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반대에 부닥치면 사람들은 그것이 정당한가를 보지 않고, 옳건 그르건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것인가만을 생각한다. 우리는 팔을 내밀기는커녕 발톱을 내민다.

 - 몽테뉴


 * * *



<포르센나 앞의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 17세기 전반경, 푸슈킨 미술관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 BC 59~AD 17)의 ≪로마사(Ab Urbe Condita)≫와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20?)의 ≪영웅전(Parallel Lives)≫에 등장하는 로마의 용맹한 청년이다. 가이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Gaius Mucius Scaevola)라고도 하는데, ‘스카이볼라(Scaevola)’라는 칭호는 그가 행한 영웅적인 업적의 대가로 얻은 것이다.

기원전 6세기 초에 로마는 클루시움(
Clusium, Clusion이라고도 함)의 왕인 라르스 포르센나(Lars Porsena)가 이끄는 에트루리아(Etruria) 동맹군의 공격을 받아 함락될 위기에 빠졌다. 용감한 청년 무키우스는 원로원의 승인을 받아 라르스 포르센나를 암살하기 위해 에트루리아인의 진영으로 침투했다. 그러나 그는 그만 옷차림이 비슷한 다른 사람을 라르스 포르센나로 착각하여 죽이는 바람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무키우스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적들 앞에서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당당하게 밝혔다. 그리고 자신은 첫 번째로 온 것일 뿐이며, 300명의 젊은이가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오른손을 불속에 넣어 손이 타들어가는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키우스의 행동에 크게 놀란 라르스 포르센나 왕은 그처럼 두려움 없고 용감한 로마의 젊은 군인들이 자신의 영토에 들어올 것을 염려하였다. 결국 왕은 그를 풀어주고 사신을 보내 로마와 휴전을 하였다. 이후 자신의 오른손을 희생해 로마를 구한 무키우스는 왼손잡이라는 뜻의 ‘스카이볼라’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또한 그는 티베르 강 오른쪽 제방의 농지를 하사받았는데, 사람들은 뒷날 그곳을 무키우스의 목초지라는 뜻의 ‘무키아 프라타(Mucia Prata)’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고통에 맞서는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 루이 피에르 드센(1749∼1822), 1791년, 루브르 박물관



가장 믿을 만한 이야기


무키우스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가장 믿을 만한 이야기를 적어보도록 하겠다. 그는 여러모로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무엇보다 전쟁에서 용맹하기로 이름나 있었다. 그는 적왕 포르센나를 암살하기로 결심해 에트루리아인처럼 차려입고 그들 언어를 쓰며 적진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왕이 앉아 있는 높은 단에 이르렀지만, 여러 귀족 가운데 누가 왕인지 가려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누가 왕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검을 뽑아 들고 자기 생각에 왕이다 싶은 사람을 베어버린 뒤 붙잡혀서 심문을 당했다.


포르센나 왕은 마침 제사를 드리기 위해 마련해 두었던 불이 이글거리는 화로를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무키우스의 오른손을 화롯불에 집어넣고 손이 타들어가도록 했지만 무키우스는 포르센나 왕을 똑바로 마주 본 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포르센나 왕은 탄복하며 그를 풀어주고, 빼앗았던 칼을 되돌려 주었다. 무키우스는 왼손으로 칼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를 왼손잡이라는 뜻의 '스카이볼라'라 부르게 되었다. 무키우스는 포르센나의 위엄에 무릎 꿇지 않았지만, 그의 덕 있는 성품에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때문에 그는 아무리 모진 고문을 당해도 결코 말하지 않았을 군사기밀을 털어놓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로마 결사대 300명이 이 진영 안에 잠복한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은 결과 내가 처음으로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하나도 유감스럽지 않습니다. 당신은 너무도 용감하고 훌륭해, 로마인의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포르센나는 이 말을 믿고 로마와의 화해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잠입해 있는 로마인 300명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들의 기상과 용기에 감탄했기 때문이리라.(231∼232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포플리콜라〉



 * * *



내 인생에도 같은 일이 없으란 법은 없잖아.

 

'아버지가' 그는 생각하였다. '아버지가(집에는 잘 닮은 초상화가 두 개 있었는데 니꼴렌까는 한 번도 안드레이를 인간의 모습으로 떠올린 일은 없었다) 나와 함께 있어서 나를 만져주었다. 아버지는 나를 옳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삐에르 아저씨를 옳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비록 그 분이 뭐라고 하시든 간에 나는 이것을 하겠다. 왼손잡이 무키우스(불굴의 용기를 보이기 위해 적 앞에서 자기의 오른팔을 태웠다고 하는 로마의 전설적인 용사)는 자기 팔을 태웠다. 내 인생에도 같은 일이 없으란 법은 없잖아. 나는 알고 있다. 모두 내가 공부를 하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나는 공부를 그만 둔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하는 거다. 나는 단 한 가지 하느님에게 빈다. 나에게 플루타르코스의 사람들에게 일어난 것 같은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그러면 나는 같을 일을 하겠다. 더 훌륭하게 하겠다. 모두가 나를 알고 모두가 나를 좋아하고 모두가 나에게 열중하게 된다.’ 그러자 갑자기 니꼴렌까는 가슴에 흐느낌이 복받쳐 오는 것을 느끼고 울기 시작하였다. (1608쪽)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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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4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14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구보다도 "선한 자"를 자처하는 자들이야말로 더없이 독성이 강한 독파리들이다. 저들은 아무 가책 없이 물어뜯고 아무 가책 없이 거짓말을 해댄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에서

