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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전성진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트위터에서도 팔로하고 있고, 팟캐스트에서도 워낙 재치있는 입담으로 유명한 굉여님 (굉장한 여자의 줄임말... 역시 이름부터 범상치 않으시다.)이 책을 내서 본명 전성진 작가로 돌아왔다.
유럽에 거주하는 1인으로서 사실 해외에, 특히 익숙한 서유럽권에 사는 한국인의 해외 생활 에세이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잘 알거나 대충 아는, 거기서 거기인 내용들을 굳이 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런데 외람된 얘기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했는데, 내가 해외 생활 에세이를 안 읽는 이유 중에 하나가 내 머릿 속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허영심과 자만감도 큰 이유인 것 같다.)
아무튼,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에세이니까 굳이 요약할 필요는 없겠고, 책 분량도 길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금방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일독을 권한다. 작가가 베를린 정착 초반에 요나스, 라는 이름의 50대 백인 독일 아저씨와 룸메이트를 하며 한집생활을 하는 이야기이다. 그의 글을 그의 시선에 따라서 읽다 보면 좋으면서도 싫고, 이상하고 짜증나지만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닌 인간 개개인의 다양한 모습을 입체적이고 다층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 사람을 그 사람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작가의 그런 포용적이면서도 냉철한 시선에서 요나스와 요나스의 아들, 일리아스는 새로 태어난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저 둘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지 형용사와 명사 한 두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는데, 그러면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 편견을 가지고 두 캐릭터를 접할까봐 그렇게 하지 않겠다. 근데 뭐..그러기엔 어차피 이야기 초반에 바로 파악이 되는 막강 청결남 요나스이긴 하지만 ㅎㅎ
해외 생활 에세이라 생각하지 않고 읽어도 재미있다. 각 챕터 끝에 이야기에 녹아든 작가의 추억의 음식 레시피들이 소개되는데, 이건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프랑스에 살며 한국과 프랑스의 풍성한 식문화에 젖은 삶을 사는 나로서 독일 음식은... 종종 납득이 되지 않기에... 만들어 먹고 싶거나 그러진 않았다...ㅠ
아! 그리고. 제목만 보고선 한식을 구하기 힘들어서 괴로운 해외 생활의 한을 푸는 제목이라 생각하고 책을 읽어 나갔는데 마지막에 반전이...ㅠㅠㅠㅠ 이 책은 나를 킬킬대며 웃다 막판에 지하철에서 혼자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사연있는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
독일 음식의 맛은 잘 모르겠지만, 작가의 글맛이 얼마나 좋은지는 알 수 있게 된 책이었다.
책에서도 했듯, 나는 전성진 작가야말로 진정한 '베를리너'라고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