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랑이 님께서 인용해 주신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를 담은 그림 때문에 문득 먼댓글을 하나 써 보고 싶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달았던 댓글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제가 가진 책에 담긴 그림은 겨울호랑이 님께서 인용해 주신 그림과 '아주 흡사한 그림'일 뿐, 그림을 그린 화가조차도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암튼 그 그림 한 장 때문에 저로서는 제법 '품'이 많이 드는 긴 글을 쓰게 되었으니 아무쪼록 시간이 나실 때 찬찬히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같은 듯 서로 다른 그림'까지 포함해서 말이지요...

 

 * * *

 

한 사람의 화가가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자주 있는 듯하다. 2년 전에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 들렀던 반 고흐 미술관 덕분에 그런 사실을 차츰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나 <감자 먹는 사람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그림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얼핏 보면 같은 그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흡사하지만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이 서로 다르다.

 

<감자 먹는 사람들>의 경우, '암스테르담'에서는 동그란 눈을 뜨고 쳐다보던 여인이 '오텔로'에서는 눈을 내리깔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두 미술관을 모두 들러서 '서로 다른 그림'을 직접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다. 나 역시 대부분의 관광객들처럼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고흐 미술관'에 들르기 바빴다. 두 그림의 차이점은 몇 권의 책을 통해 확인했을 뿐이다. 암스테르담에는 '반 고흐 미술관'이 있고, 거기서 제법 떨어진 '오텔로'에는 고흐 작품을 두 번째로 많이 소장하고 있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오텔로까지 가기가 만만찮다는 것이다. '오텔로'는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1시간 이동 후에 다시 버스를 타고 20∼30분 이동해야 다다를 수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고흐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내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약 10km를 더 이동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 있다는 '오텔로'와 셰익스피어의『오셀로』는 도대체 서로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런 사소한 궁금증까지 뒤져볼 여유는 내게 없다. 그냥 우연히 서로 닮았다고 해 두자. 우린 한시바삐 셰익스피어가 남긴 불멸의 비극 『오셀로』를 '그림'으로 구경해야 한다. 그 그림들을 둘러보고도 조금 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마저도 '그림'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제공하는 그림들은 완전 공짜다. 비행기표를 끊을 필요도 없고, 미술관 입장권을 살 필요도 없고, 자전거를 타고 10km씩 이동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러니 아무쪼록 시간적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즐겁게 감상하시도록.

 

한 가지 미리 유의할 점을 안내해야 옳겠다. 이 그림들은 그저 한번 훓어보는 것만으로도 유익하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어느 정도라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림들이 너무 낯설 지도 모르겠다. 매사가 그렇다. 여행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내게 주어진 몫은 그저 내가 봤던 '그림들'을 풍부하게 소개하는 일이다. 독자들의 수준을 미리 설정해서 '친절한 해설'까지 덧붙이는 일은 가급적 피하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할라치면 글과 그림으로 이 글이 한정없이 길어질 테니까.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별로 접하지 않은 독자들도 이 글에 담긴 '그림들' 덕분에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대한 흥미가 조금은 생기리라고 믿는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두루 접한 독자들은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어쨌든 나는 '그림'과 '음악'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만나는 일이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우선『오셀로』부터 시작하자. 어쨌든 거기가 내 이야기의 '우연한 출발점'이었으니까.

 

『오셀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 사람'이 거의 전부다. 주인공 오셀로,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 데스데모나,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이간질한 이아고.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인물들 가운데 가장 나쁜 인물이 바로 이아고다. 이 그림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리는가. 오셀로는 나이를 제법 먹은 '무어인' 장군이다. 그래서 얼굴이 검다. 베네치아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땐 '외국인'이었다. 그와 반대로 데스데모나는 베네치아 원로원 의원 브라반티오의 귀한 딸이었다. 그 사이에 낀 이아고는 오로지 '군대에서의 자리 욕심' 때문에 자신의 지휘관인 오셀로를 질투심에 사로잡혀 미치도록 만든다.

 

오셀로, 데스데모나, 이아고. 헨리 먼로(Henry Munro, 1791∼1814)

 

 

오셀로. 세바스티아노 노벨리(Sebastiano Novelli, 1853∼1916)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하는 오셀로. 로버트 알렉산더 힐링포드(1825∼1904) 

 

 

베니스의 무어 인, 오셀로. 제임스 노스코트(James Northcote, 1746∼1831), 1826년

 

 

<오셀로>의 데스데모나. 프레더릭 리튼(Frederick Leighton, 1830∼1896)

 

대략 이 정도의 그림만으로도 『오셀로』의 분위기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원작에 담긴 절묘한 감정 표현과 아름다운 문장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일지도 모르겠지만.

 

『햄릿』에 등장하는 가련한 여인 '오필리아'는 이미 그림으로 충분히 봐왔으리라 여겨진다. 그래도 그녀를 빼놓고 지나가기란 어렵다. 다시 한번 '자살'인지 '실족사'인지도 모른 채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어를 만나보자.

 

<햄릿>의 오필리아.

칼 프리드리히 빌헬름 트라우트숄프(Carl Friedrich Wilheim Trautschold, 1815∼1877, 독일)

 

『리어 왕』은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이다. 그 노인이 두 딸에게 버림받고 '황야의 폭풍' 속에 내몰린 모습이야말로 '비극의 초입'을 장식하는 상징이다. 코델리어의 죽음은 비극의 절정이고.

 

리어 왕 습작. 조슈어 레널즈(Joshua Reynolds, 1712∼1792), 1760년경.

 

 

리어 왕, 폴 팰커너 풀(Paul Falconer Poole, 1807∼1879)

 

 

《리어 왕》의 한 장면. 코델리아의 죽음.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Johann Heinrich Fussli, 1741∼1825, 스위스)

 

 

감옥에서 아버지 리어 왕을 위로하는 코델리아.

조지 윌리엄 조이(George William Joy, 1844∼1925), 1886년

 

 

리어 왕과 그의 세 딸. 윌리엄 힐튼(William Hilton, 1786∼1739).

 

 

맥베스 부인.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Johann Heinrich Füssli, 1741∼1825, 스위스)

 

 

맥베스와 세 마녀. 존 워튼(John Wotton, 1686∼1765).

 

 

맥베스. 요셉 안톤 코흐 폰 게묄데(Joseph Anton Koch von Gemälde, 1768…839, 오스트리아).

 

셰익스피어의 세계가 이토록 비극에만 치우쳐 있었더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의 머리 속엔 온갖 '사랑의 환상'이 가득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한여름 밤의 꿈』이다. 이제 막 7월이 시작되었으니 '한여름'도 시작되었다. '밤' 또한 매일 찾아 오니 '꿈'을 꾸는 일만 남았다.

 

《한여름 밤의 꿈》의 한 장면. 엉뚱한 환상 세계를 헤매고 있는 티티아나.

루돌프 칼 후버(Rudolf Carl Huber, 1839∼1896, 오스트리아)

 

 

《한여름 밤의 꿈》의 허미아와 헬레나. 조지프 세번(oseph Seven, 1793∼1879)

 

이쯤에서 방금 본 그림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는 '허미아와 헬레나의 대화'를 인용하고 넘어가자. 천진난만했던 단짝친구가 '사랑 때문에' 갈등을 겪는 모습이 그저 순진무구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헬레나

우리 둘이 나눠가진 그 모든 비밀과

여형제의 맹세와, 우리들을 갈라놓는

발 빠른 시간을 꾸짖으며 같이 보낸

그 많은 시간을 ㅡ 오, 다 잊어버렸어?

학창 시절 우정과 어린 날의 순수함도?

허미아, 우린 마치 솜씨 좋은 신들처럼

한 방석에 앉아서 둘이서 한 견본에

둘이서 한 송이를 두 바늘로 수놓으며

한 가지 음조로 같은 노래 읊조렸어.

우리 손과 옆구리와 목소리와 마음이

일체가 된 것처럼. 그렇게 우린 같이 자랐어.

겹버찌의 모습처럼 갈라진 것 같지만

갈라진 상태에서 합쳐진 것으로서

한 자루에 맺혀 있는 두 귀여운 열매였어.

몸은 둘로 보이지만 마음은 하나였지,

처음엔 둘이지만 하나에게 귀속되고

한 투구로 장식되는 방패의 두 문장처럼.

근데 네가 우리의 옛사랑을 찢어 놓고

남자들과 합세하여 불쌍한 친구를 조롱해?

이것은 친구답지, 처녀답지 않은 일로

상처는 나 홀로 느끼지만 나뿐만 아니라

여성들 모두가 이 일로 널 꾸중할 거야.

 

허미아

네 말이 격렬한 데 참 많이 놀랐다.

나는 널 경멸 안 해. 네가 날 경멸하는 것 같아.

 

 - 『한여름 밤의 꿈』, <3막 2장> 중에서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여주인공 가운데 '사랑의 본질을 가장 잘 꿰뚫어 보았던' 처녀는 로잘린드였다. 가히 '사랑의 여교사'로 불려 마땅하다. 그녀의 대사 하나하나는 유쾌하기 그지 없으면서도 '사랑의 본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녀의 모습이 몹시 궁금하던 차에 '그림'으로 그녀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 없다.

 

《뜻대로 하세요》의 아든 숲과 로절린드 역의 펙 워핑튼(Peg Woffington).

곁에 함께 있는 등장 인물은 실리아와 터치스톤.

프랜시스 헤이먼(Francis Hayman, 1708∼1776)의 작품으로 추정.

 

『뜻대로 하세요』와 닮은 듯 다른 '사랑 희극'은 『십이야』를 들 수 있다. 둘 다 주인공들이 '변장'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사랑'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십이야(12夜)》의 오시노와 바이올라. 프레더릭 리처드 피커스길(Fredrick Richard Pickergill, 1820∼1900).

 

『베니스의 상인』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이라면 여주인공 포샤의 모습이 궁금해서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아울러 유태인 상인의 현명한 딸 제시카의 모습도.

 

《베니스의 상인》의 포샤. 찰스 에드워드 페루기니(Charles Edward Perugini, 1839∼1918, 이탈리아).

 

 

《베니스의 상인》의 한 장면. "달콤한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가 않아요"라고 말하는 제시카.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ias, 1829∼1896), 1888년.

 

희극 가운데 더 소개할 그림들은 『말괄량이 길들이기』,『겨울 이야기』 , 『폭풍우』등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말괄량이 캐서리나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그림'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다. 그림 하나는 '진짜 말괄량이'로 보이지만 다른 그림은 '개선의 여지'가 다분해 보이는 모습도 흥미롭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한 장면. 오거스터스 에그(Augustus Egg, 1816∼1863).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캐서리나.

에드워드 로버트 퓨즈(Edward Robert Hughes, 1851∼1914), 1896년.

 

 

분노의 세 여신에게 둘러싸여 있는 《겨울 이야기》의 퍼디타. 뒤편에 있는 것은 공기의 요정 에어리얼.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Johann Heinrich Fussli, 1741∼1825, 스위스)

 

 

《폭풍우》의 미란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

 

희극 작품은 이쯤에서 그치고 사극으로 넘어갈 차례다. 사극은 '실존 인물'을 그렸다는 점에서 '지어낸 이야기'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다. 화가들은 인물들의 '비범한 특징'만 골라잡는 솜씨를 지녔다. 그림들만 보더라도 그 인물의 성격까지 훤히 들여다보는 듯하니 말이다. 사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최고의 캐릭터로 불리는 뚱보 '폴스타프'다. 흔히 『돈키호테』에 나오는 산초 판사에 비교되는 인물이다.