 

 

 * * *


 

한번 움켜쥔 권력을 제때 내려놓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범인(凡人)들이 그 무시무시한 힘을 이해할 방법은 없다. 다만 간접적으로만 전해 듣고 보면서 그저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한번 거기에 앉으면' 결코 떠날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아주 오래 전부터 깨달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고대 그리스 사람 솔론이었다.


가까운 친구들은 전제군주라는 이름을 들을까봐 왕위를 거절하는 솔론을 설득하려 애썼다. 그들은 덕으로써 국민들을 다스린다면 어진 왕이 될 것이라고 솔론에게 말했다. (…) 그러나 솔론의 마음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에게 전제군주는 좋은 자리이긴 하지만 한번 거기에 앉으면 떠날 수가 없게 된다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왕위를 거절했다. 또 그가 포쿠스에게 준 시에는 아래 같은 구절이 있다.

 

폭군의 권세를 휘두르지 않았고

내 이름을 더럽히지도 않았으니

나는 후회하지 않노라.

이것이 가장 순수한 명예이므로.


(…)

 

그가 왕이 되기를 거절했을 때 친구들이 비난하자, 다음과 같은 시로 그들에게 말했다.


솔론은 지혜롭지도 똑똑하지도 않소.

하늘이 주신 복도 받지 않고

그물을 던져 큰 고기가 걸려도

끌어올리지 못하고 가슴만 떨리니

지혜도 없고 용기도 없소.

오직 하루라도 아테나이 왕으로 지내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다음 날은 구렁에 빠져들어

집안까지 망치게 될 것이오.

 

 

(200-201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솔론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는 '솔론과 크로이소스의 만남'이다.(고대의 전설적인 거부이자 뤼디아의 왕이었던 크로이소스는 헤로도토스가 쓴『역사』에도 수없이 자주 등장하는 아주 유명한 인물이다.)


솔론은 크로이소스의 초대를 받아 사르디스로 갔다. 산속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처음 바다를 본 뒤 강을 보고도 바다라고 여기듯, 솔론도 처음 크로이소스 궁전에 들어갔을 때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는 궁전에 있는 신하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수많은 호위병을 거느리며 으스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왕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곧 진짜 왕에게 안내되어 가까이 갔더니, 왕은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온통 패물과 금으로 치장을 하고 있어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하지만 솔론은 왕에게 어떤 찬사도 보내지 않았다. 그가 크게 놀라리라 짐작했던 왕은 솔론의 그러한 태도를 보고 자신을 경멸하는 것이라 여겼다. 왕은 그를 안내해 성 안의 온갖 화려한 보물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솔론은 이미 크로이소스 왕의 모습을 보고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솔론이 구경을 마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크로이소스는 자신보다 더 행복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솔론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 대답하며, 그는 바로 자기 나라의 텔루스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텔루스는 정직하게 살았으며 훌륭한 아들들을 남겼고, 그가 원했던 삶을 살았으며 게다가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크로이소스는 솔론을 이상하고 불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금은이 얼마나 많은지를 놓고 행복을 셈하지도 않을 뿐더러, 눈앞에 펼쳐진 자신의 권능을 보고도 평범한 평민의 삶과 죽음을 존경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또다시 텔루스 다음으로 자신보다 행복한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솔론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서로 우애가 누구보다 깊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어머니가 타고 있던 수레를 끄는 소들이 너무 느리게 걷자 자신들이 직접 멍에를 끌어 어머니를 헤라 여신 신전으로 모시고 갔다. 그 어머니는 모든 사람에게 축하를 받았으며 아들들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제물을 바친 뒤에 누웠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지만, 아무런 고통 없는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크로이소스는 벌컥 화를 냈다.

 

"그러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솔론은 왕의 비위를 건드리지도 않고 아첨하지도 않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리디아의 왕이시여, 저희 헬라스 사람들은 특별한 신의 은총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서민답게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 인생이란 늘 변화무쌍하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음을 알기에, 오늘 하루 행복을 자랑하지 않고 다른 이의 행복을 시기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크로이소스는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솔론은 그곳을 떠났다.

 

우화 작가인 아이소포스도 그때 크로이소스 초대를 받아 함께 있었는데, 솔론에게 조심스럽게 충고했다.

