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그런 적 있어요?
책 제목을 엉터리로 알고 있거나 엉터리로 말하는 겁니다.

전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이런 경우가 갈수록 많아지는데요..
듣고 보니 출판사 직원들도 자기들 책 제목을 틀리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네요.
그러고보면 나이 탓은 아니겟죠?ㅋ

보통 제목이 무쟈게 긴 책들은 더욱 그러는데(하긴 짧아도 헷갈리긴 마찬가지)
그렇게 한번 박힌 책 제목은 좀처럼 삭제되질 않고 머릿속에 있다가
정말, 창피를 당한 후에야(누군가의 지적질!)
정신 차리고 책 제목 제대로 외우게 된다는..
해서,
제가 많이 실수 했던  책 제목을 모아봤어요. 



끌림

ㅋ 이 유명한 책을 언젠가 "떨림"이라고 적은 적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니 당연히 떨렸겠지만, 우째 그런 실수를...전혀 모르는 분이 그러더라.
"떨림"이 아니라 "끌림"인데...아, 정말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는 ㅋㅋㅋ

 
 『우리가 보낸 순간』 

신간 나오자마자 여기저기 퍼나르며 홍보했던 김연수 작가의 책.
트윗에 올리면서 적은 제목은 "우리가 보낸 시간" ㅋㅋ
이틀 뒤에 문득 생각이 나서 얼른 가서 삭제해버렸다는
(하면 어쩔겨, 이미 볼 사람은 다 봤는데!)^^;;
스스로 위로하기를, 다른 사람들도 '시간'인지 '순간'인지 몰랐을 거야...라는 것.
왜?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으므로 ㅋㅋㅋ

 
 『올리브 키터리지

이 책에 관한 글을 적으려고 아무리 "올리버 키트리지"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찾다찾다 출판사 이름으로 찾았는데 나오면
이게 도대체 왜 검색이 안 되는 거냐고 괜히 온라인 서점만 탓했다.
근데 문득, 깨달았다. 내가 잘못 적었다는 것이.
원래 사투리를 쓰기에 말로는 마구 헷갈려주는 나였지만
글로도 사투리를 쓸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ㅋ

 

 『이별의 재구성

오늘의 압권은 이 책...
지난 주 시와 산문 덧글 채팅에서(아, 증거자료도 남아 있도다 ㅠㅠ)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했다. 전 이 책 좋더라구요 "비밀의 재구성"
역시 이틀이나 지나서야 알았다.
내가 책 제목을 잘못 말했다는 것을...근데 아무도 지적을 해주지 않았다.
다만, 어째 이상하다 했다는 소리만 들었다. ㅋㅋ

 
 『비틀거리는 여인

'여인'이 들어가는 제목은 항상 헷갈린다.
'여자'라고 써넣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없이 그런다.  
"비틀거리는 여자" 찾아도 찾아도 안 나온다.
결국은 이렇게 친다. "비틀거리는" 그럼 나온다.
그 뒤에 '여인'이 붙어 있는데 당연히 내 눈은 '여자'로 보고
담에 또 "비틀거리는 여자'를 검색한다.
서너 번 하다 보면 그제야 안다. 내가 잘못 알았다는 것을-.-;;

 
 『프렌치 테이블

이건 책 읽고 리뷰 쓰는 내내 "프렌치 스타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리뷰 다 쓰고 맞춤법 검사하며 책 제목 확인하면서
(그렇다.. 난 나름 열심히 맞춤법보고 올린다-.-;; 
교정이라고 적고 보니 헐, 띄워쓰기니 맞춤법이니 틀린 것 넘 많아서 급 수정
) 알게 되었다.
급해서 그냥 올렸다면 분명 창피 당했을 거다.
매번 그렇더라..그래서 시간이 아무리 급해도 내가 쓴 글 다시 보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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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lee 2011-04-1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원 제목이 안보여요.

readersu 2011-04-13 18:16   좋아요 0 | URL
하하;; 네에-.-;;;
수정을 해 볼게욤^^

설마 제목이 또 오타난 것은 아닐 테죠??? ㅎㅎ
 
그래서 당신 문학동네 시집 71
김용택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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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 우연히 너를 만났다.
네가 들고 있던 두 권의 책 사이로 너덜너덜해진 시집이 한 권 눈에 들어왔다.
어떤 시가 들어 있을까, 궁금해 펼쳤다.
<매화>라는 시가 보였다.
때는 봄, 따뜻한 햇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맘이 간절하던 시간.

