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봄 가노 라이타 시리즈 1
후루타 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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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봄

후루타 덴 (지음) | 이연승 (옮김) | 블루홀6 (펴냄)

표지가 독특하다.

읽기 시작하기 전부터 책을 만든 이의 정성이 느껴졌다. 렌티큘러 이미지를 붙여 제목처럼 '봄과 거짓'을 나타내려고 한 것 같다. 책을 요리조리 움직일 때마다 파란 하늘 배경의 꽃가지가 눈을 맞고있는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로 바뀐다.

가마쿠라시의 파출소 순경 '가노 라이타'가 매 사건마다 등장하며 다섯편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형사나 독자의 시점에서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이 아닌, 범인의 관점에서 왜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심리를 보여주며 단순히 범죄 해결보다는 그 너머의 진실을 알려준다. 진실을 알게되는 과정에서 허를 찌르는 추리력을 보여주는 가노의 활약은 다른 미스터리물에서 보게되는 탐정이나 형사의 이미지들과는 다른 캐릭터다.

사건을 맡아서 조사하며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들로 실없는 아저씨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디테일한 관찰력과 추리는 사소해보이는 어느 것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첫번째 이야기인 <봉인된 빨강>은 배우 조진웅 님의 영화 '해빙'을 연상시키는 스토리다. 본능처럼 행했던 범죄는 기억을 잃은 후에도 잠재의식에 남았고 누구의 기억인지도 모르게 지워진 기억은 또 하나의 본능이 되어 자리잡았다. 범죄의 피해는 오랜 시간이 흐른뒤에도 결코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책의 제목이 된 두번째 이야기 <거짓의 봄>에서는 노년의 결혼사기를 다룬다.

《135~136. "한심한 건 속는 사람이 아니라 속이는 놈들이니까요."

과연 그럴까. 속으로 반론해 본다. 자신의 욕망과 부주의 때문에 넘어간 피해자들에게 전혀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속고 속이는 꼬리물기에 예외는 없다. 피해자는 언제라도 가해자가 될 수있고 가해자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절대"라는 말은 함부로 할 말이 아닌듯 하다.

40대의 전과자인 쇼고에게 호감을 보이는 스물 넷의 간호사 하마모토 리에. 과분한 사람임을 알기에 도둑임을 밝혔지만 믿어주지 않는 리에는 사실을 증명해보라며 밀크티색 장미를 훔쳐다 달라고 한다.

그녀의 호감은 거짓이었을까? 계획된 접근이었던걸까?

《175. "부탁이 있어, 쇼고 씨. 나를 위해 한 번만 더 장미를 훔쳐 줘."》

네번째 사건과 다섯번째 사건은 5년이란 시간차를 두고 이어진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하지만 이 말자체가 하나의 주술이 되어 가난한 미대생 미호는 나쓰키의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부유한 집안의 나쓰키와 한 집에 살며 더이상 핑크살롱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날이 갈수록 나쓰키를 향한 커져가는 미움은 살의를 느끼게 한다.

진심이라는 것은 어떻게 표현해도 오해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표현의 문제인걸까?

마지막 이야기는 아이돌 성우로 스타가 되었다가 인기 하락세 중 의문의 죽음을 맞은 에밀리의 독살로 시작된다. 에밀리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기 보다는 전편 말미에 나온 사건과의 연관성이 더 깊다. 피의자 신문이 특기라 '자백 전문 가노'로 불리던 그가 왜 동네 파출소의 순경으로 지내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미스터리 소설의 속시원한 해결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해자와 피해자의 미묘한 경계, 그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가노 형사가 활약하는 또 다른 소설을 시리즈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블루홀6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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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 중 열린책들 세계문학 268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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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중)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세기를 대표하는 기호학자이자 미학자"라는 수식어가 절대 공허한 소리가 아님을 알게 해준 <푸코의 진자>다.

아직 상,중,하 중에 하권은 읽지 못했지만 성전 기사단에 접근하는 단서를 풀어가는 스토리는 (중)권이 압도적이지 않을까하는 개인적 감상을 조심스레 펼쳐본다.

'움베르토 에코'.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린 이 이탈리아의 작가는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이런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았을까?

중학생 시절에 만났던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다.


