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백만장자
토머스 J. 스탠리 & 윌리엄 D. 댄코 지음, 홍정희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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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6년에 미국에서 출판되면서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게 약 2년 전이었는데, 그 때가 2002년의 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신용카드 과소비 붐이 일어나던 시기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이 책의 출판시기는 매우 시의적절했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담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백만장자가 되는 비결은 특별한 데 있는 게 아니라 소비에 대한 자제에 달려 있다'고 말하면서 '소비 절약의 중요성'을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판된 지 2년 여가 지난 지금, '미래에 소비할 몫'까지 미리 앞당겨 쓴 결과로서 신용불량자의 양산과 가계부채 부담의 급증 등으로 인해 극심한 내수 침체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비춰보면, 절약과 검소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스탠리 박사와 댄코 박사는 1973년 부터 무려 20여 년에 걸쳐 미국의 부유층에 대해 실시한 광범위한 조사와 인터뷰 결과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이 책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유는 '미국의 백만장자는 결코 비싼 집에 살지도 않고 고급 수입차를 몰고 다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낸 데 있다. 또한 두 저자들은 부를 축적하는 능력은 대부분의 경우 행운도, 유산도, 고학력도, 심지어 지성과도 관계가 없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부는 대개 근면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계획적이고, 자제력 있는 생활 습성으로 얻을 수 있으며,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제력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소득이 물론 부자가 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자가 되는 핵심적 요령은 소득 보다는 소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소득과 소비의 관계를 스포츠의 공격과 수비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아무리 뛰어난 공격수가 열심히 득점을 하더라도 수비가 엉망이면 높은 득점이 별 소용이 없듯이, '지출에 대한 중앙 통제가 확고히 뒷받침된 소비 습관'이 부자를 만드는 첩경임을 수많은 통계 자료를 통하여 이 책의 전체에 걸쳐서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백만장자 공식'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진짜 부자와 가짜 부자들을 여러 측면에서 비교 분석하고 있다. 백만장자 공식은 어떤 사람이 부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법으로서도 유용하며 또 장차 백만장자가 될 가능성까지도 가늠해볼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당신의 연령과 소득을 고려할 때 현재 당신의 부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부자 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당신의 나이에 상속 재산을 제외한 모든 수입원에서 나오는 세전 연간 실현 소득을 곱한다. 그 결과를 10으로 나눈다. 모든 상속 재산을 제외한 이 수치가 당신의 순재산 기대치이다.'

나이와 소득을 고려할 때 당신의 순재산이 상위 25% 이내에 든다면 당신은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PAW)'이고, 만약 하위 25%에 포함된다면 당신은 '기대 이하의 부를 축적한 사람(UAW)' 이며, 이 둘이 아니면 그저 '평균 정도의 부를 축적한 사람(AAW)'으로 분류된다. 여기서 PAW 부류에 속하려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 순재산 기대치의 2배는 되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재산이 기대치의 절반 이하라면 그는 UAW로 분류될 것이다.

PAW는 자신이 속한 나이/소득 집단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재산 축적 면에서 탁월한 사람들이다. PAW는 UAW가 지닌 재산의 4배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두 저자들이 20년간 실시한 연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PAW와 UAW의 비교이며, 진정한 부자인 PAW와 무늬만 부자인 UAW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진짜 부유층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을 밝혀냈다.

이 책에서는 또한 부와 높은 비례 관계를 보이는 요소들을 밝히고 있는데 그것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백만장자가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자영업과 부는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니며, 예산 등 소비 지출 계획을 잘 세우고, 신용카드가 적으며, 재정적 투자를 계획하고, 소득을 투자에 투입하는 시기가 빠르며,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매우 장기적으로 투자한다는 점 등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서도 부유층 자녀가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 책에서도 부유층 자녀가 평생 동안 100만 달러 이상의 부를 축적할 가능성은 5명 중 1명이고, 부모가 백만장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30명 중 1명에게만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부유층으로 분류되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3.5%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결과적으로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결국 부유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됨을 알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부유한 부모와 생산적인 자녀를 위한 규칙으로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경제적 원조'의 부작용과 자녀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설명해 놓고 있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 가운데 마지막 7장과 8장에서는 '돈이 되는 분야'와 백만장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사업가'에 관한 유익한 내용들도 담겨 있다. 특히,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평범한 사업과 부자들'에 관한 내용은 '가치투자자들의 관심 영역'이기도 해서 유익하다. 또한 사업가 또는 기업가가 되는 것도 '위험한 것'일 수 있지만, 하나의 소득원만을 가지고 있는 '고용된 사람들' 또한 위험한 상태에 있음을 지적한 점도 흥미롭다. '당신의 사장에게 청소용역업을 제공하는 사업가는 어떨까요? 그에게는 수백명의 고객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소득원이 수백개나 되는 것이지요.'

