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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 이야기 - 춤과 반려동물과 패션을 금지해도 마음의 불꽃은 꺼지지 않아
깊은굴쥐 지음 / 왼쪽주머니 / 2021년 7월
평점 :
일반적으로 중세는 당대를 지배했던 종교의 억압과 타락으로 인해 “중세 천 년 암흑기”란 말로 표현되곤 한다. 그러나 요즘은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기도 하고, 중세에 관해서라면 움베르토 에코 등의 학자들의 노력으로 그저 암울하기만 한 시기가 아닌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중세의 측면이 조명되고 있어 새로운 인문학적 통찰의 대상으로 다뤄지기도 한다.
이번에 출간된 깊은굴쥐 님의 『수녀원 이야기』는 이러한 중세의 후반기라고 할 수 있는 1300년 즈음의, 잉글랜드 링컨셔 성 메리 수녀원의 네 수녀의 일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당대의 사회문화적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중세의 다양한 이야기는 책 뒤편에 있는 참고문헌을 통해 좀 더 상세히 탐구해볼 수 있다. 미셸 파스투로의 『돼지에게 살해된 왕』, 슐람미스 샤하르의 『제4신분-중세 여성의 역사』, 아일린 파워의 『중세의 사람들』 등의 목록을 보면 『수녀원 이야기』가 단순히 과거의 에피소드들을 작가의 필터에 의해 명랑하고 흥미롭게만 그려낸 것이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상당히 충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에 띄는 내용 몇 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당시 수도원과 수녀원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가이다. 보통은 종교적 열심과 신에 대한 헌신의 마음이 있는 순수한 신앙심으로 충만한 사람이 가득할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실상은 남자의 경우 당대에 그나마 사람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최소한의 직업이 사제였고, 여자의 경우는 오랜 전쟁으로 인해 줄어든 남자들을 두고 벌어진 높은 결혼 경쟁에서 탈락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신부가 될 수 없어 차선으로 할 수 없이 주님의 신부가 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심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모여든 당시 수도 시설에서의 도덕적 해이는 불가피한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당시 교황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순종했을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사안에 따라 순응하지 않고 반발이 일어난 경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 때 종교적 “엄근진”을 이유로 수녀들의 외출과 외부인(속인)들의 수녀원 방문을 금지하는 칙령이 내려졌는데, 당시 수도 시설의 현실적인 경제적·사회적 기능을 무시한 개혁 시도로 볼 수 있고, 반발은 불가피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이 만화(『수녀원 이야기』)를 그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통념을 깨는 당대의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유익한 역사 콘텐츠로 재탄생되는 순간이다.

앞서 언급한 참고문헌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당시 수녀원 등의 종교 시설에서 생활한 수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과 다른, 또 몰랐던 중세의 사회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것과 더불어 당시 여성과 아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과 대우, 결혼 풍습 등도 알 수 있어 13세기의 유럽 역사를 읽는 첫 걸음으로 유용하다. 그리고 한 주제의 만화가 마무리된 후 덧붙는 두 페이지 내외의 작가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해당 주제에 해당하는 역사의 일면을 정리할 수 있어 유익하다. 요즘의 언어와 문화적 요소를 적절히 가미하여 현대인의 감각으로 당시의 정서나 분위기를 이해시키는 작가의 센스 또한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매력이다.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