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다, 책이란. 늘 그런다. 너무 기대를 하면 실망이 앞서고 이 책 이거 뭐, 하며 읽으면 은근 끌리게 된다. 김별아 작가의 책을 추천 받을 때도 그랬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코드가 안 맞았다. 안 맞으면 잘 안 읽게 되는데 추천 받았다. 이건 좀 다른 것 같아. 읽어봐! 글쎄, 다른 읽을 책도 많은데 하며 계속 미루었다. 그렇게 밀린 책은 책상 위에 얌전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읽어주기만을 기다렸다. 그 책을 보면서 그랬지. 훔, 그래 오늘은 읽어줄게, 하다가 보면 그 옆에 있는 다른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밀리기를 서너 번하고서야 마침내 책을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도 참 어지간하다. 아무튼 '김별아 치유의 산행'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치유, 심리가 들어간 산행에세이. 그러니까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느냐, 던 작가가 산을 오르면서 자신의 마음속 오랫동안 묵은 상처에 대한 고백을 나눈 책이란 것. 작가는 프롤로그 형식의 예비산행이란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려와야 할 것을, 끝내야 할 것을, 죽음으로 모든 것과 이별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산을 오르고, 사랑을 하고, 기어이 살아낸다. 그 불가사의한 어리석음의 순환 고리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가?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그리하여 산행을 시작했지만 산행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극한으로 치닫는 육체적 고통 속에 더욱 적나라해지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끝끝내 보듬어지켰던 마음의 힘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란다. 

심리학을 다룬 책들은 모두 그렇다. '최초의 기억'부터 이끌어낸다. 내가 지금에 와서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이런 삶을 살았는지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자신도 잘 모르는 상처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치유 하고 싶으면 그 상처부터 끄집어내야 한다.  한데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내게 정말 어릴 때 상처가 있단 말이야? 말도 안 된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른으로 산다는 것』의 김혜남 교수가 말해준다. "누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나"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고. 증거를 대라면,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분명 있다고 자신만만이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다른 사람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 분노하며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강력한 감정이 치솟아 오르면 그건 대부분 그 아이의 분노와 슬픔이다." 헉, 정말? 그런 거였나? 다시 김별아. 

그녀는 아픈 아이였단다. 몸보다 마음이 아팠고,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팠단다. 한데 그걸 인정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걸 인정하지 못하니 끊임없이 부대꼈고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단다. 그런 그의 히스토리를 들은 의사 친구가 내린 결론은 '소아우울증' 거의 완벽하게 그 증상과 일치했고 그제야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니 단짝 친구도 없는 외톨이였으며, 어린 시절 일기장 속엔 온통 '죽고 싶다, 혹은 죽이고 싶다'만 가득 적어 놓았다는 걸 알게 된다. 이게 그녀의 '최초의 기억'이다. 그동안 꼭꼭 숨겨겨 있던. 자, 그럼 이제 그걸 알아냈으니 어떻게 해야지? 치유, 치유를 해야지. 

책은 전반적으로 그녀가 다녔던 산행의 기록에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과거의 상처와 같이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에 잘 어울리는 다양한 책들의 문장들을 잘 버무려놓았다. 산행이라는 취향이 같지 않으면 지루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삶의 의문들을 적절히 배합하여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삶과 산은 닮은 꼴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오면서 왜, 사는 지 혹은 무엇때문에 살아가는지 던지는 의문들은 산을 오르면서도 느끼게 된다. 왜 산을 오르는 거지? 올라가서 어쩌자고? 어차피 내려올 건데...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그녀의 산행을 통해 내면의 고백을 토해내는 작가를 보며 우린 우리의 상처도 보듬어 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내 삶도 그랬네. 나도 어릴 때 그런 경향이 있었지. 은근슬쩍 김혜남 교수의 말이 맞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다른 심리학 책에게도 눈길이 가게 되었다. 마침 출간된 서너 권의 심리학 책을 같이 읽으며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는 것을, 상처가 없는 척해도 결국 찾아보면 마음속에 묵혀둔 상처들이 하나씩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까닭에 이런 심리를 다룬 책들이 위안을 주고 공감을 준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일까 허구한날, 심리학 책만 들고 읽는다면 그건 정말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만 가끔 우울하거나 뭔가 잘 안 풀린다고 생각할 때 읽어보면 유쾌하진 않지만 편안해지기는 한다. 지금 아픈 내 상처가 공감가는 여러 개의 문장들을 읽으며 뭔가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되니까. 그래서 치유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 것 같다. 다시 또 겪게 될 지라도 지금 현재는 치유!  

