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휴가를 다녀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많은데 이번에 제대로 실천에 옮겼다. 내가 가지고 간 책은 시집이다. 김태정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시집 속에 나오는 시들은 그냥도 너무 좋았지만 미황사와 관련된 시들은 고즈넉한 그곳에 가서 읽었더니 더욱 감동이입이 되어 좋았다. 앞으로는 여행을 떠날 때 꼭 그곳과 관련한 책을 찾아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나?! 그래서 책 대 책을 구상하며 떠오른 주제, 책을 읽고 떠나다, 훗! 좀 웃기지만 어쨌든 책을 읽었는데 그곳을 궁금하게 만들었던 책들을 골라봤다. 

 

따끈따끈한 이 책『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는 유배객의 자취를 찾아 섬을 탐방,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묶은 책이다. 14개 유배의 섬에서 살았던 유배객들의 삶을 좇았다고 하는데, 처음 이 책을 실물로 보기 전에는 솔직히 그냥 그런 역사 이야기인가보다 했다. 한데 직접 책을 보니, 오홋! 역사도 역사이거니와, 그곳을 직접 다니며 찍은 멋진 사진과 짧게는 20여일부터 길게는 27년이라는 긴 시간을 섬에 머문, 유배객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괜찮았다. 유배객들 중엔 유배지에서 편안하게 대접받은 객이 있는가 하면, 먹을 것을 구걸하며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야 했던 객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절해고도에 유배당한 처지는 같았으나, 그곳에서의 삶의 모습은 달랐던 것. 
유배는 기본적으로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무기형이란다. 권력의 변화가 없는 한 대부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자청해서라도 유배를 떠나기도 싶겠지만(도시에서의 혹독한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은 자들!) 그 시대 유배의 섬은 절망의 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유배객들은 절망의 섬에서 살아내야만 했으므로 고독과 단절 속에서 자신을 단련시키고, 분노를 학문으로 승화시킨 경우가 많았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위대한 박물학 저서인『현산어보』와 소나무 벌목을 비판하는 『송정사의』를 남겼고, 노수신은 19년의 세월 동안 진도에 살면서 그 분노를 학문으로 삭여 훗날 화려하게 조정으로 복귀해 남은 생을 대학자로 행세하였단다.
이러한 각기 다른 섬, 다른 사연, 다른 기간이었지만 이 책의 공통점은 바로 궁벽한 땅, 섬을 알린 것. 위도를 알린 이규보, 거제도의 고절치라는 지명을 남긴 이행, 나로도를 아름다운 글로 빛낸 조관빈, 백령도를 기록한 이대기 등등 그들 유배객들이 없었다면 그 섬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풍요로운 이야기를 전해줄 수 없었을 것.
그나저나 휴가 다녀온 첫날인데, 이런 책을 만나고 말았으니 그 섬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또 생기고 말겠다. 

 

섬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14개의 섬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곳에서 생계형 낚시꾼을 자처하며 살아가는 한창훈 작가이다. 그가 십여 년 동안 펴낸 책엔 섬과 바다 이야기가 늘 들어가 있다. 그렇더래도 막상 떠나고 싶은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작년에 읽고 나면 그곳으로 떠나고 싶게 만들었던 책이 있었으니 바로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는 에세이이다. 이 책은 유배를 떠났던 정약전의 『자산어보』(『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에서는 『현산어보』로 나온다.)를 기본으로 거문도에서 나는 생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작가 특유의 위트로 재미있게 다룬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장 거문도라는 곳에 가고 싶어했을 것이다(그러나 대부분 횟집으로 달려가고 말았겠지만;).     

