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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평점 :
출근을 하니 책상 위에 이 책이 보란 듯이 당당한(!) 모습으로 놓여있었다. 표지는 물론이고 언뜻 보인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지만 정작 내 호기심은 다소 선정적인(!)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란 부제였다. 생각하기를, 여행 서적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누군가가 읽어보라고 가져다주었구나!(외국명과 사진만 들어 있으면 모든 게 여행 서적으로 보이는 한심한-.-;;) 책을 펼치니 지극히 사적인 사진들이 나오고 대충 글을 접하니 프랑스에서의 생활이야기인 듯했다. 그러다 뒤표지 안쪽의 『88만원 세대』광고를 보며 '어? 이 책 이거 뭐야? 레디앙에서 이런 책도 나와?' 의아해하며 다시 앞으로. 그리하여 눈에 확실히 들어온 제목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그래, 정치적인! 자유는 그렇다치고 정치적인! 그럼, 이 책은 뭐야?
지극히 중도의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하는 나는, 요즘 들어 친구들에게 살짝 좌파의 기질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정치를 모르고 관심도 없는 탓에 주변 분들에게 한소리 듣는 인물이다. 그러니 저자인 '목수정'이 누구인지, 그녀가 '레디앙'에서(사실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이 글을 연재했는지조차도 모를 수밖에 없다. 허나 내가 친구들에게 그런 소릴 듣는 이유는 주변 분들의 관심이 내게도 조금은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어쩌면 그 관심에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암튼.
내가 읽은 이 책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자유로운 한 영혼의 기록이라고 하고 싶다. 공연기획자로 일하다가 말아먹고(!) 프랑스로 떠난 그가 겪은 학생으로서의 유학생활과 그곳에서 만난 프랑스 예술인과의 여자로서의 사랑, 그 둘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칼리에 대한 엄마로서의 모정,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좌파라고 불리는 민주노동당의 문화담당 정책연구원으로서의 생활이 아주 적나라하게 때론 발칙하게 드러나 있다.
유학생활에 대해 훈수를 두는 선배의 말을 듣고선 그 반대로 해버리고, 한 우물을 파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떨쳐버릴 줄 아는, '비혼'이라는 아직도 조금은 생소한 단어의 사례를 보여주는가 하면, 마지막 장, 당원이면서도 민주노동당의 잘못된 관행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내세울 줄 아는 꽤 매력적인 여자의 비망록인 셈이다.
그녀의 거침없는 글발을 읽노라면 야, 정말 잘났구나! 하는 같은 여자로서의 시샘이 들면서 한없이 일탈을 꿈꾸는 그녀의 사고와 행동에 공감, 대 공감을 하게 된다. 더구나 "학창시절 '스커트자락 깨나 날리던 인물'로서 뒤늦게 자칭 연분홍 사회주의자가 되어, 좌파정당에 들어가 온 몸으로 겪은 사건들과 소감들"을 읽을 땐 그야말로 자유로운, 아나키스트적인 목수정의 면모를 볼 수 있었는데 그런 그의 행동이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웠던지. 그의 말대로 당사 안에 권위적인 독방(!)을 없애고 당직자들을 위한 북카페를 만든다면 당의 지지율이 확실히 올라갈 것이라는데 나 역시 공감한다.
우리 비록 이 나라에서 시험과 경쟁으로 인생이 정말 아름다운지 모르고 살고 있지만 이제라도 목수정처럼 자유롭게 때론 발칙하고 당당할 수 있다면 한결 사는 맛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원히 젊게 살 수 있는, 세 살짜리에게 종종 잔소리를 듣는 호사를 누리며 자유롭게! 철들지 않고 행복하게! 영원히! 그들 가족이 살기를, 더불어 나도 앞으론 철들지 않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있다. 목수정의 글을 읽으니 인생의 아름다움이 진짜로 보였다. "인생은 아름답다! La vie est belle" 그래, 인생은 아름다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