그러니, 지금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있어 짜증이 나고 불안하고 자꾸만 우울해지는 당신이라면 이 책이 아니라도 가까이에 있는 심리학 책을 한 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처럼 뭐 이런 책을? 하며 읽다가 공감의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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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코와 마들렌 여사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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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여사는 툇마루에 누워 앞으로 쭉 뻗은 앞다리에 턱을 얹은 채 두 여자애가 다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즈가 방석을 두 개 깔자, 가노코가 쟁반에 과자 접시와 찻주전자를 얹어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저런, 아니외다. 손님은 그냥 계시구려."
일어나 거들려 하는 스즈를 가노코가 제지하고 방석과 방석 사이에 조심조심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럼 다회를 시작하겠소이다."
가노코는 스즈의 정면에 마주 앉아 자세를 갖추었다.
"여기 과자를 준비했소이다."
"생큐외다."
"덥소이까?"
"약간 덥소이다."
"그렇다면 선풍기 스위치를 켜겠소이다."
"송구하외다."
쟁반을 가지러 가기 전에 가노코는 '선생님이 읽어주신 책에서 앤이 한 것처럼 어른스러운 다회를 하자 앤 못지않게 정식으로, 어른스러운 분위기로 해보자'고 스즈와 사전회의를 했다. 보아하니 '정식으로,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비결은 좌우지간 말끝에 '-외다'를 붙이는 것인 모양이었다. 

 

이 사랑스러운 책, 『가노코와 마들렌 여사』를 읽으며 어찌나 즐거웠는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조카를 키워본 입장에서 가노코처럼 '게릴라성 호우'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고릴라 아닌 거'라고 말하는 걸 이해하고, 스즈가 콧구멍에 엄지를 찔러 넣은 채 나머지 손가락을 팔랑거리며 '코 나부나부'를 하는 거나, 찻기둥은 못 세우고 또~옹기둥을 세우며 좋아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즐거웠다. 이건 너무 아이들스럽잖아!  

더구나 저 위의 문장처럼 소꿉장난이랄까, 딴에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상황을 재연하는 설정이라 해도 아이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재미난  행동들. 조카와 이미 저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 재미가 어떤지를 알기에 읽으면서 내내 키득거렸다. 맞아맞아, 조카랑 나도 저렇게 계속 주고받았지. 킥킥, 아이들은 다 이런 놀이를 하는구나!(한데 난 아이가 아닌데 왜?) 

난 조카에게 고모가 아니고 친구다. 친구 중에서도 아주 말 잘듣는 친구. 어찌나 말을 잘 들어주는지 언젠가 조카가 이렇게 물었다. "고모는 왜 한번도 싫다는 말을 안 해?" _어이구, 내가 왜? 너한테 싫다는 말을 하겠니.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인데. 난 네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줄 거야! 이 대답에 조카는 좋아라 했을까? 뭐 그건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기양양한 것 같기는 하다. 

짧게는 일주일에 한번, 길어야 삼 주에 한번 우리가 만나는 주말은 그래서 내가 조카와 또래가 되는 행복한 날이고 그 덕분에 난 아직 철이 들지 않은 것 같다. 

