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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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서운 곳에서 당하는 모든 고통 중에서도 절정을 이루는 마지막 고통은 지옥이 영원하다는 데 있습니다. 영원이라니! 무시무시하고 참혹한 말이지요. 영원이라니! 인간의 마음으로 어찌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기 그것이 고통의 영원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지요. 비록 지옥의 고통이 실제만큼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영원히 계속될 운명이므로 한없는 고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영원히 계속되는 동안, 여러분도 알다시피, 견딜 수 없게 치열해지고 참을 수 없게 확대됩니다. 벌레에게 쏘인 아픔도 영원히 견뎌야 한다면 무서운 고통이 될 것입니다. 하물며 지옥의 여러 갈래 고통을 영원히 견딘다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 언제까지나! 영원히! 1년간이라든가 한 시대 동안이 아니라, 영원토록. 이 말의 무서운 뜻을 상상해 봅시다. 여러분은 바닷가의 모래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 작은 모래알들은 얼마나 섬세합니까. 아이가 놀다가 쥔 한 줌의 모래 속에도 얼마나 많은 작고 고운 모래알들이 들어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래 더미가 이 지상에서 하늘 끝까지 쌓여 있는데 그 높이가 백만 마일이요. 이 지상에서 가장 먼 허공까지 뻗쳐 있는데 그 너비가 백만 마일이요 그 두께 또한 백만 마일입니다. 게다가 무수한 모래알로 구성된 이 더미가 곱으로 늘어나되 마치 숲 속의 나뭇잎 수만큼, 대양의 물방울 수만큼, 새의 깃털 수만큼, 물고기의 비늘 수만큼, 짐승의 털 수만큼, 광대한 대기 속의 원자 수만큼 빈번히 늘어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백만 년이 지날 때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이 모래 더미로 날아와서 이 작은 모래알을 한 개씩 물고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새가 이 더미 중에서 단 한 평방 피트의 모래만이라도 옮기자면 도대체 몇백만 년 몇억 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며, 그 모래 더미를 모두 옮겨버리자면 또 끝없는 세월이 얼마나 더 흘러야 할 것입니까! 하지만 이 엄청난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도 영겁의 시간 중의 단 한 순간도 끝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수천억 년 수천조 년이 지나고 난 후에도 영겁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된 것이 아니지요. 그 모랫더미가 모두 없어진 후 다른 더미가 솟아난다면, 그리고 그 모랫더미가 하늘에 있는 별의 수만큼, 공기 속의 원자 수만큼, 바다 속의 물방울 수만큼, 숲 속의 나뭇잎 수만큼, 새의 깃털 수만큼, 물고기의 비늘 수만큼, 짐승들의 털 수만큼 빈번히 솟았다 사라지기를 거듭한다고 합시다. 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산더미가 그렇게나 무수히 솟았다 사라졌다 한 이후에도 이 영겁 중 단 한 순간도 끝났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도 머리가 빙빙 돌 정도로 현기증이 나는 이 기나긴 세월히 흐르고 난 이후에도 이 영겁은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5-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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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순간들은 사라지고 심신을 소모하는 욕정의 불길이 다시 솟구쳤다. 시구가 그의 입술에서 사라졌고, 분명치 않은 부르짖음과 발언되지 않은 야수적 언어가 그의 두뇌를 밀치고 나왔다. 그의 피는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어둡고 더러운 거리를 헤매면서 음침한 골목과 문간들을 기웃거리거나 무슨 소리건 들으려고 했다. 좌절한 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야수처럼 그는 혼자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자기와 동류인 사람과 함께 죄를 짓고 싶었고, 다른 사람에게 함께 죄를 짓자고 강요하고 싶었으며, 죄를 지으며 그녀와 함께 희열하고 싶었다. 그는 어떤 어두운 실재가 암흑으로부터 거역할 수 없게 그를 엄습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 실재는 전적으로 그 자체로 그를 가득 채우는 물살처럼 미묘하게 쫄쫄거리고 있었다. 그 쫄쫄거림은 잠결에 들은 군중들의 웅얼거림처럼 그의 귀를 공략하고 있었고, 그 미묘한 흐름이 그의 몸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는 그 침투로 인한 고통을 겪으면서 두 손으로 불끈 주먹을 쥐었으며 이를 악물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그는 자기를 살살 피해 다니면서 흥분시키고 있는 그 가냘프고 실신하는 듯한 자태를 꼭 붙잡으려고 두 팔을 펼쳤다. 그러자 그토록 오랫동안 목구멍 속에 억눌러 두었던 부르짖음이 입으로 발산되었다. 그 부르짖음은 수난자들로 가득한 지옥에서 들려 오는 절망의 비명처럼 그의 입에서 터져나와 분노에 찬 애원의 울음이 되어 사라졌다. 그것은 또한 사악한 자기 방기(自己放棄)의 부르짖음이요, 어떤 변소의 질척한 벽 위에서 읽었던 음란한 낙서의 메아리에 불과한 부르짖음이기도 했다. (155-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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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의 아버지와 그의 두 친구들이 지난날을 회고하며 축배를 들기 위해 세 개의 유리잔을 카운터에서 치켜드는 것을 보았다. 운명과 기질의 차이가 그 자신과 그들을 심연처럼 갈라놓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달이 마치 자기보다 연소한 지구를 비추듯이 그의 마음은 그들의 갈등과 행복과 회한을 싸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활발한 생명력과 젊음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 동안 그는 다른 애들과 사귀는 즐거움이라든가, 야성적인 남성의 건강한 힘이라든가, 효심 따위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영혼 속에서는 차갑고 잔인하고 애정을 곁들이지 못한 욕정만이 격동하고 있었다. 그의 아동기는 죽었거나 상실되었고, 순박한 환희를 누릴 수 있는 영혼 또한 아동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불모의 껍질로 남은 달처럼 되어 삶 속을 떠돌고 있었다.