 

 

《헨리 4세》에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인 폴스타프.

조지 파이팅 플랙(George Whiting Flagg, 1816∼1897), 1834년경.

 

 

《헨리 4세_제2부》의 한 장면. 샐로우 치안 판사의 집에서 신병을 만나는 폴스타프.

제임스 더노(James Duno, 대략 1745∼1795).

 

 

헨리 왕자와 폴스타프. 래슬릿 존 포트(Laslett John Pott, 1837∼1898), 1873년.

 

『헨리 4세』1부와 2부에서 폴스타프와 함께 '주색잡기'에 빠져 놀던 '헨리 왕자'는 나중에 '헨리 5세'로 등극하자 '랭카스터 왕조' 최고의 통치자로 돌변한다. 그의 초상화 두 점을 비교해서 감상하는 것도 흥미롭다.

 

헨리 5세(1387∼1422) 초상화. 벤자민 버넬메(Benjamin Burnell, 1769∼1828).

 

 

헨리 5세. 작가 미상.

 

헨리 8세는 복잡한 여성 편력과 여섯 번의 결혼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왕비 중에는 첫 번째 왕비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 불린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였다. 『헨리 8세』는 '왕비 교체'에 따라 주변 인물들의 신세가 얼마나 자주 뒤바뀌는가를 그린 흥미로운 작품이다.

 

헨리 8세. 한스 홀바인(Hans Hollbein, 독일)풍의 작가 미상의 그림. 1536년경.

 

리처드 3세는 '잉글랜드의 수양대군'으로 불리는 요크 왕가의 마지막 왕이다. 나이 어린 조카 에드워드 5세를 몰아낸 뒤 등극했지만 조카들을 잔인하게 처리했다는 소문에 계속 시달렸다. 자신과 함께 했던 '반정의 동지들'마저 냉혹하게 숙청하면서 급속히 신뢰를 잃었다. 셰익스피어의 사극 가운데 '피비린내'를 가장 많이 풍기는 작품이다.

 

리처드 3세. 작가 미상.

 

이제야 겨우 끝이 보인다. 세익스피어의 작품들 가운데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다룬 세 작품만 언급하면 대충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작품들은 『코리올라누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이다. 코리올라누스에 대해서는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과 함께 글로도 쓴 적이 있는데(☞ 코리올라누스에 대하여...), 여기서는 앤터니 홀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담긴 그림들만 소개하는데 그치겠다. 나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코리올라누스를 다루려는 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작품 『코리올라누스』를 그린 그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코리올라누스. 삐에르 조셉 셀레스땡 프랑수아(Pierre Joseph Celestin Francois, 1759∼1854, 프랑스)

 

 

코리올라누스와 그의 어머니와 아내. 17세기

 

『줄리어스 시저』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브루투스이다. "브루투스, 너마저?" 라는 대사야말로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대사 가운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대사이기 때문이다.

 

《줄리어스 시저》의 한 장면. 브루투스 역의 에드먼드 킨(Edmund Kean).

제임스 노스코트(James Northcote(1746∼1831).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그린 그림을 볼 땐 '클레오파트라의 모습'부터 찾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찾기 어렵다. 앤터니 홀든의 책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한 장면. 샤미언과 예언자.

 

아직도 더 많은 그림들이 내 PC 속에 저장되어 있지만 이 정도로 그쳤으면 싶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만큼 많은 그림들을 담은 글을 쓰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 이런 작업은 사실 생각보다 '품'이 제법 많이 드는 작업이다. 이만하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적잖은 참고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설사 당장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집어 들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셰익스피어의 초상을 소개할 차례다. 아마도 이마가 훤히 벗겨진 초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듯하다. 그런데 네덜란드 사람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셰익스피어에 대한 느낌이 훨씬 달라진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테일러(John Taylor, 1651년 사망)의 것으로 추정. 1610년경.

 

 

셰익스피어의 초상화. 제라드 조우스트(Gerard Soest, 대략 1600∼1681, 네덜란드).

 

이렇게 많은 그림들을 아낌없이 올리고 나니 한편으로는 후련하다. 이런 그림들을 한달여 전에 사진으로 잔뜩 찍어 놨지만 글로 쓸 기회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틀 전에는 '윈도우 오류' 때문에 PC가 갑자기 '복구 불능 상태'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결국 윈도우를 새로 깔았지만 '사진 자료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드를 쪼개 '분리 보관'한 덕분이었다. 이제 글로 써서 이렇게 '서버'에 올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뿐하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느냐 마느냐는 결국 독자들의 몫이다. 내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는 '알라딘 상품 넣기'라는 진부한 작업이고... 휴~ 덥다... 한여름 밤에 시작한 작업이 한여름 낮에 겨우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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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7-01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oren님 감사합니다. 소개해주신 그림을 보니 그림과 연관된 작품이 떠오르네요. 어떤 그림은 작품의 한 장면을 묘사하기도 하는 반면, 어떤 그림은 그 안에 작품 전체 분위기가 녹아있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물론 자세한 것을 알려면 작품에 대한 설명을 알아야하겠지만요. oren님 덕분에 셰익스피어 희극, 비극, 사극에 대한 좋은 그림을 접했습니다. 아직 미처 읽지 못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때 큰 즐거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oren님 좋은 작품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17-07-01 20:24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 님 덕분에 ‘사진 정리‘ 한 번 시원하게 했습니다~~ 그것도 무더운 여름날에요.
머잖아 장맛비가 폭우처럼 쏟아질 모양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시원한 소나기‘ 자주 좀 내렸으면 싶어요^^

단발머리 2017-07-03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과 oren님 덕분에 저도 좋은사진 구경 실컷 했습니다. 안 읽은 작품이 많기는 하지만요... ^^

oren 2017-07-03 12:12   좋아요 1 | URL
안 읽은 작품들에 대한 사진들은 아무래도 좀 낯설긴 하죠.. 그래도 ‘그림‘이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셰익스피어 전집 10 : 소네트·시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 1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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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설화시(說話詩) 『루크리스의 강간』은 제목만 봐도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으리라 누구나 능히 추측할 수 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몇 가지 뚜렷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영원히 회자될 만큼 아주 유명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강간'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내면 심리 묘사'가 몹시 탁월하다는 점이다. 셋째는 이 사건 이후로 '로마의 역사'가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이야기를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로마 달력』제2권에 실린 이야기에서 빌려 왔다고 한다. 물론 이 역사적 사건은 로마 최대의 역사가였던 리비우스의 『로마사』제1권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두 원전에서 100행 정도 되는 이야기를 무려 1855행의 장시로 새롭게 창작했다. 


세익스피어가 시(詩)로 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루크레티아의 침실'로 한정되다시피 하고, 시간상으로도 '강간 사건 전후'를 모두 포함해서 1박 2일 내지 2박 3일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 그만큼 작품이 시공간적으로 몹시 압축되어 있다. 강간 사건의 배경, 동기, 발단, 진행 과정, 사건 이후 루크레티아의 자살로 이어지는 과정이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지만, 셰익스피어의 묘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내면 심리 묘사'에 극도로 집중된다. 그 긴박하고도 절체절명의 끔찍한 사건을 두고 '시간의 흐름'을 너무 오래도록 붙잡아 두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인은 '두 사람의 내면 심리 묘사'에 필요한 시행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다. 그만큼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일순간의 욕정이 일으킨 결과가 엄청나고 중요했는데, 그 사건 때문에 '두 사람의 삶' 뿐만 아니라 '로마의 역사'가 송두리째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은 둘이다. 가해자 타르퀴니우스 섹스투스는 고대 로마 왕정 시대의 마지막 왕이었던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의 막내아들이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친척이자 귀족이었던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영어로는 '루크리스')였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자신의 장인이 차지하고 있던 왕위를 찬탈한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는 자신의 아들들과 로마 귀족들을 데리고 아르데아를 포위 공격하러 로마를 벗어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왕자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의 막사에서 저녁 식사 후 담화에서 서로 '자신들의 부인의 미덕'을 칭찬하게 되었다. 그 때 로마의 귀족이었던 콜라티누스는 자신의 아내 루크레티아의 비할 데 없는 정절을 격찬했고, 왕자와 로마 귀족들은 곧바로 '현장 조사'를 위해 로마로 말을 몰았다. 과연 콜라티누스가 호언장담한 그대로였다. 다른 부인들은 모두 춤추고 흥청대거나 다른 오락을 즐기고 있었는데 오직 루크레티아만 밤이 깊었는데도 시녀들과 함께 실을 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루크레티아가 미덕만 갖춘 게 아니라 눈부신 미모까지 함께 지녔다는 점이었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몸이 달아 올랐지만 자신의 격정을 억누르고 일행과 함께 진영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곤 곧장 몰래 빠져나와 루크레티아에게 찾아가 아무런 의심도 사지 않고 '왕족 대접'을 받으며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날 밤 그는 도둑고양이처럼 루크레티아의 침실로 숨어 들어가 끝내 난폭하게 그녀를 겁탈하였고, 아침 일찍 서둘러 떠났다. 루크레티아는 비탄에 빠진 채 자결을 결심한다. 죽기 전에 그녀는 심부름꾼을 시켜 친정 아버지와 남편을 급히 불러들인다. '검은 상복'을 입은 채 비탄에 빠진 그녀는 '증인들'을 앞에 두고 강간범 타르퀴니우스의 범행을 알리고 자신의 복수를 다짐받은 직후 칼로 자결한다.


이 때 '범행 고발 현장'에 있었던 사람 가운데는 유니우스 브루투스도 있었다. 그는 먼 훗날 로마 공화정 말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했던 브루투스의 조상이었다. 강간범의 부친이자 왕이었던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가 이미 '왕위 찬탈자'였고 폭정을 일삼았던 데다가 이런 끔찍한 사건까지 겹치게 되자 브루투스는 우연히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자결한 루크레티아의 몸에서 손수 칼을 뽑으면서 '타르퀴니우스 가문 전체를 뿌리 뽑겠다'고 맹세하였고, 곧바로 루크레티아의 시신을 끌고 로마의 광장으로 가서 '독재 왕정의 폐단'과 '범죄의 만행'을 시민들에게 고발했다. 이로써 '로마 왕정'이 끝나고 로마는 '두 명의 집정관'이 통치하는 공화정이 시작되었다. 로마 최초의 집정관 두 사람이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콜라티누스였다.


이 때가 기원전 509년이었고, 루크레티아는 '고결한 여성의 상징'이 되었고 훗날 '로마 공화정의 어머니'로 불리게 되었다. 브루투스는 '로마 공화정의 창시자'가 되었다. 브루투스는 시민들에게 "로마는 앞으로 어떤 인물도 왕위에 오르도록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인물도 로마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맹세했다. 그로부터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다시 '왕관'을 욕심낸다는 소문이 로마에 파다했을 때 '브루투스'가 다시 나타나 그를 찔렀다. 브루투스의 목소리는 셰익스피어의 펜 끝에서 다시금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왜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 대항하여 그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사랑이 결코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카이사르가 죽음으로써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보다 카이사르가 살아서 모두가 그의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카이사르는 나를 사랑했기에, 나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그가 행운을 타고났기에,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그가 용감했기에,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가 야심을 품었기에, 나는 그를 죽였습니다. 그의 사랑에 대한 눈물, 그의 행운에 대한 기쁨, 그의 용기에 대한 존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심에 대해서는 죽음이 있습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중에서

 

 

어느새 '고대의 성폭행 사건'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다. 다시 『루크리스의 강간』으로 되돌아 가자. 셰익스피어는 이 시를 통해 '인간 욕망의 덧없음'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 그런데 그의 시를 감상하고 싶은 독자들한테 '이야기의 줄거리'만 간략하게 요약해 놓으면 그게 무슨 재미일까.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악명'을 깊이 새긴 강간범 타르퀴니우스의 '내면 심리 묘사'를 셰익스피어의 언어로 조금도 맛볼 수 없다면 말이다.