 

김태정의 시집을 들고 미황사를 다녀온 나는 이번엔 매창이라는 기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곱게 늙은 절집』을 읽으면서 만났던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부안에 있는 개암사가 궁금해졌다. 매창은 허난설헌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시집으로 묶을 수 있을 만큼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허난설헌이 규수 시인이라면 매창은 황진이와 같이 기녀 시인으로 뽑히는데 황진이의 경우 시가 많지 않아 시집으로 묶을 수 없지만 매창은 묶을 만큼의 분량이 된단다. 그래서 알게 된 『매창 시집
여기저기 이 시집은 절판이거나 품절이어서 구할 수 없는가, 했는데 마침 올 5월에 개정증보판을 낸 시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시집을 받아들고 보니 부안에 있는 개암사가 다녀오고 싶어졌다. 김태정의 시집과 다르게 개암사에 관한 시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개암사와 관련된 것은 매창이 세상을 떠나고 58년 뒤에 부안현 아전들이 58수의 시를 편집해 개암사라는 절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목판본 글자가 뭉개질 정도고 찍어도 공급이 딸려 매창의 시를 사랑하던 부안 선비들이 필사까지 해서 읽었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까운 주말엔 『매창 시집』을 들고(어쨌든 섬들보다는 훨씬 가기가 편하니까) 개암사를 갈 생각이다.  

 

그동안 책을 읽고 나면 떠나고 싶었던 곳이 외국 소설 속에 나오는 다른 나라이거나 도시였다. 아마도 문학의 고향을 찾아간다는 의미에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위의 책들처럼 우리나라에도 읽고 나면 가고 싶은 곳이 의외로 많다. 문학적 의미로서 혹은 역사적 의미로서, 아니면 문화적 의미로서 찾아가고 싶은 곳. 그런 곳들을 찾아 다니는 것은 맛집을 가기 위해 그곳(!)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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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나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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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지극히 평범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전부였으니까. 성적과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을 제외하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 어른이 되어 누구나처럼 결혼하고 아이 낳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사는, 동화 속 같은 삶이 지속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처럼 평탄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대학에 실패하는 순간까지였지만 그럼에도 지방 작은 도시에서의 삶은 그랬다. 주변의 친구들도 다 그만그만했으므로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아이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존재한다고 믿을 만큼 순진했었다. 그래서 아마도,   

꽃의 나라》(연재 명: 남쪽 역으로 가다) 연재가 시작되었을 때, 한창훈 작가의 시작 말에서 ‘시민사회 구성원의 덕목’이니 ‘미움의 힘’이니 하였어도 그저 단순하게 자신의 삶이 조금 투영된, 고교 시절의 이야기를 하려나보다, 했다. 고등학생의 생활이라는 게,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음직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성장소설이란 늘 그랬으니까.  

소설은 열일곱 살의 소년이 고향인 항구를 떠나 큰 도시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면서부터 시작한다. 도시로의 진학은 가정폭력의 주범인 아버지 곁을 떠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늘 화난 얼굴로 눈치를 보게 만든 아버지, 그 아버지 곁을 떠나 큰 도시로 온 첫날, 소년은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다며 좋아한다.  

“아버지와도 그랬다. 
얻어맞을 각오를 했지만, 처음으로 내 주장을 드러낸 게 이 도시의 고등학교로 가겠다고 말한 거였다. 아버지는 가족을 보이는 곳에 두고 싶어했기에 나를 항구의 고등학교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것이 그의 통제방법이었다.
앞에만 서면 입이 얼어붙곤 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그 말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이 어렵지 한번 시작하자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말이 연이어 나왔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뭐 그런 식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멀리 가야 했기에 뒤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항구의 고등학교에 관련해서 들려오는 몇몇 미덥지 못한 소문과 이 도시가 이른바 교육의 도시로 이름나 있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다. 그는 마지못해 허락을 했고 나는 보는 눈만 없다면 백 미터쯤 허공에 떠오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의 해방감 이면엔 또 다른 폭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맞은 이유라면 ‘단 하나, 멀고 낯선 곳이기 때문이다. 군대처럼’. 추첨이었지만 폭력의 횟수와 강도가 전국 3순위 안에 든다는 고등학교, 다른 곳에서 제적당한 아이들까지 모두 받아주었기에 학교에는 바보 아니면 깡패인 아이들로 바글거린다는 곳. 그 학교에서의 생활은 이미 예정된 폭력이었을 거다. 매를 들어야만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란다고 생각하는 교사에겐 어떤 이유에서든 매가 날아왔고, 학교 내 폭력조직은 그나마 대응할 수 있는 조직으로 들어가면 맞지는 않았다.  

