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었더라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봄부터 기다려왔던 가을 산행을 끝마치고 일상으로 되돌아 오고 나니 내가 살던 세상이 갑자기 '순실의 시대'로 뒤바뀌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한동안 '순실의 시대'를 살고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하는 게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봉건시대에도 일어날 수 없다고 했던 일들'이 우리가 살던 '요즘 세상'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충격이 너무나도 컸던 탓일까. '그날 이후'로 좀처럼 뉴스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벌써 3주일째를 공중에 붕 뜬 기분으로 보내고 있다. 책을 읽는 일조차 허망하게만 느껴질 정도로 허탈하고 분하고 참담한 마음을 좀처럼 떨치기 어렵다. 어이없고 분통 터지는 뉴스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좀처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가만 돌이켜 보면 그동안 (정치적인 사건들로만 한정해서 보더라도) 이보다 더한 일들도 숱하게 많이 겪으며 살아왔는데 왜 하필이면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유난스레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을 좀처럼 삭일 수 없는지 그 까닭을 좀처럼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래도 차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번 사건이 이토록 억누르기 힘든 분노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들이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그런 요인들을 지금부터 미리 억지로 끄집어내고 정리해 보려고 애쓸 필요까지는 없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어떤 식으로든 큰 틀에서 어느 정도 마무리되기까지는 앞으로도 결코 적지 않은 시간과 크나큰 우여곡절을 더 겪을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크나큰 정치적 사건 때문에 '평범한 일상'조차 송두리째 흔들렸던 경험이 언제쯤 있었던가를 곰곰 되돌아 보니 내겐 1979년에 일어났던 '10.26 사태'가 처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37년 전의 일이었다. 그 당시 지방 중소도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나는 매일 아침 배달되는 조간신문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부터 '계속 우리나라의 대통령'으로 굳건하게 군림해 왔던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오랜 심복들간의 권력 암투와 갈등 때문에 궁정동 안가의 술자리에서 느닷없이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둔 것부터 아주 드라마틱했고, 그 사건의 주역이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총을 들이대며 건넨 울분에 찬 욕설("이 버러지 같은 놈")도 좀처럼 잊기 어려울 만큼 생생해서 내내 신문 기사에서 좀처럼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 충격적인 시해 사건 이후로도 '정치적 상황'은 여전히 급변의 연속이어서 좀처럼 '대학 입시 공부'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그때는 입시를 1년여 앞둔 시점이어서 조금은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통령 시해사건이 일어난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또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한밤중에 탱크를 앞세우고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시내로 진입한 신군부 쿠데타 세력들이 내전이나 마찬가지였던 12.12 사태를 일으켰고, 곧이어 권력을 잡은 신군부의 서슬퍼런 국보위가 출범했고, 이듬해 봄에는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처참하고 피비린내나는 군부의 잔악한 민중 학살사태(5.18 민주화 운동)까지 일어났으니 말이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난생 처음으로 '반정부 시위'라는 걸 경험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우리는 '대학생 형들의 가열찬 반정부 데모'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겠다는 충정으로 '교련 수업'을 거부하면서, 교련 복장을 한 채 군사훈련 교육을 거부하는 대신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이듬해에 대학에 진학해서는 데모가 거의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선배들만 간혹 잡혀가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친구들이 하나둘씩 붙잡혀 들어가기 시작했고, 더러는 그 와중에 목숨까지 잃고 기어이 '열사'가 되기도 했다. 적잖은 학우들이 군대에 강제로 징집되기도 했다. 2학년을 마치고 군복무 3년을 거쳐 다시 복학하고 나서도 사정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복학한 첫 해 봄부터 다시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고, 1987년 봄에는 4.13 호헌조치가 발표되면서 온 나라가 들끓었다. 교내에서는 연일 집회와 시위가 계속되었고 마침내 가열찬 가두투쟁에 나선 끝에 6.10 민주 항쟁이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학생 신분으로서 서울 시내까지 진출해서 전투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며 데모를 벌인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무려 29년이 흐른 지난 주말에 나는 다시 광화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아내와 함께였다. 오후 네 시 무렵에 광화문 광장에 도착해서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가 적힌 카드를 받아 챙긴 뒤에 광장 여기저기를 둘러본 끝에 세종문화회관 계단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광화문 한복판에서 수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마이크에서 울려나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의 시국 연설을 들었다. 그리고 오후 5시 50분부터 종로 쪽으로 이동하면서 가두행진에 나섰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는 범죄자다'라는 구호와 함께 틈틈이 집회 진행자의 요청에 따라 '함성'도 크게 내질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광화문 네거리와 종로와 시청앞 차도를 마음껏 활보하며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참으로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나라냐' 싶은 생각도 들었고, '지금이 도대체 어느 시대인데 지금도 우리가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번 사건을 두고 각자가 싶은 말들이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도 생각해 봤다. 지난 3주 동안 이미 수많은 논설과 칼럼과 패널들의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나까지 여기에 잡설을 덧보태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그나마 이렇게 감상 몇 줄만이라도 여기에 끄적여 꺼내놓지 않으면 너무나 답답할 듯싶어 내가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부터 약속이 잡혀 있었던 이번 주말의 1박 2일 동안의 계모임 약속조차 지키기 힘겨워 어젯밤엔 기어이 KTX 기차표마저 '반환'하고 말았다. 나라가 온통 들끓고, 광화문이 지척에 있는데 나홀로 한가하게 기차를 타고 지방을 여행삼아 다녀올 기분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오늘 또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면 늘 한결같이 거기에 우뚝 서 계신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마주치지 않을 도리가 없지 싶다. 이제는 이순신 장군 동상마저 혹여 '내가 이러려고 나라를 구했나' 싶은 마음을 품으실까봐 두려울 지경이다. 참으로 역사에 부끄러운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언젠가 먼 훗날에 지금 이맘때를 홀연히 되돌아보더라도 부끄러움과 후회보다는 웃음부터 먼저 떠올리며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든 게 결국 우리들의 손에 달렸다. 오늘 하루가 우리가 늘 희망하는 '평범하고 따분한 일상 가운데 하루'가 아니어도 좋다. 그런 평온한 하루 하루를 만드는데 오늘 하루가 결코 허투루 쓰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평범하고도 평온한 일상들을 더 자주 누릴 수 있기 위해, 오늘 하루가 '역사에 빛나는 그날 하루'로 격상될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고...


 * * *


아래 사진들은 이번 '가을 산행' 때 찍은 것들이다. 지난 10월 23일 토요일 새벽에 서울을 훌쩍 벗어나 강원도 정선에 있는 가리왕산(1,561m)을 올랐었다. 하산한 뒤에는 정선 시내에서 쏘가리 매운탕으로 넉넉한 뒷풀이를 한 뒤에 팬션에서 1박을 하고, 이튿날 다시 동해안으로 넘어가 강릉 경포대쪽 바닷가에서 하루를 더 묵은 뒤 월요일에 서울로 되돌아오는 길에 오대산 입구 둘레길을 다녀왔다. 서울로 되돌아온 그날(10/25) 저녁 이후로 '평범한 일상'이 완전히 어디론가 떠밀려나고 말았다. 언젠가는 또다시 따분하고도 평온한 일상이 틀림없이 누구에게나 다시 찾아오리라 믿는다. 적어도 내년 가을쯤에는(?) 나도 다시 '순수한 마음'으로 '가을 단풍'을 반갑게 마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1. 진부IC를 나오자 말자 서둘러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산채정식'으로 유명한 '부일식당'에 들렀다.




2. 두툼하고도 따끈한 두부맛은 어릴 적 고향에서 자주 맛봤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릴 만큼 구수하고 좋았다.