그래, 난 죽어도 이 추문은 살아남아

나의 금빛 문장에서 흉물이 될 것이다.

문장관은 무언가 역겨운 표시를 고안하고

내가 참 얼마나 어리석게 혹했는지 묘사하여

내 후손은 그 기록을 창피하게 여기고 

내 유골을 저주하며, 내가 그들 조상이 

아니길 바라는 게 죄라고 여기지 않을 거다.


내가 추구하는 걸 가진다면 난 뭘 얻지?

덧없는 기쁨의 한 꿈, 한 숨, 거품이지.

그 누가 순간의 환희 사서 일주일 울부짖지?

아니면 장난감 때문에 영원을 내다 팔지?

포도 한 알 때문에 누가 그 덩굴을 망치지?

어떤 바보 거지가 왕관을 만져만 보려다가

곧바로 홀에 맞아 나자빠지려 하지?

(204∼217행)


셰익스피어가 쓴 154편의 소네트 가운데서도 이처럼 '인간 성욕의 허망함'이 절절히 묘사된 작품이 있다. 그 시는『루크레티우스의 강간』(1594년)보다 훨씬 뒤인 1609년에 출간되었지만 서로 긴밀한 연관을 지닌 것처럼 읽힌다. 민음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 전집10 』에 담긴 번역보다는 다른 책에서 읽은 '해설이 곁들여진 번역'이 이 글에 더 알맞을 듯하여 그 대목을 인용해 본다.



황폐한 수치심 속에 소모된 정신은

끓어오르는 육욕의 결과; 그처럼 끓어오르기 전에는

거짓되고, 살인적이며, 잔인한 수치덩어리.

야만적이고, 극렬하며, 무례하고, 잔인하며 믿을 수 없는 것;

즐기자마자 멸시받는 것;

정신없이 쫓다가 잡자마자,

정신없이 미워지는 것, 삼킨 자 더욱 미치게 하려고

일부러 놓아 둔 미끼를 삼킨 것처럼;

쫓을 때도 미친 짓, 얻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

차지했을 때, 차지하고 있을 때, 차지하려 할 때, 언제나 극렬한 것;

할 때는 황홀경, 하고 난 뒤에는 비애감.

전에는 눈앞의 행복, 후에는 허망한 꿈.

이 세상 사람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것은

남자를 이 지옥으로 이끄는 천국을 피하는 일.


이 시의 맹렬한 에너지는 계속되는 욕망과 욕정의 파멸을 예언한다. 시에는 등장하는 인물이 없다. 잘생긴 젊은이는 먼 곳에 있고 거무스름한 여인은 암시에 의해서만 존재할 뿐이다. 이 소네트에서는 욕망이 암흑의 정신을 지닌 주인공이자 악당인 셈이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 부분에 지옥에 대한 남자들의 욕망을 묘사하는데, 지옥Hell은 엘리자베스와 자코비언 시대에는 여성의 성기인 '질'을 뜻하는 은어였다.


 - 헤럴드 블룸의 『교양인의 책읽기』, <시>


 

방금 다른 책에서 인용한 세익스피어의「소네트 129번」에도 표현되었듯이, 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남자를 이 지옥으로 이끄는 천국을 피하는 일'이다. 루크레티아를 강간한 타르퀴니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양심의 갈등이 그를 계속 '범행'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끈질기게 애원했지만 그는 끝내 '눈먼 욕정의 명령'에 굴복하고 만다. 온갖 변명과 허위 논리와 감언이설을 스스로에게 다시 늘어놓으면서.


이건 수치스럽다, 그래, 사실이 알려지면.

미움받을 일이다, 하지만 사랑엔 미움 없다.

그녀 사랑 난 애원할 텐데, 그건 남의 것이다.

이 일의 최악은 거절과 나무람뿐이다.

내 욕심은 강하여 이성으론 쉽게 못 없앤다.

경구나 늙은이의 격언을 두려워하는 자나

벽걸이 그림 보고 외경심에 빠질 거다."


이렇게 얼어붙은 양심과 불타는 욕심 새에

은총 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그는

선량한 생각은 면제를 받았다 여기고

나쁜 뜻을 언제나 유리하게 밀어붙이면서

순수하단 표시는 모두 다 한순간에

흩어지고 사라져, 매우 치사한 것이

덕행으로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239∼252행)


타르퀴니우스가 처음부터 '악의 화신'이었던 건 아니다. 그는 마치 '햄릿'을 연상시킬 정도로, 온갖 갈등을 다 겪으며 마음 속으로는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지만 끝내 자신의 욕망을 꺽지 못한다. 그가 마침내 극악무도한 악인으로 돌변하는 장면은 루크리스를 범하기 직전에 보이는 협박 장면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그는 전쟁터에서 적을 무찌르는데 써야 마땅할 칼을 뽑아 무방비 상태에 내몰린 루크레티아를 위협한다.


"루크리스." 그의 말, "난 오늘 밤 그대를

즐겨야겠는데 거절하면 폭력으로 막가겠소,

그대의 침대에서 그대를 없앨 작정이니까.

그런 다음 가치 없는 종 하나를 살해하여

그대의 명예를 그대 생명 파괴하며 허물 거요.

또 그대의 죽은 팔에 그를 놓고, 그를 품는

그대를 보고서 살해했다 맹세할 것이오.


그래서 살아남은 그대의 남편은

눈 뜬 사람 모두가 경멸하는 표적 되고,

그대의 친척들은 이 멸시에 머리를 떨구며,

그대의 자식은 무명의 서출로 얼룩지고,

그들의 체면 손상 장본인인 그대는

자신의 불륜이 가요에서 언급될 것이며

후세의 아이들이 노래 부를 것이오.

(512∼525행)


타르퀴니우스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데 더해서 루크레티우스에게 치욕과 불명예까지 뒤집어씌우려는 야비한 행위마저 서슴치 않는다. 강간이 저질러진 이후 비탄에 빠진 루크레티우스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들은 마치 고대 그리스 시인들의 비극시를 읽는 것처럼 장중하면서도 애닯다. 루크레티아는 때로는 필로멜라(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밤꾀꼬리'로 변신한 아테네의 공주. 형부에게 끔찍하게 강간 당한 뒤에 '형부의 범행'을 누설하지 못하도록 '혀'마저 뽑혔다. 나중에 언니와 함께 복수한다. ☞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복수)에 비유되기도 하고, 때로는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비참한 여인으로 전락한 왕비 헤카베에 비유되기도 한다.

 

유명한 화가들도 이 사건을 주제로 많은 그림들을 남겼다. 자신의 '거품 같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끝끝내 상대방은 물론 자신과 왕조마저도 파멸로 내몬 '인간 욕망의 비극'에 어느 누군들 왜 관심이 없었겠는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셰익스피어가 시를 통해 더욱 비극적으로 묘사한 『루크리스의 강간』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도 이미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가 여러 그림에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쉽사리 변치 않을 '인간의 욕망과 비극'이 그만큼 여러 예술가들의 영감을 끊임없이 자극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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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덧붙이는 '참고자료들'은 또다른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찾아낸 자료들이다.

 

셰익스피어는 『루크리스의 강간』을 제외하고도 특별히 '브루투스 가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작품을 조금 더 남겼다. 무엇보다도 '브루투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줄리어스 시저』가 눈에 띈다. 심지어『베니스의 상인』조차 여주인공(포르키아, 영어로는 '포샤') 이름이 '브루투스의 아내'에서 따왔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브루투스 가문 사람들'을 애기하지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여러 재미있는 일화들과 마키아벨리의『로마사론』에 담긴 일부 내용도 빼놓긴 아쉽다.

 

그런 내용들을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들과 함께 버무려서 글로 정리해 볼까 싶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글을 쓰도록 부추긴 요소들 가운데는 '그림'의 역할이 가장 컸다. 그런 그림들을 이제 겨우 싹을 내밀까 말까 하는 다른 글 때문에 꼭꼭 숨겨둘 필요는 없을 듯하여 여기에 덧붙여 놓는다.


 * * *


 

루크레티아, 1685년

세바스티아노 리치(1659∼1734, 이탈리아)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 16세기경

베첼리오 티치아노(1488∼1576, 이탈리아)



루크레티아의 자결, 1518년, 뮌헨 알테 피나코텍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 독일)



루크레티아의 자살, 1640∼1642년, 카피톨리나 미술관

귀도 레니(1573∼1642, 이탈리아)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 1610년,

루벤스(1577∼1640, 독일), 에미르타주 미술관(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걸려 있는 루벤스의 그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62701031632071002

 

 * * *

 

 

브루투스(Brutus, Lucius Junius)

 

로마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로마 공화제의 전설적 창시자

 

 

로마7왕의 마지막 왕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누이인 타르퀴니아와 마르쿠스 유니우스의 아들이다. 역사상의 인물이라고도 하지만, 실재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형제들이 독재 군주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에 의해 처형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브루투스는 바보로 위장하여 목숨을 건졌다. 브루투스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왕실 주변에서 자라면서 복수할 기회를 엿보았다.


로마에 전염병이 번져서 왕자들이 델포이신탁()을 물으러 갈 때,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브루투스를 데려갔다. 왕자들이 델포이 신전에서 누가 왕위를 계승할 것인지 묻자, 로마에 가서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입을 맞추는 자가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렸다. 브루투스는 로마에 들어서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었는데, 이는 신탁에서 말한 어머니는 인류의 어머니를 뜻하는 땅을 가리킨다고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막내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는 사촌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를 겁탈하였다. 루크레티아는 남편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자살하였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브루투스는 본색을 드러내고 폭군을 몰아내자고 주도하였다. 브루투스는 무장 봉기를 지휘하여 로마를 장악하고 왕정()을 종식시켰다.


브루투스는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와 함께 집정관으로 선출되어 로마공화제가 시작되었다. 브루투스는 민중들이 타르퀴니우스 일족인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가 집정관으로 선출된 일에 불만을 품자 사임하도록 종용하였으며, 그 결과 발레리우스 푸블리콜라가 새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다.


