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명언집 - 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가르침
노다 교코 엮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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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어느 지하도에 누군가 ‘신은 죽었다 - 니체’라고 써놓았다. 한참 지나고 난 후 그 옆에 다른 글귀를 누군가 써놓았다. ‘니체는 죽었다 - 신’.

10대 중후반 시절, 한참 교회를 열심히 다닐 때 들었던 이야기다. 목사님은 가끔 예배 중에 위의 예화를 들면서 ‘신은 죽었다고 했던 니체는 죽었고,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십니다’라는 식으로 설교하곤 했다. 그리곤 허허 웃으면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도 따라서 하하하 웃었다. 그 당시 나는 분위기 때문에 웃는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항상 불편을 느끼고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왜냐하면 니체라는 사람이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을 하기까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겪어왔던 것인지, 어떤 고통을 당했기에 역사상 가장 유명하면서도 반기독교적인 철학적 명제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 너무나도 어려운 니체 철학에 감히 도전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이 흘러왔지만 그의 삶에 대한 관심과 의문은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책은 니체의 저작들 중에서 당장 삶에 적용할 수 있을 만한 문장들과 짧지만 많은 생각들을 요구하는, 말 그대로 지갑에 따로 끼워두고 한 번씩 보고 싶은 문장들을 따로 엮어놓은 책이기 때문에 니체 철학에 관심이 있지만 본격적이라기보다는 우선 색깔을 한번 맛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할 것 같다.

이 책에 수록된 니체의 문장들에는 의지, 의미, 목표 등과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니체는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 즉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물음에 상당히 집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세로부터 니체가 살았던 시대에 이르는 동안 종교는 확실히 타락했고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다.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라는 명제에 담긴 속뜻은 실은 ‘세속화되고 계급화된 종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린 종교에 절망한 니체가 다른 대안을 찾고 찾다가 이른 결론이 허무주의이고, 허무주의 이후의 초인사상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니체는 그 누구보다 신이 확실한 역할을 해주길 원했고 신의 자리를 제대로 ‘만들어드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다. 정신적으로, 의지적으로 가장 우뚝 서 있어야 할 시기에 일어난 발작은 그의 누구보다도 강한 삶의 의지, 절망을 딛고 신을 초월한 ‘강인의 삶’으로의 열망과 집착의 결과로 여겨진다. 그의 발병부터 죽음에 이르는 시기는 그때까지 그가 주장해왔던 그의 철학, 사상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니……

개인적으로 이 책은 그의 슬픈 유산이라 생각되지만, 왠지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만큼 지금 이 세상이 가만히 눈과 귀를 막고 웅크리고 있거나, 아니면 니체처럼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엉망진창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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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
마크 보일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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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돈은 더 이상 우리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돈을 위해 일한다. 돈이 이 세상을 접수하고 말았다. 하나의 사회로서,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것을 팽개치면서 고유의 가치라고는 전혀 없는 한 대상을 숭배하고 경배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화폐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불평등과 환경파괴와 인간에 대한 경멸을 촉진하는 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p.16) 

처음에는 단순한 시스템이었을 화폐경제가 오늘날에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괴롭히고 심지어 숭배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사람이 돈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돈이 사람을 좌지우지하는 이상한 세상이 정상적인 시대가 된 이때에 아주 황당한 실험을 하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 실험은 다름 아닌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년을 사는’ 것이다.

유기농식품 관련 회사에 다니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본질적인 지구환경의 문제를 느낀 저자는 가장 큰 문제의 원인으로 ‘돈’이라는 요인을 찾아내게 된다. 돈으로부터 야기되는 각종 문제, 예를 들면 식량 문제, 자원 낭비, 환경 파괴, 공동체 붕괴 등을 돈 없이 사는 삶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시도로 이해되었다.