 

그대의 얼굴이 창백함은

하늘을 오르며 땅을 굽어보며

외로이 떠도는 데 지쳤기 때문인가?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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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이크 산책로의 가로수 잎은 햇빛을 받으며 바스락거리거나 속삭이고 있었다. 플란넬 바지에 화려한 블레이저 코트를 입은 날쌘 젊은이들로 구성된 크리켓 팀이 지나갔는데 선수 중의 한 사람은 긴 녹색의 위켓 가방을 들고 있었다. 조용한 옆 골목에서는 다섯 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독일 악단이 퇴색한 제복을 입고 찌그러진 금관악기를 취주하고 있었는데 청중들은 길거리의 건달배들과 한가한 심부름꾼 애들뿐이었다. 하얀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하녀가, 따뜻한 햇빛을 받아 석회암 판처럼 번쩍이는 창틀 위에 놓인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열어놓은 다른 창문으로부터는 고음(高音)을 향해 점점 높아지는 음계(音階를 치고 있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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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노느라고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그에게는 괴로웠다. 애들의 바보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자기가 다른 애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클롱고우스 시절보다도 더 민감하게 느껴졌다. 그는 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기 영혼이 그 동안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던 그 실체 없는 이미지와 실제 세상에서 맞닥뜨리고 싶었다. 그는 어디서 어떻게 그것을 찾을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인도하고 있던 어떤 예감은 그가 공공연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결국 그 이미지와마주칠 수 있을 것임을 말해 주었다. 아마도 어느 집 문간에서, 혹은 보다 은밀한 곳에서 오랜 지기(知己)들이 만나듯이, 마치 만나자는 약속을 미리 해두었던 것처럼, 그들은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어둠과 정적에 휩싸인 채 단둘이 있게 되리라. 그러면 부드러운 감정이 절정을 이루는 순간에 그는 변신하게 되리라. 그녀의 눈앞에서 그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것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 순간 변신할 것이다. 그 마법의 순간에 연약함과 소심함과 무경험이 그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다.(102-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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