로마를 빼앗긴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왕위를 되찾기 위해 귀족 자제들과 손을 잡고 로마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킬 음모를 꾸몄는데, 브루투스의 두 아들이 여기에 가담한 사실이 적발되었다. 브루투스는 냉철하게 두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처형식에도 입회하였다고 한다. 이후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가 이끄는 에트루리아의 군대가 로마를 공격하였을 때, 브루투스는 그의 둘째아들 타르퀴니우스 아룬스와 1대1로 결투를 벌이다 모두 전사하였으나, 에트루리아 군대가 패배하여 물러감으로써 로마공화제는 지속되었다고 한다.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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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브루투스 가문의 인물들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7-07-01 19:23 
    "브루투스, 너 마저?" 이 짧은 대사만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것도 드물다. 이 말은 삼척동자도 웬만큼 안다. 왜?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금세 '상황 파악'이 되기 때문이다.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다가도 "아무개, 너 마저?" 라고 외칠 만한 상황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맞닥뜨렸던가. 나도 언젠가부터 저 짧은 대사를 듣고 알게 되었다. 그게 언제였는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로 오랫동안 내가 품었던 생각은 이랬다. '브루투스는 '참 나쁜
 
 
 


“만일 전 세계의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나는 뛰어 들어가 『셰익스피어 전집』과 『플라톤 전집』 그리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구해낼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 * *


셰익스피어의 대표작들만이라도 천천히 읽어 봐야지 했던 '셰익스피어 읽기'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셰익스피어 전집'을 모조리 읽는 쪽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만난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났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그의 희곡 작품들과 더불어 '셰익스피어 관련서'까지 읽다 보니 그를 만난 지 어느새 일 년쯤은 훌쩍 지난 듯한 착각마저 든다. 대략 이쯤에서 '셰익스피어에 대한 단상'을 글로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태껏 읽은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정확히 21편이다. 그걸 읽은 차례대로 나열해 보고 싶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목록이 얼마나 길게 늘아날 수 있는지도 구경할 겸.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줄리어스 시저』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좋으실 대로』

『십이야』

『잣대엔 잣대로』

『겨울 이야기』

『태풍』

『헨리 4세 1부』

『헨리 4세 2부』

『헨리 5세』

『헨리 8세』

『리처드 2세』

『리처드 3세』

『말괄량이 길들이기』


이렇게 나열해도 그의 전작품을 다 읽기 까지는 아직도 16 작품이 더 남았다. 그의 희곡 작품이 무려 37개나 되니 말이다. 아직 6할도 못 읽은 셈이다. 아직까지 미처 못 읽은 작품들은 민음사에서 출간 중인『셰익스피어 전집』시리즈가 마저 나오는 대로 천천히 읽을 작정이다.


(최종철 교수가 '전10권'을 목표로 출간한 『셰익스피어 전집』시리즈. 전집 1권, 4권, 5권 , 7권에 담긴 작품들(모두 16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걸작들이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전공 교수의 '운율을 살린 운문 번역'이면서 '가장 최신의 번역'이라는 점이다. 작품마다에 딸린 '풍부한 작품 해설'과 '충실한 주석' 등도 돋보인다. 간혹 지나친 '운문 번역'이 드라마틱한 극중 대사의 묘미를 반감시키는 면도 없지는 않다.)


(민음사 판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로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작품들도 다른 번역자의 판본으로 더러 찾아 읽었다. 신정옥 교수가 '전작품'을 완역한 '전예원' 판은 번역된지 너무 오래된 상태여서 '외국어 표기'가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고, 산문체 번역이어서 '시적인 대사'를 감상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성일 교수가 번역한 '나남'의 『리처드 2세』는 '감정을 격동시키는 대사'에 관한 번역이 특히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서문화사의 번역들도 대체로 무난했다. 몇 권의 '셰익스피어 관련서'도 매우 유익했다.)


이제부터 내 나름대로 파악한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설마 이 모든 것을 윌리엄이 썼다고 믿습니까?”


이 말은 '미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이 내뱉은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문인집안 출신도 아니고,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대학을 나온 적도 없는 시골 출신 청년이었다. 그런 인물이 어떻게 갑자기 그토록 많은 걸작을 쏟아낼 수 있었는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였다.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이 진짜로 원작자가 맞느냐는 논쟁을 키운 건 미국 여성 델리아 베이컨이었다. 그녀는 영리했지만 가난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열다섯에 소녀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떠안은 채 교사로 일하던 즈음에 그녀는 셰익스피어에 빠져들었다. 각종 기록을 세밀히 검토한 그녀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자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놀라운 결론을 내렸다. 이 유명한 얘기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도 등장한다.


선량한 베이컨: 곰팡이 냄새 어린 채. 셰익스피어가 베이컨이라는 황량한 논법.251) 한 길을 걸어가는 암호의 사기꾼들. 위대한 탐색의 탐정가들. 무슨 도시로, 위대한 명사들이여?


251) Shakespeare Bacon's wild oats. 미국의 여류 소설가 델리아 베이컨(1811∼1859,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과 인척관계라 주장함)은 그녀의 저서인 『드러난 셰익스피어 연극의 철학(Philosophy of the Plays of Shakespeare Unfolded』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썼다고 주장함. 또한 셰익스피어 작품은 그보다 학식이 많은 어떤 사람에 의하여 씌어졌을 것이라는 부정적 설도 있음.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제9장 국립도서관(스킬라와 카립디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수많은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조차 델리아 베이컨의 의견에 대해 동조 내지는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셰익스피어를 극찬한 대표적 인물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단정 짓지는 못해도 프랜시스 베이컨 등 주변 인물의 도움이 분명 있었을 거라며 델리아의 의견을 옹호했다. 에머슨과 오랜 우정을 쌓았던 토머스 칼라일도 델리아의 작업을 지지했다. 에머슨과 소로우 등과 함께 콩코드에서 함께 살았던 너대니얼 호손은 델리아의 책 출간을 은밀하게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니 마크 트웨인이 저런 말을 했다고 해서 별로 놀랄 일도 아닌 셈이다. '음모론적 시각'은 무슨 일에든 개입하기 좋아하는 법이다. 그런 얘기는 이쯤에서 그치자.


셰익스피어는 20여 년간 무려 37편의 극작품과 154편의 소네트를 썼다. 그는 무려 1,100여 명의 캐릭터를 창조하였고, 등장 인물들이 느꼈던 수만 가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2만여 개의 단어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다. 우리가 그에게 압도되는 건 작품의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비록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혹독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작가와 비평가들은 '천재가 빚은 예술작품'에 여전히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 많은 작품들이 골고루 걸작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인들조차도 각자 서사시, 비극시, 희극시 등으로 그 분야를 나뉘어 작품을 썼지만 이 인물에게만은 그런 '영역 구분'조차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는 희극 · 비극 · 사극 · 로맨스 · 소네트 · 시 등에 전방위적으로 두루 걸출했다. 또한 모든 작품들이 고유의 색깔과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10편의 사극에서조차 인물의 성격 뿐만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와 구성 등이 모두 다르다.


셰익스피어는 소년 시절 문법학교에 다닌 게 교육의 전부로 알려져 있다. 소년 셰익스피어는 이 단계에서 로마의 희극 작가 테렌티우스나 웅변가 키케로뿐 아니라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 로마 시인들의 작품을 두루 접했다. 나중에 런던으로 진출하여 극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몽테뉴의 『수상록』등으로부터 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문학의 천재답게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놀라운 재능 덕분에 그는 '원전'과는 또다른 온갖 독창적인 작품을 쏟아낼 수 있었다.

단적인 예가 초창기에 쓴 『비너스와 아도니스』란 작품이다. 오비디우스가 약 70행으로 읊은 이 짧은 이야기를 셰익스피어는 무려 1200행가량의 장시로 늘렸다. 이 무렵 셰익스피어는 사극『헨리 6세』3부작과 『리처드 3세』의 창작을 마친 신출내기 극작가였다. 이처럼 사극을 쓰다가 느닷없이 오비디우스풍의 서사시를 쓴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 작품이 출판되자마자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과 셰익스피어가 시인으로서 일약 명성을 얻었다는 점이다. 이 무렵 로버트 그린이라는 작가가 셰익스피어의 극작가로서의 성공을 시기하여 그를 "벼락출세한 까마귀"로 비하한 일이 있었는데, 셰익스피어가 보기 좋게 자신의 시적인 능력을 보여준 셈이었다.

그 작품의 제사(題詞) 또한 흥미롭다.(그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노래>에서 인용했다.)

속물들은 잡것에 혹하게 놔두고
금빛 머리 아폴로여, 저에게는
영감이 가득한 샘물 잔 내리소서.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기(1564∼1616)는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였다. 또한 유럽 사회 전체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의 거대한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후였고, 에스파냐에서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소식이 온 유럽으로 퍼져 나갈 무렵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도 시작된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때였다.『돈키호테』의 저자인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1571년)에 참가했고, 몽테뉴(1533∼1592)는 『수상록』(1580년)을 간행했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황진이가 『청산리 벽계수야』(1565년)라는 시조를 지었고, 정철이 『관동별곡』(1580년)을 발표했고,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을 완성했을 땐 임진왜란이 터져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과 노량대첩을 벌일 때였고, 『리어 왕』(1605년)과 『맥베스』(1606년)을 발표할 무렵에는 허균이 『홍길동전』(1607년)을, 허준이 『동의보감』(1613년)을 간행할 무렵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점은 당대의 독특한 시대적 배경을 '훨씬 뛰어넘는' 작품들을 썼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언제나 '살아 있으면서 고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기뻐하는 인간 그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 그의 비극이 고대 그리시 비극시인들의 '운명적 비극'과 달리 '성격적 비극'으로 불리는 이유 또한 지극히 현대적이다. 『햄릿』을 비롯한 그의 수많은 희곡 작품들이 현대에 와서도 활발하게 연극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는 자체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탁월한 예술성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의 희곡이 빛나는 또다른 이유는 문장이 너무나 절묘하고도 아름답다는 점이다. 그는 음악처럼 그 다음이 듣고 싶어지는 대사를 쓰기 위해 '운문' 형식을 특히 많이 사용했다. 또한 리듬이 넘치는 말을 사용해서 극적 효과를 높였다. 가령 '적의 아들인 로미오를 사랑하다니 어찌된 일인가'라고 말할 상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아, 로미오, 로미오, 어째서 당신의 이름은 로미오인가."

뒷날 『리어 왕』을 썼을 때, 그는 짧은 한 문장을 주인공에게 말하게 했다. "부탁하네, 이 단추를 풀어주지 않겠는가?" 이 글은 겨우 5단어로 되어 있으면서 적어도 3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옷의 단추를 풀라는 의미와 현세의 허영의 상징인 의복을 벗어버린다는 의미, 그리고 이 삶의 고뇌를 벗고 떠나고 싶다, 즉 죽고 싶다는 주인공의 비통한 소망을 포함한 의미이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황에 대응한, 유연한 살아있는 말을 쓰는 능력을 셰익스피어는 긴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통해 습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뛰어난 시란 어떤 것일까? 간결한 말에 여러 의미를 포함시킨다. 말에서 각각의 이미지가 넓어진다. 읽는 이가 분명 그러하다고 납득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저마다 나름대로 해석하는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다. 이런 시가 있다면 그것은 뛰어난 시라고 평가될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그러한 작품을 썼다. 그의 희곡작품은 극이면서 동시에 시인 극시인 것이다. 결국 셰익스피어는 시인이었고, 그가 시성(詩聖)이라고 불리는 이유와 작품의 끝없는 깊이도 거기에서 나온다.(571쪽)


 - 동서문화사,『햄릿/오델로/리어 왕/맥베드/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사상> 중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후세에 끼친 영향을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파악할 수 있을까. 문학, 연극, 음악, 미술, 영화 등 수많은 예술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이걸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그림을 그려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듯하다. 셰익스피어는 심지어 정치학과 철학, 심리학과 정신분학석 등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도 『자본론』과 『경제학·철학수고』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인용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편지'에도 셰익스피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또한 '오이디푸스 이론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 '소포클레스의 희곡과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탐닉했다고 한다.(프로이트 역시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난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작품들이 지나치게 높은 문화수준을 갖추었다는 점 때문에 '원작자'가 따로 있다고 보았던 인물이다.)


마르크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자주 읽었고, 이를 굉장히 좋아하여 매우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그리스의 아이스킬로스와 함께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극작가 중 한명으로 존경했다. 또한, 그는 작품에 등장하는 단역까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저서에도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상당히 많이 인용되고 있다.