이 세상에 수치로 표시되는 모든 돈이 100이라고 가정할 때,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였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시스템의 발달로 인해 빌리고 빌려주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오늘날의 거품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거품으로 인해 실제적인 가치를 지니는 자연 환경이나 소박한 사람들의 삶이 황폐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인류가 환경재앙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경제가 수축되고 있는데도 돈을 계속 안전을 위한 도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빈틈없이 촘촘하게 잘 짜인 공동체의 삶이 다시 일어나도록 해야 할 것인가? 말하자면 공동선을 위해 함께 일하고 운명을 공유할 줄 아는 능력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p.26~27)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저자는 ‘공동선을 위해 함께 일하고 운명을 공유할 줄 아는 능력’을 다시 배우고 구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저자는 구체적으로 돈을 쓰지 않고도 공동체가 유지되는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 단계로 스스로 돈 없이 사는 삶을 실험해 보기로 한 것이다. 저자는 먼저 자신의 주거용 배를 팔아 ‘프리코노미 커뮤니티(Freeconomy Community)'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개설한 관련 웹사이트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고 도움을 주고 받는 등 대안경제의 가시적인 성과를 얻은 저자는 이후 실제로 1년 동안 돈을 포기하는 삶에 돌입하게 된다. 이때 저자는 자신의 삶이 극단적인지, 끊임없이 재앙으로 가는 선택을 하는 기존의 생활방식이 극단적인지 묻고 있다.

세면용품 없이 청결을 지키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부분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장품 회사들이 사람의 피부에서 습기와 천연 오일을 닦아내는 제품을 팔아놓고는 다시 그 피부에 습기와 천연 오일을 입히는 제품을 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다른 부분에 적용해보면 인간은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상관없는 것을 억지로 변화시켜 다시 되돌려놓는 행위에 상당히 집착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집착은 지금의 비상식적인 경제성장 욕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도 소개하고 있는데 비슷하면서도 차이를 보이는 그들의 철학과 실천을 인정하고 배우려는 겸허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돈을 최소한으로 쓴다든지, 돈을 선한 방향으로 이용한다든지, 지역화폐라는 경제시스템을 통하여 지역공동체를 되살리는 방법을 모색하는 등의 방법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즉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하며, 그 중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여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돈을 포기한 삶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 하나가 바로 삶에 대한 믿음이다. 만약 하루하루를 베풂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필요한 것이 생길 때마다 반드시 그것을 얻게 되어 있다. (중략) 나는 그 믿음을 지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오래 전에 그만두었다. 느낌과 삶의 경험에서 얻은 믿음이다.”(p.317)

