전 49년에 그의 소환을 결의하자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너 제국의 수도로 진격한다. 마침내 내전을 승리로 이끈 그는 실질적으로 세계의 지배자가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카이사르의 유명한 연설문은 기원전 47년의 또다른 전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결과보고였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46년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딕타토르에 오름으로써 사실상의 1인 지배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2년 뒤 민중은 그를 왕으로 추대하고 안토니우스는 그에게 왕관을 증정한다. 그의 나이가 57세였던 기원전 44년에 그는 갈리아 원정에서 맹활약했던 그의 부하장군 브루투스가 주동이 된 음모단체에 의해 원로원에서 피살되고 만다. '브루투스여, 너마저!"라는 그의 마지막 외침마저 당대의 명연설가답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의 죽음도 극적이었다.

그가 1년을 365일로 바꿔서 만든 율리우스력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가 태어난 7월을 그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어 줄라이(July)로 개명하고, 8월을 오거스트(August)로 부르는 이유도 그의 양아들이자 로마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처럼 다방면에 걸쳐 뛰어났던 인물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없었다는 말이 실감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불멸의 이순신'이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도 카이사르처럼 '난중일기'라는 훌륭한 전기를 우리들에게 남겨놓았다. 수많은 역경을 극복한 끝에 마침내 수군의 지휘관에 오르고,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 한 순간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필생즉사(必生則死)의 각오로 병사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왜적의 침략을 막아냈으며, 전쟁터의 갑판 위에서 최후를 맞은 일순간까지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던 충무공! 여태껏 난중일기도 제대로 읽지 못했으며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도 어쩌다 가끔씩 봐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드라마라도 꼬박 꼬박 챙겨보는 것이 충무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마침 드라마의 전개가 왜적들과의 해상전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본격적인 재미는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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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웅들의 '운명'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4-02-12 11:12 
    내 생각으로는 행운과 불운은 두 가지 최고의 권력이다. 인간의 예지가 운의 역할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이다. - 몽테뉴 * *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들과는 다른 운명을 타고 났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잉태할 때는 물론이고 태어나고 자라면서 온갖 믿기 어려운 전설들을 쏟아낸다. 전쟁터에서의 기적같은 활약들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그들이 최후에 이르러 자신들의 찬란했던 생을 마감하는 절정의
 
 
Chopin 2005-04-1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서 카이사르를 알고 있습니다. 카이사르를 두고 역사가 몸젠은 "로마가 낳은 유일한 창조적 천재" 라고 했다지요.~~
위의 책에서는 카이사르가 사실상의 로마 제정의 창안자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정말 카이사르는 천재라고 부를만 하다고 생각해요. 갈리아 전기에서의 카이사르의 문체는 그 독특함으로 명성이 높더군요. 하지만 저는 읽을 엄두가 안 나네요.~~
생각건데 카이사르는 우리나라의 영양왕이나 이순신에 비할 만 한 것 같네요.^^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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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 다윈,「비글호 항해기」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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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전형적인 68세대이다. 2002년에 그가 오랜 지병으로 숨졌을때 뉴욕타임스는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20세기의 과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또한 그는 과학의 대중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며 많은 과학 저서를 발간한 대중적인 저술가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1981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저자의 대표적인 역작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하면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전반을 통해서 그는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갖가지 '오해'의 역사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생물학적 결정론의 갖가지 오류들을 찾아내고, 이를 논증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차례대로 그 허구를 무너뜨린다.

'인간'을 잘못된 척도로 삼은 역사는 놀랄만큼 그 뿌리가 깊다. 그래서 프로타고라스의 유명한 아포리즘(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에 대한 패러디에서 따온 이 책의 원제(원제는 The Mismeasure of Man이다.  즉 '인간이라는 잘못된 척도'이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의 의미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오해의 오랜 역사까지 느껴질만큼 다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최초로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는 그에 대한 벌로서 밤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끔직한 형벌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간은 낮이면 또다시 자라난다. 고대 신화는 오늘날에 와서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20세기 이후 인류는 DNA의 발견과 게놈 지도 및 줄기세포 연구 등을 통해 생물학 및 생명과학 분야의 놀라운 발견들을 더욱 빠른 속도로 진척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여러 '과학적 발견' 또한 불의 발견처럼 늘 인간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면서 동시에 커다란 위험을 보여주는 데 예외일 수는 없다.