 

"솔론 선생, 왕과 이야기할 때는 되도록 짧게 말하거나 아니면 좋아할 말만 골라서 해야 한답니다."

 

그러자 솔론이 그에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짧게 말을 하거나 아니면 도리에 맞는 말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시간이 지난 뒤 크로이소스는 키루스와의 전쟁에서 패해 도읍을 빼앗기고, 자신은 잡혀 산 채로 불에 타 죽는 처지가 되었다. 그때 그는 장작더미 속에서, 처형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모든 페르시아인과 키루스를 향해 솔론이라는 이름을 간절하게 외치며 통곡했다. 이 광경을 보고 놀란 키루스는 잠시 멈추라 한 뒤 도대체 솔론이 누구인지, 신인지 사람인지 그에게 물었다.

 

크로이소스가 울부짖었다.

 

"솔론은 헬라스의 현명한 철학자요. 나는 내 궁전의 화려함을 자랑하려고 그를 초대했소. 그의 말처럼 행복이란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보다 잃어버렸을 때 불행이 더 큰 법이오. 그 행복이 내게 있을 동안에는 화려하지만 실속 없는 소문들뿐이었는데, 이제 그것을 잃고 나니 무서운 고통과 돌이킬 수 없는 불행만 남았소. 그러나 그전에 솔론은 내 불행을 미리 알고, 인간은 그의 마지막을 보고 나서야 행복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일러주었소. 하지만 어리석은 나는 오히려 그 충고를 무시했지요."

 

키루스는 이 말을 듣고 솔론의 현명함에 크게 감탄해 크로이소스를 살려주었다. 솔론의 말 한마디가 크로이소스 왕의 목숨을 구했던 것이다.(211-212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덧붙임)

 

플루타르코스가 쓴『영웅전』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인물 50명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매우 방대한 책이다. 나는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부터 읽었는데, 아쉽게도 그 책 속엔 겨우(?) 10명의 인물들만 담고 있었다. 풀 버전에 비한다면 고작 1/5에 불과한 셈이다. 이번에 50명을 모두 다룬 풀 버전의 책을 다시 붙잡고 읽고 있는데, 솔론傳은 예전에 읽었던 천병희 번역본에도 담겨 있어서 이번에 두 번째로 만나는 셈이다. 그런데 다시 읽어봐도 솔론傳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천병희 번역본에 딸린 주석 일부분을 참고 삼아 덧붙여 본다.


크로이소스(Kroisos)는 기원전 560년경 ∼546년 소아시아 서부 뤼디아(Lydia) 지방의 마지막 왕으로, 전설적인 거부였다. 그는 "그대가 할뤼스(Halys) 강을 건너면 큰 왕국을 멸하게 되리라."는 델포이의 신탁에 고무되어 할뤼스 강을 건너 페르시아 제국으로 진격하다가 페르시아 왕 퀴로스(Kyros)에게 참패하여 그토록 강성하던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된다. 그는 화형을 선고받고 화장용 장작더미에 올려졌으나 전에 델포이에 값진 선물들을 바친 덕분에 아폴론에 의해 구출되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인생의 부침에 관해 솔론(Solon)이 경고했던 말을 그가 되뇌는 것을 듣고 퀴로스가 살려주었다고도 한다.(81쪽)

 - 천병희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솔론과 크로이소스와의 만남'에 얽힌 얘기를 제법 길게 인용했지만 솔론傳에 담긴 다른 이야기 한토막도 마저 인용했으면 싶다. 한낱 오래된 옛날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오늘날의 현실과 너무 닮은 모습들이 너무나 자주 겹쳐 떠오르기 때문이다.


마침내 사람들은 페이시스트라토스를 위해 호위병을 세웠으며, 그의 뜻대로 군대를 모아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했다. 온 시내는 발칵 뒤집혔다. 메가클레스도 가족을 데리고 달아나자, 솔론은 광장에 나가 연설했다. 그는 시민들의 경솔함과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한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독재정치는 그것이 싹트기 전에는 막기 쉽지만, 이미 독재정치가 성장한 뒤 쓰러뜨리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하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설득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두려워서 감히 누구도 솔론의 말을 따르지 못했다.

 

솔론은 매우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와 무장을 하고, '나라와 법을 지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이렇게 써서 문 앞에 붙였다. 그러고는 친구들이 피신하라고 권하는 것도 듣지 않고 아테나이 사람들을 훈계하는 시를 썼다.


그대들이 어리석어 이런 괴로움을 당했으니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려 결코 하늘과 운명을 원망하지 마라.

폭군에게 성을 내준 것은 바로 그대들이었으니

이제는 자유를 잃은 노예가 될 수밖에 없으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옳은 말을 하는 솔론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그가 곧 독재자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며, 뭘 믿고 그렇게 대담한 행동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솔론은 그들에게 말했다.

 

"내 늙은 나이를 믿소."