“나의 경험에 비춰볼 때, 만약 당신이 아무런 보답도 생각하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 베풀면 당신도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주는 행위와 받는 행위의 유기적 흐름이다. 우리의 생태계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마법의 댄스이다. 하지만 그런 마법의 댄스가 일어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믿음의 도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자연이 당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것이라는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p.317)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들이 가장 먼저 회복해야 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옛날에,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많은 문제와 난관을 헤쳐 왔던 조상들의 지혜를 오늘날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신뢰가 무너진 자리를 돈이 대신하고 있는데 그 경과는 참혹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보고 있다. 돈 없이 살아보기로 결심한 저자의 의도가 단순히 돈 없이도 인간은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아닌, 가장 행복한 삶의 형태, 즉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베풀고 나누는 삶만이 궁극적으로 인간을 최상의 상태로 살리고 지속가능한 개발도 가능하며 결과적으로 우리의 행성 지구도 살리는 길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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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엑스포메이션
하라 켄야.무사시노 미술대학 히라 켄야 세미나 지음, 김장용 옮김 / 어문학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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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엑스포메이션’은 ‘알몸’이란 주제에 대한 작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관점이 담긴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예술서적 특유의 난해함이 있어서 그런지 책 속에 소개된 작품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통로, 즉 ‘하라 켄야 세미나’를 이끄는 하라 켄야의 총평과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작가들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각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는 것으로 서평 아닌 서평을 쓰게 될 것 같다. ‘information'의 상대어로 고안된 조어 ‘ex-formation’이 담고 있는,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것을 미지화하여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세미나의 목적에 걸맞게 책에 담겨 있는 ‘알몸’에 대한 다양하고 독특한 표현방식들을 보며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먼저 프롤로그에서 ‘알몸’의 통상적인 감정인 부끄러움의 근원을 개체의 편차에서 오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무런 연출도 없는 여성의 나체사진을 통해 알몸이란 것이 단순히 성적이거나 수치심, 부끄러움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알몸의 가치를 밝히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 작품 마에지마 준야의 ‘Material + baby'는 갓난아기를 표현한 순수한 조형물에 꽃이나 유리조각, 나무껍질, 금속재료를 각각 덧씌워 표현했는데 아기를 통해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충만한 사랑스러움부터 낯설고 공포스럽고, 심지어 죽음과도 같은 어두운 이미지까지 느낄 수 있었던 특이한 작업이었다. 두 번째 작품인 엔도 가에데의 ‘나체의 인형’은 기존의 예쁜 여자캐릭터 인형을 O다리로 만들거나 뚱뚱하게 혹은 갈비뼈가 튀어나오도록 비쩍 마르게 만들어냈는데 왠지 신체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획일화하여 강요하는 현 세태를 꼬집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요꼬야마 게이꼬의 ‘나체의 소녀만화’는 순정만화의 등장인물들을 모두 알몸으로 만들어 원작과 비교해 보여주는 작업을 선보였는데 설명하는 것처럼 전혀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좀 지나 다시 보니 굉장히 엉뚱하고 우스꽝스럽기는 했지만. 