매화꽃이 피면/그대 오신다고 하기에/매화더러 피지 마라고 했어요/그냥, 지금처럼/피우려고만 하라구요

핫, 이런!
페이지를 넘겼다.

내 안/어느 곳에/그토록 뜨겁고 찬란한 불덩이가 숨어 있었던가요/한 생을 피우지 못하고 캄캄하던 내 꽃봉오리/꽃잎 한 장까지 화알짝 다 피워졌답니다/그 밤/그곳/그대/앞에서 <만화방창>

봄이 시집 속에 들어 있었다.
대뜸 너에게 말했다. 이 시집 나 줘라.
네가 말했지. 어디 시를 한번 읽어 봐!
못할까봐? 읽어주었다. 그리고 시집은 내 것이 되었다.
앞 장엔 "드림"이라는 오래된 도장이 박혀 있었다.

그대랑 나랑 단풍 물든 고운 단풍나무 아래 앉아 놀다가 한줄기 바람에 날려 흐르는 물에 떨어져 멀리멀리 흘러가버리든가 그대랑 나랑 단풍 물든 고운 단풍나무 아래 오래오래 앉아 놀다가 산에 잎 다 지고 나면 늦가을 햇살 받아 바삭바삭 바스라지든가/그도 저도 아니면/우리 둘이 똑같이 물들어/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버리든가  <환장>

퇴근길,
봄이 왔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괜히 속상한 맘.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는데… 그럼에도 서러움이 울컥.
허나 그것도 잠시, 시집을 펼치니 모든 게 잊힌다.

잎이 필 때 사랑했네/바람 불 때 사랑했네/물들 때 사랑했네/빈 가지, 언 손으로/사랑을 찾아/추운 허공을 헤맸네/내가 죽을 때까지/강가에 나무, 그래서 당신 <그래서 당신>

잊히긴 하는데… 짧은 시들이 자꾸만 내 맘을 콕콕 찔렀다.
내가, 지금, 왜, 갑자기, 이 시들에게 맘을 찔리고 있는 거지?
의문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콕콕.
마치 아프라고 일부러 그러는 듯이 콕콕.

바람이 불면/내 가슴속에서는 풀피리 소리가 납니다  <그리움>

그리움 때문?! 그렇다면,
속절없이 찔릴 수밖에.

그래, 알았어/그래, 그럴게/나도...... 응/그래  <달>

결국 눈앞이 흐릿흐릿,
에잇, 뭐 이딴 시가 다 있어 하면서도 시집을 덮을 수가 없었다.
버스는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과거를 달리고 있었다.

봄비 오는 날 뭐 한다요/책을 보다 밖을 보면 비가 오고/비에 마음을 빼앗겨/넋을 놓고/비를 보다/비 따라가던/마음이 문득 돌아오면 다시 책을 봅니다/그러다가 내 마음 나도 모르게 움직여 도로 그리 간답니다/시방 뭐 하시는지요/나는 오늘 혼자 놉니다/비를 보며, 때로 바람 다라 심란하게 흩날리는 비를 보며/혼자 놉니다/선암사 홍매가 피어나는지/선암사 홍매가 피는지/선암사 홍매가 피어버렸는지/자꾸 선암사 홍매가 궁금합니다/이끼 낀 가지 끝에 붉은 이슬처럼 맺힌/홍매를 생각하며/빗방울을 따라가다보면 빗방울들이 땅에/툭툭 떨어져 부서지며 튀어오릅니다/산이 적막하고/나도 적막하고/물이 고요하고/나도 고요합니다/고요한 마음에 피는 선암사 홍맷빛이 내 마음에 물결처럼/일어납니다/일었답니다/내 마음이 자꾸 그리 갑니다/가는 마음 붙잡아 되돌려 앉혀놓아도/마음은 자꾸 그리 달아납니다/그립고 보고 싶습니다/선암사 홍매는 한 잎 두 잎 꺼져도/내 마음에 일어난 그리운 꽃빛은 언제나 꺼질지/나는 모른답니다/나도 모른답니다 <편지>

