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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음식 - 음식 상식의 오류와 맹신을 고발한다
마이클 E. 오크스 지음, 박은영 옮김 / 열대림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긴 처음이다. 물론 그동안 나는 너무나 건강하게 잘 지내왔고 내가 먹는 음식들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 살았기에 어느 날 갑자기 고혈압이란 진단을 받고 앞으론 매일 한 알씩 약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주변에 친구들을 보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인정하는 것을 나는 유별나게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바람에 내가 먹는 음식들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음식들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혈압에 관련한 책을 사서 읽었고 지식검색이니 뭐니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다녔으며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식이요법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늘 똑같은 고혈압에 좋은 음식들만 골라먹으니 그게 또 그다지 좋은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구마가 좋다하니 고구마만 먹고 살 수는 없고, 유제품은 멀리하라하니 치즈니 뭐니 칼슘이 들어 있는 음식은 자연적으로 멀리하게 되고 그렇다고 내가 식단까지 짜서 영양 비율을 맞추어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먹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 고민스러워보긴 정말 처음이었다. 정말, 어떻게 먹고 살아야한단말인가?
고민하던 찰나 이 책을 만났다. 제목을 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불량 음식들(예를 들면, 햄버거나 감자 튀김, 아이스크림이나 나트륨 가득한 과자들)에 일침을 가하는 책처럼 보였다. 하지만 소개를 보니 그게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에 가지고 있는 편견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달 동안 내가 먹는 음식에 의문을 품었던 나로서는 솔깃한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책은 사과와 햄버거 중에 영양소를 따지자면 햄버거가 더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영양가 많은 것 순으로 말하라고 하면 사과를 먼저 얘기한단다. 나도 그랬다. 아침에 사과 한 알이면 모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햄버거에 들어 있는 나트륨이나 지방은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소화불량을 일으킨다고. 또 언젠가 제작되었던 영화에서조차도 햄버거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지 않았던가? 그래서 당연히 사과가 훨씬 영양가가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고 나서는 햄버거라고 무조건 나쁘다고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사과는 나쁘고 햄버거는 좋더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우쳐주는 것 일뿐이다. 사과가 좋다고 사과만 먹을 수는 없는 것이고 체질에 따라 사람들에게 유익하거나 해가 되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우량'이라고 알고 있는 음식들은 '좋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많이 공감한 부분은 이 부분이다. 비록 가설이고 대체로 나이가 들면 혈압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우리 몸의 메커니즘은 사람마다 체질이나 음식에 대한 반응에 따라 '저항적'이 되거나 '감응적'이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집을 예로들면 우리 아버지의 경우 불량에 속하는 '소금'과 '다시다' 신봉자이시다. 고기를 좋아하시고 튀김 종류를 좋아하신다. 짠 맛이 나지 않는 음식은 음식이 아니며 '미원'이나 '다시다'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맛이 없는 음식이다. 그럼에도 단 한번도 혈압이 높아 병원을 다닌 적이 없다. 반면에 우리 엄마는 고기도 좋아하지 않으시고 야채만 좋아라 하신다. 하지만 나이가 드시면서 혈압약을 먹게 되셨다. 이렇듯 아버지가 받아들이는 체내 메커니즘과 엄마가 받아들이는 메커니즘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금이 혈압과 관계 있다는 것에는 내 경험으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높은 혈압을 지닌 사람들이 소금을 더 많이 먹지는 않더라도 섭취한 나트륨을 체내에 붙들어두는 체질일 수도 있다는 주장'에 은근히 공감이 간다. 그것이 비록 뒷받침할 연구 결과가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사실 나로서는 굉장한 호들갑이었다. 무슨 큰 병에나 걸린 듯이 난리를 피운 것 같은데 『불량 음식』에서 주장하듯이 음식이란 '불량'이나 '우량'과 같은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던 음식에 관한 상식은 장사꾼들이 만들어낸 속임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음식을 먹을 때 '불량'이니 '우량'이니 비교하기보다는 내 몸이 원하는, 내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먹되 다만, 과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또한 나의 생각이고 잘못된 생각일 수 있지만 혈압에 좋다고 고구마만 먹고 며칠 살아보니 그렇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