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야기만 나오면 맨날 하는 소리, 시를 잘 모르지만….
시를 잘 모를 때는 시인들에게도 관심이 없었기에 시인이나 시 관련 책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데 시를 읽기 시작하고 좋아하다 보니 이젠, 시인도, 시도, 시 관련 책들도 마구 눈에 뛴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에 한 권이었다.

신간코너에서 본 순간, 좋아하는 시인들이 마구 눈에 들어왔다. 보관함에 넣었다.
그러고선 잊고 있었다.
워낙 많은 책들이 '날 좀 봐 달라'며 눈길을 던지는 통에 눈에 띄지 않으면 맨날 잊어버리는 것을.
어제 독서대를 하나 선물받았다.
선물 좋아하는 나, 뜻밖의 선물에 좋아서 신나게 술을 마셨는데
집에 와서 보니 책이 한 권 들어 있다. 어어, 이것은.
책이 들어 있다고는 하지 않아 선물 준 이가 잊고 안 가져갔구나 싶어
물어보니 그것도 선물이에요. 한다. 순간, 우왓! 이렇게 신나는 일이!
"돌아보니 그런 시절이 다시 오려나 싶다. 지금은 갇혀 있는 계절.
초기에는 창살 너머 세상을 보려고 끊임없이 뒤꿈치를 들었지만, 이제 그마저 포기해버렸다.
갇혀 있다 보니, 마음도 갇힌다. 머릿속이 깜깜하다.
이 캄캄한 기억의 지층 위로 그때 만났던 시와 시인들이 음표처럼 떠오른다.
사실 시인들을 만나는 것보다
그들의 시를 읽는 일이 더 느꺼웠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시의 공간에서 시인을 만난 후 돌아와
다시 시를 읽을 때, 숨이 차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자주 전율이 일었다." _펴내는 말
조용호 작가가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
그러니까, 시인들과 1박 2일동안 그들 시의 고향으로 떠나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시인들이니까 당연히 시가 주제였겠지만 그 시가 나오게 된 동기일 수도 있는
흥미롭고 진실되며 가슴 시린 이야기들.

맨 먼저 읽은 것은 안현미 시인의 <아픈 계절, 아픈 시>
오후의 나른함을 깨보고자 펼쳐 읽다가 코가 빨개져서 혼났다.
"어느 바위냐고 물었더니, 가슴 속에 박혀 있던 바위였다고 엄마는 답했다.
기분이 좋으면 그 바위는 딸의 안부를 긍정적으로 전해주었고,
우울하면 아무리 그 바위를 탕탕 쳐도 슬픈 소식만 돌아왔다고 그네는 말했다."
웃음소리, '활엽수 같은 웃음소리' 아니 '오토바이 엔진 소리' 처럼 들리는 그 웃음 뒤에 스민 시인의 아픔이 전해왔다고 말하면 좀 거짓말 같겠지.
다음에 만나면 꼭, 한번 안아봐야지.

오래 전에 알았지만 그의 시를 읽기 시작한 것은 겨우 몇 년 전.
할머니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 장석남 시인의 덕적도.
"그러니 태어나면서부터 익숙해진 게 울음소리……
할머니가 살구나무 밑에서 대성통곡을 한 다음 막내 손자인 나랑 상추쌈을 자셔.
미치는 거야. 꽃봉오리가 환희가 아니라 할머니가 울어서 피는 거여.
울어도 엉엉 우는 게 아니라 노인네가 육자배기조로 가락을 넣어서 하도 울어대니……"

시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싶은 이정록 시인의 홍성, 황새울.
이미 그의 시가 '어머니와 아들의 합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합작'에 대해 얘길 들을 때는
재미있어서 깔깔거렸지만, 한 감수성하는 나 인지라
재미있는 시보다는 감성적인 시가
더 좋았기에 읽을 생각을 안 했더랬다.
그리고 어느 자리에서 시인을 처음 봤을 때도 별 감흥 없다가
우연히 만난 시를 읽고 어랏, 생기신 것(!) 하고 완전 다르잖아!(^^) 했다나.
"워낙 그의 재담이 승한 편이어서,
한 가지 이야기에도 길게 흠뻑 빠져버리게 마련이다.
도대체 그에게서 슬픔의 정서는 얼굴만 맞대고 있으면 느껴지지 않는 편이어서
짐짓 어깃장을 놓았더니 그는 자신의 '고난의 깃발'을 가까운 사람들은 안다고 했다."
그치, 그에게 '고난의 깃발'이 없으면 내가 좋아할 만한 시들, 감수성이 나올 수가 없지^^;

