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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왕자
안드레아스 슈타인회펠 지음, 조국현 옮김 / 토마토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 인생 여행길의 중간에 나는 어두운 숲 속에서 홀로 서 있었네.
올바른 길을 잃었기 때문이라네.
- p183 단테, 신곡의 인페르노
처음 이 책을 펼치고 읽었을 때는 그저 그런 어린이들을 위한 판타지 소설인 줄 알았다. 대충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랑 군데군데 펼쳤을 때 보이는 이야기들이 딱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설렁설렁 읽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몰입을 하며 읽다가 그때서야 이 책의 내용이 그저 그런 판타지 소설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막스의 마음을 이해하고 막스의 생각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읽다보니 상처받아 어쩔 줄 몰라하는 막스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은 초등 고학년용 소설이지만 두께와 내용면에선 반드시 어른들이 읽어줘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는다면 흥미는 있으되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어른과 아이가 같이 읽고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이전에 막스만큼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었다. <한밤중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에서의 크리스토퍼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 나오는 오스카가 그들이다. 이 아이들의 공통점은 아픔이 있지만 나름대로 그 아픔을 스스로 극복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크리스토퍼나 오스카가 또 막스가 그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만큼 스스로 그 아픔을 이겨내는 그 아이들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기계왕자>는 판타지 소설이다. 현실과 상상속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지하철을 좋아하는 막스는 우연히 만난 외팔이 남자에게서 황금빛 승차권을 얻는다. 그 승차권은 어디든 갈 수 있으며 어디든 내릴 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계왕자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가다가 막스는 버랜이라는 처음 듣는 역을 지나치게 되고 그 역을 찾기 위해 다시 찾아간 지하철 역에서 자신과 같은 승차권을 가진 타니타라는 소녀를 만난다. 타니타의 도움으로 그들이 내린 역은 버랜이 아니라 '네버랜드'였다. 하지만 황금빛 승차권을 가진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대피소가 있다. 타니타는 자신만의 대피소로 사라지고 그곳에서 막스는 '눈물의 호수'에 도착하고 슬픔에 빠진 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는 막스에게 그곳에서 자기와 같이 눈물을 흘리며 살기를 원하지만 막스는 도망치며 눈을 감는다. 막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엘피매점'이란 곳에 있었으며 그곳의 주인인 엘피는 막스가 황금빛 승차권을 가진 아이임을 알고 막스에게 <기계왕자>의 시험을 이겨내면 막스가 가진 두려움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다고 이야기 해준다. 이제 막스는 자신도 모르게 배낭안에 들어 있는 주먹만 한 크기의 얼음 덩어리, 눈물이 담긴 은색 호리병, 그리고 청회색의 비둘기 깃털을 가지고 슬픔에 빠진 자신의 삶을 구하기 위해 다시 거꾸로 달리는 지하철을 타고 대피소로 떠난다.
이 책의 화자는 '나'다. '나'가 이야기 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막스가 마침내 모험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을 떨쳐내고 자신의 심장을 되찾아 오자 타니타가 막스의 모험이야기를 동화작가에게 이야기 해주어 책으로 내라고 권유한다. 그렇게 찾아간 작가가 바로 '나'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나'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끝에 가서야 그 작가의 정체가 나타나는데 그제야 아하!하고 앞부분의 퍼즐처럼 나오는 작가에 대한 작은 힌트들에 고개가 끄덕거려지고 웃음이 난다. 그는 어쩌다가...쯔쯧~! ^^
<기계왕자>는 어린이용 책답지 않게 탄탄한 구성과 긴장감 넘치는 모험으로 몰입하는 순간 절대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또 <기계왕자>의 으스스한 목소리는 눈앞에 그 장면이 나타나듯 두렵게 만들며 반전의 반전을 보여주는 친구 얀과의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하다.
현실과 환상이 오묘하게 뒤섞이며 긴장감을 더해주며 작가가 판타지라는 흥미로운 장르를 이용하여 부모때문에 슬프고,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도 속수무책인 아이에게 마음속의 두려움을 스스로 없애지 못하면 고통 속에 빠져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자신의 성격과는 다른 성격의 아이를 마음속에 두고 그 아이에게 의존하며 평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며, 매일 악몽 속에 빠지거나 슬픔 속에 빠져 하염 없이 눈물만 흘리는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저절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란 걸 보여준다. 그러니 스스로 용기를 내어 두려움과 슬픔을 이겨내라고 자극한다. 결국 막스는 용기를 내고 기계왕자의 시험에 뛰어들었으며 자신의 삶을 바꾸게 된다.
기계왕자는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심장 없이 살고 있어. 네가 네 심장을 되찾아 오지 못하면 너도 그들처럼 살게 될 거야"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심장을 되찾지 못하여 두려움과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부모에게 받은 아픔, 친구에게 받은 상처 그 모든 것들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막스는 이야기 한다. 용기를 내라고, 마음속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그 순간 세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 수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