뒷부분이 좀 짠해, 라고 책을 추천해준 친구가 말했지만 이 정도의 짠함은 당연한 것. 일본소설 좋아하지 않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가끔, 그래 아주 가끔 이렇게 예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읽으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책을 덮은 후에 조카에게 카톡을 날렸다. "꼭, 읽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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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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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온라인 서점에서 하두 곰스크, 곰스크하기에 책이 보이자마자 읽어봤다. 그동안 책소개도 읽지 않았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은 것. 오래된 소설이라는데, 읽다 보니 그래, 어디선가 읽은 듯도 하고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아니,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다면 여자든 남자든 많은 생각을 주는 소설이었다. 
삶을 살면서 안정, 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은 아마 세상에서 제일 이겨내기 힘든 유혹적인 단어일 것이다. 꿈이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그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안정적인 삶이 주는 혜택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굴복하고 말 테니까.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삶을 되돌아보면 그동안 살아온 삶에서 나름 곰스크로 향하기 위해 무던 애를 썼던 것 같기도 하다. 좌절했던가? 난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원한다면 나는 하고 말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항상 잘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원하는대로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그것에 대한 미련으로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난 그동안 잘 살아온 것? 한데 사실은 잘 모르겠다. 현재 만족하지 않은 상황에선 항상 그때 이 길이 아니고 저 길로 갔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니까. 그게 삶이든 사랑이든 가보지 않은, 행하지 않은 것엔 누구나 미련을 두게 마련이니까. 언젠가 내 삶에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 얘길 들었다. 생각해보니 결혼이라는 걸 하지 않았으니 내겐 집을 떠나고 십여 년 해오던 일을 그만둔 것이 두 번의 기회였다. 그렇다면 한 번의 기회가 남은 것인가? 하긴 지난해부터 자꾸만 발동이 걸리고 있다. 현재의 내 삶이 안정적이지 못한 탓이다. 

이 책에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보다 두 번째 단편 「배는 북서쪽으로」를 읽으며 더 공감이 갔는데 그 이윤 나도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도대체 난 어디로 가기 위해 지금 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항상 지금, 바로 이 순간, 만을 위해 사는 삶이야말로 제일 행복하다고 믿었는데 불쑥,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지고 말았다.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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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마을산책 - 당신이 몰랐던 유럽의 숨은 보석들
권기왕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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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도시에서 자란 터라 어릴 때 꼭 가고 싶은 곳을 말하라 하면 늘 대도시였다. 도시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두 시간 남짓, 그 시간마저도 몇 발자국 가지 못해 만나게 되는 얼굴들과 인사 나누며 걸리는 시간을 포함할 만큼 작은 도시. 아마 그래서 다 자라 큰 도시로 나갈 때까지도 내 로망은 대도시 뉴욕으로의 여행이었던 것. 하지만 역시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변화무쌍. 나이 탓인지 언젠가부터 고즈넉하고 조용하고 뭔가 운치 있어 보이는 곳들이 점점 좋아졌다. 그건 아마도 내가, 지금, 대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나의 로망이었던 뉴욕에 갈 기회가 없어 가보지 못한 탓에 지금도 뉴욕이 마음 한 구석엔 자리잡고 있지만 그래, 언젠가부터 기회가 된다면 유럽 여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후다닥 다녀오는 그런 여행 말고 천천히 둘러보며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하려다보니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유럽 마을 산책』, 부제가 '당신이 몰랐던 유럽의 숨은 보석들'이다. 이 책을 처음 보는 순간, 앗! 그래 바로 이거야! 혼자 외쳤다. 왜? 첫째는 제목이었다. 유럽의 '마을', 유럽의 '도시'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것. 그리고 펼쳤을 때 보이던 사진 속의 유럽, 마을의 풍경이 내 눈을 반짝거리게 했다. 익숙한 듯 생소한 듯한 지명들이 호기심도 불러일으켰다. 안 그래도 스위스에 가겠다고, 가고야말 것이라고 매일매일 사진 들여다보고 있는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 그 풍경들과 그다지 다르진 않지만 어쩐지 고풍스러워보이는 사진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라고 괜히 중얼거리기도 했다. 

