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 동서문화사 월드북 6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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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원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그는 그녀의 체온과 향수 냄새를 느끼고, 숨을 쉴 때마다 코르셋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보았던 것은 드레스와 하나의 완성체를 이루고 있는 대리석과 같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한 장의 옷으로밖에 감추어져 있지 않은 그녀의 훌륭한 육체를 남김없이 보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단 거짓말이 탄로나면 두 번 다시 원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듯이, 그는 그것을 보고 나자 그녀를 다르게 볼 수가 없었다.(282쪽)


다시는 그것을 나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삐에르는 눈을 내리깔았지만 다시 쳐들고, 여태까지 매일 보고 있었던 것과 같이 자기에게는 먼, 인연도 없는 아름다운 여인으로서 그녀를 다시 한번 바라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럴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안개 속에서 풀 줄기를 보고 그것을 나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그것을 풀줄기라고 알게 된 뒤에는 다시는 그것을 나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무섭게도 그에게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이미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그녀 사이에는 이미 자신의 의지의 벽 이외에는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282-283쪽)



어른이 되어 가는 것


자기 아들이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그 어느 시기에 있어서나 그녀에게는 특별한 일이었다. 그것은 마치 같은 길을 거쳐 성장한 몇백만 몇천만의 사람들이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20년 전에는 어딘가 그녀 심장 아래의 태내에서 숨쉬고 있던 작은 존재가, 울거나 젖꼭지를 빨기도 하고 겨우 말을 하기 시작하리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그 존재가 씩씩하고 용감한 사나이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는 것은, 이 편지로 판단하면 명백한데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325쪽)



삼제 회전의 패배


시계의 경우, 수없이 많은 갖가지 톱니바퀴나 도르래의 복잡한 움직임의 결과가, 시간을 표시하는 바늘의 느리고 규칙 바른 움직임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이들 16만의 러시아인과 프랑스인의 모든 정열, 희망, 후회, 굴욕, 고뇌, 자존심의 고양, 공포, 환희의 분출 등 갖가지 복잡한 인간적인 움직임의 결과는 아우스터리츠 전투, 이른바 삼제(三帝) 회전의 패배에 지나지 않았다. 즉, 인류 역사의 시계판 위에서 세계사 바늘이 느리게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354쪽)



이 끝없는 하늘 이외에는


‘뭐야, 이건? 나는 쓰러져 있는 것인가?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뒤로 쓰러졌다. 프랑스 병과 포병과의 싸움이 어떤 결말이 되었는지, 빨간 머리의 포병이 죽었는가 죽지 않았는가, 대포를 빼앗겼는가 빼앗기지 않았는가를 보기 위해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는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ㅡ개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없이 드높고, 그 아래를 회색 구름이 조용히 흐르고 있는 높은 하늘이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조용하고 평온하고 엄숙할까. 내가 달리고 있었던 때와 판이하다.‘ 안드레이는 생각했다. ‘우리들이 달리고 외치고 서로 잡고 싸운 것과는 전혀 다르다ㅡ구름이 이 드높고 끝없는 하늘을 흘러가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왜 나는 전에 이 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것을 알아차린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모든 것은 공허다. 이 끝없는 하늘 이외에는 모든 것이 거짓이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아니, 이 하늘 외에는 그것조차도 없다. 정적과 평안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고맙게도!‘(384-3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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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 동서문화사 월드북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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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갈라 놓고 있는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ㅡ불가사의와 고뇌와 죽음이다. 그리고 그 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저편에는 누가 있는가? 건너편의 들이나 나무, 태양이 비치는 지붕 저쪽에는? 아무도 모르지만 알고 싶어한다. 이 선을 넘는 것은 무섭지만 넘어 보고 싶다. 그리고 모두는 알고 있는 것이다ㅡ조만간 이것을 넘어 그 선 저쪽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게 된다. 그것은 마치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가를 아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나 자신은 강하고 건강하고 명랑하면서도 초조해 있으며, 이렇게 건강하고 초조한, 활기에 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지금 적과 마주 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비록 이렇게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런 식으로 느낀다. 그리고 이 감각이 이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일종의 특별한 인상의 광채와, 마음이 편안한 날카로움을 주는 것이다.(198-199쪽)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

