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성석제 작가의 책을 읽다가 간만에 듣는 구수한 사투리(비하된 말이라지만 문맥상 그냥 쓰기로 함)에 호기심이 동하여 사투리 가득한 소설을 찾아봤다. 나름대로 한국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었는지 기억나는 책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찾아낸 두 작가.
한창훈 작가는, 작가가 된 동기 중에 하나가 그가 살았던 변방의 언어와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라고 했다. 그 바람처럼 그는 모든 작품에 고향의 언어와 모습을 담았다. 이시백 작가의 작품들도 그렇다. 그의 소설엔 충청도 언어가 구수하다. 사투리라고 하면 전라도나 경상도만 생각하다가 충청도 사투리 물씬 나는 작품을 읽으니 그 맛이 장난 아니다. 또 두 작가가 보여주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찌나 정겨운지. 그게 사투리가 아닌 '표준말'이라는 글로 쓰였다면 그 맛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 전에 두 작가의 작품을 비슷한 시기에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여기가 좋다』와 『누가 말을 죽였을까』, 두 작가에겐 죄송하지만 등단한지 꽤 오래된 작가들임에도 작품을 읽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읽어온 한국 작가들의 책하곤 좀 달랐다고나 할까. 마치 드라마를 보듯, 술술 읽었다. 사투리가 들어가다 보니 대화체가 많았지만 읽는 재미가 있었다.
두 작가는 공통점이 많다. 사투리가 들어가는 고향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의 일상이 그려지고 그 일상에서 묻어나오는 웃음이 있었다. 또 굳이 하나 더 넣자면, 두 작가를 모르는 독자들이 많다는 사실^^; 한데 두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면 머릿속에 한창훈과 이시백이라는 이름이 오래오래 남는다는 것도 공통점이랄까.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변방, 시골에 관한 작품을 쓰려는 생각 역시 닮았다.
충청도,
이시백 작가는 산문집 『시골은 즐겁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보릿고개에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식모, 공원, 버스안내양으로 도시의 혹독한 냉대 속에서도 그 안에 머물러 뿌리내리기를 자청하였습니다. 이제 그들도 어느덧 특별한 도시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시골은 비어졌습니다. 노인과 개들만 지키고 있다는 시골에 요즈음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우선은 마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도시의 노래방, 카페, 모텔을 가지고 들어온다면, 그것은 시골을 비우는 게 아니라 아예 뿌리째 지워 버리는 일입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고향과 이웃을 지키기면서도 시골을 건강하게 되찾는 일, 그것은 무엇보다 김치냉장고보다 옹달샘에서, 스카이라운지보다 노을진 들판에서, 놀이동산보다 개울의 반디에서 즐거움을 돌려받는 일입니다. 서투르지만, 저는 이 책에서 도시가 부추긴 소비주의로도 채워내지 못한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날로 어려워져가는 시골에서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가 들려준 오암리 이야기 한 토막
한 손에 손전등을 들고, 그는 면사무소 앞으로 나갔다. 서류 조각을 들고 있던 대장이 - 전파사 최 사장 - 그를 보고 반색을 한다.
"벌써 야달 시를 훌쩍 넘겼는디, 워째 소식이 감감이래."
"긍게 말이래유. 너나없이 군기가 빠져서 그류."
"군기야 빠질 때두 되았지만, 넘들 허네."
"민방우 군기는 군기가 아닌게비여. 그저 눈앞에 총탄이 핑핑 날아야 쟁신이 버쩍 날 틴디."
"그나저나 오늘은 높은 디서 나와 본디는디, 클났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골목 모퉁이를 맴돌던 최 대장 눈에 시커먼 물체들이 흐늘거리며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저 따우루 노니께, 노상 능청도 소릴 듣는 겨. 아, 어여들 오지. 즈 앞에서 꾸물거리면 좀 난감."
"기러게 말유. 전시 같으면 총알밥이든 콩밥이든 퍼 먹일 판이유."
이윽고 바랭이 줄기로 이를 쑤시며 자전거포 우 사장이 앞서고, 그 뒤를 이어 빵꾸 이씨, 유성반점 김 사장, 맨 꼬래비에서 무어라 이죽거리며 맥줏집 보리수 양 사장이 흐느적흐느적 나타났다.
"오매, 다리짝을 구부리지 않음 지대루 발두 못 뻗을 골목길을 삼천리루 걸어로네. 워째, 사람들이 죄 그렇댜."
"워째 또 보자마자 타박이래. 왼종일 생업에 종사허느라 골 빠진 사람 불러내서는…‥"
"생업두 국가가 있구 나서유."
팔뚝의 완장을 추켜올리며 동팔이 보자 못해 한마디 걸고 나섰다.
"국가구 나발이구, 머리 허연 놈들 불러내 뭐해 쓰간? 오줌빨 짝짝 나가는 동팔이 같은 이들이 어련히 잘 지켜주려구."