시를 이야기하면서 어찌 이성복 시인을 빼놓을 수 있을까.
조용호 작가의 말처럼 그는 생존 시인 중에 유일하게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으로 뽑히고도 남을 것.
짧은 시는 짧은 대로, 조금 이해하기 힘든 시들은 그 시 나름대로 공감을 준다.
"그는 스스로 절대 자신이 이루어놓은 문학에 항복하지 못하는 불행한 존재였다.
한 번도 행복해질 수 없는, 그에게 문학의 세례란 저주받은 행복인 셈이다.
그는 말미에 시보다는 산이, 도저한 에세이에 서사를 잠시 얹는 그런 문장에 최근 빠져들었노라고 고백했다.
그가 겨울방에서 보여준 미발표 서사를 얼핏 보니 그의 자의식이 선명하게 잡힌다."
시 좋아하는 독자치고 역시 이성복 시인을 제외할 독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강정의 시는 내겐 어렵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말았다.
최근에 나온 시집을 샀다. 역시 다르지 않지만 이전의 것들보다는 그래도 이해가 된다, 싶다.
조용호 작가의 글을 읽고 나니 하! 그의 시가 마구 이해가 된다. 신기할세..
'미래파' 시인들의 원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나. 그럼, 그렇지. 독한 시, 난해함.
"그는 혼자 있을 때 지금도 자주 운다고 했다.
가끔씩 울어주어야 무언가 해갈이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울 때가 되면 음악 하나 듣고도, 혹은 집안일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그런 느낌을 조장한다고 했다.
뭔가 명징하게 보이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슬퍼진다고 했다.
말미에 우리는 결국 노래방에 갔고 그의 가창은 매력적이었다.
로커들이 그렇듯이 그의 목소리도 허스키한 편이었는데
이빨 사이로 바람이 새는 듯한
그만의 성음은 슬픔을 녹여내기에 적합했다."
'독한 서정'이라는 말에 그는 '모든 시는 다 서정시' 라고 했다.
다시, 도전이다. 강정 시인의 시.

김선우 시인과 이야길 하면 마음이 밝아지는 걸 느낀다.
묘한 매력을 가진 시인이다. 뭐든 자꾸만 수다를 떨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여성의 신체 기관이 구체적인 이름으로 직접 등장해도 전혀 외설스럽지 않다(...)
광장보다는 밀실에서 소곤거리는 단어들을 자연을 닮은 보편적인 풍경으로,
건강한 일상으로 흡수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네는 이러한 시풍과 관련해
"나는 시인이 되려고 제도권에서 공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시적 전략이나 담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며 많은 시인들과 출발부터 달라서
90년대 담론이나 페미니스트들의 몸 해방론과도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좋아하는 시인들이 많다.
한 명씩 읽어줄 테다. 그리고 몰랐던 시인들, 그들의 시도 하나씩 찾아 읽을 테다.
"최초의 길과 맨 나중의 길은 아마 같을 것이다.
생이 죽음에 닿아 다른 길로 연결되듯이,
온기 도는 길일 것이고 오솔길일 것이고
때로 통증과 닮은 길일 것이다.
시 속에나 희미한 화석처럼 남아 있는 그 길을
조용호 형이 마음의 지팡이로 헤쳐 보여주니
뜨겁고 슬픈 맨살이 드러난다.
시의 맨살 속으로 난 길!
터벅터벅 가본다,
'나'라는 인간의 맨 처음으로 가보는 것이다," _장석남(표4)
시인들의 '맨 처음'을 볼 수 있는 책, 그런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