니꼴라이는 고개를 돌려 무엇인가를 찾는 듯이 먼 경치, 다뉴브 강의 물,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어쩌면 저렇게 푸르고 고요하고 깊을까! 멀리 내다보이는 다뉴브 강의 물은 얼마나 부드럽게 빛나고 있는가! 또 멀리 다뉴브 저쪽에 파랗게 보이는 산들, 수도원, 신비스러운 골짜기, 산정까지 안개에 싸인 솔밭은 더욱 훌륭했다…… 저편은 조용하다, 행복하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나는 원하지 않아, 거기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아무것도 원하지는 않아.‘ 니꼴라이는 생각했다. ‘오직 내 안에, 그리고 저 태양 속에 넘치는 행복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신음과 고통과 공포와 그리고 이 혼탁, 이 어수선함…… 저기 또 무엇인가 외치고 있다. 그리고 또 모두가 뒤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도 모두와 같이 뛰고 있다. 그리고, 봐, 그 녀석이, 죽음이 내 위에, 내 주위에…… 순간적으로 나는 영원히 저 태양, 저 물, 저 골짜기를 볼 수 없게 된다…….‘(205-206쪽)

애연가가 뿜어내는 파이프

사방에서 일어나는, 귀청을 때리는 듯한 아군의 포성, 적탄이 내는 소리와 명중하는 소리, 포 곁에서 땀을 흘리며 바삐 움직이고 있는 포수들의 모습, 사람이나 말의 피, 건너편의 적진에서 일어나는 초연(이 연기가 보인 뒤엔 반드시 포탄이 날아와서, 대지, 사람, 포, 말에 명중하였다)ㅡ그러한 여러가지 사물로부터 그의 머리에는 독특한 환상적 세계가 구성되어, 그것이 지금 그의 도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적의 대포는 그의 공상 속에서는 대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애연가가 가끔 연기 고리를 뿜어내는 파이프였다.(263-264쪽)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런데 힘이 있는 인간을 만나면 그 순간에 본능이, 이 사나이는 쓸모가 있다고 남몰래 가르쳐준다. 그래서 바씰리 공작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른 그 사나이에게 접근하여,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비위를 맞추고, 친숙해지고 필요한 일을 화제로 삼는 것이었다.(275쪽)

뜻하지 않은 자산가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그를 자기보다 힘이나 돈이 많은 사람에게 끌어갔다. 그리고 그 자신도 사람을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며, 또 그것이 가능한 그 순간을 포착하는 보기 드문 수완을 타고났던 것이다.

삐에르는 좀 전만 해도 고독하지만 아무 근심 걱정 없는 편한 신세였지만, 뜻하지 않게 자산가가 되고 베주호프 백작이라는 신분이 되어, 혼자 있게 되는 것은 잠자리에 들 때뿐일 정도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바쁜 몸이 되었다. 그는 서류에 서명을 하거나,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관청과 교섭하기도 하고, 무슨 일을 총지배인에게 물어 보기도 했다. 또는 모스크바 부근 영지에 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접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사람들은 전에는 그의 존재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가 만나주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비관에 빠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갖가지 사람들ㅡ사무가, 친척, 지인ㅡ은 모두 이 젊은 상속자를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 주었다. 누구 할 것 없이 삐에르의 우수한 자질을 분명히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는 듯했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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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자본

세상에서의 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자본이며,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을 소중하게 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28쪽)



한 걸음마다 깨닫게 될 것


˝여보게, 절대로 결혼 같은 건 하지 말게. 이건 자네에게 주는 나의 충고일세. 결혼을 해서는 안 돼.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더욱이 자네가 선택한 여자를 사랑하지 않게 되어 그 여자를 분명히 들여다볼 수 있을 때까지는 말이야. 그렇잖으면 자네는 비참한, 되찾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게 될 걸세. 결혼은 늙어서, 아무 쓸모가 없어졌을 때 하게……. 그렇잖으면 자네가 지니고 있는 좋은 것과 훌륭한 것이 모두 못쓰게 된다. 모두 보잘것없는 일에 소모되고 말지. 그래, 그렇다, 그래! 그렇게 놀란 얼굴로 나를 보지 말게. 만일 자네가 무언가 자기 앞날에 기대하고 있어도, 자네는 한 걸음마다 깨닫게 될 것일세.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모든 것에서 쫓겨나고, 남은 것이란 자네가 궁정의 하인이나 큰 바보들과 같은 줄에 서는 응접실뿐이라고 느끼게 돼.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43-44쪽)



이것이 여자야


˝그 우아한 여자라고 하는 것이 모두 어떤 것인지, 자네가 알 수만 있다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나의 아버지 말씀이 옳아. 이기주의, 허영, 두뇌의 우둔함, 만사에 있어서 무능, 있는 그대로 정체를 보이자면 이것이 여자야. 사교계에서 여자를 잠깐 보면 무엇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결혼은 하지 말게, 제발 결혼하지 말아.˝(45쪽)