 

그러나 페이시스트라토스는 권력을 잡은 뒤에도 여전히 솔론을 존경하며, 그에게 여러 일들을 의논하기도 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솔론의 법을 거의 그대로 시행했으므로 솔론도 그의 상담을 잘 들어주었으며, 조언과 칭찬 또한 아끼지 않았다.

 

(…)

 

솔론은 아이귑토스를 여행하면서 들었던 아틀란티스 섬의 역사에 대해 방대한 책을 쓰려고 했지만, 끝까지 쓰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두었다. 플라톤은 그가 책을 쓸 시간이 모자라서 일을 끝마치지 못했다고 했지만 아래 시를 보면, 시간이 모자라기보다는 나이가 많고 일의 규모와 양이 너무나도 커 담당해 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이는 하루하루 늘어가지만

배움의 길은 나날이 새롭구나.

 

그러나 지금도 나에게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아름다움과 술과 음악이 있구나.


그래서 플라톤은 솔론이 끝내지 못한 아틀란티스 섬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상속인이 없어서 자신이 저택을 물려받게 된 듯한 마음으로 이어서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너무 늦게 시작한 탓에 완성을 보지 못한 채 그도 세상을 떠났다. 플라톤이 이어서 써놓은 글들을 읽다 보면 미처 쓰지 못한 부분에 대한 그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아테나이 여러 신전 가운데 제우스 신전만이 완성되지 못했던 것처럼, 플라톤의 뛰어난 작품 가운데 오직 이 아틀란티스에 대한 글만이 미완성 상태로 전해진다.(214-215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여기까지 옮겨놓고 보니 이 글의 제목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만 잔뜩 인용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부터 먼저 달아놓고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여기까지 마구 내달린 탓이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작금의 난국을 보면서 오늘 내가 문득 떠올린 건 사실 '원숭이'였다. 그것도 병신년(丙申年)을 맞아 그동안 저지른 온갖 병신짓(?)이 만천하에 다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대단원의 끝을 보여줄 생각조차 못하는 '욕심많은 원숭이'였다.


알제리의 카바일 족(주로 알제리 북부의 해안 산악 지대에 사는 부족-역자주) 농부가 호리병을 나무에 단단히 붙들어 매놓고 그 안에 약간의 쌀을 넣어두었다. 호리병의 주둥이는 원숭이의 손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다. 원숭이는 밤에 나무로 와서 손을 집어넣고 쌀을 움켜쥔다. 쌀을 쥐고 있어서 손이 빠지질 않지만 원숭이에겐 쌀을 놓고 손을 뺄 지혜가 없다. 그렇게 해서 원숭이는 아침이 될 때까지 거기에 서 있다가 사람에게 잡히고 만다.(298쪽)


- 새뮤얼 스마일즈, 『인생을 최고로 사는 지혜』중에서


우리의 아주 머나먼 조상이 틀림없이 아프리카의 원숭이로부터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이 아무리 과학적이고 명백하게 증명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진짜로 아프리카의 원숭이를 쏙 빼닮은 너무나 욕심많은 인간을 우리의 코앞에서 진짜로 생생하게 지켜보는 일은 너무나 괴롭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고약하다! 또한, 무려18 년 동안이나 정치를 해 온 사람이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았다”고 너무나 천연덕스럽고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는 건 너무 소름끼친다!

정치 Politics

 

원칙들의 경연으로 변장한 이해관계의 상충.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공 업무를 행하다.

 

 - 앰브로스 비어스, 『악마의 사전』


어느새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는 일이 하나의 일상이 될 지경이다. 그래도 혹시나 이번 주중엔 일(?)이 잘 풀려서 주말엔 모처럼 동네 도서관에서 편안하게 책장이라도 좀 넘길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또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 참으로 무서운 '기만'이다. 오늘 내 눈에 번쩍 뜨인 어느 만평 하나를 옮기는 걸로 이 글을 끝맺고 싶다.





기만 Delusion

 

'열의', '애정', '자기부정', '신뢰', '희망', '자비' 등의 수많은 착한 아들과 딸을 둔, 대단히 인망 있는 집안의 가장.


기만에게 모두 경례! 그대가 없었다면

세상은 온통 뒤죽박죽이었을 터.

멋진 환상을 자랑하는 악덕은

버려진 미덕의 둔한 발걸음을 훌쩍 뛰어넘으니.

 

멈프리 마펠(Mumfrey Mappel)


 - 앰브로즈 비어스, 『악마의 사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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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_Shin 2016-12-04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을 읽어면서 저도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편을 인용하고 싶어졌습니다.

