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기필코 사둔 책만 읽으리라, 새해 들어 다짐을 했지만 신간을 보면 그 유혹을 뿌리치질 못한다. 그래도 잘 참고 있는데, 김경주의 산문집에 관해 알라딘에서 올려놓은 밑줄에 그만, 휙~ 넘어가버렸다. 이런 글,

 

이를테면 내 귓불을 자주 만져주는 사람에게 가서 어려운 사랑을 고백한 적도 있다. 사람은 상대가 좋아지지 않으면 절대로 그 사람의 귀를 만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오랫동안 실험한 영역이다. 가만히 귀를 만져주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좋은 냄새가 날 것이라고. 조용히 타인의 귓불을 만져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머지않아 서로의 귀에서 나는 연한 냄새를 알아보는 미물의 관계가 되어갈 공산이 크다. 서로의 작은 귓불에 동감의 본질을 표현하게 된다. 서로 귓불을 만지는 사이는 금방 연인을 넘어선다.

(…)
누군가 내 귓불을 처음으로 따뜻하게 만져주었을 때, 나는 딸꾹질을 했다. 이제 그만 (그 사람을 위해서) 울음을 멈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_〈귓불〉

 

제목이 《밀어》이고 몸에 관한 시인의 사유라고, 책 나오기 며칠 전에 어느 자리에선가 무심코 들었기에(또 아내인 사진 작가의 멋진 사진들에 관한 것도) 은근히 기다리기는 했으나 아쉽게도 김경주의 시집을 읽은 게 없어서(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시라는 이유다)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막상 표지를 보고 나니 궁금해지고 책소개를 보다가 저 밑줄에 넘어간 것. 이유? 귓불 만지는 것, 좋아하거든^^;;

 

 

 

그러고 보니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 배수아의 몸 이야기가 있다.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워낙 오래된 책이니 한번쯤 훑어보긴 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 걸보니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이란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읽어보면 흥미가 당길 수도 있는 법. 책 소개를 보니 진짜, 궁금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두 권의 책을 같이 읽어보면 훨씬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초기의 배수아는 좀 덜 난해(지금도 나쁘진 않지만 좀 잘 안 읽힌단 말이지. 평론가도 말하지 않던가 '한국 문단에서 가장 독보적인' 글쓰기를 하는 작가라고)했을 테니. 암튼, 이런 글 흥미롭다.

 

몸이란 굉장히 고독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성적인 것을 의미하고 현대의 온갖 섹스 어필한 광고의 이미지를 상징하고 보편적인 미의 기준을 제시하고 때로는 에너지가 넘치고 온갖 보여지는 것들만으로 과장된 오르가슴을 강요하고 있는 이 시대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자기 자신만의 몸을 안아 보았을 때, 그때 어느 순간 불현듯 연민을 느끼게 된다. 몸이란 절대로 공유할 수 없는 극단으로, 개인적인 모든 감각의 절정인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하나 지닌 채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바로 그런 느낌이다.

 

개인적인 모든 감각의 절정! 배수아는 좀 독특하고 뭔가 모르게 신비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좀 그렇다. 그래서 그녀가 몸에 관한 글을 썼다면 꽤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십여 년 전엔 몰랐을, 그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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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12-01-1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더수님도 잘 쓰실거 같아용;;ㅎ

readersu 2012-01-16 09:47   좋아요 0 | URL
훔..리뷰를? 몸에 관한 글을? 흐흐

차트랑 2012-01-1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기필코 사둔 책만 읽으리라,
새해 들어 다짐을 했지만 신간을 보면 그 유혹을 뿌리치질 못한다."

이 말씀 완전 공감 ㅠ.ㅠ

readersu 2012-01-16 09:48   좋아요 0 | URL
이미 작심삼일이 되었답니다.
또 한 권 들어온 책 땜에 어쩌나..고민하고 있어요.
이러다가 진짜..책땜에 파산?^^;;
 

 

 

《어쿠스틱 라이프 2》보다 더 기다렸던 책인데 이번엔 조금 실망. 1권보다 재미가 덜했다. 그건 아마도 이제 다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아님 1권에 비해 우리나라 목욕 문화하고 조금 차이가 나서일까. 한번 올 때마다 스티커를 붙여주는 것(우리나라에도 있나;;), 악어가 사는 온천, 좀 우스꽝스러웟던 남근 숭배. 차라리 한묶음으로 나와서 한꺼번에 봤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어쿠스틱 라이프 2》승!