이 책에서 '불의 발견'에 대응되는 키워드는 소위 IQ라는 용어로 물화(物化)되어온 인간의 '지능'에 관한 발견이다. 그리고 '지능'으로 대표되는 편리한 도구의 발견은 IQ테스트라는 일순간적 측정에 의해 막대한 권능을 부여받는다. IQ로 측정된 인간의 '지능'이 인간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분류 라벨 혹은 일종의 바코드처럼 물화함에 따라 인류사회에 가해진 죄과들은 무수히 많다. 인종별 IQ 수치에 대한 서열화와 분류는 미국에서의 이민제한법을 낳게 되고,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식별하기 위한 IQ테스트는 교육 불능이라는 낙인을 찍는 데 오용되어 왔으며, 인종차별적 폭력과 편협한 국수주의들이 난무한 원인의 일단을 제공하는 일에도 나름대로 기여해왔다.

사실 지능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유전적) 차이에 대한 갖가지 오해들에 대한 역사는 매우 뿌리깊은 데다가 음험하기까지도 하다. 이 책에서 굴드의 날카로운 비판 앞에 속수무책으로 오류를 드러내는 유명한 과학적(?) 연구들만 대략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뇌의 크기가 지능과 연관된다는 신화를 만들어낸 폴 브로카의 연구, 네오테니(neoteny)라고 불리는 지체발생 현상과 귀선유전(atavistic)의 특징을 통해서 인간의 미개성과 '원숭이성'을 찾아내려 애쓴 연구, 해부학적이고 생리학적인 특징들로 사회적 낙인의 도구로 삼으려한 롬브로소의 범죄인류학, 인간에 대한 서열화와 딱지붙이기의 도구로 전락한 IQ라는 발명품에 대한 연구 등......

인간의 '지능'이 인종과 계층과 성별에 따라 다르다고 해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차별 마저 정당화하는 시도들은 역사적으로 인류가 무수히 겪어온 반복적 오류들의 전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이 생물학의 명령임을 인정하기 위한 근거들을 마련하기 위해 시도된 온갖 과학적 연구와 주장들의 오류들을 파헤치기 위해 열정적인 학문적 연구와 노력을 쏟아붓는다. 이 책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을 자랑하고 있다고는 하나, 굴드 자신이 찾아낸 수백년 혹은 수십년 전에 씌여진 먼지가 수북이 덮힌 서류뭉치 더미 속의 '인간에 대한 오해의 흔적들'의 엄청난 분량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 책에서 굴드가 찾아내고자 애쓴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의 선입관과 편견과 피암시성-무의식적 편향에 의한 집착 또는 '객관적인' 정량적 자료가 선입관에 이끌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경향성-들에 관한 저자의 눈부신 성찰은 이 책의 가치를 드높이는 또 하나의 색다른 매력이다.

이 대목은 소위 볼테르의 신에 대한 유명한 경구(만약 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를 창조할 필요가 있었겠는가)를 생각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객관성이라는 가면을 쓴 공유된 도그마에 대해 무언가 끊임없이 교훈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론은 사실로부터 얻어지는 냉엄한 귀납이 아니다. 가장 창조적인 이론은 사실에 상상적 관점이 가해진 것이며, 그 상상력의 근원 역시 대단히 문화적인 것이다....... 결정론자들은 흔히 과학이 사회와 정치의 오염에서 자유로운 객관적 지식이라는 전통적 권위에 호소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펴왔다. 이들은 스스로를 엄격한 진리의 징발관으로 묘사하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감상주의자, 공상가, 그리고 몽상적 사상가로 표현했다."