앞서 세 작품에서 다뤄진 아기의 모습과 소녀의 이미지는 우리가 ‘알몸’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다시 말해 접근하기에 용이한 대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네 번째 작품인 무라카미 사치에의 ‘팬티 프로젝트’에서부터 이 세미나의 개성이랄까 특징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피망이나 포크, 장도리, 수도꼭지, 빨래집게 등 입힐 수 있는 모든 사물에 팬티를 입혀봄으로써 ‘알몸’의 의미를 새롭게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의 맨몸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팬티를 다양한 사물에 입혀본다는 발상 자체가 무척 재미있었고 신선했다. 장도리나 피망 같은 경우는 의외로 섹시(?)했고 포크나 스패너, 계란에 입힌 팬티를 입힌 모습은 어찌나 귀여웠는지! 다섯 번째 작품인 다까야나기 에리꼬의 ‘「완성」을 벗기다’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제품들, 즉 연필이나 콘센트, 스푼, 고물줄 같은 완성품들의 미완성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낯설고 특이한 기분이 들게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보는 노란 고무줄 같은 경우, 절단되어 고무줄 형태로 나오기 직전의 둥글고 누런 고무관의 형태를 보니 지금 내 눈앞에 굴러다니고 있는 고무줄이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미지의 세계에서 튀어나온 물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끼야 나오의 ‘알몸의 알몸’은 일상 속의 다양한 행위들, 예를 들어 전화를 받거나 물건을 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의 행위들을 알몸으로 하고 있는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준다. 이런 상상은 어쩌다 한 번쯤 하게 되는 상상이 아닌가 싶어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가장 특이한 ‘알몸’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었던 일곱 번째 작품, 도야마 아이의 ‘알몸의 색상’은 우리가 보는 피부색을 단순한 하나의 색이 아니라 살과 혈관, 지방, 뼈 등의 각각의 색으로 분석하고 해체한 다음 다시 작가의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혼합하여 피부 색채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여덟 번째 작품인 후지가와 코다와 후나기 아야의 ‘엉덩이’는 앞서 ‘「완성」을 벗기다’와 ‘알몸의 색상’을 보며 너무 어려워서 머리가 아프고 빙빙 돌던 나에게 휴식과도 같은, 그러면서 미소를 짓게 하는 깜찍한 작업이었다. 엉덩이라는 신체의 특징을 비누, 마시멜로, 떡, 각설탕, 성냥의 디자인에 적용하여 귀여운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엉덩이 모양을 한 캐스터네츠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그것을 딱딱 두드리는 느낌은 어떨까? 약간 묘할 것 같은데... 책에서는 체벌의 의미로서 엉덩이를 두드린다는 의미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불붙는 부분을 엉덩이 모양으로 만든 성냥개비는 엉덩이가 불탄다기보다는 하트에 가까운 느낌으로, 불타는 사랑을 떠오르게 했다. 아홉 번째 작품인 후나비끼 유헤이의 ‘먹어서 벗겨내는’은 먹고 마시고 난 후의 흔적을 ‘알몸’의 이미지와 연결시켜 숨겨진 것이 드러났을 때의 흥미로운 순간을 작가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솜사탕 막대기를 양 모양이나 비행기 모양으로 하여 솜사탕을 다 먹고 났을 때 양 모양 막대기가 나온다면 우리가 먹은 행위는 양털을 모조리 깎아낸 행위로 느낄 수 있고, 비행기 모양 막대기라면 우리가 먹은 행위는 비행기를 둘러싸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는 행위로 느낄 수 있는 식의 재미있고 독특한 상상을 실물로 표현했다. 커피나 죽을 담는 그릇 바닥을 고래나 상어, 부표와 같은 형태가 나오게 하여 먹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드러나게 하도록 만든 것도 독특하고 참신했다. ‘엉덩이’와 ‘먹어서 벗겨내는’ 이 두 작품은 실제로 제품화해서 판매해도 인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바야시 츠브라의 ‘알몸의 지구’
는 ‘알몸’에 대해 어떤 것과 연결시키는 상상력의 스케일이 가장 큰 작업이었다. ‘알몸 엑스포메이션’이란 책의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끌렸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지구를 뒤덮고 있는 바다를 전부 걷어내버림으로써 황량하게 드러나는 지구의 모습을 지구의 ‘알몸’으로 생각한 작가의 상상력이 독특하고 대단해보였다. 그런데 이 이미지는 예전에 일본의 어떤 과학연구에 관련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얼핏 나서 혹시 그것과 이것이 관련이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튼 ‘알몸’의 개념이 이렇게 전지구적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니 부끄럽게만 느끼고 있기엔 너무나 중요한 것이로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여본다. 마지막으로 열한 번째인 와따히끼 마사히로의 ‘정보를 벗김’을 생각하면 다시 머리가 아파진다. 하나의 사물에서 심벌이 되는 핵심적인 이미지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배제해버린 상태를 ‘알몸’의 이미지와 연결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보를 벗김’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우리는 보통 서로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핵심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게 되는데 결국 핵심이 분명하면 부연 설명은 길어도 좋고 짧아도 상관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한 사물이나 개념이 있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거나 알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 곁가지들을 많이 들이대고 있지만 결국 그것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의 심장과도 같은 가장 중요한 핵심, 즉 심벌이 되는 이미지가 확실하다면 곁가지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것, 그런데 만약 가지가 꼭 필요하다면 아주 질서정연한 형태로 뻗어나가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해가 잘 안되어서 이렇게 말을 비비 꼬게 된 것인데, 아무튼(또 아무튼!이라니...) ‘알몸’이란 것이 순수하고 본질적인 하나의 ‘핵심’, ‘상징’과도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터무니없게 결론을 지어버렸다. 