모든 지나가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혼자 기억하고 돌아본다고 해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다시 한 번 깨닫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 그러니
서러워할 필요도, 눈물 흘릴 이유도, 가슴 아플 까닭은 더더욱 없.다.

봄은
그렇게
지나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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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조짐 패러독스 7
보이지 않는 위원회 지음, 성귀수 옮김 / 여름언덕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먹고 사느라(-.-) 정치니 사회니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내가 띠지 문구에서부터 '반란의 조짐'이 보이는 책을 한 권 읽었다. 그 띠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책은 테러리즘의 매뉴얼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위험하다면 위험한 문구를 이렇게 적은 걸까, 싶은 맘이 들었고 책을 가지고 있던 분이 어찌나 리얼하게 설명을 해주시는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첫 장을 넘기면 이 책에 대하여 프랑스 르몽드 지가 논평한 문구가 나온다. "권력이 이토록 두려워하는 책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권력이 두려워하는 책이라니. 이 말은 2008년 11월 11일 프랑스 중부 타르낙의 산골 마을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논평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그 마을 주민 20여명을 연행하고 그중 9명을 '테러 계획과 연관된 범죄조직'이자 최근 철도 사보타주의 범인으로 지목했는데 그들의 대부분이 파리의 중산층 출신으로 부족함 없이 성장하고 대학원 이상의 교육을 받은 27~34세의 젊은이였다고 한다. 프랑스 내무장관은 이 9명이 '극좌 아나키스트 자치 조직'이자 '반란의 조짐'의 저자인 '보이지 않는 위원회'라고 발표했고, '반란의 조짐'은 '테러리즘의 매뉴얼'이라고 주장했단다. 그러나 2009년 3월에 핵심의 우두머리로 지목당한 쥘리안 쿠파를 마지막으로 테러리스트로 단죄할 증거가 없어 모두 풀려났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이 모든 수사와 조사는 결국 '반란의 조짐'이라는 문건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난다. 그 '반란의 조짐'이라는 문건이 바로 이 책인 거다. 

사실 위와 같은 내용을 읽으면서부터 이미 나는 이 책에 빠져들었다. 마치 추리 소설을 읽듯이 도대체 그 문건이 무엇이기에, 만약 그들이 테러리스트라면 왜? 하는 의문과 미국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아마존에 베스트셀러로 오를 정도라고 해서 더 궁금해진 것. 과연, 서문에서부터 내 흥미를 끌었다. 이런 내용으로 시작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탈출구가 없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현재 상황은 어떻게든 희망을 품고 싶어 하는 자들이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박탈해버린다. 해결책을 보유하고 있다 주장하는 자들은 조만간 환멸에 부닥치고 만다. 모든 것이 보다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는 것은, 지극히 멀쩡한 겉모습과는 달리 원조 펑크족의 의식 수준으로까지 치달은 이 시대의 금언金言이다."  

프랑스에서 나온 책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우리의 현재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읽을수록 공감의 고개만 끄덕끄덕.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서문 말미에 책을 쓴 이들은 그저 당대에 흔히 나도는 이야기들, 술집 테이블에서 주절대는 잡담들, 침실 문 너머로 새어나가는 수근거림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며 현 상황이 혁명으로 귀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읽어보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사실!   