이 책에서 말하는 '부자가 되는 비밀'은 6,000년 전의 고대 도시 바빌론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토판(土板)을 바탕으로 쓴 책인《바빌론 부자들의 돈버는 지혜》에 나오는 내용과도 매우 닮아있다. 특히 다음의 두 가지는 고대에서나 지금이나 부에 이르는 원리는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이 책에서 또다시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버는 것보다 적게 써라' 그리고 '일을 즐겨라, 그러면 돈은 소리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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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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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개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생물다양성'과 '사회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는 1956년부터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이제는 대학 강단에서도 은퇴한 칠순을 넘긴 노학자이다.

또한 그는 20여 권의 과학 명저를 저술한 과학저술가로서 이 책『인간 본성에 대하여 On Human Nature』와『개미 The Ants』로 퓰리처 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그 밖에도 미국 국가과학메달, 국제생물학상, 크러포드상 등을 수상했으며, 비단 생물학뿐만 아니라 학문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 지성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최근에 와서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한 데 이어 생명복제기술의 영역까지 마음대로 넘나들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복제인간의 탄생'이라는 미증유의 새로운 신화(?)가 눈앞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과학적 유물론의 신화 탄생을 도대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또 풀어나가야될 것인지에 대해서 뜨거운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윌슨은 이미 이러한 과학적 진보가 초래하게될 필연적 논쟁들을 오래전부터 예견했던 것일까? 그는 바로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한 해결과제로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인 '생물학적 차원에서의 인간'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밝히려는 노력을 꽤나 많이 진척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새롭게 추구한 시도는 오늘날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영역으로 확고히 자리잡은 것으로서, 이 책이 출간된 1978년 당시에도 물론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윌슨의 주장은 수많은 논쟁속에 휩싸여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 본성'에 관한 탐구의 최적의 대안을 '생물학적 본성으로의 통합'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종교와 윤리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사회 행동은 결국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하며 집단생물학과 진화학적 방법론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 본성'에 관한 주제에 당면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연과학을 사회과학 및 인문학과 통합함과 동시에, 인간 본성을 자연과학의 한 부분으로서 연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은 본질적으로 사회과학이론이 자신과 가장 관련이 깊은 집단생물학 및 진화론이라는 자연과학과 접목되었을때 나타날 심오한 결과들을 다룬 사색적인 에세이'라고 저자 스스로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과학적 유물론을 지나치게 확신한다는 점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생물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현저한 거리를 줄일 시기가 도래했으며 '인간 본성'에 접근할려는 주된 추진력으로서의 '생물학적 탐구'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윌슨의 논리를 짧게 축약한 표현은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개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의 주체라는 것을 의심해볼 까닭은 없지만, 생명체란 태어나서 일정 기간을 보낸 다음 어김없이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라는 점에서 보면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면면이 명맥을 유지해 온 DNA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주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DNA를 가리켜 '불멸의 코일'이라고 부르고 생명체는 그저 '생존기계'일 뿐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른바 이러한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논리에 있어서 짚고 넘어가야 될 점 한가지가 있다. 즉 윌슨과 마찬가지로 사회생물학자들은 결코 생명체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명체는 누구나 유전과 환경의 공동 작업에 의해 형성되는 독특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완벽하게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도 모든 성품이나 사고까지 똑같은 복제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제양 둘리가 태어난 이후의 상황에서 '복제 인간'의 출현이 그렇게도 온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지라도 우리는 '유전자를 복제한 것이지 생명체를 복제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도 있어보인다. 