손톱을 기다랗게 기른 새끼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벼 파고 있던 보리수 양 사장이 가느스름 눈을 치뜨고, 동팡의 말에 토를 달고 나왔다. 한마디 쏘아 주려다, 동팔은 달포 전에 보리수 미스 박을 몰래 불러내 오방여인숙에서 공짜 연애를 한 게 은근히 켕겨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높은 디서 온다니께 오늘은 좀 협조적으루다가 잘들 헙시다아."
"높은 디라니, 어디 육삼 삘딩에서 사까닥질이라두 친댜? 협조적으루구 말구 있는가, 까맣게 불 끄고 국민증산운동에 매진허믄 되지."
"이래저래 오임리 애들 많이 늘것구만. 동리 이름값 톡톡히 허야 쓰것슈."
"싱거분 소리 그만혀구, 어여들 윗목아리루 올라들 가여."
"웃목보다 아랫가리가 문제여유. 주점 골목이 취약지역인 거 모르시구 허시는 말씸유?"
동팔이 아랫가리 양 사장 눈치를 살피며, 안 해도 좋을 토를 달았다. 대번에 낯빛이 바뀐 양 사장이 눈을 하얗게 호벼 뜬다.
"거, 말본씨 한번 얄밉네. 취약지역은 또 뭐시여? 다아 먹구살자구 허는 생업인디. 어디 대낮에 장사허는 술집 보았는가? 거기야 특별조치를 해 줘야 허는 거 아녀?"
"그란디 게는 낮이나 밤이나 벌건 홍등 켜 놓구, 정육 장사럴 허는지 대체 뭘 허는 거여? 어듸 한번 귀경이라두 해 보았으면 좋겄네."
"사실루 말허자면 긔야 무슨 불이 필요하댜? 뻘에 나온 거이가 어디 불이 있어 즈 구멍을 그리 잘 찾아 들어간디?"
결국 최 대장이 늙다리들을 데리고 윗목아리로 나서고, 소가 새끼를 내는 바람에 늦었다며 헐떡이며 달려온 재춘이를 앞세우고 동팔은 주점들이 즐비하니 늘어선 아랫가리로 내려섰다.
여느 때와 달리 쿵작거리던 음악 소리가 잠잠하긴 했지만,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허여멀건 허벅지를 내보이는 아가씨들은 여전했다. 동팔은 완장을 찬 어깨에 잔뜩 힘을 넣고는, 술집 골목 복판으로 호기롭게 들어섰다.
"불 끄! 여기는 대한민국 아니여? 때가 어느 깬디, 불들 키구 지랄여."
껄끄럽던 보리수 양 사장도 없으니 용궁에서 풀려난 토처사나 다름 없이 동팔은, 문틈으로 발쪽하니 고개 하나가 들락거리는 안성집 문짝을 번쩍거리는 군홧발로 걷어찼다.
"아이구구, 오살헐 인간이 사람 잡네. 민방운지 문어 대굴빡인지, 두 번만 했다간 사람 머리 다 쬐거겄네."
"머리 까이는 게 문제여? 전시 같으믄 벌써 지삿상에 지방 올라갔어."
겨우 사람 하나 지나갈 만한 골목에, 마주 보고 선 술집 문짝들을 번갈아 발길질로 내지르니, 저만치 숨어서 내다보던 이들은 행여 허름한 제 집 문짝 떨어질까 황급히 불을 끄기 바빴다.
_이시백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오암리 등화관제 훈련」
전라도,
조금 다르지만 한창훈 작가 역시 산문집 『한창훈의 향연』에서 말했다. "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은 의미를 잃는 시대에서 나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변방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쓴 소설이 나오면 으레 고색스러운 방 하나에 한꺼번에 모아놓고 체크인 해 버리는 게 요즘 풍토다. 토속적이다. 질펀하다. 한 마디 내뱉어주면 된다고 여긴다. 평론가들의 모국어 기피, 근친혐오, 그 배경 속에 살고 있다.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대부분이다. 대중 속의 고독도 사람의 일이라 작가가 그곳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지만, 너무 많이들 어두운 카페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 버린 것. 이른바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가 들려준 삼도노인회 이야기 한 토막
여행사에서 정해 준 저녁 식당은 자리돔 구이집이었습니다. 자리돔 구이야 삼도에서도 시시때때 안 먹고 지나가면 서운한 것이죠. 화덕에 굵은 소금 뿌린 자리돔이 놓였는데 너무 잘 아는 게 탈인 경우가 왕왕 있잖습니까. 노인회 부회장이 말했습니다.
“근디 어째 이상하다. 이것 비늘 안 벗긴 것 같네.”
그러자, 그때까지 건성으로 보다말다 하고 있는 이들도 각자 젓가락 들고 건드려 보았죠.
“오메, 진짜네.”
“이것도 그러네이. 이것도 그러고.”
부회장은 종업원을 불렀죠.
“이봐, 아가씨. 이 재리(자리돔을 삼도에서 부르는 말)가 좀 이상하구만. 비늘이 그대로 있어.”