가정폭력, 이어지는 학교와 사회폭력까지, 언뜻 느끼기엔 무거운 주제이지만 고통스러움 속에서도 유머는 늘 존재하듯이 소설 속 한창훈 작가의 위트는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칠순이 넘은 할머니의 넋두리에 낄낄거리고, 동네 건달 진구와 벙어리 여자의 묘한 관계에 호기심이 동하며, 고향 친구인 영기와 진숙의 순수한 사랑을 부러워하는 인호와 소년의 행동에 웃음이 나온다. 또 건들거리는(!) 박정화와 키스를 해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찬 소년의 엉뚱한 행동에서 열일곱 살, 소년의 생활도 여느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래, 열일곱 살 소년의 삶에 폭력의 물이 들었다고 해도 누구나 다 똑같아, 라고 생각할 무렵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참혹한 폭력이 다가왔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군인들은 뛰어내리자마자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다가오는지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먼저 회사원과 중년 남자들이 얻어맞고 나자빠졌다. 중국집 배달부는 배달통과 함께 넘어졌다. 자전거 바퀴가 허공에서 돌고 우동 국물이 쏟아졌으며 뒤이어 머리통이 깨졌고 군화에 짓밟혀 다리가 부러졌다. (…) 언니의 손을 잡고 가던 소녀가 넘어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소녀를 일으켜세우는 언니의 어깻죽지를 군인이 곤봉으로 때렸다. 언니는 소녀 위로 넘어졌고 다른 군인이 자매를 밟고 넘어갔다. (…) 한 군인이 개머리판으로 그의 뒤통수를 쳤다.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얼굴을 감싼 손에서 붉은 피가 떨어져내렸고, 그 속에 동그란 눈알이 들어 있었다.“ 

자국의 군인이 아무 죄도 없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이라면 자국의 군복을 입은 저들이 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가르쳐주는 이도 없이 시민들은 맞고 죽어야 했다. 소년은 꿈속에 들어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꿈을 드디어 꾸고 있다고.  

연재를 하는 동안 조금씩 폭력에 물들여가는 소년을 보면서도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몰랐다. 그저 학교 폭력과 연관된 이야기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2부로 넘어가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오래 전의 일이고, 그동안도 몰랐던 일은 아니었지만 인호 아버지의 말처럼 내가 경험하지 않았고 ‘죽지 않았’으니 ‘레크리에이션’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그곳에서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지. 마치 내가 살았던 시대가 아닌, 오래 전 역사를 공부 하듯 그렇게 넘기고 말았던 일이었다. 한데 이토록 생생하게 내 눈앞에 그때의 상황이 재연되면서부터 나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부터 들었다. 그리고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아니, 난 그동안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구나. 

한창훈 작가는 매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주인공처럼 우리는 가정과 사회의 폭력은 피하기도 하고 합의도 하면서 적응해나가지만 무자비한 국가의 폭력을 만나면 철저하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연합뉴스) 

꽃의 나라》는 그런 소설이다. 그때의 일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겐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전해 위로를 주고, 그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와 같은 사람에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고는, 있으라고, 말해준다.  

책을 다 읽은 후 소년이 그곳에서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아니, 어차피 일어난 일이었으니 친구가 죽고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직접 보면서 받았을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살아왔을까,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국가의 폭력을 볼 때마다 소년은, 그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또 어떤 심정일까? 

오월은 꽃이 피는 계절이다. 유난히 흰 꽃들이 많이 핀다고 한다. 이제 그 꽃들을 보면 그 아름다운 봄에 피지도 못하고 쓰러져간 소년과 소녀들이 생각날 것 같다.  