아첨과 찬사


비할 바 없이 친밀하고 털어놓은 관계라도, 움직이기 위해서는 수레에 기름을 칠 필요가 있는 바와 같이 아첨과 찬사가 없어서는 안 된다.(45쪽)



흐뭇한 눈물


두 사람이 운 것은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로 선량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울고, 또한 청춘시절의 친구가 이처럼 천한 돈 때문에 속을 썩이고 있음을 생각하고, 자기네들의 청춘이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눈물은 흐뭇한 것이었다…….(84쪽)


둘 중의 하나


삐에르가 다가가자 백작은 곧바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그 눈초리의 의미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눈초리는 전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눈이 있는 한 무엇인가를 보아야 하는 데에 지나지 않은 것인지, 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지, 둘 중의 하나였다.(117쪽)



과거와 미래


출발이나 생활에 변화가 일어날 때 자기 행위를 잘 고려할 수 있는 사람은 흔히 진지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과거가 반성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세워진다.(144쪽)



사람을 사랑하는 것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 준 좋은 일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그 사람에게 한 좋은 일 때문이다.‘(146쪽)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알아다오, 마리야. 나는 나의 아내를 무엇 하나 책망할 수 없고 책망한 일도 없고 절대로 그럴 생각도 없다. 또 아내에 대한 나의 태도에서 나 자신을 비난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어떤 경우에 놓이게 되더라도 항상 변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만약 네가 진실을 알고 싶다면…… 내가 행복한지 어떤지 알고 싶다면 솔직히 말해서 행복하지가 않다. 그럼 아내는 행복할까? 역시 행복하지 않아.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149쪽)


˝떠났나? 그럼 됐어.˝


˝잘 있어, 마리야.˝ 그는 조그마한 소리로 누이동생에게 말하고 서로 키스를 나눈 뒤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공작 부인은 안락의자에 누워 있고 부리엔 양은 그녀의 관자놀이를 비비고 있었다. 마리야는 올케를 부축하고 눈물 젖은 아름다운 눈으로 안드레이가 나간 문 쪽을 마냥 바라보면서 오빠를 위해 성호를 그었다. 서재로부터 연거푸 코를 푸는, 화가 난 듯한 노인의 소리가 총소리같이 들려 왔다. 안드레이가 나간 순간 서재 문이 재빨리 열리고, 흰 가운을 입은 노인이 근엄하게 내다보았다.


˝떠났나? 그럼 됐어.˝ 그는 정신을 잃고 있는, 몸집이 작은 공작 부인 쪽을 화가 난 듯이 흘끗 보며 이렇게 말하고는 비난하는 것처럼 고개를 흔들며 문을 쾅 닫아 버리고 말았다.(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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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쯤 이런 연설을 들을 수 있을까?


지배욕. 그것은 저들 스스로가 ' 물러가노라!'고 외쳐댈 때까지 도시와 제국들의 얼굴에 대고 '물러가라!'고 설교하는, 저 크나큰 경멸의 무시무시한 여교사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 *

 

  


 

너무나 답답하고도 뒤숭숭한 시국 때문에 아무리 기를 쓰고 책을 펼쳐도 도무지 글줄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엊그제는 검찰의 중간 수사 발표를 생방송으로 챙겨보고 나서 어렵사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3주일을 연속으로 광화문 광장을 찾았던 탓일까. 별 일 없으면 주말마다 찾는 동네 도서관이 도리어 무척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거기에 가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을까 싶었다.

 

벌써 여러 날 전부터 읽다 만『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두 권이나 챙겼다. 그 책들을 펼치면 이토록 답답한 현실에서 얼마나 쉽사리 까마득히 머나먼 고대 세계로 한순간에 훌쩍 날아갈 수 있을까 싶은 들뜬 희망마저 생겼다. 그러나 그건 헛된 소망일 뿐이었다. 전3권 가운데 1권과 3권을 가방에서 꺼내 두 권을 동시에 책상 위에 펼쳤지만 결국엔 몇 주 전까지 읽다 만 대목에서 단 한 페이지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하릴없이 키케로가 쓴 '카틸리나 탄핵' 연설문을 다시 읽거나, 탄핵 대상이었던 바로 그 인물이 남긴 카틸리나의 연설문(「거사의 동지들이여」, 「장병들에게 고하노라」)을 다시 읽는 게 고작이었다.(누구에게나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온갖 괴상한 논리를 갖게 마련이다.) 나머지 많은 시간들은 자리를 벗어나 도서관 주위를 어슬렁거리거나 벤치에 앉아 끊임없이 폰을 만지작거리며 최신의 정치 뉴스들을 읽는 데 전부 쏟아붓고 말았다.