3. 장구목이 입구에서 산길로 접어드니 화려한 단풍이 금세 우리를 맞는다.




4. 단풍은 어떤 빛깔이든 모두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듯하다.




5. 인적도 드문 깊은 산골짝에서 만나는 화려한 단풍은 어딘가 몹시 고고한 자태가 느껴진다.




6. 이토록 자연스런 단풍은 낯선 방문객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7. 가리왕산은 이끼가 많은 산으로도 유명하다. 여름철에 찾으면 더위를 식히기엔 더할나위가 없지 싶다.




8. 가을해가 짧아서 정상이 그리 멀지 않아도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이제 겨우 1/3 정도 올랐을 뿐이다.




9. 10월 하순에 느닷없이 피어난 진달래. 어이없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마음이 참 복잡했다.




10. 꽤나 많이 올라왔는데도 여전히 물이 풍족하다.




11. 가리왕산은 주목 군락으로도 유명하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산다는 주목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참 짧다.




12. 오를수록 가파른 길의 연속이어서 악전고투 끝에 우리는 겨우 절반(6명 중 3명)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벌써 오후 4시 30분이라 인적도 모두 끊겼다. 저물기 전까지 다 내려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13. 하늘의 구름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14. 김밥과 막걸리 한 잔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는 동안 하늘이 갑자기 맑아졌다.




15. 서둘러 하산에 나섰다. 저멀리 남쪽(영월 방향)으로 산능선들이 아스라히 펼쳐져 있다.




16. 팬션에서 하루를 묵은 뒤 '정선 시내'를 거쳐 '정선 아우라지'로 향하고 있다.




17. '정선 아리랑'의 고향, 정선 아우라지에 왔을 땐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18. 따스한 봄날 여기를 처음으로 찾아왔던 게 벌써 10년 전이다. 세월 참 빠르다.




19. 수수한 접시 위에 고스란히 회만 담아냈지만 맛은 끝내줬다. 경포대의 어느 허름한 횟집에서 주문한 '자연산 회'




20. 이튿날 아침 활짝 갠 경포 앞바다의 가을 풍경.




21. 오대산 월정사로 가는 길목에 늘어선 전나무 숲길.




22. 오대산 월정사를 지나 새로 꾸며진 '선재길'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 있고 가을이면 계곡을 따라 물드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코스 선재길은 월정사부터 상원사까지 9km 숲길로 60년대 말 도로가 나기 전부터 스님과 불교신도들이 다니던 길이다.)



23. 눈부신 가을 햇살과 어우러져 가을 단풍이 고혹적이다.




24. 오대천을흐르는 묽은 너무 맑아 계곡 바닥이 훤히 다 들여다보인다.




25. 이곳 단풍은 절정을 조금 지난 듯하다.




26. 평일 오전인데도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오간다.




27. 파란 하늘에 비친 붉은 단풍. 색깔이 유난히 곱다.




28. 노랗게 물든 단풍도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한 아낙네처럼 정겹게만 느껴진다.




29. 무더운 여름 한철엔 더위를 식히기 딱 좋을 듯하다.




30. 계속 위쪽으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길로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31. 커다란 바위를 이끼가 덮고, 그 위에 어느새 단풍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어느새 가을을 장식하고 있다.




32. 이토록 따스한 가을 햇살도 며칠 남지 않았다. 머잖아 이곳에도 눈보라가 휘날리는 찬 겨울이 곧 닥쳐오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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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1-12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어수선해도 우리의 삶이 파괴되어서는 안되지요^^: Oren님 좋은 말씀과 멋진 산행 사진 감사합니다.^^:

oren 2016-12-13 16:05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안녕하세요? 늘 좋게 봐주시고 성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heroism0101 2016-11-12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는 길에 우연찮게 관심갖던 책의 멋진 서평을 보고 친구추가 하게 되었습니다

oren 2016-12-13 16:05   좋아요 0 | URL
친구로 추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kj_Shin 2016-11-2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풍사진이 너무 이쁩니다.(빨강과노랑의 조화) 사진을 보면서 글을 읽어나가니 제가 강원도를 다녀온듯 잠시착각했습니다. 다음 이쁜단풍잎이 물들때 쯤이면 어린아이들까지 촛불을 든 광화문은 아닐것입니다.(그때까지는 말도 안되니깐요.너무 길어요!!)

oren 2016-12-13 16:08   좋아요 0 | URL
강원도를 다녀올 때만 하더라도 세상이 이토록 어지럽고, 온갖 추악한 일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저질러질 줄은 차마 몰랐네요. 그리고 광화문에 그토록 많은 인파가 몰려 ‘거대한 함성‘을 외출 줄도 몰랐었구요. 그러고 보니, 그 짧은 두 달여 만에 대통령까지 탄핵 직전이니 세상이 참 많이 바뀌긴 바뀌었군요. ㅎㅎ
 
볼테르와 키케로

 

 

이게 나라냐 싶은 생각을 잠시라도 떨치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한 나날의 연속이다. 책 조차 읽기 싫을 정도로 도무지 뉴스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어렵사리 옛 고전을 뒤적거리다가 결국 '고대 로마시대의 명연설문'에 이르러서야 겨우 글줄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다시금 만난 글이 로마 공화정 말기 최고의 웅변가인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키케로의 연설이 행해졌던 날로부터 무려 2,000년도 더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 연설 내용이 오늘날의 현실에 빗대어봐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어쩌면 이토록 오늘날의 상황에 딱 들어맞을 수가 있을까 싶어 너무나 놀랄 지경이다. 좋은 연설은 참으로 질긴 생명력이 있다. 그 이유가 뭘까? 굳이 자세히 따져물을 필요도 없다. 그것이 우리의 보편타당한 마음에 호소하고, 또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은 모두 4차례에 걸쳐 있었다. 제1 연설은 B.C. 63년 11월 8일에 원로원 의회에서, 제2 연설은 B.C. 63년 11월 9일에 중앙 광장에서의 시민 집회에서, 제3 연설은 B.C. 63년 12월 3일에 역시 중앙 광장에서, 제4 연설은 B.C. 63년 12월 5일 원로원 의회에서 행해졌다.

 

아래 인용문은 '제1 연설'의 일부분이다.

 

참고로,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B.C. 108 ∼B.C. 62)는 B.C. 63년 7월의 집정관 선거에서 패배한 뒤, 폭력적 수단에 의한 정권탈취를 계획한다. 이 음모를 안 집정관 키케로는 원로원에서 그것을 적발하고 같은 해 10월 21일, 카틸리나의 반란을 저지하기 위한 원로원 최종 결의가 채택되었다. 카틸리나는 반역의 주모자로 지목받으면서도 여전히 음모를 단념하지 않고 대담하게도 자신의 모반을 좌절시키기 위해 소집된 이 원로원 의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 연설에서 키케로는 그에게 로마를 떠나도록 촉구한다. 10월 21일의 원로원 최종 결의에서부터 이 연설이 행해졌던 11월 8일까지 '19일 동안' 카틸리나는 호시탐탐 '권력'을 되찾기 위한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키케로가 마침내 "로마 시민 여러분, 오늘 국가는 구제되었다. …… 구원받는 날은 탄생한 날에 못지않게 우리에게 기쁘고 빛나는 것이다.……' 로 이어지는 감격에 찬 연설을 들려줄 수 있었던 날은 '제3 연설'(B.C. 63년 12월 3일) 때이다. 그날 카틸리나 일파의 음모 사실이 끝끝내 마저 밝혀져 로마에 잔류한 공모자들이 모조리 체포되었던 것이다. 제4 연설은 '반역자들의 처리'에 관한 내용이며, 이 당시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키케로의 연설에 뒤이어 <반역자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제목의 명연설을 남겼다.)