 

 

 

 

이 만화, 띠지에 나온 홍보 문구를 보니 어떤 내용일지 알겠더라는. 예전엔 이런 순정만화 대따 좋아했는데 단행본으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계속 나오는 연재이다 보니 흥미가 떨어지는 것 같다. 역시 만화는 한꺼번에 봐야한다는. 그게 아니면 역시 한 권으로 끝나버리는 만화가 좋겠다는 생각. 게이와 레즈비언의 위장 결혼. 영화로도 만드는 중이라고 하는데 그 세계를 잘 모르니 공감이 썩 되지 않는다. 이 만화 속 대사 중 하나, "참 이상해. 왜 마음에 드는 건 다 임자가 있을까?" 남녀커플이나 남남커플이나 다 똑같은 마음인가봐. 사랑에 있어서는.

 

 

 

 

책을 읽고 가장 놀란 것은 마지막에 나온 주인공 요조의 나이였다. 인간에 대한 공포때문에 인간 실격자가 되고 마는 그의 인생을 봤을 때는 적어도 마흔은 넘을 거라 상상했었다. 한데, 그는 겨우…. 여자라서 그런 걸까, 그와는 성격도,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서일까. 공감하는 문장 많고, 어느 부분에서는 나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음에도 요조를 이해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한데 이 책 읽고 다자이 오사무가 좋아지고 말았다(-.-) 연구 대상이다. 소설 속 주인공, 요조. 어쩌면 다자이 오사무, 그! 

 

 

 

 

온다 리쿠의 새 책이었다. 장편인 줄 알고 봤다. 작가를 꿈꾸는 첫 이야기는 무척이나 공감이 갔다. 작가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책 이야기가 나와서 공감을 많이 한 것 같다. 책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음악도 싫어하진 않는 나로서는 마치 따로 노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헤엄치는 뱀'이나 낡은 영화관에서 함께 본 이탈리아 영화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이 그들 셋과 연결이 되어 있는 세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치 내게도 그런 비슷한 추억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아무런 사건도 없고, 그저 회상일 뿐인 글이지만 어쩐지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독특하다.

 

과연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떻게 되었을까? 마지막 하코자키만이 평범한 금융인이었다가 자신의 '취미'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 감독의 길을 가는 걸로 나온다. 그 길이 과연 평탄할지는 모르지만도. 학교 다닐 때 꿈꾸었던 길로 한발자국 다가간. 그런 걸 보면 아마도 다른 둘의 인생도 비슷하게 풀리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 첫 이야기는 온다 리쿠의 경험이 들어간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하코자키의 아내가 혹시;)

 

 

덧,

아, 제목으로 넣은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난 거군요"는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의 세 번째 이야기, 그러니까 하코자키가 나오는 글에서 리즈 테일러가 나왔던 영화(세 번째 이야기 제목이기도 한) [젊은이의 양지]에서 리즈 테일러가 살인자로 고발된 몽고메리 클리프트에게 한 말이란다.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난 거군요" 하코자키에게 영화란 그런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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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로이드 데이 Polaroid Day : The Present
플레이그라운드 엮음 / 플레이그라운드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작가들과의 만남에서 작가와 함께 찍은 사진들.

전경린 작가, 신경숙 작가, 박범신 작가, 김중혁 작가, 

생선 김동영 작가, 그리고 주노 디아스

이 모든 사진들이 친구의 폴라로이드 덕분

 

 

우선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폴라로이드에 대한 나의 단상부터.

아마 오래오래 전에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들에 매력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잊고 있었을 거다.

필름도 비쌌던 것 같고, 다른 카메라처럼 여러 장 인화할 수도 없고,

바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다가 작가와 행사에 친구가 폴라로이드를 들고와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폴라로이드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세상에 하나뿐인 사진에 매력을 느낀 것.

그 절정은 그 친구가 생일날 찍어준 사진에 있었다.

그날의 행복했던, 그 순간의 모습들이 그 자리에서 인화되어 나왔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카메라 속에 저장된 사진을 보는 느낌하고는 또 달랐다.

친구랑 같이 찍었지만 나눠가질 수 없는 아쉬움과 함께 그 순간,

그날의 추억을 오롯이 전해받은 행복함이랄까.

폴라로이드의 매력은 그런 거다.

 

 


 

"카메라를 꺼내들지 않고 지나쳤더라면

기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그 시간들.