 

종내 배터리가 다 닳도록 온종일 뉴스를 살피다가 침침한 눈을 비비며 밤늦게 집으로 되돌아 오자니 허탈한 심정을 달랠 길이 없었다. 또다시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하더라도 정치권으로부터 홍수처럼 끝없이 쏟아져 나올 온갖 더럽고 추악하고 답답한 뉴스들 때문에 더더욱 시달리지나 않을까 싶은 예감마저 불쑥 끼어들어 더욱 기분이 나빴다.

 

이러는 와중에도, 어지러운 정치 뉴스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듯 멀리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치며 간신히 찾아 읽은 텍스트는 엉뚱하게도 (다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였다. 내가 밑줄로 그어놓은 부분이라도 끄적끄적 옮겨 적다 보면 이토록 어지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이미 읽었던 대목들을 다시 옮겨 갈무리할 때마다 느끼는 건 이제 더이상 그 텍스트가 휘발되지 않고 아주 깊숙하게 어디엔가 고이 저장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럴 때마다 텍스트를 온전히 거둬들이는 듯한 포획감뿐만 아니라 갈무리에 뒤따르는 왠지 모를 뿌듯한 느낌이 참 좋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건 톨스토이가 쓴 소설 속 문장들 속에서조차 '오늘날의 정치 현실'을 좀 더 명쾌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깨우쳐주는 듯한 대목들을 너무나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토록 거대한 장편소설을 읽으며 받았던 깊은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 것도 기뻤지만, 그 무엇보다도 톨스토이가 남긴 멋진 문장들과 통찰들을 현실에 되비쳐 살펴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제법 많은 분량이었지만 끝까지 힘겹게 필사를 계속하는 동안에 '현 시국'에 빗대 놓고 보아도 좋을 만한 대목들을 '인용문'과 함께 글로 엮어볼까 싶은 생각이 정말 여러 번이었지만 그 욕심도 어느새 다 흘려버리고 말았다.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전인권이 불렀던 노래의 한 대목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려버릴 수도 있어야겠다 싶었는지도 모르겠다.(지난 주말에 아내와 나는 무대에서 고작 3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앉아 있었기 때문에 무대와 화면을 번갈아 보며 그 역사의 현장에 생생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수십만 명의 군중과 함께 목청껏 불렀던 노래들이 정말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상록수>, <애국가>, <행진> 등을 그들과 함께 목청껏 부르는 동안 몇 번씩이나 목이 메이고 울컥했는지 모른다.)

 

서설이 너무 길었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주장하고 싶은 요지는 딱 하나였다. 나는 지난 11월 12일에 서울 도심을 꽉 메웠던 100만 군중이야말로 이번 '전쟁과도 같은 싸움'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그래도 아직은 이런 판단이 너무 성급한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날의 100만 군중은 너무 물렀다고. 그러나 그날 발디딜 틈조차 없이 서울 한복판을 꽉 메운 울분에 찬 민중들의 함성과 촛불 시위보다 더 무서운 '몽둥이'를 권력자에게 들이댈 수 있는 가능성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 물론 이번 주말에 더욱 놀라운 규모의 시민들이 보란듯이 광장을 메울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데는 아무래도 맨 처음으로 100만 시민들이 다함께 들어올린 몽둥이가 결정적이었다는 점을 아무도 쉽게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직도 지리멸렬하기만 하고 그저 권력욕에 눈이 멀어 고비때마다 자기 밥그릇이나 숟가락부터 먼저 챙기기에 바쁘고, 밥상을 향해 다투듯이 서로 달려드는 철부지와도 같은 추악한 정치인들의 사소한 잘못들까지 여기서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지 싶다. '그날' 100만 군중이 다함께 모여 참다 못해 기어이 토해낸 깊은 울분과 분노에 찬 함성과 연약하게 흔들리면서도 결코 꺼지지 않던 촛불의 숭고한 의미까지도 진정으로 가슴 깊이 받아들인 정치인들이 과연 얼마쯤이나 될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주제 또한 나폴레옹의 불의한 침략에 맞선 '소리없는 민중의 거대한 승리'가 주제이다. 어쩌면 이번 '11월 혁명'(?)의 결정적인 장면 또한 11월 12일에 광화문 광장 주변을 가득 메운 100만 시민의 함성 속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마침 지난 일요일 저녁 무렵에야 겨우 공식적으로 꺼내 든 청와대의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반격이 새삼 충격적이고도 놀라웠다. 그 뉴스는 우리 모두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톨스토이가 쓴『전쟁과 평화』속의 여러 대목을 다시금 떠올렸다. 아... 이미 권력자는 '치명상'을 입고 말았구나.. '그날' 받은 '치명상'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낀 짐승이 자신의 파멸을 느끼고 허둥대고 날뛰는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싶었던 것이다. 사태가 여기까지에 이르도록 무수한 '역(逆)의 우연'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음은 부언할 필요도 없다.