국가는 온갖 냉혹한 괴물 가운데서 더없이 냉혹한 괴물을 일컫는다. 이 괴물은 냉혹하게 거짓말을 해댄다. 그리하여 그의 입에서 ˝나, 국가가 곧 민족˝이라는 거짓말이 기어나오는 것이다. 79쪽

국가는 선과 악이라는 말을 다 동원해가며 거짓말을 해댄다. 국가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거짓말이다. 국가가 무엇을 소유하든 그것은 그가 훔친 것이고. 80쪽

국가라고 하는 이 새로운 우상은 자신의 주변에 영웅들과 영예로운 자들을 들러리 세우고 싶어하지! 떳떳한 양심의 했볕을 쬐고 싶은 것이다. 이 냉혹한 괴물은 말이다! 81쪽

여기 존재할 가치가 없는 자들을 보라! 저들은 부를 축적하는데도 더욱더 가난해지고 있다. 저들은 권력을 원하며 그 무엇보다도 먼저 권력의 지렛대인 많은 돈을 원한다. 이 무능한 자들은!
저들 잽싼 원숭이들이 기어오르는 꼴을 보라! 앞을 다투어, 서로를 타고 넘어 기어오르다가 서로를 진흙과 나락으로 끌어내리고들 있으니.
모두가 왕좌에 오르려 하는 것이다. 마치 행복이라는 것이 왕좌에 앉아 있기라도 하듯. 정신나간 짓들이다! 흔히 진흙이 왕좌에 앉아 있기도 하고, 왕좌또한 진흙에 앉아 있기도 하거늘. 82쪽

oren 2016-12-13 16:04   좋아요 0 | URL
맨슨 님 반갑습니다^^
맨슨 님께서 인용해 주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담긴 글귀들을 찬찬히 음미해 보니, 요즘 시국에 너무나도 절묘하게 들어맞는 듯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좋은 내용을 정성스레 옮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율리시스 - 제4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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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매장하는 거다. 우리는 카이사르를 매장하러 왔소. 그의 3월인지 6월의 재앙일(災殃日). 그는 여기에 누가 와 있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상관하지도 않지.

 

그런데 저쪽 비옷 입은 홀쭉하게 보이는 녀석은 누구야? 글쎄 누군지 알고 싶군. 글쎄 돈을 몇 푼 주어서라도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으면. 꿈에도 결코 생각해 본 일이 없는 녀석이 언제나 불쑥 나타나거든. 인간은 자기의 일생을 내내 혼자 외로이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렇지,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자신이 무덤을 팔수는 있어도 죽은 다음에 그를 묻어 줄 사람은 있어야 할 게 아냐. 우리 모두가 묻어주지. 단지 인간만이 매장하는 거다. 아니야, 개미들도 그래. 누구에게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 죽은 자를 매장한다. 예컨대 로빈슨 크루소는 인생에 충실했다 지. 글쎄 그런데도 프라이디가 그를 매장했지. 그걸 생각해 보면 모든 금요일(프라이디)은 언제나 목요일을 매장하는 셈이다.

 

 

오, 불쌍한 로빈슨 크루소!

어떻게 그대는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었나?

 

(90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그런데, 죽음은 너무나 긴 휴식이야. 이젠 아무런 느낌도 없지. 느끼는 것은 단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아. 경치게도 불쾌한 순간임에 틀림없어. 처음에는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틀림없이 잘못일 거야: 다른 사람일 거야. 맞은편 집을 알아 봐. 가만있자. 난 살고 싶었어. 아직 죽지 않았단 말이야. 그러자 어두컴컴해진 죽음의 방. 빛을 그들은 원한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서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사제를 불러올까요? 그러자 떠들어대며 우왕좌왕. 한평생 감추었던 정신착란이 온통 쏟아진다. 죽음의 투쟁. 그의 잠이 순조롭지 못하다. 아래쪽 누꺼풀을 눌러 봐요. 코가 불쑥 나오고 턱이 내려앉고 발바닥이 노랗게 되었나 살펴보는 것이다. 운명(殞命)했으니 베개를 빼버리고 마루 위에 반듯이 눕혀요. 죄인의 죽음을 그린 저 그림 속에 악마가 그에게 한 여인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셔츠 품속에 그녀를 포옹하고 싶어 애태우고 있는 것이다. <루치아>의 마지막 장면. "나는 그대를 더 이상 볼 수 없나요?" 쿵! 그는 숨이 끊어진다. 마침내 가버렸다. 사람들은 당신에 관해서 조금 이야길 한다: 잊어버린다.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요. 당신의 기도 속에 그를 기억해요. 심지어 파넬도. 담쟁이 날은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어 그들이 뒤따른다: 구멍 속으로 떨어지며. 차례 차례로.