"볼테르는 셰익스피어를 술 취한 야만인이라고 했다. 이처럼 프랑스인에게 반발심을 불러 일으킨 영국 비극의 특성 중 하나는 숭고한 것과 저속한 것, 두려운 것과 익살스러운 것, 영웅과 광대가 독특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영웅극의 서두를 이야기하는 역할을 광대역에게 맡기지는 않았다." <의회에서의 전쟁토론>(1854년)


 - 오다시마 유시, 『셰익스피어가 내가 찾아왔다』, <괴테, 톨스토이, 마르크스가 읽은 셰익스피어>


이토록 온갖 분야에 두루 영향을 끼친 셰익스피어는 과연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어떤 '사상이나 철학'을 설파하고자 했을까. 놀랍게도 셰익스피어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항상 열린 자세로'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뿐 자기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법이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작품에 제시된 세계는 '모색(摸索)으로 가득 찬 세계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어떤 사상을 배우려고 하는 건 헛된 노력일지도 모른다. 『평생독서계획』을 쓴 클리프턴 패디먼도 이 점을 간파하고 명쾌하게 결론내렸다. "그는 위대한 독창적 사상가는 아니다. 시인들은 대개 독창적 사상가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의 주특기가 아니다. 세상을 바꾸어 놓은 사상을 찾는 사람은 셰익스피어에게 물어보면 안 된다."라고.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그는 당대의 인기 최고의 드라마 작가였다. 오늘날도 사정은 비슷하다. 우리가 '인기 최고의 드라마'를 보면서 거기서 무슨 고매한 철학이나 사상을 배우려고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이런 경향은 그가 '철학'을 두고 표현하는 '극중 인물들의 대사'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에게는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 인간의 진짜 모습이다. 그는 'Philosophy(철학=논리적인 것)'이라는 말을 그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14번 사용했는데,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자. 줄리엣의 사촌을 죽여 베로나에서 추방당한 로미오는 자신을 위로하려고 논리로 설득하는 로렌스 신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추방' 얘깁니까? 철학 따윈 개나 줘버려요! 철학으로 줄리엣을 만들 수 있나요, 마을 전체를 뒤집어엎을 수 있나요, 아니면 영주님의 판결이 뒤바뀔 수 있게 하나요. 철학 따윈 아무 필요 없어요, 그러니 더 말씀 말아 주세요."


그리고 햄릿은 아버지의 망령에게서 친동생이 자신의 목숨과 왕관과 부인까지도 빼앗아갔다는 말을 듣는다. 그때까지 갖고 있던 인간관이 모두 무너진 그는 친구 호레이쇼에게 이렇게 말한다.


"호레이쇼, 이 세상에는 우리들의 철학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네." (58∼59쪽)


 - 오다시마 유시, 『셰익스피어가 내가 찾아왔다』, <셰익스피어의 인간관·역사관의 형성>


시정이 이렇더라도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이 훼손될 일은 없다.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문학의 최고봉으로 우뚝 솟아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이후에 활동한 수많은 작가들이 결코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들과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가 되었다. 오죽하면 괴테가 이런 말을 남겼을까.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면 그가 인간의 본성 전체를 모든 면에서, 그리고 모든 깊이와 모든 높이에서 철저히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이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괴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극작가나, 소설가, 시인이 모두 펜을 접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이미 셰익스피어 스스로도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여럿 참고해서 자신의 작품을 썼다. 매사가 그런 식이다. 괴테는『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는데 그 작품은 괴테가 쓴 『햄릿』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체호프의 <갈매기>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햄릿』을 다시 쓸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당한 건 아닌 셈이다. 물론 세익스피어의 작품 앞에 압도된 나머지 작가가 되는 길을 지레 포기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사람들도 많았다. 그토록 우뚝 솟은 '문학의 거봉'이 자신의 품 안에서 먹여 살릴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많을까. 이 또한 오래 전부터 반복된 '익숙한 전통'이자 당연한 귀결이긴 하지만 말이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호메로스'를 가리킨다)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크세노파네스가 어느 날 시라쿠사의 폭군 히에론에게 자기는 하인 둘을 먹여 살릴 거리도 갖지 못했다고 불평을 하자, 그가 대답했다. "뭐? 그대보다 훨씬 더 가난하던 호메로스는 아무리 죽을 지경이언정 만 명 이상의 학자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파나이티오스가 플라톤을 철학자들의 호메로스라고 말했을 때에, 이 말에 무슨 부족한 것이 있었던가?


 - 몽테뉴, 『수상록』,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셰익스피어의 삶이 미스터리에 둘러싸인 까닭은 그가 '작품' 말고는 다른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필 원고는 전무하고 그가 서명한 서류 몇 건과 출생 및 사망 증명서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의 작품을 통해 거꾸로 '작가의 삶'을 연구하고 밝혀 보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듯하다. 정답이 없는 문제만큼 마음놓고 계속 떠들 수 있는 주제도 드물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전기'만 하더라도 이미 얼마나 많이 쓰여졌던가. 구매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도서관에서 대충 훑어 보기만 했던 책들 가운데서도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매력적인 책들이 꽤나 많았다. 가령 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와 리처드 폴 로의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 같은 책들이 그랬다. 그런데 이런 류의 책들은 잘만 읽으면 무척이나 유익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달려들다 보면 도리어 쓰디쓴 맛만 안겨주는 고약한 책으로 돌변하기도 쉽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감동을 두루 충분히 맛보지 않은 상태에서 읽으면 저자가 느낀 만큼의 깊은 감흥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치 몸이 몹시 허약한 사람한테는 비싼 보약조차도 함부로 처방하기가 어려운 경우를 닮았다고나 할까.

셰익스피어 원작자를 둘러싼 논쟁이나 음모론들은 사실 일반 독자들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셰익스피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승패'가 달린 문제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셰익스피어에 관한 일반 독자들의 문제는 언제나 셰익스피어의 숱한 명작들을 직접 읽느냐 마느냐에 달렸다. 그것이 『햄릿』이든 『로미오와 줄리엣』이든 『한여름 밤의 꿈』이든 『겨울 이야기』든 도대체 무슨 상관이랴. 선택은 언제나 독자들의 '뜻'에 달렸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제목만으로도 이 글을 맺을 수 있다는 건 유쾌하다.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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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쓰고 나니 문득 '생각의 역사'에서 셰익스피어가 차지하는 위상은 어떤 것일까가 궁금했다. 결론은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문학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사상'에는 별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특히 "인물들은 과거의 고전으로부터 영감을 끌어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인문주의와 전혀 무관하며, 학문에 의존하지도 않는다."라는 몹시 썰렁한(?) 평가는 '셰익스피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르네상스와 함께 인류 전체가 '죽음보다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나 힘찬 도약을 위해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던 시기가 바로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였다. "철학도 아니고 교훈 이야기도 아니다. …… 용기와 체념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대한 태도다."라는 격찬을 받았던 『돈키호테』도 바로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쓰여졌다. 그런 시대적 배경에 비춰 보면 '생각의 역사'에서 셰익스피어가 차지하는 위치는 아무리 봐도 좀 유별나고 독특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그 자체가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이라고 극찬했던 에머슨도 이런 측면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천지만물을 자기 뜻대로 다룰 수가 있었는데 결국 그것들은 최상의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것이 되지는 못했다. 약간 짓궂게 표현한다면 그는 '인류 최고 향연의 사회자'로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 셰익스피어가 등장했다.


17세기 초까지 '연기'라는 용어는 런던의 연극 배우에게만 적용되었다. 이는 '변사'의 지위가 크게 높아졌고 인물 연기와 성격 묘사가 한층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배우는 아직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공연 목록이 관례화되면서 전혀 다른 여러 역할을 거의 연속적으로 소화하는 배우의 능력이 중요해지자 사람들은 배우의 다재다능함을 높이 평가했다. 그래도 1604∼1605년에 존 던은 『조신 도서목록』을 쓰면서 희곡을 목록에 넣지 않았다. 희곡은 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희곡은 두 가지 필수 요소를 포함했다. 하나는 당시의 기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의 사실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정서적 직접성이다(초기 런던의 연극에는 저널리즘의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연극이 당시 관객들도 깨닫고 있는 변화하는 세계를 반영했다는 점일 것이다. 사회적 상황은 변화하고 있었다. 낡은 규칙들이 붕괴하고, 사적인 독서가 늘고, 사람들의 경제 형편이 갈수록 좋아졌다.


이런 세계에 셰익스피어가 등장했다. 헤럴드 블룸은 적절한 질문을 던진다. 셰익스피어는 우연이었을까? 어쨌든 그는 처음부터 엄청난 재능을 보이지는 못했다. 블룸이 말하듯이 셰익스피어가 말로처럼 스물아홉 살에 죽었다면 그의 걸작은 전혀 인상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 말로가 죽고 5년 뒤 셰익스피어는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2부작『헨리 4세』를 필두로 선배이자 라이벌을 뛰어넘게 된다. 보텀, 샤일록, 폴스타프는『존 왕』의 팔콘브리지를 능가하며, 특히『로미오와 줄리엣』의 머큐시오는 말로의 재능과 관심을 크게 뛰어넘은 새로운 극중 인물을 보여준다. …… 폴스타프가 창조된 뒤 13∼14년 동안 뛰어난 극중 인물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로잘린드, 햄릿, 오셀로, 이아고, 리어, 에드먼드, 맥베스, 클레오파트라, 앤서니, 코리올라누스, 타이먼, 이모젠, 프로스페로, 캘리번 등이다. 1598년에 셰익스피어는 명성을 굳혔고 폴스타프는 그 명성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금까지 다른 어떤 작가도 셰익스피어의 풍부한 언어 구사력을 따르지 못했다. 『사랑의 헛수고』에서 우리는 언어의 한계에 완전히 봉착했음을 느낀다. (610∼612쪽)


 -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Ⅰ』, <19. 상상력의 폭발> 중에서


그는 신학도, 형이상학도, 도덕도 없고 정치 이론과도 멀다


생각의 역사에서 셰익스피어는 어느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았으며, 스스로 근본적인 두 가지 혁신을 일구었다. 하나는 가변성이다. 셰익스피어의 주요 인물들은 독백을 통해 변화의 능력, 심리적 · 도덕적 측면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요소다. 햄릿과 리어에게서도 그 점을 볼 수 있지만 최고는 셰익스피어의 가장 위대한 극중 인물인 폴스타프다. 둘째는 흔히 간과되는 측면인데, 도시화와 관련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그리스도교화를 거부한다." 그의 희곡은 그 자체의 세계에 존재하며, 세계는 그들 자체에서 끝난다. 우리는 그 점을 즉각 받아들일 수 있다. 인물들은 과거의 고전으로부터 영감을 끌어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인문주의와 전혀 무관하며, 학문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열정에 찬 사람이 아니다(적어도 그의 결혼은 그랬다). 그는 신학도, 형이상학도, 도덕도 없고 정치 이론과도 멀다." 그 대신 진정한 의미에서 그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심리'를 발명했다. 아마 가장 셰익스피어다운 희곡은 『리어 왕』일 것이다. 블룸은 이 작품의 결말에서 생존 인물들은 '우주론적 공허함'에 빠진다고 말한다. "『리어 왕』의 결말에는 초월이 없다. …… 리어의 죽음은 그에게는 해방이지만 생존자들에게는 아니다. …… 또한 우리에게도 해방이 아니다. …… 국가만이 아니라 자연도 치명상을 입는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의 훼손이다. 우리의 삶에서 자연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감각이 무너진다." 이것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요소다.(612쪽)


 -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Ⅰ』, <19. 상상력의 폭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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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6-2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틈틈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있는데, 극의 짜임새도 좋지만 대사 중간에 나오는 문장은 정말 숨막히게 합니다... 가슴 깊이 꽂히는 대사 하나하나를 읽다보면 멈출 수가 없네요^^: 정말 외우고 싶은 문장이 많은 셰익스피어 작품입니다...

