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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트레이 귀공자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이미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평점 :

밸런트레이 귀공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 이미애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알고보면 나쁜 사람 없다" 등 인간의 본성과 마음에 대한 여러 격언이 있다.
티비 공중파를 오르내리는 험악하고 혐오스러운 범죄의 죄인들도 그들의 성장기를 조사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불우하고 학대받은 경험이 존재하고, 가해자이기 이전에 피해자였던 시절이 있었음을 간혹 보게 된다. 그럴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성경구절의 한 문장이 인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 불우한 시절은 커녕 넘치는 편애와 모든 것을 누린 지체높은 신분의 밸런트레이 귀공자가 있다.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노래실력, 타인의 사랑을 받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연기력까지 모든 것을 가진 그가 딱 하나 가진 것이 없다면 그것은 '선함'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결정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그에 따르는 결과는 오직 신만이 아실 뿐이다. 그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던지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는 또다시 본인의 선택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하였던가? "잘 되면 내 덕이고 안 되면 조상탓이다"라고 하였던가? 순전히 자기의 모험욕을 채우려 아버지와 동생 헨리의 조언과 걱정을 뒤로하고 고집을 피워 나간 전쟁이었음에도 꿈꾸던 화려한 승리 대신 도망자로 살아야하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제임스는 자신이 겪어야 했던 불운의 모든 탓을 동생 헨리에게 퍼붓는다. 형제 간의 피로 물든 복수는 그렇게 '네 탓'에서 시작되었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타인을 이용할 뿐인 밸런트레이 귀공자 제임스와 대조적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고 견디는 헨리는 아내와 아버지로 부터도 지지와 공감을 얻지 못하고 따돌려지는 듯한 분위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매켈러라는 충직한 하인이 없었다면 헨리가 그 긴 시간 외로움과 오명에 버틸 힘이 있었을까. 형을 죽였다는 자책으로 불안정해진 정신은 형의 생존을 알게 되며 기뻐하기 보다는 더욱 더 불안해지고 만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조여드는 형 제임스의 집요한 괴롭힘은 헨리의 재정적 파탄과 가족 내의 불화, 안전의 위협까지 그를 놓아줄 의사가 전혀 없으니 말이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거듭되는 복수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모든 매력을 가진 밸런트레이 귀공자가 선함까지 갖추었더라면 듀리스디어 가문은 다시없을 번영을 누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을 돌리고도 남을 만큼 연기력도 출중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복수심이라는 목적으로만 움직이는 밸런트레이 귀공자는 일종의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한다. 형 제임스를 상대하는 헨리의 태도는 순응에서 대립으로 점차 변해가지만 한번도 형의 그늘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형을 대신한 책임감을 보일때도, 형을 상대하며 똑같이 복수심에 불타오를 때에도.
복수심은 양날의 검이다. 상대를 베려는 난도질에 결국 자신도 상처입는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매컬러가 힘들어했던 이유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존경하고 사랑했던 주인 헨리가 점차 무너지며 제임스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니 말이다.
복수 후에 남는 것은 파멸. 그 복수가 승리이든 패배이든 양날의 검을 쥐었던 자신도 만신창이가 되어버리고 마는 파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