 

(91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27일에 엄친의 무덤에 성묘하러 가야지. 묘지기에게 10실링. 그는 묘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해주지. 그 자신도 늙었어. 두 겹으로 몸을 구부리고 가위로 풀을 깎는 것이다. 죽음의 문 가까이. 죽어버린 자. 이승을 떠나버린 자. 마치 그들이 자발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나 한 것처럼. 떼 밀렸던 거다, 그들 모두. 목숨을 빼앗긴 자. 만일 그들이 과거에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를 스스로 말한다면 한층 재미있을 거야. 모모(某某) 차바퀴 목수올시다. 나는 코크 리놀륨을 주문 받으러 다녔지요. 나는 한 파운드 당 5실링을 지불했어요. 또는 소스 팬을 든 한 여인. 저는 맛있는 아일랜드 스튜를 요리했어요. 시골의 교회묘지를 읊은 송시(頌詩)는 당연히 그런 시(詩)여야 할거야 누구의 시더라 워즈워드였던가 아니면 토머스 캠벨이던가. 영원히 잠들면 신교도들은 시(詩)를 쓰지. 노(老)머렌 박사의 무덤. 위대한 의사(神)가 그를 집으로 불렀던 거다. 그렇지 여기는 죽은 자들을 위한 하느님의 땅이야. 참 좋은 시골의 주거. 새로이 벽토와 페인트칠을 했군.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교회시보(敎會時報)』를 읽을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 혼인 광고를 사람들은 결코 미화하려고 애쓰지 않아. 손잡이 위에 걸려 있는 녹슨 금속 꽃다발, 청동 빛 금박 화환. 돈으로 따지면 그것이 더 가치가 있지. 하지만, 생화(生花)가 한층 더 시적이야. 전자가 오히려 싫증이 난단 말이야, 결코 시들지 않으니. 아무 표정도 없고. 불사(不死)의 것들.


(93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여기는 누가 누워 있지? 로버트 에머리의 유해가 놓여 있다. 로버트 에메트는 횃불에 의해 여기 매장되었지, 그렇잖아? 저놈의 생쥐가 빙빙 돌고 있군.

 

방금 꽁지가 사라졌다.

 

저따위 놈 같으면 시체 하나쯤은 얼른 해치울 거야. 그것이 누구든 간에 뼈를 깨끗이 추린단 말이야. 그들에게는 보통 먹는 식사지. 시체는 상한 고기야. 그렇지 그런데 치즈란 건 뭐야? 밀크의 시체지. 나는 저 『중국 항해기』에서 중국 사람들이 백인(白人)한테서 시체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걸 읽었어. 화장(火葬)이 보다 나아. 사제들은 그걸 한사코 반대하지. 다른 화장회사의 하청을 맡아 일하는 거다. 도매 화장회사와 네덜란드식 가마(釜) 상인들. 페스트가 만연할 때. 페스트를 소독해 버리는 생석회 열갱(熱坑). 무통치사실(無痛致死室). 재(灰)에는 재. 아니면 수장(水葬)을. 그 배화교(拜火敎)의 침묵의 탑(塔)은 어디에 있는고? 새들에게 먹힌 채. 흙, 불, 물. 익사가 최고 안사(安死)라고들 하지. 눈 깜짝할 사이에 전(全)생애가 떠오르는 거다. 그러나 생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그러나 공중에다 매장을 할 순 없잖아. 비행기로부터. 새로운 시체가 떨어질 때마다 뉴스가 사방에 퍼질지 몰라. 지하 통신. 우리는 그걸 두더지들한테서 배웠지. 놀랄 것도 없어. 저놈들에게는 규칙적인 맛있는 식사야. 사람이 채 북기도 전에 파리가 먼저 찾아오지. 디그넘을 냄새 맡는다. 저놈들은 시체 냄새를 조금도 상관하지 않아. 소금기 하얀 후물거리는 연한 시체 덩어리: 하얀 생(生) 순무 같은 냄새, 맛.


(94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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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 제4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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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말들이 장례의 침묵을 뚫고 화강암 덩어리 하나를 실은 삐걱거리는 마차를 끌면서, 핑글라스로부터 힘들고 터벅거리는 걸음걸이로 지나갔다. 그들의 선두에서 행진하는 마부가 인사를 했다. 이제 관(棺)이다. 죽은 몸이지만, 그는 우리보다 먼저 여기에 도착한 셈이다. 장식 깃을 비스듬하게 꽂은 말이 관 주위를 살펴보고 있다. 흐리멍덩한 눈: 목에 꽉 낀 테, 혈관 또는 그 무엇을 세게 억누르고 있다. 말들은 자신들이 매일 무엇을 여기에 운반해 오는지 알고 있을까? 매일 스무 번이나 서른 번의 장례가 있음에 틀림없어. 당시 신교도들을 위한 마운트 제롬 묘지. 전 세계 매순간 어디서나 장례가. 짐차에 한꺼번에 가뜩 실어 재빨리 삽으로 갖다 묻는 것이다. 한 시간에 수천 개를, 세상에는 너무나 많아.


(83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 '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로다.' 이는 사람의 속마음까지 감동시키지요.

 

──── 그렇소, 블룸씨가 말했다.