역자는 이 책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제1부에서 보여주는 일곱 개의 동심원 구조가 그 자체로 21세기의 지옥도를 시각화했다고 한다. 사실, 그 일곱 개의 주제는 현세를 살아가는 어느 누가 읽어도 공감을 끌어낸다. 마음으로는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이지만 입밖으로 내지 못하고, 그런 상황임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이 세상과 타협하고 사회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들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도 꿰뚫어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노동과 환경, 경제, 도시화와 문명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위원회'의 저자들이 풀어 놓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지금, 당장,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바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너무나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그만큼 그들의 논리는 꼼꼼하고 탁월했다. 그래서 처음엔 당황스럽다가 나중에 가서는 왠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하지만, 

제1부에서 그들이 보여준 상황들에 공감을 하면서 마치 지금 당장 반란의 무리에 들어갈 것처럼 흥분을 하고서도 드디어 반란을 해야하는 제2부에 들어가서는 사실 그 격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진짜, 테러리즘의 매뉴얼이었던 것. 

"모든 패거리 문화는 오로지 자신의 보잘것없는 안위를 보존하는 것만이 관심사이기에 반혁명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단체들에 아무것도 기대지 말라" "누구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모든 과격한 파업이 코뮌이다. 지극히 간명한 근거를 내세우며 무단 점거된 모든 건물이 코뮌"이라며 코뮌을 구성하라 말하다. 또 코뮌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하나 그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어야 하는 돈이 아니라 '검은 돈'이라고 말한다. 검은 돈을 가지기 위한 방법으로는 온갖  암거래, 위조 분만을 통해 탈취한 국가 보조금, 이곳저곳에서 끌어 모은 학자금 등등 탈취하고 경작하고 제조하며 훈련하고 터득하라고 가르친다.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익명성을 통해 공격 자세를 취하라고 한다. 또한 평화적 봉기는 존재하지 않으며 무기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만 그걸 사용할 필요가 없게끔 최선을 다하라고는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닌 걸 알면서도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그런 약한 마음을 위해 앞서 저자들은 그토록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배경들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역시 난 테러리스트가 되기는 힘들겠구나, 내가 그동안 이 사회에 너무 많이 길들여지고 말았구나, 싶은. 하지만 이 책은 테러리즘의 매뉴얼이든 권력이 무서워하는 책이든 간에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표적 우익 논객 가운데 한 명인 글렌 벡Glenn Beck은 <폭스 뉴스>에 출연해 “내가 읽어본 가장 사악한evil 책이다. 하지만 피하지 말고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고 대비할 수 있다.”고 거듭해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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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우에무라 나오미 지음, 김윤희 옮김 / 한빛비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모처럼 일찍 일어난 날, 밥을 먹고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알래스카에서 개썰매를 모는 장면을 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어제 읽은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가 생각이 나서 시청하게 되었다. 책에 나오는 개들과는 다른 종의 개였지만 영하 56도인 알래스카의 눈 위를 11마리의 개가 하염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 개들은 보통 16km의 속도로 10시간 정도 달릴 수 있단다. 그 개가 싣고 달릴 수 있는 짐의 양은 사람 한 명과 68kg정도의 물건. 쉬는 법이 없이 지칠 때까지 달린다. 달리면서 똥을 누고 달리면서 장애물을 피한다. 사서 고생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그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말하길 닥터 지바고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 속 장면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단다다. 하지만 그가 경험한 현실은 다르다고 했다. 그렇겠지. 뭐든지 경험해보지 않은 모험은 무모하거나 멋지거나. 

