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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평점 :
보통 연재물을 읽지는 않는 편이다. 아무리 뛰어난 작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나는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 구입하여 읽는다. 그건 뭐랄까? 성격이 급해서라고 해두자. 그 다음이 궁금하여 참지를 못하는 성질머리;;; 이 작품『시계탑』역시 『풋』이라는 청소년 잡지에 연재하는 것을 보았는데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언제가는 단행본으로 나올 것이니…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다.
예전엔 단편보다는 장편을 더 좋아했는데 요즘은 단편보는 재미도 좋다. 더구나 전아리의 작품은 그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단편들을 먼저 읽어봐야했기에 두 권의 책을 두고 한참을 쳐다보다가 단편집을 먼저 읽은 후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갖고 싶은 것을 갖지 않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며 무엇이든 손에 넣는다. 물론 때로는 아랫도리가 저려올 만큼 간절히 원하지만 절대 얻지 못하는 것도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우리집 개의 희고 따뜻한 털이라든가 눈꺼풀을 덮지 않고도 잠들 수 있는 금붕어의 까만 눈알 같은 것(…) 여우의 신 포도에 관한 우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어차피 먹지 못할 것에 대해 적당한 모욕을 날려주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여유.
단편집이 각양각색의 직업군과 연령별로 한국사회의 마이너리티들을 소재로 쓴 소설들이라면 이 책의 주인공은 그들 중에 가장 그녀의 나이와 맞는 소설이라 하겠다. 배경은 역시 단편들처럼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삶들이지만 꿈을 가진 한 소녀의 이야기다. 전아리가 자신이 남자아이라면 이런 여자애를 좋아했을 거라고 할 만큼 소설 속 연이는 집나간 엄마와 무능력한 아빠를 두었지만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씩씩한 아이다.
멍청하게도 눈물이 나려고 하는 순간 재빨리 노래를 지어 부르기 시작한다. 아, 이 개 같은 눈물- 아, 이 개 같은 눈물-
많은 청소년 소설들을 보면 대부분의 작가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분들이다. 어린 작가는 도통 배출되지 않았고 좀 젊은 작가들은 또래의 삶이나 그들만의 비루하거나 꿈을 찾는 혹은 현실에 적응하느라 바쁜 나머지 뒤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그래서 그 빈 공간은 서른이 넘었거나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 채우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나이로 그 시기를 방금 지나온 파릇파릇한 대학생이 쓴 청소년의 소설은 반갑다. 지나온 시기가 짧은 만큼 그들의 심리를 제일 많이 알 것이니 말이다. 더구나 전아리가 아닌가?(난 그녀의 추종자가 되어버렸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내 열아홉의 생일에는 아버지가 포장마차 차릴 돈 중 얼마를 잃어버리고 돌아왔었다. 술 취한 아버지는 굴 껍질처럼 엎어진 채로 위잉 윙 바닷바람 드나드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는 조용히 옥상으로 나와, 내 짧은 열아홉 인생을 샌드백처럼 세웠다. 그리고 왜 이렇게 부족한 게 많으냐고 소리치며 어퍼컷을 날렸다. 이어 훅, 잽까지. 그러자 열아홉 인생은 시무룩하게 입을 열었다. ‘내 잘못이 아니잖아.’ 나는 녀석이 가엾어졌다. 그래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선 채로 생일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행에게는 틈을 보여선 안 된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면역체계가 생기기도 전에 녀석들은 또다시 떼를 지어 덤벼든다. 정 강한 모습으로 견딜 수 없을 때는 도망이라도 가야 한다. 불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하는 나약한 인간을 가장 좋아하니까. 그날 나는 불행을 겁줄 만한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버지에게 꿀물을 한 잔 타주었다.
11살의 연이가 19살이 될 때까지 변화는 그다지 없다. 멋진 키다리아저씨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무능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유능해지는 것도 아니다. 집 나간 엄마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연이가 우등생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느 누구나처럼 지극히 평범하다. 삶의 변화는 그 평범함만큼이나 지루하다. 하지만 이 ‘영악하면서도 나약한 십대’ 소녀 연이는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잘 자랄 것 같아 걱정이 안 된다. 다만 세상에 혼자 내 던져진다 하더라도 영악하면서도 착하게 살게 되길 바랄 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연이는.
갖고 싶은 것을 갖지 않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열아홉 살의 끄트머리에 선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러나 굳이 원하는 것들을 자르고 구겨서 나의 주머니에 맞춰 우겨넣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갖는 것과 소유한다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