 

 

 

 * * *

 

 

언제쯤에야 그대는 우리의 인내력을 악용하는 이 못된 짓을 그만둘 작정이오?

 

오, 카틸리나! 언제쯤에야 그대는 우리의 인내력을 악용하는 이 못된 짓을 그만둘 작정이오? 이 뒤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그대의 광기로 우리를 모욕하겠소? 지금과 같이 거들먹거리는 그대의 고삐 풀린 뻔뻔함이 언제 끝이 나겠소? 팔라티움 언덕에 배치한 강력한 수비대, 로마시 전역에 깔려 있는 파수병들, 시민들의 경계와 선량한 사람들의 단결된 힘, 가장 튼튼하게 방비를 갖춘 이곳에서 열린 원로원의 예비 조치,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이 근엄한 원로원 의원들의 모습과 표정이 그대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단 말이오? 그대의 계획은 이미 탄로가 났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거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까닭에 그대의 음모는 이미 제동이 걸리고 무력해졌음을 깨닫지 못하겠소? 지난밤에, 그리고 지지난밤에 그대가 무엇을 했으며, 어디에 있었는지, 그대가 만나려고 불러들인 자가 누구이며, 그대가 어떤 흉계를 꾸몄는지를 우리가 모르고 있다 생각하시오?(1986)


 

그대가 마음을 바꾸시오

 

오, 카틸리나여, 밤이 그 어둠으로 그대의 흉악한 모임을 가릴 수 없고, 집들이 그 벽과 담으로 그대 음모의 목소리를 감싸줄 수 없어 모든 것이 드러나 보이는데,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단 말이오? 그대가 마음을 바꾸시오. 나를 믿고, 그대가 꿈꾸고 있는 살육과 방화를 잊어버리시오. 그대는 사방으로 갇혀 있고, 그대의 모든 계획이 우리에게는 낮보다 밝게 보인다는 걸 그대에게 깨우쳐 주겠소.(1988)


 

그대가 로마를 떠난다면, 가치 없는 쓰레기인 그대의 공범들마저 이 도시를 떠나게 되지 않겠소.

 

그대는 불멸의 신들이 머무르고 있는 이 신전들을, 이 도시의 집들을, 모든 시민의 생명을, 한마디로 이탈리아 전체를 무너뜨리고 폐허로 만들려 하고 있소.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맡은 권한과 조상의 규율에 속하는 최선의 조치를 취하기에 앞서, 그 준엄성을 헤아려 한결 자비롭고 국가의 편의를 도모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오. 이를테면 내가 그대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더라도, 나머지 반역자들은 여전히 공화국 안에 남아 있을 것이오. 그런데 내가 오랫동안 충고해 온 대로 그대가 로마를 떠난다면, 공화국의 가치 없는 쓰레기인 그대의 공범들마저 이 도시를 떠나게 되지 않겠소. 카틸리나여, 무슨 미련이 남아 있소? 그대가 이미 스스로 시작한 일인데, 내가 명령을 한다고 머뭇거릴 이유가 뭐요? 집정관이 한 사람의 적에게 이 도시를 떠나라 명령하고 있소. 그대가 유배를 가야 하느냐고 나에게 묻고 싶소? 나는 그런 명령을 내리지는 않겠소. 하지만 만약 그대가 나에게 상의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권고하는 바이오.

 

오, 카틸리나여, 그대가 이 도시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무엇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대들 타락한 반역의 무리를 제외하고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이 도시에는 없소ㅡ그대를 증오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소. 그대의 생애에 찍히지 않은 이 나라의 비열한 낙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대의 사생활에 오명(汚名)을 불러들였던 치욕적인 상황으로도 모자라는 게 있다는 말이오? 지금까지 그대의 눈이 피했던 방탕한 행위가, 그대의 손이 피했던 잔혹한 행위가, 그대의 온몸이 피했던 부정한 행위가 단 하나라도 있었소? 그대가 타락한 유혹으로 휘감아 들인 젊은이 가운데 파렴치한 범죄의 칼을, 부도덕한 간계의 횃불을 내밀지 않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단 말이오?(1990-1991)

 

 

게다가 그대는 자신의 교활함을 의식하고 있는 까닭에

 

그런데 지금 그대가 꾸려가고 있는 그대 삶이 어떤 모습이오? 나는 당연히 느껴야 할 증오보다는 오히려 측은한 마음으로 그대에게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소. 그대에게는 증오와 측은한 마음 둘 다 어울리오. 그대는 조금 전에 원로원에 들어왔소.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그토록 많은 친지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그대에게 인사를 했소? …… 그대는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지 않소? 나라면 설령 내가 시민들에게 부당한 의심과 증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모든 사람의 적의에 찬 눈길을 마주 보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의 눈 밖으로 달아나고 싶소. 게다가 그대는 자신의 교활함을 의식하고 있는 까닭에 모든 사람들의 증오가 정당하고 오래전부터 그럴 만했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런데도 그대가 마음과 감정을 거슬리고 있는 사람들 앞을 떠나 그들의 눈길을 피하는 일을 망설이고 있다는 말이오? 그대의 부모가 그대를 두려워하고 증오한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대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의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면, 그대가 그들 눈에 띄지 않을 어느 곳으로 떠나야 된다고 생각하오. 우리 모두의 공통의 어버이인 그대의 조국이 지금 그대를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존속살해 모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소. 도대체 그대는 국가의 권위에 경외를, 그의 판단에 경의를, 그 권능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오?(1992-1993)

 

 

그대만이 모든 법률과 수사(搜査)를 무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걸 뒤엎고

 

오, 카틸리나여, 조국은 그대에게 간곡히, 그리고 조용히 말하고 있소. 지금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대가 아니고는 아무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극악무도한 행위치고 그대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대만이 처벌을 받거나 심문을 당하지 않은 채 시민들을 죽이고, 우리 동맹국을 괴롭히고 약탈했으며, 그대만이 모든 법률과 수사(搜査)를 무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걸 뒤엎고 뚫고 나아갈 수 있는 권력을 누려왔다고.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나는 그대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되도록 참으려 애썼소. 그러나 지금 나는 오로지 그대에 대한 공포만으로 가득 차 있으며, 소리만 나도 카틸리나를 두려워하고, 나를 해치려는 흉계치고 그대의 간교한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더는 참을 수가 없소. 그러니 떠나시오. 그리고 나를 이 공포에서 풀어주시오.(1993)

 


 

운명이 그대를 지끔까지 보전하여 이 광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오

 

마침내 그대는 그대의 고삐 풀리고 미처 날뛰는 욕망이 오래전부터 몰아대던 곳으로 가게 될 것이오. 이 덕분에 그대는 슬퍼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지없는 기쁨을 느낄 것이오. 천성이 그대의 틀을 잡았고, 욕망이 그대를 단련했으며, 운명이 그대를 지끔까지 보전하여 이 광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오. 그대는 조용히 있기를 바란 적이 한 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범죄적인 전쟁만을 추구했소. 그대는 온갖 감정만이 아니라 희망마저 저버린 쓸모없는 흉악범 패거리들만 모아왔소.