복제 인간은 출산 시간이 많이 늦어진 쌍둥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가령 내가 만일 지금 나를 복제한다면 '그'는 유전자는 나와 완벽하게 같을지라도 그 유전자들이 발현되는 환경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인간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윌슨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본성은 무엇일까?'에 대해 결코 간단치 않는 답들을 내어놓는다. 그는 인간 본성의 두 가지 딜레마를 제시하면서 이들 딜레마로부터의 해결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첫번째 딜레마는 인간은 포함한 그 어떤 종도 자신의 유전적 역사가 부과한 의무를 초월하는 다른 어떠한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두번째 딜레마는 우리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내재한 윤리적 전제들을 놓고〈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에 있어서의 주된 도구는 물론 '유전적 진화'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수많은 생물학적 다양성들이 사례로서 제시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모든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원리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사회생물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원숭이가 이럭저럭 문화적 진화의 임계점을 건넜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영역 속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인가? 저자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진화가 대부분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인 500만 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뒤 약 만 년 전, 농경과 도시가 출현한 뒤에는 훨씬 더 대규모의 문화적 진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역사적으로 질주하는 동안에도 일부 유전적 진화가 계속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 형질 중 미미한 부분만을 형성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저자는 인간의 정신은 경험을 통해 선과 점으로 뒤엉킨 그림들이 그려지는 백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여러 대안 중에 어떤 특정한 대안에 먼저 다가가서 본능적으로 특정한 하나를 선택하고, 유아에서 어른으로 자동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도록 정해진 신축적인 계획표에 따라 육체한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는, 주변 환경을 빈틈없이 경계하는 탐색자, 즉 자치적 의사 결정 기구로 기술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오랫동안 해온 선택의 축적, 그것들의 기억, 앞으로 해야 할 선택에 대한 심사숙고, 각인된 감정들의 재경험, 이 모든 것이 정신을 구성한다고 한다. 한 개인의 의사결정은 그를 다른 인간과 구별해 주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결정에 따라붙는 규칙들은 모든 개인이 내린 결정들을 폭넓게 중첩시키고, 그리하여 인간 본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에 충분하고 강력한 수렴을 이끌어낼 수 있을 만큼 빈틈이 없다는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위대한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결정론 대 자유의지라는 커다란 역설을 붙잡고 씨름해 왔다. 신경생물학의 핵심적인 수수께끼는 자기애나 불멸의 꿈이 아니라 의지이다. 일차 작동자, 즉 번쩍이는 북들을 지휘하는 직녀는 과연 누구일까? 저자는 이에 대한 타협안은 인지심리학자들이 스키마 또는 지식구조라고 부르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의 사회적 행동은 인간 본성의 단순한 특징들이 이상 발달한 과잉 성장물들이 한데 모여 불규칙한 모자이크를 형성한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이상 발달 중 가장 극단적이고 중요한 부분은 지식의 집적과 공유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저자는 자아에 대한 지식은 현대 사회 생활 속에서 온갖 낯선 형태로 증식되어 온 생물학적 인간 본성의 요소들을 밝혀낼 것이며 , 또한 미래의 행동이 나아갈 위험한 경로와 안전한 경로를 더 정확하게 구분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총 9장으로 된 이 책의 내용 가운데 4개의 장은 인간 행동의 네 가지 기본 범주인 공격성, 성(性), 이타주의, 종교를 사회생물학 이론의 토대 위에서 다시 검토해 보는 일을 다루고 있다. 인간의 공격성은 타고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그렇다'이다. 성의 복잡성과 다의성은 성이 본래 번식용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것들은 모두 결속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성애 또한 생물학적 의미에서 정상일 뿐 아니라, 초기 인류 사회 조직의 중요한 요소로서 진화해 온 독특한 자선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무엇보다도 동성애는 결합의 한 유형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타주의도 근거를 따져보면 포유동물적인 양가감정(兩價感情,ambivalence)에 물들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숭고한 도덕 가치들의 문화적 진화가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자체 추진력을 획득하여 유전적 진화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흥미로운 철학적 의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이렇다. '유전자는 문화를 가죽끈으로 묶어놓고 있다. 끈은 상당히 길지만, 가치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유전자 풀(gene pool)에 미치는 결과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속박될 것이다.'