"사람만이 먹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같은 종족에게 이런 상처를 남긴다. (...) "하지만 그것을 사람의 특징으로 삼는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니? 그러니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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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8-26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녔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아주 소문난 깡패학교였습니다.
선배나 동급생들의 폭력도 심했지만, 선생님들의 폭력도 장난아니었죠.
학교에서는 비교적 조용하고 모범생이었던(밖에서는 안그랬단 얘기죠! ^^)
저도 걸핏하면, 아무런 이유없이 맞곤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니,
전경들이 두들겨 패고,
군대를 가니 고참들이 두들겨패고,
사회인이 되고나니 용역깡패들이 두들겨 패고!

댓글 달면서 생각해보니 참 많이 맞고 살았네요.

readersu 2011-08-29 10:45   좋아요 0 | URL
어이구, 만만찮은 감은빛 님!
꼭 읽어보세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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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나라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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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었다. 여전히 미안한 마음. 그래, 미워할 것은 미워하며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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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8-23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창훈의 신작, 별 다섯이군요. 일단 담아갑니다.^^

readersu 2011-08-23 10:45   좋아요 0 | URL
별점을 떠나서, 다른 나라의 역사에 마음 아파하기에 앞서, 우리나라의 잊히고 있는 과거의 아픔에 대해 다들 기억해주는 것이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 아이들이나, 그 상처를 안고 살아온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아 책을 읽고 나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진짜, 술을 찾게 되더군요).

행운바다 2011-08-24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가슴아픈 얘기는 피해왔는데 억울하게 떨어져버린 수많은 청춘의 꽃들께 사과하는 마음으로 마주해볼까 합니다

readersu 2011-08-29 10:46   좋아요 0 | URL
네,가슴아프지만 꼭 읽어봐야 할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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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연재를 끝으로 소설 연재는 가급적이면 안 읽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고 해도 매일 들어가서 연재를 읽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또 처음엔 열심히 읽어주다가 중간쯤엔 시들해지고 마는 경우가 많아 괜히 작가에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한데《꽃의 나라》(연재명: 남쪽역으로 가다), 한창훈 작가의 연재를 어쩌다 읽게 되었고, 읽다 보니 빠지게 되고, 빠지다 보니 하루의 마지막이 연재를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매일 어찌 지극정성으로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었을까, 그건 컴퓨터가 옆에 없어도 스마트폰이라는 너무나 '좋은' 기기 덕분이며, 매일 빠지지 않고 같이 수다를 나누며 연재를 '즐긴' 열혈독자들 때문이었을거다. 그 연재 소설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마치, 내가 쓴 책 마냥 반가운 것은, 그런 까닭.  

꽃의 나라》는 그동안 한창훈 작가가 보여준 소설들과 다르다. 바다가 없다. 섬도 없고, 생선도 나오지 않는다. 항구의 도시가 잠깐 나오긴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그러니까 이번 소설은 그동안의 작품들과 좀 다르다는 것.  

한창훈 작가의 문체를 안다면 재미있을 테고 또 내용의 깊이를 안다면 마음도 아플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소설 속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술'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이미 읽어본 누군가는 그랬다. 새벽 5시에 술 친구를 찾았다나;). 그러고 보니 한창훈 작가의 책은 늘 그렇다. 작년에 나온《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로 횟집에 달려가게 만들더니 이번엔 우리를 술집으로 인도하신다.  

또 우리가 그동안 그때, 그 곳을 어떻게 잊고 지낼 수 있었는지 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소년의 마음, 그 깊은 상처가 부디 이 책으로 조금은 치유가 되었음 바라게 된다. 

이 연재를 먼저 읽었기에 뒤에 나온 《사라의 열쇠》을 읽으면서 우리가 모르거나 잊고 있는 과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 그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상처에 대해... 《꽃의 나라》와 함께 《사라의 열쇠》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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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인지 피곤이 누적된 것인지, 우울의 연속. 자꾸만 땅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멍 때리기만 하고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날아온 메일 속 시집 한 권, 마음을 확, 사로잡네. 구매 버튼 눌러버리고 시집 오기만 기다린다. 언젠가 친구가 이 시인의 시집이 좋다고 추천해주었던 것 같은데 그냥 지나쳐버렸더랬다. 우연히 시인의 낭독도 들어본 것 같은데 역시 시에 대해선 무지한지라 어느 순간 내 맘에 들어오지 않으면 관심이 없는 듯. 아무튼 메일 속에서 본 시집에 눈길이 갔다. 우울할 때는 시집을 읽어주는 센스. 그게 젤 좋은 방법 같다. 긴 글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소설 속 내용을 이해하려 해도 안 될 때는 역시 시집이 장땡.  