알래스카의  대 자연을 배경으로 개의 시점에서 서술한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이라는 책이 있다. 1897년 클론다이크 골드러시에 참여해 알래스카에 갔던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소설에서 미국 남부에서 편안한 삶을 즐기던 늑대개 벅이 알래스카로 끌려와서 채찍과 곤봉의 세례를 받으며 생존의 법칙을 익히고 원래 벅이 가지고 있던 야성의 본능을 깨우치며 썰매모는 개로 재탄생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북극, 알래스카든 그린란드든 눈이 쌓인 그곳을 달릴 수 있는 것은 개밖에 없다. 그곳에서의 모험은 개가 없이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부제로 붙은 '도전 앞에 머뭇거리는 당신을 위한 책'의 문구를 읽으며 이 책은 위대한 기록이며 실종된 모험심과 도전 정신을 일깨워주는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당신은 29살에 무엇에 도전했는가, 하는 해제에 나오는 문장을 읽으면서도 '아,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군. 요즘은 자기계발서도 참 독특하게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내겐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맘에 들어온 것은 바로 개들이었다. 도전이니 모험심이니 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마지막 장의 제목 밑에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라는 『핑』이라는 책을 쓴 저자의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진정한 삶의 길을 찾으려면 두 번의 여행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여행은 나 자신을 잃는 것이고 두 번째 여행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행이 내가 생각하는 여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극히 공감이 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모험심 강한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며 도대체, 왜, 어째서, 무엇때문에, 라는 의문만 들었다. 물론 그와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이 다르고 만족감이 달라서이기도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어쩌면 그래서 괜히 같이 고생한 개들에게 오히려 더 관심을 가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의 저자 우에무라 나오미는 천생이 모험가인 것 같다. 그린란드와 알래스카를 일주하기 전에 이미 유럽의 최고봉인 몽블랑을 단독 등반 하였고,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인물이란다.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에겐 전설로 불리는, 그래서 절판된 책이 10년 만에 다시 복간되도록 하게 만든. 그러니 가까운 뒷산에도 잘 오르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아무리 그를 이해하려해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무모해보이기만 하는 나오미보다는 채찍질 당하면서 그 모진 곳을 달려야만 하는 개들에게(아, 내가 언제부터 개를 좋아했다고-.-;) 빙의가 되어서;; 

그럼에도 

나오미의 1년 2개월에 걸친 무모해보이기만 한 그 여정을 따라다니며 깨달은 것은, 무엇이든지 마음을 먹는다면 세상엔 이룰 수 없는 일이 없을 거라는 거다. 겨우 29살에 세계 최초로 5대륙 최고봉에 오른 남자라는 타이틀이 살짝 부담을 주기는 하지만 험난하다고만 생각했던 길, 아무도 해내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어내는 이들이 있으므로 인해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나같은) 사람에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해주는 것일지도. 

미지의 세계를 보여주는 모든 책들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지만 추운 것이 싫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절대로 북극 같은 곳엔 가고 싶지 않다는, 여행은 좋아하겠으나 모험은 싫은 얄팍한 심정을 내보이며 책을 덮었다. 그러고선 한참을 생각했다. 그 어떤 일이든지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진 일의 '처음'이 주는 만족감이야말로 평생을 좌우하는 거라고. 나오미가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 고줌바캉 2봉에 최초로 등정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겠지. 문득 세월이 흘러 매킨리산을 다시 등정하는 인물이 나타나 하산 하는 길, 어느 곳에서 나오미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만화 같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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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ㅁ

이번에 새로 나온 정수복 작가의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을 읽으면서 다시 또 프로방스에 관한 궁금증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몇 년 전 친구가 그곳에 다녀온 후에 프랑스를 가거든 프로방스를 꼭 가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기에 만약 프랑스를 간다면, 꼭 가보리라 마음에 둔 곳이기 때문이다. 또 이번 여름에 남불을 여행할 계획이라는 친구 역시 이번엔 꼭 프로방스를 다녀오겠다며 잊고 있던 내 맘을 살짝 건들였던 것.

우선 난 프로방스를 떠올리면 항상 '빛'이 생각난다. 그건 아마도 인상파 화가들로 인한 것이다. 또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인상파 화가들을 떠올리면 저절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자연과 빛, 세잔의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 그가 자주 그렸던 생트 빅투아르인데 그 모든 것이 바로 프로방스라 불리는 곳에 있다.