인간 정신 중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힘인 종교에 대한 저자의 주장도 그의 표현을 빌자면 '철저한 오만함에 의해 뒷받침되는 시원시원한 논리적 폭격은 강철 탄환처럼 안개를 뚫고' 나아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그는 종교 행위들을 유전적 이득과 진화적 변화라는 이차원 상에서 측량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과학이 고대 신화들을 하나씩 붕괴시켜 왔기 때문에, 이제 신학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마지막 발판을 딛고 서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 자체가 자연과학의 설명 대상이 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이며, 사회생물학은 유전적으로 진화하는 인간 뇌 속의 물질 구조에 작용하는 자연선택 원리를 통해, 신화의 근원 자체를 설명해 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9장의 제목은 '희망'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왜 과학정신을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다시 한번 말한다. 교조화한 세속적 이데올로기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가 뇌의 진화 산물로서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설명될 수 있다면, 종교가 지닌 도덕성의 외부 근원으로서의 힘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마침내 인간 본성의 두번째 딜레마의 해답은 현실적인 필연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회과학자들과 인문학자, 신학자들까지도 결국은 과학적 자연주의가 정신 과정 그 자체를 재정의함으로써 그들의 체계적인 탐구의 토대를 바꿔놓을 운명을 지녔다는 것을 수긍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진정한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인간에게 물리적 환경을 지배할 몇 가지 수단과 지식을 줌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윌슨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이 증가할수록, 그리고 마침내 냉철한 정신이 따뜻한 가슴과 만날 때, 인간 본성의 유전 법칙에 속박된 진화 궤도의 집합 가운데 어느 하나를 따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인류는 세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정신적 딜레마와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화 서사시의 풍요로움 속에서 고전 신화의 영웅들을 소환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실존주의적 시지프스나 재앙의 판도라 뿐만 아니라 결국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믿음으로 되돌아가서 끝끝내 맹목적인 희망을 굳건히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마지막으로 맺는 말이다.

이 책의 서평글이 윌슨의 주장에 대한 두루뭉실한 요약으로 대체되고만 느낌이 없지 않다. 그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담긴 많은 인용문구들과 수많은 함축적 의미를 지닌 책의 문장들에 대한 나 자신의 어설픈 이해로부터 상당부분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마치 힘든 운동을 통해 신체가 단련되듯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좋은 운동을 했다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이 다른 책의 참고문헌으로도 많이 인용될 만큼 유명한 책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은 점에 비춰보면 이 책을 통해 얻은 소득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는 점도 꼭 얘기하고 싶다. 2000년 '커밍 아웃'을 선언한 홍석천씨가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이 선정한 '올해 아시아의 젊은 영웅 20인'에 뽑혀 다시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도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부족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 윌슨의 주장이고보면 인간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특징들의 생물학적 토대를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의 중요성은 보다 분명해지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주는 무게와 깊이 만큼이나 많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몸 속의 유전자가 걸어온 엄청나게 머나먼 길을 내내 따라온 여행은 흥미로움과 유익함과 즐거움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가 그에 대한 벌로서 독수리에게 쪼아먹히게 될 그의 간이 낮이면 다시 자라나듯이,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심 또한 우리가 인간의 굴레에 결박되어 있는 한은 계속해서 자라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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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 - 14억 중국인의 경영 정신이 된 최고의 경전 중국인의 지혜 시리즈 1
스유엔 지음, 김태성.정윤철 옮김 / 더난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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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 청나라 시대에 활동했던 호설암(胡雪巖/후쉐엔, 1823∼1885)이라는 인물의 '상술'과 '상도'에 관해 쓴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호설암은 비록 가난하고 비천한 출신이었으나 그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다양한 특수성과 권력의 흐름을 이용하여 당대의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거대한 재산을 쌓아올렸던 인물이다.

이 책은 호설암이 직접 기록하지 않고 전업 작가가 쓴 책이다. 그런데다가 책의 형식 또한 영웅들의 일대기를 그리는 일반적인 방식인 연대기적 서술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이 책의 구성은 '호설암 어록'과 '본문' 그리고 '상경에서 배우는 경영정신'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렇다보니 호설암이라는 인물에 대한 사전 지식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에 대한 '온전한 모습'을 계속해서 이리 저리 꿰맞춰보아야 하는 어려움도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흔히 에피소드의 나열 식으로 구성된 이런 류의 책은 각 장 마다의 유기적인 연관성이 결여되기 쉬워서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주제조차도 파악하는데 애를 먹기도 하며, 때로는 각 장 마다의 단절이 주는 묘한 불편함과 산만함 등에 따라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도 들게 마련인데 이 책의 경우도 그리 예외는 아닌듯 싶다.