그렇다면 그대가 누릴 행복이 무엇이겠소! 그대는 어떤 기쁨에 춤출 수 있겠소! 그대가 무슨 쾌락에 잠길 수 있겠소! 그렇게도 많다는 친구들 가운데 선량한 인간은 단 하나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으니 말이오. 그대가 거쳐왔다는 온갖 노고가 한결같이 이따위 생활을 겨냥해 왔소. 그대가 땅바닥에 엎드려 있을 때에는 그대의 불결한 욕망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였소. 잠자고 있는 남편들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할 때만이 아니라 살해된 희생자들의 재산을 빼앗으려 모의할 때에도, 그대는 언제나 이런 짓을 하려고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소. 이제 그대는 굶주린, 추위와 온갖 궁핍을 멋지게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할 기회를 잡게 되었소. 하지만 그대는 오래지 않아 그 때문에 닳을 대로 닳게 될 것이오. 그대가 나의 집정관  선출을 거부했을 때 나는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그대가 집정관 자리에 있으면서 이 나라를 괴롭히기보다는 망명객으로 나가 그대의 조국에 해를 끼칠 음모를 꾸미도록 내버려 둬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소. 그리고 그대가 사악한 책략으로 벌여놓은 행위는 전쟁이라기보다는 해적질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나는 것이오.(1995-1996))

  


사악한 모든 병폐와 이처럼 오래된 광기와 뻔뻔함이 활짝 피어나 그 절정에 이르렀소.

 

원로원 의원 여러분,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이런 음모의 위험과 책동에 시달리며 살아왔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가 집정관 자리에 오르자, 사악한 모든 병폐와 이처럼 오래된 광기와 뻔뻔함이 활짝 피어나 그 절정에 이르렀소. 그런데 만일 이 사람만을 이 해적 무리에서 제거한다면 아마도 얼마 동안은 우리의 공포와 불안에서 풀려나는 듯한 인상을 받겠지만, 사실은 이 나라의 혈관과 내장에 그 위험이 깊숙이 가라앉아 숨어 있게 될 것이오. 중병에 걸린 사람들이 고열에 시달릴 때 찬물을 마시면 처음에는 수그러드는 듯하지만, 뒤에 더욱 심한 고통이 닥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소. 그처럼 공화국의 이 질병도 이 사람을 처단하면 조금 누그러지겠지만, 남은 무리가 여전히 살아 있는 한 더욱 악화될 따름인 것이오.

 

그러므로 원로원 의원 여러분, 쓸모없는 자들은 떠나게 하시오. 그들을 선량한 시민들과 떼어놓고, 앞에서 여러 번 말했듯이 그들과 우리 사이에 담을 쌓아 분리하고, 자기 집에 있는 집정관을 죽이려는 흉계를 꾸미지 못하게 합시다. 그리고 로마시 법무관의 재판소를 포위하거나 원로원을 칼 든 자들로 에워싸지 못하게 하며, 이 도시를 태워 없앨 불붙은 막대기와 횃불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하시오. 요컨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자신의 심정이 어떤지를 모든 시민의 눈썹 위에 쓰도록 하시오. 원로원 의원 여러분, 우리 집정관은 정성을 다하고, 여러분은 권위를 다하며, 로마 기사들은 덕성을 다하고, 선량한 모든 시민들은 의견을 모아 카틸리나가 떠나면 또렷하게 드러날 그 모든 것을 조사하고 처벌할 것을 약속합시다.

 

이런 좋은 조짐들이 있으니, 카틸리나여, 그대는 불손하고도 흉악한 싸움터로 가고, 이 공화국에는 위대한 안전을 보장하며, 그대 자신의 불운과 굴욕을 감수하고, 온갖 사악하고 뻔뻔한 행동을 함께했던 자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시오. 오, 유피테르여, 로물루스가 이 도시와 똑같은 길조로 거룩하게 받들었으며,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가 이 도시와 제국의 기둥이라 부르고 있는 당신이 이 사람과 그의 동조자들을 당신의 제단을 비롯하여 다른 신전에서, 이 도시의 집과 성안에서 모든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해치지 못하도록 물리쳐 주십시오. 아울러 선량한 시민들의 모든 원수들, 이 공화국의 적수들, 이탈리아를 약탈하는 강도들, 죽었든 살았든 간에 범죄의 조약으로 악명 높은 동맹을 맺은 인간들을 영원한 형벌로 심판해 주시옵소서.(1998-1999)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영웅 명연설들>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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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하는 것'이 곧 '정치하는 것'

 

키케로는 자신의 책 《연설가에 대하여 De Oratore》에서, 크라수스의 입을 빌려 '이상적 연설가(orator perfectus)'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에 대해 말했다.

 

첫째, 모든 영역을 꿰뚫어 보는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연설가는 어떤 상황에서든, 어느 주제로든 연설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곧 연설가에게는 정치 활동(공동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의무이다.

 

셋째, 상황과 주제를 파악하고 연설을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연설가는 그때그때 처해진 환경에 따라 섬세한 주제는 정밀하게, 무거운 주제는 숭고하게, 일상적 주제는 가볍게 가장 알맞는 표현들을 골라 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은 무엇보다 먼저 생존을 위해 갖추어야 할 무기이자 필수품이다. 또한 말은 삶을 아름답게 채워주는 교양을 담고 있는 창고이다. 아울러 말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문화와 문명을 가능케 해 준 힘이고, 마지막으로 말은 국가라는 제도가 성립하기 위한 기본 토대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만큼 오늘날에도 말의 힘, 글의 힘이 실시간으로 사나운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연설가'와 '정치가'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일 정도로 '연설하는 것'이 곧 '정치하는 것'이었다. 사회 공동체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모두 원로원과 민회 등에서 연설과 토론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의 생애와 작품 세계> 중에서

 

 

덧붙임)

방금 찾아보니 3일 전에 어떤 분이 키케로의 '제1 연설' 전부를 라틴어 원문과 함께 올려놓으셨더군요.

해당글을 링크로 걸어둡니다. ☞ http://megasuperblog.tistory.com/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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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민 전쟁이라는 몽둥이
    from Value Investing 2016-11-22 14:57 
    지배욕. 그것은 그 눈에 띄기라도 하면 기어다니게 되는, 머리를 조아리며, 전전긍긍하게 되는, 그리하여 뱀과 돼지보다도 더 비천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끝내 크나큰 경멸의 절규가 사람들로부터 터져 나오기까지. 지배욕. 그것은 저들 스스로가 '나 물러가노라!'고 외쳐댈 때까지 도시와 제국들의 얼굴에 대고 '물러가라!'고 설교하는, 저 크나큰 경멸의 무시무시한 여교사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 * 너무나 답답하고도
 
 
 

유전적 낭떠러지 764

또한 당구장의 살인자들과 그 희생자들은 무지하고, 가난하고, 미혼이고, 종종 직업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인간들처럼 일부다처로 사는 포유동물 사이에서 번식 성공률은 수컷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가장 치열한 경쟁은 성공 가능치가 0명에서 1명 사이를 오가는 수컷들이 몰려 있는 밑바닥에서 벌어진다. 남자들은 부와 지위로 여자를 유혹하기 때문에, 부와 지위가 없어서 여자를 얻을 방도가 없는 남자는 유전적 낭떠러지로 내몰리게 된다. 굶주림이 극에 달하면 위험한 영토로 뛰어 들어가는 새들이나, 1점 차이로 지고 있고 1분 후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에서 골키퍼를 빼고 공격 선수를 집어넣은 아이스하키 감독처럼, 미래가 없는 미혼 남자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것이다. 밥 딜런이 노래했듯이, "가진 게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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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읽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펼쳐 든 지도 시간이 꽤나 흘렀다. 워낙에 거대한 장편소설이라 여러 날을 읽어도 좀처럼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내가 읽고 있는 동서문화사 판의 경우, '작품 해설'까지 포함하면 무려 1,724쪽에 이르는데 이제 고작 백여 쪽만 남겨두고 있으니 이번 대장정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셈이다. 그런데 마침 오늘 문학동네 판『전쟁과 평화』가 박형규 교수님의 새로운 번역으로 드디어(?) 나온 모양이다. 그래서 읽는 중간에 밑줄긋기라도 하나 올려볼까 싶어서 페이퍼를 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전쟁과 평화』을 읽고 있는 대목 또한 마침 '조국 전쟁'의 마무리 국면인 '1812년 10월'이어서 오늘이 가기 전에 어떤 기록을 슬쩍 남겨보고도 싶다. 따지고 보면 내가 머물고 있는 '소설 속 시대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5년 전 이맘때인 셈이다.