원래 여행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하두 다양하게 많이 나오는 여행책들이 많아서 무작정 읽어대던 것에서 벗어나 나름 골라가며 읽고 있는 편이다. 어떤 여행책은 저자의 에세이가 맘에 들었고 또 다른 여행책은 사진이 맘에 들기도 했고 여행지의 정보나 주제가 맘에 들어 읽기도 했다. 한데 이 책은 세 가지가 다 맘에 들었다.  

우선 마을 하나에 대한 짧은 단상과도 같은 이야기들. 살짝 허술해보이기도 뭔가 짜맞춘 듯해보이기도 하지만 그 길이가 길지 않아 이해하고 넘어가기 좋았다. 또 고르고 골라 찾은 마을이겠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그 아름다운 풍광들이라니!! 유럽은 역시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마을들이 너무 많다(저자에 의하면 그게 도시 계획을 세울 때 구도시와 신도시를 나눠 계획했기 때문이란다. 구도시에 세워졌던 오래된 건물을 훼손시키지 않는 방법이기에. 우선 부수고 다시 만드는 일에만 급급한 우리나라의 건축 계획과는 아주 판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자가 들려주는 그 마을의 산책길이나 가는 길에 대한 짧은 정보는 남발하여 머릿속을 복잡하게도 하지 않았고, 딱 좋았다. 그 중 내 마음에 들어온 프랑스의 마을 한 곳,  

<코르드 쉬르 시엘>이라는 곳이다. 지중해와 가까워 기후도 좋고 옛모습도 많이 간직한 곳이란다. "고르드 쉬르 시엘'은 그 독특한 모습으로 먼저 나를 감동시켰다. 넓은 평야에 자리 잡은 마을에는 조그만 원추형 산이 홀로 솟아 있고, 그곳에는 오래된 집들이 언덕을 타고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마치 연두색 풀밭에 소복이 쌓아 올린 봉긋한 조약돌 더미와 같다고나 할까."   

프랑스어를 잘 모르지만 그 언어가 주는 아름다움이랄까, 콧소리가 섞인 듯한 말은 듣다 보면 굉장히 아름답게 들린다. 그걸 뒤늦게 깨달아 프랑스어 공부할 시기를 놓쳤지만(지금 해보려고 했으나 시간이 없다.ㅋ) 아무튼 프랑스어를 듣는 것은 내용도 모르면서 팝송을 흥얼거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저자가 말했듯이 '코르드 쉬르 시엘'이라고 말로 내뱉고 보니 꽤나 낭만적으로 들렸는데 그 뜻을 알고 나니 더욱 그랬다. '쉬르 시엘', 하늘 위에 라는 뜻을 가진, 그만큼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코르드>에 주민들이 '쉬르 시엘'이라는 말을 붙여 지금의 <코르드 쉬르 시엘>이 된 것이라 한다. 한데 더욱 맘에 든 것은 20세기 이후 이곳으로 여행왔던 예술가와 문인들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아예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더 예쁘게 단장되었다는 거다. 그 문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카뮈다. 

얼마 전에 프로방스에 관한 책을 읽은 터라 카뮈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혹,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았다면 카뮈가 <코르드 쉬르 시엘>을 방문하고는 세상에서 동떨어진 외딴 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 말이라는 "코르드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슬픔마저도……."라는 문장 때문일지도.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곳은 많다. 우리나라의 마을마을도 찾아다니다 보면 '이런 곳이 있었단 말야?' 하고 놀라게 되는데, 이 세상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 많을 것인가. 비록 그곳을 직접 가보진 못하고 이렇게 다녀온 사람의 글과 사진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지만 그런들 어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그게 나만의 여행법인 거지.  