굴드의 표현대로 '기대가 행위의 강력한 지침이 된 사례들'은 이 책에서 무수히 등장한다. 그래서 날조가 필연이 된 여러가지 허구적인 주장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굴드의 손 끝을 떠나 이 책 속에 고스란히 정체를 드러내고 만다. 실증적 연구에 의해 하나의 객관적 이론으로 정립된 시대적 노력들이 사기극과 조작을 거쳤음이 분명해짐에 따라 낡은 사고의 오류와 악취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끊임없이 등장을 반복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주제는 그의 영웅인 찰스 다윈이 노예제도에 대해『비글호 항해기』에서 탁월하고도 통렬하게 비판한 대목인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생물학적 선언에 의해 희망이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의 고통을 더 이상 만들어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생물학자들은 인종 사이의 전체적인 유전적 차이는 놀랄 만큼 작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즉 어떤 인종에게는 존재하지만 나머지 인종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종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엄청난 대량학살이 일어나서 뉴기니의 깊은 삼림 속에 사는 작은 부족이 유일한 생존자로 남았다 해도 오늘날 50억 인구의 무수한 집단들 속에 표현되어 있는 모든 유전적 변이는 보존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굴드의 주장이다.

인간의 다양성을 지리적 고려에서 계층적 서열화로 이행시킨 것은 서양 과학사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변화를 잘 나타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철도나 핵폭탄에는 못미쳐도, 그 변화는 우리들의 집단적 삶과 민족성에 엄청난 실질적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가장 큰 지적 모험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것은 낡은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적 구조를 구축할 필요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지적 추구에서 철저히 새로운 이해를 얻었을 때 느끼는 흥분만큼 달콤하고 훌륭한 보상은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진정한 학자들을 감동시키고, 우리 이외의 사람들에게 호된 충격을 주는 마음속으로의 여행이라고 말한다.

하버드 대학교의 지질학과 동물학 교수로 재직했던 굴드는 과학 자체를 사회로부터 분리된 객관적이고 균일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과학을 가장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평생에 걸쳐서 모색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숱한 과학적인 연구와 주장들에 대해서도 그 '오해'의 발단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문제인가를 그만의 예리하고 독특한 성찰을 통해 분석해 낸다.

오늘날 우리는 단지 과학 지식을 늘리기 위해서 과학 서적을 읽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과학사나 과학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서적을 읽는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철학자인 모티머 J. 애들러는 과학이 발전한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사실, 명제, 논증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방법을 추적하는 것은 가장 성공적인 인간 이성 활동에 참여해 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그는 과학적 객관성이란 '편견의 부재'가 아니며, 오히려 이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객관성을 낳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학 서적에 있는 귀납적 논증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바탕으로 보고하는 증거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과학 서적이 지니는 유용성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오히려 굴드는 이 책에서 편견에 바탕을 둔 증거들의 허구성과 논증의 오류들을 밝혀내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애들러의 주장을 역설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모티머 J. 애들러의 말을 빌려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몇 가지 해결할 수 없는 인간적인 문제가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세상 사이는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관계다. 자연과 그 법칙, 그리고 존재와 생성에 대한 최종적인 이해를 아직 아무도 얻지 못한 과학이나 철학 분야에만 해당되는 소리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인간과 하나님처럼 일상적인 관계도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위대한 책들은 이에 관해 좀더 잘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생각하는 사람들이 썼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논적인 사회생물학의 주창자 에드워드 윌슨이 쓴
인간 본성에 대하여라는 책이나,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도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에드워드 윌슨과 리처드 도킨스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과학적 성찰에 대한 태도 또한 그의  사회주의적 성향 내지는 "정치적 도그마"와 무관하지 않음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있기도 하다.

