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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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 김남주 (옮김) | 민음사 (펴냄)

제목 <녹턴>이 주는 분위기답게 음악과 관련되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과 관련한 다섯개의 단편이다.

이 다섯편의 단편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한물갔거나 한번도 주류가 되어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빛내주기 위한 조연으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첫번째 이야기 "크루너"에서 한물간 가수 토니 가드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인생 성공의 척도를 자신의 가치 상승이 아닌 성공한 사람의 옆자리에 두는 린디 가드너와 그런 그녀를 사랑하기에 보낸다는 토니 가드너의 사랑법은 사실 이해하기 힘들다. 인생 성공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는 개인의 몫이고 선택이지만 때론 이해하기 힘든 선택들이 있다.

두번째 단편 "비가 오나 해가 뜨나"의 설정은 더 당황스럽다. 이런 일이 실제 있을까 싶지만 현실은 더 황당하고 막장스러운 일이 가득하다.

타인의 기준에는 성공한 삶이 아니지만 당사자인 레이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하지만 절친이라 믿었던 친구 부부는 레이의 현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바쁘게 살며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지만 가정의 안락함을 잊은 자신들의 삶이 어쩌면 더 위태위태함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결국 휘둘리고 아는 것은 레이다. 사람의 관계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어떻게 이용되고 어그러지는지 현실의 인간관계의 축소판을 익살스럽게 보여주려 한 것 같다.

"몰번 힐스"에서는 같은 현상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보이는 부부, 틸로와 소냐가 등장한다. 현실적인 문제들은 외면한 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만 보는 사람 곁에서 현실을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힘들고 나빠보일 수 밖에 없다. 듣고 싶은 말을 정해놓은 답정너와의 대화만큼 기가 빠지는 일도 없다. 어떤 일이 더 중요하다는 기준은 누가 정해 놓은 것인가?

실력과 운에 대해 말하고 있는 네 번째 이야기 "녹턴".

실력을 더 높이기 위한 노력과 운을 잡기 위한 노력. 어떤 것이 더 가치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게는 없는 게 더 아쉽고 타인이 가진 것이 더 크게 보여 질투도 느끼고 끌어내리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이 모를 개인 역치의 기준을 넘는 노력을 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첼로를 켤 줄 모르는 자칭 거장에게 인정받기 위한 첼리스트의 이야기가 나온다. 내 인생인데, 내 인생의 역사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배나라 감나라'하는 훈수가 꼰대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굳이 음악이라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이런 모순은 세상에 넘칠 정도로 많다.음악이라는 연결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가즈오 이시구로가 은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모순 가득한 세상 그 자체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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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들은 무척이나 은유적이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빙둘러 얘기하니 할 말이 있음은 알겠는데 정확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한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본계 작가지만 어려서부터 영국에서 자라온 이유로 그의 글에선 다른 일본 작가들의 글에서 느껴지는 특징이 크게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소설의 제목인 <녹턴>처럼 음악을 매개로 한 여러편의 단편들을 통해 가즈오 이시구로가 표현하고 싶었던건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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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9. 현대 예술의 소통불가능성이 시작된 지점은 어디인가.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찾아내려는 예술가의 노력이 점점 엘리트 주의로 변하연서 민중을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동시에 민중이 예술 대신 좀 더 손쉬운 문화 상품을 선택하면서 예술가를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

           

어려워야만 뭔가 있어보인다는 그들만의 문화는 예술에서도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문화를 만들었다. 쉬운 말을 두고도 굳이 어려운 말이나 전문 용어를 고집하며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이 무식이나 죄가 되는 것 마냥 말이다. 보고 듣고 느끼며 즐기는 가운데 감동을 느껴야 하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난 예술이 과연 대중을 위한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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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아이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 내로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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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아이

루시모드 몽고메리 (지음) | 차영지 (옮김) | 내로라 (펴냄)

단편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 내가 유일하게 고대하는 단편 시리즈가 있다.바로 '월간 내로라'의 단편집이다. 단편과 장편, 어느 작품인들 작가의 창작의 고통이 스며들지 않는 작품이야 있겠는가마는 집중해서 읽을만하면 끝이 나버리는 단편을 읽고서는 짧은 식견에 작가의 의중을 헤아리고 짚어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단숨에 읽고 깊어지자" 매 월 책표지 날개 안쪽에 씌여진 내로라의 편집의도는 단편을 기피하는 내게도 울림을 준다. 짧은 단편이지만 책장을 덮고도 이어지는 여운은 어느 장편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이번 작품은 루시모드 몽고메리의 <꿈의 아이>다. 사춘기 시절 '그린 게이블즈의 빨강머리 앤 셜리'를 사랑해보지 않은 소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바로 그 작품의 작가다. 그래서일까? 공간적 배경도 에이번리로 나온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탄성이 나온다. 봄을 표현한 문장의 아름다움은 한 줄 한 줄마다 꽃향기를 뿜는 듯하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부활의 신은 손가락을 반짝이며 묘지의 문을 두드리고, 겨울 무덤 아래 잠든 세상의 모든 생명을 불러일으킨다.(중략) 피조물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아기 천사가 손뼉을 치는, 봄은 그런 경이로운 탄생의 계절인 것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날, 행복한 날들 보다 더한 아름다움과 행복을 가진 것만 같더니 아이를 떠나보낸 조세핀과 데이비드의 나날은 고통 뿐이다. 짐작해보고 싶지도 않은 슬픔이다.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환청이 들리고, 그 소리를 행여라도 놓칠까 잠 못 이루는 어미의 심정을 알것도 같다.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던데, 차마 가슴에도 묻지 못한 조세핀은 아이의 환청을 따라 아이를 찾아헤매고 그런 조세핀을 바라보아야 하는 데이비드에게 기적이 찾아든다.

꿈처럼 잡히지 않는 아이는 딱 20개월을 살다 갔지만 꿈이 아닌 현실의 아이를 엄마에게 인도했다. 인도했다고 믿고 싶다.

아내는 아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온 건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바다가 준 선물이며 꿈의 아이가 인도하여 우리에게 온 것이라 굳게 믿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와 부모를 잃은 아이.

이들의 만남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적일까!

혹시나 비극으로 끝나면 어쩌나 맘 졸이며 넘기던 책장은 소설의 마지막 장을 안도하며 덮었다.

초록지붕의 앤 셜리를 만든 작가였어. 역시~!!

사람에게서 희망을 본다.

상실의 경험을 견뎌내는 방법은 자신의 경험에서 찾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상실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어떻게 견뎌냈나요?

현실 도피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도피처를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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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턴>
재능은 가졌지만 운이 없는 사람과 운은 가졌지만 재능은 없는 사람. 노력의 크기를 재어볼 순 없지만 둘 중 어느 쪽도 성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거나 노력이 부족하다고 할 순 없다.
원하는 바가 뚜렷할 때 재능과 운 중에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까? 운도 실력이라는 우스개소리처럼 삶에서 호락호락한 일은 없는 것 같다. 세상에는 재능이 있는 사남도 많고 운이 좋은 사람도 많다. 각자 자신에게 없는 것이 더 크게 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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