 

책을 읽는 내내 '톨스토이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책 속에 담긴 '지도'까지 거듭 들춰보며 온갖 전쟁터를 하나도 빠짐없이 졸졸 따라다닌 끝에 마침내 대단원의 막이 저만치서 준비되고 있다는 걸 문득 알아차린 게 마침 또 오늘이다. 그토록 기세등등하게 무려 수천 km를 진군한 끝에 텅빈 모스크바를 점령한 나폴레옹 군대였지만 정작 그곳에서 '더이상 마땅히 할 일'을 제대로 찾지 못한 나폴레옹은 치명상을 입은 짐승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침내 모스크바를 빠져 나가는 중이고, 러시아군 총사령관 꾸뚜조프는 실로 오랜 기다림끝에 (웅크리고 있던 나폴레옹 군대가 모스크바를 빠져나와 퇴각을 위해 머나먼 행군길에 올랐음을 확신하고 나서) 조국이 구원받았음을 처음으로 확신하면서 감격에 겨운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 대목들을 묘사한 톨스토이의 글들은 마치 철학자의 심오한 얘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롭고도 매혹적이다.(마침 톨스토이가 이 소설을 쓸 무렵엔 쇼펜하우어에 너무나 심취해 있었다. 몇몇 대목에서는 '쇼펜하우어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대목조차 보인다. 톨스토이는 온갖 인상적이고도 기억할 만한 대목에 이를 때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위해 독자들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는 걸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기어이 다 쏟아놓고 나서야 간신히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이제 막『전쟁과 평화』라는 이 거대한 소설을 앞에 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머나먼 장도'에 오르기 위해 첫 발을 내딛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도 다음 몇몇 대목들은 충분히 흥미롭지 않을까 싶어서 (다른 인상적인 숱한 대목들은 다 제쳐두고 이 문장들 만이라도 살짝) 여기에 옮겨 본다. 마침 이 대목들은 묘하게도 이 위대한 작품을 끝까지 다 읽기 위해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작가와 마주해야 좋을지에 대해서도 얼마쯤 도움이 되어 줄 듯한 느낌마저 갖게 만든다. 참고로, 이번에 새로 나온 문학동네 판『전쟁과 평화』는 내 짐작으로는 아마도 전4권 구성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원작 구성이 '총 4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오늘 나온 1권의 분량으로 미뤄보아 그렇다. 이번 번역본 또한 완역되기까지는 얼마간의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듯싶다...

 

 * * *

 

(밑줄긋기)


인내와 시간,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용사다

 

'공격을 하면 우리는 질 뿐이라는 것쯤은 그들은 깨달아야 한다. 인내와 시간,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용사다.' 꾸뚜조프는 생각했다. 사과는 아직 파랄 때 따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사과는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는데, 파랄 때 따면 사과도 나무도 상하게 되고, 먹어도 이가 시릴 뿐이다. 그는 노련한 사냥꾼처럼 짐승이 부상당했다는 것, 러시아가 전력을 다하여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치명상인지 아닌지는 아직 분명치 않은 문제였다. 지금은 로리스똔과 베르젤레미(나폴레옹의 사자)가 파견되어 왔다는 점이나, 유격대의 보고에 의해서 꾸뚜조프는 적이 치명상을 받고 있다는 것은 거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확증이 더 필요했다. 기다려야만 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죽인 짐승을 달려가서 보고 싶어하고 있다. 기다려라,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항상 행동, 항상 공격 타령이다!' 그는 생각했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가, 항상 눈에 띌 생각만 하다니. 마치 싸우는 데에 무엇인가 즐거운 일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마치 어린이 같아서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조리 있게 말하지도 못한다. 모두 자기는 싸움을 잘한다는 것을 보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면밀한, 훌륭한 작전을 제안한다! 그들은 두서너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내면(그는 뻬쩨르부르그에서 보내온 종합 계획을 상기했다), 그것으로 모든 가능성을 생각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가능성은 무수히 있는 법이다.' (1398-1399쪽)

 

 * * *

 

60년의 경험으로

 

그는 60년의 경험으로, 소문에 어느 정도의 무게를 두면 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는 인간은, 바라고 있는 것을 마치 뒷받침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정보를 정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런 경우, 모순되는 것은 모두 자진해서 간과해 버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꾸뚜조프는 그것을 바라면 바랄수록 더욱더 그것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1400쪽)

 

 * * *


화학적인 분해조건


그러나 나폴레옹이 이들 풍요한 남부 지방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러시아군은 그에게 길을 열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폴레옹군은 그때 자신의 내부에 이미 피할 수 없는 파멸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역사가들은 잊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풍부한 식량을 발견하면서도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고 발밑에 짓밟아버린 이 군대가, 또 스몰렌스크에 침입했을 떄도 식량을 정리, 분배하지 않고 약탈한 이 군대가, 어찌 깔루가 현에서 대세를 만회할 수 있었으랴!


이 군대는 어디서도 태세를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보로지노 전투와 모스크바의 약탈 이래 이 군대는 이미 자기 자신 안에, 말하자면 화학적인 분해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1402쪽)


 * * *

 

1000km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인간은 운동 속에 있을 때는 항상 그 운동의 목적을 자기를 위해 생각해내려고 한다. 1000km의 길을 걷기 위해서, 인간은 그 1000km 저편에 무엇인가 좋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운동하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희망의 땅을 그려낼 필요가 있다.

 

프랑스군이 공격하고 있을 때의 희망의 땅은 모스크바였고 퇴각 때에는 조국이었다. 그러나 조국은 너무나 멀었다. 1000km의 길을 가는 사람은 그 거리가 너무 멀어 아무래도 최종적인 목적을 잊은 채 자기에게 이렇게 타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나는 40km를 걸어가면 휴식과 숙박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리고 처음 행정(行程)을 가는 동안에는 이 휴식지가 궁극의 목적지를 가리고, 모든 희망과 기대를 그 자체에 집중시킨다. 각 개인 속에 나타나는 갈망은 항상 군중 속에서는 증폭된다. (1403쪽)

 

 * * *

 

눈 덩어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녹일 수는 없는 것

 

눈 덩어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녹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일정한 시간의 한도라는 것이 있어서 그 어떤 열의 힘도 그보다 빨리 녹일 수는 없다. 반대로 열을 가하면 가할수록 남은 눈은 더욱 굳어진다.

 

러시아군 지휘관 중에서 꾸뚜조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것을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프랑스군이 스몰렌스크 가도를 따라서 퇴각한다는 방향이 정해졌을 때, 꼬노비니찐이 10월 11일 밤에 예상하고 있던 일이 현실로 되기 시작했다. 군의 수뇌들은 모두 전공을 세우려고 프랑스군을 분단하고, 붙잡아 포로로 하고, 패주시키려고 공격을 요구했다.

 

오직 꾸뚜조프 한 사람만이 자기의 온갖 힘을 (어떠한 총사령관의 경우도 그러한 힘은 그다지 큰 것은 아니다) 공격을 반대하는 데에 쏟고 있었다.

