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2005-01-17 12:41]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부자들도 사람이지만, 때때로 그들의 투자 안목은 예술만큼 길다. 지금 내가 산 그림 한 장이 언젠가는 사상 최고의 예술품이 될 지 모른다는 의미에서 투자는 예술보다 더 길 수도 있겠다.
2004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 한 장의 그림이 매물로 나왔다. `Garcon a la Pipe` 영어로는 `Boy with a Pipe` 1905년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것으로 파리 유학 시절의 작품이다.
이 그림의 소유자는 존 휘트니. 주영 미국 대사를 지낸 인물이다. 그가 죽은 후 다른 그림들과 함께 부인에게 상속됐다. 1950년 휘트니 대사는 이 그림을 당시 3만달러, 지금 화폐 가치로는 22만9000달러에 사들였다.
54년 후 그림 값은 얼마나 올랐을까. 1억400만달러.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은 반 고흐의 작품 `가셰 박사의 초상`으로 1990년에 세워진 8250만달러였다.
피카소의 `파이프를 들고 있는 소년`을 누가 사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휘트니 가문이 54년간 이 그림에 투자해서 올린 수익률은 연환산으로 840%에 달한다. 이 그림을 사간 투자자(?)는 앞으로 몇십년 후 이에 버금가는 수익률을 기대한 것이었을까.
뉴욕, 런던, 유럽의 미술품 시장 규모는 연간 200억달러 수준이다. 뉴욕의 소더비 경매장에서는 한 해 27억달러,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미술품을 거래한다.
뉴욕의 미술품 시장은 5월과 11월에 절정을 이룬다. 런던에서는 2월, 6월, 7월, 12월 중요한 경매가 이뤄진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같은 메이저 경매장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진짜 큰 손들이 다루는 물건들이다. 1980년대 유럽과 일본의 신흥 부호들은 가격을 따지지 않고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휩쓸어 갔다. `가셰 박사의 초상`도 일본의 한 기업인에 낙찰돼 화제를 불러 모았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그림 가격은 1990년대 중반 급락하고 만다. 일본의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큰 손들이 시장을 빠져나간 것. 미술품 가격을 지수로 만든 `현대미술100인덱스`는 1990년 4979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1996년에는 1915포인트로 급락했다.
IT 붐이 일면서 반짝 회복하는가 했던 미술품 시장은 다시 깊은 침묵속으로 빠져들었다. 911테러가 터졌고, 전세계적으로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미술품 시장도 한 겨울을 만났다.
그러나 미국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최근 고가 미술품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소더비에서 인상주의와 현대 미술 경매를 담당하는 데이비드 노만 의장은 "미술품 가격의 상승을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1980년대 미술 시장은 경제적, 정치적 타격을 강하게 받았지만, 지금 시장은 911테러의 충격도 이겨냈다"고 말했다.
미술품 시장에도 전통 블루칩이 있고,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주가 있다. 19세기 인상파의 그림이나 램브라트와 같은 대가들의 작품은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단골 메뉴로 블루칩에 속한다.
반면 미국 플로리다 마이에미와 유럽의 중소형 경매장에 나와 있는 현대 미술, 제3세계 미술품들은 나스닥의 기술주와 같다.
마이에미의 미술품 경매상 로스 프리드만은 "예술 작품들은 포커판의 칩이 됐다"며 "가격이 저렴한 아프리카 미술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모든 투자는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가격도 낮지만, 앞으로 유명해질 것 같은 물건을 미리 사두는 것이다. 제2의 피카소, 제2의 고흐가 주변에 있는지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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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수 뉴욕특파원 (ilight@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