그렇지만 이 책은 대단히 실용적인 책일 뿐만 아니라 교과서적인 의도를 가지고 씌어진 책이기 때문에 책의 구성에서 오는 압박감은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많은 실제적인 교훈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참아낼 필요도 있다고 생각된다. 더군다나 이 책은 적지 않은 분량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인 스유엔이 호설암이라는 인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고전과 역사로부터 뽑아낸 수많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다양하고도 풍성하게 덧대어 놓았기 때문에, 저자가 골라 뽑은 호설암의 핵심적인 경영 철학과 다른 여러 본받을만한 사례들을 함께 비교해 가면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풍성하게 제공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호설암에 관한 책으로 그치지 않고 중국인의 상술에 대한 '집대성'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까지 얻게 되었다고도 생각된다. 하지만 14억 중국인의 경영 정신이 된 최고의 '경전'이라고까지 내세우는 점은 다소 지나친 과대포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 이 책의 내용에 관한 측면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다름이 아니라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될 호설암에 대한 숭배의 감정을 다소나마 누그려뜨릴 필요가 있다는 점에 관한 부분이다. 이 점은 '작가에게 맡겨진 영웅에 관한 기록들'이 흔히 내포하는 보편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에 여기서 구태여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다고도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호설암에 관한 어록과 성공담들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서 주인공에 대한 미화와 합리화에 너무 많이 애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약간은 당황스럽다. 저자의 이런 노력은 호설암이 이미 중국의 후대 상인과 기업가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될만큼 유명한 인물로 인식되고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대륙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별다른 의심없이 쉽게 받아들여질지 몰라도, 호설암이라는 인물에 대해 금시초문인 다른 많은 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할인'도 필요하겠다는 느낌을 들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 상반된 요소들을 어느 정도 고려하고 나면 이 책의 알맹이들을 끄집어 내는 일이 남는다. 호설암이 가장 중요시했던 상도의 핵심 요소를 단 3가지로 요약해 볼려고 한다면 그것은 첫째가 사람, 둘째가 신뢰, 마지막으로 셋째가 관계(關係)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를 좀 더 세분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호설암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할 수 있었던 비법은 '인재의 쓰임을 아는' 용인관과 '시세를 잘 활용하는' 시국관, '정부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관상관, '과감한 지모와 재빠른 행동을 앞세우는' 모략관, '시장을 조정하고 만들어가는' 영업관, '폭넓게 통찰하여 지리와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처세관 등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호설암의 성공을 뒷받침한 핵심 개념들은 동서고금의 성공적인 기업가들로부터 살펴볼 수 있는 지배적인 원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호설암의 경우에는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접해왔던 서구 자본주의의 경영 환경을 바탕으로 한 많은 성공적인 기업가들의 사례와는 다소 동떨어진 요소들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당연히 호설암이 주로 활동했던 무대가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있어서도 서방세계의 그것들과는 여러모로 사뭇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즉, 1,800년대 중후반의 중국 중.남부는 서구 열강들의 중국 대륙에 대한 접촉이 매우 활발해지던 시기였는데다가, 중국 내부에서는 청나라 말기의 온갖 혼란한 정치적 상황이 봉건주의적 유교문화와 양무운동 및 태평천국의 난 등과 함께 뒤엉켜 소용돌이치던 시대였었으며, 호설암의 성공 전략도 그와 같은 바탕에 최적인 전략들이 많이 포함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설암 상술의 특징들은 심리전에 매우 능통하며, 전략이 매우 치밀하다는 점과 동양적 연고주의를 최대한 활용하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정관계에 대한 다양한 로비와 뇌물수수 등 비합리적 관행까지도 핵심적인 요소로 포함시킬 만큼 독특하기도 하다.