 

 

 * * *

 

보로지노에서 받은 치명상 때문에


무서운 힘으로 추켜든 손이 맥없이 늘어지는 꿈과도 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었던 것은 비단 나폴레옹만이 아니었다. 전쟁에 참가했건 안 했건 간에 프랑스군의 모든 장군들과 모든 병사들이 느끼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모든 전투를 경험하면서 (이제까지는 이 10분의 1의 노력에도 적은 도망가 버렸다) 병력의 반을 잃고 전쟁이 끝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와 마찬가지로 무섭게 버티고 있는 적에 대해서 나폴레옹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공격하는 프랑스군의 정신력이 소진된 것이다. 빼앗은 천 조각, 군기라고 불리는 막대기 끝에 단 헝겊 조각이나 군대가 서 있던 또는 서 있는 공간 등에 의해 결정되는 승리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정신적 우월과 상대방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정신적인 승리가 보로지노에서 러시아군에 의해서 쟁취되었다. 러시아를 침공한 프랑스군은 세차게 달리는 동안에 상처를 입어 미처 날뛰는 짐승처럼, 자신의 파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것은 전력이 반으로 약해진 러시아군이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격을 받은 후에도 프랑스군은 모스크바까지 굴러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러시아군 쪽에서 새로운 힘을 가하지 않아도, 프랑스군은 보로지노에서 받은 치명상 때문에 많은 피를 흘리고 멸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로지노 회전의 직접적인 결과는 모스크바로부터의 이유 없는 나폴레옹의 도주, 구(舊) 스몰렌스크 가도를 통한 귀국과 50만 침입군의 괴멸, 그리고 보로지노 전에서 처음으로 정신적으로 우세한 적에게 압도딘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의 괴멸이었던 것이다.(1127-1128쪽)



치명상을 입은 동물의 단말마적인 도약과 경련을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


전군의 상태는, 마치 자신의 파멸을 느끼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모르고 있는 상처를 입은 동물과 같았다. 모스크바 입성에서부터 군의 괴멸에 이르기까지의 나폴레옹과 그 군대의 교묘한 작전이나 그 목적을 연구하는 것은, 치명상을 입은 동물의 단말마적인 도약과 경련을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처를 입은 짐승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사냥꾼의 총소리 쪽으로 돌진하기도 하고 전후로 뛰기도 하여,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 흔히 있다. 나폴레옹도 군 전체에 끌려 그와 마찬가지 일을 하였다. 따루찌노 전투라고 하는 바삭거리는 소리가 짐승을 겁먹게 하였다. 그리고 짐승은 앞으로 뛰어나가 총소리 쪽으로 달려갔다가 뒤로 되돌아오고, 또 앞으로 갔다가 뒤로 되돌아와 마침내 모든 짐승과 마찬가지로 가장 불리하고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잘 알고 있는 옛 발자국을 더듬어 뒤로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움직임을 지휘한 것처럼 여겨지는 나폴레옹은 (뱃머리에 새겨져 있는 조각상이 야만인에게는 배를 움직이는 힘처럼 생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행동의 전체 기간을 통해서, 유개마차 안에 매 놓은 줄을 붙잡고 자기가 마차를 조종하고 있다고 공상하는 어린애와 비슷했다.(1377쪽)



조그마한 톱니바퀴야말로

기계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움직임을 보고, 그 기계의 가장 중요한 부품은 우연히 그 속에 들어가서 움직임을 방해하면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는 나무 부스러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계의 구조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움직임을 해치고 방해를 하는 나무 부스러기가 아니라, 소리도 없이 돌고 있는 조그마한 톱니바퀴야말로 기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의 하나임을 이해하지 못한다.(1394쪽)



국민 전쟁이라는 몽둥이

 

스몰렌스크의 화재 이래, 종래의 어떠한 전쟁의 전설에도 적용되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시와 마을의 소실, 몇 가지 전투 후의 후퇴, 보로지노에서의 손해, 두 번째의 후퇴, 모스크바의 포기와 화재, 약탈병의 체포, 수송차의 탈취, 유격전 등ㅡ이 모든 것은 규칙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검술가의 정규적인 자세로 모스크바에 남아, 상대방이 검 대신에 자기 머리 위에 쳐든 몽둥이를 본 바로 그 순간부터, 꾸뚜조프와 알렉산드르 황제를 향해서 전쟁하는 방법이 규칙에 어긋난다고 (마치 사람을 죽이는 데도 무슨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불평을 계속했다. 지위가 높은 러시아인에게는 몽둥이로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가 창피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프랑스 측의 규칙 위반의 불평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제4의 자세나 제3의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제1의 자세로 보기 좋게 찌르고 싶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 전쟁이라는 몽둥이를 무서운 힘으로 번쩍 들어올려 그 누구의 기호나 법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둔하리만큼 거칠게, 그러나 목적에 따라서 무조건 내리쳐 침략자 전체가 박멸될 때까지 프랑스군을 후려갈긴 것이다.(1409쪽)