 
이상 하라 켄야 세미나에서 도출된 ‘알몸’에 관한 ‘엑스포메이션’ 열한 가지 작업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상을 길게도, 참 길~게도 이야기해보았다. 사실 이 글도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벗기고 벗기다 보면 몇 줄에 다 요약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든 본질은 그다지 복잡하지도 장황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리 두껍지도 않고 텍스트도 많지 않아서 짧은 시간에 몇 번이고 훑어볼 수 있을 정도이지만 물리적으로 담긴 그 이상의 생각을 요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한 ‘엑스포메이션’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미지화하여 새로운 가치를 깨닫고 그에 따른 인생의 목표를 세워 열정을 다해 달려가고 싶다는 희망이 당장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자극을 받은 것은 분명하며, 언젠가는 그 열매를 반드시 맺게 되리란 믿음을 가지고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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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식 사고를 길러주는 영어표현사전
박정해 지음 / 베이직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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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식 사고를 길러주는 영어표현사전’은 10년 이상의 저자의 경험과 노력이 담겨있는 만큼, 그냥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둘 책이라기보다는 기간을 정해놓고 천천히 내용을 공부해가며 이해해야 독자 입장에서는 제값을 할 책이다. 콩글리시라 해도 원래 의미를 잘 살리면서 적절히 축약된 좋은 표현도 있을 수 있는데 저자 역시 콩글리시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보다 정확한 영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미리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언어와 관련한 문화를 소개하는 부분은 좀더 보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이런 표현은 잘못됐다, 원어민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이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고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주요 설명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500페이지 가까운 책의 내용이 반복되다 보니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재미를 목적으로 한 책이 아니니까...^^; 관용적인 표현을 통해 그 나라 문화를 잘 살펴볼 수 있는데 그 부분은 짧긴 하지만 직역오류를 다룬 챕터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외국인과 대화할 때 콩글리시로 인해서라기보다는 긴장해서 표현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자신감이 부족해서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이 들었다. 오히려 콩글리시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오해나 난처한 상황 등을 겪는 것은 하나의 통과의례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도움으로 콩글리시가 많이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막상 부딪혀보면 말이 잘 나오지 않는 다른 요인이 많을 것이다. 아무리 그 사람을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눈앞에 있으면 쭈볏거리게 되는 그런 심정과 비슷하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아... 좀 그런가...ㅡㅡ;) 아무튼 무엇이든 그런 것 같다. 배우고 익힌 것은 실천의 반복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 콩글리시든 퍼펙트 잉글리시든 사람들과 자꾸 말을 섞어봐야 온전히 자기 것이 될 것이다.  

저자가 실제 수집한 예제라고 하지만 정말 그렇게 표현했을까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영계’를 young chicken, ‘날개 돋친 듯 팔린다’를 selling as if they have wings, 가장 의문스러웠던 ‘대일밴드’(Dae-il band), 에프킬라(F-killer) 등이다. 반대로 PC room이나 all-in, 맥가이버칼 같은 표현은 원어민들이 자주 쓰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주입시켜 보는 건 어떨까? one-side love도 훨씬 괜찮은 것 같은데^^; 정말이지 와이셔츠나 라운드티는 원어민들이 역으로 받아들여 써도 좋을 것 같다. airhead 같은 경우는 우리말로 ‘머리가 비었다’는 표현이 있어 친숙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93년에 출간되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라는 책이 떠오른 것은, 연결되는 어휘의 특징을 역사와 문화, 재미있는 그림을 통해 말꼬리를 붙잡듯 학습하는 이 책의 장점을 ‘영어표현사전’(책의 내용을 감안하면)을 만드신 분들이 참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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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상상력을 연주하다 - 세계적인 뮤지션, 양방언이 그려낸 꿈의 궤적
양방언 지음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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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음악가 양방언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또 늘 그랬듯 새로운 변화와 도전 앞에 희망과 포부를 밝히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인상적이었던 것은 부모님께서 그의 이름을 지어주실 때 이야기였다. 양방언이라는 이름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의미와 일본적인 느낌을 가진 한자들을 하나씩 담고 있고 한국식, 일본식, 중국식으로 읽는 법에 있어서도 각각의 멋이 담겨 있어 이름을 지으실 때의 그의 부모님의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름 하나로 그의 운명이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이 부분을 보면서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세련되거나 뭔가 의미가 있고 독특한 멋이 있는 이름이 불렸을 때와 정말 밋밋하고 심지어 놀림거리가 되는 그런 이름이 불렸을 때 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성장과정에서 상당히 심리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부모님의 센스에 감탄했다. 
   어린 시절부터 형제들의 영향으로 음악을 접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의 음악에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아버지의 뜻대로 의사의 길을 계속 가지는 못했지만 그의 영혼을 울리고 이끄는 음악과의 만남은 어떠한 논리와 이성으로도 설명하지 못할, 말 그대로 운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 악기를 만지고 차례차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며 그의 삶은 더욱 음악으로 강렬하게 그리고 가깝게 이끌려 갔으며 그때마다 만난 음악적 동료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인연처럼 그와 친분을 맺는다.
   살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인데 이점에 있어서 양방언은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의 첫 피아노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선생님은 자유롭고 열린 사고를 가진 분이어서 학창시절 밴드활동을 겸하며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던 그의 심적 어려움을 말 한 마디로 깔끔히 해결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네가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내지 않아. 네가 다른 곳에서 다른 음악을 하는 것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 재즈나 록, 그밖에 멋진 음악이 많이 있어. 모쪼록 다양한 음악을 접해서 그걸 많이 흡수하도록 노력하는 게 좋아. 그리고 여기 오는 것도 그만두지 말고 계속해야 돼. 그렇게 하면 언젠가 많은 것들이 모여 음악으로서 결실을 맺는 날이 올 테니까.”