oren 2017-06-25 13:59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경이로움 그 자체인 듯해요. ˝HOW TO READ 셰익스피어˝를 읽어보니 그가 사용한 언어들이 얼마나 놀라운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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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즉각적이고 강렬한 느낌은 그가 언어를 사랑한다는 느낌이다. 말을 가지고, 그리고 말이 초래할 수 있는 놀랍고도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지고 논다는 느낌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은 제 생명이 따로 있거나 기계적인 힘이 있는 듯 느껴진다. 하나하나가 작은 검색 엔진이며, 참견쟁이 꼬마 도깨비이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기이한 생물 같다.˝

cyrus 2017-06-25 0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약 셰익스피어 희ᆞ비극 전 작품을 수록한 주석판이 나온다면 분량이 엄청나겠어요. 본문보다 주석의 분량이 많을 겁니다. ^^

oren 2017-06-25 14:27   좋아요 1 | URL
『HOW TO READ 셰익스피어』의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7개‘를 ‘일곱 개의 단어‘로 기가 막히게 설명해 놓았더군요. 가령, 『햄릿』은 ‘벙어리들‘로, 『맥베스』는 ‘안전한‘으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끄덕임‘으로 설명하는 식이죠. ‘주석이 없는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밖에 없는 독자들은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갖는 온갖 놀라운 비밀들을 ‘거의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냥 지나치며 읽고 있다고 봐야 옳겠더군요.
* * *
…… 그러나 이러한 단어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드퀸시(Thomas De Quincey, 1785∼1859)가 1823년 셰익스피어를 읽는 경험에 대해 했던 말이 얼마나 예리했는지 입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드퀸시는 이렇게 말했다. ˝탐구를 계속할수록, 조심성 없는 눈은 우연성밖에 보지 못하던 곳에서 설계와 자립적 배치의 증거를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댓글로 달았다가 '인용문'이 너무 길어서 먼댓글로 다시 씁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 흔히들 느끼게 되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불편함‘을 미네 님께서 아주 자세히 피력해 주셨군요. 저도 그 소설을 읽을 때 그런 걸 느꼈는데 하물며 여성 독자들은 오죽하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었지요. 이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한 하나의 힌트를 저는 ‘니체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가져봤더랬습니다. 물론 그걸 말로 자세히 표현하기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요. 아무튼 카잔차키스는 그 자체로 ‘철저한 그리스인‘이었고, 특별하게도 ‘그리스인에 매우 정통했던 철학자 니체‘에 매우 심취했던 인물이었죠. 끝으로, 미네 님의 글을 읽는 동안에 제가 다시금 찾아 봤던 ‘니체의 말‘을 참고삼아 덧붙여 봅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잘못 생각하고, 여기에 있는 헤아릴 길 없는 대립과 그 영원히 적대적인 긴장의 필연성을 부정하며, 여기에서 아마 평등한 권리와 교육, 평등한 요구와 의무를 꿈꾼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임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시이다. 이러한 위험한 장소에서 스스로 천박하다는 것을 ㅡ 본능에서의 천박함을! ㅡ 드러내는 사상가는 대체로 의심스러운 존재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내고 폭로된 것으로 여겨도 될 것이다 : 아마 그는 미래의 삶을 포함한 삶의 모든 근본 문제에 너무나 ‘근시안적이며‘ 결코 어떤 심연으로도 내려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자신의 정신에서나 욕망에서도 깊이가 있고, 엄격하고 혹독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것들과 쉽게 바꾸는 호의의 깊이를 가지고 있는 남성은 여성을 언제나 동양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 그는 여성을 소유물로서, 열쇠로 잠가둘 수 있는 사유 재산으로, 봉사하도록 미리 결정되어 있고 봉사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는 존재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ㅡ 그는 이 점에서는 아시아의 거대한 이성의 편, 아시아적 본능의 탁월함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일찍이 이러한 아시아를 가장 훌륭하게 계승한 자이며 제자였던 그리스인들이 행했던 것과 같은 것으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힘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여성에 대해서도 한 걸음 한 걸음씩 더욱 엄격해지고 간략히 말해 동양적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얼마나 필연적이며, 논리적이고, 그 자체로 인간적으로 바람직한 것이었던가 : 이에 관해 우리는 스스로 숙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7장 우리의 덕>, 제238절


그리스인들 앞에 서면

"거기서 떠나지 말게, 그리스인들의 민족적 지혜가 말하는 것을 듣게나."

무엇이 디오니소스적인가?



 * * *


‘니체‘와는 또다른 측면에서 그리스를 깊이 연구했던 랄프 왈도 에머슨도 ‘그리스인의 남다른 특징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에머슨의 글을 읽는 동안에도 ‘크레테 사람‘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금 떠올렸던 듯합니다. 인간의 본능에 가장 충실했으면서도 가장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인들이었고, 그런 삶을 ‘인류 역사상‘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인‘이었으니까 말이지요.


위로는 영웅시대 내지 호머시대로부터, 내려와서는 4,5세기 후의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의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시대에 걸치는 그리스의 역사 · 문학 · 예술 · 시가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느끼는 흥미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구나가 몸소 그리스의 한 시기를 경과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리스적 상황이란 육체적 본성의 시대, 관능 완성의 시대이다. 정신적 본성이 육체와 엄밀하게 일치하여 나타난 시대이다. 거기에는 조각가에게 헤라클레스, 피버스, 조브의 모델을 제공한 것과 같은 그러한 인간의 육체가 있었다. 근대 도시의 거리에서 많이 보이는, 막연히 이목구비가 뒤섞여 있는 그런 얼굴이 아니라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또렷이 윤곽이 잡힌 균형적인 용모로 이루어지고, 눈동자만 하더라도 이런 눈으론 곁눈질하거나 이쪽저쪽 흘겨서 보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머리 전체를 돌려서 보아야만 되도록 틀이 잡혀 있었다.

이 시기의 몸가짐은 솔직하고 맹렬하다. 그러나 나타난 존경은 인간적 자질에 대한 것이다. 즉 용기 · 숙달 · 자제 · 공정 · 힘 · 민첩 · 고성(高聲) ·넓은 가슴 등에 대한 것이다. 사치와 우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인구가 매우 적은 데다 부유하지도 않았으므로 모든 사람은 다 자신이 시종(侍從)으로도, 요리인으로도, 도살자로도, 군인으로도 된다.

그리스인은 반성적이 아니다. 그러나 관능(官能)에 있어서, 건강에 있어서 완벽하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육체 조직을 가지고 있다. 어른은 애들처럼 소박하고 아름답게 행동했다. 그들은 꽃병을 만들고, 비극을 쓰고 조상(彫像)을 만들었다. 그것도 건전한 관능으로 만들 수 있는, 즉 좋은 취미의 작품을 만들었다. 이런 것은 계속하여 어느 시대에나 만들어졌고, 어디에서나 건전한 육체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개괄적으로 말해서, 그들의 우수한 체격면에서 그리스인은 모든 다른 민족을 능가했었다. 그들은 어른의 활력과 어린이들의 매력 있는 천진함을 겸비하고 있었다.

이런 태도가 마음을 끄는 것은, 그것이 본래 인간의 것이고, 누구나 한때는 어린아이였으므로 누구에게 그것이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이다. 그뿐 아니라 세상에는 이런 특징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어린이와 같은 천재와 타고난 활력을 가진 사람은 아직도 그리스인인 셈이고, 그는 헬라스의 시신(詩神)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소생시킨다.

나는 저 필록테테스(트로이 전쟁 때의 유명한 사수.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는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비극을 썼다-역자 주) 극(劇)에 나타난 자연애를 찬탄한다. 그 잠과 별과 바위와 산과 파도에 대하여 호소하는 글을 읽을 때, 나는 시간이 썰물처럼 지나가 버리는 것을 느낀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자기신념의 철학』,〈역사란 무엇인가〉중에서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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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서재 2017-06-17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먼댓글을 찾아 왔는데 깊은 지식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지식보다 감정이 먼저 올라와서 격하게 글을 올렸는데;;; oren님 글을 보며 그리스인에 대해, 디오니소스에 대해, 니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oren 2017-06-18 00:28   좋아요 0 | URL
저도 미네 님 덕분에 『그리스인 조르바』와 ‘그리스인‘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 보고, ‘책 속 구절들‘을 여럿 뒤적여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와는 영 딴판인 소설이지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한 때 ‘외설‘ 시비에 휘말려 오랫동안 ‘출판 금지‘를 당한 적이 있었지요. 미국 울지 판사의 ‘명판결‘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지만 말이죠. 그 중 한 대목을 참고삼아 인용해 봅니다.

* * *

˝만일 우리들이 조이스가 서술한 이러한 사람들과 사귀고 싶지 않으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선택의 문제다. 그들과 간접적인 접촉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율리시스』를 읽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아주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조이스와 같은 의심할 바 없이 진실한 예술가가 언어를 통해 한 유럽 도시의 중하위급 인물들의 참된 그림을 그리기를 원할 때, 아메리카의 대중들이 그러한 그림을 보는 것이 법률상으로 있을 수 없단 말인가?˝

(제 생각엔 아마도 이런 대목들이 문제가 되었던 듯합니다. ☞ http://blog.aladin.co.kr/oren/8929272)

그랜드슬램 2017-06-18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견디기 힘들 정도의 불편함이라는 말에 일부 동감합니다! 워낙 마초적인 성격이 강한 책인지라.... 카잔차키스의 필력과 내용전개야 말이 필요 없겠지만 그 불편함이라는 표현에 동감합니다, 조르바를 자유인으로 말해야 할지,무능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느껴야 할지, 가끔 혼돈이 옵니다!

oren 2017-06-18 11:22   좋아요 0 | URL
우리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 흔히 느끼는 그런 불편함 또한 작가가 일부러 의도했지 싶은 생각도 들어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그의 묘비명 자체가 그에 대한 증명이라고도 여겨지고요.
* * *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무대는 그의 위대한 정신을 보여주기에는 너무나도 좁다. 그뿐인가. 이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마저 그에게는 너무나도 좁았다."

 - 괴테


 * * *


위의 말은 요한 페터 에커만이 지은 『괴테와의 대화』에 담긴 말이다. 물론 저 문장 속에서 말하는 '그'는 셰익스피어를 가리킨다. 니체가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양서'라고 격찬한 에커만의 그 유명한 책을 내가 직접 읽고 저 문장을 여기서 인용한 건 아니다. 일본 최고의 셰익스피어 전문가로 일컬어지는 오다시마 유시의 책 『내게 셰익스피어가 찾아왔다』에서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다.(어쨌든 저 문장 덕분에 마침내 이번에『괴테와의 대화』를 실물로 구경할 수 있었다. 1,2권으로 나온 민음사판을 장만하고 보니 책이 장난이 아니게 두껍다. 두 권을 합하면 무려 1,140쪽이다.)