 

경험 있는 소몰이

 

러시아군은 반이나 죽으면서 러시아 민족에게 어울리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모든 일을 했다. 그러므로 따뜻한 방에 앉아 있는 다른 러시아 사람들이 하기를 바랐던 일을 다 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은 러시아군의 책임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묘한 사실과 역사 서술 사이에 오늘날 이해할 수 없는 차질이 생기고 있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역사가들이 여러 장군들의 아름다운 감정이나 말의 역사를 쓰고 있을 뿐 사건의 역사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에게는 밀로라도비치의 말이나 어느 장군이 받은 포상이나 그들의 생각이 매우 흥미 있게 여겨지지만, 각처의 야전 병원과 무덤에 남겨진 5만 명의 문제는 그들의 연구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흥미를 끌지도 못한다.

그런데 상신서나 종합 계획 등의 연구에 등을 돌리고, 사건에 직접 참가한 무수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파내려가 보면, 이제까지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문제가 순식간에, 또 매우 손쉽고 간단하게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해결된다.


나폴레옹을 군과 함께 분단하려는 목적은 열 명 정도의 머릿속 외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의미하고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가 없다.

 

국민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자기들의 영토에서 침략자들을 소탕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은 첫째, 프랑스군이 퇴각하고 있었으므로 저절로 실현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단지 그 움직임이 멈추지 않도록 하기만 하면 되었다. 둘째로, 이 목적은 프랑스군을 괴멸시키고 있던 국민 전쟁 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또 셋째로는, 프랑스군의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에는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러시아의 대군이 프랑스군의 뒤를 밟는 것으로 수행되어가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달아나는 동물에 대한 채찍과 같은 작용을 하면 그것으로 족했다. 경험 있는 소몰이는 동물을 위협하면서 채찍은 들어 올린 채, 뛰고 있는 동물의 머리는 때리지 않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1465쪽)

 

 

우연과 역(逆)의 우연

 

무엇 하나 자기에게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의의를 덧붙여서 모든 자기의 범죄를 자랑하는 것을 본질로 삼고 있는 영광과 위대한 이상, 이 사나이와 그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인도할 이상이, 자유분방하게 아프리카에서 형성된다. 그가 무엇을 하든 모두 성공한다. 그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 포로 학살의 잔인성은 그의 죄가 되지 않는다. 어린이처럼 경솔하게, 이유도 없이 비열하게 아프리카를 떠나 고통받고 있는 동료를 그대로 남겨둔 것은 그의 공적으로 여겨지고, 적의 함대는 또다시 그를 놓치고 만다. 자기가 행한 행운의 범죄에 기분이 좋아진 그가 자기의 역할을 다할 상태가 되어 아무런 목적 없이 파리로 돌아왔을 때, 1년 전에 그를 파멸시켰을지도 모르는 공화국 정부의 붕괴는 극한에 달해 있었고, 당파의 때가 묻지 않은 인간인 그의 존재는 지금 정부의 의의를 높일 뿐이었다.

 

그 사람만이, 이탈리아와 이집트에서 만들어낸 영광과 위대(偉大)의 이상,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자기 찬미, 대담한 범죄, 그럴듯한 거짓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이 이제 일어나려고 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필요한 인간이었으므로 거의 자기의 의지에 관계없이, 그의 우유부단과 무계획, 그가 하는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는 권력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음모에 휘말려 그 음모가 성공을 거둔다.

 

우연이, 무수한 우연이 그에게 권력을 주고 모든 인간들이 상의라도 한 것처럼 그 권력의 강화에 협력한다. 우연이, 당시의 프랑스 총재들의 성격을 그에게 복종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

 

…… 그런데 갑자기 그때까지 계속된 일련의 승리에 의해서, 실로 시종일관해서 그를 예정된 목적지로 이끌어온 우연과 천재 대신에, 보로지노의 코감기에서, 혹한과 모스크바에 불을 붙인 하나의 불꽃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역(逆)의 우연이 나타난다. 그리고 천재 대신에 유례없는 어리석음과 비열함이 정체를 드러낸다.

