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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일제 침략사 - 칼과 여자
임종국 지음 / 청년정신 / 2022년 1월
평점 :
역사를 바로 안다는 것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갖 자의적인 해석이나 꾸밈말로 파악되는 사실마저 지저분하게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또 드러난 사실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이면을 밝혀내는 작업도 중요하다. 전자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저자 임종국 선생의 글은 바로 그런 차원에서 우리에게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공부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하나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통감 3대 - 총독 9대에 걸친 기간에 벌어진 침략 기록 중 오늘날 우리들에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고 공개되지 않는 밤의 문화를 보여준다. 특히 이 밤의 문화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추출되고 수탈한 이익을 토대로 주지육림식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분노와 탄식을 일으킨다.

일제강점이 시작되던 무렵부터 밀려들기 시작한 일본발 성매매업은 초창기에는 일본의 가난한 지역의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조선으로 건너온 데서 시작되었다. 여성들의 경우 돈 버는 수단은 매춘이었고 남성들의 경우 본토에서 특별히 기회를 잡지 못해 전전하다가 조선 땅에서 다시 한번 재기할 수 있다는 꿈을 품고 넘어온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청일전쟁, 청일강화조약 이후 1896년에 들어 본격적으로 게이샤들이 수입되면서 요정 전성시대가 열린다. 이를 기점으로 침략의 선봉에 선 일본 관료들과 군인들은 낮에는 침략적 수탈로, 밤에는 거기서 나온 이익을 횡령하면서 온갖 게이샤들과 밤의 쾌락을 위해 탕진하는 광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조선의 기생 문화도 친일화되어 단순히 몸이나 파는 창녀 격으로 전락한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첫 번째 내용은 일제 침략자들의 파벌과 그 대립에서 비롯되는 사건들이다. 관료 집단(문치파, 점진적 병합 지지)과 대륙낭인(무단파, 급진적 병합 지지) 간의 정치군사적 대립은 밤의 문화에서도 그대로 이행되어 인기 있는 게이샤를 차지하거나 빼앗기 위해 온갖 모략과 비방이 판치는 더러운 싸움을 한반도에서 벌이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무단통치의 대표적 인물인 데라우치(가쓰라 내각의 육군대신 출신)의 과격한 성향은 한반도를 재빨리 병합하려는 노력으로 문란한 기운을 잠시 몰아내는 듯도 하였으나 역시 별 수 없었고, 계속되는 무리한 통치와 대륙 확장 정책은 자국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민중의 반발을 일으켜 그대로 자신의 내각이 무너지는 원인이 되는 일련의 과정도 흥미롭다.

두 번째는 주목되는 내용은 인물이다. 아카시 대좌라는 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무단통치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전에 러일전쟁에서 보여준 그의 엄청난 능력은 지금 봐도 대단하다고 할 만큼 치밀하고 전략적이었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인 러시아의 상황을 냉정히 분석하여 내부 혼란을 일으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의 역량은 독일 황제 카이저의 말대로 금세기 최고의 무서운 인물이라 할 만하다. 이런 자의 후손이 언제 또 우리나라를 혼란에 빠트리지나 않을지 걱정될 정도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어떤 방식으로 비참하게 착취를 당하고 있었는지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나라의 정신문화가 어떤 식으로 붕괴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또 오늘날 뿌리깊은 일제의 잔재라는 개념에서 더러운 호색문화가 반드시 조명되어야 할 이유를 알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우리나라가 일제 잔재를 반드시 완전하게 청산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개인적으로 현대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제 통치 기간에 스며든 퇴폐한 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우리나라의 더 큰 도약은 불가능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