호설암의 상술 및 상도에 관해 읽다보면 조선시대 후기의 거상이었던 임상옥의 상도와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는 느낌도 들며, 좀 더 가까이는 한국의 산업화 초창기 시대의 주역들이었던 여러 재벌 창업주들도 떠오르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특히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호설암을 특징짓는 면모들 가운데 고 정회장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열거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시대의 흐름과 외부조건을 최대한 활용 ② 과감한 처신 ③ 정치적 감각 및 관계와의 로비 ④ 성실과 신의 ⑤ 돈을 버는 진짜 마술 ⑥ 원대한 시야와 날카롭고 정확한 안목 ⑦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 자세 등

이 책에 나오는 호설암의 많은 어록들 가운데에는 중국인의 독특한 상술을 느끼게 해주는 오래된 중국의 속담들과 함께 중국 상인들의 지혜의 깊이를 풍성하게 맛볼 수 있어서 마음속에 새겨둘 만한 말들이 많이 담겨 있다. 또한 이 책의 각 장 마다 한자 두 글자로 표현되는 18가지의 비방들도 재미있는데 이들 가운데 몇 가지만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ㅇ기회를 만들 줄 아는 지혜 : 지신(砥身)
   '지(砥)'란 연마를 뜻하고 '신(身)'이란 마음의 형상을 말한다.
   스스로 마음을 갈고 닦으면 반드시 강해진다.
   자고로 좋은 일에 힘이 많이 드는 법이니,
   역경에 처했을 때는 인내하는 것이 바로 지신(砥身)이다.

ㅇ큰 상인과 작은 상인의 구별 : 용모(勇謀)
   '용勇'이란 결단을 말한다. 시기를 잘 잡아 일을 결정해야지 우유부단해서는 안된다.
   '모謀'는 남이 알지 못하는 전략을 말한다.
   '모'는 '용'의 근거가 되고 '용'은 '모'의 추진력이 된다.

ㅇ사업을 일으키는 근본 : 수활(手活)
   '수手'란 인간이 갖고 있는 도구로서 수법 또는 수단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활活'이란 활발하고 민첩한 것을 말한다.
   손이 활발하고 민첩하면 사업이 번성하고 일이 순조롭지만,
   손이 둔하고 느리면 사업이 부진하고 하는 일이 위태로워진다.

끝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살펴보니《중국인의 상술》(강효백 지음)이라는 책에서 호설암에 대해 '관상결탁으로 일어나 관상결탁으로 쓰러졌으며, 한 20년 간 반짝했다가 말년에 폭삭 망한 별로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되는 상인'으로 혹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근세의 비즈니스 환경과 역사뿐만 아니라 대륙 고유의 문화와 전통에 기반한 중국인들의 상관습과 상술 및 상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독특한 지혜들을 풍성하게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실상에 대해서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해보려는 시도로서는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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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평균 신장에 관한 친구분과의 대화내용이 무척 흥미롭군요. 제 생각에도 유전적 진화가 당연히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에 약간은 동의할 수 있겠다고 느껴지는군요. 그렇지만 자연선택에 의한 유전전 진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비교적 짧은 기간안에 청소년들의 평균 신장이 크게 늘어난 점은 영양섭취와의 관련성이 더욱 크게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한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키가 큰 유전자'가 상당한 경쟁력을 지닌 유전자였다면 인류가 진화되어 나온 기나긴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자연선택에서 이룩한 성과'의 결과물이 21세기를 사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러면 과연 사람이 신장은 앞으로도 과거에 비해 '계속해서 커져만 갈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제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라는 위대한 책을 여태껏 접해보지 못해서 자세히 아는 것이 없다는 안타까움은 있습니다만, 소위 이 문제는 '평균으로 회귀할려는 속성'이 유전자의 진화를 포함한 자연과학의 세계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아무튼 재미있는 서평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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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훌륭한 역사가는 이야기꾼 기질과 과학자로서의 재능을 겸비하고,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뿐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난 것 같은가'도 알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이미 일어났던 일을 기술하고 있으므로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일어났던 일은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 행동에 역사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문헌은 없다.
 - 모티머 J. 애들러