조금 덧붙이자면, 진작에 사두고 여태껏 읽어 보지 못한 두 권의 책이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나를 압박해 옴을 느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한 권은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부제를 단 매트 리들리의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이라는 책이다. 또 한 권은 스티븐 제이 굴드를 환경결정론주의자라고 비판한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이라는 책이다. 특히 스티븐 핑커의 책은 901쪽이라는 엄청난 분량과 4만원이라는 책값이 주는 압박감이 만만치 않지만, '인간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 아울러 나 자신 속에 숨어있는 여러 종류의 편견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즐겁게 읽어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100% 유전적 근시도 20달러짜리 안경으로 교정할 수 있는데......" (본문 中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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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
    from Value Investing 2013-12-30 15:12 
    시간이 지나간다. 저만치 흘러가는 시간의 아득한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현기증부터 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시간'을 두고 하필 이 즈음에 굳이 '전에' '있었던 것' 혹은 '앞으로' '있을 것'이라고 기필코 '둘로 갈라놓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 * * 프로이트가 간과한 '엄청난 시간적 규모에 대한 이해'인류의 소박한 자존심은 역사 속에서 과학적 진보를 통해 두 차례나 큰 상처를 입었다. 첫째로 갈릴레이의 지동설은
 
 
oren 2005-04-1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zahir님. 이 리뷰는《인간에 대한 오해》에 대해 쓴 것이 맞습니다. 알라딘 측의 의도인지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서평글 속에 참고삼아 인용한 책들에서도 이 리뷰글이 동시에 올려져있다는게 다소 혼란을 주고 있는게 문제입니다. '링크' 상태로 인용한 점이 문제로 보입니다만, 일부러 '링크' 상태를 해제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뷰글이 잘못 올려진 것처럼 느껴지는 '오해'는 알라딘 측의 잘못된 시스템에 의해 비롯되었겠지만 그 죄는 별로 '중대'하지 않다고 봅니다. ㅋㅋㅋ
 

운세가 좋지 않을 때는 독서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홀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독립불구’(獨立不懼: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음)하고 ‘둔세무민’(遁世無悶:세상과 떨어져도 근심이 없음)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독서의 습관에서 나온다. 독서를 통하여 불운을 견딜 수 있었던 사람 가운데는 중세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관이었던 마키아벨리도 포함된다.

마흔셋의 나이에 반체제 사건에 연루되면서 잘 나가던 인생이 곤두박질친다. 직장에서 잘리고, 10년 봉급에 해당하는 액수의 벌금을 물었는가 하면, 감방생활을 거쳤다. 그는 피렌체에서 쫓겨나 시골의 허름한 산장에서 처자식과 함께 생계를 유지해야만 하였다.

낮에는 주막집에서 시골의 장돌뱅이들과 어울렸지만, 밤이 되면 흙으로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책이 가득한 서재로 돌아가 독서에 몰입하곤 하였다.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한길사)에서 그 대목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예절을 갖춘 복장으로 몸을 정제한 다음, 옛 사람들이 있는 옛 궁전에 입궐하지… 그곳에서 나는 부끄럼 없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어 보곤 하지. 그들도 인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대답해 준다네. 그렇게 보내는 네 시간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네.”

만약 마키아벨리가 독서하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이 시절에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양의 식자층들은 어땠는가. 중국 당나라의 관료들은 관청에서 퇴근하면 부인 자식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에 곧바로 서재로 들어가곤 하였다.

가장이 한번 서재로 들어가면 누구도 그 독서를 방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정년 퇴직을 하면, ‘그 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이제야 마음놓고 실컷 읽을 수 있겠구나!’ 하면서 더욱 독서에 몰입하였다고 한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조기 퇴직이 대세이다. 항산(恒産)도 없는데, 항직(恒職)도 없으니, 항심(恒心)도 어려운 ‘삼난항’(三難恒)의 시대가 된 것이다. 삼난항의 시대에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려면 책을 붙잡아야 한다.

[조선일보 2005-02-25 17: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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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5-02-2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조선일보는 별로라도.
독서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