『유럽 마을 산책』덕분에 난 유럽의 마을 몇 군데를 또 내 여행 로망의 장소로 찜해두었다. 과연 이렇게 매번 찜만 하고 가기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 닫혀 있는 문을 열어 한발자국 내밀기만 하면 갈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그러므로 가야할 곳은 언제나 찜찜찜할 것.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떤 곳을 원하는지 모르고 인생의 여행을 한다. 욕망과 후회 속에서 얽히고 방황하면서…….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동안 끊임없이 찾던 곳에 도착하였음을 깨닫게 된다. 여름날, 코르드의 어느 창가에서 여행자는 더 이상 길을 떠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코르드의 아름다움에 잠긴 여행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과 외로움에서 자유로워진다.  _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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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마이 로마이 1 테르마이 로마이 1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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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 시공간을 초월하여 초자연적으로 여행하고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거나 미래를 여행하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미래의 물건을 과거로 가지고 와서 겪게 되는 헤프닝이나 과거의 사람이 미래로 가서 겪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을 은근 좋아하는데 이 책『테르마이 로마이』가 그렇다. 타임슬립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루시우스가 로마와 일본을 오간다. 어떻게? 

목욕탕(테르마이) 설계기사 루시우스는 이미 백 년 전에 유행했던 테르마이 설계나 하는 고루한 설계기사라는 평을 받으며 직장에서 쫓겨난다. 낙심하여 길을 가던 그에게 친구가 로마에는 넘쳐나는 게 건축사무소라며 목욕이나 가자고 권한다. 그렇게 찾아간 로마의 목욕탕(만화로 보니 현재의 목욕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로마인들은 목욕을 하기 전에 열심히 운동을 해서 땀을 낸다.), 탕 속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 탕 밑의 흡인력 강한 배수구에 빨려들어 간다. 그리고 그가 다시 본 세상은 현재의 일본 어느 목욕탕. 이런! 

타임슬립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지금부터이다. 시간의 차이가 워낙 많이 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생소하다. 신기하고 놀랍다. 루시우스 역시 그랬다. 목욕탕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른다. 기껏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로마시대이고, 그 시대엔 계급이 있었으니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고 노예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니 당연히 노예들이 사용하는 목욕탕엔 올 일이 없었고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들을 볼 일도 없었으나... 이상했다. 노예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이 너무 신기했기 때문이다. 노예들은(평안족이라 생각함) 그들만의 문화가 있었는데 루시우스가 보기엔 너무나 발달된 문명의 것이었다. 이 사실을 얼른 친구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알몸으로 나가다가 본 바깥 세상은 오 마이 갓! 

정신이 아찔해진 루시우스에게 착한 평안족 사람들은 정신이 들거라며 소젖에 과일즙이 들어간 차갑고 맛있는, 천국의 맛과 같은 음료수를 권한다. 그걸 마신 후 달콤하고 꿈처럼 아늑한 기분에 젖은 루시우스, 눈을 떠보니 이곳은 다시 로마의 테르마이! 그럼 그건 꿈이었나? 

자, 로마로 다시 돌아온 목욕탕 설계기사 루시우스의 활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평안족의 디자인을 훔쳤든 어쨌든 로마인들은 모르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먼저 만들어내는 사람이 장땡?! 루시우스는 그가 경험한, 아니 꿈에서 본 것들이라고 하고픈 신기한 것들을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낸다. 당연히 대박! 

만화를 보는 내내 참 기발하다 싶었다. 2010년 만화대상과 제14회 데즈카오사무문화상 단편상, 두 상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 만화가의 상상력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싶었다(알고 보니 이 만화가는 여자!). 또한 상상력 못지않게 작가가 던져주는 메시지(나만 받은 걸까? 너무 깊이 들어간 것 같긴 하지만^^;;)가 와 닿았는데, 고대 로마에서든 현재 일본에서든 참신한 아이디어, 새로운 디자인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경쟁 사회라는 사실이다. '누구든' 이 사회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든' 새로운 뭔가를 내놔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배수구로 빨려들어 가는 일이 생길 지라도! 

간만에 재미있게 본 만화. 다음 작품 완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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