이 책을 지은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역사가가 아니다. 그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캘리포니아 주립대 의과대학 생리학 교수로 재직중이면서도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으로 그 영역을 점점 확장해 왔다. 그는 인간 사회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공룔에 대한 연구에 못지않게 과학적일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일들이 현대 세계를 형성했고 또 어떤 일들이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게 될 것인지를 가르쳐 줌으로써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보탬이 될 것임을 낙관하면서, 인류사를 하나의 과학으로 발전시키는 과제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가 1972년 7월에 열대의 섬 뉴기니의 해변을 거닐고 있었을 때 우연히 만난 얄리라는 정치가로부터 받은 질문은 이렇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문명)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그 질문을 받은 이후 저자는 인류의 진화, 역사, 언어 등의 여러 측면들에 대해 연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하여 바로 이 책을 통해 얄리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실로 '인류 문명의 불평등에 대한 기원'을 찾아나서는 방대하고도 거대한 스케일의 탐구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25년 간에 걸쳐 연구한 결과를 담은 이 책은 1만 3,000년에 걸친 모든 대륙의 인류의 고고학적 발자취와 문자와 언어등에 남아있는 그 흔적들을 쫓아서 우리들을 기나긴 시간과 넓디 넓은 공간들로 흥미진진하고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이 책은 인류 문명에 관한 기념비적 저서일 뿐만 아니라 모티머 J. 애들러의 말대로 이야기꾼 기질과 과학적 재능이 겸비된 훌륭한 역사가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며, 역사가 얼마나 과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누가 봐도 뚜렷이 알 수 있는 '문명의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명의 불평등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서 기존의 인습적인 지식들은 상당부분 인종적 민족적인 차이에서 그 해답을 찾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것은 현상적인 이유일 뿐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각 대륙의 인류가 지닌 타고난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경험했던 '지리적 환경적 차이' 때문이었다는 점을 이 책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또한 그러한 '지리적 환경적 차이'가 수만년 혹은 수천년간 지속되면서 각 대륙마다 식물과 동물의 작물화 가축화를 통한 식량 생산 체제가 여러모로 달라졌고, 이 중대한 차이가 결국 총, 균, 쇠로 대표되는 문명의 차이를 초래했다고 보았다. 각 대륙마다 오랫동안 누적되면서 크게 달라진 기술 문명의 차이가 인류 역사를 극단적으로 바꿔버린 사례는 무수히 많은데, 그 가운데에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항해인 콜럼버스의 1492년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1519년에 코르테스가 아스텍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멕시코 해안에 상륙한 기록에 뒤이어 1532년 피사로가 잉카제국의 황제 아우타알파를 생포한 사건에서 가장 극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을 맞게 된다.

지난 1만 3,000년 동안 일어났던 인구 교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이 구세계와 신세계 사회의 충돌에서 빚어진 최근 500년 동안의 인구교체였으며, 막상 그 교체에 걸린 시간이라는 것도 기나긴 인류 역사에 비춰보면 몇 장의 스냅 사진을 찍는 정도에 불과할 만큼 짧았던 것은 참으로 놀랍다. 일이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전개된 원인은 바로 이 책의 제목에서도 시사하는 바와 같이 총, 균, 쇠로 상징되는 기술과 문명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임은 누구나 쉽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기술문명의 발달이 더욱 가속화된 오늘날에 와서는 소위 '와해 기술'이 등장할 경우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기존 기술을 채택한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순식간에 도태되고 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코 그 변화의 속도를 더하면 더했지 늦추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도 있어서 우리에게는 훌륭한 역사적 교훈의 하나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의 차이가 인구 교체 시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기는 했어도 병원균이 맡은 지대한 역할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식량 생산과 정주형 생활로의 변모에 따라 인구의 조밀화가 이뤄짐과 아울러 동물의 가축화가 초래한 병원균의 진화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내성을 갖춘 대륙의 인류에게는 그들의 숙주들을 쉽게 무너뜨리기 어려웠지만 그러한 내성을 갖추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어 있던 신대륙 원주민들에게는 막강한 위력을 되찾을 게 뻔했다. 현대전에서 마치 탱크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위력을 뽐낸 스페인 기병대의 말(馬)들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불가항력이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들의 침투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어서 신대륙의 인구 교체에 있어서 훨씬 더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역할을 떠맡았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에 도착한 이후 한 두 세기에 걸쳐 인디언의 인구는 최대 95%가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원래 북아메리카에는 약 2,000만명 가량의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코르테스와 함께 상륙한 구대륙의 유행병은 아스텍 제국 정복시 2,000만명에 달했던 멕시코 인구를 약 160만명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으며, 수백만의 백성을 거느리고 있던 잉카제국의 황제인 아타우알파를 보란듯이 생포해버릴 때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가 거느린 오합지졸의 숫자는 불과 168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한다.

