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보고 싶은 책들이다. 올해는 구간을 좀 읽고 집에 쌓여서 읽히지 못하고 있는 책들을 읽어보자 마음 먹었는데 역시 그건 잘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매주마다 쏟아지는 신간들을 보면 그 유혹적인 자태(!)에 넋이 나가 나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담으며 쌓아놓는다. 그러곤 어느 날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지르고 만다.
EBS세계테마기행 시리즈 칠레 편이 나왔다. 『안데스의 땅, 남극의 바람 칠레』2주간의 여행 기록이 담긴 그 프로를 할 때마다 눈여겨보았는데 책으로 만나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여행책을 많이 좋아하고 읽는 편이지만 아직 '칠레'에 관한 여행책을 읽어보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아는 칠레는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다. 소설과 영화 속의 풍경이 남아 있을 뿐이다. EBS에서 하는 칠레 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더욱 반갑다. 세계테마기행이 보여주는 풍경들은 항상 아름답다. 계절도 시간도 우리와 반대라고 하는 그곳 칠레의 가장 북쪽 사막의 도시 '아리까'에서 남극과 가장 가까운 땅이라는 '뿐따 아레나스'까지 그 경이로운 여정을 이 책으로 따라갈 수 있을 거다. "(…)사막, 들, 숲, 강, 호수, 바다, 바람.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그레이 호수의 빙하까지. 지금껏 지나온 칠레의 자연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4,300킬로미터를 여행하는 동안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모든 것을 본 기분이다. 어느덧 여행의 막바지, 감회롭다." 무심코 책을 펼치니 이런 문장이 나왔다. 얼른 읽어주고 싶은 마음 태산이로다!
『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읽고 있는 책이다. 글이 매우독특하여 과학책인지 문학인지 구분이 안 간다. 하지만 재미있다. 저자는 일본 최고의 과학 저술가이며 추리 소설가이고 번역가라고 한다. 과학과 문학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글을 쓰고 있단다. 과학이라는 것을 이런 형식으로도 쓸 수 있다면 그래서 나처럼 과학이나 수학에 흥미를 못 느끼는 사람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면 과학도 너무 좋아라 할 것 같다.^^ 다른 곳에 올린 글을 옮겨본다. 어느 날 양자학의 대표적인 사고실험인 ‘슈뢰딩거 고양이’를 설명하는 책에서 고양이가 한 마리 튀어나온다. 고양이는 주인공인 도오루와 샨린을 과학사의 7대 수수께끼라고 하는 과거의 과학자들을 찾아가는 시간 여행을 한다. 이런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도오루와 샨린의 국경을 넘은 사랑, 모험과 흥미진진한 과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학을 얘기하지만 전혀 어렵지 않은 과학, 더구나 애절한 그들의 사랑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는 방법 등등 처음 만난 작가지만 전 이 작가에게 흠뻑 빠져버렸다. 과학이 어렵다구? 이 책을 권한다.^^ 본문의 한 문장 “나를 속이려 드는 겐가?” “아니요, 아닙니다. 설마요. 단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한 당신의 주장을 가톨릭교회에서 인정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도오루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전하려 했으나, 갈릴레오는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저 바보들이 그렇게 간단히 인정할 리가.” “그러니까 350년이나 걸렸습니다.” “이보게.” “네.” “나는 무엇이든 머리로 부정하려 하지는 않네. 그건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말일세.” 도오루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갈릴레오를 만난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도오루가 미래에서 왔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말한다. 과연 도오루는 그 증거를 어떻게 가져올까? 흥미진진
만화가 고우영 선생의 新고전열전 시리즈다. 그중 『아라노와 오가녀』를 읽을 생각이다. 고우영 선생의 만화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리즈는 스쳐지나듯 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때는 어렸으므로 관심도 두지 않았던 만화였다. 그걸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게 되니 내가 괜히 감개무량하다.^^; '고우영은 그런 민초들의 상처 난 마음을 특유의 해학과 비틀기로 보듬고 있어 그의 작품이 시기를 타지 않는다는 평가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우영의 작품은 21세기에 들어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시대를 앞서나간 것은 물론 전 시대를 포괄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어느 시대의 독자라도 그의 작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라고 책소개가 되어 있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쌍둥이 남매 아라노와 오가녀가 펼치는 모험담에 푹 빠져봐야겠다.
『사랑의 역사』를 사두고 읽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읽어볼까? 생각 중인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쓴 그녀의 남편인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책보다 먼저 그녀의 책이 나왔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무조건 지르고 보는 나. 『사랑의 역사』를 읽고 이 책『남자, 방으로 들어가다』를 읽어야 하나 고민중이다. 하고 쓰고 보니 다행하게도 이 책이 그녀의 첫 소설이란다. 이젠 알려진 작가의 첫 작품을 읽는 재미는 색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사랑의 역사』를 읽어야겠다. “환상 때문이지. 사랑에 빠지면, 그것에 취해 잠시 동안은 당신이 실제로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존재가 된 것처럼 느끼죠. … 다시는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당신은 오로지 그렇게 가까이 갈 수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전보다 더 외로워하며 잔인하게 실망하는 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 환상, 그러니까 그 모든 세월 동안 당신이 지녀 왔던 희망이 산산이 흩어졌으니까요.” 매우공감이 가는 문장이다.
곽아람의 『그림이 그녀에게』를 읽고 뒷표지 날개에 적힌 책들을 보다가 필(!)이 꽂혔다. 『그림과 눈물』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지기도 하여 고민을 했는데 신경숙 작가가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을 읽었다. 아, 이 참을 수 없는 구매 충동감이라니! 난 아직 한번도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물론 그림을 많이 보지 못했고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감정이 살아나지 않겠지? 아니야 그래도 어떤 그림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잖아. 맞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은 그랬던 것 같아. 그래도… 눈물까지야…)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심리를 말해준다하니 이 책을 읽고나면 나도 그림에게 감정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책 속의 한 문장 " 마르딘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예술은 가슴의 문제이지 머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슴으로 받아들일 때만, 그 속에 완전히 개입했을 때만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아무것도 진정으로 알지 못하면서, 또는 말하지 않으면서 수만은 페이지를 계속 메워갈 수도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나 모차르트나 베크만 같은 진정한 예술가들은 압니다." 마르딘에게 예술은 마치 변속장치에 던져진 렌치처럼, 시간의 움직임을 멈추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감동적인 고요함과 조화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예술은 관객의 삶과 그림의 '삶' 사이의 날카로운 대조를 일깨우는 것이다.(…)" 젠장, 더 궁금해져버렸다.
『탐욕의 시대』는 무관심하고 있다가 다들 좋다고 평을 하는 바람에 급 관심을 가진 책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었을 때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이 많았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나 세계 곳곳에 있는 빈곤층의 원인은 무엇일까? 장 지글러는 그걸 파헤친 모양이다. "누가 이 세계의 빈곤화를 주도하고 있는지, 부의 재편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기아와 부채가 가난한 자들의 발목을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경제가 어려우면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번단다. 또 그들은 가난한 자들은 꿈도 꾸지 못할 부자이라는 것을 더 티를 내고 다니는 것 같다. 딴 소리가 되겠지만 공평하다는 것은 가난한 자가 천 원과 부자인 자의 천만 원이 동일하다는 얘길 들었다. 그러므로 기부에 있어서도 부자인 자들이 1억씩 기부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이 만원을 기부한다면 똑같다는 뜻이 되겠다. 이 책에서 장 지글러는 다국적 민간 기업들의 횡포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강력한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얼른 읽어 누구나 행복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