 

그는,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모두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전투를 하고, 도로를 차단하고, 아군의 장병을 읽고, 불행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때려눕힐 까닭이 어디 있는가? 그러한 일이 모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전투도 하지 않고 모스크바에서 뱌지마까지의 사이에서 그 군대의 3분의 1이 사라져버렸는데……. 그러한 일은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노인다운 지혜로 모두가 이해할 만한 것을 끌어내서 말하였다. 그는 황금의 다리를 놓아 적을 계속 도망하게 하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그를 비웃기도 하고 중상하기도 하고 피살된 짐승을 찢고 내던져 창피를 주었다. (1404 ∼1405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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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거기에 자기의 행복과 위대함과 슬픔과 굴욕을 예상하는 모든 것의 완전한 축도. 전 인류의 생활의 축도. 「전쟁과 평화」는 참으로 그러한 명작이다.”

 - N. N. 스뜨라호프(1828∼1895)

 

 * * *

 

(동서문화사 판『전쟁과 평화』는 1권 834쪽, 2권까지 포함하면 1,724쪽에 달한다.『전쟁의 역사』는 1,038쪽.)

 

프랑스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어떻게 몽테뉴에게 접근해야 할지 궁금해 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그 책은 재미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읽지 마라. 야심 찬 사람처럼 교훈을 얻으려고 하지도 마라. 그 책은  '살기 위해서' 읽어라.”

 

어쩌면 톨스토이에게 접근하려는 독자들에게도 이 말이 제법 훌륭하게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톨스토이가 쓴 작품들 가운데 특히『전쟁과 평화』에 '어떻게' 접근할지 몰라 궁금해 하는 독자에게라면 더욱더.

 

내가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들은 다 마다하고 『전쟁과 평화』부터 대뜸 붙잡고 읽기 시작한 건 최근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은 덕분이다. 사실 『율리시스』와 『전쟁과 평화』는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 단지 두 작품 모두 여간해서는 완독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라는 점과 무엇보다도 방대한 분량 때문에라도 선뜻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유사한 공통점을 빼고는 말이다. 아무튼 나는 『율리시스』라는 거대한 산맥과도 같은 작품을 훌쩍 뛰어넘고 나니 웬만한 작품들에 대해서는 '차마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괜한 걱정'으로부터 거의 해방된 느낌을 일순 받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험준한 고산준봉을 정복하고 난 뒤에 슬며시 찾아오는 까닭모를 자신감이라고나 할까.

 

좋은 책은 열심히 읽으면 그 대가가 있다. 가장 좋은 책이 가장 좋은 것을 줄 것이다. 책으로부터 받는 것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 어렵고 좋은 책을 붙잡고 씨름한 대가로 책을 읽는 기술을 향상시켜준다. 둘째, 좋은 책은 이 세상과 독자 자신에 대해 가르쳐준다. 이것이 훨씬 중요한 대가일 것이다. 인생을 배우는 것, 즉, 더 지혜로워진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만 제공해주는 책을 읽고 나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더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인생의 영원하고 위대한 진리를 보다 깊이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360쪽)

 - 모티머 J. 애들러,『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中에서

 

『전쟁과 평화』는 그동안 언젠가 한 번은 꼭 읽어봐야지 하는 막연한 느낌만 가져 봤을 뿐 좀처럼 이 책을 읽을 계기를 찾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도록 강력하게 부추기는 직접적인 계기는 거의 없었을지 몰라도, 막연한 계기조차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으면서 '쇼펜하우어에 심취했던 톨스토이'를 발견했던 일, 『평생독서계획』에 담긴 『전쟁과 평화』에 대한 매혹적인 소개글을 만난 일, 밀란 쿤데라의 『배신당한 유언들』에 담긴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속 문장들을 둘러싼 이야기 등이 이 작품에 다가서는 희미한 계기들이었다면, 몇 년 전 어느 날(아마도 틀림없이 '재활용'이 있었던 날이었으리라) 아내가 동네 아파트에서 주워 온 묵직한 '세계문학전집' 판『전쟁과 평화』는 이 작품에 실제적으로 다가서는 '시각적 자극'으로는 더할 나위없이 강력한 것이어서 마침내 이 책을 읽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음에 틀림없었던 듯하다.

 

('아내가 주워 온 책들'의 외관은 듬성듬성 이가 빠진 노인처럼 비록 온전치는 못하지만 그래도 위풍당당하기만 하다. 저 유명한 작품들을 굳이 '까마득한 옛날 버전'으로 읽을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가끔씩 저 책의 '앞부분'에 담겨 있는 '그림들'을 살펴보는 재미만큼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아내가 주워온 책에서도 재삼 확인되는 사실이지만, 저 위대한 작품들이 대개 그저 '장식용'으로만 소비된다는 게 너무 아쉽다. 저들 가운데 그나마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작품들만 하더라도 그 얼마나 심오하고 위대한 예술품이던가 말이다. 가령 호메로스, 신곡, 돈키호테, 파우스트, 적과 흑, 전쟁과 평화 등만 놓고 보더라도...)

 

 

그런데 톨스토이는 왜 하필이면 '전쟁과 평화'라는 거대담론과도 같은 제재를 '소설 형식'에 담아내려고 했을까? '전쟁과 평화'는 오히려 역사가나 군인 또는 철학자들에게나 훨씬 더 어울리는 주제가 아닐까? 어쩌면 '전쟁과 평화'는 소설이나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 형식에 훨씬 더 적합한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내가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할 무렵에 미리 작품 해설을 꼼꼼이 살펴본 바로도 그렇고, 또 소설 속으로 직접 들어간 이후로도 나의 예상이 그리 틀렸던 건 아니었다. 톨스토이의 대표작인『전쟁과 평화』는 결코 그저 단순한 소설이 아니었다. 역사상으로 실제 벌어졌던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은) '거대한 전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다큐멘터리'와도 닮은 데가 무척이나 많았다. 그런 결정적인 증거들은 이 책 속에 담긴 '전투도'만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1805년의 '제1차 나폴레옹 전쟁'은 총 4편으로 구성된 이 작품 내용 가운데 제1편 주요 배경이다. '울름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나폴레옹은 뮌헨을 거쳐 빈까지 파죽지세로 진군하여 쉔부른 궁전에 머물고, 오스트리아 황제는 황급히 빈을 떠나 브륀으로 천궁한다. 보헤미아 지방의 유서깊은 도시 브륀은 마침 밀란 쿤데라의 고향이자 그의 작품 『농담』의 주무대이기도 하다.(남자 주인공 루드비크가 꿈에도 잊지 못하던 루치에를 무려 15년 만에 극적으로 다시 만나는 곳이다) 어쨌든 러시아군과 오스트리아 연합군은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대패하고, 안드레이는 이 전투에서 '전사자'로 분류될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가 겨우 목숨을 건진 끝에 전쟁이 끝난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우스터리츠 전투는 이른바 '삼제회전(三帝會戰, Battle of the Three Emperors)'으로도 불리는데, 프랑스에 대항해 동맹을 맺은 러시아 황제와 오스트리아 황제, 그리고 나폴레옹 황제가 이 전쟁터에 동시에 참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나폴레옹은 파리에 '개선문'을 세워 자신의 마음 속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카이사르를 그대로 따랐다. 아우스터리츠는 브륀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지금의 체코 모라비아 지방에 있다.)