내게도 뒤늦게 셰익스피어가 찾아온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작품 말고도 이런 저런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책들'도 함께 읽어 보고 있는데, 마침 도쿄대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인 오다시마 유시의 책 덕분에 셰익스피어를 읽는 재미가 훨씬 배가되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는 일본 최고의 셰익스피어 전문가로 인정받는 인물인데, 일본에서 인정받는『셰익스피어 전집』을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어릿광대의 눈』,『어릿광대의 귀』, 『마음은 언제나 셰익스피어』등 숱한 셰익스피어 관련 책들을 썼고 국내에도 그가 쓴 책들이 적잖이 번역되어 나올 만큼 권위있는 인물이다.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셰익스피어가 얼마나 '굉장한 눈'을 지닌 인물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숱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동안에 우리가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거듭 놀라게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가 쏟아내는 경이로운 문장들 때문이고, 그런 문장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의 놀랍도록 풍부한 상상력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셰익스피어 자신이 극작가이면서 동시에 무대 위에서 직접 연기를 했던 배우였기 때문에 좀 더 특별하게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세상이 있었고, 그런 세상을 볼 수 있었던 '어릿광대의 눈'과 '어릿광대의 귀'가 너무나 광대무변하면서도 초능력적인 데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가 떠올렸던 '놀라운 영상들'이 다시금 고스란히 '빛나는 문장들'로 변환되어 영롱한 보석처럼 다채로운 빛깔로 우리의 눈앞에서 반짝거리니 어찌 거듭 놀라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의 눈을 통해서 세계를 바라보면 때로는 밋밋하거나 단조로운 세상도 갑자기 흥미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진짜로 겪고 있는 '실제 세계'도 마치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의 세계'처럼 정반대로 뒤집어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우리에게도 셰익스피어처럼 잠시나마 '어릿광대의 눈'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를 마치 연극 처럼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어쨌든 굉장한 경험이다.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반드시 연극의 연출자나 배역을 맡은 배우여야 할 필요는 없다. 연극의 관객이나 구경꾼의 입장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현실 세계'를 마음껏 '새롭게' 바라볼 수 있고 또 '흥미롭게' 즐길 수도 있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현실 세계'를 이런 방식으로 마치 '연극적 상황'인 것처럼 쉽게 뒤바꿔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줄 만한 작품들이야말로 참다운 희곡이 아닐까. 셰익스피어는 '인간 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들을 '오래 전부터 미리 넉넉히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숱한 작품들 속에 아주 풍부하게 묘사해 놓았다. 괴테가 괜히 저런 엄청난 말을 한 게 결코 아니었다.(에머슨도 셰익스피어에 관한 괴테의 특별한 위치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셰익스피어 정신의 지평은 끝없이 펼쳐져 있으므로 현재로서는 누구도 그 전모를 전망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가 평소에 막연하게 직감하고 있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미지를 적절한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은 콜리지와 괴테 정도"라고 말했다.)


이쯤에서 '셰익스피어의 눈과 귀'를 '오늘날의 현실'과 연결짓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최근에 우리가 겪고 있는 '흥미로운 현실 문제' 몇 가지에 셰익스피어를 끌어들이자는 말이다. 내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가장 자주 떠올렸던 현실 문제는 어느날 갑자기 전세계적 뉴스로 급부상한 사드 추가 배치에 관한 '보고 누락' 문제였다. 이 문제는 결코 아무나 함부로 '떠들 만한' 단순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국내적으로든 국제적으로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워낙 첨예한 이해 관계가 걸린 '극도로 예민한 이슈'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이 문제가 한창 뜨거웠을 때 이 글을 끄적거리다가 말았다. 몇 번씩이나 다시 꺼냈다가 '중도 포기'를 거듭한 끝에 이제야 겨우 다시 꺼내 어설픈 마무리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각자의 예민한 입장 차이는 될 수 있는 한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뤄보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기본적으로 '셰익스피어의 눈과 귀'를 빌린다는 가정 아래에서 이 문제를 바라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내가 이토록 예민한 문제에 괜시리 존숭받는 극작가를 억지로 끌어들여 첨예한 문제를 '희화화'하자는 의도는 조금도 없다. 나는 단지 그의 희곡 작품이 우리의 현실에 얼마나 예민하게 호소하는 힘을 지녔는지를 되살펴 보고 싶을 뿐이다. 문학 작품이 지닌 이런 힘을 확인하는 작업이야말로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이유를 새삼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말이다.


이토록 예민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내가 처한 곤란한 입장에 대해 조심스러운 얘기를 몇 가지 더 늘어놓고도 싶지만 시간이 아깝다. 이쯤에서 본론으로 넘어 가자.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이자 최고의 걸작은 단연『햄릿』이다. 그 유명한 작품에 등장하는 숱한 명대사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누가 뭐래도 (심지어 책과는 담을 쌓은 사람도 다 아는) 다음 대사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햄릿의 이 유명한 독백 하나가 수많은 세월에 걸쳐서 얼마나 다양한 해석을 쏟아냈는지를 여기서 따질 이유는 없다. 다만 이 짧은 대사 하나가 그토록 논란을 빚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반증하는 결정적인 증좌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다시 기본으로 살짝 되돌아 가자.『햄릿』은 과연 어떤 작품인가? 이런 물음엔 아무래도 전문가의 '깔끔하게 정리된' 대답에 기대는 게 최고다.


햄릿의 핵심 주제는 복수다. 그러나 이는 형식상의 주제이고 내용상으로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복수심과 양심의 대결이다. 그리고 양심은 복수를 지연시키는 힘으로서 무의식적인 행위로 나타나고 복수심은 살인을 실행시키는 힘으로서 의식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또한 복수심은 햄릿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힘을 대표하고 양심은 그가 삶을 유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을 대표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극의 핵심 주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 즉 존재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 최종철 옮김,『셰익스피어 전집 4』, 『햄릿』, <역자 서문> 중에서

『햄릿』의 확장성은 놀랍다. 꼭 『햄릿』만 그런 것도 아니다. 위대한 문학작품들은 대개 '놀라운 확장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들이 하나같이 칭송받는 것도 어느 작품이든 '누구에게나 마음 속 깊이 호소하는 목소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면에 기대어 나는 여기서 '햄릿'을 과감하게 '고뇌하는 문재인 대통령'으로 치환해서 해석해 보고 싶었다. 문학 작품이 '현실'을 일찌감치 미리 내다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또한 문학이 얼마나 놀라운 신축성을 발휘해서 현실을 사로잡는가를 고려해 보면 이 문제는 누구나 '대입해 보고 싶은 매혹적인 방정식'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가?


우선, '사드'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처한 곤란한 입장 자체가 햄릿과 너무나 닮았다.


그런데 햄릿이 '복수'를 꿈꾸도록 도와준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가? 당연히 '유령으로 나타난 선왕'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을까. 묘하게도 그에겐 친구이자 '선왕'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존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령으로 나타난 선왕'을 여태껏 '아예'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리라는 단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설사 유령의 모습으로 만나지는 못했더라도 늘 대통령의 마음 한 켠에 '그 분의 존재'를 자주 떠올리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한편, 햄릿의 복수심을 더욱 부추긴 요인 중엔 어머니 거트루드와 작은 아버지 클라우디우스 사이의 '근친상간적인' 빠른 결혼도 한 몫 단단히 했다. 문재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의 '이명박근혜 정부'와 '미국' 사이에 진행된 너무나 빠른 '근친상간적 결합'도 마음 속으로 그리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리라고 추론해 볼 수도 있다.(더군다나 이명박 정부는 '선왕의 죽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게다가 노 전 대통령의 수사를 맡았던 우병우는 하필이면 박근혜 정부의 핵심 수족을 맡으면서 '묘한 악연'을 계속 이어 왔다.)


더군다나 『햄릿』에서는 '선왕 햄릿'의 서거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왕' 클라우디우스의 '나쁜 인간성'도 햄릿의 복수를 부추겼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나쁜 인간성'이 '착한 문재인'에게 복수심을 자극했으리란 건 어찌 보면 추론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명약관화한 사실로 봐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햄릿 1막 5장에 나오는 재미있는 대사 하나만 인용해 보자.


"소중한 네 아버질 사랑한 적 있다면 (중략)  이 흉악무도한 살인의 원수를 갚아 다오."


이제는 이런 대사마저 그저 단순한 햄릿만의 대사로만 들리지 않는다. 되짚어 보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일어났던 돌발 상황 때문에 자칫 험한 꼴을 당할 뻔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도리어 먼저 다가가 사과를 한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는 점도 '착한 햄릿'이 새로운 왕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건네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무척이나 닮았다.


문재인 대통령과『햄릿』과의 또다른 유사점은 '성급한 복수의 실패'에서도 찾을 수 있다.


햄릿은 유령으로부터 '진실'을 알고 난 뒤에 '즉각적인 복수'를 맹세한다. 그러나 복수는 생각만큼 빨리 이뤄지지 못하고 계속 미뤄진다. '극중극'을 통해 '클라우디우스의 반응'을 살핀다든지, 「쥐덫」상연을 통해 왕의 죄를 확인한 뒤에도 (끝내 스스로에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기도하는 왕'을 죽이지 못하고 놔주기 때문이다.("아냐. 아서라 내 칼아, 더 끔찍한 상황을 만나자.")


햄릿의 '성급한 복수'는 결국 엉뚱하게도 휘장 뒤에 숨어 있던 폴로니우스(오필리아의 아버지)에게로 향한다. 휘장을 뚫고 검을 찌르면서 햄릿이 내뱉은 대사가 여전히 우리의 관심을 다시 한 번 자극한다.

"이건 뭐냐? 쥐새끼다! 죽어 싸다, 죽어라."

주저함의 대명사로 통하는 '햄릿'이 마침내 무서운 결단을 내려 실행에 옮겼는데 결국 알고 보니 '쥐새끼' 같은 클라우디우스의 신하 폴로니우스였던 것이다. 쥐새끼 하면 MB도 떠오르고, 뒤이어 속담 하나도 곧바로 더 떠오른다. 이번 '사드 보고 누락 사태'로 숱한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들먹인 말이 바로 '태산명동 서일필'이었으니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대해 시종일관 '모호한 전략'을 취해 왔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갈수록 심각해 지고 있는 상황을 빤히 바라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결같이 '사드 배치'에 선뜻 동의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입장을 계속 유지해 왔다. 무엇보다 '안보가 최우선'이라는 '보수 우파 진영'이나 군사 동맹국인 미국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다. 미국이 '자신들의 부담'으로 '한국'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첨단 방어 무기를 설치해 주겠다는데도 '애매한 태도'를 계속 취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문재인 대톨령이 계속 이런 태도를 취하는 데는 '복잡한 사정'이 깔려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사드 배치'와 꼭 닮은 문제가 바로 노무현 정부 초기의 '해외 파병 문제'였음을 상기해 보면 의외로 문제가 간단해 보인다. 해외 파병이나 사드 배치나 '군국주의 미국'에 '맞장구치는 일'일 뿐, 오랜 지지기반인 '민주주의 국가 시민들'에겐 결코 어울리지 않는 짓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 문제까지 얽힌 복잡한 정치 얘기는 이쯤에서 살짝 접어두고 여기서 다시 햄릿의 독백으로 돌아와 보자. 『내게 셰익스피어가 찾아왔다』를 쓴 오다시마 유시는 햄릿의 그 유명한 독백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이대로 괜찮은가, 괜찮지 않은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런 '신선한 해석'을 접하면서 나는 바로 이 해석이야말로 '사드 보고 누락'에 대해 '충격과 분노'와 더불어 즉각적인 '진상 조사'를 엄명한 문재인 대통령을 떠올리게 만드는 번역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느꼈던 이유는 오다시마 유시의 책 속 구절 속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을,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괜찮지 않은가,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번역했다. (…)


나중에 나의 이 번역이 신문에 소개됐을 떄, 나카노 교수님은 "자네가 드디어 해냈구먼"이라며 전화로 칭찬을 해주셨다. …… 셰익스피어는 중요한 독백을 할 때는 모호한 말투를 쓴 다음에 그 내용에 대한 설명을 붙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 꼭 이어서 확실한 답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이어지는 다음 행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당당한 삶인가. 이대로 마음속에서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는 것인가, 아니면 다가오는 고난의 거센 파도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 그것에 종지부를 찍는 것인가. ……"


이처럼 상당히 중요한 내용으로 자문을 하고 있다.


