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갈등이나 문제가 커지는 경우 '다름'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내 생각이 맞고, 네 생각과 견해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대립은 최고조에 이르고 문제는 심각해진다. ]

 

다름을 다양성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별나다', '모나다'로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점심메뉴를 정할때도 '통일'을 외치며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성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부추긴다.
다름은 그저 다를 뿐인데 틀리다로 규정하고 삿대질하거나 몰아세우는 것이 관계를 대립적으로 만들고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만든다. 왜 타인이 나와 다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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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청어라니, 천만에요. 그런게 아니라, 뭐랄까, 마치 인어 같아요...]

사랑이란 이런 걸까? 몸에 깊이 배어버린 비린내마저도 신비로운 인어냄새처럼 느껴지게 하는.
무대 위의 버틀러를 바라보는 굴 파는 소녀 낸시의 감정은 어쩌면 이시대 아이돌을 향한 소녀들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름을 불러주며 무대 아래에서도 친근하게 지내는 사이가 된 두 사람. 그러나 낸시의 감정을 눈치 챈 엄마와 앨리스의 시선은 그리 탐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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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을 두는 방향마저도 정해진대로 바라보아야 하는 에이에프들. 선택받아 집을 찾은 에이에프들이 길을 지나다니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바라보는 모든 것을 놓치는 법이 없는 클라라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행복과 아픔을 동시에 느끼는 게 어떤 감정일지 궁금하다. 창가에 서게 된지 몇일이 지난  어느날 유리창 너머로 다가온 조시.

43. 네가 원하지 않는데 오는 건 싫어. 그러면 불공평하니까. 나는 네가 오면 정말 좋겠지만 네가 조시, 나는 싫어, 하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엄마한테 안 된다고 말할께.

배려심 넘치는 이 아이 조시에게는 남다른 비밀과 사연도 있는 것 같은데, 과연 조시와 클라라는 함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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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심청과 바리데기의 인권과 자존감은 어디에 있는가? 심봉사의 눈과 심청의 목숨이 등가교환에 합당한 것인가? 도대체 바리데기는 왜 부왕의 불사약 따위를 위해 노비 생활과 성노예 생활을 자처한 것인가?


서문을 지나 시작하자 마자 이렇게 구구절절 핵사이다 같은 옳은말만 하기 있기?
어려서부터 읽고 들어온 전래동화이어서 그런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이런식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필자의 말대로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학대와 범죄로 떠들썩하게 뉴스에 오르내렸을 일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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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삭제 완역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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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메리셸리 (지음) |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펴냄)

메리 셸리가 열여덟살에 썼다는 과학과 공포가 콜라보된 소설 <프랑켄슈타인>. 한 남자가 괴물로 만들어져 태어난 이야기를 넘어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 200년 전의 열여덟살 소녀는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북극으로 향하던 항해도중 바다에서 조난당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로버트 월든이 구하며 그의 사연을 듣게된다.

​자신을 만든 창조자로부터의 버림받은 괴물과 그 괴물에게 사랑하는 이를 모두 잃은 프랑켄슈타인.

오, 프랑켄슈타인, 다른 모든 이들을 공정하게 대우하면서 나 하나만 짓밟지는 말아주시오. 나야말로 누구보다 그대의 공정함, 심지어 관대함과 사랑을 받아 마땅한 존재란 말입니다.

내가 사악해진 것은 불행하기 때문이오.

강요당했던 지긋지긋한 고독 때문에 내가 그렇게 악했던 거요.

프랑켄슈타인 본문 중에서

괴물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지만 내면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던 생명. 어느 오두막집 헛간에 숨어 살며 그 집의 가족들을 몰래 지켜보고 남몰래 도움의 손길도 뻗칠줄 아는 심성을 가진 그이다.

외모만을 보고 그를 괴물로 정의내린 인간들과 외로움이 뒤틀려 살인자가 되어버린 이름조차 없는 그 중에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에게 실오라기같은 온정을 보였던들 내면마저 괴물로 변하는 그런 삶이 되었을까?

펠릭스의 가족에게 만큼은 사랑받고 친구로 받아들여지고 싶었던 바램에 대한 어긋남도, 물에 빠진 여자를 구해주고 되돌려 받은 총상도 그가 마음에 얻은 상처와 비교가 되지 못했다.

버림받은 자와 버린 자. 내면과 외면. 과연 누가 진짜 괴물인가?

외로움, 절망, 고독...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살고 싶은 그.

사람들에게 보낸 선행과 친절은 언제나 고통으로 되돌아왔다. 그가 원했던 건 작은 친절과 사랑,공감일 뿐이었는데, 흉측한 외모 때문에 괴물로 정의된 그는 진짜 괴물이 되어갔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탄생이었음에도 창조자에게서조차 거부당한 그는 이름도 주어지지 않았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거부당한 아이의 심정도 이러할까.

동생과 친구, 아내와 주변사람들을 차례로 잃어가며 복수심에 불타는 프랑켄슈타인은 끝내 숨지고 만다. 자멸에 가까운 죽음이다.

마지막까지도 괴물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후회만이 있을 뿐, 그를 버린 것에 대한 후회나 반성, 연민은 끝까지 볼 수 없다. 그런 감정들 마저도 동류의 인간들에게만 느껴야 하는 것일까?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그토록 철저한 버림을 받지 않았더라면 무명의 그는 내면마저 괴물로 변해버리는 일이 없었을까?

과학과 지식에 대한 열망으로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결과는 '프랑켄슈타인' 주변사람들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뤘다. 자신의 창조자인 '프랑켄슈타인'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태어남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죽음은 자신의 의지로, 방법 또한 본인의 선택으로 그는 끝내 이름없이 사라지기로 결심한다.

과거의 소설속이 아닌 지금의 현실에서 누군가를 행동보다 외모,국적,배경 등을 이유로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밀어낸적이 없는가 돌아볼 일이다.

누가 진짜 괴물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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