 

그런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략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나폴레옹'이 작품 속에 실제로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당대 유럽의 지도를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좌우할 만큼 막강한 위세를 떨치며 생생하게 우리의 눈 앞에서 되살아나 움직이는 것처럼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 '전쟁 소설'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위대한 문학 작품의 반열에 올랐을까? 『전쟁과 평화』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막연하게나마 이런 엉뚱한 의문을 늘 마음 한켠에 품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니 그런 막연한 억측은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현대판 일리아스'에 견줘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라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마치 놀랍도록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대건축물 앞에 섰을 때 받게 되는 압도감을 느낄 정도였다. 무려 500명이 훨씬 넘는 숱한 인물들이 광활한 무대를 배경으로 격동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겪게 되는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들에 대한 묘사와 서사 자체도 놀랍지만, 작가 스스로 온갖 인물들과 사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가다듬어 길게 서술해 놓은 '역사 비판'과 '전쟁 철학' 등이 여기에 한데 녹아 있어, 일찍이 다른 어떤 작품에서도 좀처럼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파노라마의 장관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는 이 소설을 쓰는데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을 온전히 바쳤다.(35세에 '나폴레옹 전쟁 시대'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1869년 41세 때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대전쟁'을 아주 깊이 연구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을 자세히 탐구함으로써 '자신이 진실로 하고 싶은 말'을 이 작품에 마음껏 담을 수 있으리라 여겼음에 틀림없다. 프랑스 혁명 이후 스스로 황제가 되어 전 유럽을 정복하기로 마음 먹은 보나파르트와, 그에 맞서 자신들의 '국가의 명예'와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유럽의 많은 국가의 황제들과 군사령관들과 외교관들과 민중들이 벌이는 목숨을 건 싸움이 과연 '무엇을 위해서' 또는 '누구를 위해서' 벌어진 전쟁인지, 그토록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간 숱한 인물들은 과연 어떠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서 '자신들의 삶'을 영위했는지, 그러한 '행위들'은 심지어 우연이었는지 혹은 필연이었는지를 아주 진지하게 탐색해 보는 일이야말로 톨스토이가 진정으로 이 소설을 쓴 목적이었던 셈이다. 그는 그토록 지난하면서도(제1부를 완성하는데 6년이나 걸렸고, 아내는 창작에 몰두하는 남편을 위하여 일곱 번이나 원고를 정서하였다.) 진지한 성찰들을 거친 끝에 마침내 방대한 전쟁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연구자료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꾸며 '위대한 문학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셈이다.

 

(집필하는 톨스토이_레닌그라드 러시아 미술관 소장. 이 그림 역시 주워 온 '학원세계문학전집' 앞부분에 담겨 있다.)

 

 

작품은 그저 단순한 역사소설에만 그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쟁이 아무리 치열하게 벌어지는 와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전쟁터에서 비켜나 있었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기 마련이었고, 사실 전쟁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숱한 사람들이 어디선가 매번 태어나고 또 죽기 마련인 법이다. 그래서 이 소설 속엔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 이야기 말고도 주로 뻬쩨르부르그와 모스크바의 대저택에서 생활하는 당대의 명문 귀족 집안 사람들이 소설의 또다른 한 축을 이루면서, 그들의 희망과 즐거움과 행복, 좌절과 괴로움과 불행, 사랑과 배신, 소박과 탐욕을 놀랍도록 섬세하고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그러한 점들이 이 소설을 전쟁소설만이 아니라 가정소설 혹은 연애소설이나 심지어 성장소설처럼 읽히게 만든다. 전쟁의 와중에도 수시로 대저택에서 열리는 숱한 무도회와 파티와 만찬 테이블 주위에서 보고 듣는 화려한 무곡을 곁들인 왈츠와 떠들썩한 대화와 몸짓들을 통해 우리는 당대 러시아 귀족들의 온갖 허영과 위선과 허위에 찬 모습까지도 더없이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로스또프 백작 집안'의 '눈이 부시도록 맑게 빛나는 한 때'를 담은 그림. 톨스토이가 소설 속에서 이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생생해서 책을 읽으면서 절로 '한 폭의 그림'을 떠올렸었는데, 뒤늦게 주워 온 '세계문학전집' 속 『전쟁과 평화』에 마침 이토록 환한 그림이 담겨 있었다. 겨우 열두엇 남짓한 나따샤와 그의 어릴 적 남자 친구인 보리스, 꼬마 남동생인 뻬쨔, 사촌자매인 쏘냐와 그의 남자 친구이자 나따샤의 친오빠인 니꼴라이의 1805년 무렵의 그저 순수하고도 천진난만하기만 한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들 앞에 놓인 생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를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은 어디론가 계속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된다.)

 

 

(로스또프 가문의 둘째 딸 나따샤는 이 작품의 여주인공이다. 그녀 곁에는 사촌자매인 쏘냐가 '서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언제나 단짝으로 더불어 지낸다.)

 

 

(사진 옆에 붙은 설명은 '파스테르나크의 그림'이다. 아마도 톨스토이의 『부활』삽화를 그린 화가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를 말하는 듯싶다.『닥터 지바고』를 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화가 파스테르나크의 장남이다. 뻬쩨르부르그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할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엘렌'은 바씰리 공작의 딸이자, 약혼한 나따샤를 파혼에 이르도록 유혹한 아나똘리와 남매지간이다. 정략결혼을 한 삐에르와 엘렌은 서로 별거하다시피 지낸다.)

 

전쟁이 터지면서 숱한 젊은이들이 집안의 권유나 자신의 입신 출세를 위해서, 혹은 국가에 대한 막연한 의무감으로 고국을 떠나 '머나먼 전선'으로 바삐 이동하고  각자 낯선 군부대에 배치된다. 그들은 마침내 난생 처음으로 포탄과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적병과 맞닥뜨리고, 각자 자신의 열망에 부응할 정도의 영웅적인 공을 세우거나 혹은 어리석은 만용 때문에 큰 부상을 당해 쓰러진다. 전쟁터의 실전 상황은 톨스토이의 '세바스토폴 전투' 경험이 더해져 놀랍도록 사실적이면서도 생생하다.

 

전쟁의 와중에도 젊은 장교들은 틈나는 대로 휴가 명령를 받아 그리운 가족들이 살고 있는 빼쩨르부르그 혹은 모스크바로 돌아와 잠시나마 '안온한 일상의 행복'으로 더러 복귀한다. 그들은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동안 서로 몰라보게 훌쩍 커버린 '어릴 적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의 모습'에 당혹스러워 하기도 하고 쑥쓰러워하면서도 어느새 '예전에는 결코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랑의 감정에 일순 휩싸이고 번민하고 남모를 행복감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또다시 긴 이별과 짧은 만남을 반복한다. 그 가운데 갓 결혼한 안드레이 공작의 '군입대 장면'과 니꼴라이의 '첫 휴가 장면'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생생하고도 감동적이어서 그 장면을 읽노라면 누구라도 예외없이 자신의 '입영 전야'와 '첫 번째 휴가'를 떠올리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을 이미 군대에 보낸 경험이 있을 정도로 나이를 먹은 나이 많은 독자들이라면 자식을 군에 들여보내던 그 때 그 가슴이 아리도록 먹먹한 이별의 순간들과 첫 휴가를 나온 아들을 맞이하던 가슴 벅찬 재회의 순간들을 잠시나마 넋을 잃고 한참이나 회상할 지도 모르겠다.(『전쟁과 평화』가 유례없이 방대한 규모와 웅장한 스케일 때문에 곧잘 현대판 『일리아스』에 비견되곤 하는데,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 때문에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아들을 궁녀들 틈에 숨겼던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나 꾀많은 오뒷세우스가 놀라운 '병역기피 꼼수'를 부리는 이야기를 이쯤에서 함께 떠올려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두 작품 사이에 놓인 거대한 시공간적 간극 때문에 그 작품들이 다루는 전쟁의 원인이나 전개 양상이 서로 너무나 다르다고 미리부터 충분히 수긍하고 보더라도 사정이 별반 달라지지는 않는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절대적인 영웅 숭배'인데 비해 톨스토이의 작품이 '민중의 힘'을 지극히 긍정하는 작품이라는 점도 서로 완전히 정반대이다.)