이제는 버릴 수 없는, 지워질 수 없는

시간의 박제." _김지현


사진집이다. 폴라로이드 사진만 모았다. 28인의 작가가 찍은 사진들.

이전에도 폴라로이드데이라고 나왔다. 이번이 세 번째란다.

지진희라는 배우부터 시작해 사진작가, 아트디렉터, 작곡가, 타이포그라퍼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작가들이 일상을 찍고, 추억을 저장했으며, 따뜻한 마음을 담았다.

 

 


 

이 책의 수익금은 보육원 아이들의 카메라 보급을 위한 기부로 쓰인다.

폴라로이드 사진만을 모은 <폴라로이드데이>의 세 번째 시리즈로

주제가 '기부프로젝트 선물'이란다.

별다른 글도 없다. 오로지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만이 들어 있다.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디카나 핸폰 속에 들어 있던 사진을 보는 기분하곤 다른 느낌.

내게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찾아보게 만들고 사진을 보며 몽상에 빠지게 한다.

 

 


 

 

빛바랜 듯한 사진 속에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 낯설은 듯 익숙한 풍경들.

보통의 사진과 별다르지 않음에도 이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폴라로이드로 풍경을, 일상을 한번 찍어봤으면 좋겠다, 는 마음이 든다.

아마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사진이기 때문이 아닐까? 보정도 뽀샵도 할 수 없는

눈에 보이는 그 모습, 그대로, 순간을 포착한 까닭.

 

 


 

카메라에 욕심이 없었는데, 폴라로이드가 갖고 싶어지고 말았다.

나도 이들 작가처럼 사진을 찍어

작은 노트에 폴라로이드만의 사진첩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망, 생겼다.


"그 사람을 생각하며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든다.

마음을 담아 셔터를 누르고, 그 사진을 전해주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폴라로이드는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선물이다," _ 송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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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2-01-10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가 우리 큰 녀석의 작년 생일 선물로 즉석카메라를 선물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제가 잊어버리고 있다가, 아이 생일이 닥쳐서야 준비를 하느라 애먹었습니다.
생각보다 카메라도 무지 비싸고, 필름도 역시 무지 비싸더군요!

사진 한장 찍을 때마다 필름 값을 생각하면 손이 떨려서 못 찍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이가 디지털카메라처럼 마구 찍지는 않더라구요.

readersu 2012-01-12 10:58   좋아요 0 | URL
똑똑한 녀석! 뭘 알긴 아는군요^^
카메라야 두고두고 쓰는 것이니까, 상관 없는데
역시 필름값이 문제죠? 추억도 좋고 다 좋긴 한데 말입니다^^
 

 

 

시 이야기만 나오면 맨날 하는 소리, 시를 잘 모르지만….

시를 잘 모를 때는 시인들에게도 관심이 없었기에 시인이나 시 관련 책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데 시를 읽기 시작하고 좋아하다 보니 이젠, 시인도, 시도, 시 관련 책들도 마구 눈에 뛴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에 한 권이었다.

 

신간코너에서 본 순간, 좋아하는 시인들이 마구 눈에 들어왔다. 보관함에 넣었다.

그러고선 잊고 있었다.

워낙 많은 책들이 '날 좀 봐 달라'며 눈길을 던지는 통에 눈에 띄지 않으면 맨날 잊어버리는 것을.

 

어제 독서대를 하나 선물받았다.

선물 좋아하는 나, 뜻밖의 선물에 좋아서 신나게 술을 마셨는데

집에 와서 보니 책이 한 권 들어 있다. 어어, 이것은.

책이 들어 있다고는 하지 않아 선물 준 이가 잊고 안 가져갔구나 싶어

물어보니 그것도 선물이에요. 한다. 순간, 우왓! 이렇게 신나는 일이!

 

"돌아보니 그런 시절이 다시 오려나 싶다. 지금은 갇혀 있는 계절.

초기에는 창살 너머 세상을 보려고 끊임없이 뒤꿈치를 들었지만, 이제 그마저 포기해버렸다.

갇혀 있다 보니, 마음도 갇힌다. 머릿속이 깜깜하다.

이 캄캄한 기억의 지층 위로 그때 만났던 시와 시인들이 음표처럼 떠오른다.

