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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 - I’M THE BAD GUY,
안드리안 베슬리 지음, 최영열 옮김 / 더난출판사 / 2021년 9월
평점 :
영화나 음악을 열정적으로 보거나 듣는 편은 아니지만, 연례행사처럼 아카데미나 그래미 어워드 시즌이 되면 생중계나 녹화방송을 꼭 보거나 최소한 틀어놓기라도 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2020년 1월은 아직 코로나의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전이었고, 그 즈음에 시청한 그래미 어워드에서 나는 어쩐지 특이하지만 익숙한 어떤 멜로디에 이끌렸다. 그리고 그 곡의 주인공이 빌리 아일리시란 여가수였으며,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해의 그래미에서 사실상 주인공을 확정해놓은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곡은 우리나라 카드회사?의 광고 음악이었기에 그렇게 익숙했던 것이었다.
“빌리 아일리시”는 이미 그 이름에서부터 엄청난 매력을 느끼게 한다. “빌리”라는 단어는 그 단어 하나만 있을 때는 별 느낌이 없는데, 그 뒤에 어떤 단어가 추가되느냐에 따라 색다른 느낌으로 탈바꿈하는 묘한 단어인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빌리 엘리어트”? 아무튼 빌리 아일리시의 경우 “아일리시”라는 발음에서 오는 느낌이 무척 세련되고 멋지고 독특하다는 느낌을 준다. 흔한 것 같으면서도 새로움을 주는 경우가 바로 “조합”의 마법인데, 빌리 아일리시라는 이름은 바로 그런 예가 될 것이다.

빌리 아일리시는 매우 일찍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례지만, 이제 겨우 20살에 불과한 그녀의 성공기 혹은 성장기가 책으로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동시대 대중문화 소비자들에게 강한 파급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유년기 성장 환경이 유복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둘 다 배우였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의 테두리가 온전히 세워진, 필요한 건 다 있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에서 주목하게 되는 첫 번째 포인트다. 빌리는 부모님과 오빠 이렇게 네 명이 한 식구를 이루며 살았는데,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절묘한 성장 환경을 가족을 통해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집, 가족은 언제나 그녀의 마음이 의지할 수 있고 힘이 되는 근원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책에서 보이는 두 번째 포인트는 그녀의 목소리에 대한 부분이다. 빌리 아일리시의 목소리에 대해 다양한 표현들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 ‘진실된’, ‘아름다운’, ‘진솔한’, ‘힘 있는’, ‘부드러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감미로운’, ‘침울한’ 등 어느 하나의 색깔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기본적으로 아름답고 깊은 울림을 주는 타고난 목소리의 매력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목소리에 대한 기초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춤과 노래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빌리는 어린 시절 LA의 한 어린이 합창단 활동을 통해 목소리 훈련이 된 것이, 자신이 지금 이렇게 노래를 할 수 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빌리 아일리시의 또 하나의 특별한 점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자신의 작품을 위해 어디까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그녀는 한 신곡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서 그 컨셉을 원하는 만큼 표현하기 위해 타란툴라 거미를 자신의 입안에 머금는 행동까지 기꺼이 했다. 보통의 열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하나,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 즉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연습과 실전에서 열정을 폭발시킨다는 것이다. 그녀가 계속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계속해나가려면 오히려 그 폭발적인 열심을 자제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빌리 아일리시의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또 하나는 그녀와 함께 일하는 팀이 공유하는 미래 전략이다. 애초에 그들은 빌리 아일리시를 소모성 연예인이 아닌 오래도록 사랑 받는 진정한 아티스트로 성장시키기 위해 단기적 성공을 추구하지 않았다. 작은 규모에서 시작하여 빌리 아일리시의의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조금씩 그녀의 세계 속에 팬들을 결집시키고 확장하는 과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빌리 아일리시에게 있어 가족이 갖는 특별한 의미에 대해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무엇보다 바로 친오빠인 피니어스의 음악적 능력과 동생을 위한 헌신이 돋보인다. 둘은 무대에서 한 팀으로 활동하지만 보통 스포트라이트는 빌리 아일리시에게 집중된다. 그러나 그래미 어워드에서의 엄청난 성공을 통해 피니어스라는 뮤지션이 지닌 재능과 가치도 입증되었다. 하지만 그는 “평생 그저 빌리 아일리시의 오빠이고 싶다”는 다른 시상식에서의 소감을 통해 동생을 향한 깊은 애정을 보인 바 있다.
이 책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일 뿐으로 보이는 갓 스물이 된 한 여성 아티스트의 지금까지의 여정을 짧은 호흡의 글들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구성으로 담아내고 있다.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이미 이룬 업적이 너무 대단하기에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중간정리(?)한 것이 충분히 납득되었다.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하면 이렇게 길지 않은 글들의 모음으로 책을 편집한 것이 효과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더 훌륭한 아티스트로 성장하게 되어 확장될지도 모를 빌리 아일리시의 세계를 접하기 전의 예행연습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