 

아마 당신의 마음을 그러나 발가락을 실 국화에 묻은 채 6자(尺)에 2자 관속에 누워 있는 저 친구에게는 무슨 상관이랴? 그건 감동(感動) 금지지. 애정의 좌(座). 깨어진 심장. 결국 심장은 펌프야, 매일 수천 갤런의 피를 퍼내고 있으니. 어느 날 심장의 마개가 막히는 날에는: 너도 이제 끝장. 수많은 죽은 자들이 여기 사방에 누워 있다: 허파, 심장, 간. 낡고 녹슨 펌프들: 경칠 그 밖의 것. 부활이며 생명이라. 한번 죽으면 죽고 마는 거야. 최후의 날에 대한 착상. 모든 죽은 자를 무덤에서 두들겨 깨우는 거다. 나오너라, 라자로여! 그런데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일을 놓치고 말았지. 일어나! 최후의 날이야! 그러면 사람마다 자신의 간과 폐장(肺腸) 그리고 그의 나머지 부품들을 찾아 헤맬 테지. 저 아침 자신에게 속하는 모든 것을 다 찾는다. 두개골 속에 든 1페니 무게의 분말(粉末). 12그램 1페니의 무게. 트로이 치수로.


(87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블룸씨는 묘지관리인의 건장한 체구를 감탄했다. 모두 그와 친하기를 바라고 있는 거다. 점잖은 사람, 존 오코넬, 정말 착한 이야. 열쇠들(키즈): 마치 키즈 점의 광고처럼: 아무도 밖으로 나갈 염려 없지. 아무런 통과증 검열도. '하베아스 꼬르뿌스(인신보호).' 나는 장례 뒤에 저 광고에 관해 알아봐야지. 내가 마사에게 편지를 쓰는 걸 그녀가 방해했을 때 그걸 감추기 위해 내가 사용했던 봉투에다 볼즈브리지라 썼던가? 희망컨대 불명우편물취급소에 방치되지 않았으면. 그가 수염을 깎는 것이 한층 보기 좋군. 하얗게 솟아난 턱수염. 그것이 머리카락이 하얗게 솟는 최초의 징조지. 그리고 성질이 까다로워지는 거야. 백발 속의 은발.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 상상해 봐. 그는 처녀한테 프로포즈할 적극성을 갖고 있는지 몰라. 와서 공동묘지에서 함께 살아요. 그녀 앞에 매달리는 거다. 처음에는 그녀의 몸을 오싹하게 할 거야. 사신(死神)에게 구혼하다니. 사방에 뻗어 누운 모든 사자(死者)들과 함께 이곳을 오락가락하고 있는 밤의 망령들. 묘지가 하품을 할 때의 무덤의 그림자들 그리고 대니얼 오코넬은 한 사람의 후손임에 틀림없지 상상컨대 그가 어둠 속의 거인처럼 언제나 변함없는 위대한 카톨릭 교도로서 괴상하게도 생식력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는 말을 늘 하곤 하던 사람은 누구였지. 도깨비불. 무덤의 가스. 임신하기 위해 여인의 마음을 이런 생각에서 완전히 끊어 버릴 필요가 있지. 특히 여자들은 아주 과민하니까. 그녀에게 귀신 얘기를 해서 잠재우게 하려고 해봐요. 당신 여태껏 귀신을 본적이 있소? 글쎄, 나는 있어요. 때는 한밤중이었어. 시계가 12시를 치고 있었고. 그런데도 만일 적당하게 흥분이 되면 여자들은 마구 키스를 하지. 터키 묘지의 매음부들. 젊었을 때 경험하면 뭐든지 배우기 마련. 이런 곳에서 젊은 과부를 하나 주울 수도 있지. 사내들은 그런 걸 좋아하거든. 묘비 사이의 사랑. 로미오. 향락의 양념. 죽음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생활하고 있는 거다. 양극(兩極)은 서로 만나기 마련. 애태우는 것은 불쌍한 사자(死者)야. 굶주림에 구운 비프스테이크 냄새. 자신의 활력을 파먹고 있는 거다. 사람들을 흘분시키고 싶은 욕망. 창가에서 그걸 하고 싶어하던 몰리. 아무튼 저 묘지관리인은 아이들을 여덟 명이나 갖고 있지.


(88-89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그러나 시체는 매우도 많은 구더기를 키워낸단 말이야. 흙이 그들로 오직 소용돌이치고 있음에 틀림없어. 그걸 생각하면 머리가 빙빙 돌지요. 저 사랑스런 바닷가의 소어녀들. 저이는 아주 쾌활하게 묘지 위를 바라다보고 있군. 모든 다른 이들이 먼저 땅속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그에게 힘의 감각을 주는 거다. 그는 인생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몰라. 농담도 잘 걸면서: 사람의 마음속을 훈훈하게 하는 거다. 사자(死者)에 대한 게시판. 스파지온은 오늘 오전 4시에 천국으로 출발. 오후 11시(마감시간). 아직도 미착(未着). 베드로. 죽은 사람 자신들이 남자라면 어쨌든 야릇한 농담을 듣고 싶어할 게고 부인들이라면 요사이 유행하는 것이 뭔지를 듣고 싶어할 거야. 즙 많은 배(果) 또는 귀부인용의 뜨겁고, 독한 그리고 달콤함 펀치 술, 습기 없는 곳에 보관할 것. 자네도 틀림없이 가끔 웃음이 나올 거야 그러니 저런 식으로 해보는 게 좋아요. <햄릿>에 나오는 묘굴인(墓堀人)들. 인간의 마음의 심오한 지식을 보여 주는 거다. 적어도 죽은 지 2년 동안은 감히 죽은 사람에 대해 농담을 해서는 안되지. '데 모르뚜이스 닐 니시 쁘리우스(죽은 자에 대해 악담하지 말라).' 우선 슬픔에서 벗어나는 거다.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기는 힘들지. 일종의 장난같이 보일 테니까. 자기 자신의 사망 광고를 읽으면 더 오래 산다고들 말하지. 당신에게 두 번째 입김을 불어넣어 주는 거다. 생명의 계약갱신(契約更新).