사실 시인들을 만나는 것보다

그들의 시를 읽는 일이 더 느꺼웠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시의 공간에서 시인을 만난 후 돌아와

다시 시를 읽을 때, 숨이 차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자주 전율이 일었다." _펴내는 말

 

조용호 작가가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

그러니까, 시인들과 1박 2일동안 그들 시의 고향으로 떠나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시인들이니까 당연히 시가 주제였겠지만 그 시가 나오게 된 동기일 수도 있는

흥미롭고 진실되며 가슴 시린 이야기들.

 

 

 

맨 먼저 읽은 것은 안현미 시인의 <아픈 계절, 아픈 시>

 

오후의 나른함을 깨보고자 펼쳐 읽다가 코가 빨개져서 혼났다.

 

"어느 바위냐고 물었더니, 가슴 속에 박혀 있던 바위였다고 엄마는 답했다.

기분이 좋으면 그 바위는 딸의 안부를 긍정적으로 전해주었고,

우울하면 아무리 그 바위를 탕탕 쳐도 슬픈 소식만 돌아왔다고 그네는 말했다."

 

웃음소리, '활엽수 같은 웃음소리' 아니 '오토바이 엔진 소리' 처럼 들리는 그 웃음 뒤에 스민 시인의 아픔이 전해왔다고 말하면 좀 거짓말 같겠지.

다음에 만나면 꼭, 한번 안아봐야지.

 

 

 

 

 

오래 전에 알았지만 그의 시를 읽기 시작한 것은 겨우 몇 년 전.

 

할머니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 장석남 시인의 덕적도.

 

"그러니 태어나면서부터 익숙해진 게 울음소리……

할머니가 살구나무 밑에서 대성통곡을 한 다음 막내 손자인 나랑 상추쌈을 자셔.

미치는 거야. 꽃봉오리가 환희가 아니라 할머니가 울어서 피는 거여.

울어도 엉엉 우는 게 아니라 노인네가 육자배기조로 가락을 넣어서 하도 울어대니……"

 

 

 

 

시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나 싶은 이정록 시인의 홍성, 황새울.

이미 그의 시가 '어머니와 아들의 합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합작'에 대해 얘길 들을 때는

 

재미있어서 깔깔거렸지만, 한 감수성하는 나 인지라

재미있는 시보다는 감성적인 시가

더 좋았기에 읽을 생각을 안 했더랬다.

그리고 어느 자리에서 시인을 처음 봤을 때도 별 감흥 없다가

우연히 만난 시를 읽고 어랏, 생기신 것(!) 하고 완전 다르잖아!(^^) 했다나.

 

"워낙 그의 재담이 승한 편이어서,

한 가지 이야기에도 길게 흠뻑 빠져버리게 마련이다.

도대체 그에게서 슬픔의 정서는 얼굴만 맞대고 있으면 느껴지지 않는 편이어서

짐짓 어깃장을 놓았더니 그는 자신의 '고난의 깃발'을 가까운 사람들은 안다고 했다."

 

그치, 그에게 '고난의 깃발'이 없으면 내가 좋아할 만한 시들, 감수성이 나올 수가 없지^^;

 

 

 

 

 

시를 이야기하면서 어찌 이성복 시인을 빼놓을 수 있을까.

 

조용호 작가의 말처럼 그는 생존 시인 중에 유일하게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으로 뽑히고도 남을 것.

짧은 시는 짧은 대로, 조금 이해하기 힘든 시들은 그 시 나름대로 공감을 준다.


"그는 스스로 절대 자신이 이루어놓은 문학에 항복하지 못하는 불행한 존재였다.

한 번도 행복해질 수 없는, 그에게 문학의 세례란 저주받은 행복인 셈이다.

그는 말미에 시보다는 산이, 도저한 에세이에 서사를 잠시 얹는 그런 문장에 최근 빠져들었노라고 고백했다.

그가 겨울방에서 보여준 미발표 서사를 얼핏 보니 그의 자의식이 선명하게 잡힌다."

 

시 좋아하는 독자치고 역시 이성복 시인을 제외할 독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강정의 시는 내겐 어렵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말았다.

최근에 나온 시집을 샀다. 역시 다르지 않지만 이전의 것들보다는 그래도 이해가 된다, 싶다.

조용호 작가의 글을 읽고 나니 하! 그의 시가 마구 이해가 된다. 신기할세..

'미래파' 시인들의 원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나. 그럼, 그렇지. 독한 시, 난해함.


"그는 혼자 있을 때 지금도 자주 운다고 했다.