   피아노 선생님의 이 말은 양방언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고 이후 그의 음악적 궤도의 원칙처럼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장르의 음악과 음악을 표현하는 형식에 있어서 그의 열린 사고는 그를 어떤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고 고유의 위치를 가진 음악가로 성장해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인생에는 수많은 결단의 순간이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양방언은 심플하면서도 분명한 목표설정을 통해 지금 당장 해야할 것을 마치고 당당히 그가 하고 싶은 것을 취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준다. 그가 음악을 하기 위해 일본의과대학에 시험을 치러 당당히 합격하는 과정을 보여준 예가 바로 그것이다. 또 그는 ‘스스로 확신만 있다면 가끔은 두 마리든 세 마리든 욕심내서 토끼를 쫓아보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너무 무모하면 안 되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다. 결국에는 하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면서 인생에 있어서 하겠다는 의지와 소망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졸업 후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그는 결국 또 한 번 결심하게 된다.

‘그래, 지금처럼 무언가에 억눌린 기분은 결코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스로 선택해서 책임을 지자. 스스로 선택한다면 설령 실패해도 납득할 수 있고, 괴로워도 푸념이나 변명을 하지 않고 하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의 탓을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결정한 일이니까.’

   미련없이 의사의 길을 버리고 그의 운명인 온전한 음악으로의 첫 걸음이었다. 이후 차곡차곡 음악인으로서의 경력을 쌓던 그는 해외에서 일을 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항상 마음의 짐이었던 아버지와의 갈등을 그의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의 마음을 가늠해보는 것으로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된다.

‘어쩌면 내 이름이 준 운명은 해외의 사람들과 음악을 하는 일일지도 몰라. 거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해야만 하는 커다란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주 조금은 아버지의 의도에 가까워지는 것일 수도 있어.’

   이후 솔로앨범 활동, 한국에서의 영화와 영상, 게임음악 등의 활동을 비롯하여 다양한 아시아 문화와 음악을 접목한 대륙의 기상과 꿈과 미래를 담은 듯한 음악적 성취를 이뤄나간다. 자유로울 수 없었던 출신배경을 딛고 오로지 그가 의미와 열정을 느끼고, 하고자 하는 일에 전심전력하여 오늘에 이르는 과정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양방언의 삶이 변화, 도전, 열정, 꿈 등으로 요약되듯 그는 의미 있는 삶을 위해 거침없는 인생을 달려왔고 앞으로도 힘차게 달려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언제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끝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앞으로 그려질 그의 꿈의 궤적이 어떤 모양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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