눈앞에 없는 사람》을 사면서 친구가 추천해준 《슬픔이 없는 십오 초》도 같이 샀다. 그러고 보니 둘다 '없는' 이 들어가는 제목. '슬픔' 도 없고 눈 앞에 '사람'도 없는... 움, 좀 쓸쓸한 것 같은데... 젠장, 이 시집 읽고 더 우울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우울을 없애기 위해 사서 읽고 더 우울해지면 곤란한데 말이다. 시집 소개를 보다가 누군가 밑줄 그은 눈에 들어온 시, 

(…) 그날 큰 눈이 그치고/쌓인 눈은 조금씩 얼음의 두께를 더했네/다음 번 내릴 눈에 대해/호수는 걱정을 덜었으나/그때 우리의 심약한 마음은/미래를 자주 떠올리며 쩡쩡 금이 갔네/그때 참 짦은 연애였는네/우리는 너무 많은 산책을 했네/그날 큰 눈이 내리다 그쳤네/그날 큰 개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네/우리의 마지막 산책이었네/그때는 알지 못했네 (_그날, 그때, 산책)

그리고 언젠가 계간지에서 봤던 그 시, 

(…)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어쩌다 보니,로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로 이어지는/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태어난 이상 그 강철 같은 법칙들과/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  (_인중을 긁적거리며)

이 정도로도 시집은 좋다고 혼자 생각함. 

음악 없이 종일 지내 보니 마음이 불안해진다. 할 수 없이 주변 분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한쪽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귓속으로 노래가 들어오니 마음이 평안해진다. 점심 때 입맛이 없다며 밥을 남겼다. 아무래도 내 몸무게가 몇 킬로인지 재봐야겠다. 거의 대학 때 몸무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 꺄~오!(그러나 슬픈 사실, 나이 땜에 오는 뱃살... 밥만 먹으면 다시-.-;)  

뒤표지 시인의 산문도 눈에 들어옴 

오늘 밤, 세찬 빗줄기를 뚫고 건너온, 물방울 속에 뭉쳐 있는 당신의 전언을 펼쳐 읽습니다. 안타깝게도 법과 규칙의 말들은 죄의 무릎과 무릎 사이에 놓인 순수함을 보지 못하는군요. 세계의 단단한 철판 위에 이성의 흔적을 새기는 사람들. 물의 말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죄악의 틈새에서 잠들고 자라나는 어린 영혼을 보고는, 아이, 불결해, 눈살을 찌푸리기만 하네요. 하지만 물방울로 이루어진 당신의 말은 그 영혼을 투명하게 비춰주는군요. 물방울로 오로지 물방울로 싸우는 당신. 물방울의 정의를 행사하는 당신. 판결과 집행이 아니라 고투와 행복을 증언하는 당신. 당신은 말하죠. 인간은 세상의 모든 단어를 발명했어요. 사랑을 제외하고요.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서 빌려온 유일한 단어예요. 그러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죠. 나는 말하죠. 오늘 밤,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아 낯설군요. 당신은 말하죠. 아니, 당신은 너무 낯설어 나를 닮았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아아 시인들은 정말 말도 잘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오래오래 전에 시를 배울 것을 그랬나보다. 아니 지금도 늦지 않았겠지. 울 외숙모는 칠순이 다 된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하시고 시집도 내셨는데... 못할 게 뭐람. 아, 근데 내 최대의 단점, 감수성만 너무 풍부하여 쓰다 보면 찌질해지고 만다는 사실. 에잇,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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