분명히 to be는 '이대로 마음속에서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는 것'이며, not to be는 '다가오는 고난의 거센 파도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 그것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즉 햄릿은 '삶이냐, 죽음이냐'의 관념론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놓인 상황 속에서 고민하고 있다.(110∼111쪽)


 - 오다시마 유시, 『내게 셰익스피어가 찾아왔다』중에서


비단 '사드 문제' 뿐만은 아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여러 조치' 때문에 그동안 몹시도 혼란스러웠던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 배치 보고 누락'을 보고받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꼈던 심정이야말로 '햄릿'의 심정을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둘 사이의 뚜렷한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햄릿'은 끊임없이 심사숙고하면서 '복수'를 계속 미뤘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톨령이 '만약' 햄릿처럼 행동했더라면 아마도 '사드 추가 배치 보고 누락'에 대해 그토록 급작스러우면서도 '세계 만방에 널리 알리는 식으로' 호통을 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문제가 당초 의도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쁜 방향으로 '여러 반향'을 불러왔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에겐 햄릿이 연극의 막바지에 이르러 읊는 유명한 대사 하나를 앞으로도 계속 떠올려야 하는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사드 배치 문제'는 그저 잠시 지연시켰을 뿐, 결국 언젠가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반드시 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와야 할 것이 지금 오면 나중에는 오지 않는다. 나중에 오지 않는다면 지금 오겠지. 지금은 아니라도 반드시 올 것은 언젠가 온다."


 - 『햄릿』, <5막 2장> 중에서



이쯤에서 두서없는 글을 마무리지어야겠다. 마침 오늘 서울국제도서전이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서 흘러나온 뉴스 하나가 내 눈에 번쩍 띄었다. 문재인 대톨령이 "책 선물을 많이 받는 편인데 꼭 다 읽는다"는 내용이었다. 혹시 문재인 대통령한테 '셰익스피어의 책'을 선물한 사람은 없었을까, 그게 갑자기 궁금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셰익스피어 마니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모처럼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맞이한 국민의 입장에서 '세익스피어 읽는 대통령'을 바라는 게 너무 무리한 욕심일까.


한 나라의 지도자가 셰익스피어를 좋아한다면


판단보류, 즉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바로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바로 '만약'의 중요한 예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만약에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면서, 안 된다고 하는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어떨까. 간단히 절망에 빠질 것이 아니라 '만약 내가 해낼 수 있다면'이라고 생각해 보자.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상상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 어떤 부모자식이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고, 이 세상에서 전쟁은 사라질 것이다. 화를 내기 전에 모든 사람들이 이 '만약'을 머릿속에 떠올린다면, 부모자식과 부부는 물론이고, 이웃, 나아가 이웃나라와의 외교문제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 특히 한 나라의 지도자가 셰익스피어를 좋아한다면, 세상에서 전쟁은 사라질 것이다. 결투는 그만두고 악수를.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다.(25쪽)


 - 오다시마 유시, 『내게 셰익스피어가 찾아왔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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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 '정치 현실'을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정치'만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도 드물다. 그런 껄끄러운 문제에 대해서조차 셰익스피어는 놀랄만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이 글에서 좀 더 엮어보려 했던 내용들도 있었지만 부족한 능력 탓에 더 이상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미 글 밖으로 빠져 나왔지만 원래의 글 속에 포함시키고 싶었던 '책 속 내용들'을 덧붙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 * *

역사라는 톱니바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폴란드의 얀 코트라는 비평가가 적절하게 표현한 것처럼, 그들을 한데 묶어서 바라보면 역사는 '위대한 기계장치Grand Mechanism'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군이든 폭군이든 어차피 역사라는 톱니바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헨리 5세는 프랑스를 무찌르고 프랑스의 왕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끝을 맺지만, 다음으로 왕이 된 헨리 6세는 금방 무능함이 드러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한명의 인간, 한 명의 왕은 아무것도 아니다. 순간적으로는 여러 일이 벌어져도 한 개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역사 속에서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인다.(67쪽)


 - 오다시마 유시, 『내게 셰익스피어가 찾아왔다』중에서



지배자가 극단으로 치우칠 경우엔


민중은 지배자가 공정한 정치를 하고 있다면 그에 조용히 따른다. 그러나 지배자가 극단으로 치우칠 경우엔 그 균형을 다시 맞추려고 한다. 극단적으로 폭군이 등장하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다. 예를 들면, <리처드 2세>에 정원사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나온다. 리처드 2세는 정치능력도 없으면서 간신배 때문에 국가의 재산을 전부 써버린다. 그러다 결국 볼링브룩(뒤에 헨리 4세)에게 왕위를 뺴앗긴다. 그런 정치 상황을 서민은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정원사 스승은 제자에게 나무란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야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와 같은 민주국가에서 자기들이 잘난 줄 알고 날뛰는, 지나치게 자라버린 그런 자잘한 가지들의 머리를 싹둑 잘라버려야 하느니라. 우리들의 정치란 모두가 평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68∼69쪽)


 - 오다시마 유시, 『내게 셰익스피어가 찾아왔다』중에서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햄릿』은 여전히 가장 실험적인 극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무엇도 『햄릿』을 파괴시키지는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연극 전체'라는 표현은 옳지 않은 듯하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햄릿』은 여전히 가장 실험적인 극으로 남아 있다. 베케트, 루이기 피란델로, 그리고 모든 부조리 작가들의 시대에서조차도 말이다. 『오델로』,『리어 왕』,『맥베스』가 모두 비극이었던 것처럼 『햄릿』또한 반드시 비극이라고 보아야 하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비극적 결함 혹은 비극적 덕성에 대해 이야기해도 덴마크의 햄릿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까지도 지닌 듯하다.


에머슨은 자유를 '야성의 것Wilderness'이라고 정의했는데, 그렇다면 『햄릿』이야말로 모든 연극 가운데서도 가장 야성적이며 자유로운 연극이다. 심지어『12야』의 부제인 '뜻대로 하세요'를 붙여서 '햄릿, 혹은 뜻대로 하세요'라고 불러도 좋을 법하다.


『햄릿』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사실 이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다. 주인공 햄릿을 포함해 여덟 명이 죽음을 당한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시각에 따라서 달리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긴 하다. 유령의 입장에서 보면 끝까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살아 있는 자에 대한 복수의 갈망은 여전히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381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중에서



           리처드


내게 왕관을 건네라. 자, 사촌, 왕관을 받게나.

자, 사촌, 이쪽엔 내 손, 그리고 그쪽엔 자네 손.

이제 이 황금 왕관은 깊은 우물과 같아서,

물통 둘을 번갈아 채우며 들락거리게 하지 ㅡ

빈 통은 허공에서 흔들흔들 춤추고,

다른 통은 물이 꽉 차 내려가 안 보이지.

눈물로 채워져 내려간 통은 나인데,

슬픔 마시는 중이고, 자넨 높이 오르는 중이야.


 - 『리처드 2세』, <4막 1장> 중에서


 

(나의 생각)


『리처드 2세』는 '무능한 왕이었던 '리처드 2세'가 실정을 거듭한 끝에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버림받는 내용을 다룬다. '리처드 2세'가 추락을 거듭할 때 새롭게 왕위에 오른 인물은 랭커스터 왕조를 연 '헨리 4세'였다. 비극의 주인공 '리처드 2세'가 백성들로부터 쫓겨난 끝에 폐위되고 결국 감옥에 갇혔다가 헨리 4세의 부하로부터 살해되기 까지의 과정이 눈물겹다. 아마도 박근혜 정부 시절에 벼슬깨나 했던 사람들이나 '태극기 부대' 사람들은 이 작품을 '눈물 없이는' 읽기 힘들 지도 모르겠다. 집권하는 과정만 보면 얼핏 '반역'일지 몰라도 일단 '민심'을 얻은 이후의 헨리 4세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어쨌든 이 사극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목은 리처드 2세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새로운 왕에게 '왕관'을 물려주는 소위 '탈관식 장면'이다. '눈물로 채워져 내려간 통'과 '허공에서 흔들흔들 춤추는 통'을 대비시킨 것도 놀랍지만, 진정한 절정은 리처드 2세가 '거울'을 바닥에 내던지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거울'을 좋아했던, 지금은 감옥에서 재판을 받느라 몹시도 초췌한 박근혜를 떠올리지 못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어쨌든 '셰익스피어의 눈'은 참으로 놀라운 데가 있다. '경이로움에 의해 상처입은 청자들'은 세익스피어의 관객들을 가리키는 항구적인 구절이 되었다던 헤럴드 블룸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리처드


그자들은 내가 만족시켜 주지. 내 죄상이 다 기록된

바로 그 문서를 내가 보게 되는 순간,

다 읽어 주마 ㅡ 그게 바로 나이니까.


(시종 하나 거울 들고 등장)


거울을 다오. 그걸 보고 읽으련다.

아직 주름이 덜 잡혔어? 슬픔이 이 내 얼굴 위에

그 숱한 가격(加擊)을 하였으되, 더 깊은 상흔을

남기지 못했나? 아, 거울도 아첨을 하는구나 ㅡ

나 한창 좋은 세월이었을 때 날 따르던 무리처럼,

거울도 날 속이는구나. 이 얼굴이, 날이면 날마다

왕실 지붕 아래에서 일만 명을 거느리던

바로 그 얼굴인가? 이 얼굴이, 마치 태양인 양,

보려는 사람 눈부셔 눈 감게 하던 그 얼굴인가?

이것이, 그 숱한 망동(妄動)들을 눈감아 주다가 마침내

볼링브로크가 들고일어나도록 한 그 얼굴인가?

부서지기 쉬운 영광 이 얼굴에 빛나는구나.

이 얼굴도 영광처럼 부서지기 쉬운 것 (거울을 바닥에 집어 던진다)

저것 보아, 일백 개의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 걸.

말씀 없으신 임금, 잘 새겨 두시오. 이 장난의 의미를 ㅡ

내 슬픔이 내 얼굴을 얼마나 빨리 깨뜨렸는지.


『리처드 2세』, <4막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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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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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17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15일날 빨리 보고 나중에 정독해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읽으니, 이런 글은 오렌 님처럼 세익스피어를 탐독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인 듯합니다. 이런 글을 알라딘에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런 글이 이달의 당선작이 안 된다면 참으로 문제가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글에 당선작이라도 안 주면 알라딘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접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암요~!

oren 2017-06-17 13:37   좋아요 0 | URL
yamoo 님 반갑습니다. yamoo 님께서 얼핏 스쳐 읽은 뒤에 나중에라도 기어코 다시 찾아와 정독해주시니 글쓴이로서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사실 글의 소재로 삼은 ‘사드 배치 보고 누락‘은 너무 예민한 문제여서 그 분야를 잘 알지도 못하는 나같은 사람이 글로 쓴다는게 여간 주저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한두번 끄적거리다 말았는데, 그 뒤로 ‘쥐새끼 한 마리‘도 자주 언급되고, 중국도 ‘꼼수 부리지 말라‘는 식으로, ‘결국 언젠가 결정할 때가 올 것‘이니 그때까지 예의주시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니 햄릿 이야기를 쓰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더군요. 저 역시 햄릿처럼 이 글을 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to be ot not to be˝ 문제에 붙잡힌 꼴이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yamoo님의 고무적인 댓글 만으로도 글쓴 보람을 충분히 맛보았으니, 알라딘이 ‘당선작 누락 시비‘로 생존이 위협받는 일까진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