 

침략자는 패주하여 뒤로 물러났고, 다시 패주해서 모든 우연이 이제는 그의 편을 들지 않고 끊임없이 그에게 등을 돌린다.

 

파리ㅡ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나폴레옹 정부와 군대는 붕괴된다. 나폴레옹 자신은 이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의 모든 행위는 분명히 비참하고 혐오스럽다. 그런데 또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라는 것이 생긴다. 동맹자들이 나폴레옹을 자기들의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미워한다. 힘과 기능을 빼앗기고 악행과 간지(奸智)가 폭로된 이상, 그는 10년 전이나 1년 후에 그랬던 것처럼 동맹자의 눈에 무법한 악당으로 비쳐야 했다. 그런데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우연에 의하여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10년 전이나 1년 후에는 무법의 악당이라고 여겨진 인간이 프랑스에서 이틀이면 갈 수 있는 섬으로 보내어지고, 그 섬이 그의 영지로 주어지고, 친위대와 무엇인가를 위하여 지불되는 수백만의 돈도 따라간 것이다.

 

(…)

 

프랑스를 황폐하게 만든 인간이 혼자서 음모도 없이 병사도 거느리지 않고 프랑스로 되돌아온다. 보초라면 누구나 그를 잡을 수가 있었는데 기묘한 우연으로 누구 하나 그를 잡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하루 전에 저주하고 1개월 후에도 저주하게 될 이 인간을 기쁨으로 맞이한다.

 

이 인간은 총괄적인 마지막 막을 납득이 가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아직도 필요한 것이다.

 

그 막은 끝난다. 마지막 연기가 끝난다. 배우는 옷을 벗고 눈썹과 입술연지를 씻어내도록 명령된다ㅡ그는 이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간이 고독하게 자기의 섬에서 스스로 자기에게 비참한 희극을 연출하고, 정당화가 이제 필요 없을 때에 자기 사업을 정당화하려고 쩨쩨한 책략을 꾸미며 거짓말을 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사나이를 인도하고 있었을 때, 사람들이 힘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를 온 세계에 알리는 데에 수년의 세월이 흐른다.

 

모든 일을 꾸몄던 자가 연극이 끝났을 때 배우의 옷을 벗기고 우리들에게 보인다.

 

"보시오. 당신들이 믿었던 것을! 이거요! 이제 알겠죠? 이 사나이가 아니라 내가 당신들을 움직였다는 것을."

 (1545-15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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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은폐와 거짓과 속임수가 우리의 눈과 귀를 멀게 했던가를 생각하면 아직도 어이가 없고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말을 타는 재주 하나만 가지고도 온갖 입시의 어려운 문턱을 우습게 뛰어넘은 어느 여대생의 기막힌 성공 스토리는 거대한 구성을 지닌 놀라운 역사 드라마의 아주 조그만 시작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거의 모든 계층의 온갖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 '희대의 국정 농단 사건'의 폭넓고도 놀라운 전개와 이번 이야기의 바탕을 더욱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오래 묵은 희안한 역사적 배경들이 지닌 기묘하고도 놀라운 모습까지도 함께 되짚어 본다면 말이다.

 

무려 백만이 넘는 군중들이 주말마다 도심 한복판에 모여 들어 엄청난 분노의 함성을 목청껏 쏟아내는 일조차도 이 드라마에선 그저 사소한 무대 배경의 한쪽 구석처럼 아직은 시시하고도 초라해 보일 뿐이다. 수천만 국민들이 저마다 이 끔찍한 현재진행형의 '역사의 현장'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드라마의 전개 상황은 좀처럼 빠르게 진척되거나 해소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건의 무리한 극적 전개보다는 싱겁게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의 희극적 결말을 함께 바라는 수많은 재외국민들조차 전세계 도처에서 똑같은 주장으로 촛불을 켜고 목청을 돋구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눈과 귀를 아예 틀어막은 몇몇 인물들에겐 그런 소리가 좀처럼 제대로 와닿지 않는 걸까.