성전 기사단의 비밀에 다가서게 되는 그 시작은 우연과 가라몬드 사장의 상술 때문이었지만 그 비밀에 한발짝 가까워질수록 카소봉도 나도 점점 더 빠져들며 즐기게 되었다. 무겁게 흐르기 쉬운 심각한 부분은 중간 중간 움베르토 에코만의 익살이 쉬어갈 여유를 주기도 한다.

진짜 성전 기사단원을 찾는 데 가짜 성전 기사단보다 더 나은 곳은 없는 법이지요. 이제 내가 이들과 교우하는 까닭을 아시겠소?

푸코의 진자 246쪽

'너울 벗은 이시스' 새 총서를 앞세운 시리즈 도서의 출간을 <헤르메스 계획>이라 칭하며 이른바 호구가 되어 줄 자비 출판 저자를 찾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성전 기사단의 비밀들.

아직은 그들 중 누가 가짜인 척 하는 진짜인지, 진짜인 척 하는 가짜인지 알 수 없지만 진짜 성전기사단을 숭배하는 무리들은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보인다.

카소봉, 벨보, 디오탈레비의 자문 역할을 하는 알리에와 카소봉의 주위를 맴도는 듯한 안젤리스 경위, 사실은 경찰 끄나풀이라는 박제사 샬론. 그들 중 진짜 스파이가 누구일런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십자단이 왜 자신들을 숨기며 여러 곳으로 이름마저 달리한 채 살아왔는지, 왜 이제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려 하는지 몹시도 궁금하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르덴티 대령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던 걸까? 숨은것인지 제거된 것인지 아직은 그마저도 알 수 없다.

잠깐씩 등장했던 인물들의 비밀스런 기사단 모임과 아불라피아에 소설처럼 써내려간 벨보의 이야기, 거기에 더해진 카소봉의 가설은 (하)권에서 어떻게 비밀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게 될까?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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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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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로저 에커치 (지음) | 조한욱 (옮김) | 고유서가 (펴냄)

십여년 전 '밤의 문화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는 이 책은 새 옷을 입고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밤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조금씩 밤의 이중성도 변하고 계급과 신분에 따라 밤을 이용하거나 맞이하는 방법도 달라져왔음을 알려준다.

20세기에 이르러 눈부신 과학의 발전은 인공 조명의 등장으로 밤은 제 2의 낮이 되어 노동의 연장과 유흥의 화려함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음지에서 살아가는 도둑, 밀수, 밀렵 등의 세력들은 밤이 주요 무대이다.

어둠을 인위적으로 밝힐 수 없던 시대의 밤은 위험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본다'는 감각을 불빛없이 오로지 시각에만 의지해야했던 시대의 밤은 공포와 위험 그 자체였다. 소리와 후각 등의 오감을 이용한 판단은 늦은 밤 방문객을 도둑으로 오인해서 사고가 벌어지기도 했고, 이런 공포심을 이용해 타인의 복종을 유도하기도 했다.

"밤의 두 얼굴".

세상만사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듯 밤 또한 이중성을 가진다. 현대인들이 밤을 휴식의 시간, 힐링의 시간, 개인의 시간이라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대 초기 사회에서도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사회처럼 사회가 작을수록 이웃의 평판을 무시할 수가 없기에 낮의 생활은 생각만큼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밤은 위험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표출할 수도 있었다. 귀족들은 밤이 주는 익명성 위에 가면이라는 익명성을 더해 그들만의 유흥과 향락을 즐기기도 했다.

어둠이 주는 휴식은 생계의 압박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더럽고 위험한 일은 밤에 이루어져야 했고 그런 일은 돈이 필요한 서민들의 차지였다.

가사일로 인해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일이 더 많았고, 산업화 이전 시대의 술집은 남자들의 사교 행위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술집에서 성적 만남도 이루어졌지만 성행위는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성적인 태도의 지역적 차이는 도시와 농촌 간의 차이로 존재했고, 계급도 문제가 되었다.

17세기 중반에 이르러 중간층과 상류층 사람들은 개인적 성찰을 위한 독서를 즐겼다. 하층 계급은 혼자 있을 시간과 공간을 얻기 힘들었다.

평민들에게 밤은 유흥보다는 은신처였다. 낮에 몸을 숨겨야 하는 반체제 소수파는 어둠속에서 결의를 다졌고 질병이나 기형을 가진 사람들은 밤을 이용해 피신하거나 식량을 구하러 다녔다.