현생 인류가 나타난 이후 오랜 세월 동안의 수렵 채집민에서 벗어나서 야생 동식물을 가축화 작물화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저자는 많은 역사학적 고고학적 증거들과 아울러 생물학적 유전적 증거들을 동원한다. 이 대목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작물화 가축화하는 데 따른 어려움과 그 지난한 희생과 도전끝에 이룩한 성공 사례에 대해 높이 추켜세우기라도 하듯이 여러가지 흥미로운 얘기들을 매우 세세하게 밝혀놓기도 한다. 또한 쟁기를 사용하게 되고 농경사회의 시작과 더불어 정주형 생활이 시작되면서 산아간격이 단축되고 인구의 조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식량의 저장이 이뤄지고 왕과 관료를 비롯한 전업식 전문가가 출현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각종 '발견'과 '발명'에 대해서도 그 발생 시기의 차이와 확산 속도의 차이에 대한 중요성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인류 문명을 크게 바꿔놓은 바퀴의 발명과 문자의 발명 과정에서부터 기술 문명과 문화의 확산이 어떻게 '자가 촉매 작용'과  '퇴행 현상'을 보여주는가에 대한 유명한 역사적 사례들도 흥미롭다.

이 책은 전 인류의 역사를 한 자리에 뭉뚱그려 놓은 셈인데, 저자의 주된 주장이 '환경결정론적' 시각이라거나 '지리적 결정론'이라고만 한정하기 힘든 과학적 증거들이 너무 명쾌하다. 그렇다고 저자가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중요성이나 문화적 차이를 결코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다만 어떤 환경은 다른 환경에 비해 더 많은 재료를 구비하고 있으며 발명품을 이용할 수 있는 제반 여건도 한결 유리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고 애써 부연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꾼으로서 다양한 가정과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져가면서 역사의 예측가능성들을 시험해보는 점들도 재미있다. 저자가 역사적 교훈으로서 들려주는 몇 가지 사례들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특히 다음의 두가지 사례가 흥미롭다. 하나는 비옥한 초승달지대가 유럽에 추월당한 불운한 과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은 어쩌다 기술의 선도자 위치를 유럽에 추월당했을까?'에 대한 사례이다. 후자의 경우에 대한 대답의 단서는 엉뚱하게도 중국 조정의 두 파벌 사이의 권력 투쟁에서 찾고 있다. 많은 나라가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뒷걸음질쳤던 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는 전 인류의 기나긴 역사의 시간들을 저자가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뛰어넘는 것 말고도 한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현재 지구상에 남아있는 어느 곳이든 다루지 않는 장소가 없을 뿐더러 특히 흥미롭고도 신비롭게 여겨지는 지구상의 여러 오지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풍성하게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곳들은 아프리카 대륙과 같은 큰 땅덩어리 말고도 그 옆에 놓인 놀라운 문명의 수수께끼를 간직한 다마가스카르섬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바, 뉴기니를 거쳐 바깥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상태로 남아있던 이스터섬에까지 이른다. 이스터섬은 겨우 인구 7,000명에 더구나 인력 이외에는 다른 동력원이 전혀 없었던 섬이지만 30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들이 널려 있다.

이 책은 1997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20세기가 낳은 중요한 과학 저술의 명저로 손꼽히게 되었지만, 특히 한글로 이 책을 읽는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 커다란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해주는 점 한가지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인류의 문자를 비교 검토하면서 한글의 우수성을 설파한 논문을 1994년 미국의 과학 전문지《Discover》에 싣기도 했고, 이 책에서도 한글에 대해 '세계의 어떠한 문자 체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놀랍고도 새로운 원칙으로 만든 전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 체계'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마침 한글날이 엊그제여서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유산인가를 새삼 되새겨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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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금'에 눈이 멀어 쓴 리뷰를 올리고 난 소감......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14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참으로 고상한 한시가 있다. 그런데 내가 '상금'을 받기 위해 쓰는 글은 추워서 쓰는 글도 아니고, 또 '향기'가 날 리도 없다. 그러니 상금을 받기 위해 내가 허접한 리뷰를 여럿 쓴다고 해서 굳이 '
 
 
oren 2004-10-20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변치 못한 제 서평글에 대해 '이주의 마이리뷰'로 선정해 주시고 적립금까지 듬뿍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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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주 마이리뷰 당선작 4편입니다. 주간 마이리뷰 당선작에 선정되시면 적립금 5만원을 축하금으로 지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