 

'전쟁'과 '평화'를 사이에 두고 광할한 시공간적 배경 위에 벌어지는 온갖 인물들에 대한 놀랍도록 섬세한 심리 묘사와 온갖 연령대와 인물들, 온갖 서로 다른 지위와 재산과 신분을 지닌 인물들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겪게 되는 '인생 유전'을 읽노라면 독자들은 절로 톨스토이가 평생토록 고민했던 문제인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묻게 된다. 톨스토이는 그만큼 충분히 많은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배치해 놓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면 속으로 아주 수월하게 파고 들어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과 생각들을 마치 우리 눈앞에 금방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는 듯이 아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러한 섬세한 묘사 능력들이 바로 이 걸작을 자주 '영화화'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재삼 말할 필요가 없다. 나 또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해 가장 놀랐던 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점이었다. 톨스토이는 어쩌면 이토록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도 이토록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으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과 내면의 심리를 어쩌면 그토록 잘 그려내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전쟁과 평화』가 지닌 장점이자 단점은 무엇보다도 작품의 규모가 너무나 방대하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숫자가 무려 559명에 달한다는 걸 어디서 읽은 적이 있는데 그만큼 이 작품 속엔 온갖 다양한 인물들이 얼키고 설켜 있다. 물론 우리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이상한 이름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이런 방대함에 너무 곤혹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신기하게도 이 인물들은 '느린 호흡으로' 이 소설을 천천히 읽어나가는 동안 자연스레 그들의 용모와 성격을 보다 뚜렷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명문 귀족가문 출신들이 대부분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이 점은 흔히『까라마조프 형제들』로 대표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다. 가령『까라마조프 형제들』에 등장하는 사생아인 스메르자코프라는 인물은 온갖 비열함과 추악함과 어두움을 상징하지만,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사생아인 삐에르 베주호프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숫자의 농노가 딸린 거대한 영지를 물려받은 당대의 손꼽히는 갑부이긴 하지만 선량함과 박애주의와 진리탐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귀족 중심의 인물 구성은 작가인 톨스토이 스스로 거대한 영지를 물려받은 명문 귀족가문 출신이었던 데서도 쉽게 유추할 수 있지만, 그보다 먼저 이 소설을 집필한 배경 자체가 1825년에 일어났던 (명문 귀족가문 출신 젊은이들이 주도한) '데카브리스트 혁명'의 '근본 원인'을 찾고자 하는 의도에 있었다는 점과, 그 탐구 노력이 결국은 거기서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까지 닿았고, 결국 그 전쟁에 참전한 인물들 가운데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한 인물들이 아무래도 귀족 출신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점에서도 당연했다.

 

 

(그림 위_야스나야 폴랴나의 톨스토이 저택 일부.  그림 아래_톨스토이 집의 깨끗하고 밝은 객실.)

 

 

평생에 한 번 읽기도 벅찬 이 거대한 스토리를 '세 번씩이나' 읽은 어느 독자가 칭찬한 이 소설의 세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포괄성이고 둘째, 자연스러움이며 셋째, 무시간성이다." 그 독자가 세 번째로 다시 읽고서 느낀 이 소설의 미덕은 "톨스토이는 진실을 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인생이나 예술이나, 단 한 가지 필수적인 사항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 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말대로, 인생의 진실을 말한다는 것, 그것이 『전쟁과 평화』의 주제이다. 이 위대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좀 괴상하고 시대가 좀 멀어서 그렇지 결국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얘기에 다름아닌 만큼, 누구라도 제대로 붙잡기만 하면 힘들이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당장에 너무 빨리 읽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손 치더라도 언젠가 적당한 계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나서 아주 적당한 시간들이 찾아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유해 본다. 그저 장식용으로 바라만 보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탁월한 예술작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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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몽고메리 장군(1887∼1976) 이 쓴『전쟁의 역사』에는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뒤바꾼 '유명한 전투'들이 총망라되어 담겨 있다. 그 가운데 톨스토이가『전쟁과 평화』에서 다뤘던 '나폴레옹 전쟁'에 관련된 몇몇 대목들만 적당히 골라 담아봤다.

 

(『전쟁의 역사』에 담긴 '1805년의 아우스터리츠 전투'. 당시 유럽 곳곳이 피비린내나는 전쟁터였다.)

 

 

(『전쟁의 역사』에 담긴 '아우스터리츠 전투' 병력 배치도. 이 책에 서술된 내용과 톨스토이가 쓴『전쟁과 평화』속 묘사 내용이 세세한 부분까지 너무나 완벽하게 닮아 있어서 깜짝 놀랐다. 가령 전투 당일의 날씨라든가, 아주 우연하게 일어난 야릇한 사건-우연히 밀짚에 불이 붙었는데,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한 불꽃놀이가 벌어진 것으로 생각한 프랑스 병사들이 더 큰 불을 놓았고, 이 불길이 맹렬하게 불타오르자 감정에 북받친 3만 병사들이 맹렬히 나폴레옹의 이름을 연호한 일-까지도 '너무나 똑같이' 그대로 묘사해 놓았다.)

 

 

(『전쟁의 역사』 에 담긴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묘사한 그림. 오스트리아군 수석 참모인 바이로더는 잘못된 '작전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역사적인 대참패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되고, 나폴레옹은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전쟁의 역사』앞부분에 담긴 컬러판 '보로디노 전투'. 나폴레옹 군대에서 수훈을 세운 장군이자 화가인 르죈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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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밑줄긋기_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from Value Investing 2016-10-10 20:14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펼쳐 든지도 시간이 꽤나 흘렀다. 내가 읽고 있는 동서문화사 판의 경우, '작품 해설'까지 포함하면 무려 1,724쪽에 이르는데 이제 고작 백여 쪽만 남겨두고 있으니 이번 대장정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셈이다. 그런데 마침 오늘 문학동네 판 『전쟁과 평화』가 박형규 교수님의 새로운 번역으로 드디어(?) 나온 모양이다.(그래서 짤막한 글이라도 하나 쓰고 싶어 이러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또다른 판본인 1993년에 나온 '학
 
 
붉은돼지 2016-10-01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대하소설이군요 저도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았다 합니다 ㅋ
그런데 이 전쟁과 평화는 왜 민음사, 문동이나 열린책들 혹은 펭귄 세계문학전집 목록에는 없는지 전에도 궁금해한 적이 있는 것 같아요^^

oren 2016-10-02 00:09   좋아요 0 | URL
정말 대하소설이라는 말에 썩 잘 어울리는 소설이지요. ˝지금까지 씌어진 가장 위대한 장편소설˝이라는 평가도 자주 받는 작품이구요. 너무 길다는 게 단점이면서도 정말 장점인 그런 소설인 듯해요. 격류처럼 요동치는 세월 속에서 온갖 등장 인물들이 저마다 성장하고 변모하고 혹은 늙어가면서 제각각 `나이에 따라 변해 가는 선명한 특징들`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해 놓은 걸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높다란 언덕 위에 서서 유유히 굽이치며 흐르는 대하(大河)를 바라보며 `지난 세월에 내가 겪고 보았던 온갖 사건과 인물들`을 길게 회상하면서 깊은 상념에 젖게 되는 듯한, 그런 느낌도 갖게 되더라구요. 유명한 작품 치고는 번역본이 별로 많지 않은 게 좀 이상하긴 하더군요. 앞으로 좋은 판본들이 차츰 새로 나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