하인들이나 견습공이 낮의 노동에서 벗어나 밤 외출을 하려하면 주인들은 막으려 애썼다. 도주하려는 하인과 노예, 견습공들이 주로 밤시간를 노렸기 때문이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있는 자들에겐 유흥의 시간이고 없는 자에겐 노동의 시간..

수면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양보다 질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만큼 자는가보다 어떻게 자는가하는 문제.

위생과 청결이 현재와 달랐던 과거의 수면은 '쉼'에 대한 자세가 지금과는 달랐다. 건강과도 직결되는 '잠의 질'에 있어서 '적정한 수면 시간은 얼마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도 의문이다. 적정한 수면시간은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계절과 노동의 양과 강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많이 자면 게으르고 조금 자면 근면하다는 선입견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제 현대인들은 직장에 매인 낮시간을 밤의 여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낮의 노동을 감내하는 것이 아닐까? 잃어버린 밤의 역사를 이제라도 되찾으려는 듯이.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고유서가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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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반양장)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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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한나아렌트 (지음) |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펴냄)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 중 가장 어려웠던 책. 이해보다는 완독을 목표로 시작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어려운게 당연하다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하면서.

문명에 대한 치명적인 위험은 무엇이 없다는 데서 오는 것 같지 않다.

자연은 통제되고,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하는 야만인도 이제 없다. 심지어 전체주의 정권의 출현도 우리 문명의 밖이 아닌 안의 현상이다. 문명이 그 문명의 한가운데로부터 수백만의 사람들을 야만인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야만을 산출한다는 데에 바로 위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책 본문에 접어들기도 전에 만난 한나 아렌트의 말은 이 두꺼운 책을 관통하는 핵심처럼 보여진다.

인간의 조건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면

야만성 또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명에서 산출된다는 말은 부정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은 자신의 영토와 국가를 소유하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더욱 더 경제적 자립에 대한 갈망과 집착이 있어 왔는지 모르겠다.

전체주의 이전의 반유대주의와 전체주의적 반유대주의의 차이는 무엇일까? '시온 장로 의정서'라는 위조 문서를 나치가 이용했다고는 하지만 각국이 자국의 이익이 아니었다면 나치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을까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176. 부유한 예외 유대인은 스스로 유대 민족의 공동 운명에서도 제외되었다고 생각했고 정부로부터도 예외적으로 유익한 사람들로 인정받았다. 교육받은 예외 유대인은 유대민족으로부터 제외된 예외적 인간으로 느꼈으며 사회에서도 그렇게 인정받기를 원했다.》

거리에서는 일반인이고 집에서는 유대인인 척해야 했을 것이라는 정체성의 모호함. 지금까지 알고 있던 유대인들의 애국심과 정체성과 대비되는 내용은 혼란스러웠다.

유대인에 관한 한, 유대교는 범죄로 유대인 기질은 악덕으로 전환되었다. 범죄는 처벌받으면 되지만 악덕은 박멸밖에 길이 없었다. 이러한 사회의 해석은 반유대주의 조치가 실행될 때의 모습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게 된다.

이 책에 서술되어진대로 제국주의의 통치는 비난을 목적으로 할 때만 기억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질서 유지를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할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부'에서 시작됨을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가간 권력 구도에서 그 차이는 확연하게 보여진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독재 형태를 수용하고 있었고, 히틀러가 정권을 세울 당시 나치에 협력하는 부역자가 없는 정당은 유럽에서 하나도 없었다.

소수민족 국가와 국적 없는 민족은 거대 국가들에 의해 위탁 되거나 유럽의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되었다. 식민지 국민들도 민족 해방과 자결권을 열망하고 있었다. 평화 조약의 목표는 유럽의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민족 자결권과 주권을 모든 유럽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보였다. 그러나 소수민족은 주도 민족을 믿지 못했고 국제 연맹도 신뢰하지 않았다. 1930년대 포로 수용수는 세상이 무국적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였다.

전체주의적 통치를 위한 계급집단의 청산은 평등을 위한다기보다는 통치를 위해 저항과 힘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선전과 테러를 이용한 통치는 타당성과 정의와는 별개로 이미지 관리와 협박을 통한 지배를 보여준다. 전체주의 선전의 거짓말은 현실과 허구를 연결시키기 위해 진실성과 실제 경험이 필요한데, 이런 것들을 약점에서 끌어낸다.