 

──── 내일은 몇 구(具)나 됩니까? 묘지관리인이 물었다.

 

──── 둘요, 코니 캘러허가 말했다. 10시 반과 11시.


(89-90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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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 제4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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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제 다 타셨나? 마틴 커닝엄이 물었다. 들어와요, 블룸.

 

블룸 씨가 들어와서 빈자리에 앉았다. 그는 뒤로 손을 뻗어 문이 꼭 닫힐 때까지 두 번 쾅하고 세차게 닫았다. 그는 손잡이 가죽끈에 팔을 끼고 열린 마차 창문으로부터 가로변의 낮게 쳐진 덧문을 심각하게 쳐다보았다. 덧문 하나가 옆으로 젖혀졌다: 엿보고 있는 한 노파. 창유리에 바싹 눌려 하얗게 된 코. 그녀가 무사히 살아온 것을 운명의 별들에게 감사하면서. 비상한 관심을 그들은 시체에 갖고 있지. 우리들이 죽어 가는 걸 보고 기뻐하지, 살아 있을 때 그들에게 심한 괴로움을 주기 때문이야. 노파들에게 안성맞춤의 일인 것 같아. 모퉁이에서 비밀리에 쉬쉬쉬하며. 죽은 자가 깨어날까 두려워 슬리퍼를 신고 사방을 살금살금 걷는다. 그런 다음 시체를 운반할 준비를 한다. 입관(入棺) 준비.


(72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 블레이지즈 보일런이오, 파우어씨가 말했다. 저기 그가 이마의 곱슬머리를 바람 쏘이고 있어.

 

바로 내가 저 녀석을 생각하고 있던 순간.

 

데덜러스 씨가 몸을 가로로 굽혀 인사를 했다. 레드 뱅크의 문으로부터 하얗고 둥근 밀짚모자가 번쩍 빛나며 답례했다: 깔끔한 몸매: 지나갔다.

 

블룸 씨는 그의 왼손의 손톱을 자세히 살폈다, 이어 오른 손의 손톱을. 손톱, 그래. 여인들 그녀가 저 녀석에게 느끼는 별다른 게 뭐람? 매력. 더블린에서 가장 나쁜 놈. 그것이 그에게 생기를 돋구는 거다. 여자들은 때때로 상대방 남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금세 알아차리지. 본능. 하지만 저와 같은 타입은. 나의 손톱. 나는 지금 손톱을 쳐다보고 있다.: 잘 깎여졌어. 그리고 다음에는: 혼자 생각하고 있다. 약간 흐늘흐늘해 지고 있는 육체. 난 그걸 눈치 채지: 기억으로. 그건 무엇 때문일까? 상상컨대 근육이 처질 때 피부가 아주 재빨리 위축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러나 몸매는 그대로 있단 말이야. 아직도 몸매는 여전해. 어깨. 엉덩이. 통통해요. 무도회의 밤 옷치장. 슈미즈가 양 엉덩이 사이에 꼭 낀 채.


(76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불타는 얼굴: 적열(赤熱). 존 보리 맥주를 너무 많이, 붉은 코의 치료법. 코가 알코올 빛이 될 때까지 악마처럼 마신다. 그렇게 코가 물들다니 돈도 많이 없앴을 꺼야.


(79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꽝! 전복. 길바닥에 쿵하고 부딪쳐 떨어진 관. 부서져 활짝 열린다. 패디 디그넘이 불쑥 튀어나오자,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큰 갈색 시의(屍衣)에 말린 시체가 먼지 속에 뻣뻣하게 뒹군다. 붉은 얼굴: 이제는 회색. 입을 쩍 벌리고. 어찌 된 노릇이야 물으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나아. 열려 있으면 무섭게 보이지. 이어 내장이 빨리 부패한다. 뚫린 구멍을 모두 단단히 막아 두는 게 훨씬 나아. 그렇지, 역시. 밀초를 가지고. 늘어진 괄약근(括約筋). 모두 봉해 버려.


(81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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