프로방스는 '동쪽으로는 이탈리아와 인접하고 내륙으로는 알프스 산맥을, 아래쪽은 지중해를 끼고 있는 프랑스 남동쪽 지역 전체를 말한다. 보통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라고 부르며 프로방스는 그중 지중해의 경계와 내륙 산간지역 사이의 지역을, 코트다쥐르는 남쪽 해안을 따라 펼쳐진 지역을 뜻한다'고 김영주의 『프로방스』에 나온다. 

그럼 프로방스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언제일까? 사실 난 그 영화의 배경이 프로방스인 줄 몰랐다. 내용은 차치하고 이미지만 떠올린다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게 빛과 어둠, 그리고 고요함이었다. 빛이 강하다 보니 빛이 없는 곳은 자연적으로 어두웠고 날더러 저런 곳에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까 싶었다나. 바로 <마농의 샘>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나무를 심은 사람』의 배경이 바로 프로방스라는 사실. 그러고 보면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프로방스는 이미 우리들에게 익히 알려진 장소인 셈이다.  

<마농의 샘>과는 다르게 멋진 배경으로 그곳에 대한 갈망을 키워준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러셀 크로우 주연의 <어느 멋진 순간>이다. 지난 번 김영주 작가의 『프로방스』가 나왔을 때 이벤트로 프로방스의 와인 농장이 배경인 그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곳의 풍경은 <마농의 샘>을 봤을 때와 달랐다. 아마 시대적 배경이나 영화 내용에 의해 달라보였겠지만 <마농의 샘>에서의 프로방스보다는 훨씬 상큼하고 멋진 풍경이었던 영화로 인해, 프로방스는 아니더라도 어느 시골 멋진 풍경을 가진 곳에 사는 삼촌이 왜 나는 없는가,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나.  

<어느 멋진 순간>처럼 어느 날 문득 찾아간 그곳에서 결국 살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행을 갔다가 그곳의 풍경에 반해 이사를 온 가족들도 있다. 바로 『마이 프렌치 라이프』의 비키 아처 가족이다.

호주에서 살던 그녀는 여행을 하다가 프로방스에 반해 아예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좋았으면 이사올 생각을 했을까 싶다. 그 책을 읽을 당시엔 그다지 감흥은 없었고, 늘 그렇듯이 텍스트보다는 이미지가 주는 멋진 풍경들에 반해 멋지다 운운하기만 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삶을 살아 가다가, 그렇게 어느 장소에서 데쟈뷰를 느끼듯이 혹, 하고 빠져들어 한번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든다. 아마, 나이가 든 탓이라는 느낌. 

프로방스에 관한 또 다른 책으론 피터 메일의 책이 있다. 『나의 프로방스』, 피터 메일 역시 호주에 살던 비키 아처처럼 여행을 하다가 프로방스에 반했고 반한 김에 농가를 사서 일 년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정수복 작가의 책에 살짝 나온 이야기에 의하면 피터 메일이 그의 책에 언급된 뷔욱스라는 작은 마을의 프로방스식 살라드(이 정겨운 살라드, 스위스 이모가 오셨을 때 매번 샐러드를 살라드, 살라드 하시더라^^) 전문 식당 주인에게 피터 메일의 책이야기를 했더니 웬 영국놈이 엉뚱한 이야길 했냐며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렇더래도 우리나라에서 프로방스에 관련한 책들이 나오기 전엔 어쨌든 피터 메일의 『나의 프로방스』가 프로방스에 관한 로망을 많이 안겨주었을 것이다. 

어제 오늘, 갑자기 겨울에서 봄으로 와 버린 날씨 탓에 더욱 햇빛이 그리워졌다. 쏟아지는 햇빛을 쬐며 앉아 책이나 읽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아쉽지만 그래도 내겐 프로방스에 관한 책이 있으니 주말은 따듯한 공원에 가서 비슷한 색을 가진 제비꽃이라도 바라보며(ㅋㅋ) 그곳이 프로방스려니 하며 책이나 읽는 호사를 누려야겠다는 생각. 그것도 안 되면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라도 들여다볼까? 아, 근데 주말에 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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