150. 혁명 운동이 권력을 장악하고 책임을 맡게 되면 그 성격이 변한다는 교훈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대다수의 권력들이 권좌에 앉고 나면 초심을 잃고 그들 자신이 몰아냈던 권력자들과 같은 모습이거나 혹은 더 한 모습이 되는 것을 익히 보아온 터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많이 알려진 통치 기구일수록 권력은 적고, 그 존재가 공개되지 않을수록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 체제를 떠나 비밀 경찰의 존재는 다수의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다. 비밀이 시작되는 곳에서 실질적인 권력이 존재하기 시작한다.

유대주의,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를 구분 짓는 배경과 정치적인 문제는 너무 복잡하고 각 민족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인간 심연에 존재하는 이기심이 아닐까? 작게는 개인 크게는 민족과 국가에 이르는 이기심이 '~주의'라는 이름으로 선을 긋는 것이 아닐까?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한길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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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1~4 세트 - 전4권 - 특별합본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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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4

황석영 (지음) | 창비 (펴냄)

내가 장길산으로 허명이 있다 하나 이것은 조선 팔도 방방곡곡의 백성들이 역병과 굶주림에 죽고 싸우며 이룬 이름이지 내 이름이 아니다.

장길산 4권 934쪽

책의 제목은 장길산이지만 장길산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길산으로 대표되어지는 백성들의 이야기다.

길에서 태어난 생명은 그 길에서 다른 많은 목숨을 살리기 위한 삶을 살았다. 생부가 누구인지 모르고 생모마저 산고 끝에 죽었지만 길산에게는 백성이 어버이였고 또한 길산이 백성의 어버이였을테다.

굶주림에 죽어가고 굶주림에 부모가 자식을 파는 인면수심의 세월은 선과 악의 구분조차 모호하게 만들었다.

묘옥과 길산처럼 어긋나는 인연은 안타까웠고, 사랑을 가슴에 담은 연으로 집안이 적몰되고 자신도 죽음을 맞은 이경순의 삶도 가슴 한 켠이 저릿하게 아팠다.

이문만을 쫒지 않고 사람을 취하고 정을 나눌 줄 알았던 사람 박대근. 나는 그가 참 멋있었다.

관가의 통인으로 자라나 백성의 수모를 겪고 보았음에도 백성이 아닌 양반의 편에 섰던 최형기. 출세에 눈이 먼 그의 칼은 서슬이 퍼랬다. 그 칼날에 쓰러진 장충은 죽음 앞에서도 길산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였다.

길산을 잡기 위해 몇 개의 마을을 쑥대밭을 만들었고 너무 많은 죽음을 만들었다. 제 가족이 죽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이들이 어찌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시집살이도 살아본 사람이 더하다고 하였던가. 핍박과 차별받는 세월을 살았던 고달근은 끝내 제 안위와 영달을 위해 동지들을 최형기에게 넘겼다. 장길산이 찾아올까 두려움으로 지내면서도 부귀영화가 그리도 좋았을까. 남의 눈에 피눈물 뽑아놓고 아래것들 호령하며 배 부르고 등 따시니 그리도 좋았을까.

배신으로 흥했던 고달근은 그 자신도 배신으로 최후를 맞았다.

여환의 미륵도는 성급함으로 멸하고, 활빈도도 사주전으로 꼬리를 잡혀 큰 희생을 보았다. 큰 일을 도모함에 있어 그 일을 그르치는 것은 작은 것에 있었다.

길산이 전해들은 봉순의 최후가 너무 아프다. 아프고 아프다.

다른 여자를 가슴에 품고 사는 지아비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짓던 봉순이. 최형기에게 잡혀서도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도, 겁을 먹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아비를 잊지 말라 수복이에게 당부하고 욕을 보이기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두령의 아내로서 비장하기까지 하였다.

처참했지만 무의미한 죽음은 없었으리라.

절 이름이 어째서 운주사요?

물은 우리 같은 천것들이고 만백성이란다. 우리 중생이 물이 되어 고이면 배가 떠서 나아가게 되는 게야. 이제야 배가 되어 움직이는 절의 의미를 알겠느냐.

장길산 4권 954쪽

 

*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창비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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