 

수많은 역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인간들이 거의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집착해 왔던 '권력에의 의지'는 참으로 무섭고도 질기다는 생각에 다시금 몸이 떨린다. 도대체 이 비극의 연원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단지 이번 비극에 등장하는 주역들이 유달리 튼튼한 '조상의 갑옷'을 입고 태어난 유별난 존재들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태생적으로 껴입을 수밖에 없었던 '조상이 남긴 거대한 갑옷'의 무게를 결코 함부로 무시할 일은 결코 아닌 듯하다. 아직도 대단원의 막이 다 내려오기까지는 결코 적지 않은 여러 다양하고도 드라마틱한 국면 전개를 한참이나 앞두고 있는 듯한 이 놀라운 역사적 비극이 도대체 언제쯤 클라이막스를 지나 마침내 서서히 결말에 가까이 다가설지 - 그와 동시에 그 무대에 함께 참여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을 말할 수 없는 비애감과 함께 깊은 침묵 속에 빠뜨리거나 혹은 뜨거운 박수와 감격스러운 기쁨의 눈물로 마주하게 될지 -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 놀라운 역사 드라마의 관객임과 동시에 극중 등장인물들 가운데 아주 중요한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대중들이 너무 일찍 좌절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이미 이 거창한 드라마의 초반부를 온통 휘어잡으며 맹활약했던 주연급 여배우의 딸의 현재의 처지만 보더라도 그렇다. 드라마는 우리도 모르게 어느새 극적인 반전을 차근차근 미리 준비해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니 말이다. 무려 10억원을 넘는다는 세계적인 명마의 등에 올라 타고 자신의 신분까지도 국내 최고의 대기업 소속으로 포장해 가면서 독일의 승마훈련장을 뽐내며 내달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러움과 질시의 희귀한 표본 가운데 하나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적잖은 또래 여학생들이 그런 모습만 보고도 그녀가 뽐내는 것들과 자신들의 암울한 처지를 한번쯤 슬쩍 비교해 보며 잠시나마 깊은 탄식을 토해 냈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 주연급 여배우의 딸의 처지는 벌써 얼마나 빠르게 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는가. 그녀가 이 놀라운 드라마의 초반부에 모든 관객들을 향해 똑똑히 들으라는 듯이 자랑스레 내뱉은 몹시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대사('돈도 실력이거든, 니 부모를 원망해')는 또 얼마나 빨리 그 말을 내뱉은 주인공을 향해 무서운 앙갚음을 되돌려 주고 있는가 말이다.

 

이 드라마는 여전히 얼마나 더 자주, 얼마나 더 많은 군중들을 도심의 광장으로 계속 끌어들일지, 또 어떤 피하기 힘든 안타까운 장면들을 더 연출해 낼지 도무지 짐작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안개 속과도 같이 복잡하게 전개되는 이 이야기도 언젠가는 그 참담하고도 서글픈 이야기를 끝맺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그 마지막 결말이 결국엔 헌법이 명백하게 규정한 대로 '민중의 승리'로 귀결되리라는 것 또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단지 '무거운 갑옷'을 몸에 걸친 채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무대 위를 거침없이 활보하는 악역의 주인공들이 너무 오랫동안 거기에 머무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들이 이 못난 역사 드라마에 너무 오래 머물수록 끝내 우리 모두에게 무거운 짐과 깊은 상처만 떠안기는 비참한 결말로 다가설 뿐일 테니 말이다.

 

조상이 남긴 거대한 갑옷

 

우리는 풍요로운 세계에서 태어난 인생이, 결핍과 투쟁의 와중에 있는 인생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하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판단에는 매우 엄밀하고 근본적인 이유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 그것을 거론할 때는 아니다. 여기서는 그 이유들을 열거하는 대신, 모든 세습귀족의 비극에 등장하는 언제나 되풀이되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귀족이 뭔가를 상속한다는 것은 자신이 창조하지 않은, 따라서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않은 인생 조건들을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태어나면서 졸지에 영문도 모른 채 부와 특권을 소유한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래 그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부와 특권은 다른 사람, 다른 인간, 곧 그의 조상이 남긴 거대한 갑옷이다. 그래서 그는 상속자로 살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의 갑옷을 걸쳐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세습 '귀족'은 자신의 삶을 사는 걸까, 아니면 선조 귀족의 삶을 사는 걸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그는 타인의 삶을 재현해야 하며, 따라서 타인도 자신도 아닌 운명을 짊어진 것이다. 그의 삶은 불가피하게 진정성을 상실하고 순전히 다른 삶을 재현하거나 꾸미는 것으로 변화한다. 그가 관리해야 할 과다한 재산은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을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그의 삶을 위축시킨다. 모든 삶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싸움이며 노력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부딪치는 어려움은 나의 활동과 능력을 일깨워 활용하게 해준다. 만일 대기가 내게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면 내 몸은 이리저리 떠다니는 흐물흐물한 유령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습 '귀족'의 인격은 삶의 노력과 활용 부족으로 점차 모호해진다. 그 결과 옛 귀족 가문 특유의 어리석음만이 남는다. 이는 아직까지 아무도 그 내부의 비극적 메커니즘 - 모든 세습귀족을 어쩔 수 없이 퇴보하게 만드는 - 을 그려낸 적이 없는 어리석음이다.(135쪽)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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