바쁜 와중에 불려나온 종업원은 그래서 어쨌냐는 얼굴을 했습니다.
“예, 비늘 안 벗겼어요.”
“아 글쎄, 비늘이 안 벗겨졌다고.”
“맞아요. 안 벗겼어요.”
“나 말이 그 말이여. 왜 안 벗겼냐고.”
“원래 안 벗겨요.”
“허참. 그래서 어떻게 묵어?”
“익으면요, 이렇게 껍질을 한꺼번에 벗겨내고 드시면 돼요.”
“껍질은 또 왜 벗겨?”
"껍질을 벗겨야 드시죠.”
잠시 화장실 다녀온 역만은 그제야 저도 젓가락으로 자리돔을 건드려 보고 나서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혼란스러웠죠. 아마 제주도에서는 자리돔 구이를 비늘 채 구운 다음 껍질 벗겨 먹거나 또는 이 식당만의 특징인 모양인데 그게 좀 그렇습니다. 전통 음식점 코스라는 말만 듣고 식단을 다 검토하지 않은 게 문제이긴 하지만, 자리돔 구울 때 껍질 벗기는지 안 벗기는지, 그런 것까지 어떻게 확인하겠습니까.
“제주도까지 와서 재리 구어 밥 묵는 것두 거시기 한디 비늘도 안 벗긴 것을 워치게 묵으라고.”
역만이 나섰습니다.
“아마 제주도에서는 비늘 채 구운 다음 벗겨내고 먹는 모양입니다. 말씀 디렸죠? 삼리 밖에만 나와도 우리 집과는 다른 풍습이 있다고.”
“아, 니미. 풍습도 풍습 나름이지. 고기를 비늘도 안 벗기고 묵는 게 무슨 풍습이여? 상쾡이나 하는 짓이지.”
상쾡이는 돌고래 일종입니다. 종업원은 이제 그만, 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내내 그렇게 했어요. 그러니 조금 있다가 껍질을 통째로 벗겨서 드세요. 이젠 됐죠?”
“되기는.”
부회장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습니다.
“생선맛 통 모르는구만. 껍데기가 얼마나 맛있는디. 이렇게 간을 하믄 간도 잘 안 배고 껍데기도 못 먹잖어.”
“껍데기를 왜 먹어요? 살 드시면 됐지.”
“이 처자가 외국에서 살다 왔나.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고긴 말이여, 간 밴 껍데기가 진미여.”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살이 맛있죠. 껍데기가 뭐가 맛있어요?”
종업원도 지지 않습니다. 부회장은 말을 이었습니다.
“어이, 아가씨. 만약에 아가씨하고 나하고 연애를 한다고 해.”
“제가 왜 영감님하고 연애를 해요?”
“내 말 들어봐. 그런다고 치자, 이 말이여.”
“치기는 뭘 쳐요. 나 참 기가 차서.”
그는 내처 이어나갔습니다.
“그래, 그러면 아가씨가 젊은 총각하고 연애를 하는데 있어서 말이여, 서로 상대방의 간뎅이나 창자나 속 뼈따구가 이뻐서 사랑하겄어? 다 껍데기가 좋아서 사랑하는 거여.”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영감님.”
“지금 말이 하는 말이여. 서로가 좋아서 쓰다듬고 입술로 빨고 하는 것도 다 껍데기지 살이 아니다, 이 말이여.”
“영감님, 지금 저한테 성희롱하는 거예요. 신고합니다.”
역만은 순간 그 무엇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성희롱. 얼마나 무서운 단어입니까. 부회장과 함께 경찰서에 앉아 있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지나갔죠. 그는 몸을 날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뭔 소리여? 신고라니. 신고라니.”
“연애니, 입술로 빠니, 다 성희롱이에요.”
“아니여. 난 다만 껍데기 무시하지 마란 말을 알아듣기 쉽게 한 것이여. 젊은 것이 사람 무시하고 있어.”
부회장은 부아를 버럭 냈습니다. 말인즉슨 맞는데 비유가 오해 받기 딱 좋았죠. 부회장은 부회장대로, 종업원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죠. 당장이라도 전화 걸듯이 노려보는 종업원에게 역만은 이것만이 살 길이다 싶어 사과하고 또 사과했습니다.
_한창훈 『나는 여기가 좋다』,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
한창훈 작가는 웃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삶을 이겨내는 기능으로써의 웃음을 좋아한다. 아프거나 가족이 다쳤거나 사업이 어렵거나 시험에 떨어졌거나, 끊임없이 만나야 하는 시련 속에서도 평상적인 삶을 이어 주는 게 웃음이었다. 힘들수록 되레 웃는 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살려고 웃는 것이다."_『한창훈의 향연』
'힘들수록 되레 웃는 이들', 바로 지극히 평범한 서민들이다. 팍팍한 삶 속에서도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구수한 사투리를 사용하며 그들이 쏟아내는 시골의 일상은 그래서 마치 간접 경험이라도 하듯이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