가끔씩 울어주어야 무언가 해갈이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울 때가 되면 음악 하나 듣고도, 혹은 집안일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그런 느낌을 조장한다고 했다.

뭔가 명징하게 보이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슬퍼진다고 했다.

말미에 우리는 결국 노래방에 갔고 그의 가창은 매력적이었다.

로커들이 그렇듯이 그의 목소리도 허스키한 편이었는데

이빨 사이로 바람이 새는 듯한

그만의 성음은 슬픔을 녹여내기에 적합했다."


'독한 서정'이라는 말에 그는 '모든 시는 다 서정시' 라고 했다.

다시, 도전이다. 강정 시인의 시.

 

 

 

 

김선우 시인과 이야길 하면 마음이 밝아지는 걸 느낀다.

묘한 매력을 가진 시인이다. 뭐든 자꾸만 수다를 떨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여성의 신체 기관이 구체적인 이름으로 직접 등장해도 전혀 외설스럽지 않다(...)

광장보다는 밀실에서 소곤거리는 단어들을 자연을 닮은 보편적인 풍경으로,

건강한 일상으로 흡수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네는 이러한 시풍과 관련해

"나는 시인이 되려고 제도권에서 공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시적 전략이나 담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며 많은 시인들과 출발부터 달라서 

90년대 담론이나 페미니스트들의 몸 해방론과도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좋아하는 시인들이 많다.

한 명씩 읽어줄 테다. 그리고 몰랐던 시인들, 그들의 시도 하나씩 찾아 읽을 테다.


"최초의 길과 맨 나중의 길은 아마 같을 것이다.

생이 죽음에 닿아 다른 길로 연결되듯이,

온기 도는 길일 것이고 오솔길일 것이고

때로 통증과 닮은 길일 것이다.

시 속에나 희미한 화석처럼 남아 있는 그 길을

조용호 형이 마음의 지팡이로 헤쳐 보여주니

뜨겁고 슬픈 맨살이 드러난다.

시의 맨살 속으로 난 길!

터벅터벅 가본다,

'나'라는 인간의 맨 처음으로 가보는 것이다," _장석남(표4)


시인들의 '맨 처음'을 볼 수 있는 책,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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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1-0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좋아하시게 되었나 봅니다.
시 맛을 알게되면 문학의 깊이를 아는 것이라는데.
부럽습니다. 전 아직도 잡스러운 것만 좋으니.

readersu 2012-01-06 19:27   좋아요 0 | URL
문학의 깊이는 잘 모르겠고^^;;
시가 마음으로 들어오네요. 자꾸만..그래서 읽게 만듭니다.
느끼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고 자꾸 떠올리게 만들고..
시인들이 부러워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그런 글을 쓰니까요.
스텔라 님도 시에게 마음을 열어줘보시길요^^
 
어쿠스틱 라이프 2 어쿠스틱 라이프 2
난다 글 그림 / 애니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남편 사용에 능숙한 결혼 4년차' 난다 여사의 두 번째 책. 모태솔로들에게 염장성 강한 만화를 그렸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더 인기가 좋은 만화. 1권에 이어 2권도 읽으면서 노처자인 나는 왜 그케 키득거렸는지 몰라. 공감가는 몇 가지 중 하나, 지하철 차창으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슬퍼하던 난다 여사! 그런 경험이 있었다. 나도.  

 

이십대 무렵, 긴 생머리를 유지하고 있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이십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어찌나 초라하게 보이던지. 그 길로 놀라서 미용실에 가 숏컷을 치고 말았다는. 지금 생각하면 아뉘, 뽀송뽀송 이십대가 초라해보이면 얼마나 초라해보인다고 그 난리였을까, 싶었는데... 난다 여사 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앞으로는 차창에 비친 모습에 속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사실 지금도 가끔 보는데, 이십대나 지금이나 그 얼굴이 그 얼굴. 거울이 아니니 주름도 안 보이고.

 

1권에서 영수증에 그림 사인하는 걸 즐겨해서 나로 하여금 한번 시도하고 싶겠끔 만들었던 한군, 2권에서는 티비 광고 보며 토다는 행동, 완전 귀엽다. 난다 여사의 말처럼 남자들은 귀엽다는 말을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귀여운 걸 이기는 건 세상에 없다." 나도 혼자 티비 볼 때 한번 써먹어봐야겠어(좀 서글플까? 누군가 들어줘야 재미있는 걸까? 암튼).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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